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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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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리네 결혼방정식 댓글:  조회:4918  추천:0  2014-09-09
  올해에 들어서서 벌써 결혼식 참가만 여섯번째이다. 어쨌든 올해만 여섯번의 결혼식을 다녀오면서 결혼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이면”도 여섯번을 더 생각하게 되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생 딱 한번 가지게 되는 통과의례인 결혼식. 그만큼 누구에게나 특별하고 의미있는 시간이 되는것만은 분명하겠지만 나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바라본,인파로 북적이는 식장에서 가슴이 저며질 정도로 진한 감동과 감사로 그득한 결혼식을 보기가 참 드물다. 가까운 사람들의 결혼식에 뭘 입고 가야 할지 며칠을 고민하다가 고른 불편한 옷을 입고 겨우겨우 식장에 도착. 사회자의 떠들썩한 사회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지만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보전하고있다가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또 겨우겨우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는 식장을 빠져나오기가 일쑤였다. 귀한 시간을 내서 왔지만 방명록에 서명하자마자 바로 식장을 빠져나가는 이도 많다. 나 또한 가끔은 그 부류에 속할때가 있다. 흘끔 신랑 신부를 보고는 낯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식사를 하면서 앉아있기가 무엇해 그냥 살금살금 도망치듯 식장을 빠져 나간다. 두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에 진행되는 이 과정들이 내가 다녀온 여섯번의 결혼식에서 반복되였다. 그날 그 결혼식이 누구 결혼식이였더라, 헷갈리기까지 한다. 문득 천편일률적인 형식의 결혼식은 마치 매우 재미없는 연극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식의 장본인들은 이 결혼식을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했을가. 결혼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린 뺄건 다 빼고 꼭 필요한것만 했다고 이야기한다.그런데  뺄건 뭐고 꼭 필요한건 또 뭔지 잘 분간이 안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몇달이라는 시간과 엄청난 결혼비용이 필요한건지. 례물이며 혼수는 그렇다치고 식장에서 먹는 밥값에 놀라고 드레스 대여비에 놀라고 사진값에 놀라고 장식된 꽃값에 또 한번 놀란다. 혼인은 두사람의 약속이고 사랑의 결실이라지만 이것이 사회안에서 하나의 제도가 되면서 수학문제를 풀듯 똑같은 방정식에 대입된다. 그 당연한 방정식들은 결혼식에 드는 비용으로 산출되여 량가의 어깨를 무겁게 지지누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요즘은 작은 결혼식, 두사람만의 특별한 결혼식도 심심치않게 모습을 드러낸다. 혼인신고를 마치고 나온 걸음에 두사람만의 세리머니로 결혼식을 대체하거나 지인들과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는 이들도 많다. 어릴때 엄마 손잡고 따라갔던 막내 삼촌의 결혼식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촌스러운 흑백사진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진지하고 경건하게 결혼식을 지켜봐 주었던 하객들과 지금처럼 화려한 음식은 아니지만 뜨끈한 국물에 오가는 목 따가운 술 한잔으로 기쁜 마음을 나누었던 밥상우의 경치가 왠지 모르게 그리워진다. 연변일보 2014-9-9
12    마음이 고프지 않는 세상 원한다 댓글:  조회:2150  추천:1  2014-08-26
