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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와 동서 문학의 교류/민용태
2018년 09월 06일 14시 47분  조회:2105  추천:0  작성자: 강려

초현실주의와 동서 문학의 교류

 

                                  민 용 태(스페인 왕립한림원 위원,고려대 명예교수)

 

 

상징주의에서 초현실주의로

 

상징주의에서 초현실주의가 태어났다면 우리는 초현실주의 시에 드리워진 말라르메나 렝보, 르뜨레아몽의 영향을 이야기하면 된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의 “자동 필기법(Automatism)”이 말라르메를 비롯한 상징주의 시인들의 갈고 닦아진 시어를 증오했는지를 생각하면, 그들은 분명히 빈상징주의자들이다. 초현실주의의 신은 절대 자유였다. 앙드레 브르똥은 말한다:

“자유라는 어휘만이 아직도 나를 격동시키는 전부이다. 이 어휘만이 안류의 낡은 영광주의를 무한히 유지하는 데 적합한 것이라고 믿어진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어휘만이 나의 유일하고 절당한 갈증에 답변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그 숱한 불명예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정신의 자유’가 또한 우리에게 상속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정신의 자유를 지독하게 악용해서는 안 될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상상력을 노예 상태로 환원시킨다는 것은, 소위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조잡하게 불리는 명칭과 관계될 때 조차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최고의 정당성을 죄다 도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직 상상력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고, 상상력이 그 가공할 금기 사항을 조금씩 취소시킬 수 있으며, 그리고 기만당할 두려움 없이 내 자신을 방임할 수 있는 곳 역시 이 상상력 속이다(더 이상 기만당할 수도 없겠지만)”

초현실주의자들의 잘대적 정신의 자유에 대한 집념은 마침내 문학까지도 거부하게 만든다. 제1 선언에 이어, “1925년 1월 7일의 선언”은 더욱 단호하다.

“첫째, 우리는 문학과 아무런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필요에 따리서,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문학을 이용할 수는 있다.

둘째, 초현실주의는 새롭고 편리한 표현 수단도 아니며 시의 형이상학도 아니다. 그것은 정신의 완전한 해방을 위한 수단이다.(이하 생략)”

즉 초현실주의는 낭만주의로부터 시작된 상상의 자유를 최대로 확장시켜, 프로이트의 잠재의식의 세계, 꿈의 세계까지를 해방시키려는 운동이었다. 따라서 쉬르레알리즘은 문학 뿐만 아니라 회화, 기타 모든 시각 예술을 비롯 모든 인간 해방 운동에 혁명의 기치를 든다. 그들의 해방운동적 성향은 마침내 엘뤼아르, 아라공,브르똥 등이 연 이어 공산당에 가입하는 정치적 색체까지 띠게 되는데. 이런 현상은 공산당의 이데올로기 실천이라는 변증법적 진실에 직접 참여했다기보다는 그들의 자유 해방 정신의 확장 과정에서 비롯된 하나의 사건으로 보아야 하리라.

