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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편 창작방법론
제1장 문학창작실제
제1절 전형화리론
1. 문학창작과정의 실제
작가가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목적은 생활에 대한 자기의 심미감수ㅡ직각사유를 예술언어로 표현해 내여 사회와 인간에게 영향주려는데 있다. 환언하면 문학창작은 작가의 생명력의 직접적호소이며 작가적인 자아의식의 실현이다.
작가, 예술가들은 창작의욕을 느낀다. 이 의욕은 갑자기 불시에, 그리고 작가의 의사와는 완전히 독립하여 발생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창작활동을 위한 날자와 시간과 분초를 정할수 없기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창작의 자유이며 창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독립성이다.
작가는 작심해서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취한다. 그것의 신비로운 의미를 떨리는 마음으로 예감한다. 작가, 예술가는 자기가 파악한 이데아가 있다는것을 스스로 느끼며 타인도 그것을 감촉할수 있게 하려고 갈망한다. 바로 이것이 창작의 첫행위이다.
이런 이데아는 점차 작가의 눈앞에 선명히 떠오르며 산형상을 이루며 리상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쉑익스피어에게는 마치 안개속처럼 깊이 주름살이 푹 패인 거무스레한 이마를 한 아프리카사람 오쎌로가 보이며 사랑과 증오와 절망과 복수심에서 울려오는 통곡소리가 들려오는것이다. 쉐익스피어의 창작충동에 원동력을 가져다준다.
이번에는 이 형상들 즉 이 리상들이 점점 자라 성숙하고 선명해지며 드디어 작가는 그들을 직접 보게 되며 그들과 말하며 그들의 말, 움직임, 거동, 걸음걸이, 용모를 알게 되며 그들의 전체 모습을 실지로 보듯 자기의 두눈으로 보게 된다. 예술가는 펜으로 그 형태를 묘사하기전에 그 형상들을 보는것이다.
작가는 모든 사람들이 볼수 있으며 파악할수 있는 형태를 자기 창작에 부여하는것이다. 이것이 즉 창작의 마지막 제3의 행위이다. 이 행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제1, 제2 행위의 결과이기때문이다. 이와같이 창작의 중요한 특징은 신비로운 천리안과 시적인것에 대한 열중에 있다.
창작과정에 감각은 작가와 세계를 이어주는 첫뉴대로서 그우에서 작가의 사고와 집필행위가 있게 된다. 철학적의미에서 말하면 감각은 인간이 세계존재에 대한 자아의식의 첫증명이며 작가의 감각세계는 인류심령의 “제2자연”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감각은 단순감각이 아니라 예술감각이다. 감각은 리성분석에 이르지 못한 심리관조활동으로서 한방면으로는 외재사물이 감각의 내화를 거쳐 감수로 되고 내재적감수는 감각의 외화를 거쳐 인조적인 제2 형상으로 된다.
단순한 감각자체는 서정이 아니지만 예술감각은 서정을 초월한다. 또 감각은 사상이 아니지만 사상보다 더 종잡을수 없기에 내재적인 주체와 주객체융합상태의 심리특징을 가진다. 즉 작가의 감각은 사물의 진상을 밝히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실용성도 추구한다.
예술감각은 생활세계에서 기원되지만 그것의 원시적풍부성에 대한 전부의 복제로써 자기의 사명을 완성하는것이 아니라 원유의 자극모식우에 새로운 자각모식을 건립한것이다. 말하자면 외계사물의 자극이 물리적인 심리반응을 인기시키고 그로부터 감각이 형성되는바 이런 견지에서 문학창작활동을 일종 생명현상이라고 하는것이다.
문학작품은 형상사유속에 정감, 상상, 취미, 령감 등 제인소가 포함된 작가의 내심감수의 결정체인것이다. 사유와 형상은 구별되지만 상호침투되고 상호전화된다. 감각은 소설예술이 세계를 파악하는 일종의 사유방식이다. 작가의 관찰은 심미적안광으로 창작대상을 관찰하고 심미적으로 판단하는것을 가리킨다.제재를 잡기 위한 인생연구에서 각종 생활에 침투하여 인생고를 체험해야 한다. 이 면에서 미국의 쟈크. 론돈, 프랑스의 졸라 등이 귀감으로 된다.
체호브가 각양각색의 인물형상을 그렇듯 핍진하게 창조한것은 그의 심미적안목속에 모든 인간상들이 찍혀있기때문이다. 그처럼 작가는 아주 미세한 동작까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인물의 언어행위에 각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
아. 똘쓰또이는 말 한마디에서 전형인물이 만들어질수도 있다고 하였다. 인물의 정신상의 특점을 찾아내야 한다. 고골리가 인물묘사의 대가로 불리우게 된것은 인간을 관찰할 때 인물의 내심세계까지 파헤치는 투시력이 있었기때문이다. 발자끄는 언제나 뜨거운 인간애를 가지고 인간들속에 들어갔다. 그는 자기의 령혼을 그들의 령혼과 융합시켜 자기의 신분, 습관까지 잃는 때가 많았다. 로동자들의 한담속에서 생활형편을 알아보았고 그들의 쟁론에도 귀를 기울였다. 자기 자신도 관찰할줄 알아야 한다.
