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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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살구나무의 혼 댓글:  조회:3802  추천:64  2009-07-03
고향을 떠난지 만 30년이 난다. 그리니 인젠 타향이나 다름이 없다. 아버님 등 선친들에게 제를 올리려고 1년에 봄, 가을로 찾는것이 고작이다.젊은이들과 경제사정에 밝은 사람들이 세거를 포기하고 상경하면서 인젠 황페해진 고향마을에는 텅 빈 집터와 주름진 얼굴들과 실그러져가는초가집만이 남아있을뿐이다. 그제날 4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앉아 색다른 음식이 있으면 바자굽너머로 손바꿈도 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온 동네가 발벗고 나서던 훈훈한 인정은 메마른지 석삼년이다. 이미 아득한 옛말로 된것이다. 매번 고향집 뒤산에 모신 선친들에게 제를 올린후 음복을 하면서  이미 남의 보금자리가 된 고향집과 몇그루 남지 않은 살구나무를 내려다보는 그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도회지의 빌딩숲속에 살면서도 문뜩문뜩 느껴지는 향수가 삭막감으로 변해서 서글프기만 하다. 45년전이다. 아버님께서 그제날 땅막집을 허물고 그 터에 새집을 지을 때 몇살 안되는 나도 진흙을 한삽 또 한삽 떠올려드리면서 올챙이힘이나마 보탰던 유정한 집이다. 그리고 우리 5남매가 나서 자란 고향집이다. 모처럼  둘러보면서 그제날의 추억에 눈시울이 젖어들면서 처연하기만 하다.그저 파수군처럼 지키고  선 몇그루 남지 않은 살구나무, 하냥 우리를 반겨주는 이 말없는 살구나무들만이 우리가 그 어느날 되찾아올것이라는 드팀없는 믿음으로 기다려주어서 처연한 감정을 상쇄한다. 이 살구나무들은 이제 한세기를 넘긴 로목들이다. 우리 조상은 울진장씨, 시조는 경상북도 울진군이다. 조선조때 고려복벽세력에 동조한 죄가 인정되여 함경도 부령땅에 정배와서  뻗어난 가문이다. 부령은 말그대로 척박하기로 세상에 둘도 없는 그런 고장이다. 엎친데 덮친다고 지난 세기초 우리 겨레들이 초유의 가뭄과 기아에 쫓겨 월강죄로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면서 두만강을 건널 때 우리 할아버지네도 남부녀대하고 이 고장에 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여기 천평벌을 등에 업은 개산툰의 자동골은 연변지역에서 우리 겨레들이 가장 일찍 정착한 고장의 하나이다. 그리고 전하는데 의하면 소재덕은 이 땅에 진출한 우리 민족이 가장 일찍 벼농사를 한 유서깊은 땅이다. 그때 조상님들이 이웃들과 함께 조선팔도에서 백살구산지로 유명한 부령에서 백살구가지를 가져다 개살구나무그루에 접목을 한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온것이란다. 그 혜택이랄가 우리 마을은 살구산지로 저 멀리에까지 소문이 높았다.새하얗게 익는 백살구나 새빨갛게 익는 박죽살구는 그 씨앗이 고소하고 기름져서 씹으면 씹을수록 맛난다. 하지만 이 씨앗을 다시 그대로 심으면 시금털털한 개살구가 된다. 그 씨앗도 쓰디쓴 개살구씨가 된다. 이런 개살구나무가 우리 고향의 산과 들에는 무진장하게 많다. 그래서 살구꽃철이면 온 산야가 새하얗게 물들어 실로 장관이다. 이런 개살구나무밑둥을 잘라내고 백살구가지를 접해야 맛좋고 향좋은 백살구가 달린다. 이런 사물의 리치를 모르는데서 다 큰 살구나무를 썩둑 잘라내고 잔가지를 붙인후 천으로 동이는 광경을 보면서 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하건만 삼년후부터 하늘높이 자란 살구나무에서 가지가 휘여지게 백살구가 달리는것을 보고서야 그 원리를 알게 되였다.