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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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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4권 (55) 김장혁
2022년 10월 31일 12시 40분  조회:141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65. 제문(齐门)과 사탑(斜塔)에 맺힌 한
 
      때마침 일요일이여서 군철은 또 박문 총경리 부부를 모시고 소주를 유람하기로 했다.
     링컨 하이야는 소주 옛 동쪽토성 중간으로 해 있는 상문(相门) 부근에 가서 멈춰섰다.
저 멀리 옛 토성에 높고 둥그런 궁형 돌대문이 푸른 물이 출렁이는 호성하를 굽어보고 있었다.
     약삭빠른 윤선은 벌써 하나와 함께 상문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전날에 미라씨가 윤선의 녀친도 보고 싶다고 해  군철한테서 비준받고 하나를 데리고 왔던 것이다.
    군철은 박총경리와 토론하고 미라씨 심기를 건드릴가 봐  녀비서들은 첫날 공항에서 꽃다발을 드린 후에는 일절 동행하지 말게 하고 윤선이만 동행시키자고 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고모님, 저의 녀친입니다.”
“안녕하세요?”
미라씨는 곱게 인사하는 하나의 손을 잡고 아양을 떨었다.
“아이고, 참 이뻐라.”
그녀는 하나의 손을 매만지면서 연신 덕담을 했다.
“요 손 봐. 얼마나 따뜻하고 이쁜가? 명함 어떻게 불러요?”
하나는 허리 굽혀 인사하면서 대답했다.
“리하나라고 불러요.”
하나는 박문 총경리를 흘끔 곁눈질했다.
박총경리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여보, 하나는 내 비서라우.”
“그래? 하나씨는 무슨 리씬데요?”
하나가 아무런 고려없이 대답했다.
“전주 리씨입니다.”
미라씨는 남편을 돌아보며 종알거렸다.
“외가집 미녀를 비서로 둬서 좋겠군요.”
그러자 박총경리는 림기응변하며 유머를 했다.
“전주 리씨네 녀자들 어디 쉬운가? 내 어머니 참 호랑이 같은 분이지. 난 하나한테 꼼짝도 못해. 저 눈길 보라오. 얼마나 표독스러운가? 당신 시름 싹 놨네그려. 허허허.”
“그래? 전주 리씨네 녀자들도 리씨 조선 왕의 후손인데 호락호락하겠어? 우리 경주 김씨네 녀자들 못잖을기여. 호호호. 하나씨, 저의 남편 잘 부탁드려요. 조금만 주정하면 몽둥이로 호되게 다스려요. 녀자는 사무러워야 해. 호호호.”
미라씨가 받아넘기는 유머에 박총경리는 군철을 돌아보며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다 최총경리 아량있게 배치한 덕이지. 허허허.”
미라씨는 남편의 실눈을 곁눈질하더니 외씨 같은 얼굴을 반쯤 돌려 군철의 우멍눈을 돌아보며 가만히 엄지를 척 내들어보였다.
박문은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다.
(아저씨, 참 잘 배치했어요. 저 나그넨 항상 실눈을 해가지고 이쁜 계집들만 퀭하니 살핀다니깐. 박경리, 어디 혼쌀나 봐. 딸 같고 조카 같은 피붙이여자한테. 저 하나라던가. 봐. 얼마나 표독스럽게 생겼어. 쟨 진짜 전주 리씨네 녀자 같이 우악스러워 보이 잖나? ㅋㅋ.”
그녀는 군철이 나이는 어려도 총명하고 주도면밀하다고 감탄했다.
(쭉 벗겨진 번대머리, 우멍눈을 봐. 어디 쉽게 생겼나? ㅎㅎㅎ.)
박문은 한쪽 구석에서 하나를 보고 뒤저참했다.
(저렇게 사무럽기에 최부총경리 비서로 쓰잖고 나한테  보내줬구나.)
그는 며칠 밖에 쓰지도 않았지만 벌써 속으로 어떻게 하나를 떼버릴가 궁리했다.
