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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돼지저금통
최 균 필
고래희 70에 맞는 손녀의 돌생일은 내 인생에서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찍는것 인지도 모를 감탄표이다. 갓마흔에 첫버선처럼 뒤늦게 생긴 손녀의 생일잔치를 앞두고 나는 공연히 로심초사하였다. 아이의 첫생일상에 무엇을 놓아줄것인가를 두고 남모래 많은 생각을 굴렸던것이다. 관습대로 얼마간의 돈을 넣은 봉투를 올려놓지 못할것도 없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타산을 굳히고있었다.
돐생일상앞에 손녀를 안아다 놓기바쁘게 외할아버지는 두툼한 돈봉투를 보란듯이 올려놓았지만 친할애비인 나는 남의 눈치가 보이건 말건 작정한대로 꽃돼지모양의 커다란 저금통을 달랑 올려놓았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해서 한 노릇인데 그만 말썽거리를 지지고 볶아댈줄은 미처 생각못했다. 나의 거동을 지켜보던 모든 친척 들과 손님들이 수근대는건 물론 로친네와 며느리마저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저금통 꽃돼지보다 더 삐여지게 입들이 쀼죽해졌던것이다.
그런데 작은 천사같은 내손녀가 생각밖에도 대뜸 고사리손을 쏙 내밀어 꽃돼지의 입이며 눈이며 축늘어진 두귀를 어루만지면서 해죽해죽 웃는것이 아니겠는가? 생일상 을 빙둘러싸고 무엇을 먼저 쥐나 눈길을 박고있던 사람들속에서 먹새쟁이가 되겠다느 니 욕심쟁이가 될게 틀림없다니 저팔계의 손녀라느니 악의없이 중구난방으로 입방아 를 찧었다. 제일 앞에 바로 놓인 연필이며 필통, 붓을 먼저 쥐였으면 하고 잔뜩 기대 를 걸고있었겠는데 하필이면 배불뚝이 새끼저팔계를 쥐였으니 그럴만도 하리라.
수백년을 내려온 전통습관대로 연필이나 공책을 쥐면 장차 공부를 잘하고 청운에 뜻을 펼것이라고 미래를 기탁하기가 관례인데 손녀가 무슨 용도를 가지고있는지도 모 르면서 괴상한것부터 쥐여서 여기저기서 객적은 소리까지 나오는지라 원래 보살상인 며느리의 얼굴색은 명랑하지 못했고 곱다랗게 폭폭 패이던 볼우물자리가 부어나고있 는것이 내눈를 속이지 못하고있었다.
하긴 리해가 안가는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소궁둥이를 두드린 농부들은 손군들이 공부를 잘해서 립신양명하기를 일구월심 고대하는 뿌리깊은 심성들이니 말이다. 그러 나 그것은 아름다운 희망사항일뿐이다. 세상에 자기의 돌생일에 있은 세절들을 기억 할 아이는 없는줄 안다. 있다고 한다면 그건 애비에미의 결혼잔치를 보았다는 얘기 만큼 웃기는 얘기니까. 그러나 나는 내 손녀가 돌생일에 남달리 선물한 꽃돼지저금 통을 기억하고 그것에 담긴 속사정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기대했다.
생일 이튿날 나는 며느리가 손자밥 떠먹고 천장을 쳐다보는 격이라고 고깝게 생각할수도 있을줄 짐작하면서도 아닌보살하고 생일부조돈을 손녀의 이름으로 저금 하라고 지시했다. 내 명령을 며느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 았다. 내 충심이 언젠가 밝혀지는 날이면 며느리도 취옹의 마음이 술에 있지 않음을 터득하리라고 믿었다. 고소비시대 내 손녀도 류행을 쫓는 소비원동원이 되지 말기를 기원하였기때문이기도 했다.
내 손녀만은 현시대 공주님이 되지 않고 고소비열풍에 말려들지 말아야 했다. 너무 서둘러 착수한 조기교육일수도 있겠으나 옛속담에 색시그루는 색동저고리때부 터 앉히라고 했듯이 돈이 어떻게 생기는것도 일찍 알게 하고 어떻게 아껴야 하는가를 인생의 새벽길부터 바르게 떠나도록 가르치려고 작심한 나이다. 내가 한창 잘나갈 때 하나 아들을 너무 곱게 키워서 서운한 점이 너무 많은 교훈이 내가 마음을 각박하게 먹게 했는지도 모른다.
내 념원속에 세월은 흘렀다. 손녀는 걸음발이 탄탄해지는것과 더불어 지력상수도 놀라만큼 빨리 높아졌다. 매번 거스름으로 받은 엽전이나 단돈을 손녀앞에서 꽃돼지 에게 먹이며 어른에게나 할만한 말도 많이 들려주었다. 이 꽃돼지가 배고프지 않게 잘 먹여야 고운 어린이라고 칭찬도 하면서 그 고사리 손으로 돈을 직접 꽃돼지입에 넣도록 가르쳐주었더니 아이앞에서는 거리떡도 사먹지 말랬다고 모방성이 강한 나이라서 그런지 손녀도 엽전잎이나 생기면 저절로 꽃돼지를 먹여주었다.
