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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중국 룽징(Longjing)에서 윤동주 시인을 만나다
2015년 06월 19일 21시 44분  조회:5106  추천:0  작성자: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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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중국 룽징(Longjing)에서 윤동주 시인을 만나다

 

 

본지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의 명동촌과 룽징중학교 찾아 윤동주 시인의 넋 기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기사입력 

2015/06/18 [18:10]

 
 

【Longjing(China)=Break News GW】
몽골 캠퍼스 방학을 이용해 짧은 중국 취재 방문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6월 18일 목요일 오전 중국 룽징(Longjing=龍井=龙井) 시를 전격 방문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는 중국 옌볜조선족자치구 옌지(延吉)에서 룽징(Longjing=龍井=龙井) 시로 이동, 룽징(Longjing=龍井=龙井) 시 소재 윤동주 시인의 생가 명동촌과 윤동주 시인의 모교 룽징중학교를 찾아, 한민족 직계 조상인 고(故) 윤동주 시인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렸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윤동주의 생가가 있는 중국 룽징의 명동촌은 6월의 신록으로 푸르렀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중국 룽징 명동촌 소재 윤동주 생가 입구.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짧은 중국 취재 방문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윤동주 생가 입구에서 포즈를 취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윤동주 생가 전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윤동주 생가 전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올해 2015년은 윤동주 서거 70돌이 되는 해이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윤동주 생가 전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윤동주 생가 뒷담 너머로 윤동주가 유년 시절 누비며 오디(Mullberry=상심=桑椹 또는 상심자=桑椹子라고도 한다)를 따먹곤 하던 뒷산이 한 눈에 들어왔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가 윤동주 생가 마당에 설치돼 있는 우물을 들여다 보고 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가 윤동주 생가 안내자인 서순금 여사와 포즈를 취했다. 서순금 여사가 문을 안 열어 줬으면 중국까지 와서 그야말로 헛걸음을 할 뻔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윤동주 시인의 생가 명동촌 방문을 마친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는 이어 윤동주 시인의 모교 룽징중학교를 찾아,역시 고(故) 윤동주 시인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렸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윤동주 시인의 모교 룽징중학교 정문.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윤동주 시인의 후배들이 운동장에서 체력 단련에 열심이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묻노니, 윤동주 시인이 룽징중학교를 졸업했던가?
아니다. 윤동주 시인은 룽징중학교를 졸업한 적이 없다.

왜냐. 윤동주 시인은 정확하게 기술하자면 룽징 광명중학교를 졸업했으니까.

그러면, 착오가 있었는가? 그런 건 아니다.
윤동주 시인이 룽징 대성중학교 출신이라거나, 룽징중학교 출신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 룽징 소재 6개 중학교(가나다 순서로 광명중, 대성중, 동흥중, 명신여중, 영신중, 은진중학교)가 대성중학교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가, 이 대성중학교의 교명이 뒷날 룽징중학교로 이름이 바뀐 게 명백한 사실(事實)이자 엄연한 사실(史實)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윤동주 시인이 룽징 은진중학교 출신이라거나, 평양 숭실중학교 출신이라는 것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 윤동주 시인이 중학교를 세 군데로 옮겨 다니면서 이 두 학교에도 적(籍)을 둔 적이 있었으니까.
 

윤동주 시인은 1932년 4월 중국 룽징 소재 4년제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했다가, 대학 진학을 위해 1935년 5년제인 평양 숭실중학교로 편입했다. 하지만, 1936년 1월 일제 총독부 당국이 신사참배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윤산온(尹山溫, George S. McCune) 당시 숭실중학교 교장을 교장 직에서 파면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교장 파면에 대한 숭실중학교 학생들의 반일 항의 시위가 이어지자 일제는 숭실중학교를 무기 휴교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에, 윤동주는 다시 룽징으로 돌아와 5년제였던 광명학원(光明學院) 중학부에 편입해, 드디어 졸업하였다.

