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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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녀의 서울행각
2008년 01월 30일 10시 16분  조회:4303  추천:63  작성자: 최균선

은녀의 서울행각

 

최 균 선

 

1

 

마침내 그녀의 황금몽에 나래가 돋쳤다. 향항ㅡ서울행 려객기가 푸른 하늘에 날아올랐던것이다. 손만 내밀면 잡힐듯 꽃구름이 눈결에 스쳐지난다. 향항의 거리도 삽시에 보잘것없는 흑점이 되여 사라진다. 발밑에 펼펴진 망망대해를 굽어보노라니 세상은 이처럼 드넓고 지구가 정말 둥글다는 느낌이 새롭게 감촉된다.

고도를 한껏 높인 비행기의 귀맛좋은 동음이 마치 자장가처럼 졸음을 몰아오건만 그녀의 눈은 외려 또랑또랑해진다. 이겋게 바다를 날아넘는 꿈을 몇번이나 꾸었던가. 그런데 오늘 그 꿈이 현실에로 날고있으니 어찌 격동되지 않으랴! 다만 함께 떠나주지 않은 남편을 생각하니 알찌근한 마음이 무겁게 처진다.

《…한국에는 뭐 돈나무가 자라는줄 아오? 달리깨비 춤추니까 베졸뱅이도 우쭐거린다더니 공연히 덩둘해서…》

《말 바른대로 역빠른 사람들은 돈만 잘 벌어옵디다. 늦장에 망둥이 날지 어찌 알겠어요?

《쳇, 좋은 소리만 받아넣었군. 그 한국치들이 드러내놓고 <중국거러지>라고 깔본다는걸 못들었소? 갈라면 혼자 가라구.

《제 피땀을 흘려 번다면 걸릴게 뭐얘요? 그저 눈 딱 감고 몇달을…》

《그래 이국 공사장에 가서 쿠리질하며 짓밟힐 나던가? 까짓것들…》

《흥, 어느 중학교선생은 죽은 사람을 메여날라 돈만 탁탁이 벌었다더군요.

《에익, 축축한 더러운 돈.

남편은 홱 손을 내젓고 돌아앉았다.

《글쎄 지금 세월에 지식이 몇푼이 되고 인격이 몇근이나 되는가요?

남편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마른 작대기처럼 딱딱 부러지는 남편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설전을 그만두었다. 쉬가 틀려서 괜히 자기마저 못가게 하면 야단인것이다. 그녀는 침대우에 벌렁 나누어 천정만 쳐다보는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살뜰한 정을 쏟았다.

《여보세요, 진짜 성난거예요? 글쎄 봐요. 저혼자 잘살자구하는 궁린가요? 로임은 눈섭같고 물가는 수염같은데 어찌 살아요? 얼렁뚱땅 제노릇 잘 하는 사람들은 사는듯이 뽐내는데 우리라구 왜 버둥거려보지 못한단말인가요?

하건만 남편은 묵묵무답이다. 안해의 말이 무리가 아니였던것이다. 확실히 눈섭은 자랄줄 모르고 수염만 자란다. 엄혹한 이 경쟁속에서 붕재라는 사나이는 너무나 무력하다. 주어진 밥통에 매달려 애일배일하는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바로 자신이라 생각할 때 가슴에는 말못할 그 무엇이 구렝이처럼 꿈틀거렸다. 술집같은데서 노래 한가락 얼추 불러도 백원도 더 받는데 끙끙거리며 소설 한편 써봐야 그저 그랬다. (에익, 될대로 되라지…) 그는 아예 눈을 딱 감아버렸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성스러운 사랑의 꽃무늬로 날따라 윤기를 잃어가는 생활을 알뜰히도 수놓아가며 붕재와 함께라면 한가지 천만을 짜더라도 보람있는 삶이라고 만족하면서 부지런히 살아왔다.

하긴 남편이 끼끗한 체격에 말쑥하게 생긴 미남이고 게다가 고등교육을 받은 문화인이여서 그녀는 자기들의 사랑의 세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의 바다라고 여겼다. 그런데 문뜩 꿈에서 깨고보니 그들은 바다의 여울에서 자맥질한데 불과했다. 부족한것이 너무 많았고 그만큼 부러운것도 많았다. 남편이 마음 풀어놓고 글을 쓸 서재는커녕 일년치고 두어번씩은《유격전》을 하는 세방살이 신세였다. 더구나 사랑의 경쟁자였던 천금이가 무엇이든 잘 물어들이는 남편을 얻어서 내노라 우쭐거릴 때는 제풀에 왼발 그르고 침도 뱉아보지만 그렇다고 금전의 위력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붕재도 물론 그 무슨 보람있고 정서적인 감각이요 리해요 순수애정이요 하는 색바랜 랑만에 절은 등신은 아니였다. 그라고 왜 잘살아보고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안해가 추구하는 목표와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른것이라고 확신하는터였다. 그렇다고 안해를 마구 나무랄것도 못되였다. 꽃바람이 세차게 불어치는데 나풀거리지 않을 꽃잎이 어데있으랴! 상품경제의 물결속에서 도시사람들은 거개가 다 이렇게 저렇게 탐닉하면서 살찌여가건만 유독 자기가 속한 부류의 사람들만 너무도 여위여 있었다. 돈벌이에 대해 덮어놓고 도덕적안광으로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또 온갖 비리적의식 속에 묻혀사는것도 인간이라는것을 너무도 잘 아는 그였다.