초현실주의 이런 혁명적 성향은 일체의 전통과의 단절을 부르짖었던 “전위문학(1916-1923)”고도 일맥 상통한다. 쉬르레알리즘이 트리스탄 자라의 “다아이즘”에서 나왔다는 이론도 그래서 타당성이 있는 것. 아방 가르드 예술은 많은 경우 재래의 모습 예술 형식과 사상을 일체 거부하는, 매우 낙천적인 파괴주의였다. 이들은 일체의 형식의 파괴를 앞세웠던만큼 장난끼와 유모어로 가득찬 예술운동으로 일관했으며, 결국 별다른 시학도 작품도 남기지 못했다. 전위예술의 해방 정신을 “자동필기법”이라는 시학으로 대치한 것이 초현실주의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는 그러나 전위예술만큼 낙천적이지는 못 했다.억압된 본능의 해방을 위해 쓰여지던 “자동필기법”은 구겨지고 문드러진 잠재의식의 혼란스러운 표출이었던만큼 때로는 지극히 어둡고 염세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든 초현실주의는 무의식과 잠재의식을 창작의 산실로 초대하면서, 혼란과 우연을 그의 텍스트 속에 필연으로 받아들였다. 1919년 브르똥과 수뽀가 함 께 펴낸 “자기장(Les Champs magnétiques”에서 그들은 최초로 자동 필기법을 실험하는데, “꿈과 불면의 중간 상태에서 시적인 메시지”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한 번 백지 위에 우연히 떨어진 말은 그대로 필연이 된다. 그것은 마치 “유리창에 부딪힌 말”처럼 더러는 투명하고 더러는 흩어져 사라진다. 이들 불가사의한 낱말들, 쇠붙이들이 서로 끌고 당기며 이룩하는 연상의 자장(磁場)이 바로 시라는 것.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의식의 눈에는, 우선 혼란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프로이트 같은 의사나 상상력이 자유로운 독자의 눈에는 또 의미가 보여지고, 때로는 황홀한 꿈의 체험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말라르메나 상징주의 시인들의 시법을 거부한 것은 힘들여 연상을 다듬고 짜 맞추는 그 인위적 과정이 위선이라는 것. 그것은 시작 과정에서 시인 자신들조차 자유롭지 못한 억압이니 행위라는 데 있다. 이미 말했듯, 초현실주의는 좋은 시 좋은 문학 만들기보다는 일종의 해탈을 위한 정신 수양에 있었만큼, 그 작업 행위 자체까지 정신 해방 연습이어야 했다. 그들에게 시적 영감이란 천재적 재능이 있는 자에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누구나 내면에 지니고 있는 것들이며,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것을 가장 자유롭게 끌어낼 수 있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초현실주의는 어떤 시인의 천재성이나 개성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을 표출하는 건강한 집단시(集團詩)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 구체적인 예가 “맛있는 시체 놀이(Exquisite 이다. 여러 가지인데, 첫번째 사람이 명사 하나를 쓰고 그 종이를 접는다. 다음 사람이 형용사, 또 다음 사람이 형용사...이런 식으로 앞 사람의 말을 모르고 써 나가면 하나의 부조리하고 신선한 시구나 정의(?)가 태어난다는 것. 또 다른 방법은 한 시인이 시 한 연을 쓰고 덮고, 다음 시인이 그 끝줄이나 맨 앞줄을 보고 다시 한 연을 쓰고....이런 식으로 여럿이 한 시를 만들어가는 놀이. 말하자면 하나의 시인이 작위적으로 뜻이나 연상이 통하는 이미지들을 엮어가는 것보다는, 놀이에 참여한 각 시인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우연히 떠오르는 말들을 적어감으로서, 이들 무작위한 시어들이 만들어가는 의미의 무늬들을 감상하는 재미를 즐기자는 것.

이런 놀이는 마치 우리의 선인들이 포석정에 둘러 앉아 술을 마시며 연작 시 놀이를 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까. 여기 하나 재미있는 것은 그래도 더러 신선한 태어나는 기적을 맛보았다는 점. 그래서 초현실주의 시인들은 “맛있는 시체가 새로운 와인을 마시리!” 하고 놀이를 즐겼다 한다. 물론 쉬르레알리즘의 이런 자동필기법은 실제로 상투적 시어와 참신하지 못한 시상으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들이 의식적으로 시 만들기에 쏟는 억압적 노력과 상황에서 해방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나중에 멕시코의 옥따비오 빠스와 작스 로보, 이태리의 상기네띠, 그리고 찰스 톰린슨은 일본의 렝가(連歌)를 모방하여, 1971년 빠리 어느 호텔에서, 또 다시 “맛있는 시체 놀이”와 같은 연작시를 시도한다. 각각 스페인어, 이딸이아어, 불어, 영어로 씌여진 시는 우리 동양시가 기대한 만큼 기(氣)의 통일성이나 현묘성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시창작의 개인적 작위성을 누그려Em렸다는 점에서는 기억할만한 사건이었다.