맛좋은 백살구는 개살구의 뿌리를 빌린다. 그러나 열매를 맺어서는 다시 씨앗으로 되돌려준다. 그래서 개살구로 다시 환원하는것이다. 이것도 대자연속에서 식물들이 은혜를 은혜로 서로 갚는 도리가 아닐가?! 한 차원이 높은 백살구가 다시 개살구로 돌아가는 그 원리는 어지간해서는 터득하기 힘든것만은 사실이다.지난 세기 60년대초 우리 집에는 살구나무가 50여그루 있었다. 그 살구나무숲이 하도 무성하여 십리밖에서도 유표하게 눈에 뜨이였다. 당시 이 살구나무는 우리 식구들의 생계를 이어주는 주요한 버팀목이기도 하였다. 세상을 놀래우며 수천수만의 인명이 굶어서 주검이 된 그때 이 살구나무가 우리 형제들을 살리였다. 백살구는 새하얀 꽃을 피우며 웃음 짓고 박죽살구는 새빨간 꽃망울을 터치우면서 웃어주는 5월이다. 얼마후 뭇꽃이 분분히 지고나서 보름정도면 살구가 콩알만큼 된다. 그때부터 우리는 새콤새콤한 살구로 허기진 창자를 채웠다. 씨껍데기가 딴딴해질무렵까지 통채로 줄기차게 먹었다. 그래서 때론 혀바닥에 창이 생기면서 갈라터지기도 하였다. 하건만 배고프기보다는 나았던것이다. 7월 중순에 접어들어 새노랗고 진붉게 물들면서 익어가는데 그때면 물론 당연히 가장 훌륭한 먹거리였다. 이처럼 8월 초순이 되면 살구가 없어진다. 그러면 또 나무밑을 샅샅이 뒤지면서 살구씨를 주어서는 깨여먹었다. 그처럼 딴딴한 살구씨를 이발로 오도독하면서 깨여먹는 그 맛이 천하일미였다. 간혹 이발이 좋지 않아서 깨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놀림당하기가 일쑤였다.어머님은 살구가 익는족족 한 광주리씩 따서는 개산툰장마당에 이고가서 팔았다. 돌아올 때면 흔히 우리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놀이감이 있기마련이다. 동구밖에 가 해가 넘어가고 어듬이 깃들 때까지 어머님을 기다리는 재미가 좋았다. 아버님도 우리 못지 않게 기다리셨다. 그것은 어머님의 장바구니에는 언제나 배갈 한병이 들어있기마련이였으니깐.살구나무는 력사의 견증자이기도 하다. 100년전에 처음 두만강을 건너와서 옮겨지고 접해지면서 몇 세대를 지났다. 이런 살구나무이기에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개척정착사, 간고한 창업사가 담겨져있고 혼이 담겨져있는것이다. 아버님께서는 생전에 술만 드시면 항일투사들에 대한 얘기를 곧잘 하셨다. 우리 자동촌에는 1908년 연변지역에서 우리 민족이 가장 일찍 일떠세운 4대 학교의 하나인 정동학교가 꾸려졌었다. 연변지역에서 저 유명한 3.13항쟁에서 정동학교의 학생들은 4대 주력의 하나로 사책에 남는다. 40여년간에 거친 일제와의 판가리항쟁에서도 수많은 열혈지사들이 만고에 그 영용비장한 한페지를 남기였다. 주요한 항일유격구의 하나였던것이다. 아버님은 생전에 당시 자기가 열살 좌우였는데 항일투사들이 붙잡혀서 우리 집 살구나무에 매달리여 물매를 맞던 장면이 지금도 보는것 같다고 곧잘 말씀하셨다. 이처럼 비장한 력사가 깃든 우리 집 살구나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동네의 살구나무들이 훼멸적인 란벌을 당한것은 바로 10년문화혁명이 거의 끝나가는무렵인 1976년 봄이였다. “자산계급법권”을 척결하고 “자본주의꼬리”를 자른다고 한창 날뛸 때라 지금도 기억이 새롭다. 대대당지부는 “결의”를 채택하여 돈벌이만 추구하고 사상을 부식하는 “자본주의산물”인 살구나무를 세대당 5대만 남기고 양건담배 일명 토담배(우리 고장이 토담배고향으로도 명성이 높았음)는 200포기만 남기라는것이다.당시 대대당지부 위원에 제4생산대 대장을 겸한 나로서는 공작대의 불호령을 거부할 힘이 없었다. 그처럼 정든 살구나무, 그 살구나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처럼 혹독한 란벌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도저히 리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질질 끌었더니 조직처분이란 “최후통첩”, 결국 더 맞서지 못하고 굴복했다. “몇그루만 더 남기면 안되겠니?” 