군철은 그들 부부를 데리고 상문(相门)으로 다가갔다. 궁형으로 된 상문은 두께가 한20여메터도 되였다. 광장에는 옛 대포와 포탄, 갑옷과 투구, 검, 창 등이 줄느런히 진렬되여 있었다.
상문 토성 리면에는 2층으로 된 소주 옛토성력사박물관(古城墙历史博物馆)도 있었다.
군철은 박문 부부를 모시고 박물관에 들어가 돌아보았다. 꽤나 넓은 토성 안의 2층 건물이였다. 바깥에서 보면 빈 토성 같았지만 토성 안에 들어와 보면 기실 널다란 군사 비밀주둔지였다.
“옛날에는 토성 밑 여기에 군사 300명도 주둔시킨 커다란 비밀주둔지였다고 합니다.”
박물관에서 나와 그들은 잿빛토성에 올라갔다. 옛 토성은 만리장성처럼 높고 웅장했다. 옛 토성 바깥에는 넓이 100메터도 되는 호성하가 화려한 유람선을 업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호성하에는 유람선 외에도 돛배경기를 연습하는 자그마한 돛배도 떠 있고 갈매기들이 날아예고 있었다.  
토성 안 서쪽 거울처럼 호수에서는 숱한 유람객들이 쪽배를 타고 가족끼리 애들이랑 데리고 한가하게 배놀이를 하고 있었다. 참말로 별유천지였다.
 “배놀이를 할가요?”
군철의 물음에 미려씨는 생각 밖으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소주 옛성이나 돌아보지요.”
“네, 알았습니다. 이 상문 저쪽 상문지하철역 북쪽에는 소주대학이 있습니다."
"소주는 대도시도 아니고 중도시겠는데도 지하철도 있는가요?"
"네. 소주는 성소재지도 아니자만요 지금 인구가 천만이 넘었어요. 기실 대도시나 마찬가지죠. 지하철도 여러갈래 있는데요. 이제 8호선까지 개통한다고 해요. 공업원구와 상성구에는 무인조종공중버스와 무인조종우편운송차도 많아요."
군철의 말에 미라씨는 연신 감탄했다.
"네-  중국이 참 발전했군요. 미국에서도 볼 수 없는 기적이구만요."
박문도 끼여들었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와봐야 중국이 얼마나 발전했는가 알 수 있어."
"참 그래요."
군철은 뒷말을 이었다.
"저기 북쪽 소주대학에는 영국 유명대 켐프리치대학과 프랑스 유명대 리오대학 분원이 있습니다. 형수님도 알겠지만요. 프랑스 리오대학은 지난세기 초 중국 총리 주은래, 주덕 원수와 진의 원수, 제2세대 지도자 등소평 등을 배출한 유명대 아닌가요?”
“소주 문 앞에서 프랑스 유명대를 다닐 수 있어 얼마나 편리해?”
박문의 말에 미라씨는 제꺽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우리 애들도 소주대학에 다니게 할가? 영국이나 프랑스에 가잖고도 유명대 다니는게 얼마나 좋아요?”
“글쎄, 애들과 잘 토론하자고. 아예. 애들도 데려오든지. 허허허. 당신 이번에 오길 잘했어. 애들한테도 새 길이 열렸네그려. 허허허.”
“그래요. 와보니 점차 다른 세상이 열리는 거 같아요.”
박문은 군철을 돌아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엄지를  쳐들었다.
(이봐, 아우 덕에 처자들을 되찾게 될 거 같아. ㅎㅎㅎ.)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옛 토성에서 내리자 부두에로 그들을 안내했다.
부두에는 벌써 애리싸가 단독유람선을 대기시키고 있었다.
그들은 인차 유람선에 올라 호성하를 따라 유유히 북쪽으로 달려갔다.
유람선은 소주 옛 토성 동북쪽을 굽이 돌아갔다. 얼마 달리지 않아 푸르른 참대숲이 설레이며 그들을 맞아주었다. 참대숲이 뒤로 물러가자 고풍이 짙은 목조정자와 거대한 석조대문이 호성하를 마주해 서 있었다.
