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날과 지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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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중국관광을 주도한다
2009년 03월 18일 09시 13분  조회:4482  추천:0  작성자: 人和



 

 

중국관광개발에 공헌이 큰 진시황

 

진시황은 중국력사상 최초로 통일된 다민족전제주의중앙집권국가를 건립하였다. 그의 가장 큰 력사적공헌은 중국을 력사상 최초로 정치적통일을 하고 “차동궤, 서동문( 同 ,  同文)”을 이루어 후대에 통일을 추구하는 기초를 닦아놓은것이다. 진시황의 력사적공헌은 아주 많다. 여기에서 일일이 언급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은 부분을 얘기할가 한다. 진시황은 력사상 관광개발에 대한 공헌이 가장 큰 사람이다.

당시 진시황은 천인공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사람의 의견을 배척하면서 과감하게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리고 인류력사상 가장 방대한 공사를 완성하여 후세인들에게 아주 뛰여난 관광지를 제공해주었다. 관광업의 각도에서 보면 그의 안목은 1000년이상을 갔으니 얼마나 멀리 내다본것인가? 만리에 이어지는 장성은 다만 성벽이 아니라 성장(城 ), 적루(  ), 관성( 城), 돈보(墩堡), 영성( 城), 진성봉화대( 城烽火台) 등 각종 방어공사로 구성된 완미한 방어공사체계이다. 이 방어공사체계는 각급군사지휘체계의 단계별 지휘와 통제를 받았다. 장성은 후세에 영향을 크게 미친 위대한 공사이다. 군사적가치는 이미 력사에 매몰되였지만 관광가치는 갈수록 커지고있다.

진시황이 투자개발한 관광지로는 또 서안의 진시황병마용이 있다. 이는 만리장성과 더불어 현재 중국에서 입장료가 가장 높은 두개의 관광지이다. 그리고 외화을 가장 많이 벌어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많은 나라의 국가원수들이 중국에 오면 반드시 북경의 장성과 서안의 병마용을 참관하지 않았던가? 국내의 어느 곳이든 이처럼 명성이 높지는 못하다.

진시황릉은 거대한 규모와 풍부한 부장품으로 력대제왕릉중 최고이다. 또한 세계최대의 황제릉이기도 하다. 일찍 1987년에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재되였다. 이것도 진시황이 관광개발측면에서 이룬 성과이기도 하다. 진시황릉의 전체면적은 56.25평방킬로메터에 달한다. 이 면적은 오문3, 자금성 78개의 면적에 달한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이 13살에 진나라왕위를 계승했을 때 자신의 릉원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죽은후에도 채 완공되지 않은 이 방대한 황제릉은 건축시간이 38년에 달했다. 공사에 참가한 사람이 72만명에 달했으니 이는 당시 전국총인구의 1/10이나 된것이다.

진시황이 6개 나라를 통일한후 일찍 천하의 병기를 몰수하도록 명을 내리고 12동인(十二 人)을 주조했는데 각각 17만킬로그람에 달했다고 한다. 이처럼 크고 제작이 정교한 동인은 력사상 드문것이다. 12동인은 진시황이 생전에 좋아했던것이여서 진시황릉이 완공된후 다른 물품들과 함께 부장품으로 릉묘에 묻었다고 한다. 현재 중국의 문화재보호기술이 높지 못해 진시황릉의 지궁은 아직 열지 않고있다. 이 지궁은 아주 크고 대량의 진귀한 보물을 보관하고있으며 또한 각종 기관이 설치되여있다. 지궁이 열리면 진시황이 개발한 또 하나의 세상을 놀래울 관광경관이 나타날수도 있다.

진시황은 관광지를 널리 개발했을뿐만아니라 자주 관광을 다녔다고 한다. 려행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6번의 대규모 순유(巡游)를 했으며 명산명승지에 비석을 세워 자신의 사적을 기록했다. 북으로는 진황도에서 남으로는 강소, 절강, 호북, 호남에 이르고 동으로는 산동연해지방, 서로는 감숙 롱서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의 족적이 남아있다. 추봉산(산동), 태산, 지불도(연태), 회직(절강 소흥), 갈석(하북 창려) 등에 모두 그가 돌에 새겨놓은 글이 남아있으며 자연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산동성 영성( 城)에 있는 성산두는 천진두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중국에서 태양이 가장 먼저 뜨는 곳이다. 천진두는 진시황이 친히 명명한것이기도 하다. 《사기 진시황본기》에 “당시 진시황은 문무백관을 이끌고 함양에서 나와 동으로 순유하였다. 황제의 수레와 말이 성산두에 이르렀을 때 구름과 안개로 뒤덮이고 바다에 물안개가 가득했다. 이것을 본 진시황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마음이 상쾌해져서 이렇게 말했다. ‘선경이로다, 하늘의 끝이로다’”라고 기록되여있다. 당시 진시황이 순유했던 명산명승지는 현재 거의 모두 국가급의 명승지로 지정되였다.

진시황이 개발한 관광지의 품격이 높고 관광수입이 높은 점은 놀랄만한 정도이다. 만일 중국에서 수천년의 관광업개발의 공헌을 따져 상을 준다면 가장 큰 상은 당연히 이 천고일제 진시황에게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고 말하는 력사학자들도 있다.

 

 제공:연변라지오TV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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