 

 

 

덧붙이자면, 윤동주 시인은 4년제 은진중학교에서 5년제 평양 숭실중학교로 편입시험을 치렀다가 한 학년 아래인 3학년으로 편입됐다고 한다. 현재 상황으로 치면 수능 실패로 1년 재수한 것쯤 될 터이다. 윤동주 시인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또한, 대학 진학을 놓고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사료되는 바, 그 곡절은 부친은 의대를, 윤동주 시인은 문과대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문학이 밥 먹여 주냐? 기껏 해야 신문 기자밖에 더해?” 정도가 부친의 의중이었으리. 게다가, 윤동주 시인은, 일본 유학을 앞두고 히라누마 도쥬(平沼東柱=ひらぬま とうじゅう)로 창씨개명을 할 수밖에 없었기에 늘 조국에 대해 참회의 마음으로 살았으리라 사료된다.

전진은커녕 가라앉는 분위기에 처한 조국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윤동주 시인은 결국, 놀랍던 그 재화(才華)를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끝내 옥사하고야 말았으니 참으로 애석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룽징중학교의 전신 대성중학교 시절 학교 정문이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룽징중학교엔 윤동주 기념관이 마련돼 있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슬퍼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윤동주의 팔복=八福).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1943년 7월 14일, 일본 유학 중이던 윤동주는 교토 하숙집에서 체포되어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해인 1944년 3월 31일 재판이 열렸다. 역사는 윤동주와 일본 재판관의 대화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일본 재판관 "그대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별 문제에 대해 원망하고 선동까지 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윤동주 “그렇다. 나는 우리 민족이 차별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 보고 느낀 사실만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일본 재판관 “또한 너는 문학조직이라는 이름으로 범죄집단을 만들어 조선의 독립운동을 꾀하였는데 인정하는가?”


윤동주 “조선 사람이 조선의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게 어찌 범죄란 말이냐.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내 조국이 독립을 이룰 때까지 계속 투쟁 운동을 할 것이다. 옥에 가둔다면 옥에서 할 것이고, 나를 죽인다면 무덤 속에서도 할 것이다."
 

아아, 꺾이지 않던 조선의 절개여! 오오, 한없이 넘쳐나던 조선 남아의 기개여!
 

