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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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소리
2008년 01월 30일 10시 18분  조회:3670  추천:34  작성자: 최균선

단편소설

 

노크소리

 

                       최 균 선

 

똑 똑 똑…》

노크소리가 들려온다. 오후에도 벌써 세번째인 노크소리이 다.

(누굴가? 혹시나 이번엔 아들놈이라두…)창모는 저도 모르게 막연한 기대의 눈길을 출입문에 박았다.

진종일 덤덤한 기색으로 그림책을 번지고있던 애젊은 경찰이 문을 여는순간, 창모씨는 스르르 머리를 돌려 맞은켠 침대를 바라본다.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찬 눈길에 질투 비슷한 마음까지 곁들려있었다. 역시 오늘래일 하는 중환자인 김선생의 제자들이 왔던것이다.

창모는 신경질적으로 두눈을 꼭 감아버렸다.(끝내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구나. 눈귀에서 흘러내린 찝질한것이 마른 입술을 축축히 적셔주었다. 하긴 죄지은 몸으로 병치료를 받고있는 자기를 누가 찾아주랴싶어지며 허구픈 한숨이 나오다가도 노크 소리만 나면 자연 되살아나는 마음인것을 어쩌랴!

자유로왔던 영화의 시절에 그렇듯 범상하게 들어오던 노크소리, 반가운 약속을 앞세운것이 아니라면 못내 심드렁해지고 때론 짜증도 내던 노크소리가 지금은 무슨 복음처럼 느껴지는 외로운 존재가 되였으니 화복의 무상함을 깊이 알겠다.

창모에게 있어서는 노크소리가 남달리 각별하였다. 첫째로는 인생의 파산을 선고하던 치명적인 경종이였고 다음으로는 지금의 처지를 더욱 암담하게 하는 숙명의 종소리이기도 했다.

창모는 워낙 시특산물공사의 공소과장인데 모험가의 천당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루만금의 벼락거부였다. 현대화한 개인 저택에다 전화까지 놓고 오래전부터 배맞아 돌던 나젊은 미인까지 안해로 맞아들여서 달콤 살짝 멋들어지게 살던 사람이였다.

그러나 옛말 그른데 없이 부귀영화 일장춘몽이라 그의 행운도 주일배(酒一杯) 로 되고말았다. 경제범들을 잡아내는 운동이 들이닥친것이다. 하여 처음엔 탄 입술을  감빨고 그 유용성을 찾아내고 그다음 편안을 바라고 그후엔 쾌락으로 재미를 보고 그때로부터 사치에 방탕해지고 결국에는 미쳐서 신세를 망쳐먹은 이른바 흥망성쇠의 자연규률에 좇아 불치의 사회병자로 전락된것이다.

재래로 마음의 바탕이 밝으면 칠야에도 푸른 하늘이 있고 생각머리가 어두우면 백일하에도 도깨비가 나타난다고 했거늘 바로 그맘때부터 창모는 노크소리만 나면 저절로 신경이 도사려지는 버릇이 생겨났던것이니 불운의 그 밤, 최후의 노크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덜컹 했다.

그때 저녁상에 방금 마주앉았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에크, 이번엔…》

시위소리에 놀란 새처럼 황황해서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대기하고있는데 안해 애금이가 열어주는 넓다란 문으로 기름진 배때기부터 들이미는 사람이 공사의 부경리 이자 함께 몃을 내던 짝패인 백치수인지라 창모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며 식은땀을 닦았다.

《여보게, 바람새 제법 세차졌는데 주의하라구. 자네 이번 관을 무사히 넘겨야 하는건데…혹시 자네가 몇년(궈테)신셀 지더라두말이야 형제들의 낯을 지켜야 하네. 알겠나? 뒤처리는 내가 맡겠네. 나온후에두 절대 푸대접하지 않을테니까…》

지겨운 붕어눈을 데룩거리며 발뺌부터 하는 백씨에게 웬간히 골났지만 그럴 계제도 못되여서 울며겨자먹기다.

하기사 드러난 목표가 내니까요. 안심하라구요. 이 창모두 칠척장한입니다.