유람선은 속도를 늦추며 석조대문에 천천히 다가갔다.
군철은 배머리에 서서 박총경리와 미라씨를 돌아보더니 그 돌대문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저 돌대문 위에는 고문으로 처문(妻门)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잖습니까? 저 대문은 또 제문(齐门)이라고도 합니다. 이 곳에는 제나라 (齐国) 공주의 눈물겨운 망향의 한이 서려 있습니다.
오자서 장군은 오왕 광(光)을 보고 ‘월나라와 화해하지 말고 제자라를 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왕 광은 오자서 승상의 권고는 듣지도 않고 오히려 월나라에서 미녀 서시를 바치자 월나라와 화해하고 산동 동남부에 웅거해 있는 제나라(齐国)를 치려고 했지요. 그러자 齐(제)나라 왕은 제나라 공주를 오왕에게 바치고 화해를 청했다고 합니다. 하여 오왕은 잠시 제나라와 화해했답니다.
 오나라 왕비로 온 제나라 공주는  거의 날마다 이 강뚝에 서서  북쪽의 제나라  고향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부모형제를 그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답니다.
       후세에 오나라 왕으로 된 제나라 공주의 아들은 모태왕후(母太王后)가 제나라 고향을 바라보는 이 강뚝에 망제터(往齐基)라는 저  기념대문과 루각을 지어드렸지요. 또 저기 저 뭍에 어머니 왕비가 비나 해볕을 피해 쉬라고 정자와 화원도 마련해드렸다고 합니다. 후세 소주 사람들은 거의 날마다 눈물을 흘리며 제나라 고향을 바라보던 제나라 공주를 기리여 이 대문을 제문(齐门) 혹은 처문(妻门)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미라씨는 눈물이 글썽해 제문을 바라보았다.
      “참, 그저 스치고 지나갈 대문이 아니군요.”
박총경리도 안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제문에 올라가 볼가요?”
미라씨는 군철의 제의를 제꺽 받아들였다.
“그래요. 올라가 보지요.”
유람선은 호성하가에 젤 낮은 언제쪽에 천천히 다가가 대였다.
군철과 윤선은 박총경리를 부축하고 애리싸와 하나는 미라씨를 부축해 호성하 언제에 올라가 돌층계를 밟고 옛성 둔덕에 올라갔다.
미라씨는 “망제터”에 올라가 석조대문을 보자 다가가 손으로 돌대문 기둥을 매만지면서 나직이 감탄했다.
“이 석조대문은 딱 우리 한국의 홍살문 같게 생겼네요. 어느 쪽에 제나라가 있는가요?”
군철은 서북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보세요. 대문이 서북쪽을 향하지 않았는가요? 여기서 서북쪽 지금의 산동 남쪽에 제나라가 있었지요.”
박문은 서북쪽 구름이 둥둥 떠 흐르는 푸르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옛 토성 가에서 참대숲이 씁쓸하게 설레이고 락엽이 우수수 지여 겹겹이 쌓이면서 제나라 공주에 대한 쓰라린 옛 추억이 겹겹이 쌓인다. 
미라씨는 서북쪽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합장하고 짙은 눈섭아래 쌍까풀눈을 살풋이 내리감고 뭐라고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제나라 고향의 부모형제들을 그리며 울던 공주가 불쌍해  하느님께 명복을 빌고 있었다. 이윽고 살며시 뜨는 그녀의 쌍까풀 두 눈귀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를 흘러 두 볼을 적시였다. 그녀는 핸드빽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때 제문 앞 맑은 호성하 강면을 스치며 잿빛비둘기가 훨훨 나래쳐 지나갔다.
"불쌍한 제공주여, 저 비둘기처럼 날개라도 있었더라면 훨훨 날아 제나라 본가집에 날아갔겠는 걸. 참 너무나도 원통하군." 
미라씨는 박문을 보고 나직이 물었다.