  시골집 터밭에 심은 옥수수가 가뭄에도 오동통 살이 잘 올랐다. 옥수수가 잘 달리는 이맘때 여름이면 온 집구가 마루에 앉아 삶은 옥수수를 먹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 밖에서 실컷 놀다 해가 져 집으로 달려가면 어머니가 집앞 땅가마에 한가득 삶은 옥수수가 노오랗게 익어갔다. 여름철이면 거의 매일이다싶이 먹던 옥수수를 나는 아주 싫어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한다. “예전에 보리밥을 많이 먹은 사람은 보리밥이 싫고 국수를 많이 먹은 사람은 국수가 싫어 어른이 되여서도 별로 즐기지 않지” 먹거리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은 때였으니 감자나 옥수수를 삶아 간식거리로 때우는 살림이였다. 하지만 그때가 더 사람 사는것 같았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오는 사람 막지 않고 남의 집에 불쑥 들어가도 흉이 아니였다. 집집마다 다 먹는 옥수수도 사람이 찾아오면 꼭 쥐여주며 먹여보냈지 그냥 보내는 일이 없었다. 지금은 먹을게 넘쳐나 너무 먹어서 맹꽁이배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또 될수 있으면 안 먹는 련습을 하면서 살을 빼느라 고생이다. 이 넘치는 풍요속에 인심은 가난해져만 간다. 이웃과의 문제만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의지하는것도 마음 붙일데가 없어서이다. 부모들은 돈 버느라 아이들과 눈 맞추고 놀아줄새가 없고 친구들은 방과후 끝나면 각기 다른 학원에 가느라 놀새가 없고 집에 가면 형제가 없어 놀아줄 사람이 없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마음을 뺏기지 않을수 없다. 예전엔 학교 갔다 오거나 밖에서 놀다 돌아가면 엄마가 계셨다. 엄마가 기다리고 계신다는것은 큰 위안이였다. 엄마가 계시지않으면 집안이 텅빈것 같아 온 동네를 찾아 다녔다. 요즘은 엄마도 바쁘다. 그러니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엄마삼아 놀게 된다. 엄마를 대신하는것들은 시간이 갈수록 발달하는데 그 문명속에서 인간은 점점 소외되여가고있다. 이제 여름방학도 지나갔다. 아이들은 방학동안 몸도 마음도 훌쩍 자란다. 윤이 반지르르 흐르는 옥수수 하나를 먹으며 배부른 세상에서 아이들이 마음이 고프지 않도록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그런 방학이였기를 기대한다. 연변일보 2014-8-26  
11    대학시절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댓글:  조회:2061  추천:2  2014-08-19
  대학시절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금 깨여져 금이 가고 오래된 못생긴 물항아리 하나가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주인은 깨여진 물항아리를 버리지 않고 온전한 물항아리와 똑같이 아끼며 사용했단다. 어느날 너무 미안하다고 느낀 깨여진 항아리는 주인께 물었다. “어찌하여 저를 버리고 새로운 온전한 항아리를 구하지 않으시나요? 저는 별로 사용가치가 없는 물건인데요” 주인은 그의 물음에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얘야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아라”라고 조용하게 말했다. 그제야 물항아리는 그들이 늘 물을 길어 집으로 걸어오던 길을 보았다. 길가에는 예쁜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듯 싱싱하게 피여있었다. “메마른 산 길가에서 너의 깨여진 틈으로 새여 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버릴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했던 로자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일화였다. 부끄럽지만 그때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 이야기의 숨은 뜻을 이제서야 어렴풋이 리해하게 됐다. 무엇이든 다 자기 자리가 있고 자기가 할 역할이 있다는, 언뜻 보기에는 무용지물로 보이더라도 말이다. 항아리 주인에게는 비록 물을 담아 놓을수도 없는 실용성 없는 깨여진 항아리더라도 그 존재자체의 가치가 무한하게 느껴지는 귀한 항아리였을것이다. 문득 얼키고 설킨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것만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경향이 큰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례를 들어 우리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거나 친해지고 싶을 때 그 사람의 외적가치만 저울질하는 경향이 있지는 않은지, 그 사람은 권력이 커서, 그 사람은 돈이 많으니까, 그 사람은 학력이 대단해, 그 사람은…, 그 사람은… 이러한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도움 안되는듯 필요하지 않은 사람취급을 하고있는건 아닌지? 너도나도 리해관계로 얽혀있어 시시비비를 가리기에만 바쁜 세월에 편견속에 가려져 서로의 참다운 의미를 멋대로 흘려버린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깨여진 항아리 틈으로 새여나온 물을 먹고 메마른 산 길가에 꽃들이 예쁘게 피듯이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연변일보 8월 19일자
