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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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콤플렉스
2007년 11월 22일 22시 55분  조회:4947  추천:83  작성자: 우상렬

군인콤플렉스

우상렬


나는 어릴 때  커서 무엇이 될 래? 장가갈래, 군대갈래 하면 나는 두말할 것 없이 대뜸 군대갈래 했다. 군인이 되고픈 것이 나의 꿈이었으리라! 그때마다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셨다. 내 위에 형 하나가 장가갈래 했다가 아버지한테 혼쭐검을 당한 적이 있다. 우리 아버지는 사내자식은 그래도 군대에 가야지하는 파다. 당신께서 군인이 못 되고 한 평생 농사꾼이 되신 것을 한 평생 후회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쩍 하면 한다는 얘기가 내가 군대에 갔으면 요꼴이 아니겠는데... 내가 동생들을 돌보느라 그만하는 식이다.

군대에 가고픈, 군인이 되고픈 소년영웅꿈은 우리 사내아이들에게 한 번쯤은 움찍했던 원초적인 욕망. 나도 여기에 놀아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정색을 해서 군대에 가겠다, 군인이 되겠다하면 사람들은 머리를 끄덕끄덕이며 그럴듯해 했다. 워낙 우악지다 못해 우둔하게 생긴 나의 생김샘김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소년영웅꿈을 지금 아이들처럼 그렇게 호사스럽고 세련되게 키우거나 발산하지 못했다. 척 군모, 군복에 놀이감 권총을 차고 놀이감 돌격총을 쫘 갈기고... 그러면 어른들은 으악~으악~ 죽는 흉내를 내어주는 그런  거는 나하고 멀었다. 나는 거저 나 또래들하고 쥐어박고 나 딩굴고 지랄발광을 피우는 짓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장난을 친다는 것이 가벼운 것이 눈싸움이고 보통은 진흙덩이를 뜯어 서로 때리며 싸움질하기고 말타기에 한쪽 다리를 손으로 들어 올린 채 서로 박아치기를 잘 했다. 실제로 싸움도 많이 했다. 주먹으로 쥐어박기, 돌팔매치기, 單打에 무리싸움... 그래서 ‘싸움대장’이라는 이름도 땄다. 그때 해방군아저씨가 얼마나 부러운지 몰랐다. 다른 집에서는 형들이 척척 군대에도 잘 가는데 우리 집에서는 왜 하나도 못 가지, 나는 형들이 미워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리 넷째 형님이 정치심사요, 뭐요 하는 고비, 고비를 겨우 넘겨 내일 모레 군복을 입게 되었다. 그때 날 것 같은 기분. 그런데 우리 큰 외삼촌문제가 들컥 불거져 나오며 일락천장이 되고 말았다. 우리 외삼촌은 술을 좀 좋아하고 풍악을 잡고 놀기 좋아했다. 그리고 신수니 뭐언지 해가지고 남의 사주팔자를 잘 봐주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우파반쪽인지 무언가 되어 있은 거 같다. 여하튼 큰 외삼촌의 문제는 넷째 형님의 인민해방군꿈에 결정타를 가했다. 그때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인민해방군이 값있을 때라 처녀동지들이 줄을 설 때다. 그때 넷째 형님이 군대라도 갔으면 일거양득 하겠거늘, 참 운이 따라 주지 않는다고 할밖에. 모두들 형님을 그렇게 위로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원래부터 큰 외삼촌을 곱게 보지 않던 터에 넷째 형님 일로 하여 개 닭 보듯 하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그때 넷째 형님 못 지 않게 나도 기분이 대단히 잡쳤다. 꼭 마치 나의 인민해방군꿈이 깨어진 듯 했다.

나는 소학교에 다닐 때 어쩌구려 홍소병團長이 되어서 양쪽에 호위병 되는 듯 두 여자애들을 끼고 제일 앞에서 깃발을 들고 학생대오를 이끌고 앞으로 걸어 나간 것이 무엇보다 신났다. 나는 그때 동존서, 황계광, 구소운 등 영웅들이 얼마나 멋져 보이고 대단해 보였는지 몰랐다. 내가 그렇게 못 죽는 것이 안타까워 나기도 했다. 나는 꿈에 ‘전 중국의 해방을 위하여, 동지들 전진...’ 꽝하고 몇 번 죽어보기도 했다. 나는 학교에 갔다 오며 ‘동존서’ 영화를 하루에 두 번 보기도 했다. 