“우리 한국 경주는 어느 방향에 있는가요?”
고향을 그리는 제공주 옛말을 듣고 분명 미라씨도 자기 고향이 생각난 것이리라.
박문은 윤선한테 눈길을 주었다.
윤선은 동북쪽을 가리켰다.
“경주는 대개 저 방향에 있을 겁니다.”
“알았어. 조카도 오라고. 우리 조상왕님들이 계시는 경주를 향해 명복을 기도드립세.”
“네. 그렇게 합시다.”
미라씨는 윤선과 함께 경주가 있다는 동북쪽을 향해 돌아서서   두 손을 합장하고 두 눈을 살며시 감고 묵념에 빠진 채 조상들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
미라씨는 한 많은 망제터 제문을 떠나면서도 자꾸 한탄했다. 
“제나라 공주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겠어? 여기 망제터에는 제나라 공주의 눈물로 얼룩졌겠구나. 아, 제문에 맺힌 한이여.”
유람선은 한숨을 토해내는 그들을 싣고 또 호성하를 따라 서쪽으로 달려갔다. 초겨울 날에 때  아닌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려 제문의 한을 다스릴 길 없어 쓸쓸하기만 했다.
유람선은 소주역 맞은켠 평문(平门)에 이르러 속도를 죽였다. 평문 루각은 소주 옛성의 8대 대문 가운데서 젤 높고 잘 보존된 대문이였다.
실실이 드리운 실버들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평문과 재빛토성은 참말로 웅장해보였다.
군철은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소주시 정부에서는 40여억원이나 투자해 소주 옛성과 호성하, 대운하 등 력사문화재를 알뜰히 재수건했습니다.”
박문과 미라씨는 머리를 끄덕이며 탄복했다.
윤선과 애리싸는 평문과 소주역을 배경으로 박문총경리 부부한테 기념사진을 촬영해주었다. 하나는 나란히 선 군철과 애리싸한테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고풍스레 지은 평문루각과 소주역을 신기한 눈길로 둘러보며 미라씨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건뜻 반공중에 높이 쳐들린 추녀, 호성하가에 실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넘실거리는 실버들, 화려한 유람선에서 희희락락거리며 손을 젓는 선남선녀들…금방 내린 햇비를 머금고  실버들은 맑게 개인 파란 하늘에 유난히도 아름다움을 넘실거리며 뽐내고 있지 않겠는가.
미라씨는 선경 같은 경치에 퐁당 빠져 턱을 고이고 유람선 머리에 서서 한참이나 명상에 잠겼다.
“소주는 진짜 고풍스러운 명승고적이야. 첫인상 만점이야. 내 숱한 즉흥시와 기행문을 쓸 거 같애.”
미라씨는 남편을 돌아보며 연신 감탄했다.
“그럼, 소주에서 마음것 구경하고 당신 좋아하는 시나 기행문을 쓰구려.”
“다만 애들을 데리고 오지 못한 게 한이야.”
“그럼 인차 애들을 데려오라구.”
그들 부부가 주고 받는 대화를 듣고 군철은 윤선과 하나를 돌아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사모님은 완전히 소주 명승고적에 빠져버려 인차 귀국할 것 같잖구나. 그럼 박총경리 고독공포증도 뚝 떼주겠는데. ㅋㅋ.”
유람선은 천천히 서쪽으로 미끌어져갔다.
유람선은 한참 달려 고소(姑苏)대문가 호성하에 이르렀다. 이 곳 호성하는 강폭이 백메터도 더 되게 넓었다.
호화로운 유람선은 산당가수향(山塘街水乡) 어귀 호성하에 이르러 멈춰섰다.