10    따뜻하게 보듬는 진정한 친절을 원한다 댓글:  조회:1810  추천:0  2014-08-13
  얼마전에 양력 생일이 지나갔다. 신분증에 기록된 생일이라 카드를 사용한 곳에서 적지 않게 생일축하메시지가 날아왔다. 고마운 일이다. 나도 모른체하는 양력 생일을 기억해 축하까지 해주니 황송할수 밖에. 그것도 대형백화점에서, 집앞 미장원에서, 어느날 우연히 길을 걷다가 들린 옷가게에서도 축하메시지가 날아왔다. 우리가 얼마나 친절한 사회속에 행복을 누리고있는지 나는 감사해야 했다. 물건을 산 인연으로 그 사람의 생일을 잊지 않고 축하메시지를 보내는것은 어쩌면 아름다운 상거래의 례의인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왜 아주 무심히,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귀찮은듯 삭제했다. 한편 내 리기적행위의 귀찮은듯한 짜증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졌다. 문득 우리는 지금 과다한 친절속에 던져져있는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걱정하고 우리를 위해 로심초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가? 아침 신문을 펴면 줄줄이 달려오는 광고지들은 우리에게 어디로 오면 무엇을 먹을수 있다는 친절한 정보로, 어디로 오면 무엇을 얼마나 싸게 살수 있다는 정보로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대출도 얼마든지 해주겠다는 친절한 사회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욱 외롭다고 아우성이다. 아마 친절은 쓸모없는 곳에서 범람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닫힌채 꽁꽁 얼어있어 그런건 아닐가? 정작 친절을 베풀고 소통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닫고 의심하고 가까이하기를 꺼리는듯하다. 다니고있는 직장건물밖 한쪽 구석은 늘 석탄가루를 발라놓은듯 때와 흙먼지로 범벅이된 큼직한 발바닥의 로숙자가 차지하고있다. 덥수룩한 머리에 넝마를 두른 사내가 몸을 움츠리고 옆으로 누워있다. 미동도 하지 않는걸로 보아 깊은 잠에 빠진듯한 그 사내의 옆을 하루에도 수백명의 사람이 코를 막고 송충을 보듯 슬슬 피해다닌다. 나날이 진화하는 과잉친절의 울화에 습관되여가는 우리는 그 과정에서 우리들에게 반드시 살아있어야 하는 진정한 친절의 의미, 인간적배려를 잃어가고있다고 감히 말하고싶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웃도 제대로 없는 아빠트생활에서, 직장에서, 잦은 모임에서 정말 우리가 얼마나 사람과 소통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있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 많다. 오늘날의 과다한 친절속에서 진정한 친절의 의미를 잃어가는 사람들은 고립된 외로움에 부대끼고있다. 이제 우리는 쏟아져 들어오는 공허하고 필요하지 않은 친절이 아니라 랭랭한 사회를 따뜻하게 보듬는 진정한 친절을 원한다. 연변일보 2014-08-12
9    불편도 즐길수 있는 “여유” 댓글:  조회:3105  추천:0  2014-08-06
요즘은 밥을 지을 때 쌀에 돌이 들어있다고 돌을 골라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소비자의 손에 쥐여진 쌀은 이미 깨끗하게 정제돼 물을 부어 밥솥에 안치기만 하면 된다. 밥을 먹다가 우두둑 돌을 씹는 일도 거의 없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가을에 거둬들인 벼를 마른 논바닥에서 말리고 집집마다 흙마당에서 탈곡하는 과정에 모래흙이 섞여들어가기때문에 쌀을 꼭 박박 일어서 앉쳤댔다. 그렇지 않으면 밥을 먹다가 돌을 씹어 먹던 밥을 뱉어내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쌀이 든 바가지에 몇번이나 물을 붓고 잘 흔들어 맨 아래쪽에 모이는 잔잔한 돌부스러기를 골라내였다. 