중학교때 공부에는 쩔쩔매던 친구들이 어찌어찌해서 한자리했거나 한밑천 단단히 잡고서 보란듯이 사는것을 보면 도대체 인간의 옳은 구실이란 무엇인지. 지식의 가치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무튼 한몫 잡은자는 수완있고 똑똑한 인격자이고 제구실을 착실히 하는 사내로 치부되고 반대로 못잡은자는 그가 학자이든 작가이든 옹졸하고 가련하고 너절한 인간으로 멸시받는 현실인것만은 틀림없었다. 생각이 예까지 미치면 그는 그만 주눅이 들고 헤여나올수 없는 비애에 빠지고만다.

자기들만이 느끼는 애정생활의 작은 오아시스에서 현처량모의 역을 진심으로 지칠줄 모르고 맡아해오던 안해였다. 안해는 녀인들이면 다 갖는것이 아닌 특유의 매력과 미모를 타고났다. 허지만 안해는 그 천성의 아름다움에 후광을 씌워주어야 할 남편을 만나지 못하였고 또 녀인의 그 본능적욕구를 과시하며 살지 못하는것으로 해서 그처럼 속상해하는것이다.

안해가 이런 보배를 갖고있는 한 만약 무엇인가 하려고만 마음먹는다면 꼭 해낼수 있고 또 바라는 모든것을 얻고야말것이라고 궁리를 외곬으로 몰아도 보았다. 남녀의 순결한 사랑에만 몰두하다가 문득 가장 실혜적이고 실제적인 금전의 유혹에 말려들어 향락속에 자기를 매몰시킨 녀자가 적단말인가? 생활의 감탕물은 도처에서 범람하고있다. 그런데 안해도 마침내 시대의 풍운에 눈을 번쩍 뜨게 된것이다. 하여 한국에 가서 돈벌이를 하겠단다. 결국 안해의 《모험》에 수긍하고말았지만 괴상한 잡념과 황당한 예감들이 구데기마냥 그의 마음속에서 꿈지락거리며 번거로움을 자아내게 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마다 자신이 생각의 벽돌을 거꾸로 쌓아올린다고 비웃고 후회했지만 자기의 인격과 존엄의 담장이 이미 내부로부터 무너지고있음이 절감돼 더없이 불쾌해졌다.

그는 안해의 얼굴을 얼없이 바라보다가는 복숭아냄새같이 향그러운 입김이 새여나오는 탐스러운 입에 말못하는 그 모든 집념을 격정과 함께 쏟아부었다.

《여보, 난 당신없이 하루도 못살것 같애.

《아이 싱겁쟁이, 누가 뭐 영영 가나요! 그러게 함께 가서 벌자요 네? 저도 어쩐지…》

그녀가 남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글쎄말이요. 남도 다 건져먹은판에…모두들 약장사는 잘 안된다는데 그러다가 강도 못건너고 배만 번질지두 몰라…》

《그것봐요. 그러길래 중국의 지식분자들은 나라에서 주는 밥이 없으면 그저 나앉아 굶을수밖에 없어요. 시대가 달아졌다구요.

《그래 당신은 인격은 구겨박아고 돈만 나오면 다란말이요? , 그저 그 돈이 더러워서…》

《여보세요. 글방샌님, 코를 싸쥐면서도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 변소지요. 돈도 마찬가지래요. 잘 살수만 있다면야…》

《여보, 그렇게 돈냄새만 켜고 다니다간 어느 낚시에 걸리지 않나 보라구 젠장,

《아니?! 당신?

《돈 나오는 모퉁이가 죽는 모퉁이라구 그저 조심하라는 말 이요. 성내긴?

《왜 그런 불길한 소릴 해요? 절 믿지못해하는거 아녜요? 양은 암만 볕에 내놓아도 끄을지 않는다지 않아요. 사랑하는이, 시름놓아도 좋아요…》

하긴 그렇다. 굴속에 저장해둔 고구마도 속이 썩으면 야단인것이다. 다 사람 나름에 달린것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붕재는 안해의 출국을 수락하였고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돈을 꾸어들였다.

헤여지기 전날 밤까지 그들 부부는 치부경을 읽으며 옥신각신하기도 하고 한숨도 쉬다가는 련련한 정에 못이겨 엉켜돌기도 하면서 밤을 패였다.

떠나는 날, 그녀는 석연한 얼굴루 손저어 바래는 남편의 영준한 모습을 가슴깊이 새겼다. 가슴에는 아쉽고 떫고 맵싸한 느낌이 번져놓은 밭이랑에 비물이 스며들듯 흘러들었다.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2

 

마음의 밀물이 들이닥친 여백에는 썰물뒤의 우울과 불안이 자리잡기 마련이다. 희망이 차린 약속없는《만찬》에로 날아가던 그녀의 격동되였던 심정도 서울비행장 착륙과 더불어 홀로 이국땅에 왔다는 느낌이 현실적으로 안겨오자 근심과 걱정이 푹푹 묻어나왔다. 그 불안과 초조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초청장을 보내준 먼 일가친척되는 사람이 비행장에 나와있지 않았다.

그녀는 당황해났다. 광장에 홀로 남은 그녀가 갈팡질팡하고있는데 갑자기 등뒤에서 웬 남성의 바스음성이 들려왔다.

《아가씨, 아마도 딱한 사정 있는것같군요. 마중하기로 약속한 친척 안나왔나요?

그녀가 깜짝 놀라 돌아서보니 우람진 체대의 한국사나이였다. 구운빵을 련상시키는 부둥부둥한 얼굴, 부른 배와 유들유들한 목…향항에서 서울까지 내내 통로 저쪽에 앉아서 말을 건네여오던 중년사나이였다.

