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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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아무나 쉽게 쓸수 있는 글인가?
2009년 07월 31일 09시 25분  조회:1609  추천:24  작성자: 최균선
    수필이란 알심들인 훈련이 없이도 문학에 관심이 있기만 하면 누구나 수필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수필은 과연 그렇게 쉽게 쓸수 있는것일가? 수필 은 상징이나 어려운 비유에 구애되지 않고 담백하게 자신을 보여줄수 있다하더라도 글쓴이의 총체적인 인생경륜과 상상경지를 드러내는것이기때문에 예술기량이 수요되 고 그만큼 작가적수련이 전제로 된다.
    왜냐하면 수필은 지성적사고의 능력을 전제로 한 문학행위일수도 있고 도덕적인 의지행위의 표현일수도 있으며 철학적사색의 정수를 독자와 함께 향수하는 문학행위 일수도 있고 미학적가치판단에서 오는 사변성을 지닌 문학활동이기도 하기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문학에 애호만 있다면 별로 문학자질이 없이도 쓸수 있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리드는 자기《영국산문록》에서《심중에 잠재해 있는 관념이나 기분-정서를 표현해 보는것은 일종의 시도이다. 그것은 관념이나 기분-정서 등과 상응하는 어떤 류형을 언어로써 창조하는 비형식의 시도이다. …한마디로 수필은 특정인에게 보낼 필요가 없는 하나의 공개장이다.》라고 하였다.
    몽테뉴에 의하면 수필은 가장 절실한 체험의 표현이다. 몽테뉴의 이러한 독백이 바로 수필의 시작이고 성격으로 형성되였다. 수필은 확실히 형식과 내용에 제한이 없이 무엇이든 소재로 선택할수 있는 자유로운 산문의 일종이다. 수필은 무형식의 형식이 특징이다. 이것이 수필의 성격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문에 수필이 자칫 단순 한 일상의 기록에 그치여 응유의 공명대를 근저로부터 잃게 할수 있는것이다.
    작자는 자기의 체험속에서 얻은 감수를 알뜰히 려과하여 느낌으로 표현해야 자기 숨결이 흐르는 수필이 될수 있다. 수필의 주제는 인생현장을 투시하고 삶에 대해 사색하며 칠정륙욕과 희노애락을 반추데에서 형성된다. 수필은 특히 붓으로가 아니라 진실되고 따스한 가슴으로 써야 하기때문이다.
    수필은 심령의 메아리이다. 따라서 모종 흥미를 담아 독자의 심령속에서도 미적 향수로 메아리쳐야 한다. 리론적인것, 비평적인것, 학문적인것, 설득적인것이 그 본질로 되지는 않겠지만 단순한 신변적인 일상만을 뜻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의 발견이나 보다 깊은 사고를 바탕으로 한 감오가 되여야 함은 틀림없다.
    문학이 인간학이라면 수필같이 인간성을 띤 문학형식은 없을것이다. 수필은 한 가지 문학쟝르이기에 일반적인 심경의 표출ㅡ자기의 이야기래도 어떤 문학적감화력이 있어야 수필다울것이다. 작가의 심경이 인생에 대한 제시라면 그 수필은 분명히 문학 적인 가치를 지닌다. 수필의 진수는 결국 인성의 발굴에 있고 수필의 맛은 인간미 그 자체인것이다.
    수필을 고백의 문학이라 한다. 수필에서의 고백은 개체의 고백인만큼 직접적일수 밖에 없다. 수필은 세속적인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초연하게 인생을 보고 생각 하는 관조의 문학이라고도 한다. 정말 그럴가? 아무도 사회국외인으로 살수 없으며 상아탑속에서 간드러진 피리만 불수는 없다. 수필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삶인가? 등 의문을 던져보고 스스로 대답하는 문학이다. 이런 자세 야말로 수필의 생명의 원천에 대한 탐색으로서 인생을 반추하는 소중한것이다.
    수필은 인간본성의 발굴이고 생명운동으로서 그 본질에 접근했을 때 허위와 가식없는 인성의 고백이 된다. 고백을 문학에 적용한 사람이 수필의 원조인 몽테뉴이 며 고백을 문학으로 보여주고 그 고통을 체험시켜준 사람이 루쏘이다. 두사람의 《법의 정심》과 《참회록》은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세계독자를 울리고있다. 고통스러운 고백에 생명체의 근원이 약동하기때문이다.
    뼈저린 체험, 고통의 과정을 거치고 내면화되는 동안 걸러진 고백이고 그 고백이 지혜와 진리에 접근하였다면 더욱 좋다. 이런 수필은 지혜의 내용으로써 우리의 인생 현장을 비추어 주는 등불역할을 하게 될것이다. 수필은 회의성과 담백성의 문학이다. 회의적이고 지성적일수록 적극적인 의미를 지닐수 있고 창조적일수 있다. 회의를 앞세우고 다각적으로 생각하기때문에 다양한 사색은 수필의 개성이 된다. 적극적인 탐구로 창조를 이룩하고 다각적인 관찰로 특유의 개성을 살린 수필은 문학과 철학에 접근한다.
    그러나 담백하다는 리유때문에 자칫 단순해질수 있다. 샐활기록과 수필의 분계선 을 잘 가려서 들어서야 하거니와 수필이 풍기는 그 예술향기속에서도 생신한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수필에 담고 있는 주제의 참신성과 적극성에서 담보될 수밖에 없다.수필은 성격상 자유로운 형태이기때문에 그 내용이나 전개방법에 있어서 어떠한 제약을 받지 않고 시처럼 고도의 기술이 수요되 않지만 생각나는대로 쓰고 쓰고 싶은대로 쓰는 글이 절대 아니다. 견문, 체험, 편지 같은것을 통틀어 수필이라 하지만 작가의 개성이 내성적으로 체현되여 작가정신과 체취가 생생하게 풍겨야 한다.
    수필에서는 자기의 감정을 서정화하는 동시에 객관화해야 한다. 작가의 개인적 정서나 체험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확보해야 하기때문이다. 자기의 생각을 주관적으로 하기보다 공유화해야 한다. 시가 주관정감으로 감동을 주는 문학이라면 수필은 개체 적정감을 객관화하여 감동을 시도하게 된다. 자기의 체험을 소개하기보다 분석하고 제시해야 한다. 수필은 이야기자체가 아니기에 분석적이고 해설적이야 한다.
    자기의 사상을 직설하기보다 상징화해야 한다. 수필을 쉽게 아무나 쓸수 있는 문학이 아니다. 물론 수필은 지식과시나 현학적이기보다는 작가의 체험에서 피여오른 정감그대로 털어놓으면서도 모종 삶의 진리를 설파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리해되고 접수되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정서체험이라야 한다.
    지성적사고의 능력을 전제로 한 철학적, 사변적수필을 중수필이라고 한다. 한국 에서는 에세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중수필에 상대되여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쓴 경수필도 제멋이 따로 있지만 필자는 어디까지나 수필로서의 품위와 문학적함량은 력래로 중수필에서 체현되였다고 생각하고싶다.
     지난세기 90년대 이후 문학의 백화원에서 수필이 봄을 맞아 영화의 계절을 자랑하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알심들여 가꾼 꽃은 피지 않아도 무심히 꽂은 버들가지가 무성하더라》는 그런 경우를 의미하지 않는다. 수필은 글자대로 하면 필을 따르다이지만 마땅히 절실한 정서체험과 깊은 철학적사색속에 어렵사리 핀 문학의 꽃송이라고 해야 사리에 맞는다. 수필이 제멋대로 피는 앉은뱅이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한편 한편 어렵게 다뤄가자고 호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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