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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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조선족식, 피곤하다
2008년 01월 05일 16시 45분  조회:6407  추천:92  작성자: 김정룡

재한조선족문제연구
제3부  조선족의 언어변화실태에 대하여     

2. 한국식, 조선족식, 피곤하다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인간의 몸에는 관성의 체계라는 것이 있다. 오른손 왼손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일상생활에 있어서 밥 먹고 글을 쓰는 등 주요하게 오른손에 의해 움직인다. 가령 오른손이 탈이 나서 부득불 왼손을 사용하면 습관이 되지 않아 나의 몸에 반란을 일으킨다. 이것이 인간의 몸에 배인 관성의 체계이다. 우파(기존의 체제를 답습하려는 보수세력)와 좌파(기존의 체제를 개혁 혹은 뒤엎으려는 혁명세력)라는 개념이 곧 인간의 오른손 왼손의 관성체계에 의해 유래된 것이다. 

 인간은 몸에 배인 관성의 체계가 유지되면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반해 관성의 체계가 파괴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괴롭다. 

 우리민족은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고 따라서 남과 북 및 조선족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문자가 다르다. 이리하여 조선족은 관성의 체계가 파괴되는 체험을 많이 하게 되며 삶이 고달프다.

 지난 4월 중순 연변 <<문학과 예술>>잡지 조일남 사장으로부터 내가 작년 2월 기고한 <<성과 씨의 구분>>이란 글을 2007년 2기(격월간)에 실으려고 하는데 원고를 다시 한 번 손을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의 손에 그 원고가 없으니 보내 달라고 했더니, 조선족문장식으로 타이핑해서 이메일로 보내왔다. 다시 말해서 어휘선택, 철자, 두음법칙, 뛰어 쓰기, 부호용법 등 많은 면에서 한국에서 쓰는 문장과 조선족식이 많이 다르다. 

 나는 한국에서 주로 글을 쓰다 보니 한국식이 이미 몸에 배어버려 갑자기 조선족식의 문장을 접하니 읽고 쓰기가 갑갑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국식으로 손을 보아 보내면 틀림없이 조사장이 다시 조선족문장식으로 고쳐야 한다. 나는 이런 점을 고려해 아예 힘들더라도 조선족문장식으로 맞춰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그게 엄청 힘들었다. <<문학과 예술>>은 문화연구 중심을 취지로 하는 유일한 조선족인문잡지이며, 기고자들은 모두 연변대학과 중앙민족대학 교수, 출판사와 신문사의 유명지식인 및 쟁쟁한 조선족작가들이다. 나와 같은 무명인은 눈을 씻고 봐도 나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작품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이런 요인은 내가 글을 쓰기로 맘을 먹은 이상 나에게 스트레스는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한국식과 조선족식을 오가려니 나의 몸에 배인 관성체계가 파괴되면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글을 발표하려면 우리민족을 조선민족이라 해야 하고 따라서 이북을 조선, 우리글을 조선글 등등 ‘韓’을 쓰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글을 쓰려면 조선민족, 조선사람, 조선글 등 사용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글을 쓰는데 글 자체가 다른 것에 신경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인소’까지 감안해야 한다.

 이렇게 조선족은 타민족이 겪지 않고 있는 문화적, 정치적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우리 조선족 몸의 관성체계를 파괴시키고 억제시킨다. 또 이러한 몸의 관성체계가 파괴되고 억제되는 과정을 오래 겪게 되면 조선족은 주체성과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다. 

 참으로 비극이다. 이것은 조선족만의 비극이 아니라 전체 우리민족의 비극이다. 나는 이것이 분단민족의 비극적인 문화라 생각한다. 문장을 쓰는데 있어서 남이 다르고 북이 다르고 조선족이 다른 것처럼 우리민족의 현실이 분열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상을 탓하는 자는 가장 못된 놈이라는 도리를 알고 있지만 나는 조상들을 탓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종대왕이 1446년에 만들어 낸 훈민정음이 유생들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보급되지 못했다. 일제시대에 이르러서야 한문과 병행해서 쓰게 되었고, 우리글이 완벽한 정착이 되기도 전에 분단되었으며, 남이든 북이든 70년대 후반부터 우리글사용 단일화가 실시되었으나,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제나름대로 놀다보니 오늘과 같은 비극이 초래되었다. 앞으로 남과 북이 본격적으로 교류하게 되면 홍역을 치르듯이 서로 한바탕 관성의 체계가 파괴되는 마찰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조선족의 언어문자는 이북을 따랐으나 이북과도 다른 점이 많다. 나는 조선족이 비록 남과도 다르고 북과도 다르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체언어문자를 지켜왔다는 것 하나만으로 굉장히 보귀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민족이 타민족들이 겪지 않는 괴로움을 겪고 있으니 안타까움을 토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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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장성희
날자:2009-04-15 22:45:56
선생님의 글은 언제나 감명깊게 읽고 갑니다...
1   작성자 : 샤먼의湖水
날자:2008-01-09 04:42:12
동감합니다. 님의 글을 읽고 님의 마음이 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구구절절 어찌 저와 똑같은 심정이십니까. 정말 스트레스입니다. 저 또한 '조선어 문법'과 '한국어 문법'을 날마다 넘나들어야 하는 사람이라서 괴롭습니다. 이넘의 언어부터나 어떻게 통일되었으며 합니다. 님의 글을 읽고 저 또한 안타까움 심정이 밀려 듭니다. 님 말대로 '민족의 비극'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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