《아, . 긴장해할 필요 없어요. 한 비행기를 타고 온 이국동포였으니 혹시 도움을 줄수 있을가 해서죠. 실례입니다만…》

《허허, 무척 경계하시는군. 절 믿어두 돼요. 나쁜사람 아니니께, 밤두 깊어가는데 우선 저의 차로 호텔까지 모셔다 드리는게 어때요?

그녀는 좀 무섬증이 났지만 아무렴 잡아야 먹을가 생각하고는 한번 신세지기로 마음먹었다. 사나이의 행동은 무척 점잖았다. 하이야에 앉은 그녀의 마음은 뒤숭숭했 지만 자동차는 미끄러지듯 기분좋게 서울거리를 질주했다. 눈결에 흘러가는 밤거리는 어느 영화에서 본 도꾜의 거리처럼 불야성을 이루고있었다. 아찔하게 높이 솟은 건물마다에서 꿈결같은 기분을 자아내는 불빛이 쏟아져나왔다. 온갖 색체와 빛으로 황홀경을 이룬 거리마다에서 네온싸인들이 앞다투어 껌벅거리고있었다.

사나이가 느닷없이 말을 건네였다.

《연변은 저의 아버지의 고향이지요. 저도 무척 정이 가는 곳이구요. 일전에 한번 다녀왔어요. 하니께 우린 또 한고향사람이라 할수 있는거죠.

그년는 약간 몸을 움직여보이는것으로 《아, 그러세요》하는 례의적인 대답을 대신했다. 숱진 눈섭아래 별스레 자주 껌벅이는 풍류스러운 방울눈과 멋진 구레나룻이 어쩐지 경계심을 돋구어주었다.

《서울에 살밭은 친척이 없고보면 좀 어려울걸요. 작년과도 달라졌지요. , 이건 저의 명함장인데 받아두세요. 개의치 않는다면 전 도와줄 용의가 있는거니까.

사나이는 그녀의 무릎에 명함장을 슬쩍 놓아주었다.《서울 ××은행총재 함달진》이라는 금빛글자들이 눈결에 비쳐왔다. 그래봐서 그런지 돈내가 물씬 풍겨오는듯싶었다.

《이거 실롑니다만 아가씨 성함을 알아볼 영광을 주시겠어요? 네에, 남은녀라구요. 고운 이름인데요. 참 여기서 내립시다. 값싸고도 괜찮게 깨끗한 호텔이지요.

호텔에 들어선 함씨는 그녀가 어쩡쩡해 서있는새에 방 하나를 잡아주었다.

《얼마간의 주숙비랑 회계맞추어 두었으니 걱정마세요. 전…자 그럼 안녕. 후일 필요하다면 회사에 전화걸어요.

각별히 친절을 베푸는 이 낯모를 한국사나이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어쩔지 망서리는중에 사나이는 사람좋게 벌씬 웃어보이고는 훌쩍 나가버렸다.

그녀는 침대가에 앉아 망연한 생각에 잠겼다. 박정한 일가 친척의 랭대에서 자기 행동의 반경을 구하면서 메마른 이국의 인정세계가 꿰뚫어보였다. 허구픈 한숨과 함께 삽시에 려로의 피곤이 욱 몰려왔다. 서울에서 꾸는 첫꿈은 별로 뒤숭숭했다.

이튿날, 그녀는 중국사람들이 약을 판다는 지하철로에도 나가보고 덕수궁어구며 파고다공원에도 쫓아가서 살펴보았다. 아닌게아니라 간곳마다 약광고를 목에 걸었거나 손에 든 동포들이 안달복달하고있었다. 점잖은 옷차림의 남자신사들도 푸술히 보였는데 개중에는 대학교선생들도 있다한다. 얼굴들에 초조하고 피로하고 망연자실해 하는 표정이 어려있었는데 맘에 없는 친절이 메마른 웃음을 게바르고있었다. 어떤 녀자들은 아양을 떨고 가살을 피우며 솜씨를 펴는데 그야말로 놀라울지경이다. 그녀는 벌써부터 자신이 없어졌다. 그녀는 이것저것 탐문하느라고 해종일 거리바닥에서 헤매다가 늦어서야 호텔방에 돌아왔다.

그녀는 사맥이 나른했다. 먼저 다녀간 친구의 연줄로 먼 일가친척을 등대고 출국수속을 하느라 이 사람 저 사람의 염낭에 숱한 지페뭉치를 밀어넣었고 약품구입을 하느라 높은 리식의 변돈을 맡아온 그녀에게 있어서는 앞길이 경악할 지경으로 암담했다. 약품을 팔아서 횡재를 한다는건 욕망뿐이였고 더구나 일확천금을 번다는건 비탈에서 바퀴를 굴리기보다 더 어렵다는것이 확연해졌다.그녀는 불도 켜지 않은채 창가에 우두커니 앉아 잠들줄 모르는 서울의 밤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서울거리를 누비면서 억지도 쓰고 열도 올리면서 판매의 혈전을 벌려나갔다. 며칠새에 그녀는 거짓말도 제법 배워냈다. 아무리 해야 세금을 물지 않는 거짓말인데야 못할게 무어랴싶었다. 그러나 억지도 한두번이고 거짓도 그저 거기에 머물렀다. 어떤 사나이들은 그녀의 미모를 탐내여 은근히 낚시를 던질가 하면서 애도 먹였다. 그녀는 때론 자기가 걷지 말아야 할 길을 걸었다고 후회도 해보았다. 그럴즈음에 일가 친척의 아들된다는 사람이 찾아왔다. 30대의 젊은이였는데 그만 외지에 다녀오다보니 영접도 못하고 미처 돌보아드리지도 못했노라며 인정스럽게 굴었다. 그는 약을 팔지 못해 안달아하는 그녀의 사정을 몹시 동정하더니 도와주겠노라고 선뜻 나섰다.