이미 스므그루 넘게 베여넘기고 열대 정도 남으니 아버지가 간청하였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애처롭다 못하여 락담한 상태다. 지금도 아버지의 그 애처롭던 눈길을 잊지 못한다. 새하얀 살구꽃이 흐드러진 나무를 썩둑썩둑 밑둥을 자르는 풍경에 아버지의 가슴에서는 정녕 피를 쏟고있었다. 심장을 도려내는 기분이였을것이다.“안됩니다. 다섯대만 남기세요. 인차 검사를 다닙니다.” 나는 단호하게 내뱉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돌리였다. 차마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을 정시할수 없었던것이다.아버지에게는 맏아들의 장래가 가장 최우선인것이였다. 10년간 농촌에서 그처럼 애태우며 고생하고도 아직 추천을 받지 못하여 대학에 가지 못하는 그 아들을 보는 아버님의 심정인들 오죽하였으랴!!이처럼 처절한 세례를 받으면서도 요행 살아남은 살구나무 몇그루가 고향집을 지키고 오늘도 오연히 서있다. 몇세대 남지 않은 고향마을 이웃집들에도 몇그루가 고작이다. 하지만 이 살구나무들의 령혼만이 살아서 오늘도 활짝 피고있다. 봄이면 먼저 꽃을 피우고 잇달아 새파란 잎으로 무성하다. 늦은 여름이면 풍만한 열매로 그 뒤끝에는 씨를 땅에 묻는다. 이후에도 세세년년 이렇게 대를 이어갈것이다.우리 조상들이 당지의 개살구와 접목하고 정성들여 키우신 고향의 백살구나무, 이제 선친들은 고인이 되고 후손들이 도회지로, 연해 발달지역으로, 외국으로 떠나갔어도 외롭게 그 넋을 간직하고 고향집 뜨락을 굳건히 지켜서 내가 오늘도 감동하고있다. (연변일보 2008-5-22 19:43:00) 
4    민족대이동 사회발전의 필연적추세 댓글:  조회:3470  추천:61  2009-05-18
개혁개방 30년은 중국조선족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특점의 하나가 바로 조선족인구의 대이동이라 할수 있다.특히 최근 10여년간에 전통적집거구가 해체되거나 인구가 격감되면서 대도시와 연해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조선족집거구가 형성된것도 사실이다. 북경, 천진을 중심으로 수도권집거구, 심양, 대련, 단동을 중심으로 한 조선족집거구, 청도, 연태를 중심으로 한 산동반도집거구, 상해, 남경을 중심으로 한 장강하류지역 집거구, 심수, 광주를 중심으로 한 남방지역 집거구 등이다. 주청도 한국총령사관에 따르면 2008년말을 기준으로 산동지역에는 조선족인구가 18만명, 한국인이 11만명으로 이를 합하면 근 30만에 달한다. 이처럼 중국내에서 지역별로 비록 그 인구의 다소와 새로운 집거구형성시기의 시간적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새로운 조선족사회모양을 갖추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집거구의 형성에서 《신조선족》이라고 일컫는 한국인들의 대량 거주와 기타 국제적요소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것도 부인할수 없다. 그리하여 한국인들까지 포함한다면 실상 중국내에서 우리 민족의 인구는 대량 증가된것이다. 물론 미국발금융위기의 영향으로 하여 당면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중 돌아가고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은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필경 이는 잠시적현상, 향후 시대의 흐름과 발전변화와 더불어 상기 지역의 조선족사회가  기반이 더욱 넓어지고 토대가 든든해 질것은 의심할바 없다.