윤동주의 부친 윤영석과 아저씨 윤영춘의 증언을 그대로 옮긴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은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36분에 찾아 온 윤동주 시인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후쿠오카 형무소를 찾기는 동주(東柱)가 사망한 지 열흘 뒤였다.....그 길로 시체실로 찾아가 동주를 찾았다. 관 뚜껑을 열자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요?'라고 동주는 내게 호소하는 듯했다....일본 청년 간수(看守) 한 사람이 따라와서 우리에게 하는 말. "아하, 동주가 죽었어요. 참 얌전한 사람이....죽을 때 무슨 뜻인지 모르나 외마디 비명(悲鳴) 소리를 높게 지르면서 운명했지요."하며 동정하는 표정을 보였다."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아명은 윤해환(尹海煥),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중화민국 지린 성에서 출생,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숭실(崇實)중학교 때 처음 시작을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본식 창씨 개명은 히라누마 도슈(平沼東柱)이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 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그의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창씨 개명 '히라누마'가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송몽규는 고종 사촌이었고, 가수 윤형주는 6촌 재종형제 간이기도 하다.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 약력
★1917. 12. 30. 만주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의 맏아들로 출생하다. 아명은 해환(海煥).
★1925. 4. 4. 명동 소학교에 입학. 같은 학년에 고종 사촌 송몽규, 당숙 윤영선, 외사촌 김정우, 문익환 등이 존재하다.
★1927. 명동소학교 5학년 때에 급우들과 함께 『새 명동』이라는 등사 잡지를 만들다.
★1931. 3. 15. 명동소학교 졸업. 학교에서 졸업생 14명에게 김동환 시집 『국경의 밤』을 선물하다. 명동소학교 졸업 후 송몽규, 김정우와 함께 명동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중국인 소학교 화룡 현립 제일소학교 고등과에 편입하여 1년간 수학하다.
★1932. 4. 용정의 기독교 학교인 은진중학교에 송몽규, 문익환과 함께 입학하다. 명동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이 곳으로 통학하는 윤동주를 위해 가족 모두가 용정으로 이사하다.
★1934. 12. 24. 『초 한 대』, 『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등 3편의 시를 쓰다. 이 시 3편이 오늘날 찾아 볼 수 있는 윤동주의 최초 작품이며, 이 때부터 자기 시 작품에 시작(詩作) 날짜를 기록하기 시작하다.
★1935. 9. 1.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하다.
★1935. 10. 숭실학교YMCA문예부에서 내던 『숭실활천』제15호에 『공상』이 실려 그의 시가 처음으로 활자화하다.
★1936. 3. 숭실학교에 대한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자퇴하고 고향 용정으로 돌아와 5년제인 광명학원 중학부 5학년에 편입하다.
★1936. 11.-12.간도 연길에서 발행되던『가톨릭 소년』에 동시「병아리(11월호)」와「빗자루(12월호)」를 윤동주(尹東柱)란 이름으로 발표하다.
★1937. 『가토릭 소년』에 동시「오줌싸개 지도(1월호)」, 「무얼 먹고 사나(3월호)」를 윤동주(尹東柱)란 이름으로, 「거짓부리(10월호)」를 윤동주(尹東柱)란 이름으로 각기 발표. 동주(童舟)라는 필명이 이 때 처음 사용되다.
★1937. 8. 100부 한정판으로 발행된『백석 시집 : 사슴』을 구할 길이 없자 필사하여 소장하다.
★1937. 9. 진로 문제로 문학을 희망하는 윤동주와 의학을 선택하라는 아버지 윤영석이 갈등하나, 할아버지 윤하연의 권유로 아버지가 양보하여 문학으로 진로가 잡히다. 『영랑시집』을 정독하다.
★1938. 2. 17. 광명중학교 5학년 졸업.
★1938. 4. 9.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기숙사 생활 시작.같은 해 송몽규도 윤동주와 함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다. 외솔 최현배 선생에게 조선어를 배우고 이양하 교수에게서 영시를 배우다.
★1939.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달을 쏘다(1.23)」, 시「유언(2.6)」, 「아우의 印象畵(10. 17)」를 윤동주(尹東柱)와 윤주(尹柱)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다.
★1939. 3. 동시「산울림」을 『소년』3월호에 윤동주(尹東柱)란 이름으로 발표하다. 새로 연희전문에 입학한 하동 학생 정병욱(1922-1982)을 알게 되어 친해지다. 정병욱과 함께 이화여전 구내 형성교회에 다니며 영어 성서반에 참석하다. 이 무렵 릴케, 발레리, 지드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하며, 프랑스어를 독습하다.
★1941. 5. 정병욱과 함께 생활관에서 나와 종로구 누상동 9번지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하기 시작하다. 하숙생이 되면서 김송과 우연히 알게 되다.
★1941. 6. 5.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발행하는 『문우(文友)』지에 「우물속의 自畵像」, 「새로운 길」을 발표하다.
★1941. 9. 요시찰인 김송과 학생들에 대한 일본 경찰의 주목이 심하여 그곳을 나와 북아현동의 전문적인 하숙집으로 들어가다. 서정주의『화사집』을 즐겨 읽다.
★1941. 12. 27. 전시 학제 단축으로 3개월 앞당겨 연희전문학교 4학년 졸업하다.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작품을 모아 자선시집(自選詩集)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당시 흉흉한 세상을 걱정한 주변인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 시집을 3부 작성하여 한 부는 자신이 가지고, 이양하 선생과 정병욱에게 1부씩 증정하다. 본래 이 자선 시집의 제목은 『병원』이었으나「서시(序詩)」를 쓴 후 바꾸다. "병원"은 병든 사회를 치유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다. 윤동주 자신의 유학을 위한 일본 입국 수속을 위해 성씨를 "히라누마(=ひらぬ=平沼)>"라고 창씨개명하다.
★1942. 1. 24. 고국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 된 시 「참회록」을 쓰다.
★1942. 4. 2. 도쿄 릿쿄(立敎)대학 문학부 영문과 선과에 입학하다. 송몽규는 일본 교토 제국대학 서양사학과에 입학하다.
★1942. 4~6. 「쉽게 씌어진 詩」등 이 때 쓴 시 5편을 서울의 친구에게 보내다. 이 시 5편은 오늘날 볼 수 있는 윤동주의 마지막 작품이 되다. 여름방학에 마지막으로 고향에 다녀가다. 동생들에게 "우리말 인쇄물이 앞으로 사라질 것이니 무엇이나 악보까지라도 사서 모으라"고 당부하다.
★1942. 10. 1. 일본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학과 선과에 편입하다.
★1943. 7. 10. 송몽규가 일본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에 독립운동 협의로 검거되다.
★1943. 7. 14. 고향에 가려고 준비하던 윤동주도 송몽규와 같은 혐의로 검거되고 많은 책과 작품, 일기가 압수되다. 당숙 윤영춘(가수 윤형주 아버지)이 일본 교토로 윤동주를 면회하러 가서 윤동주가 일본 형사와 대좌하여 우리말 작품과 일기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다.
★1944. 3. 31. 일본 교토 지방재판소에서 '독립 운동'이라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 받다.
★1944. 4. 13. 송몽규 역시 같은 죄목으로 2년형 언도 받고 윤동주와 송몽규는 이후 일본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다.
★1945. 2. 16. 일본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하다. 이어, 3월에 송몽규도 사망하다.