이제 우리는 초현실주의 전개 역사나 인간정신 해방 운동의 성패(成敗)에 대해서보다는 쉬르레알리즘 시학의 수사학적 측면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초현실주의는 문학 예술 운동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현대시에 엄청난 시어의 개혁을 가져온 게 사실이다. 서반아의 시인이며 평론가인 카를로스 보우쇼뇨는 그의 “슈퍼리얼리즘과 상징화”라는 책에서 초현실주의가 시표현의 새로운 상징의 문을 열었음을 상세히 파헤치고 있다.

형식주의 문학론이나 구조주의 시학은 시대적으로 아방가르드 문학의 봉기와 초현실주의 시기와 때를 같이 한다.형식주의 발아 시기가 볼쉐비키 혁명 전후 1916년경이고, 그 때가 또한 구조주의의 원조 페르디난드 소쉬의 “일반 언어학 강론”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창작문학이나 언어 이론, 문학 이론의 일치점은 현상학적 철학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더라도, 언어가 인간됨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이다. 형식주의가 문학은 사상이나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어떤 언어로 표현하느냐에 그 문학성이 달려 있다고 보는 시각이나, 초현실주의가 인간의 해방은 그가 쓰는 언어의 해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은 언어의 중요성의 인식에서 일치한다.

이미 언급한 쟝 꼬앙의 “시어 구조”론이나 보우소뇨의 “슈퍼리얼리즘과 상징화” 등의 이론은 형식주의와 함께 구조주의적 시어 분석이 뛰어나다. 구조주의 시학의 공헌은 문학어, 시어가 일반 산문어와는 다른 “반산문” 혹은 “일탈(desviación)” 현상이며, 그 저항 이유는 뜻하지 아니한 연상을 통한 숨겨진 일치점을 발견하는 작업이라는 데 있다. 말을 바꾸면, 마야코프스키를 비롯한 미래주의 시에 관심을 둔 형식주의의 발견처럼, 문학어는 논리적이고 관습적인 일상어에 대하여 일부러 “낯설게 하기(singularization)” 언어인 것이 밝혀진다. 구조주의는 그 “낯설게 하기”가 다의미(polisemia) 산출의 방편이었던 것을 지적한다.즉 정서적, 영상적, 관념적 다의미를 지향하는 문학어는 일상어의 관습성, 논리성을 파괴하는 것을 항상 전제로 했다는 이야기이다.

카를로스 보우쇼뇨의 이론에 따르면 초현실주의 시는 시어의 사용에 있어서, 양적으로 질적으로 상징주의의 시에 비해 엄청난 시어 성격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 전래의 시어나 상징주의 시가 구문이나 언어의 관습성에 있어서 “까만 하늘”같은 표현처럼 맞지 않은 소리를 하거나,“자동차의 코”같은 표현처럼 상당하지 않는 부분에 “코”를 갖다 붙이는 이상한 표현을 일삼았다면, 초현실주의 시어는 “관계없음(inconexión)”, “구문 상으로는 일치하나 내용상 관계 없음”, “제멋대로의 표현(autonomía)”이 성행한다고 말한다.

초현실주의 시의 이런 반언어적 시어 구조는 그러나 연상 의미에 있어서 “선험적 일치점(ecuaciones preconscientes)”을 야기시키거나, 억지로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상상을 자극한다는 것. 초현실주의로부터 시어는 일상어의 이해와는 달리, 우연하게 떨어진 시어라할지라도 그 당위성을 가지며, 독자는 그 당위성의 바탕 위에서 상상할 수밖에 없는, 상상의 필연성을 요구한다는 것. 이것은 마치 잘 번지는 창호지 위에 떨어진 붓 자국처럼, 그 점이 무슨 점, 무슨 강, 무슨 호랑이의 모습으로 번져갈 줄은 모르지만, 일단 떨어진 붓 자국의 무늬는 절대이며, 그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자유라는 것.