혹자는 전통적집거구의 해체와 쇠약으로 하여 중국조선족사회가 해체되고 민족정체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우려에는 리해가 가지만 결코 너무 비관할것까지는 없는것이다. 이는 필경 전진도상의 필연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전통적인 집거구가 해체되거나 약화되고 새로운 집거구의 산생과 공고와 발전은 불가피적이다. 이런 추세와 흐름은 막자고 하여 막아지는것이 아니고 견결히 지키자고 하여 지켜지는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오직 력사의 흐름과 발전추세에 순응하면서 자기 변화를 통하여 자기 발전을 도모하여야 할것이다. 물론 소극적 응부나 될대로 되라지 하는식의 방관과 방임은 금물이다. 오직 적극적인 자세로 그 흐름을 파악하고 그 흐름에 탑승하여야 대해항행의 키를 단단히 잡고 주동권을 장악할수 있는것이다.혹자는 우리 민족이 《떠돌이민족》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르지만 결코 이것이 주류가 아니다. 우리 민족은 력래로 개척형의 민족, 창업형의 민족, 지식을 숭상하고 과학을 숭상하고 세계 제 민족의 행렬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그런 승벽심을 가진 민족이다. 주지하는바 중국조선족은 신주대지의 960만평방킬로메터의 땅떵어리는 물론이고 지구촌의 그 어느 곳이든 뿌리를 박고 간고한 창업을 하고 보람찬 성취를 이룩하였다. 우리 민족은 특히 개성이 강하고 역경에 처하면 더욱 강해지면서 그 어떤 역경도 이겨내는 그런 특수한 민족기질을 가지고있다. 그래서 그 어떤 력사적시기나 그 어떠한 환경에서나 전망이 밝고 희망이 찬연한것이다. 력사가 이미 이를 증명하였고 우리 민족의 위대한 실천이 앞으로도 이를 증명할것이다.(저자 장경률:연변일보 론설위원)
3    발굴하고 육성하자 댓글:  조회:3237  추천:58  2009-02-18
배초구의 상모춤, 밀강의 퉁소, 도문의 장고춤 등 우리 주의 문화브랜드가 여덟가지나 국가급문화재로 선정된후 갈수록 문화의 힘을 발휘하고있다. 한결 기분이 좋아지며 흥분된 마음을 종시 잠재울수 없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이런것들이야말로 진정 우리 고향땅에서 나서 자란 진짜배기 <<토종문화>>이니 말이다. 바로 우리 이 고장 인민들이 심고 유성해서 오늘날 세인이 알아주는 그런 간판브랜드로 세인을 매료하고있으니 말이다.물론 문화하향은 홀시할수 없다. 매번 명절이나 중대한 행사가 펼쳐질 때마다 도시의 문화단체가 극, 노래, 춤 등 예술종목을 가지고 하향한다. 따라서 도서가 하향하고 과학기술이 하향하고 의료위생도 하향하면서 잠든 시골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농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즐거움을 안겨주는 이런 문화하향은 말할것없이 중요하다. 그리고 환영을 받는다. 하건만 필경은 바람같이 나타났다가 바람같이 사라진다. 기쁨과 즐거움, 웃음과 환락은 일시적이고 그들이 돌아가면 시골마을은 또다시 정적이 깃들어 한적이기 그지없다. 그래서 농민들은 <<문화를 심어달라>>고 말한다. <<문화하향도 좋지만 그래도 문화를 심어주고 보급해주고 우리들이 자체로 놀고 즐기게 이끌어주는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호소한다.배초구의 상모춤이나 밀강의 퉁소가 물론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이고 대대로 전해온것이지만 그래도 장기간에 거쳐 시나 주의 문화단체에서 전문일군들을 내려보내여 전수하고 보급하고 시대에 맞춰 꾸준하게 차원을 높여간것과 갈라놓을수 없다. 