초중 2학년 때인가 학생들을 민병편제인지 무언지로 짜면서 민병連長이 되어 구령 한 번 크게 불러본 것이 그렇게 좋을 리가 없었다. 천군만마를 호령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나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홍소병團長이요, 민병連長이요 하는 짓을 무엇을 잘 못했는지 여하튼 오래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 절실히 느껴지는 것이 好景不長의 인생무상. 사실 어쩌면 나하고 團長이요, 連長이요 하는 군대 벼슬자리하고는 아예 안 맞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團長이요, 連長이요 하는 ‘군관보직’의 해임은 나의 군대꿈을 접게 한은 것이 아니라 더 불태운 것이 틀림없다. 초중을 다닐 때 나는 지지리도 군모를 쓰고 다녔다. 사실 나뿐이 아니고 우리 또래 남자 애들 다 그랬다. 수업이 끝날 무렵이면 아무렇게나 책상 속에 꿍져 넣었던 초록색 군모를 슬슬 꺼내 왼 손으로 모자창을 쥐고 오른 손 주먹으로는 모자창 안쪽을 들이밀어 우뚝 솟게 고봉을 만든다. 그리고는 책상 오른 쪽 위 귀퉁이에 신주단지 모시듯 살며시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따르릉 종소리가 울리기 바쁘기 그 고봉이 된 군모를 쓰주기에 바쁘다. 그때 우리가 쓰고 다닌 군모는 거의 다 모방하여 만든 가짜 군모였다. 그때 초록색 군복도 우리가 가장 멋있어 하던 옷. 그것도 대개 모방하여 만든 가짜 것을 입고 다녔다. 그런데 이런 가짜 군모와 군복이 그렇게 소중하고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 누군가 어디서 진짜 군모나 군복이라도 하나 얻어 썼거나 입었으면 당연히 그렇게 우쭐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때 진짜 군복은 몸에 착 입고 다녔으니 괜찮았는데 머리에 쓰는 진짜 군모는 마음 놓고 쓸 수 없었다. 거리바닥에 이런 진짜 군모를 노려 둘이서 단짝이 되어 자전거를 타고 씽하고 지나가며 나꾸채는 데는 머리가 용케 붙어있는 것에 감사할 일일 뿐이다. 그때 이런 날치기를 당하고 빌빌 우는 친구들을 심심찮게 보았다. 참, 지금 보면 이런 모자나 군복이 그렇게 후줄끈하고 볼 품 없건만. 이 남방에 와 보니 건축현장에서 노가다하거나 막벌이하는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입기도 한다.    
   
초중에서 고중에 올라갈 때 학교에서는 30%를 탈락시켰다. 그런데 이 30% 가운데 나의 ‘동지’들이 많았다. 나의 ‘동지’들은 거의 다 공부를 잘 못하고 ‘싸움대장’에 ‘연애대장’이 많다보니 줄줄이 남생이 꿰어져 나오듯 학교 문을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요행 거기에서 빠져 고중으로 올라갔다. 공부가 잘 될 리 만무했다. 그래서 고중 1년을 건중만중 보냈다.   고중 2학년에 올라갈 때 다시 70%를 탈락시키고 문과반 하나, 이과반 하나씩만 달랑달랑 남겼다. 이때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나의 동지들은 깡그리 ‘소탕’되고 말았다. 나는 이번에도 재수 좋게도 턱걸이 신세로 겨우 고2로 올라갔다. 그런데 거저 왼쪽 오른 팔 짤려 나간 신세가 아니고 완전히 고립무원한 상태가 되었다.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전부 공부만 하는 놈, 나 같은 놈은 없었다. 나는 그만 미쳐날 것만 같았다. 그때 18살의 나는 우울증이라는 것을 직실히 느껴보았다. 그래서 공부는 영 말이 아니었다. 엉망진창 그 자체. 그런데 나를 더 환심장이 나게 하는 것은 학교 문에서 ‘쫓겨난’ 그 공부를 못 하는 나의 ‘동지’들이 줄줄이 군대에 간다고 야단들이다. 내가 대학입학 시험을 반년 가량 더 남겨 둔 시점이다. 그때 나는 두말 않고 우리 ‘동지’들 사이에 끼어 군대지원을 했다. 대학시험이고 무어고 다 집어치우기로 했다. 그런데 그 인민해방군에 가지 못한 나의 형님이 어느새 이 소식을 듣고는 달려와  나의 이름을 박박 그어버렸다. 그 잘난 군대에 가 뭘 해, 너는 공부를 해라! 형님의 뇌성벽력 같은 소리. 나는 그때 처음에는 좀 멍해나다가 정신이 드는 순간 형님이 얼마 미워났는지 모른다. 형은 왜, 이래! 하며 박박 대드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때 아버지가 어흠, 어흠 하시더니 히야 말이 맞다, 그래도 공부를 하거라, 대학에 가거라하는 바람에 제풀에 기가 죽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앞가슴에 큰 붉은 꽃다발을 달고 군대에 가는 나의 ‘동지’들을 바라주면서 한 없이 울었다. 군대 가지 못하는 나의 신세가 한 없이 서러워서.