손녀도 차차 제절로 하려고 덤벼치는 나이가 되였다. 어느 날 저녁, 한 며느리 가 매일 저녁마다 따스한 물을 떠다가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세수시키고 발까지 씻어주는 장면을 보며 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놀라웁게도 그녀의 아들애가 저도 제에미의 발을 씻어준다고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오느라 덤벼치는 장면은 눈물이 찔끔 나게 감동적이였다. 제힘에 부치는 세수대야를 들고오느라 옷섶이 다 젖었건만 생글대는 그 장면은 광고중에도 제일 멋지고 인상적인 효도광고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슬그머니 손녀를 훔쳐보았다. 그 어린 마음에 어찌 어른같은 감동 이 있기를 기대하련만 화면속에 남자애만큼 크면 제에미 발을 씻는다고 씩씩거릴지도 모른다는 부푼 기대감을 가져보았다. 손녀는 에미의 발을 씻어주는 효도는 아니래도 내 기원대로 꽃돼에게만은 게으르지 않았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싶었다. 아이가 유치 원에 다니면서부터 꽃돼지를 먹이는 일은 도거리하였다. 물론 어른들이 의식적으로 그애게 잔돈이 생기게 연극을 놀긴했지만 자기 몫이 된 돈을 절약할줄 알았다.
그러다보니 제에미애비에게서 후려낸 돈이랑 내가 쥐여주는 소비돈이란 어떻게 써야할지 아는것 같았다. 먹일수로 무거워지는 꽃돼지를 보며 무슨 생각이 있었던지 얼음과자랑 무작정 사먹지 않고 남겼다가는 자랑스레 꽃돼지를 먹이고 또 먹였다. 그 렇게 세돐이 되던 해 꽃돼지의 배를 가르고 한무지나 되는 엽전, 지전을 세여보니 천 원이 넘었다. 시체소비에 락제생이 아니던 며느리는 제풀에 놀란 꽃사슴의 눈이 되여 서 생일날 부어있던 그 보조개자리에 함박꽃이 활짝 피여났다. 그리고 살짝 얼굴을 붉이고 있는 모습은 내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친할애비가 체면깎일 일을 해서 친척과 동네를 웃겼다며 두고두고 시설질하던 로친네도 작은 꽃돼지가 큰돼지 판돈을 게웠다며 입이 함지박이 되였다. 그러면서 《에구, 티끌모아 태산이라더니》하면서 문자까지 쓰는것을 잊지 않았다. 장하고 장하다는 칭찬바구니를 안은 손녀도 내 품에 와락 안기였다.
첫돐생일날 천원을 내놓아서 며느리가 어깨가 올라갔는지 몰라도 내가 현대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주기 가장 어려운 하나의 전통미덕을 심어주었다는것을 알게 된 며느리는 각박했던 이 시아버지의 고심을 늦게나마 읽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다시 한번 며느리의 얼굴에 핀 함박꽃을 슬며시 바라보며 버릇처럼 제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걱정공장의 지배인 되여 끝없는 걱정을 흐름식으로 생산해내 는 법이여서인가, 손녀가 대학가고 어른이 되여 사회에 진출한다음에도 이 할아버 지의 기원대로 첫돐의 선물인 꽃돼지를 그냥 살찌울 일념을 가지고 경제시대, 고소비 시대를 알차게 장식해갈런지…별로 크지 않은 이 꽃돼지가 3년에 한번씩 천원을 낳는다면 아이가 성인이 될때 얼마나 낳을가?
아니, 이런 돈은 수자로 계산하는게 아니다. 자초에 내가 남의 눈총을 받으며 꽃돼지저금통을 생일상에 올려놓은것은 닭알장사가 기와집 짓고 황소사고 밭을 살 돈낟가리를 쌓는 그런 허황한 계산법을 해서가 아니였다. 황금돼지해인 올해 우리 한가정에 웃음꽃이 더 싱그러운것도 꽃돼지가 공돈같은 천원을 낳아서만이 아니다. 집집마다 하나의 도련님, 공주님을 키우며 만금도 아끼지 않는 시대의 풍조에 비하면 나의 후대교양이 너무 보수적일지도 모른다만 나는 내방식으로 내 손녀를 반듯하게 최대의 미덕인 절약정신을 가진 소녀로, 미래의 알뜰한 가정주부로 키워가련다.
서로 뒤질세라 물밑경쟁을 벌리며 더 좋은것을, 더 많은것을 아름차게 안겨주려는 멋진 할아버지들을 뒤쫓느라 왼심도 쓰지 말아겠다. 무보수의 늙은 가정교사로 내손 녀의 오늘을 가르치며 먼 장래를 준비해야겠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고집쟁이 이 늙은《가정교사》가 참으로 훌륭했다는것을 새삼스레 느껴보는 내 손녀가 첫걸음부터 바르게 시작한 인생길에 곱게 걸린 무지개를 건너서 아침노을 같은 래일을 향해 흔들 림없이 걸어가리라 믿고싶은 마음이다.
2007 년 10 월 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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