그대로 자연발생적으로 놔두고 제절로 자라게 하여도 필경 그 어느때인가는 자랄것이지만 그래도 의식적인 육성이 없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브랜드는 상상도 할수 없었을것이다.  문화는 농민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 문화는 농촌사회의 모순도 해소한다. 하기에 조화사회구축에서 기본이기도 하다. 문화하향과 동시에 토종문화를 발굴하고 육성하여 브랜드로 만든다면 농민자체의 문화대오가 형성될것이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토종문화를 발굴하고 육성하자>>고 호소한다.론설위원
2    5월의 단상 (장경률3) 댓글:  조회:3460  추천:121  2007-04-21
5월의 단상장경률(연변일보사 문예부 주임)     세월이 흐르는것이 살같아 초봄이 금방 지난것같은데 어느덧 5월말이라 초여름에 잡아든다. 그래서 공자도 내가에 이르러 《흘어가는것이 이와같느니라》고 읊조렸을것이다.     들판에도 언덕에도 뭇꽃이 다투어 만개하면서 어여쁨을 자랑한다. 진달래가 방금 지자 살구꽃이 만발하며 붉게 웃던것이 어제같은데 그것도 잠간, 수줍게 살포시 새하얗게 미소짓던 배꽃도 분분히 자취를 감추었다. 백화가 다투어 피였다가 지고 사라지는 동시에 다른 뭇꽃들이 피여 그 자리를 메운다. 정녕 이것이야말로 대자연이 하사한 백화원이다. 욕설도 다툼도 질투도 없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질서있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때가 되면 지고 씨받이를 준비한다. 이처럼 9월국화가 만발하다가 된서리를 맞을 때까지 말이다.    백화가 만발하여야 백화원이라 할수 있다. 실상 이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통속적이고 간단한 명제이다. 헌데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혹자는 길가에, 언덕에, 밭뙈기에 그 누가 바랬던것도 아니건만 제몫을 하노라고 소리없이 피는 개나리나 차전자는 꽃이 아니라고 한다. 자기가 즐기는것은 얼굴이 환한 모란꽃이나 자태가 아름다운 월계화이기때문이다. 혹자는 짙은 향을 풍기는 브라질철주는 꽃나무가 아니라고 한다. 향은 아주 무서울 정도로 거세지만 꽃이 좁쌀처럼 보잘것없기때문이다. 혹자는 푸른 꽃은 없다고 단언한다. 잎이 푸른데 꽃잎, 꽃술도 푸른것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면서말이다. 그러나 도라지꽃도 푸르고 나팔꽃도 진붉은것, 새하얀것외에도 푸르디푸른것이 있어 천차만별하다. 자기가 모른다고 하여 엄연한 사실인데도 부정한다면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무어라 하든지 꽃은 꽃이고 뭇꽃이 만발하기에 백화원이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저마다 성질이 다르고 풍격이 다르고 애호가 다르다. 문학평론도 그러하다. 하기에 나름대로 작품을 선택하고 평론을 한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평가도 자유다. 하지만 남의 뜻은 존중해야 할것이다. 그렇잖고 오직 자기것만 한사코 주장한다면, 제만 옳고 남은 모두 틀린다고 한다면 이 세상은 너무나 허무해질것이다. 그런데 요즘 문단을 보면 정상적이고 건전한 비평이나 문풍보다도 무턱대고 상대를 부정하고드는 경향이 성행하여 심히 실망된다. 《그게 어디 소설이요.》, 《그게 어디 시요?》, 《코플레기들이 무얼 안다구.》, 《몽땅 쓰레기라니.》… 이런 식으로 상대를 형편없이 타매하고 유독 자기만이 정확하고 권위인것처럼 한다. 꼭마치 자기는 세상에 군림하자부터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고 평론가가 된것처럼 말이다. 《두꺼비가 올챙이때 일을 잊어서일가?》 