보우쇼뇨는 몇 번이고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시인 비센떼 알레익산드레의 다음 두 구절을 예로 든다.

1. “나의 목 휘감지 말아요, 밤이 온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2. “너의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거야, 폭풍이 퍼렇게 멍이 드는 동안”

1의 경우는 그래도 연상이 가능하다. 목을 휘감으면 눈이 가려질게고, 그러면 나는 밤미아라고 생각할지 모르니까. 논리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가린다고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여기서의 알레익산드레의 독특한 사랑관, 사랑은 파괴요 죽음이라는 엄청난 역설이 도사리고 있는 것. 2의 경우는 정말 부조리 그것이다. 이 시인의 시를 이해하려면, 우주의 현상이 시인의 내적 갈등에 지배된다는 새로운 기상 원칙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폭풍”은 원칙 없이 “너의 심장”의 어떤 고뇌스러운 현장이 되어야 한다. 심장이 어떻게 “입으로 튀어”나올 수 있느냐는 다음 문제이다. 이쯤 되면 시어사용은 그야말로 자유자제다.

나는 문득 이 태백의 “...나 술 취했으니 잘라네./ 생각나면 내일 거문고 들고 다시 오게나”라는 시구가 생각난다. 초현실주의 시법은 표면상 이처럼 무책임하면서 자유롭다. 예술혼이 도학(道學)의 경지처럼 극도의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통하는 언어이다. 역사상 초현실주의는 “사랑과 시와 자유가 동시에 추구되는” 현실적 혁명을 시도했다. 그것은 역사상 실패한 운동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초현실주의는 동양 철학의 바탕 위에서 여물어졌다고 본다. 그것은 옥따비오 빠스의 일본 시나 당시에 대한 심취, 그리고 특히 탄트리즘과 노장사상, 역경에의 탐익이 그 구체적인 예이다. 장자의 “소요유”의 경지에서처럼 의식이 우주적으로 자유로워질 때 초현실주의는 또다른 차원의 커다란 자유를 느낀다.

 

 

 

현대 문예 사조에 있어서 동서양의 교류

 

 

동양의 20 세기 문예 사조는 서양의 영향 하에서 생겨난다. 일본의 근대 문학이 그렇고 중국의 “백화문학”이 그렇다. 또한 우리의 “신체시(新體詩)”도 서구의 낭만주의 상징주의의 영향 하에서 싹튼다. 실제로 동양의 오늘 문학은 서양 문학의 형식과 내용을 각 나라의 사정에 맞게 재수용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이야기가 된다.

물론 문학이라는 것이 형식적으로 각각의 언어적 속성에 크게 지배 받는 것인만큼, 동양이 서양 문학 형식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단순한 모방이나 표절이 모습을 띠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국의 언어나 전통에 의하여 재각색된 형태들이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 동양 문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시나 소설, 연극의 원형들은 동양 전통의 계승 측면보다는 서양의 그것의 모방성이 두들어지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오늘 시를 쓴다면 누구나 자유시 형식을 취하고, 소설을 쓴다면 사실주의적 기법을 생각하는 것도 모두 서양에서 온 사고들이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일본에는 하이꾸(俳句)가 쓰여 지고 우리 문학에도 시조가 살아있다. 또한 문학 내용의 측면으로 살펴보아도 노장(老莊)이나 불교적 관조가 두드러진 것이 동양 문학들이다. 더구나 동양인적 섬세한 감수성과 심미주의에서 잉태된 많은 시나 소설들이 반드시 서양 문학 영향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문학의 대상이나 소재도 모두 각 나라의 정서나 문화 환경에서 잉태된 독창성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문학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사고 자체가 다분히 서양에서 온 것들이다. 우리가 “동서 문예 사조”를 이야기하면서 서양 문예 사조 중심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것은 비로 이 때문이다. 즉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에 대한 통념이나 작법들이 대부분 서양 전통에 말미암는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문학에 대한 사고가 그 본거지에서 어떤 당위성을 가지고 태어났는가를 정확히 살피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 우리 동양에 이와 비슷한 전통의 뿌리가 존재했는가. 존재했다면 어떤 형태로 구체화되었던가를 살피는 일이 필요했던 것.