《음. 친구답소. 마디지구만. 자네 집걱정을랑 말게. 내가 어련히 돌보지 않을 라구. 흠흠…》

백치수는 예상밖으로 강개하게 나오는 창모의 가슴을 툭툭 쳐주고는 공연히 건가래를 톺으며 애젊은 녀주인의 얼굴을 빨아 넘길듯 바라본다. 애금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바래러 나갔다가  한식경이나 지나서 무어라 종알대며 들어왔다.

저녁도 끝나고 밤도 이슥했는데 또 노크소리가 울렸다. 침대우에서 담배를 태우던 창모는 불에 덴듯 발딱 일어나 앉았다.

《어이, 애금이 나가보라구, 젠장 이거야 부산스러워 살겠나, . 나 없다 구해.

속은 잔뜩 얼어있으면서도 호기를 뽑는 남편의 얼굴을 핼끔 쳐다보던 애금의 입가에 찬웃음이 얼핏 건너갔다.

애이, 시끄러워. 또 누구야?!

허리를 배틀며 현관으로 나가던 애금이가 환성을 지른다.

어머, 현선생님이네요. 아이유, 어떻게 이 밤중에, 어서요.

안됐어요. 참 고봉이 아버지 계세요?

들어보니 소학교 5학년에 다니는 아들애의 담임선생이였다.

《안계시는데요. 무슨 급한 용무라두…저에게 말씀하면 안되겠어요?

《안될거 없어요. 저 말하자면 고봉이 학습때문에…요즈음 걔가 성적이 말이 아니예요. 원인은 많지만 오늘 그걸 따지자고 온게 아니라 긴히 토론할 일이 있어 서요.

, 말씀하세요. 혹 반에 무슨 경제난이라두…》

《그런게 아니라 고봉일 우리 집에 며칠 붙박아두고 복습시키려구요. 우리 민이두 있구 하니.

《아아, 참 고마운 말씀이네요. 그런데 꼭 오늘부터라야 하나요?

그래요. 이제 사흘후면 중간시험이 있으니까요.

어쩔가? 애아버지두 없는데저 그럼 걱정 끼치겠어요. 요즘 집도 부산하구 하니까요.

안해의 독단에 창모는 밸이 꼬였지만 그에 앞서 어떤 감격에 가슴이 그들먹 해졌다.(참, 별난게 교원들이지…특수재료로 만들어진 인간들이야!평시엔 늘 하찮게 보아오던 교원들에게 준비없던 꽃다발을 엮어올리는 창모의 얼굴이 저으기 뜨거워 났다. 그는 자기 아들에게 커다란 기대까지 걸고있는터지만 정 안되면 돈에 싸서라도 류학문에 밀어넣을 숨은 속셈도 있는지라 현선생에게 감사할만도 했다. 그레서 현선생과 아들애를 바래고 들어오는 안해에게 치하까지 해주었다.

《인제야 누가 오지 않겠지?》하는 위구심을 안은채 창모는 안해를 잡아끌었다. 이때 또 갑자기 현관문을 세괃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하는 례절스러운 노크가 아니라 마구 탕탕 쳐대는 소리였다. 그들은 몸을 오싹 떨었다. 역시 애금이가 바들바들 떨며 문을 열었다.

어지러운 구두발소리가 곧추 내정돌입이다.

《당신, 고창모요? 당신 체포되였소!

딛고선 땅이 천길만길 꺼져들어가는듯했다. 발칵 뒤집히는 방안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창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나깨나 닭알가리를 쌓아보던 안락궁. 정든 안해와 귀여운 아들을 떠나 끌려가야만 하는 창모의 가슴은 오리오리 찢기였다. 그런데 울며불며 야단칠줄 알았던 안해가 그저 침대에 폭 엎어져 우는지 흐느끼는지 어깨만 달싹이고있었다.

창모는 머리를 푹 떨구었다.

심문실에서 창모는 자기가 말한대로 의리를 지켰다. 여러 달을 끌어오다가 급기야 유기형 5년을 받고 복역을 시작했다.

안해가 첫면회를 왔다. 난생처음 면회실에 들어선 창모는 대뜸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까까숭이 대가리를 주억거리며 중언부언하는 남편앞에서 말없이 흐느끼는 젊은 색시가 있는가하면 파파늙은 에미가 넋을 잃자 제가슴을 쾅쾅 짓찧는 중년 나이의 도깨비상도 있었다. 면회실은 온통 흐느낌소리와 눈물과 탄식소리로 꽉 찼다.