발자끄는 “진정 사상가다운 시인, 작가들의 몸에는 해석할길 없는 비상한, 지어는 과학으로도 해석할수 없는 정신현상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투시력으로서 그들에게는 가능하게 출현될수 있는 어떠한 정황속에서도 진상을 보아내게 하고 더욱 핍진하게 알아내도록 도와주며 그들이 마땅히 가야하고 가고싶어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힘을 가지고있다.”고 하였다.
바로 이런 신비한 투시력을 가진 심미시각이 있기에 세계는 작가의 안목속에 정체적으로 파악되는것이다. “나는 한 인물을 관찰할 때 가능한 그 사람의 생활을 체험해 본다. 그들의 욕망과 추구 등은 내 심령속에서 하나로 엉켜버리군 했다.” (발자끄)
1) 예술적구상
예술구상이란 관념속에서 예술형상을 구성하는 작업이다. 여기에는 소재제련, 제재확정, 주제탐색, 형상배육, 정감응결, 정절엮기, 결구안배, 적당한 표현방법의 선정 등이 포괄된다. 즉 잉태계단→ 배육계단→형성계단, 이런 절차로 구상이 진행된다.작가는 예술구상 과정에 늘 최적심리상태에 처해있는것이 아니라 지극히 고통스러운 심리상태에 처하기도 하며 한편의 때론 작품을 창작하느라 난산의 진통을 겪는다. 실로 “산첩첩 물이 깊어 길이 없는” 상태일수 있으며 그러다가 “버들숲 지나 한굽이 돌아드니 꽃피는 새 마을이 나타나는”것은 느닷없이 찾아 드는 령감의 은혜라 말할수도 있다.
벨린쓰끼는 “령감이란 피동적인것으로서 병적정신상태인데 령감은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의지로써가 아니라 인간에게는 종속되지 아니한 그 어떤 작용에 의하여 발생한 정신에네르기이다. 따라서 령감은 자유분방하다. 때로는 이 령감의 결과가 외관상으로는 휘황찬란하나 황금의 광휘인것이 아니라 금박의 광휘이며 점차로 흐려지는 광휘이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이 억지공사의 환희에나마 잠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약하기는 하나 실존하며 긍정적인것만을 억지로 짜낼수 있기때문이다. 감정과 환상, 요컨대 재능을 억지로 짜내고 긴장시킬수 있는 자는 어느 정도 이 가능하기는 하나 이 모든것들을 다 가지고있는 사람만이다.”라고 쓰고있다
이처럼 령감은 일종 잠재의식의 성공적폭발이다. 령감의 오고감은 자취없으나 주객체의 뜻깊은 회합이다. 령감을 녀인의 해산에 비유하기도 한다. 령감의 고향은 생활경험의 “보물고”이다. 심리기질로서의 직각도 중요하다. 직각이란 추리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심리현상이다. 직각과 령감은 왕왕 얽혀있지만 직각이 곧 령감은 아니다. 직각은 초보적감지형태이고 령감은 무르익은 표상이다.
령감은 장구한 사색과 간거한 로동의 성과라면 직각은 정체상에서 사물에 대한 돌연적인 판단력이라 말할수 있다. 령감은 성숙한 답안을 얻을수 있지만 직각은 근근이 추측성의 통찰을 얻을뿐이다. 이런 시점에서 령감은 지구적인 사색이 튕긴 불꽃이고 직각은 일차성적인 사유의 섬광이라 말할수 있다.
발자끄는 “진정 사상이 있는 시인과 작가에게서는 일종 해석할수 없는 비상하고 과학으로도 천명할수도 없는 정신현상이 있다. 이것은 일종 투시력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가능하게 출현될 정황에서 진산을 예측하게 하거나 혹은 더욱 정확하게 말할수 있게 한다. 이는 그들을 그들이 마땅히 가야하고 가고싶어하는 곳으로 떠미는 일종 말로 해명하기는 어려운 력량이다.”라고 쓰고있다.
다음 작가의 정감과 리지적의식이다. 예술적구상중에서 정감은 동력인소이고 리지는 동력을 절제하는 규범이다. 만약 작가가 리지를 상실하고 오직 정감의 충동만 남았다면 작가를 알수 없는 경지에로 나아가게 할것이다. 그러므로 정감은 시종 리지의 보좌와 제약을 떠날수 없다. 이외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가지 심리능력은 공존한다. 의식은 무의식에 방향을 제시해준다.
2) 창작과정에서의 형상사유
형상사유의 함의를 한마디로 개괄해야 한다면 형상성과 정감사유를 떠나지 않은 사유를 형상사유라 할수 있다. 형상사유는 직관성과 형상성이 가장 긴밀히 결합된 사유형식의 하나이다. 형상사유는 작가, 예술가들의 창작과정에서 사유활동의 주체이기에 예술사유라 한다.
벨린쓰끼는 형상사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론술하고있다. “누구나 형상사고로 판단하고 감각하지 못한다면 그가 어떠한 지혜, 정감과 신앙의 힘을 가지고있든간에, 생활속에 력사와 시대가 부여한 마음의 기능이 풍부하든간에 그가 시인이 되도록 도와주지 못한다.” 형상사유 역시 인식발전의 일반규률에 따라 진행되지만 론리적사유에 비해 독자적특징을 가지고있다.
