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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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장하다도다. 그 먹는 입이여
2016년 01월 20일 10시 26분  조회:4462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장하다도다. 그 먹는 입이여
 
     
   자초에 입은 먹고 말하는 공능을 가졌지만 인간이 다정다감해지면서 입을 맞추고 빨고 핥는 등 다양한 공능을 가지게 되였다. 그러나 백사불구하고 먹는 공능만큼 큰 공능이 없다. 불편하기는 해도 말을 못한다 해서 죽지 않지만 일단 입이 먹는 공능을 못하면 죽음을 자초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의 입의 공능은 주요하게 먹는것이다. 특히 먹기위해 살아가는 식충들에게는 말이다.
   일신 천냥에 눈이 팔백냥이라는 말이 있는데 대명천지 밝은 세상을 보며 살려면 눈이 중요함을 뜻하는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말하면 입은 일신천냥에 구백구십냥이라 할수 있지 않을가? 자고로 죄는 엄하게 다스려졌다 지만 먹은 죄는 종지굽이라 했다. 먹기 위해 저지른 죄는 그만큼 가볍게 처리되여 왔다는 얘기가 되는것이다.
   먹을거리가 잘 생기는 사람을 두고 식복이 있다고 하는데 모든 국민이 식복이 있다면 그보다 더 경사로운 일이 어데 있으랴만 인간의 식복을 무한히 연장시키면 목숨을 가진 다른 동물들에 끝없는 치명의 화가 되지 않을수 없다. 세계적으로 동물 보호법이란게 나오게 되기까지는 인간의 식복이 이 지구촌의 구석구석에 만연되여 동물의 훼멸적인 재난으로 되였기때문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먹는 일만큼 급선무가 있겠는가? 아마도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제 머리를 만들고 숨쉬는 코와 보는 눈을 만들기전에 살아가야 할 수단으로서의 먹는 입을 먼저 만들지 않았을가 생각해 본다. 그러지 않고서야 두눈 딱 감고 금방 땅에 떨어진 아이도 젖꼭지만 물려주면 본능적으로 빨아대니 하느님이 점지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렇듯 악착스럽게 빨수 있을것인가?
   일언이페지 하고, 먹는 기능은 인간이 살아가는 으뜸가는 기술이라 하겠다. 아니, 먹는 일은 아주 문명스럽게 문화가 되였다. 손으로 움켜 먹느냐? 젓가락으로 먹느냐? 숟가락으로 먹느냐? 포크로 찍어먹느냐? 먹는 방식은 다르지만 아무리 백치라도 먹는 일만큼에는 지력차이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먹는데도 문명하고 점잖게 먹는것과 사흘굶은 범이 탐식하는듯이 우겨대는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의 표현은 일종 식문화이고 후자의 표현은 탐식심리로서 본능에서 온다.
   식문화와 탐식심리가 혼합되여 먹는 정신을 형성하였는지 모르지만 중국은 자고로 먹는 대국이다. 5천년래 중국음식은 남녀가 모두 먹을줄 알고 즐겨먹고 잘 먹고 닥치는대로 먹은 보람찬 문화성과로서 온갖 방법을 대여 더 좋은것, 더 맛있는 먹거리를 장만했다. 그러다보니 천백종의 료리를 만들어냈고 먹는 방식도 천태만상이 되였다. 중국사람들의 입은 그야말로 대단하다고 말할수 있는바 확실히 세계를 놀래우고있다. 이는 국민 스스로 자호를 느끼고있다.
   고대중국사람들을 특별히 창조성이 있는 민족이라고 하지만 휘황찬란한 식문화사는 더구나 세상이 탄복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식문화에서 창신의식은 서로 뒤질세라 비등하여 나는것으로 비행기를 먹지 못하고 뛰는것으로 자동 차를 먹지 못할뿐 먹지 못할것이 없고 먹으면 소화시키지 못할것이 없다. 온세상이 눈이 휘둥그래서 중국사람들이 먹는 장관을 주목하고있다.
   수천년래의 기아의 력사가 아마도 국인들로 하여금 특별히 먹는것을 바라고 먹고 싶어하고 만포식하고 탐식하는 현상을 조성한것이리라. 관원으로부터 로백성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권태를 느끼지 않는 일이 있는데 바로 소화공정이다. 그래서 배터지게 먹고 마시는데 열을 올리고있고 게다가 자기 돈지갑을 열지 않아도 되니 더구나 목숨을 내걸고 먹고 마신다. 아니면 배가 불러죽고 너무 마셔서 죽었다는 뉴스들이 거짓말처럼 드문히 보도되지 않을것이다.