그렇게 어머니가 정성들여 쌀을 일어도 밥을 먹다보면 돌을 씹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도 우리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형마트에 가서 잘 포장된 쌀을 사와 밥은 안쳤는데 어쩌다 우연히 한번 돌이 씹히면 웬지 노발대발하며 불편을 털어놓는다. 불현듯 우리가 얼마나 불편에 취약해져있는 나약한 존재로 전락되였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참으로 편리해질대로 편리해진 세상에서 살고있다는것이다. 집 거실 소파에 앉아 홈쇼핑으로 물건을 사거나 지도대신 네비게이션(导航系统)이 길을 가르쳐주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휴대전화와 이메일로 더욱 빠르고 쉽게 련락을 취할수 있다. 발달된 인터넷 환경, 편리한 교통수단, 풍족한 먹거리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이토록 편리해졌는데 우리의 삶은 어떨가? 혹시 인터넷이 조금만 버벅거려도, 운전중에 다른 차가 앞으로 끼여들기만 해도 울화가 치밀거나 짜증이 나지 않는가? 게다가 넘치는 세상에서 살면서도 현대인들은 즉각적으로 불편을 해결하지 못하면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을 느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항우울제, 수면제와 같은 약물에 의존하는가 하면 인간관계에서 장애를 겪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래서 미래 최고의 직업중 하나로 심리의사를 꼽을 정도라니 편안함이 넘쳐나는 사회덕분에 우리는 불편에 대한 내성이 점점 떨어지고 불편을 인내하는 능력도 급속히 낮아지고있는 현실이다. 유명한 작가 마크 쉔은 “불편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것이야말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생존력”이라고 말한다. 또 앞으로 마주치게 될 불편을 즐길수만 있다면 오히려 강인함과 회복탄력성의 원천이 될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자그마한 불편도 즐길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것이고 또 그 “여유”를 감내하는 법도 습득해야 할것이다. 연변일보 2014년 8월 6일  
8    필요한건 나눔에 동참하는 용기 댓글:  조회:1582  추천:2  2014-07-22
얼마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몇장의 사진이 있었다. 실업자들의 면접을 위해 무료로 드라이클리닝(干洗) 서비스를 해주는 세탁소, 이름 모를 소녀에게 기꺼이 신발을 벗어주는 할아버지, 경기중 부상당한 경쟁선수를 부축해 끝까지 달린 선수. 한장의 사진이 주는 따스함은 백마디 말이 필요 없었다. 아름다운 선행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사진속 주인공들에게 “그때 왜 그랬어요?”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그냥 그래야 할것 같았어요. 리유는 없어요”라고 대답할것 같다... 물론 나 자신만의 생각이다만 그들에게 분명 리유 따윈 없었을것이다. 뜨겁진 않아도 뭉클한 사랑의 표현, 바로 그것이 아니였을가? 나눔이 사랑이라는것은 지극히 상투적 정의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쉬울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표현이 또한 사랑이기에 그래서 나눔도 쉬운듯 다가가기 어려운것이 아닐가 싶다. 지난해 세계 자선구호재단과 여론조사기관이 함께 조사한 세계기부지수에 따르면 중국은 153개국중 147위에 머물렀다. 우리의 나눔문화는 아직까지 걸음마 수준인거다. 기부금액도 2년 련속 하락해 GDP의 0.3%밖에 안된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일시적 행동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그 원인을 말하고있다. 더구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 한다는 생각도 뿌리깊게 자리잡고있다는 점도 무시할수 없다. 그러면 선진국들의 기부문화는 어떨가? 세계기부지수 1위에 오른 오스트랄리아의 경우, 나눔이 특별하지 않은 아주 일상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지고있다고 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천사가 되고싶었던 열망을 가졌던 기억이 있을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나눔에 동참하는 용기인것 같다. 주저하지 말고 나눔의 행위에 동참하면 어떨가. 우리들의 작은 기부, 나눔의 행위는 사회복지를 변화시킬수 있는 첫걸음이 될수도 있으니깐. 연변일보 2014-7-22
