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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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미학
2016년 12월 10일 20시 18분  조회:424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비평의 미학
 
                                                    진 언


    비평이란 지력, 지성의 싸움의 수단으로서 이 싸움이 있기때문에 인간들이라는 물종이 보다 문명해지고 있는것이다. 무엇에나 만족해 있는 사람이 가장 큰적이라는 말이 있다. 비리한 일을 보고 비평하고싶은 생각이 떠오르면 정의를 신장하려는 마음 이 죽지않았다는것을 의미하며 만약 마음이 죽었다면 “내”가 죽은후 홍수가 지건 말건 알게 뭐냐?하는 혈기가 없고 무정한 미이라에 지나지 않는다.
    비평이 없는 사회는 가라앉은 사회이며 희망조차 없는 사회이다. 진정 민주주의 사회라면 그 어떠한 비판도 가능하며 비평의 륜리학도 생생하게 살아있을것이다. 근 간에 평론계에 “비평의 결석”이라는 개념이 통용되고있는데 비평이 현장에 있어야 하는데 부재한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례컨대 현재 문화계와 학술계에 비평다운 비 평의 목소리를 들을수 없는 현상을 례로 들수 있겠다.
    중국에도 전국민적으로 비평(비판)의식이 전례없이 왕성한 때가 있었다. 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구한다는 그럴듯한 구호를 고창했지만 기실 인격타격이였다. 그러나 다른 타자에 대한 인격모욕과 박해는 되돌아와 자신에 대한 모욕이였고 자아훼멸 이였다. 로신선생이 욕설과 비방은 전투가 아니라고 하였지만 그때는 욕설과 탄압이 상용무기였고 능사였다. 인간은 서로 존중해야 하지만 비평은 필연적으로 충돌의 불꽃을 튕기는 법이여서인가?
    사람은 성현이 아니기에 완전무결한 사상과 주장이란 있을수 없고 글도 마찬가지 다. 관습적으로 비평이라면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해야 하는것으로 오해하고 있으며 공식화된 추리와 빈도리를 늘여놓는것인줄 안다. 말하자면 비평의 대상을 그때 그 사물로 한정해야지 그 사람의 인격과 존엄을 몽둥이질하는것은 폭력이다. 무릇 인간 의 기본권리에 대한 무시, 개체의 존엄과 리익을 짓밟는 행위는 모두 범죄이고 법치 정신과 생명에 대한 배반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서책상에 리론일뿐이였다.
    지성인들은 모두 비평의 검투사들로서 썩은것을 도려내는 날카롭고 예리한 비평 의 칼날로 우리들이 관심하는 일들을 해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로신선생은 중화문화 사상에서 가장 위대한 비판자로서 그가 무자비한 비판의 무기를 든것은 당시 중국에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때문이다. 만약 로신선생도 함축하고 애매모호하게 에두르는 우아함에 매달렸다면 역시 우아한 그 모든 문필가들처럼 망각의 락엽속에 묻혀 버린지 오랬을것이다. 비평은 언제나 달콤한 죠콜렛트가 아니기때문이다.
    리론상에서 말한다면 건강한 사회에서는 로신의 투창과 비수가 수요되지 않는바 따라서 건강한 사회에는 로신같은 위대한 비판자를 배출할수 없다. 역으로 말한다면 오직 기형적인 사회만이 위대한 비판자를 배태한다. 이 시점에서 비판자의 위대함의 정도는 사회의 기형정도와 정비례된다고 할수 있으며 비판자의 수량도 역시 사회적 기형의 정도와 정비례된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딱지투성이 머리는 빗을 꺼린다. 누군가 사회문제를 비평하는것을 싫어한다면 그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있는 시대와 사회에 불만족해야 하는가? 시비곡직을 불문하고 만족해야 하는가? 꾀꼴새 노래하고 제비가 춤추는 아주좋은 형세라해도 회의의 눈길들이 있었다. 비록 문필로 문제를 해결할수 없는 노릇이지만 관념상에서는 금이 그어져 있어야 했다.
    인류사회인만큼 시종 문제가 생성하기마련이다. 물질적으로 빈궁하였기에 생산의 속도문제가 제기된것이고 작금에 물질이 풍부해지니까 또 분배상에서의 불공평문제가 튀여나온것이다. 권력비리는 없는가? 여론은 진실한가? 사회, 공중도덕은 곤두박질 하지 않는가? 등등은 인류사회의 항구한 열점들이다. 흐름을 멈춘 물은 썩기마련이다. 추구가 불만족에서 기인된다면 추구야말로 사회발전이 동력이 아니겠는가?  