우선 문학의 특수대상과 내용이 그의 사유방식을 결정한다. 살아움직이는 인간과 인간의 령혼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옹근 인생의 흐름과 철리가 융합된 시적사상, 풍부한 인생철리와 심미적의미는 문학의 특수대상과 내용이 된다.
벨린쓰끼는 쓰고있다. 문학은 “오직 시적사상만을 용납한다. 이 시적사상은…교조가 아니라 펄펄 끓는 격정이고 열정이며…생생하게 산창조이다.” “누구나 형상사고로 판단하고 감각하지 못한다면 그가 어떠한 지혜, 정감과 신앙의 힘을 가지고 있든간에, 생활속에 력사와 시대가 부여한 마음의 기능이 풍부하든간에 그가 시인이 되도록 도와주지 못한다” 바로 이러한 사상은 형상속에서 흘러나오는것으로서 곧 형상자체이다.
중편소설 ≪여기 려명은 고요하여라≫에서 작자는 조국보위에 떨쳐나선 영웅적아들딸들에게 무한한 경의의 감정을 지니고있으나 그것을 준위가 쉴새없이 잔소리하면서도 한면으로 자기 녀전사들을 빈틈없이 관심해주는 그 년장자다운 사랑속에 침투시키고있으며 리따가 자기의 태양혈에 댄 총구에 침투시키고있다. 한편 노래하며 한편으로 사격하면서 적들을 유인해가는 렌까 꼬메린꼬와의 비장하고 아름다운 형상속에 침투시키고있다. 만약 하나하나가 선명한 개성특징을 가진 인물형상들의 사상감정을 개념으로 전달한다면 정감력량과 특수한 매력은 깡그리 상실될것이다.
문학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이끌어주고 무엇인가 대해 해석해주지만 자기의 특수한 도경과 방법으로 실현한다. 그것을 빛나게 실현하는것이 곧 정감과 형상이다. 한송이 생화는 꽃에 대한 추상적론술보다 더욱 많은 진리를 전달하는 특수방식인 형상속에 표현되는 관념을 보게 하는것이 아니라 시종 뚜렷한 형상을 보게 해야 함을 규명해준다.
사유활동은 시종 구체적이고 생동한 형상과 결합되는데 이는 형상사유의 기본특점이다. 상상은 작가로 말하면 심미의상을 창조하는 심리과정이다. 상상활동을 통하여 창조되여 나온 이런 표상은 원유의 기억표상에 의거한것이지만 그것은 사상, 의지, 념원을 체현하는바 “창조성적인지공능”의 표현이다.
형상사유가 상상을 떠날수 없는것은 창작자가 반드시 자기의 표현대상을 체험해야 하기때문이다. 고리끼는 문학가는 그 자신이 강개한 성품이라도 자기를 수전노로 상상해야 하며 자신이 사심이 없지만 자신을 탐욕스러운 수전노로 느껴야 한다고 가르치고있다. 배우가 영화속에 완전히 잠겨드는것과 같다.
자신만 알고있는 열정과 감정의 세계, 제자신의 고민과 환희를 진실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재현한다고 하여도 작가는 자신이 련애를 한적이 있을때에만 사랑을 열렬하고 매력있게 묘사할수 있고 자신이 행복해야만 비로소 행복에 대하여 쓸수 있다고 말할수 없다. 진정한 작가의 특징은 그 자신의 사고방식과는 관계없이 항상 온갖 사람들의 생활상태를 리해하는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인 능력에 있는바 그것을 작가적인 관조라고 칭한다.
소설인물과 같이 작가가 받는 감각은 상상으로 찾고 포착할수 있을뿐이다. 발자끄는 고리오령감의 림종장면을 쓸 때 병들어 눕기까지 했다. 플로베르도 보바리부인이 독약을 마실 때 “자신도 입안에 비상을 물고있는듯 하였고 중독된것처럼 착각되면서 두번이나 저녁을 먹은것을 토해버리고 말았다.”고 하였다.
형상사유의 두번째 특점은 사유활동에 충만되여있는 정감성이다. 형상사유는 구체형상과 정감을 탈리하지 않는다. 창작활동은 주객체의 특수한 영합이다. 정감활동은 형상사유의 전반과정에 수반되고 사종 얽혀서 돌아가는 문학창작의 원동력이며 윤활유이기도 하다.
형상사유의 진전과정은 인상으로부터 의상에 이르고 다시 형상에 이르러 점차 심화되는 과정이다. 만약 작가가 그것을 광활한 천제에로 이끌어가서 더욱 많은 유관사물과 련계를 맺어주고 비약시킨다면 일종의 새롭고 더욱 완성된 면모로 뛰여나올수 있을것이다.
이는 곧 예술전달방식에 소급되는 문제이다. 예술전달방식이란 이미 구상된 인물의 생활, 성격, 심리세계를 언어문자로 형상화하여 작품세계구축을 완성하는 작업을 말한다. 예술적구상단계에 이루어진 형상은 아직 개략적인것이여서 상세하지도 않고 엄밀하지도 않으며 명확하지도 않다. 레브 똘쓰또이는 ≪부활≫에서 마슬로바의 원래의 초상화는 이러했다.