그럭저럭 나에게도 대학입학통지서가 날아왔다. 그래서 나는 중점대학 첫 지망으로 중국인민해방군 낙양외국어학원을 찍었다.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건만 군사학원의 입학통지서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또 한 번 황소 같은 숨을 몰아쉬며 크게 실망.

그래서 할 수 없이 운명이 챙겨주는 대로 연변대학에 왔다. 그런데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남경 쪽으로 오그르 군대로 몰려간 나의 ‘동지’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때는 또 환심장이 났다. 일종 질투심 비슷한 것도 났다. 내내 따분한 강의듣기에 책하고만 씨름하고 있는 내 신세가 서글퍼나기도 했다. 대학공부고 무어고 다 때려치우고 당장 그 군인 ‘동지’들한테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들이 척 군복을 입고 총을 맨 사진을 부쳐올 때는 정말 부러움과 질투에 혼자 끙끙 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汽車兵에 차를 모는 사진이나 空軍地勤에 비행기 옆에서 찍은 사진이라도 부쳐오는 날에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밖에 나가 정신병자처럼 빙빙 돌면서 한 바탕 고함을 쳐서야 직성이 풀렸다. 그리고 남경의 명물인 현무호나 중산릉이며를 돌며 찍은 사진을 부쳐올 때는 그들이 얼마나 멋져보였는지 몰랐다. 일종 환상적인 낭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나를 꼴려주는 듯도 해서 기분이 잡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동지’들이 있어 얼마나 가슴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랑도 많이 했다. 그러면서 나도 언젠가 군대에 가겠지 하면서 스스로 달랬다. 나는 대학교에 다닐 때도 초록색 군복을 잘 입었다. 지난 세기 80년대 초반인 그때까지도 군복은 하나의 패션이었다. 한 동안 나의 고향인 심양에서 湘西剿匪 시기에 입음직한 중국인민해방군의 군복이 유행했다. 노르께레한 색깔인데 실오리들이 人字형을 이루며 짜내려가 그것을 人字軍服이라 했다. 씻으면 색이 바라지면서 흰 색깔로 많이 변해갔다. 일종 노스텔지아 懷舊적인 군인향수의 옷이다. 나는 방학 간에 집에 갔다가 이것을 사 입고 와 한 동안 뽐내며 입고 다녔다.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 중학교 교사로 배치 받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 군대에나 배치 받았으면 하고 내 좋을 대로 생각을 굴리기도 했다. 그때 같은 졸업학년의 수학학부의 어떤 친구가 군부대로 배치 받아 간다는 소리를 듣고 부러워서 침을 겔겔 흘리기도 했다.