창모도 안해와 마주앉았다. 혈색좋던 남편의 꺼칠해진 얼굴을 가끔 건너다보며 장탄식만 하던 안해가 나직히 하소연했다.

《당신이 이 지경되니 얼싸한 친구들이 범벅덩이에 쉬파리처럼 달려들었어요. 무슨놈의 빚이 그리 많은지…지어 내 몸까지…흑, 흑…》

면회온 사람답지 않게 짙은 화장을 한 안해의 요염한 얼굴이 보기싫게 이즈러 진다.

《참, 피천 한푼 없는 알거지가 되였으니 난 어떻게 살아요? , 이럴줄이나 알았더면…》

따스한 말 한마디 없이 돈소리부터 하는 안해의 얄망궂은 입술을 얼없이 바라 보던 창모는 그저 허구픈 한숨만 나왔다.(저치가 그래 무엇을 보고 내게 왔던가…)

울긴? 그래 백씨는??

애금인 머리를 살짝 숙이고 외고개질했다.

(제밀헐, 개같은놈의새끼, , 정 그렇다면 너두…)성이  독같이 난 창모의 눈에서 불이 흘렀다.

집은?

몰수래요. 잠시 그냥 있어요.

세면실 수도꼭지타일…》

경찰이 이쪽으로 오자 말이 끊어졌다. 그러나 애금의 얼굴에 희색이 돌며 눈이 반짝했다. 창모는 깔끔하게 생긴것처럼 밸도 열두굽이를 가진 앙큼한 사내였다. 역은 토끼 굴세개를 판다고 그는 언녕 준비가 되여있었다.

(흥, 싹 털어가도 내 속에 곱이야

창모는 마음이 든든해서 감방으로 돌아왔다.

두번째 면회날이다.

첫번에 왔을 때보다 안해는 더구나 상심해서 쿨쩍거린다.

아이, 귀신이나어떻게 알고 그들이 선손을…》

애금이는 한푼도 없다는 뜻으로 손을 살래살래 저었다. 창모는 끔쩍 놀랐다. (에익, 내가 도청기가 장치되여있다는것을 예상 못했을가? 참으로 방아간을 지난 참새격이군.)그는 신경질적으 로 사위를 둘러보았다.

《며칠전, 고봉이가 철봉에서 떨어져 팔을 접질렀어요. 다행히두 현선생이 치료비랑 내서…호—언제 갚겠는지? 생각다못해 개인식당에…흑…》

아니, 당신이?! 그 어지러운 일을…》

창모는 호강시키겠다고 장담하고 꾀여온 안해가 불쌍해졌다. 그는 안심하라는듯 정겹게 바라보며 입을 별스레 쭝긋거렸다. 남편의 추들추들한 입술을 도정신해 바라보던 애금이도 같은 모양새로 되새기자 창모가 눈을 끔쩍했다. 이런 무성담화는 얼마전까지도 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쾌락이였다.

(이번에야 귀신도 울고 갈테지…)창모는 비록 《령어》의 몸이 되였지만 남편 으로서의 책임을 다할수 있다는 생각으로 찢기고 얼룩진 마음을 깁고 기웠다.

그런데 세번째 면회일엔 애금이가 더구나 험악해진 얼굴을 들고왔다.

어찌된 영문이요?!

이번에도 내 먼저 그들이일전도…》

역시 눈길로 주고받는 무성의 담화였다.(아이구, 하느님 맙시사. 록상기까지 장치하다니?)창모의 가슴은 살점을 뜯기우는듯 아파났다. 두번에 8천원이란 돈을 훌쩍 떼웠으니말이다.

안해가 어느새 가버렸는지. 또 자기가 어떻게 면회실을 나왔는지도 몰랐다. 그는 장밤 한탄과 자탄으로 보냈다. 새벽녘에 꿈을 꾸었다. 요행 탈옥한 그가 안해와 아들을 데리고 천애지각에로 달아나는 꿈이였다. 물론 그 최후의 비밀을 파내가지고 떠났다…

안해가 왔다간지 얼마 안되는 어느날 감외로동을 하러 죄인들과 함께 대문을 나설 때 감옥장이 그를 불러냈다.

107, 날따라 사무실로 오시오.

창모는 속이 꿈틀했다. 불길한 예감에 다리가 후둘거렸다. (혹시 그 비밀이 라두…)이렇게 속궁리에 똥집을 태우며 사무실에 들어서니 천만뜻밖에도 현선생이 맞아주었다.