이제 낭만주의에서 상징주의,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현대 문학 사조를 대별하고 나서, 우리는 우리의 현대 문학이 바로 이것들을 모방하며 자라왔다는 사실을 재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서양 문학을 모르고 오늘 동양 문학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양 현대시의 일반적 형식인 자유시는 서양의 “상징주의”의 산물이며, 그 또한 시적 언어의 다양한 의미 산출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형시에서처럼 시행을 음성적 법칙에 의하여 기계적으로 자를 때와 자유시에서처럼 자유롭게 자르고 붙일 때의 차이는 크다. 자유시에서의 시행 바꾸기는 왜 꼭 거기에서 시행을 옮기는가에 대한 이유와 의미가 또 필요하다.

한국시가 서양의 자유시 형식을 본따고 자라오면서 잊고 있는 것이 있다면, 서양의 상징주의가 만든 자유 시 형식의 그 엄청난 혁명성이다. 그 때까지 서양시는 시(versus)라고 하면 곧 정형시를 일컬었다. “versus”의 어원 자체가 “되돌아온다”는 리듬의 뜻에서 발생된 말이기 때문이다. 이미 말했듯이, 상징주의는 시어나 시행의 모호성과 다의미 산출을 욕심냈다.

서양 시에서 종래의 시행(정형시행)은 소리 단위의 제약을 받은 의미 단위였다. 예를 들어 11 음절이면 무조건 10음절에 리듬의 축(axis rítmico)을 둔 각운(脚韻,rima,)을 필요로 했다. 10 음절부터 11,12 음절 안에 시행(verso,verse)은 끝난다. 그러다 보니, 소리의 제약에 따라 이따금 문장이 한 시행에서 완결되지 못하고 다른 시행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이런 “넘어가기”를 수사법적 용어로 “뛰어넘기(encabalgamiento)”라고 하며, 이런 경우 시행을 뛰어넘은 한 문장으로서의 의미와 주어진 시행 그대로의 단독 의미라는 두 의미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뛰어넘기” 수사법은 정형시에서는 흔히 음절 맞추기적 필요성에서 생긴 결과로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음절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시에 와서는 시행 바꾸기가 그 때 그때마다 “왜?”라는 의미 요구 앞에 서게 된다. 자유시는 시행이 산문의 문장(oración,sentence)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장은 시행과 달리 하나의 소리 단위, 하나의 의미 단위이다. 자유시가 산문의 문장의 법칙을 시행의 법칙으로 받아들이면서, 말하자면 시인의 마음대로 시행을 바꿀 수 있게 만들면서, 이제는 “왜 여기에서 시행을 바꾸는가?”라는 질문에 시시각각 대답해야 하는 의미 요구를 받게 되었던 것.

따라서 많은 의미 산출을 욕심내던 상징주의가 자유시를 도입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시행 바꾸기 형식조차도 정형시의 의미 외적인 외재율보다는 또다른 의미 산출의 강력한 도구로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산문의 한 문장은 한 소리 단위면서 동시에 한 의미 단위이다. 이제 시는 이런 산문의 문장적 성격을 시구 나누기에 도입함으로서, 자유시의 한 시구는 이제 반드시 하나의 의미 단위의 성격을 강하게 요구 받게 된 것.