이튿날 그 친척은 부산, 대구쪽으로 나가면 한 보름쯤 걸려 해결될것이라며 시름놓고 기다리라 했다. 한창 궁지에 빠져서 속에 재가 들어앉던 그녀에게 있어서는 난파선에 구호배가 아닐수 없었다. 그녀는 일이 여차여차하게 풀리여 인차 돌아갈수 있다는 편지까지 써놓고 며칠간은 유한마담이 되여 서울구경을 하며 견문도 꽤 넓혀갔다. 그런데 약속한 보름이 지났건만 웬걸, 젊은이는 얼굴 한짝 내밀지 않는다. 하루 또 하루, 일각이 삼추같이 기다렸으나 함흥차사였다. 그제야 그는 일이 상서롭지 못함을 느꼈다. 협잡을 든것이였다! 일시에 하늘이 무너져내린듯 앞이 캄캄해났다.

그녀는 끝내 자리에 앓아누웠다. 그동안 밀린 주숙비도 은근히 재촉이 났다. 다행히도 호텔주인이 인정사정 알아주는 녀자여서 턱없이 맥을 버리지 말고 식당같은데나 나가 얼마간이라도 벌라고 충고했다. 막다른 지경에 이른 그녀는 이튿날부터 식당의 사발씻는 일에 나섰다. 수입이 괜찮았으나 일이 분주스럽기가 말이 아니였다. 늦게까지 밤일을 하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우면 누구의 탓이기나 한것처럼 설음이 왈칵 쏟아졌다.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그럭저럭 한달을 채우고나니 얼마간의 돈이 쥐여졌다. 그는 고역으로 바꿔온 지페를 손에 꼭 쥐여보았다. 마음속에 각오했던것이여선지 서글픈 편안감과 함께 새 힘이 솟는듯했다.(이를 악물고 벌어야지. 쉽사리 돈을 벌자고 궁리한 내가 어리석지. 벌자! 쓰러지는한이 있더라도 벌고 또 벌자.)이렇게 마음을 다져먹고는 이튿날 다시 일하러 다녔다. 그러다가 섬약한 체질이 배겨내지 못하여 그만 졸도하고야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에 누워있었다.

식당주인이 그녀를 가긍히 여겨 병원에 실어오고 치료비까지 담당했다고 간호원이 알려주었다. 며칠후 식당에 나가니 주인은 은근히 친절을 보이며 접대원 노릇을 하란다. 일은 가볍고 깨끗했으나 주정뱅이들의 성화에 등골이 근지러운 일이 많아졌 다. 어느날 저녁무렵 한 중년 사나이가 조용히 들어와 구석쪽에 앉더니 별로 음식을 청하지도 않고 그녀를 유심히 살펴보고있었다.

《참, 은녀씨 여기서 만날줄은 생각밖입니다. 반가와요. 나 함달진! 알아보셨죠 허허…》 걸걸한 웃음이 호방했다.

《어머, 함선생이시군요. 신셀 많이 져놓구두 인사도 변변히 드리지 못해서…》

《노, , 신세라니요. 동포의 응당한 인정에 불과한걸요. 좀 앉아봐요. 얘기도 나눌겸.

말끝에 고급음료를 청해 그녀에게 건네여주는 그의 눈가에 정이 찰찰 흐른다.

《은녀씨, 은녀씨같은 미인아씨가 이런데서 고역을 치르다니요. 참 격에 맞지 않는데요. 어떻게 된 일이죠? 그간 사정말해줄수 없나요?

은녀는 웬일인지 함씨에게 일종의 믿음이 가면서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함씨는 측은해하면서 혀를 찼다.

《거참 량심 개주어버린놈팽이군. 너무 속상해말아요. 나 그만한 연줄이 있으니까요. 어떻게 난국을 타개하도록 힘써봅시다요.

그녀는 이 인정스러운 사나이의 가식이 없는 동정심을 믿고싶었다.

함씨는 말을 절제하는듯하면서도 교묘하게 대화의 계주봉을 그녀에게 건네였다.

녀자들이 흔히 생활에서 범하는 착오는 거개 생각해야 할 곳에서는 느끼고 느껴야 할 곳에서는 생각하는데서 생긴다며 떠나올무렵 뒤를 눌러 말하던 남편의 얼굴이 피끗 떠올랐지만 이런 장소에서 이런 때에 그녀는 느껴야 할지, 생각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한것은 함씨가 또 절절하게 관심을 주고 실제적인 문제를 담당해나서고 있기때문이였다.

《은녀씨, 돈 벌바하곤 돈을 갑절 받는 카라QK로 나가봐요. 내가 알선해 드릴테니》

《제가요? 고맙긴 한데 어찌…좀 생각해보겠어요.

말은 사양하는듯했지만 마음은 벌써 움직이고있었다. 더구나 세상없이 친절하게 굴던 50대의 주인이 점점 눈길이 가슴을 딛고 올라서며 먹지 못해 냠냠거리는 꼴이 언제든 재국을 칠것 같았던것이다. 게다가 돈을 갑절로 준다지 않는가? 함씨는 깍듯이 인사하고는 갔다. 차안에서 함씨는 바래러 문어귀까지 나온 그녀를 보면서 빙긋이 웃었다.

