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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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思故我在-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2006년 04월 28일 00시 00분  조회:3693  추천:81  작성자: 우상렬
我思故我在-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가을산은 언제든지 벗는다
못 벗는 것은 나다

산은 벗어도 당당하고
나는 입고 있어도 춥기만 하다
-「가을산」전문(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엮음:『중국조선족명시』, 북경민족출판사 2004)

언제든지 벗는 ‘가을산’이라는 자연이미지를 모멘트로 하고 여기로부터 튀어져 나오는,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구속스럽기만 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인간 본연의 실존을 길항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일탈의 욕망을 꼬드겨 붕 뜨게 하며 잠 못 들게 했던 허련화, 너는 이제는 우리 조선족의 현실적 실존을 아파하구나. 순수시에서 참여시에로의 변신이라 할까, 여하튼 너는 새로운 변신을 하고 있는 거지, 그렇쟈?

너는 인간 본연의 실존을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으로 잘도 개괄했다. 형이상학-‘형이상학은 머리위의 것이다./끝없이 하늘로 비상하는 것들. /새처럼 가볍게 나는 것, 구름처럼, 성당의 종소리처럼/신비로운 것/그래서 아름다운 것.’ 형이하학-‘형이하학은 인간의 몸뚱어리다./땅위를 기어다니는 것, 먹고 배설하는 것, 구체적인 것,/어쩐지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것.’ 그렇다. 인간이 정신과 육체적 존재라 할 때 인간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으로 되어 먹었다. 그런데 너는 이 형이적인 인간 실존을 제시하면서도 결론적으로 ‘그래서 아름다운 것’과 ‘어쩐지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것.’으로 분명 형이학적인 인생을 추구하구나. 그래서 스스로 ‘자칭 형이상학’이라 했다지. 그래 너는 도고한 맛이 있어. 그래서 너는 중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석사가 되고 현재는 한국의 최고 명문 서울대학교에서 박사별을 바라보고 있지. 그런데 ‘서울출입국사무소 중국 창구 앞’에 서는 순간, 너의 ‘자칭 형이상학’은 깨어지고 만다. 그것은 정말 빈 껍질의 허울 좋은 자아감각의 ‘자칭’으로만 남고 만다. ‘수많은 형이하학이 줄지어 앉아있다./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들은 날지 못한다. 그들은 배고프기에’. 너는 한국에서 살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우리 조선족을 보았쟈? 끝없이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일만 차례지는 가련한 우리의 실존이다. 그래도 우리는 기를 쓰고 한국에 가야 하고 한국에 눌러 붙으려 한다. 한국은 아직 우리에게 있어서 노다지판이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고 마는 너가 아니지. 너는 우리의 실존과 더불어 너 자신의 실존도 깨닫지. ‘자칭 형이상학인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있’지 않은가? 서울대학교 박사를 한답시고 한국에 발을 들여놓은 너-형이상학. 그런데 먹고 살기가 바쁘다. 힘들다. 그래서 헐레벌떡 올리뛰고 내리뛰어야 하는 니 신세, 이 오빠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버젓한 박사별인지 뭐인지 딴다는 것도 결국 잘 먹고 잘 배설하자는 것하고 매치가 많이 되지? 그러니 허울 좋은 빛 좋은 개살구. 그러니 50보에 100보! 그렇쟈? 그 잘난 유학은 내가 니 선배가 아니냐?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도 형이하학인 것 같다’. 임마, ‘같다’가 아니라 바로 그런 거다. 좀 솔직해라. ‘나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그렇지, 솔직해서 좋다. 니네, 우리 조선족의 실존, 아무리 형이상학을 하려고 해도 현 단계 될 수 없다. 우리는 형이하학일 수밖에 없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은 그래도 약과다. 니니깐 그래도 오락가락하쟈! 그래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는 모두 형이하학으로 앉아 형이상학을 꿈꾼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니 같이 出汚泥而不染의 연꽃-蓮花. 我思故我在-‘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명제가 그대로 들어맞는 순간이다. 우리는 ‘끝없이 하늘로 비상하’기 위해, ‘새처럼 가볍게 나’기 위해 오늘 ‘땅위를 기어다닌’다. 그리고 ‘먹고 배설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이 아무리 ‘형이상학을 꿈꾸어도’ 그 사람들, 한국 양반들이 ‘우리를 형이하학이라 부르’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 양반들은 우리를 초라하게 본다. 우리를 떨어버려야 할 짐으로 본다. 우리는 반갑지 않은 손님. 그래서 고국이요, 민족이요 하며 달려온 우리를 울리지 않느냐. 지난 세기 ‘90년대 내가 ‘서울출입국사무소 중국 창구’ 앞에 섰을 때 한국 양반들 이거, 북한의 형이하학이 아닌가 하고 이리 묻고 저리 묻고,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며 질질 끌었지. 똑 마치 범죄자를 심문하듯이. 그러니 형이상학을 꿈꿀 시간도 없었지. 그때 일본친구들하고 대만친구들 우리 같은 창구를 썼는데 그들은 5분도 안되어 OK 소리를 들으며 팔자걸음으로 돌아 나왔지. 나는 그때 내가 진짜 중국 사람인 것을 알았지.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중국 조선족의 형이상학을 꿈꾸기 시작했네. 한국 양반들 아무리 형이하학이라 불러도 관계없이. 그렇다. 우리는 꿈꾸는,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의 존재-새로운 실존을 찾아야 한다.