“감방문으로 키가 크지 않은 회색외투를 걸친 젊은 녀자가 걸어나왔다. 그녀는 머리에 흰 삼각수건을 썼는데 검은 머리카락을 볼수 있었다. 그아래 그리 높지 않은 하얗고 아름다운 이마가 보였다. 이 녀자의 얼굴은 초췌하고 병색을 띠고있었고 조금 부석부석해 보이는 검은 눈길을 내리 깔고있었다. …”
그러나 구체적이고 선명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여 선후 20여차나 고려했다. 고치고 고쳐서 현재의 까쮸샤ㅡ마슬로바라는 박명한 미인상을 그려놓았다.
“그녀자는…흰 삼각수건을 썼는데 그 밑으로는 일부러 그렇게 한듯 곱슬곱슬한 까만머리카락이 동글동글하게 삐여져 나와있었다. 그의 얼굴은 오래동안 갇혀있어서 움속의 감자싹을 련상시켜주었다. ...그러나 그 윤기없는 새하얀 얼굴에서 특히 눈에 띄는것은 약간 눈시울이 부은듯하나 자못 정기있게 반짝이는 새까만 두눈이였는데 그 한쪽 눈은 조금 사팔눈에 가까웠다… ”
성숙한 작가들은 인물성격의 자유적인 발전행정에 순응한다. 뿌쉬낀은 인물성격을 창조하고나서 “따찌야냐가 나와 얼마나 엄청난 롱담을 하고있는가? 그가 시집을 가다니? 나로서는 정말 생각도 해보지 못한 일이다.”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이런 실례는 많다. 한창 흥미진진한 때에 안나 까레니나가 철길에 뛰여들고 우론쓰끼가 총을 쏘고 네흘류도브가 결혼을 포기하는 등 경우이다.
레브 똘쓰또이도 쓰고있다. “그들(작중인물)리상적인 생활속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은 현실속에도 늘 있는 일이다. 결코 내가 원한것은 아니였다” 벨린쓰끼도 쓰고있다. “사실적문학에 있어서 허구와 단순성은 진정한 문학, 진정하고 성숙한 재능의 가장 믿음직한 표징중의 하나인것이다.”
문학창작은 우선 대상세계에 대해 리해하고 반영하고 천명하는 인식활동으로서 연후에 그것을 전달하게 된다. 인식활동중에 가치취향은 “력사리성”으로 “진실”을 추구한다. 그리고 예술전달에 앞서 정감평가를 선행시켜야 한다. 여기서 텍스트의 층차문제가 제기된다. 텍스트(문본)층차에는 문학언어층차, 문학형상층차, 문학의 내함층차가 들어있다.
2. 전형화리론의 연혁
1) 전형화의 함의
전형의 개념은 실제상에서 서방문론에서 창립된것이다. 전형이란 개념은 비록 미학범주에서는 늦게 제출되였지만 유관된 리론연구는 그 력사가 깊으며 시종 전형인물을 중심으로 내세웠다. 발자끄를 비롯한 19세기 사실주의문학대가들은 인물의 성격화를 최고봉에 끌어올렸다. 전형리론의 성숙은 19세기이래 괴테, 헤겔, 벨린쓰끼 등에 의해 추진되였다. 후에 맑스, 엥겔스가 전형리론을 참신한 단계에로 승화시켰다.
그들은 과학적으로 인간의 본질과 인류사회 발전의 객관규률을 론증해내고 아울러 전형이 개별과 일반적인것의 통일에 도달해야 한다는것을 설명하였으며 강렬한 심미성과 거대한 예술매력을 구비하고있다는것을 천명함으로써 예술전형과 철학적의미에서의 전형의 계선을 분명하게 갈라놓았다.
20세기에 진입한후 예술의 중심이 전이되여 전형에 대한 서방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침체되고 전형환경에서의 전형인물이라는 맑스주의 전형관점이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응용되고 발전을 가져오면서 중심의제의 하나로 되였다. 예술전형에는 공성과 개성, 보편성과 개별성, 계급성, 사회성 등 다층차적이고 다방면적인 함의가 내포되고있다.
“계급론전형설”과 “공성과 개성통일설”에 회의가 생기면서부터 어떤 사람이 “공명”설을 제출하였다. 전형은 책속에서만 사는것이 아니라 생활속에 류행되는것으로서 어떤 사람들이 부르는 칭호인 “공명”이라는것이였다. 이 관점은 연구방법상 “전형본신론”이다.
예술형상의 심미효과로 전형여부를 판정하려는 기도는 새로운 시각이지만 “공명”설을 이어 새로운 도경을 탐색하였는데 “필연과 우연의 련계설”이다. 정지상태에서가 아니라 운동상태에서 전형을 투시하고 전형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해석하려 한것은 “공성과 개성의 통일설”에 비하여 한걸음 더 나아간것이였다.
2) 전형의 특징
전형은 개별인소를 포함하고있지만 또한 개별은 아니다. 론리범주인 “특수”는 전형의 심층적본질을 제시하는바 전형인즉 “특수”이다. “특수”는 개별에 대하여 말하면 본질이며 본질을 두고 말하면 또한 현상이기도 하다. 이 관점의 출현은 전형연구로 하여금 기계유물론의 속박에서 벗어나 생기를 띠게 하였다.
