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시거리는 태여날 때 별반 차이가 없었다. 사는 동안 점차 보고 듣고 느끼면서 인간의 눈높이가 달라졌을 뿐이다. 정상을 향해 벼랑길도 서슴지 않는 담대한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쥐꼬리만한 능력에 안주하며 비에 젖은 포스터처럼 혼신이 얼룩덜룩한 타입도 있기 마련이다.
흔히 시야가 좁은 사람을 우물 안의 개구리라 비웃지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주변에 어디 한둘뿐인가. 인간이 평생의 노력을 경주해도 터득 못해 대를 이어가며 배우는 지식을 금방 어섯눈 뜨고 일목료연한듯 돌아앉아 문빗장을 치니 책과 담을 쌓고 사는 혹자의 고집을 돌려세우기란 참 힘들 수 밖에 없다.
며칠 전 연길시는 3선급 도시로 부상했다. 원인 중 상업의 물동량이 한자리 톡톡히 차지했다. 길량켠은 영업가게들로 즐비한데 다닥다닥 붙은 간판 속에서 책 파는 가게를 찾기란 풀밭에서 바늘 찾기다. 고작 몇집 밖에 안되는 서점마저 경영난으로 책수량이 적고 정보가치가 떨어진 내용들로 수두룩해 평소에 식당이나 오락장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지만 서점은 고객보다 판매원이 훨씬 많은 느낌이 들어 썰렁하다.
살펴보면 공공장소나 직장에서 잡담소리가 요란하지만 책 보는 정숙한 자세를 찾아보기 어렵다. 책 보는 일은 마치 학자 외에 자신들과는 무관하게 여기는 자체가 일종 무식의 발로이다. 체계적인 지식도 없으면서 뭇사람들 앞에서 아는 체하며 좁은 소견과 얕은 잔꾀로 세상물정을 해석하려니 자연 불가사의한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된다. 간혹 “왜 책 보기 싫은가”고 물으면 “그걸 어디에 써먹어요? ” 대답이다. 하긴 일자무식이 돈 버는 사례가 흔하디 흔한데 그까짓 거 체념해서 랑패 볼 일이 없을 것 같다.
벽돌장 규격을 몰라도 집짓기를 해서 괴춤이 늘어난 졸부가 얼마 많이 생겼던가. 배우려는 의욕이 없고 항상 두리뭉실한 속구구로 이른바 상식과 경험 따위를 갖고 헤덤벼친다면 만사는 대길이 아닌 불길일 수 밖에 없다. 상식은 익혀둬야 할 격식일진대 경험은 지나온 과거사일 뿐이다. 그래서 세상을 보다 넓고 밝은 안광으로 살피는 지혜를 갖추려면 젊은이든 늙은이든 할 것 없이 꾸준히 배우며 터득하라는 것이다.
나뽈레옹은 평생 책보기를 즐겼다. 전호 속에 엎드려도 보고 말안장에 앉아서도 책이 손에서 떠날 줄 몰랐다. 일개 가난한 병사가 구라파의 방대한 제국을 세워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하사 받는 특전을 누릴 수 있었던데는 7천여권에 달하는 책들을 탐독하면서 얻은 천리혜안의 파워를 떠나 상상할 수 없다. 고금중외에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한 사례는 많다. 오늘날 시대가 바뀌여진 시점에서 맹목적인 공부보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범주에서 상상력을 과시하는 공부를 할 것인가에 따라 내용과 결과가 달라진다.
맹자는 일찍 “무턱대고 책 속에 빠지는 것이 읽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고 말했다. 글줄을 익히는 기억력을 공부의 실력으로 착각하고 외우고 쓰고를 반복하는 빈껍대기 공부가 오히려 인간의 노력과 시간을 랑비하는 결과 밖에 없다. 하나를 알면 열가지를 터득할 수 있는 신명은 오로지 창의적인 공부에 의해서 실현이 가능하다. 인공지능시대가 현실로 다가서는 과정에는 응축된 리론의 공간을 파헤치고 폭넓게 다양한 예측을 할 줄 아는 비전이 약속된 인재를 요구한다.
인재란 분석과 판단이 빈틈없는 정확한 사람을 짚어 말할 때 사물에 대한 시각차를 근근히 견해차이로만 인식한다면 그 이상 억울한 오판은 없을 것이다. 백여년 전 스웨리예의 과학자 아레니우스가 인류 최초로 지구의 온난화를 경고했다. 삼림을 보호하고 화석연료의 사용을 막아 이산화탄소의 균형을 유지할 것을 호소했으나 환경오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르는 무지몽매한 처사가 현명한 제안을 여지없이 짓뭉개버렸다.
때아닌 폭설, 홍수피해가 잇따르자 아뿔싸! 뒤늦게 무릎을 철썩 치며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면 돌아오는 징벌이 무서운 법이다. 그나마 해가 뜨면 달이 지는 신비 속을 훤히 꿰뚫어보는 인간의 선견지명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충격적인 미래를 슬기롭게 대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천만다행스럽다.
삼라만상을 담아두는 마음의 그릇이 크고 작음에 따라 가꾸는 터전의 모양새가 변화를 이뤄내는 상식 쯤은 미리 익혀두자. 세상이 아는 만큼 보이는 까닭에 인생사도 항상 그에 따르는 희로애락으로 푹 절어있다.
길림신문 2017-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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