며칠후 그녀는 일자리를 옮기였다. 일은 한결 쉬웠다. 미인의 매력이 각별해서 영업이 별로 흥성한다며 주인도 벙글써 해졌다. 하지만 살이 떨리고 얼굴이 뜨거워 지는 일이 매일같이 생겼다.

그녀는 밤마다 잠들지 못하였다. 비록 가난하나마 진정어린 웃음과 눈빛으로 생활의 꽃밭을 가꾸어가던 나날의 가치와 의미를 갈수록 뼈저리게 느꼈다. 당장 이라도 내 고향, 내 집, 내 남편의 품속에서 인생의 단꿀을 빚어가며 살고싶었다. 이렇게 남모르게 삼키는 수모의 눈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헹구면서도 한숨속에 황금몽을 불태웠고 그러다가는 또 그냥 뻗쳐나갔다. 짜내고 후벼내고 끌어모으는것이 장땅이라고 자신을 달래였다. 인간에게서 진실로 뽐낼수 있는것이 돈밖에 또 있는 가? 돈을 번다는것은 수완과 재간에 달린것이고 의지의 대결이라고 강심을 먹었다. 이제 와서 돈은 그녀의 삶의 의미였고 전부의 추구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것이 타락과 허무를 말해주기는 했지만 금전은 확실히 마술이였고 최고의 자아승리이기도 했다.

 

 3

 

좋은 소식이 먹이를 먹는 동안 나쁜 소식은 역마를 타고 간다고 그녀의 서울행각에 구접지레한 풍문이 대륙에 전해졌다. 그 역마는 함씨를 바래러 식당에서 나온 그녀를 알아본 천금이였다. 내막이야 여하하든 자기의《백마왕자》를 손쉽게 앗아낸 은녀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였던것이다. 이 소식에 붕재는 돈이고 나발이고 즉각 돌아오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나 은녀는 돌아갈수 없었다. 남편에게 사실을 이실직고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것이다. 아무튼 남편에게 아직까지 미안한 일은 아니했으니 언젠가는 리해할 날이 있으리라고 마음을 눅잦혔다.

하루는 함씨에게서 좋은 소식이 있으니 한번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함씨의 사무실이야말로 하나의 궁전이였다.

《저 딴 용건이 아니구요. 부탁대루 그 사기군놈을 나포했다는거예요. 제따위가…헌데 약값 절반나마 삼키지 않았겠어요. , 한국을 망신시킨놈이야!

그녀는 얼결에 발딱 일어섰다. 실말인지 모략인지 알바없지만 충격파는 컸다. 그뒤 함씨의 말은 더구나 초풍할 지경이였다.

《너무 긴장해말아요. , 이건 우리 지성인들의 망신이기도 한데. 이렇거죠. 나머지 액수는 이 함모가 맡지요. , 이걸 받아요.

그녀는 너무도 의외여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여 우두커니 앉았다.

《고국에 와 봉변당해서 참 가슴아파요. 저쪽에서 변돈을 맡았다니까 얼마나 속탔겠어요. 내가 딸라루 태환시켜줄테이니깐 얼른 부쳐보내두룩 해요. 그래야 시름놓고 일을 하든지 하잖 아요.

그녀로서는 감격하지 않을수 없었다. 함씨는 사람좋게 웃어뵈였다.

《고만한걸 가지구 그럴거 없어요. 까짓것 새발에 피니까. 헌데 하나 부탁해두 좋을가요. , 물론 거절하질 않기를 바래 요.

그녀는 공연히 긴장해있는데 함씨는 여유작작하게 차물을 마시며 그녀에게도 건네주었다.

《인제 은녀씨두 한시름 덜었으니께루 기분도 돌릴겸 고국땅 여게저게를 한번 밟아봐요. 사에 녀비서랑 함께 나가니까 오해를 가질거 없어요. 허허…그리구 한번 돌아보느라면 혹시 무슨 좋은 일이라두 생길거 아니요. 비용은 다 내가 안는 거예요.

그녀가 어찌 거절할수 있으랴. 감사란 곧 보답하려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여기는 지리산 풍경구이다. 련산련봉이 유구한 세월의 침묵속에 온갖 번잡한 속세의 생활을 등지고 대자연의 고즈넉한 묵상에 잠겨있다. 골골이 길이 뻗었고 어데가나 흙길이란 보이지 않는다. 골령의 여기저기에 보이는 새 마을에 여러 색갈의 기와를 떠인 주택들은 동화세계를 련상시킨다.

함씨의 말에 의하면 돈많은 부옹들과 유한마담들의 피서지라 한다. 하지만 녀비서는 눈이 맞아 배를 맞추려는 바람둥이들이 찾아와서 정사를 나누는 곳이라고 속살거렸다. 그녀는 솔깃해진 호기심에 앞서 음식업같은것을 시작하면 수지가 맞아떨어질것 이라는 기발한 착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함씨에게 속타산을 내비쳤더니 껄껄 웃으며 대찬성이였다. 참으로 기업가의 총명을 가졌다면서 자금까지 대주겠노라고 적극 나섰다.

드디여 그녀는 땡잡을수 있는 행업을 시작하였다. 한국음식에 대국의 음식문화를 결합시켜놓으니 수입이 가관이다. 게다가 무슨 바람둥이들이 그리도 많은지 손님은 쉬임없이 찾아든다. 형제지간 부모자식간에도 밥값을 치르고 받는다는 깍쟁이 량반들이 녀자들의 치마속에는 황금을 만재한 기선이라도 들이 밀듯이 호기를 뽑다보니 불어날것은 그녀의 옆채기였다.