소위 “특징”은 “본질적인것을 조성하는 그런 개별적표지”를 가리킨다. 외연으로부터 보면 “특징”은 한마디 말, 하나의 세절, 한개 장면, 하나의 사물, 하나의 인물, 인물관계이고 내함으로 말하면 두가지 속성이 있다. 하나는 그의 외재적형상 및 구체성, 생동성, 독특성이며 다음 하나는 외재형상을 통하여 표현된 내재적본질이다. 발자끄는 자기의 ≪예술론≫ 에서 가장 작은 면적으로 놀라 우리만치 가장 대량적인 사상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들이 생활속에서 가장 풍부하고 특징적인것을 틀어쥐고 예술강화를 하는것을 “특징화”라고 한다. 전형창조는 특징화를 거쳐 실현되는바 특징화는 예술표현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현시한다. 무릇 세계적으로 공인하는 전형은 모두 풍부하고 다채로운 성격의 조각으로서 “크나큰 사상심도와 의식된 력사내용”을 현시하고있다. 고골리는 ≪죽은 넋≫에서 형형색색의 지주의 전형형상을 창조하였다. 쏘바께위치, 쁠류슈낀 등 한무리의 추악한 형상들이 그것이다.
전형의 예술매력은 주요하게 전형의 독특한 심미효과에서 온다. 이런 심미효과는 다음과 같은 네개면에서 표현된다.
첫째, 문학전형은 인간의 생명형식으로 무궁한 매력을 보여준다.
둘째, 전형의 예술매력은 진실성에서 온다.
셋째, 전형의 매력은 그것이 리상에 부합되는데서 온다. 헤겔은 심지어 전형을 직접 “리상”이라고까지 칭하였다.
넷째, 전형의 매력은 그것의 생신성에서 온다.
대가들이 창조한 매개의 전형이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안면있는 낯모를 사람이다. 례컨대 거대한 정신, 불타는 열정, 방대한 지혜를 가지고있으나 협애한 편견을 가지고있으며 미칠듯이 처를 사랑하는 나머지 불성실하다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생기면 목을 눌러죽이려는 사람이라하면 독자는 곧 오쎌로를 떠올리게 되는것 등이다. 그러한 인물들은 수많은 독자들의 인생반려가 된다.
형상사유과정에 뇌리속에 출현되는 인물은 추상적이 아니라 수많은 사건들의 련계속에서 활동하는 상상적인간이다. 우리는 조조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극히 자사적이고 간교하며 음흉하고 지독한 그의 성격을 생각하게 된다. 이는 ≪삼국연의≫에서 전형적슈제트와 세부묘사에서 그의 령혼을 깊이 파헤쳐 제시하였기때문이다.
정절의 전형화는 생활속에 모순투쟁을 근거로 삼는다. 고리끼는 “정절이란 인물지간의 련계, 모순, 동정, 반감과 일반적인 상호관계 즉 모종성격, 전형적성장과 구성의 력사이다.”라고 하였는바 슈제트란 바로 성격의 력사인것이다.
이왕의 소설에서는 정절강화를 중시하였는데 슈제트발전가운데 모순충돌이 집중되여 긴장감과 극적인 느낌을 준다. 이류의 소설로는 ≪철도유격대≫나 ≪림해설원≫등을 례로 들수 있는데 기본상 전통적수법으로 쓴것으로서 물론 예술가치창조면에서 제약성이 있지만 전기적색채가 짙고 통속적이고 이야기발전이 곡절적이고 긴박감을 주기에 광대한 독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3. 전형환경과 전형인물
전형환경이란 전형인물이 생활하고 그의 성격이 형성되는 구체적인 생활환경으로서 전형인물이 처한 사회생활의 본질과 력사발전의 본질적추세를 보여준다. 전형환경은 객관적현실존재인 사회환경으로서 작품에 묘사되는 환경묘사와는 구별된다. 전형환경은 인물이 활동하고 생존하는 구체환경을 포괄할뿐만 아니라 인물이 처한 특정된 사회력사문화배경도 포괄한다.
전형인물이란 성격의 공시적인 보편성을 지닌 개성적인물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공통된, 다른 사람을 대변할수 있는 성격이다. 따라서 전형인물은 일반적인 인간체험의 결과로 나타난 보편적전형과 시대와 사회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타난 개별적전형으로 구분할수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미학목표도 전형형상창조이다. 인간과 인간의 생활은 문학에서 묘사의 기본사명이며 중심과제이기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어디까지나 일정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생활하므로 전형인물을 부각하려면 자연적으로 전형환경을 묘사하게 된다. 여기서 전현환경과 전형인물은 상대적으로 하는 말이다.
전형성이란 특정된 력사적단계에 처해있는 어떤 특정된 사회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질들 혹은 그런 성질을 가지고있는 요소들이 소설속에 잘 반영된 경우를 이르는 개념이다. 전형화는 예술적일반화의 방식으로서 개인적인것에 사회적인것을, 특수속에 보편적인것을, 우연속에 합법칙적인것을, 여러 현상들속에서 본질적인것을 발견하여 표현하는 예술방식이다.