아니, 현선생님이 어떻게요?

몸이랑 건강한지요?

현선생의 례의적인 문안이였다.

창모, 앉아도 되오. 저 현선생, 그럼 구속받지 말고 이야기하시오. 난 일이 바빠서…》

감옥장이 나가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창모는 혹 아들에게나 안해에게 무슨 변고라두 생긴가싶어 속이 떨렸다.

일이 무척 고달프겠지요?

《아니요. 참 우리 고봉인…돌봐주어서 은혜태산같습니다.

《웬 말입니까? 교원의 직책인데요. 고봉인 총명해서 공불 잘해요. 몸도 탈없 구요.

?!

《오늘 털어놓고 말하지만 그날 내가 고봉일 데려간건 공부때문이 아니였 습니다.

아니? 그럼?!

《난 고봉 아버지가 조만간 체포된다는걸 알고있었지요. 만약 그 장면을 본다면 어떻게 될가요? 어린 심령에 받는 상처는 너무도 깊을거예요. 그리고 그애의 인격 발전에 영향을 끼칠거구요. 그래서 그앨 회피시킨겁니다.

창모는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자기가 퍼그나 깔보아오던 《훈장님》들의 고매한 덕성에 진정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수 없었다.

《오늘 이건 말하자고 온건 아닙니다. 당신은 자기 아들에게도 씻지 못할 죄를 지었어요. 정녕 자식을 사랑했다면 무엇을 해주려고 생각할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 할수 있는 인간으로 키워야 했지요. 그런데…》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갇히고 보니…모든건 그 애를 위해서 한건 데… 후유ㅡ》

창모씨는 그저 무릎만 쓸고 앉았다.

《벽돌담과 철창이 감옥을 만드는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감옥을 만든다고 말해야 옳을거얘요. 깨뜨릴수도 벗어날수도 없는 영원의 감옥말입니다. 그리고 흔히 들 죄를 씻는다고 하는데 사실 죄는 취소되는게 아니라 용서된다고 해야 할겁니다. 그렇다면 고봉이가 자기 아버지를 어느만큼 용서할가요? 정말 몸서리칠 일입니다.

《내 말을 무슨 도덕가의 완성된 설교라고 여기지 마세요. 그저 고봉이가 불쌍 하지요. 나는 한 아이어머니로서 하는 말입니다.

?! 저의 처가 어떻게 되였습니까?

아니, 무사해요. 사람이 감정과 본성만 따른다면야…》

현선생은 뒤말을 후무려버리고 어조를 바꾸어 화재를 돌리였다.

이제 내 이야기를 듣고 보면 아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될겁니다.

창모가 체포된 이튿날 저녁이였다. 현선생의 아들 최민과 함께 숙제를 하던 고봉이가 그만 빌려쓰던 자동연필을 망가뜨렸다. 최민이가 성이나 씩씩거리며 물어내라고 야단냈다.

《체, 그잘난걸 가지구. 이제 울아버지가 출장갔다 올때 더 멋진걸 사주면 되잖아, 씨ㅡ》

너의 아버지가 돌아온다구. 감옥에 간게.

역시 아이들 입이란 영영 잠글수 없는 문이였다. 제 어머니가 그렇게 만당부 했건만 어망결에 비밀을 게워놓은것이다. 최민이가 혀를 내밀었을 때는 늦었다.

《너, 임마, 뭐라구? 다시 말해!》

《이걸 놔! 난 거짓말 안해, 너절로 물어보렴.

고봉이는《와—》하고 울면서 집으로 뛰여갔다. 밤도 깊지 않았는데 불이 꺼져 있었다. 그는 목에 걸린 열쇠로 문을 열고 곧장 어머니 방으로 뛰여들었다.

엄마! 불켜.

느닷없이 들이닥친 아들애때문에 초풍하도록 놀란 애금이는 기겁했다.

, 조용해!

남자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얘요? 아버지!?

《애새끼두, 아버지가 아니구 누구겐? 출장 가려다가 돌아오셨다.

거짓말, 내 다 알아, 아버지 감옥갔다며?! 씨ㅡ

낮게 말해. 누가 그러던?

최민이가 알려줬어, 아버진 무슨 경제범이라구. 엄마, 정말이야?!