나이가 어리거나 경력이 짧으면 이런 무단평론이나 무단평가를 받는 피해가 더욱 심하다.     《새싹》에게는 사랑과 배려가 언제나 필요하다. 잔잔한 비를 뿌려주고 산들바람으로 어루만져주고 따스한 햇볕으로 감싸안아주어야 어린 싹이 무럭무럭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것임은 십분 자명하다. 그래서 새로운것이 1%라도 보인다면 긍정을 주로 하면서 사랑을 99%로 몰붓자는것이다. 그러면 문학신인들의 생장환경이 훨씬 좋아질것이 아닌가! 사랑을 한답시고 삼복염천의 불볕을 퍼붓거나 강풍을 안긴다면 이는 사랑이라기보다 압살이라는것이 더 합당하다. 그렇잖아도 일정한 권위나 명성이나 경력을 소유한 분들이 어망간에 던진 말 한마디, 평론 한구절에 어린 새싹이 애티도 벗지 못하고 압살당할수 있다는것을 선배라면 항상 명기해야 할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못한것이 현실이다. 물론 훌륭하신 선배님, 스승님, 도사님들이 많은것도 사실, 결코 이를 부정하려는것은 아니다. 일부 저질평론, 저질비평이 나타나서 성스러운 문단을 흐리우는데 대한 반감에서이다. 혹자는 필자더러 《무엇을 안다고 발언이냐?》고 질책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방관자 청(旁觀者淸)》이란 격언도 있지 않는가. 그 무슨 편견도 기성관점도 없기에 감히 말한것이다.    《문학과예술》의 올해 2호에 윤윤진교수의 관점에 대한 장춘식선생의 반론과 그 반론에 대한 윤윤진교수의 반론, 그리고 김파시인의 《립체시론》에 대한 김관웅교수와 김파시인의 상호비평을 감명깊게 읽었다. 계발도 크다. 모든 비평과 평가가 이처럼 펼쳐진다면 무슨 우려가 있겠는가! <<문학과 예술>> 2006년 3호                                              
1    문화가 유린당한다 (장경률2) 댓글:  조회:3371  추천:145  2007-03-14
문화가 유린당한다장경률최근년간 신주의 960만평방킬로메터 땅덩어리우에서 각종 명목의 문화절이 등장하여 정신이 아찔하게 한다. 이를테면 공자문화절, 관공문화절 등 력사상의 명인들을 추모하는 그런 문화절이 있는가 하면 지어 가구문화절, 채권문화절, 두부문화절, 갓짠지문화절도 있다. 그리고 마루바닥문화절, 쌍둥이문화절도 등장한것 등 오가잡탕이다. 그리고 음식문화요, 소비문화요, 지어 변소문화요 하고 저마다 앞다투어 문화를 곁들여서 로신선생이 지난 세기 30년대에 신랄하게 비판한적 있는 그런 《문 두드리는 벽돌장》으로 전락시키고있다.  문화의 힘을 의식하고 형상수립이나 경제발전에서 문화의 거대한 역할을 발휘시키는데 취지를 둔 그런 관념, 그로부터 중시도가 높아가는것은 원래 좋은 일이다. 역시 일대 진보라 할수 있다. 지금 적지 않은 지방에서 흔히 《경제가 무대를 꾸미고 문화가 극을 논다》고 하면서 경제발전과 문화발전의 동반진보를 추구하고있는데 실로 제창할바이다. 하지만 경계할것은 바로 람용이다. 그리고 문화란 이 신성한 개념에 대한 오염이다. 문화란 이름을 내걸고 정당하지 못한 돈냄새만 풍긴다면 이는 문화에 대한 배반이고 유린이다. 진정 고상한 문화, 전통적인 건전한 문화의 전파와 그 역할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것이다. 그 역효과도 과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는 얘기다. 혹자는 무슨 일에나 문화만 내걸면 되는가고 오인하고있다. 그리고 《양대가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팔아도 돈만 벌면 된다》고 목청을 돋운다. 따라서 모종의 《문화만능론》이 대두하고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든지 새로운 품종이 배육되든지 그렇잖으면 새로운 식당을 개업하고 새로운 메뉴를 창출하고서는 문화로 포장하지 못하여 안달한다. 