    비평이란 말이 나오면 맑스의《<헤겔의 법철학비판>도언》에 유명한 구절이 생각날것이다. “비판의 무기는 물론 무기의 비판을 대체할수 없다.” (《맑스엥겔스선 집》제1권 제9페지 중문판) 맑스의 이 명언에서 체현된 철학사상은 리론과 실천의 관계 이다.“비판의 무기”에서 핵심단어는 무기이고 “무기의 비판”에서 핵심단어는 비판으로서 무기와 비판은 별개이다. 그러나 무릇 비판은 위대한것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사람들은 함축하고 우아하게 말하기 좋아하여 남을 비평하기를 삼가하였으며 더욱 직언하기를 꺼리였다. 대방의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는 소위 례의이다. 그러나 인성과 리성을 팽겨치고 오직 투쟁만이 대길이였던 광란의 년대에는 인의례의가 설자리 없었다. 환호는 일종 사랑의 표현이고 비판은 또 다른 일종으서 더욱 심각한 사랑이여야 했지만 정서충동이 시킨 만행만이 있었을뿐이다.
    사상문화적인 비평도 그렇다. 비평은 비평하는 사람의 존재의 리유이고 증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방적인 폭언이 아니라 리론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비평은 리성인 지력의 전개이지 감성적인 언어폭력이 아니다. 이 모든 사상과 리론을 정립할 수 있는것은 학문이고 이 모든 학문의 예비학이 비평이다. 비평은 륜리의 채찍이며 이 륜리의 토대우에서만이 모든 학문이 꽃피여 난다. 모든 학문은 하나의 사상론이며 이 사상론은 공유되는것이지 개인의 발설이 아니고 분풀이도 아니다.
    사람에 대한 비평의 일반적규률로 말하면 낯선사람, 관심외 사람을 허투루 비평하지 않는다. 그처럼 비평은 관심에서 출발하여 긍정에 이르려는 희망요소가 들어있다. 자신과 차이가 현저한 사람이거나 거리가 먼 사람은 비평하지 못한다. 마치 산간벽지의 초민백성이 황제를 비평할 건덕지도 없고 담량도 없듯이 말이다.
    무릇 비평은 비평받는 사람에게 비자재적인 감각을 안겨주기에 무조건 기꺼이 접수하는 군자란 태여나지 않았다. 여기서 비평의 륜리문제가 제기된다. 중국사람들은 자고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좋아하여 쩍하면 어떻게 사람이 되여야 하고 일은 훈계하기 좋아한다. 남을 가르치고 훈계할 자격이 있고 능력이 있다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만 늘 지엄한 스승으로 자처하는것은 참으로 꼴불견이다.
    비판은 비난이나 비아냥이 아니다. 비난, 비아냥은 비뚤어진 심성의 로출일뿐이 다. 남의 견해, 감정표현에 비양거리지 말고 정당하게 반론을 쓰던지 쓸 건덕지가 없으면 공감이 없더라도 반감은 가질 필요가 없으리라. 비평함에서 자신이 무소부지하고 무소불능이고 무불통지한듯 훈계하는것은 비평에서 삼가해야 할 상식이다.     
    비평거리가 일종 “흠집”이긴 하지만 제흠집은 뒤에 밀어놓고 남의 흠집만 잡고 이렇쿵 저렇쿵하는것은 유치한 발상이다. 남의 흠집이 잘 보이는것은 자신의 흠집만큼만 보이기때문이다. 사람이 자가당착에 빠지면 헛소리를 진담인양 내세운다. 사람이 손가락 하나로 남을 가릴킬 때 손가락 세개는 나자신을 가리키고 남은 하나는 하늘을 가리킨다고 한다. 누구를 손가락질하고 싶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하늘을 쳐다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라, 세번정도 말이다.
    지자의 눈은 비평의 자대가 되고 입이 비평의 메가폰이 되여야 한다. 반대로 지자의 귀는 비평을 듣는 귀가 되고 두뇌는 비평의 발원지로 되여 리성으로 맑아지고 심장은 비평의 열정으로 뜨거워져야 한다. 지자의 판단은 비평의 동력으로 되여지고 미래를 내다보고 벼리는 비평의 무기는 서리발쳐야 할것이다. 비평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들의 살속에 있는 피이고 따라서 그들에게 우리의 체면따위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것이다.              

                                                      2012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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