나는 결국 요녕성의 어느 조선족 중학교로 배치를 받았다. 그때 군대에 갔던 나의 ‘동지’들도 별 볼일 없이 다 돌아와 다시 촌놈 신세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만나는 순간 짜식들, 니나 내나 그렇고 그렇네!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착실히 공부하도록 했다. 석사연구생에 겨우 붙었다. 그런데 석사연구생을 졸업할 임박 우리 학부의 허호일 교수와 이해산 교수가 나를 중국인민해방군 낙양외국어학원으로 추천을 한다. 낙양외국어학원에서 조선문학을 가르치는 황휘 교수가 석사졸업생 1명을 요구해왔던 것이다. 나는 두말없이 동의했다. 군대, 군인... 나는 그만 흥분의 도가니 속에 잠겼다. 군관이 되어 졸병들의 거수경례를 받는 나의 어엿한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고이 잠들어 있던 나의 군인콤플렉스가 발산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낙양외국어학원에서 한 번 와 보라는 말에 밤잠도 옳게 자지 못하고 설치다가 이튼 날 더딘 기차를 재촉하며 낙양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군사학원에 도착하여 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니 그렇게 좋을 리가 없었다. 기분이 둥둥 떴다. 나도 이제 얼마 안 있어 입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니 막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학원의 높은 군관지도자들이 정말 여기에 와서 교관이 되겠는가고 묻는 말에 나는 얘! 두말하면 잔소리지요!하고 어깨에 힘을 주며 시원스레 대답했다. 그랬더니 모두들 나를 군인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내가 학교에 돌아온 후 그렇게 부풀던 군인꿈이 펑 하고 터질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다. 우리 학부의 김해룡 교수, 멋진 미학교수, 나를 당신의 후계자감으로 찍었다. 그래서 나를 ‘물’고 늘어진다. 그 잘난 군대학교에 가서 뭘 하는 가고 하면서 말이다. 거듭되는 설복에도 내가 끄덕도 하지 않자 김교수는 한 번 잘 생각해봐, 내 시간을 좀 주지라고 하고는 이튼 날 신새벽에 나의 기숙사로 달려와서는 문을 쾅쾅~ 두드린다. 어이, 상렬이, 생각해봤어, 그래도 여기에 남는 게 났지. 니 같이 술 좋아하는 놈이 거기 가서 어쩌겠다는 거야? 그렀지? 그리고는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나의 결단을 촉구하는 판이다. 나의 군인꿈에 조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군관 盖帽에 군복을 입고 엄숙한 표정을 지은 군인꿈 속의 나와 머리칼은 부스스하고 눈에는 항상 노란 눈 굽을 달고 다니며 얼굴에는 땟국이 흐르고 옷은 온통 쭈그렁 투성이, 여기에 하라는 硏究는 잘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煙酒는 잘 해 술 한 잔 들어가면 세상이 콩알만 해 보이고 天不怕, 地不怕 식으로 간뗑이는 한 없이 불어나는 현실 속의 나를 하나로 클로즈업시켜 보았다.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 水火不相容이라 할까... 나의 현실의식속의 이성은 이것을 또렷이 나한테 각인시켜 준다. 다음 순간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좋아하는 나의 뇌리에는 끔찍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술 취한 내가 총을 마구 휘둘러대는 무서운 모습... 나는 경악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낙양외국어군사학원을 포기하기로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조문학부에 남았다. 군인이 되는 꿈은 가슴 깊숙이 아련한 꿈으로 묻고. 그런데 이것이 수시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데는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학교에 남아 젊은 선생들의 일반 코스로 담임선생을 하며 신입생들을 데리고 군사훈련을 할 때다. 진짜 군관 군복은 아니고 허줄한 예비역 군관 군복을 입었는데도 기분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어깨에 힘을 주고 허리를 쭉 펴고 板正한 군인자세로 씩씩하게 돌아다녔다. 그랬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야, 그럴 듯 한데 하고 야단들이다. 신 났다. 그래서 진짜 군인이 되기나 한 듯이 학생들이 훈련하는 마당에 차렸, 경례, 정보로 걸었... 정색해서 같이 따라 하기도 했다. 그때 우리 학교 학생군사훈련 총 책임자는 아주 어린 나이에 군에 입대하여 풍상고초를 다 겪으며 대단한 군직에 올랐다는 나이 지긋한 분이었다. 그분은 생김생김도 윤곽이 뚜렷하게 생긴 것이 군인 같았다. 나는 그분이 대단히 존경스러웠다. 나는 달갑게 그분의 부하가 되었다. 그것은 일종 마조히즘적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어느 하루 딸 벌이나 되는 학생한테 반해 조강지처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 신성스럽고 대단해 보이는 군인, 군복, 군직 등을 다 팽개치고 저 멀리로 종적을 감춘다. 고 여학생을 끼고 말이다. 나는 정말 허탈감에 빠졌다. 군인, 아니, 그 어엿한 군관도 그럴 수 있는가? 군대고 군인이고 군관이고 뭐고 다 개판이군. 그 미인관을 넘지 못한 종이범 같은 군관 ‘영웅’은 나의 군인의 꿈을 산산조각이 나게 했다. 그래서 나는 퉤! 더러워 죽겠어. 군인은 죽어도 안 해! 하며 돌아섰다. 군복 입고 항상 엄숙한 표정을 짓고 로봇 식으로 명령에 복종하기만 해야 하는 그런 생활이 한 없이 서글퍼나고 지겨워날 것이라는 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은 나하고 죽어도 안 맞는다는 ‘진리’가 터득되었다. 그래서 나는 홀가분해진 듯 했다. 그런데 나는 우리 학부에 군대에 갔다 온 선배 교수님들 몇 분을 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그들이 한 없이 부러워났다. 와, 군대까지 갔다 오고 교수까지 되고, 얼마나 멋져, 나의 내심으로부터 우러러 나오는 감탄. 사나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할 일이 많다고 하지만 군대 한 번 못 갔다 온 거, 군인 한 번 못 되 본 것, 어떤지 허전하고 아련히 아파온다. 그래서 한국의 그 군에 가기 싫어 별 지랄을 다 피우는 친구들이 이해 안 될 때가 참 많았다. 그런데 나는 군인이 되기 다 글렀다. 내 멋대로의 절대 자유경지를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나, 그리고 나이도 한 물 가고 젊음도 한 물 간 나는 군인이 되기 천만 번 글렀다. 그래서 나는 꿈에서 군인이 된 나를 종종 본다. 아니, 위풍당당한 장군이 되어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나를 종종 본다. 
          

200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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