애금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짐짓 태연한체 했다.

, 정말이다.

건데 왜 집에 있어요?

너의 아버진 네가 너무 보구파서 도망쳐왔단다.

애금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였다.

정말 나쁜 사람이야, 엄마, 공안국에 보고했어?!

《이 바보야, 아버진 다 너를 위해서 그런거다. 래일 감옥에 돌아간다구 했어. 이게 다 너를 위한게 아니냐? 됐다. 어서 네 방에 가서 자거라.

고봉인 갑자기 아버지가 측은해져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 비밀이 탄로나면 안돼, 알겠니?

나 아버지 볼래.

《아버진 너무 지쳤다. 너 훌륭한 아들이지, ? 그럼 어서 가자거라.

고봉이는 더 군말없이 제방에 갔다. 그는 자기 아버지를 아주 높이 보고있었으며 무척 따랐던것이다. 이튿날 어머니방에는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새벽에 감옥으로 돌아갔단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후였다. 현선생은 어문시간에《나의 아버지》란 제목으로 글짓기를 시켰다. 고봉이는 울상이 되여 연필만 깨물었다. 감옥에 간 아버지를 무엇을 자랑한단말인가? 그러나 그처럼 사랑해주던 일들은 잊을수 없었다. 아버지가 그날 밤 도망쳐온것도 다 자기를 사랑해서가 아닌가?… 마침내 그는 곧이 곧대로 써내려갔다.

아이들 작문을 검사하던 현선생은 깜짝 놀랐다.(고봉이 아버지가 정말 탈옥 했을가? 아니 그럴리가…그러면 고봉이 어머니와 같이 자던 그 사내는??) 이렇게 여러가지로 의문을 굴리던 현선생은 유관부문에 알리기로 작심했다. 한편 창모를 만나볼 필요를 느꼈다. 애금이가 며칠이 지나도록 아이차중을 하지 않는 까닭을 깨닫게 되자 현선생은 무섭게 비틀려가는 인정에 망연자실해졌고 무의무탁하게 된 고봉이의 일에 마음이 쓰리였다. 그는 감옥당국과 협상하여 면회를 허락받았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현선생의 뒤말이였다.

실성한 사람처럼 굳어져있던 창모는 뼈갈리는듯한 신음소리 를 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우리 고봉일… 욱우—우》

창모는 오열에 떨며 뛰쳐나갔다. 그는 백치수의 비릿한 낮짝을 노려보며 으드득 어금이를 갈았다…

창모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엎어진자의 정수리에 오줌을 내갈린자가 백치수 라면<성황당>의 제물이 된것은 결국 창모였다.

세번째 면회를 하고 온 그날 밤에도 애금이는 남편의 체온이 식지도 않은 침대위 에서 백치수의 시큼한 털부숭이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재깔거렸다.

《정말 가산석밑에서 5천원 찾아냈어요. 난 또 금목걸이 살테야, ?! 으응, 깍쟁이. 이게 뉘해야, 싫어, 싫어, 늙다리같은게. 저리 비켜요.

《헤헤헤, 요귀염둥이야. 내 말을 들으라구. 난 죽도록 애금일 사랑해.

, 그래서요?

《볼장 다 봤지, 창모가…흠, 헌데 그눔 어쨌든 도회지참새거든. 8천밖에 숨겨둘리 없어. 꼭 더 있어. 애금이 그걸 후벼내란말이야.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야!

그걸 챈 다음. 그를그리구 나와 함께 살자구, ! 그잔 평생 옥밥이나 먹으라지.

아이, 정말 량심없네. 난 몰라, 난 리혼할테야.

《쯧쯧, 이봐, 지금 당장 리혼하면 안돼. 늘어지게 붙으란 말이야. 아이두 거두는척하면서…정이야 나와 나누면 되잖아. 그 돈 다 줄게.

아이 정말?! 거짓말하면 난 싫어.

, 인젠 알겠지? 함 졸린다. , 인젠 즐겨보자구, ?

네번째 면회날이다.

안해를 바라보는 창모의 볼따귀는 무섭게 실룩거렸다. 볼이 풀무질하는 그만큼 속에서는 모닥불이 탔다.(에익,저 갈보년을…내가 미쳐서…)그는 단매에 쳐죽이 고 싶었지만 군자의 복수 10년을 가도 늦지 않다고 눌러 생각하고있었다.