물론 그녀는 함씨를 미소하는 행복의 사자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또 자신의 넋과 육체를 파먹으려는 악마라고 여기고싶지도 않았다. 성금하고 불같은 정열의 사나이면서도 시간을 초월하는 그 인내성과 불가사의할만치 인간애의 폭을 보여주는 훈훈한 흉금과 생활의 갈림길에서 분명한 선택을 하도록 기다려주는 아량에 마음의 천평이 기울어진탓일수 있었다. 때론 그녀자신이 은인이기도 한 이 부옹의 집요한 공격에 저항할 힘이 없고 언젠가는 자기를 깡그리 내주어야 할것이라는 예감에 몸서리치다가도 자기변호 비슷한 체념속에서 슬픈 쾌감까지 느끼기도 했다.

그녀의 녀성궁전이 철저히 무너진 그날은 오고야말았다. 함씨가 온 그날 저녁 함께 식사를 하는중 하도 권하기에 포도주 한잔을 마신것이 그만…

이튿날 해가 중천에 떠서야 깨여난 그녀는 밤새 벌어졌던 그 끔찍스러운 비밀을 돌이키며 몸서리쳤다. 그녀는 슬피슬피 울었다. 그 소리에 곁에 누운 사나이가 깨여났다.

《이봐요. 나의 새끼양. 울고있는거 아니여? 간밤에 미안했어. 참을수 없었던 거야. 하지만 당신 너무너무 좋았어. 눈물 닦아요. , 요렇게. ?

《……》

《산다는것이 바로 움직이는것이구 새것을 향해 나아가는것 아니겠어? 이봐 남에게 즐거움을 주고 자기도 받았다면 곧 함께 살수 있는거 아니겠어?

《위군자! 썩 물러가요. , 내가 바보였어요. 흑…》

그러면서도 다시 감겨드는 사내의 팔을 모멸차게 물리치지는 못하였다.

《은녀씬 이 한국서 살려면 탈바꿈해야 돼요.

하긴 그녀도 여기 실정을 좀 알고있었다. 남자들은 밤새껏 기생년을 끼고  뒹굴다가 집에 오면 안해들은 문책하기는커녕 외려 밤새 무사히 주무셨는가고 깍듯이 인사를 올려야 하는 판이다. 그러니 그 무슨 배반이요 패덕이요 하는 관념을 가지지 않는다. 녀자들은 외도하는 남편이 잘나서 그렇다고 자랑으로까지 느끼면서 참고 묵인한다. 이런 주지육림속에서 굴러먹은 탕아인 함씨로서는 있을법한 이성관이요 뻔뻔스러운 철학이였다.

《만약 사내로 태여났으면 자기의 인생에서 녀자에게 어떤 의미를 제공해주고 좋은 한때를 마련해줄수 있어야 한다구요. 아니면 녀자를 사랑할 자격도 없고 독점할 권리는 더구나 없는거예요. 은녀씨, 나와 결혼해서 한번 호강해봐요.

철두철미 금전만능에서 인생의 기점을 찾는 향락주의자의 그럴듯한 설교다. 그렇다한들 은녀로서 무엇을 반박할수 있을것 인가. 그녀는 너무도 무력했다.

 

4

 

그녀는 마침내 상처입은 철새가 되여 귀향하기로 맘먹었다. 함씨는 물론 이제 첫맛을 들인 이 미인을 놓치고싶지 않았다. 정작 간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까지 생긴듯 영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그렇다고 잊을수 없는 그 한때를 제공해준 이국녀자를 섭섭하게 대하고싶지 않았다. 황금의 사슬은 언제나 강철로 만든 사슬보다 더 값진 법이라고 확신하는 그인지라 이 녀자가 이제 곡경을 치르고(이미 잘 짜놓은 그물이 한번 사용되였다.) 오고갈데 없을 때 스스로 품속에 안겨들게 하려면 아낄것 없었다. 황차 녀자편의 친척들중 중국시장의 발판이 될만한 사람들이 있음에랴! 그는 선물도 많이 주었고 딸라도 무드기 안겨주었다. 그리고 결코 몸값이 아니라 사랑의 표시라고 그루를 박는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서투른 서울행각에 인생비극의 도화선을 묻어두고 마침내 귀로에 올랐다. 그녀는 이 땅을 다시 밟게 되였지만 자신이 마치 천국에서 뚝 떨어지기나 한것처럼 보이는것마다 눈이 감겼다. 그러면서도 아지 못할 푸근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모순된 심정이였다. 이러나저러나 여긴 동방화촉의 밤을 밝히고 옷고름을 풀어준 남편과 그 사랑의 금열매인 아들애가 살고있었으니 다시금 태줄을 묻고 키워준 고향의 품에 돌아왔다는 기쁨도 애써 가져보았다.

 죄꼬만 세방집에 넘치도록 온갖 잡동사니를 부리웠을 때 동네에서는 눈이 휘둥그래졌고 찬탄과 부러움에 혀를 끌끌찼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이요 개선장군이 된셈이다. 욱 모여들었던 친지들이 입이 함박만해서 헤여지고 아들애마저 외할미집에 보내버린 붕재가 안해를 곁에 불렀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갈려있다.

《그동안 고생도 많았지? 그리고 수고도 많았구.