전형환경과 전형인물의 관계를 세개면에서 고찰할수 있다. 량자는 호상련계되고 의존한다. 전형환경이 없다면 인물은 생존조건과 의거를 잃게 되고 전형성격을 전시할 방법이 없게 되며 전형인물이 없다면 전형환경도 그 존재의의를 잃는다. 례하여 림충이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르게 된 리유가 관리가 핍박하여 반기를 들게 하였다는 전형환경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다.
량자는 호상영향주고 호상작용한다. 환경이 인간을 개조하고 인간도 환경을 개조한다. ≪아Q정전≫에서 묘사된 혁명전, 혁명시기, 혁명후의 세차례 사회환경의 개관 및 아Q의 부동한 환경속에서의 성격변화 등은 량자간의 상호작용관계를 잘 설명한다.
작품의 전형환경과 전형인물은 대방의 존재의 참조물이 되는바 상대적으로 전형이 된다. 례하면 가보옥과 림대옥 두인물을 상대하여 전시된 전형환경으로 말할 때는 전형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만약 반역성격이 짙은 한쌍의 청년남녀를 오늘의 환경속에 놓는다면 의연히 전형이 될것인가 하는것이다.
전형인물은 바로 모계급에 공통한 특징이 한전형인물의 몸에 집중된것이였다. 이런 “계급론전형”은 용속사회학과 기계유물론의 경향성이 짙다는것을 설명한다. 뒤이어 출현된것은 “공성과 개성의 통일설”이다. 이 관점은 개성인소를 중시하기 시작하였는데 상술한 용속사회학의 영향과 류형화, 개념화경향을 규정하는데 일정한 작용을 놀았지만 의연히 전형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전형인물이 사회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주면서 개인으로서의 특질을 갖추려면 플롯상에서도 뚜렷한 기능을 가진 인물로 부각되여야 한다. 대체상 사회주의리얼리즘 계렬의 소설들에서는 전형적인 긍정적인물을 부각하는데 리기영의 ≪고향≫에 주인공 김희준같은 인물은 당시 조선농촌사회를 이끌어가는 진보적인 지식청년의 전형이다.
“형상은 두개의 극단ㅡ보편과 특수가 유기적으로 융합되여 이루어진것이다.”(벨린쓰끼) 전형인물은 반드시 하나의 개별성과 보편성이 통일된 생동한 인간이여야 한다. 전형인물의 개성은 다른 인물과 구별되는 기본특징으로서 특정된 사회환경속에서 그에게서 표현되는 리상, 념원, 인생태도, 사유방식, 행위준칙, 심리결구 등 각종 소질의 종합이다. 즉 생동한 인간이 세상에 독립해 있는 특수한 존재방식으로서 소설의 전형화에 바탕이 된다.
김성탄은 사람들이 왜 ≪수호전≫을 그토록 싫증내지 않는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수호전≫은 108명의 사람을 묘사하고있는데 인물마다 자기 성정과 기질이 있으며 형상이 있고 자기 말투까지 있다. 또 동일류의 인물가운데서도 다른 특색이 있는데 작가의 서술에서가 아니라 언행에서 표출된다. 로달이 거친것은 성질이 급해서이고 시진이 거친것은 소년의 의기때문이며 리규가 거친것은 영웅은 구속받지 않는다는데서이고 원소이가 거친것은 어디서나 비분을 느끼기때문이며 초정이 거친것은 기질이 나쁘기때문이라 하였다.
소설에서 전형인물이 독자들에게 심각한 인상을 남기고있는것은 주요하게 성격때문이라기보다 더우기는 그들의 독특한 운명, 독특한 심리감수 혹은 정서때문이기도 하다. ≪축복≫에서의 상림아주머니의 비참한 운명과 조우, 조선의 영화 ≪꽃파는 처녀≫에서 꽃분이의 처참한 인생정경,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리고리의 변신후의 감수 등이다.
인간의 사명, 생활의 목적을 깊이 리해하고 좋은 일을 하고싶어 하지만 결단력이 없어서 시행하지 못하며 자기의 무력함을 의식함으로써 고민하는 청년을 말할 때 곧 햄리트를 짚게 된다. 똘쓰또이라면 안나 까레니나와 까츄샤를 떼놓고 생각할수 없듯이 유고라면 인차 쟝바르쟝과 판띠느를 떠올리게 된다.
이외에도 몰리에르가 그려낸 수전노 아르빠공, 레르몬또브가 생생하게 그려낸 “쓸모없는 사람”의 대명사인 뻬쵸린, 쉐익스피어가 부각해낸 고리대금업자의 대명사인 샤일록, 곤챠로브가 형상화한 라태자ㅡ오블로모브 등은 영원히 산 인물로 문학사에 존재할것이다. 이렇듯 대문호들의 이름과 그들이 창조해낸 전형인물은 언제나 련계되여있다. 뿌쉬낀과 오네긴, 오스뜨롭쓰끼와 꼴챠낀, 최서해와 박군 등 그 어느 전형이나 그 작가와 물과 젖처럼 융화되여있다.