하긴 현선생이 찾아왔던 그날, 광증이 날 정도로 신경이 뒤번져서 감옥장의 사무실까지 달려갔던 그다.그러나 정작 노크하려고 손을 들던 그는 돌아서고야 말았다.

후반생을 기탁할 거금에 대한 미련도 미련이려니와 고봉일 생각해서라도 잠시는 애금이를 붙잡아두어야 했다.그러자면 애금이를 기름내 맡고 맴도는 고양이로 만들어야 했다.그러니 죽어도 최후의 비밀은 털어놓을수 없었다. 더구나 가형을 받을 일이 두려웠다.

한편 그처럼 사랑하던 자기 안해를 슬쩍 가로타고 앉은 백치수를 당장 골탕먹 이고싶었지만 그자에게 꼬리잡힌것도 있고 또 련루되는것도 있으니 입을 막아두는 것도 상책이였다.벌써 전에 사통하고 다녔을 애금이를 그자의 품에 밀어넣어주고 억울 함을 짓삼키고있다가 나가는 날이면 그자의 대가리도 돌려놓고 그년도 찢어놓 으리라 윽벼르며 참을 <인>자를 백번도 넘게 외워댔던 그다. 면회가 거의 끝날 때 애금이 입에서 모래알같이 깔깔한 말들이 튀여나왔다.

, 인제 더 못살겠어요. 매미신세가 되여 북풍을 마시고 살겠어요? 아예 리혼하자요. 난 못기다려요…》

녹쓸은 철판처럼 변해가는 얼굴로 침묵만 잡고있던 남편에게서 쪽지가 날아오자 애금이는 더 종알거리지 않았다. 쪽지를 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일루의 희망이 싸늘한 가슴에 한가닥 온기를 불어넣었다.

《하루밤 정이 만리성을 쌓는다는데 나를 너무 괴롭히지 말구려. 기다려야 했다는 생각을 가질 날 꼭 있을거요. 내 장담하지. 비록 난 자식은 아니지만 인정을 베풀어주오.

내가 너무 애달파서 한 말이니부디 몸조심하세요. 또 오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가슴이 어떠했는가는 귀신과 그 자신이나 알것이다. 그녀 는 감옥담장을 벗어나자 쪽지를 펼쳤다. 애금이, 후반생을 늘어지게 살도록 해줄게, 날 믿소, 리혼하면 통곡할 때 있을거요. 그러나 지금은 비밀을 말할수 없소. 고봉일 부탁하오. 복을 기다리오…》

애금이는 쪽지를 갈기갈기 찢어 물웅뎅이에 처넣었다.

.

그래 무슨 소득이 있소?

, 기다리면 복이 있다나요.

《것보라구, 무엇이 있길래 큰소린거야.

백치수의 속에서 랭혹한 일만 구렝이가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그뒤, 애금이도 창모도 서로 속는줄 알면서도 그냥 끈질긴 교역을 벌려왔다

어언 3년 세월이 흘러갔다.

창모는 기다림과 그리움에 기갈이 들었다. 인젠 어엿한 중학생이 되였을 아들을 그는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애가 소학교에 다닐 때 현선생은 의식적으로 면회를 시키지 않는다고 량해를 바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말은 드러내놓고 하지 않았지만 고봉이가 집에 마음붙이지 못하고 밖에서 헤매돌 때가 많아서 무척 애먹고있다는 사실을 짐작하였다. 후에 풍편으로 들은 말이지만 한번은 밤중에도 집에 들지 않는 고봉이를 찾아헤매다가 하마트면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을번했다는것이였다. 그러는 현선생에게 창모는 세상에 나가는 날 꼭 은혜를 갚는다고 속다짐하고있었다.

이 시각도 창모는 침대우에 게나른해 누워서 속썩은 한숨만을 태워야 하는 자기 처경에 넌덜머리났다. 그저 가슴이 터지도록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무엇이든 북북 찢어버리고싶었다.