7    “시골 인심” 담긴 바가지 댓글:  조회:1521  추천:2  2014-07-09
  연변병원 바로 옆에 새로 들어선 유명 커피전문점 화장실에 들렸다가 무척 당황했다. “우리 가게 오늘 날자 커피 령수증이 있으세요?” 령수증이 커피를 사먹는 손님에게만 화장실 리용을 허락하겠다는 일종의 잠금장치로 되여있다. 외부인들이 구토를 해놓는 등 지저분하게 사용해 청소비가 많이 나와 부득불 막기로 했단다. “장사하는 곳에서 인심 한번 야박하네.” 짧은 그 순간, 요즘 트렌드에 맞게 호화롭게 장식된 가게 인테리어에 한번 놀랐고 값비싼 명품으로 꽃단장을 한 사장님의 야박한 인심에 또 한번 놀랐다. “요즘 세월은 눈 뜨고있어도 코 베가는데…”라던 선배의 말이 스쳐간다. 무엇하나 만만한게 없는 세월에 씁쓸함이 밀려온다. 문득 두고 온 고향마을에서 이웃끼리 잔잔하게 나누던 정이 그리워진다. “복숭아네. 맛 좀 보세. 아주 달콤하니 맛있다네.” 이웃집 아주머니가 산나물을 장에 나가 팔아 사온 복숭아를 한 바가지에 듬뿍 담아왔다. 빈 그릇을 돌려주기 미안했던 어머니는 급하게 터밭에서 오이를 따다 뚝딱 시원한 랭국을 해서 보낸다. 바가지 하나에 넉넉한 정이 오고가던 시골인심이다. 딱딱하게 죽어있는 콩크리트속에 갇혀사는 현대 도시인들의 인심과 시골사람들의 인심이 다른것은 어쩌면 당연한것일수도 있다. 산업화와 정보화로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생활수준은 나아졌지만 사람들은 오고가는 이웃정을 잃어가고있는듯 하다. 옆집 사람과 안면을 익히고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어본적 있는가? 예상컨데 많은 사람들은 옆집에 누가 살고있는지도 모를것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오는 딱딱한 도시의 삶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것일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고개를 돌리면 누릴수 있는 이웃간의 정을 각자가 바쁘다고, 각자 할일이 많다는 명목하에 밀어낸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잃어가고있는 “시골인심”, 다시 찾아올수 있을가? 연변일보 2014- 7-8  
6    추억의 빨래터 댓글:  조회:1916  추천:5  2014-07-02
  빨래터, 세탁기가 귀하디 귀했던 시절 동네 개울가에는 방치 하나만 들고 빨래하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며 빨래를 하군 했다. 시골마을이면 의례 한두곳쯤은 꼭 있었던 빨래터는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입담과 방치질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세상 소식과 정보를 공유했던 사랑방이였다. 따라나온 아이들은 엄마들의 시름을 모른채 연신 물장난하기 일쑤였다. 자연과 사람이 적당히 어우러져 나눠 쓰며 함께 공존하던 아름다운 시절이였다. 그랬던 빨래터가 지금은 집집마다 상수도 시설이 놓이고 세탁기를 들여놓으면서 하나둘 추억속으로 사라졌다. 동네 살림살이를 속속이 꿰고있는 곳이며 들일을 마치고 땀에 젖은 옷을 빨면서 하루의 고단함도 함께 헹궈내던 빨래터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일부 마을에 남아있는 빨래터도 대부분 세멘트로 주위를 단장해 옛 정취를 찾아볼수 없다. 현대식으로 수리됐지만 찾는이의 발길이 뚝 끊겼다. 100가구 넘게 살던 마을이 30여가구로 줄면서 로인들만 남다보니 빨래감을 이고 빨래터에 나오는것도 힘에 부쳐 집안에서 세탁기를 돌려 해결한단다. 지금은 단추 몇번만 누르면 “빨래 끝”인 시대에 우리가 살고있다. 살균에다 건조기능까지 빨래를 널지 않고도 바로 꺼내 입을수 있게 된 요즘 우리는 온갖 “호사”를 다 누리고 사는셈이다. 그러나 그 어렵고 불편하던 때가 그리워지는것은 어인 까닭일가? 엄마와 나란히 빨래터에 앉아 빨래하던 시절이 몹시도 그립다. 격이 없이 얘기를 나누다보면 모두가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는 여가의 장소였던 빨래터는 아이들에게도 더없는 놀이터가 되였었다. 나물을 씻고 기저귀를 빨아도 누구하나 탓하는이 없이 세상만사를 토론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옹기종기 모여 이웃간의 정을 나누던 곳이였다. 소박한 뒤담화에 큰 웃음이 서렸던 옛날의 빨래터가 진정 그리운것은 개인화의 물결이 시골에도 엄습한 이 시대의 고독함때문이 아닐가?! 연변일보 7월 1일자  