전형인물의 보편성이란 곧 전형인물이 독자에게 주는 어떤 본질적의미를 가진 생활내용 즉 선명하고 독특한 개성에서 체현되는 심미가치있고 풍부하며 필연적인 현실과의 력사관계로서 인생태도, 사유방식과 심리상태를 표현한다. 로신이 창조해낸 아Q야 말로 개성이 선명한 인물로서 당시 중국농민계급 내지는 빈고농민의 전형인물이며 현대에도 그 그림자가 얼른거리고있다.
그러나 아Q의 모습은 그 자신에게만 있는것이 아니며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소실될 전형이 아니다. 현대에도 처처에서 아Q식의 정신승리법의 유전인소들을 보게 된다. 그의 성격의 보편성은 사회력사내용의 계급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한 인류의 모종 심리상태의 형상적체현이기때문이다.
벨린쓰끼가 말했듯이 한면으로는 한개 특수세계의 인간들의 대표로 되며 동시에 또한 하나의 완전하면서도 개별적인 인간으로 되는것이다. 전형형상에서의 보편성과 개별성사이는 내용과 형식, 목적과 수단의 관계가 아니며 상호격리되여 외재적으로 존재해 있는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서로 내함이 되고 인과관계가 되며 생활발전의 자연적흐름을 중개로 통일되고 융합된 생활력을 가진 진실하고 생동하는 형상들이다.
전형인물은 풍부성과 주도성이 통일된 완정한 인간이다. 정직하고 용감한 오셀로는 이아고의 간계에 걸려든줄 모르고 질투심때문에 무고한 데스데모나를 목죄여 죽인다. 이는 한방면으로는 인물성격의 풍부성의 표현인 동시에 악을 원쑤처럼 미워하는 그의 주도적성격의 특수한 환경속에서의 특수한 표현이다.
전형인물의 성격과 풍부성과 주도성은 대립통일되여 서로 의존하며 서로 도와준다. 풍부성은 주도성을 둘러싸고 전개되며 주도성은 풍부성에 의거하여 두드러진다. 바로 이렇듯한 예술형상이 우리의 심장을 틀어잡는것은 인물의 추상적사상, 본질, 공성이 아니라 미학향수를 실감나게 체현하기때문이다.
전형인물은 독창성과 심각성이 통일된 심미객체이다. 예술창작은 개성특색이 짙은 창조성적정신로동으로서 창조된 전형인물은 마땅히 신선하고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술에서 “반복은 죽음”이라고 말하는것이다. 전형의 독창성은 심각성과 밀접히 련계되여있는바 그것의 심도는 한 작가가 생활을 인식하고 생활을 발굴해내는 집요한 탐구정신에서 체현된다.
독창성은 또한 작가의 개성과 그가 세계를 보는 시각과 판단력의 부동함에서 유래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최서해의 작품들에는 불합리한 당시 사회제도에 대한 분노와 삶의 권리마저 빼앗긴 민초들에 대한 깊은 동정에서 오는 비애감이 지배적인것처럼 말이다. 고골리의 경우, 그의 독창성은 항상 깊은 비애감이 지배적인 희극적활기에 있다. 례하면 ≪검찰관≫이나 ≪죽은 넋≫처럼 눈물의 희극인것이다. 고골리의 유모어는 진실한 체험과 남다른 견해에서 오고있다.
대담하고 폭넓은 필치로 쓴 신기한 에뽀삐야이며 청소한 인민의 영웅적생활에 대한 오체르크이며 호마와 같은 거대한 화폭을 창조한 ≪따라스불리바≫에서 불리바는 영웅이며 무쇠같은 성격,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작가는 불리바의 피비린 복수의 전공을 묘사하면서 서정시의 경지에까지 고양되여있으면서도 곳에 따라서는 자기의 주인공으로써 독자들을 웃기고있다.
4. 전형창조의 수법
전형인물을 창조하는 수법은 다종다양하다. 그러나 전형인물은 작가가 만들어낸것이 아니라 인간생활속에 있는 이런저런 련계의 총화이다. 전형인물과 소재간의 관계로부터 착수하여 전형인물을 부각하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
1) 종합법
고리끼는 “예술가가 예술의 진실을 창조하는것은 마치 꿀벌이 꿀을 채집하는것과 같다. 꿀은 온갖 꽃에서 조금씩 채집해다가 빚은것이다. 만약 한작가가 20명 혹은 50명, 많이는 몇백명의 상점주인, 관리, 로동자들의 몸에서 가장 대표성적인 계급특점, 습관, 기호, 자세, 신앙과 가래를 뱉는모양 등을 골라내고 한 사람의 상점주인, 관리, 로동자의 몸에 융화시키는 수법으로 전형을 창조한다면 진정 예술이다.”라고 하였다.
또 “언어예술가들은 마치 벽돌로 탑이나 종루를 만들듯이 이런저런 보잘것없는 인물로부터 일반화된 인간 즉 전형, 보편적인 전형을 “고안해내였던것”이다. 당신은 한 사람에게서 코를, 다른 한 사람에게서 귀를, 또 다른 사람에게서 기타 어떤것을 취하라.”라고 가르치고있다.