허련화의《서울출입국사무소 중국 창구》(미발표. 나한테만 발표)를 횡설수설로 음미해보았다. 횡설수설을 요약하면 추상적인 철학명제인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살아 움직이게 형상적인, 의인적인 시적 메타포로 구사한 것이 돋보인다. 그리고 다양한 대조적인 수법으로 시적인 이미저리를 조직해나간 것이 특징이다. 시의 시작 두절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보편적인 인간실존의 대조적인 양상을 전반 시적 경지의 전제로 극명하게 깔아둔다. 그리고 시적 화자의 눈에 비친 ‘수 많은 형이하학’과 ‘자칭 형이상학’인 내가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자칭 형이상학인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있다./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도 형이하학인 것 같다.’라는 두 구에서 ‘나도’라는 포함의 뜻을 내비침으로써 일종 落差의 대조를 가져와 보다 효과적이다. 그리고 ‘나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사이를 오락가락한다.’에서는 내 스스로의 마음의 대조 색으로 헷갈리는 복잡한 내심세계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어서 ‘우리는 모두 형이하학으로 앉아 형이상학을 꿈꾼다.’에서는 전반 시의 起承轉結(물론 시의 절의 차원이 아니라 내용적 차원에서)에서 일종 轉의 대조적 역할을 하면서 변증법적 인생경지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들이 형이상학을 꿈꾸어도/사람들은 우리를 형이하학이라 부른다.’에서는 마지막 절에서의 承轉의 대조적 역할을 하면서 結을 곁들이고 있다.

한마디로《서울출입국사무소 중국 창구》는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소박함속에 거창한 인간실존, 우리의 실존이 녹아들어 있어 머리를 수굿하고 음미하게 한다. 너처럼 수수하면서도 음미할 것이 있어 좋았다. 시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미지폭력조합’이나 ‘파격적인 이미지조합’으로 몽롱하고 또 몽롱한 나만의 잠꼬대세계를 추구했으되 사실 알고 보면 별 볼일 없는 그런 이미지시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나 혼자만 좋다구 찧고 빻으면 蓮花 짝사랑에 빠져 진짜 횡설수설하는 줄로 알 것이니 우리 같이 음미해보도록 빵빠래~

형이상학은 머리위의 것이다.
          끝없이 하늘로 비상하는 것들.
          새처럼 가볍게 나는 것, 구름처럼, 성당의 종소리처럼
          신비로운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

          형이하학은 인간의 몸뚱어리다.
          땅위를 기어다니는 것, 먹고 배설하는 것, 구체적인 것,
          어쩐지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것

          서울출입국사무소 중국 창구 앞에는
          수많은 형이하학이 줄지어 앉아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들은 날지 못한다. 그들은 배고프기에
          자칭 형이상학인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도 형이하학인 것 같다
          나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우리는 모두 형이하학으로 앉아 형이상학을 꿈꾼다.
          우리들이 형이상학을 꿈꾸어도
          사람들은 우리를 형이하학이라 부른다.
               -《서울출입국사무소 중국 창구》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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