5    새벽을 알리던 두부장수 댓글:  조회:1786  추천:3  2014-06-11
  새벽을 알리는 소리들이 많이 달려졌다. 옛날 시골에서는 수탉이 목에 힘을 주고 새벽이 왔음을 제일 먼저 알렸고 도회지에서는 두부장수의 “두부 삽소”하는 사구려 소리가 새벽을 알리는데 한몫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부장수의 사구려소리가 도통 들리질 않는다. 하긴 먹거리가 별로 없어 두부 한모면 아침 한때를 뚝딱 해결했던 예전과는 달리 눈과 입맛을 즐겁게 하는 먹거리천지인 요즘엔 별 모양새 없는 두부에 눈길이 가지 않나보다. 더구나 슈퍼에 나가면 인스턴트 밥에 두부도 종류별로 가격별로 크기별로 입맛대로 얼마든지 고를수 있고 전화 한통이면 국과 밥, 반찬에 과일까지 배달해주는데 누가 바쁜 새벽 시간을 쪼개 두부장수의 두부를 살가?! 게다가 이제는 콩만 씻어 안쳐놓으면 기계가 알아서 따끈따끈한 두부를 만들어준다. 두부장수도 그 첨단기기계에 밀려났다. 꼭두새벽부터 몇시간을 고생해야 겨우 두부 한판을 만들수 있었으니 이제 두부장수의 손두부는 시장경쟁에서 밀려난거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 두부장수들도 재빠르게 직업을 바꿨나보다. 하지만 아무리 발빠르게 변하는 요지경같은 세상일지라도 어느 순간 오래 묵은 추억들이 더 빛나게 다가오는 때도 있다. 그 시절 두부장수 아저씨는 이른 아침이면 어김없이 두부를 가득 담은 큼직한 사각판을 삼륜차에 싣고 골목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는 다 팔릴때까지 쩌렁쩌렁 목이 쉬도록 “두부 삽소”를 웨쳐댔다. 그때 그 두부장수의 쏘프라노 목소리가 하도 독특해 지금도 귀에 선하다. 두부장수가 나타나면 골목길은 아침 찬거리를 준비하려는 아주머니들로 북적거렸다. 간혹 아빠트에서 내려오기를 꺼리는 “게으름뱅이” 주부들은 창문을 통해 바줄로 단단히 묶은 그릇을 두부장수에게 내려보내군 했다. 가끔가다 기분이 좋은 날이면 두부장수는 덤으로 콩비지를 한바가지 푹 떠 주기도 한다. 그럴때면 주부들의 입은 귀에 가 걸려 좋아 어쩔줄을 몰랐다. 두부 한모에 두부장수도 동네 주부들도 즐겁기만 하던 때였다. 평생 두부를 팔아 번돈으로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던 두부장수, 이제 두부장수와 우리에게 그 시절의 작은 일상들은 되돌릴수 없는 먼 옛날의 아스라한 추억이 되고말았다. 우리의 곁을 그저 그렇게… 흐르는 물처럼 스쳐지나간 두부장수는 지금쯤 뭘하며 어떻게 살고있을가 연변일보  6월 10일자 .
4    단오의미 색바래져간다 댓글:  조회:3200  추천:3  2014-06-04
  1일, 평소 조용했던 연길공원이 하루종일 붐볐다. 6.1절을 맞아 공원에 가겠다 떼쓰는 12살 조카덕분에 모처럼 할머니, 삼촌, 고모 모두가 모여 즐거운 하루를 보낼수 있었다. 문제는 이튿날이였다. 6월 2일은 단오(음력 5월 5일)절이였다. 단오절을 맞아 곳곳에서 행사가 있다길래 조카녀석을 다그쳤더니 핸드폰게임에 빠져 심드렁하니 별 관심없다는 눈치다. 그리고 한마디 내뱉는다. “6.1절을 잘 보냈으면 됐어요. 단오에 관심없어요” 6.1절날 신나서 뛰놀던 조카의 모습은 오간데 없다. 민족풍속과 관련된 추억을 갖고있는 세대층이 점점 엷어지면서 단오 같은 명절이 이젠 요즘 청소년들의 정서에는 맞지 않나보다. 하긴 매년 이맘때쯤이면 치러지는 단오축제라야 몇몇 사회단체들의 소규모 행사말고는 번듯한 행사를 찾아보기 힘드니 점점 색바래져갈수밖에… 지금이야 단오는 점점 잊혀져 가는 우리 조상들의 명절이라지만 예전에는 설날 못지 않게 기다려지는 하루였다. 소설 “춘향전”에서 성춘향과 리몽룡의 사랑의 배경을 바로 이 단오절로 삼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때 그 시절에 단오는 모두들 봄내 피곤한 몸을 풀고 하루를 쉬면서 즐기는 날이였다. 녀자들은 봄내 일하느라 입지 못했던 빨간치마 노랑저고리로 예쁘게 치장하고 신나게 그네를 뛰였고 남자들은 강변 모래밭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둘러앉아 씨름판을 벌려놓고 힘을 겨뤘다. 하지만 복잡하고 메마른 도시생활을 하는 동안 이런 명절의 즐거움은 아득히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그때보다 먹고 입을것이 참으로 넉넉해진건 확실하지만 쑥떡을 이웃에 돌리는 멋과 인정은 오히려 적어진듯한 느낌이다. 6.1절을 보내는 사람들로 복새통을 이뤘던 도시가 단오날에는 눈에 띄게 한적해졌다. 단오날 파란 쑥떡에 노란 콩고물을 묻혀 먹으며 그네뛰기나 씨름경기를 구경가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연변일보 6월 4일자   .