(아, 황페해진 자기 마음밭에서 절망과 치욕만을 거둬들이는 인생이란 얼마나 비참하고 허무한가…)

인간은 자기에게 현명함보다 어리석음이 더 많다는것을 문득 깨달을 때 더없는 절망의 심연에 빠지게 된다. 바로 창모가 이런 경지에서 참회를 부등킨채 몸부림치고 있었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봄볕은 그렇듯 다정스러웠다. 적막과 고독과 비애를 반죽하던 창모는 문득 가슴뿌듯이 안겨지는 감격을 느꼈다. 그것은 곧 생의 희열이였다. 자각한 생의 희열은 그보다 더 크낙했다.(재부, 명예는 얻는것이지만 인격은 주는것에 있는것이요.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창모, 당신은 비로소 살기 시작하는것이요…)심장의 골방에서 경종을 울리고있었다…

똑 똑 똑.

조심스러운 노크소리가 창모의 일만잡념을 한줄에 쭈욱 꿰여들고 신경우에 곤두섰다. 커다란 꽃묶음을 든 끼끗한 사내 애가 들어왔다.

선생님—》

사내애의 목메인 부름소리에는 그렇듯 절절한 정이 어려 있었다. 그린듯 조용히 누워있던 김선생이 간신히 머리를 돌려본다.

, 고봉이구만. 반갑소. 어서 앉소.

김선생의 말소리는 그처럼 가냘팠지만 창모는 천둥소리에 놀란 사람처럼 벌컥 일어섰다.(고봉이라구?) 눈길은 어느새 사내애의 뒤모습을 얼싸 껴안았다.(아, 옳구나! 고봉아 ㅡ)창모는 입을 벌렸지만 웬일인지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죄인으 로서 아무와도 말하지 못한다는 그 규정에 억눌려서가 아니였다. 목이 꺽 메여올랐 던것이다. 심장만이 무섭게 세차게 박동했다. 혈관속에 더운 피가 부자지정을 호소하며 용용 고패쳤다.

선생님, 선생님이 지도하신 저의 작문이 1등상을 탔습니다. 정수가 2, 영희가 3여기 증서까지 가져왔습니다.

김선생은 몹시 격동된듯 앙상한 손으로 증서를 오래오래 쓰다듬었다.

《훌륭한 작문이였지! , 좋소. 좀 있다가 나에게 읽어주오. 그런데 먼저…고봉이, 동문 아마 생명의 변두리에 나선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했지? 나를 자세히 관찰하고 구두로 외모묘사를 해보오.

한마디 한마디 힘겹게 짜내는 김선생의 얼굴에 땀발이 섰다.

선생님,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그리구 전 감히 그렇게 할수흑 흑…》

고봉이는 비는듯 애절하게 속살거리며 자기 스승의 여윈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고봉학생, 이 좋은 기회를어서, 혹시나의 마지막 작문지도일수도 있소.

아들애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절절하게 부탁하는 김선생을 바라보는 창모는 마치 화성인이라도 보는듯한 심정이였다.(역시 선생들이란고봉인 중학에 가서도 좋은 스승을 만났구나. 내 이 아버지는

고봉이가 주먹으로 쓱쓱 눈물을 씻더니 띠염띠염 말하기 시작하는것이였다.

《선생님의 모습은 한백옥으로 쪼아부각한듯 고결하고 숭엄한 후광에 싸여있다. 그야말로 인류령혼의 공정사의 조각상이랄가? 옥석과 하나로 일체를 이루고있는 선생님의 모습 전체에는 그렇듯 사람을 감동시키는 신비로운 빛이 각광되여있다.

움푹 꺼져들어간 눈확속에는 깊이를 알수 없는 그윽한 호수가 자리잡고있다. , 그 호수에는 얼마나 많은 보물과 사랑과 잔정이 깃들어있는것일가? 선생님의 생명의 원천이 마치 한쌍의 눈에 뿌리내리고있는것 같다.

그러나 이 시각, 그처럼 그윽하고 신비롭던 호수에 점점 엷은 안개가 서리며 몽롱해간다. 흐—흑…엉—》

하냥 울먹거리던 사내애의 목소리가 끝내는 울음으로 번져갔다. 하건만 김선생은 온 마음을 다해 듣고있는듯 조용하였다.

창모의 눈굽에도 이슬이 맺혔다. 소학교 코흘리개를 저렇듯 훌륭한 작문소질을 갖춘 중학생으로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심혈과 사랑을 몰부었으랴싶어지며 가슴은 무한정 감격으로 들먹이였다. 결코 아들의 눈부신 발전에서 오는 고마움과 감격 에서만이 아니였다. 그자신도 《선생님!》하고 불러보고싶은 성스러운 부름이였다.