 

 

☞취재 후기⇒윤동주 시인의 무덤을 찾아 무덤가에 꽃 한 송이 놓아 두고 싶은 바람은 본 기자의 오랜 숙원이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벼르고 벼른 끝에, 드디어 본 기자의 중국 룽징(Longjing=龍井=龙井) 시 소재 윤동주 시인의 생가 명동촌과 윤동주 시인의 모교 룽징중학교 방문은 이뤄졌으되, 본 기자의 오랜 숙원이었던 고(故) 윤동주 시인의 무덤 헌화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1945년 3월 6일 화요일 윤동주 시인 장례식 현장. 봄철이었으나 눈보라가 몹시 쳐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춥게 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중국 옌볜조선족자치구 주재 한인 동포들의 말이 윤동주 시인의 무덤이 생가로부터 외진 곳에 있는 데다가, 무덤에 이르는 접근 도로 사정이 그렇게 썩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에 이름에, 본 기자는 무덤가 헌화를 깨끗이 포기하고, 그 대신, 생가 한 켠에 복원한 예배당에서 명복을 비는 것으로 무덤가 헌화를 대신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생가에  복원된 예배당 현장.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본 기자는 진심으로 윤동주 시인의 명복을 빌었다. 아울러, 지난해 2014년 제16회 재외동포문학상(賞) 국제 공모전 시(詩) 부문 수상을 계기로 현재 순항 중인 본 기자의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윤동주 시인이 하늘에서 음우(陰佑)하고 외호(外護)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중국 룽징(Longjing)에서 고(故) 윤동주 시인의 넋 기리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가 생가에  복원된 예배당 현장에서 윤동주 시인의 명복을 빌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참고로, 본 기자는 학연(學緣)으로는 윤동주 시인의 S고등학교 직계 후배이다.

 

▲Reported by Alex E. KANG, who is a Korean Correspondent to Mongolia certified by the MFA(=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Mongolia, led by Minister L. Purevsuren).     © Alex E. KANG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lex1210@epo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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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us, Altius, Fortius (Faster, Higher, Stronger)
<편집자주> 국제 회의 동시 통역사인 알렉스 강 기자는 한-몽골 수교 초창기에 몽골에 입국했으며, 현재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교수로서 몽골 현지 대학 강단에서 한-몽골 관계 증진의 주역이 될 몽골 꿈나무들을 길러내는 한편, KBS 라디오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으로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촌에 몽골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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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6/18 [18:10] 최종편집: ⓒ 2018breaknews.com



 

 


또 태초의 아침

 

 



글 :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
대한민국의 항일 저항 시인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電信柱)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

무슨 계시(啓示)일까

빨리
봄이 오면
죄(罪)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해산(解産)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無花果)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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