죽어가는 사람의 림종유언처럼 힘겹게 짜내는 붕재의 말이다. 혀가 마르고 입술이 타올랐고 울대뼈가 오르내렸다. 점점 쇠빛으로 녹쓸어가는 남편의 얼굴에서 불길한 징조를 읽은 그녀는 불안에 몸을 떨고앉았다. 미구에 청천벽력이 《꽝》 울렸다.

《쌍, 뒈질…이건 무엇이지?

《뭔데요. 아니 록화테프 아니예요?

《알고있었던가? 그래 솔직하게 말할테냐?

예리한 비수마냥 안해의 눈길을 찍어 넘기던 붕재의 눈에 불찌가 탁탁 튕기더니 한국에서 가져온 록화기에 스위치를 찰칵 넣었다. 얼결에 화면을 살피던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너무나도 생생한 그 방안, 그 불빛, 란무하는 라체의 사나이밑에서 신음하는 녀자…하얀 자기의 다리를 오열에 떨며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무지 일어설수가 없다. 화면에서 눈길도 떨어지지 않는다. 생각하는 동물의 야성이 가장 은밀히 진행되는 그것을 지혜로운 향수로 누리고있는 적라라한 활극이 계속되고있었다.

《아함달진!》 째지는듯한 단말마의 부르짖음이 폭푼전의 침묵을 북 찢었다. 그녀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죽여주세요. ,

붕재의 입안에서 뿌드득 어금이가 갈리는 소리가 저승문을 여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붕재는 리성을 잃지 않은 이 시각에도 이런 비극이 생기게 된 근원을 캐보려 하지 않았고 자기들만의《에덴동산》에 불을 지른 저주맞을 사내에게 보복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직 결과만이 중요하고 실제적인것이였다. 그랬다. 인간은 거개 그 죄에 대해서는 성내지 않고 그것을 범한 죄인에 대해서만 성내고있다.

《에익, 개차반같은…죽여버릴테다

악에 받쳐 무정해진 발길이 사정없이 날아갔다. 가슴에 일격을 받은 그녀가《악!》소리와 함께 육자배기로 엎어졌다. 번뜩이는 식칼을 찾아든 붕재가 안해를 가로타고 앉아 으르렁거렸다.

《눈을 뜨고 나를 보앗! 왜 그랬지?

《죽여요. 할 말이 없어요.

그녀스스로 앞가슴을 헤치고 칼을 받으려 하자 붕재자신도 주춤했다. 각일각 박동을 멈출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것이 보였다. 붕재는 두눈을 딱 부릅뜨고 칼쥔 손을 높이 추겨들었다. 순간 얼굴을 덮은 머리칼새로 공포에 떠는 새별이 반짝하다가 스르륵 감겨진다. 눈귀로 두줄기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눈물범벅이 된 붕재의 눈에 해쓱해진 안해의 얼굴이 환영처럼 안겨왔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다가 풀어진 손아귀에서 칼이 뚝 떨어졌다. 그녀의 찢긴 얼굴에서 붉은피가 솟아났다. 그녀는 기절해있었다.

붕재도 심한 허탈상태에 빠져 웃몸을 가누지 못했다. 삶의 허무를 받아들인다 는것은 자기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허무의 총체를 이루는 그 모든 비리하고 너절한 탐욕이 그렇듯 순결무후하던 안해 은녀를 고비사막보다 더 황량한 사랑의 페허우에 산송장이 되여지게 하였으니 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인가.

붕재는 안해없는 수많은 불면의 밤에 불길한 예감과 악몽에 시달리면서 번쩍 스쳐지나는 령감을 잡았다. 그는 소설을 구상했다. 소설에서는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여 인성도 도덕도 인격도 비틀어지는 현실의 한구석을 파헤치고 사랑과 랑만을 거지 발싸개처럼 내던지는 현대인, 특히는 애정을 어느 길가의 구멍가게에서나 사서 씹을수 있는 양껌처럼 여기는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주단우에서만 애욕도 가치를 가진다는 시대착오자들에게 상품경제시대 우리 민족의 문화심리의 완충지대를 조명해 보임으로써 마음가짐을 진실하게 가질줄 아는 인간회복상을 보여주려 했었다.

그랬건만 운명의 장난은 못되여먹었다. 다른 사람들이 소설에서 생활을 읽을 때 붕재 그자신은 자기 생활속에서 소설을 보게 되였으니 생활의 조롱이라 할가.

갑자기 찬물에 뛰여들 때처럼 흑흑 흐느끼던 그의 가슴 속에서 검은 욕구가 치밀어올랐다. 그는 성학대광마냥 예쁜 안해의 얼굴을 꼬집고 할퀴고 치고 박고 하다가는 다시 포옹하며 엉엉 울었다. 그러는새에 안해의 옷은 갈갈이 찢어지고 순백의 육체가 드러났다. 안해의 라체는 말그대로 옥을 다듬어 만든듯 피흘리는 천사의 모습이였도 한폭의 생동한 명화였다.

동실한 어깨아래로 만두빛 두봉우리가 아름답게 솟아있고 다시 유연하게 뻗어내린 곡선미, 비단실이 끌려내린듯이 연한 곡선이 둔부를 풍만하게 그려내려 가면서 정교한 조물주의 걸작을 현시하고있었다. 오직 붕재 자기에게만 속했고 또 속해야 할 결백의 육체가 재무지에 떨어져 털어도 불어도 안되는 두부처럼 더러워졌다.