이윽하여 울음을 그친 고봉이가 작문책을 펼쳐들었다. 역시 그 스승에 그 제자였다. 제목이 《첫 미소》였다. 그는 천천히 작문을 읽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첫 미소는 나에게 너무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김선생님은 허물없는 친구처럼 그리도 뜨겁게 포옹해주셨다. 그후에도…》

갑자기 고봉이가 읽기를 뚝 그쳤다. 뒤이어 선생님——!하는 애처로운 부르짖음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창모는 나중에야 어떻게 처벌받든 제꺽 김선생의 침대가로 뛰여갔다. 김선생은 마치 사색하며 듣기라도 하는듯 아무 반응이 없었다.《아차!》 김선생의 손이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의사와 간호원들이 달려왔다. 방안의 공기는 삽시에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다만 고봉이의 울음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마구 혀벼댔다.

선생님, 돌아가선 안돼요. 선생님! 훌륭하신 나의 선생님저의 작문을엉엉…》

제법 어른같이 넋두리하며 우는 고봉의 울음소리는 그처럼 애달프게 들렸다. 이윽고 고봉이가 울음을 그치더니 가져온 꽃다발을 천천히 헤치는것이였다. 그의 크고 검은 눈에서는 줄끊어진 구슬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굴러내리였다. 한가지 또 한가지 스승의 유체우에 고이 얹어놓은 꽃은 모두 마흔다섯가지였다. 전반의 마흔다섯개의 마음의 꽃이였으리라.

꽃송이마다에 아들애의 맑은 눈물이 아롱져있음을 창모도 보았다. 그것은 눈물이 아니라 깨끗하고 충성스러운 심령세계에서 휘뿌려진 진주라고 생각되였다. 그러나 나중엔 어느것이 눈물이고 어느것이 진주인지 가려볼수 없었다. 창모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였던것이다.

오직 꽃떨기속에 고요히 누워있는 김선생의 모습이 불타는 석양속에서 더욱 숭엄하게 안겨올뿐이였다.

대리석같이 창백한 김선생의 얼굴에는 그자신만이 지을수 있는 독특하고 성결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이승의 문턱을 넘으면서 조용히 남긴 최후의 미소, 그 미소는 자기 제자에게 남긴 그렇듯 성스럽고 다함없는 축복이며 미래에로 부쳐보내는 한 평범한 원예사의 령혼의 빛발이였다.

창모는 말못할 그 무엇이 명치끝을 치받는것 같아서 숨쉬기 조차 가빠났다. (아아, 나는 어떠한 사람이냐?

김선생의 싸늘하게 식어가는 유체앞에서 묵도하듯 숙연히 서있던 그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아들아! 내다. 너의…》

순간, 가늠할길 없는 한쌍의 눈이 가슴이 서늘하게 마주쳐 왔다. 그 눈길에는 분노도 놀라움도 아닌 빛이 어려있었다. 염오의 빛같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환희의 빛도 아니였다. 그것은 한없는 비애와 추모의 정이였다…

마침내 고봉은 얼굴을 홱 돌리더니 어린애같이 —》하고 울음을 터치며 총알같이 병실을 뛰쳐나갔다.

창모는 자기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한 허탈상태가 욱 몰려왔다.(과연 내가 얻은것은 무엇이고 잃은것은 무엇이 였던가?

이튿날아침.

창모는 경찰을 불렀다.

무슨 일이요?

, 전 오늘 출원하겠습니다.

의사의 조언을 받은 경찰이 더 치료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창모는 기어이 감방으로 돌아오고말았다.

그날 저녁.

식사시간이 끝나자 창모는 허락을 받고 감옥의 지도원을 찾아 사무실로 곧추 걸어갔다. 사무실앞에서 한동안 주춤거리다가 드디여 옷매무시를 다듬었다. 비록 훌렁한 죄수복이지만 단추도 꼭꼭 채우고 먼지도 말끔히 털어버렸다.

고동치는 심장의 울림에 받들려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가슴속에 되맞히며 메아리치는 노크소리는 창모의 마음을 경건하게 울려주었다.

너무도 어두웠던 자기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는 신호소리는 그렇듯 확신에 차있었 다.

똑 똑 똑! …》

 

천지 1991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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