   먹기내기에서는 어느 선진국가 국민도 중국국민들에게 패하지 않을수 없다. 국민의 입이야말로 무서운것이다. 잡아먹지 말라고 하는것일수록 더먹고 버젓이 내놓고 먹을수 없으면 몰래 둘러앉아 먹는다. 진귀한 동물일수록 더 잡아먹고 절멸된 동물 이라면 더구나 먹지 못해 군침을 흘리고 냠냠거린다.
   위가 불평을 부리고 홍문이 고장나도 상관없다. 얻기 힘든것일수록 더 잘 먹고 값이 비쌀수록 더 먹고싶어 하며 좋은것을 먹어야 인끔이 올라간듯이 여기고 비싸기만 하고 맛은 없어도 고귀함을 나타내기 위해 먹고… 먹는 일이 이 정도에 이르면 식문화가 아니라 다만 먹자는 심리뿐이라 해야 할것이다.
   근년래 죄를 지은 탐관들의 장물을 수색하다가 현금과 금은장식품, 딸라외에도 고급술상자들도 발견된다고 한다. 그저 먹는 락밖에 없는 시골농부라면 그게 리해가 가는 일이겠지만 사회정영들이라는 관원들이 그렇게 한다는것은 유치하다고 해야 하리라. 외국에도 탐관들이 있지만 집에서 몇십병의 모태주따위들이 나오는것은 극히 드믈다고 한다.
   그네들도 고급명주를 받았겠지만 다 마셔버리는것이다. 오직 수준이 없는 중국탐관들만이 그랑데가 각국의 금화, 은화를 한잎한잎 모아두는것처럼 한병한병 소중하게 간직해둘수 있다. 예술을 위한 예술가가 있다더니 오직 탐오하기 위해 탐오수뢰하는 그런 탐관이 있다면 웃겨도 한참 웃기는 일이다. 하긴 그랑데는 돈을 쓰기 위해 번것이 아니라 벌기 위해, 모으기 위해 번것은 사실이지만도 말이다.
   중국사람들의 먹는심리가 만약 그저 탐식에서 표현된다면 물질이 극도로 결핍하였고 정신이 극도로 낮았던 후유증이라고 리해할수 있다. 그러나 먹는 과정에 동물 학대성의 잔인성의 표현은 불가사의하다. 한마리 생선을 잡아내여 죽지 않게끔 배를 가르고 비늘을 없앤다음 펄펄 끓는 기름가마에 슬쩍 목욕시키고 다시 온갖 조미료로 화장을 시켜서 식탁에 올려놓는다. 그때까지도 물고기는 죽지 않고 눈알을 굴리고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한다. 그런 고기를 보고 서양마나님들은 감히 젓가락을 대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사람들은 기겁하기커녕 희희락락해하고 손을 비벼대며 젓가락을 육박의 창끝인양 꼬나들고 단말마적으로 몸부림치는 고기를 향해 용감하게 돌진한다.
   산원숭이의 두개골을 깨고 숟가락으로 뇌수를 퍼먹는 사람들의 피비린 향연에서 우리는 일종 흡혈자의 잠의식의 발설심리를 읽을수 있다. 또 한가지는 이제 곧 먹어치울 산고기를 벌겋게 단 철판우에 놓고 서서히 굽는것인데 그것이 속이 타서 입을 짝짝 벌리면 간장이나 기름을 먹이고 식초를 먹이여 다섯가지 향료맛이 온몸에 배게 한다고 한다. 그 경우엔 마지막 환절인 먹는공정이 요긴한것이 아니라  학대하는 그 긴긴 과정에서 느끼는 미식가들의 다시 없는 자극과 쾌감이 중요한것이다.
   인간은 유사이전부터 동물을 잡아먹으며 동물보다 류다르게 고급적으로 진화되여온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간혹 농부산품시장에서 잉태한 소, 개. 양들을 잡아 배속에서 꺼낸 새끼같은것을 버젓이 내놓고 파는것을 보면 위대한 식문화의 장거들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고 세상에 태여나보지도 못하고 배속에서 죽어야 했던 그 생명들을 축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축복하지 않고 무엇을 더 할수 있겠는가?
   먹는 심리와 식문화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전자는 본능이고 본능은 선천적인것으로서 기인에 의해 결정된다. 후자는 수양으로서 후천적이고 교육받아서 천천히 형성된다. 일찍 선진시기에도 음식은 정신문명의 체현이라고 인식하였다. 하여 《부례지초, 식여음식(夫礼之初,始于饮食)》라는 고훈이 있게 되였다. 빛갈이 불성모양이여도 아니 먹고 냄새가 고약해도 아니 먹고 때가 아니면 아니 먹는다…는 공자의 말씀도 세상에 널리 와전되고있다.
   입고 먹는데 만족하면 영욕을 안다(衣食足,知荣辱)고 하는데 먹는데 병태적심리를 가진 사람들은 이 명구를 영원히 알수 없을것이고 또 알려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배부르니 평안감사 조카같이 보인다지 않는가?  하오나 오직 먹는 심리만 있고 먹는 문화가 없는 민족은 래일이 그리 명랑하지 못할줄로 안다.
 
 
 
                              2007 년 3 월 1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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