2) 두드러지게 하기와 간결화
두드러지게 하기란 작가가 번잡하고 두서없는 사색에서 형상 혹은 의념을 틀어쥐고 재료를 선택, 가공하는것이다. 례하면 체호브의 ≪관리의 죽음≫이 이런 구성법으로 창작된것이다. 다음은 간결화인데 작가가 유의적으로 자질구레한 세절을 간략하고 주류를 틀어쥐는 구성법이다.
3) 원형법
원형법을 모델법이라고도 하는데 전문 한사람을 리용하는데 이를 원형가공법이이라 한다. 이 방법은 생활속에서 발견한 어떤 모델을 기초로 하지만 그 모델의 엄격한 제한을 받지 않고 적당하게 기타 생활소재를 섭취하여 상상과 허구로써 원형에 부족한것을 보충해주어 성격이 더욱 풍부하고 더욱 전형성이 있게 하는것이다.
파금의 ≪집≫에서 각신은 큰형이 모델이였고 곡파의 ≪림해설원≫에서 양자영은 실재한 사람이였다. 스탕달의 ≪붉은것과 검은것≫에서 쥴리앙도 그 생활속의 모델은 출신이 비천하나 재능이 출중한 벨트라는 청년이였다고 한다. 이런 방법은 재료가 확실하여 형상의 진실성을 가강하는데 좋은 점이 있다.
단점이라면 자칫 시야가 제한받을수 있어 형상의 개괄성에 영향줄수 있다. 그러므로 모델법도 “두루 긁어모으는 방법”과 결부하고 상상, 허구하여 완정성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보충방법은 간단한 보충, 가감이 아니라 일종의 화합, 일종의 창조로 되여야 한다는 예술규률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4) 진실한 인물쓰기
현실생활속에는 확실히 선명한 개성특징이 있고 모종 사회력량의 본질을 체현하는 인물들이 있다. 그러나 비허구성문학인 실화문학이나 전기문학 같은데나 적당하다. 례하면 서지마의 실화문학 ≪골드바하의 추측≫에서의 진경윤,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녀인ㅡ하자진≫에서 하자진은 아주 전형의의가 있다.
6) 변형법
변형수법은 왕왕 독창성적인 인물을 부각해낸다. 쉘리는 “시는 그것이 소급되는 일체를 변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방법은 비사실주의적인 서사작품들에서 많이 보게 되는데 부각된 전형형상들은 실제 존재할수 없는 인물들이다. ≪서유기≫에 손오공, ≪료재지이≫에서의 요귀형상 등이다.
이 방법의 특점은 생활속에 어떤 현상들을 과장하여 생활의 고유형태를 개변시킴으로서 작가의 감수를 더욱 강렬하게 하여 생활의 본질을 뚜렷이 시사한다. 변형수법에는 확대축소법, 만화법, 환상법 등이 있다. 로신의 ≪미친사람의 일기≫, 고골리의 ≪검찰관≫중에 관료들이 다 만화법으로 형상화된것이다.
사회적 력사적 혹은 개인적이거나 기타 원인으로 자기의 사상을 사실주의방법으로 표현하기 불편하거나 기어이 써내지 않을수 없을 때 형상을 과장하고 변형시키는 수법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형상속에 자기의 사상을 숨겨두고 현실과의 거리를 충분히 둠으로써 마음껏 과장하고 변형시킨 형상으로 자기 사상감정을 암시하고있다.
5) 전설이나 력사인물을 전형으로 내세우기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부각한 파우스트는 전설속의 인물이나 그를 자기의 철학사상을 체현하는 전형으로 창조해냈다. 쉐익스피어의 유명한 전형 햄리트도 13세기 단마르크사에 기재된 단마르크 왕자였으며 그 기본내용도 단마르크왕자의 복수기이다.
예술사유는 형상사유, 론리사유, 모호사유, 령감사유 등이 종합되고 묵결된 심미사유이고 다유성(多维性)사유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형형상을 창조할 때 무엇을 하는가? 어떻게 하는가를 써야 할뿐만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있는가도 써야 한다는것이다.
당전 새 문학사조들의 충격하에 전형리론발전에서 몇개 방면의 돌파, 심화가 요청된다. 전형리론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지만 인간심령의 비밀을 탐색하고 발굴하는것이다. 전형은 인간의식에로 연장되여야 한다. 전통적리론에서는 인물의 외부적관계 동작은 중시했지만 직관적반영론의 단항사유모식에 국한되여있었다.
서구의 미학리론은 력사와 계급을 초월한 추상적공성을 강조하고있다. 이를테면 부동한 시대, 부동한 계급의 사람들에게 대체적으로 류사한 성격 혹은 성격, 심리속에 고유한 비슷한 인소들이 있다는것이다. 례하면 애정에는 “로미오와 쥴리에트”, 질투에는 “오쎌로”, 유예미결에는 햄리트가 있듯이 말이다.
우리는 흔히 쎄르반떼스의 전형인물인 돈 끼호떼를 주관주의자의 대명사로, 장비나 리규를 거칠고 대바른 사나이의 대명사로 떠올리고 울음의 전형으로 림대옥을 련상한다. 전형은 창조대상이 아니라 창작의 결과이다. 세계적인 전형인물에 시대가 없듯이 전형화 리론은 색바랠수 없는 문학의 법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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