자유시 형식이 우리 시에서도 혁명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한시나 시조가 모두 정형시였으니까. 그러나 우리 신체시는 중국의 백화문학처럼 우선 문학의 문어체, 한문시, 한문체에 대한 구어체로 쓰기에 더욱 열중했다. 김안서나 소월의 경우에서 보듯, 그들은 구어체로 신시를 쓰면서 그 율격의 문제를 민요에서 따오면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아무도 모르게 차차 자유시체로 우리 시가 정착해간다. 말하자면, 시 리듬 자체의 벽혁의 혁명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새로운 시형식, 말하듯이 놀해하듯이 자유롭게 쓰기라는 이상한 “신체시”가 생긴 것.

여기에서 우리 시는 민요조로 쓰느냐, 아무렇게 자유시로 쓰느냐에 대한 고민의 순간조차 없었다. 말하자면, 왜 꼭 이 시를 자유시로 써야 하느냐 하는 고민조차도 우리 시인들에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시는 상징주의의 다양한 의미 산출의 장치인 시형식의 묘(妙)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음(音) 상징의 묘(妙) 또한 우리 시에는 그다지 오묘한 것들이 드믈다. 그 이유인 즉, 우리는 서구 상징주의의 다의미 창출의 고뇌와 형이상학적 깊이보다는, 이와 너무 다르게 우리 시의 시표현이 흔히 안이한 감정주의적 서정성에 머문 이유가 여기 있다.

사실상 서양의 상징주의는 동양의 예술이나 시를 많이 모방하려 애썼다. 내가 “서양 문학 속의 동양”에서 자세히 연구하고 있듯이, 호꾸사이 그림의 여백(餘白)의 아름다움이나 동양시의 여운(餘韻), 하이꾸의 의미성 등은 서구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학자에 따라서는 자유시가 동양시 형식의 모방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그것은 라프까디오 헌이나 로띠 같은 동양을 서구에 소개한 작가들이 쓴 동양시의 자유로운 번역이나 서정적 글들이 새로운 시표현의 가능성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유 약우의 “중국의 문학 이론”은 동서가 비슷한 문학 이론들을 공유하고 있음을 늘 이야기한다. 그는 중국의 심미주의 이론을 열거하고,“...서구에도 비슷한 것이 많다”는 식으로 개관한다. 그는 특히 에즈라 파운드의 “시각시(Phaopoea)”, “음악시(Melopoeia)”, “언어시(Logopoeia)”가 유협(劉勰)의 세 가지 무늬들 “형문(形文)”, “성문(聲文)”, “정문(情文)”과 비슷함을 지적한다. 그러나 서구 학자들이 추상적으로 미(美)를 논의하거나,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한 오스카 와일드의 심미주의처럼 부도덕성까지 아름다움으로 간주한 경우는 중국 문학에 없었다고 못 박는다.

나는 동양시의 서정성이 다분히 서양의 후기 낭만주의적 감성하고 일치한다고 본다. 감정의 내적 성찰이나 암시성이 동양시에는 거의 일반화되어 있는 성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동양시가 더욱 탁월한 것은 상징주의 시가 개척한 동감각(synaesthesia)의 시적 활용이다. 이미 에즈라 파운드가 중국시의 이미지즘을 격찬했듯이, 실제로 동양시, 특히 당시(唐詩))에는 뛰어난 이미지의 활용이 보인다.

정 상홍은 “중국의 시론과 화론 1--산수시와 산수화”라는 글에서 왕유의 시에 대한 소식(蘇軾)의 평을 인용한다. “왕유의 시를 맛보면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왕유의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 즉 저 유명한 “시중유화(詩中有畵)”의 전통은 왕유뿐만 아니라 모든 동양시에 뿌리가 된다. 같은 글이 인용한 왕유의 “산중(山中)”이란 시를 보자.

 

“형계엔 흰 돌이 드러나 있고

날씨 차거우니 붉은 단풍잎도 드물다

산길엔 애당초 비도 오지 않았건만

파란 산기운이 옷을 적신다.”