3    헌책방은 그자리에 있을가… 댓글:  조회:1692  추천:1  2014-05-27
  2년전 이맘쯤 연변대학 부근 후미진 골목의 헌책방을 취재한적이 있었다. 바로 옆 꽤나 큰 서점이 문 닫은지 며칠 되지 않은 때였고 몇몇 헌책방도 “임대”종이만 써붙여 괜히 울적한 터였다. “다른데 가서 알아봐요. 약 올리지 말고.”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장사도 안되는데 찾아와서 꼬치꼬치 캐물으니 진상손님보다 더 했으리라. 헌책방은 졸업생들이 팔고 간 교과서와 참고서로 가득 찼다. 그냥 헌책방이 아니라 헌 교과서 책방이라 해도 무색할 정도였다. 오후 5시쯤 되자 학생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그중 한 학생에게 말을 붙여봤다. “팔러 오기만 하고 책 사볼려고는 오지 않죠” … 문득 모두가 살기 어려웠던 시절, 퀴퀴한 냄새의 오래된 책이 쌓여있던 헌책방이 그리워진다. 필자가 중학교를 다닐적만 해도 헌책방이 동네마다 하나, 둘씩 있었다. 곰팡이 냄새 폴폴 풍기는 교과서와 위인전, 만화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그곳은 진정 보물창고였다. 호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이 제목을 말하면 산더미속에서 주인 아저씨는 귀신같이 책을 쏙쏙 뽑아주었고 때로는 집의 책을 가져다 용돈을 마련할수 있는 귀중한 장소였다. 다른 이의 생각을 엿볼수 있는 책속의 메모흔적을 볼수 있는것도 헌책을 사보는 묘미였다. 운이 좋은 날은 헌책을 사고 그 책갈피에 누군가가 숨겨놓은 용돈이라도 발견하면 이루 말할수 없는 기쁨까지 안겨주던 헌책방이였다. 이제 우리가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IT산업의 성장으로 책은 점점 멀어져 가고있다. 심지어 도서관에서도 책을 보고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의 모두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보고있다. 디지털이 세상을 바꿔 놓았다. 진화라면 진화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도 아날로그가 그리운건 어쩔수가 없다. 굳이 손가락에 침을 묻히면서 책장을 넘기려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리유이다. IT가 만든 스마트한 신세계말고 조금은 덜 똑똑해도 되니깐 좀 더 인간적이고 정겨운 세상을 추억하고 싶기때문이다. 퇴근하면 2년전 그 뒤골목 책방에 찾아가보련다. “오늘, 래일이다. 얼마나 더 버틸지 장담못한다”던 그 주인장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있을가? 연변일보
2    “어머니의 날”이 기다려지는 리유 댓글:  조회:1660  추천:3  2014-05-08
5월의 둘째주 일요일은 “어머니의 날”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어머니의 날”은 미국의 안나 자비스가 그녀의 어머니 사후 2년이 지난 해인 1907년에 어머니를 추모한것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날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지구상의 대부분 국가에서 “어머니의 날”을 중요한 기념일로 지키고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진 몰라도 이젠 5월의 둘째주 일요일은 우리한테도 중요한 날로 자리잡았다. 누군가 어머니의 은혜는 하늘과도 같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바쁜 일상에 쫓겨 살다보면 하늘같은 어머니 은혜를 깜박할때가 많다... "어머니 날"은 그래서 우리에게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하는 날이 아닌가 싶다. 신록이 눈부신 5월에 성큼 다가서니 내심 “어머니의 날”이 기다려진다. 문득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싶어진다.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이국타향에서 전화통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 잘 있냐? 요즘 날씨가 차다. 따땃허게 입고 댕기라” 언제나 똑같은 당부의 말씀이다. 당신은 무조건 잘 있단다. 따뜻하게 잘 보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입버릇처럼 하는 분이다. 늘 미안하고 늘 고마운,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깊은 의미를 뼈속 깊이 느끼게 해준 이름-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늘 입고 싶은것, 드시고 싶은것을 꾹 참고 사셨을것이다. 되돌아보면 어쩜 어머니의 인생에서 정작 당신 자신은 없었다. 사실 이땅의 모든 어머니는 다 똑같을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것을 아낌없이 내놓을실 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다. 