실상 문화용속화라 할수 있다.  우리 주변의 어느 진소재지에서 다년래 변소문제가 난제로 나서서 골치거리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기업인의 협찬을 받아 조금 괜찮은 변소 몇채를 지었다. 그러자 진의 책임자량반들이 실적을 자랑할 때마다 한다는 소리가 바로 《우리 진에서 변소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새로운 화장실문화가 자리잡게 되였다》고 도처에서 자랑을 늘여놓았다. 실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형국이였다. 변소를 지어서 변소난문제를 해결하였으면 그만이지 거기에 기어코 변소문화요, 화장실문화요 할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문화적인 함량을 높인다고 하여 맹탕 한다면 그것은 실상 문화에 대한 모욕이고 롱락이다. 《어떠한 사물도 적절한 장소에 놓일 때 아름답지 않은것이 없다. 그와 반대로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떠나면 아름다운것이 하나도 없다.》 프랑스의 저명한 농민화가 밀레가 이렇게 갈파하였다. 밀레의 이 명언은 문화와 예술의 원리로서 진리이다. 동시에 사회생활과 인생의 도리를 가르침하는 면에서도 진리이다. 우리 말에서 제때에 맞는것을 적시성(適時性)이라하고 제곳에 맞는것을 적소성(適所性)이라고 한다. 이는 어디에나 적용된다고 하겠다. 보라, 평소에 우리들이 식사시 밥상우에 사발마다 이밥이 수북이 담겨있을 때가 기분도 좋고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 인간의 배를 채워주고 생존을 유지시켜주는 쌀밥이라고 한들 입술이나 얼굴에 붙었다면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우리는 인간교제나 일상생활에서 말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잖고 시도때도 없이 지절거린다면 결코 아름답지 못할뿐만아니라 정신이상이 아닌가고 의심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미개한 장면을 접하였거나 약자가 모욕을 당하는 등 응당 말을 해야 하고 그것도 엄숙하게 큰소리로 웨쳐야 하는 현장에서 침묵하면서 꿀먹은 벙어리상을 한다면 이는 아름답지 못한것은 고사하고 아주 꼴불견이라 하겠다. 불의를 외면한다면 질책을 받아도 마땅하다. 말해야 하는데 침묵하고있으니 역겹기 그지없지 않은가.  우리 문화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색문화를 창출하고 고상한 문화를 고양하고 보급하면서 동시에 문화령역에서의 가짜와 모조품 그리고 폐품도 척결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정 문화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고 문화령역도 한결 정화될것이 아니겠는가! 문화가 유린당하고있다. 문화가 오염되고있다. 진정 문화가 문화답게 제자리에 모셔져야 그 품위가 올라가고 그 역할을 놀수 있다. 《갑산의 개 값》이라는 속담이 있다. 너나없이 부르는게 그 값이란 말이다. 너무 헐값이면 제구실을 못한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고상한 문화의 추구자이다. 그리고 고상한 문화로 세인을 감복시키기 위한 노력을 종래로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느때든지 그 어떤 상황이거나를 막론하고 용속한 문화는 영원한 척결대상이다. 《연변문학》2007년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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