 

위 시에는 엄청난 공감각이 높은 시취를 자아낸다. 먼저 “날씨 차가우니 붉은 단풍잎도 드물다”는 붉은 색,즉 따뜻한 색과 차가운 날씨가 대조를 이룬다. 말하자면, 촉각적 “차가움”과 시각적 “붉은 단풍”이 공감각(촉각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멋진 공감각 활용은 “파란 산기운이 옷을 적신다(空翠濕人衣)”이라는 절구다. 파란 색깔이 어찌 옷을 적시랴. 이를 강조하기 위해 “산길엔 애당초 비도 오지 않았건만”이라는 시구까지 달고 있다. 이런 표현이야 말로 공감각을 사용한 훌륭한 인상주의 그림이 아닌가.

우리는 상징주의와 인상주의가 상당히 혼동된 개념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말을 바꾸면, 동양시의 이런 인상주의 전통은 서구 상징주의가 그토록 탐내던 자연 속의 사물 사이의 교감을 이루어내는 장치였다. 프랑스 상징주의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영향 받은 파운드의 이미지즘은 바로 동양 예술의 이런 영상미를 발견하고 거기에 심취했던 것.

나는 동양시의 영상미가 서구의 상징주의처럼 심오한 형이상학적 시취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을 안다. 그것은 동양시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경배, 거기에 직감(直感)을 존중하는 진솔성이 서양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동양시는 시도(詩道)를 추구하는 반면에, 서양시는 끝까지 상징적 의미 추구의 열망을 버리지 않았다. 동양 시인의 자연의 오묘성에 심취하여 삶의 향기를 이루어내려는 풍류정신이 앞서는 반면에, 서양은 신과 우주의 궁극적 원리를 밝혀내고자 하는 열념이 시작에 있어서까지 앞서고 있다. 상징주의 시인들에게 있어 모호성이란 결국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으리라는 기대감의 확대이지, 천인(天人)합일이나 자연 속의 무아(無我)지경, 혹은 깨달음을 향한 열망은 아니었다.

동양 시인이 끝까지 시어나 말에 크게 무게를 주기보다는, 오하려 마음의 기(氣)나 풍경과의 합일에 마음을 쏟았다면, 서양 시인들은 마지막까지 말의 탐구, 시어의 표현 가능성의 확대에 더욱 큰 희망을 걸었다. 그런 뜻에서 시인의 잠재의식의 해방까지 꿈꾸었던 초현실주의 또한 자연 중심, 풍경중심적 시학아라기보다는 인간중심의 해탈운동이었다. 자기를 버리고 자연과 하나 되는 불교나 노장적 이상과는 거리가 먼 반(反)이성적 이성운동이었을 뿐이다.

동양이 서양에 배울 것이 있다면 시어의 표현 가능성에 대한 보다 투철한 개척 정신이다. 서양은 17 세기 바로크 문학에서부터 “인공적인 것이 아름답다(공고라)”는 것을 발견하고 문학하기에 있어서 말과 수사학을 최대로 발전시켰다. 이것은 어쩌면 해체주의의 주장처럼 어차피 진리나 자연을 원 모습, 원가(原價) 그대로 표현할 언어는 없다는 확신에서였는지도 모른다. 말을 바꾸면, 서양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처럼 자연을 모방한다는 가능성을 벌써부터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보다는 차라리 말의 놀이 속에서 빛과 아름다움의 무늬를 산출하는 재미를 맛보았다고나 할까.

그러나 서양은 동양에서 언행일치(言行一致),양명학(陽明學)의 지행합일(知行合一)적 이상에 대한 믿음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행동과 삶을 그대로 구현하는 언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거기에 중용(中庸)에서 주장하는 성(誠)이 촉매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라.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 자연에 대한 성실한 사랑으로 언어를 빚을 때, 시인의 성실성에 흠이 없을 때, 인간은 성인스러운 절묘한 언어의 경지에 이를 수도 있다. 이것이 최소한도 동양 시인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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