그런 어머니들의 희생 덕분에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만큼 발전한거라면 지나친 생각일가? “어머니의 날”에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꽃인 카네이션을 사다 어머니께 드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어머니를 저 세상에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이날은 그리움에 사무치는 날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잘 알면서도 늘 그 기대에 모자랐던 자신을 뒤돌아보며 미안함과 후회, 고마음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먹고 사는게 바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한마디도 전해 드린적 없었던 슬픔이 뒤늦게 차올라 가슴 절절해질 때가 많을것이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부르는 노래가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노래라지 않는가... 끝도 없는 내리사랑에 우리는 언제까지 감격만 할것인가. 그리움에 애끓는 가족의 달 5월이다. 지금 어머니가 곁에 계실때 할수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전해드려보자. 연변일보 5월 6일자  
1    안녕, 엄마의 밥상 댓글:  조회:2995  추천:2  2014-05-08
“가족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오붓이 저녁식사를 한지가 언제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저마다 야근이다, 회식이다 하면서 가족과 마주앉아 식사를 한지 오래다. 땅거미 지는 저녁, 고향 시골집에서 어머니가 차려주던 둥근 밥상이 그립다. 왁자지껄 하루일을 이야기로 주고받고 서로 음식을 권하며 먹었던 저녁밥상. 부지깽이도 일을 거든다는 농사철이면 어머니는 입쌀에 감자를 섞어 앉히고 저녁밥을 지었다. 일하고 돌아온 어른들을 위한 밥상, 시원한 오이랭국에 터밭에서 따온 싱싱한 채소가 전부였다. 둥근 밥상앞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서로의 얼굴을 반찬으로 삼았던 시절은 성찬이 아니여도 밥맛은 꿀맛이였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숭늉물로 입가심을 마친 할아버지가 조무래기들을 노란바탕에 원앙새 한쌍이 수놓아진 둥근 밥상으로 부른다. “어험, 내 가방끈은 짧아도 한마디 해야겠다…” 부모에게 효도해야 되느니, 어려서부터 사람은 성실해야 되느니… 할아버지의 밥상머리교육은 하루도 빠짐없었다. 그렇게 그 시절 밥상은 살아있는 인성교육을 실천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그 시절 그 밥상은 어느 고물장수에게 팔려가 다른 몸으로 둔갑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밥상은 어떨가? 대가족 개념은 사라지고 자녀 한둘을 두거나 1인 가족도 많아졌다. 게다가 요즘 많은 엄마들은 10년후의 아이들 장래만 생각하는것같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미술을 배우는게 우선이라 밥상에 앉을 시간이 거의 없다.집밥을 먹더라도 바쁜 사람이 각자 먹는것이 당연하고 오래간만에 가족이 함께 한 밥상에도서도 아이들은 부모의 이야기를 잔소리로 받아들이거나 스마트폰에 빠져있다. 가족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밥상은 가정의 심장이라 말하고 싶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해법을 함께 찾는 공간, 밥상머리는 인성교육의 산실이 아닐가? 밥상에 도란도란 모여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재조명해볼 필요를 느낀다. 물 말아 한술 뜨는 소소한 밥상이라도 둘러앉아 함께 먹는 노력을 그칠수 없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것이 빠르고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방향없이 무언가에 쫓겨 허둥지둥하는 삶이 아니라 잠깐 모든것을 내려 놓고 생각하고 기다리는 여유, 느긋함, 배려, 겸손, 공감 등 종종 잊고 살지만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가치들을 보물찾기하듯 밥상우에 풀어봄이 어떨가? 연변일보 2014.3.4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음이미지가 보여집니다.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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