안해가 참을수 없는 아픔에 애처롭게 비명을 울리며 꿈틀거릴수록 그는 잔인한 쾌감에 전률하면서《하하》웃다가는 멍들고 피투성이 된 몸뚱아리에 얼굴을 파묻으며 꺼이꺼이 울었다. 그렇듯 실성해있던 붕재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육체에서 전해오는 감각에 온 몸의 피가 거꾸로 흘렀다. 그는 방비없이 늘어진 안해를 까뭉개고 파괴하면서 마음속에 엉키고 서린 어혈과 내심의 모든 잡다한 집념들을 덩어리채 쏟아냈다.

그것은 야만이였다. 유린당한 사랑과 다하지 못한 아낌의 불만에서 터지는 광란 그것이였다. 인간의 어떤 정감은 소설언어로는 해석할수 없는것이였다. 그 어떤 추리성부호거나 절묘한 예술기호도 행동하는 인간심리의 페지에 찍히는 감탄표에 비길수 없는것이다.

참으로 그날 밤은 고통의 밤이였다.

 

5

 

마가을, 궂은비가 찬기운을 풍기며 구질구질 내린다. 계절의 조화로운 붓끝아래 푸른 단장 뽐내던 나무들이 어느덧 여름옷을 마지막으로 벗기우고있었다. 누렇게 황든 잎새들이 가을의 구슬 픈 조락을 알리는 엽서마냥 바람따라 날린다.

비내리는 밤거리를 한 사나이가 취옹마냥 구부정해서 비틀거리고있다. 이 거리에서 늘 볼수 있는 미친사나이 붕재였다. 쉬얼쉬얼 쭝얼거리다가도 승냥이 울음소리같이 소름끼치는 괴상한 웃음을 터뜨려 길가던 녀인들이 초풍하도록 놀란다.

은녀는 붕재의 성학대에 진저리치다가 집을 뛰쳐나왔다. 얼마후 연변땅에 날아온 함씨와 만났다. 함씨는 이렇게 된바하고는 아예 결혼하자고 나섰다. 그녀 얼굴에 수긍하는듯 야릇한 웃음이 어렸다. 남편 붕재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거라고 짐짓 둘러대고 또 아들애의 장래를 보아 따라갈수 없노라고 잡아떼자 함씨는 례의 금방망이를 내들었다. 은녀는 함씨에게서 될수록 많은 돈을 후려내려 했다. 결코 그것으로 자기의 인생길을 뒤틀어놓은 사나이에게 봉창하려는것이 아니였다. 더러운 돈이나마 남편과 아이를 위해 속죄하고싶었던것이다. 물론 이런 교역을 붕재는 감감 몰랐다.

 감정으로 안해를 내쫓고 어리석게 다시 리성으로 찾으려 할 때는 이미 늦었다. 그의 손엔 아들을 부탁하는 편지와 한무더기 돈이 남았다. 그것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허파가 터진듯 앙천대소를 터쳤다. 웃다가는 울고 다시 웃다가는 울고…사래기 들린듯 기침을 하다가 울컥 선지피를 쏟았다. 얼얼해나는 가슴을 부여안고 흐리멍텅 해진 눈으로 돈뭉치를 굽어보던 그는 문을 차고 천방지축 내달렸다. 끝끝내 미쳐버린 것이다.

《은녀ㅡ돌아오우》 부르는 소리 하늘가에 비껴가건만 대답할 임자는 없었다.

붕재가 안해를 부르며 밤이고 낮이고 헤매일 때 함달진이도 고동을 울리는 선창 가에서 닭쫓던 개 울쳐다보듯 락심한 눈길로 아늑히 넓은 중국대륙의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 쉬고있었다.

함께 따라가겠노라며 행장을 꾸려들고 나섰던 은녀가 부두에 들어설무렵 바늘이 새여나가듯 인파속에 잠겨버렸다. 찾다찾다 그만 실망해버린 함씨는 홀로 배에 오르는수밖에 없었던것이다.

뿡ㅡ려객선이 울리는 고동소리를 은녀는 부두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해변가 어느 으슥한 바위뒤에서 듣고 앉았다. 그녀는 배고동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먼 고향의 하늘가에 눈을 주었다. 하늘에는 외로운 구름이 오락가락 하고있었다.

(, 이제 나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더 버둑거릴 일도 도망칠 일도 없고 더 사랑할 이도 없게 된 내가슴에서 어떤 빛이 발산할수 있을가?)

바다가에 어느덧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른한 피로가 스물거리며 아무데서나 잠들고싶은 생각을 보듬어준다. 바다바람이 모래먼지를 몰아다 물결우에 던져넣는다.

온 몸에 무자비하게 채찍이 내려치는것 같은 쩌릿쩌릿한 감각으로 하여 오싹 떨면서 그의 마음이 더는 실패하지 않아도 되고 아글타글하지 않아도 되는 영원한 망각의 해저속으로 향해간다.

《호ㅡ거기엔 껍질만 남게 되는 황금몽때문에 령혼과 육체를 릉욕당하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겠지. 향락도 추구도 일시에 멈춰지고 인간의 모든 행위가 신의 자비로움이 없이도 용서받게 될것이고…》

밤은 각일각 깊어간다.

희고 가늘고 긴 유령이 물결우에서 너울거린다…

 

《천지》 1992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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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일전짜리 의견
날자:2009-07-23 08:18:20
독특한 재미있는 비유들을 쓰셨네요(노임은 눈썹같고 물가는 수염같다. 비행기의 귀맛좋은 동음 등등). 그런데 은녀가 지리산에서 식당을 개업하는 곳에서 연결이 좀 부드럽지않은 것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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