그들은 유람선에서 내려 고풍스러운 산당가를 돌아보며 마른 찹쌀떡도 사서 맛보았다. 산당가수향은 평강수향과 함께 소주에서 2500여년 전부터 있은 젤 오랜 유서깊은 수향이였다. 산당가에는 고풍이 완연한 수향풍치가 력력했다. 석판을 깐 거리 량켠에는 찹쌀떡, 양고기꼬치, 잉어꼬치 같은 수향의 먹거리가게 외에도 강남의 독특한 비단옷가게, 금은액세서리가게 등 가지각색 가게가 줄느런히 늘어서 있었다. 상업거리에는 발 딛일 틈 없을 지경으로 유람객들이 붐비였다.
군철은 가이드처럼 또 안내말을 엮어댔다.    
“이 마른 참쌀떡은 옛날 오자서 장군이 소주 군민들 보고 군량으로 저장해두게 했던 떡이죠. 소주 사람들은 오자서 장군을 기리여 아직도 이 마른 찹쌀떡을 즐겨 먹는다고 해요.”
미라씨와 애리싸는 마른 찹쌀떡을 바삭바삭 씹어 먹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월궁교에 올라 산당가 옛 건물과 거리, 수로를 내려다보며 미라씨와 박문은 산당가의 독특한 강남 풍치에 또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산당가 부두에서 군철의 비서 경희가 화려한 자그마한 유람선을 대기시키고 있었다.
그들 일행은 부두에서 자그마한 유람선을 갈아탔다. 자그마한 쪽배유람선은 그들 일행을 싣고 폭이 10메터 좌우 되는 수로를 따라 서북쪽으로 미끌어져 나갔다.
      선미에서 뱃사공이 노를 힘차게 저으며 강남의 부드러운 말로 배놀이 노래를 흥얼흥얼 불렀다.
      한참 후에 그들은  소주 옛성 서북쪽 산에 우뚝 솟아 있는 호구(虎丘)의 사탑(斜塔) 아래 부두에 이르렀다.
뭍에 오르자마자 군철은 사탑을 가리켰다.
“저기 저 사탑을 보세요. 왼쪽으로 비뚤지 않았는가요?”
“네- 정말 삐뚤었는데요.”
미라씨가 감탄하자 박문도 덧붙였다.
“비뚤었는데 어쩜 무너도 안졌어?”
군철은 사탑을 가리키면서 소개했다.
“저 탑은 2천 5백여년 전에 제나라 공주의 아들 성(圣)이 오왕 위에 오른 후 父王 광과 母王太后(제나라 공주)의 산소 옆에 세운 망향탑(往乡塔)인데요. 오왕 성(圣)은  母王太后(齐国公主)가 생전에 거의 날마다 소주 성북의 망향터(望乡基)에서 제나라 고향 쪽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며 부모형제를 그린 눈물겨운 일을 잊지 못해 저 탑을 이 호구(虎丘)에 세웠지요. 호구는 제나라 쪽을 바라보기 젤 좋은 산이였죠. 호구는 소주 동북쪽에서 제일 높은 산인데요. 그래서 오왕은 호구에 부모 산소를 쓰고 그 옆에 탑(塔)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후에 수토층이 깔아앉으면서 탑이 왼쪽으로 기울었다고 합니다.”
“오왕 성은 참말로 효자로군요.”
미라씨는 감탄했다.
군철은 머리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그래요. 저 탑은 연통처럼 속이 텅 비였는데요. 제나라를 그렇게 그리던 모왕태후의 혼이라도 그 속으로 날아올라가 제나라로 돌아가라는 념원,  효자 ㅡ 오왕 성의 념원이 담겨 있다고 해요. 사탑은 보세요. 세워진지 2천년도 넘었지만 탑이 좀 왼쪽으로 비뚤어졌을 뿐인데요. 오왕 성의 효성에 받들려 아직도 제나라 쪽을 바라보며 소주 땅에 서 있다고 해요.”
 말하는 사이 호구 산 기슭에 놓인 서너길이나 높은 엄청 큰 향로 가까이에 이르렀다.
군철의 설명은 계속됐다.
“오왕 성은 인부를 동원해 소주 옛성으로부터 사탑까지 수로를 팠지요. 금방 우리 배를 타고 온 수로 말이죠. 오왕 성은 해마다 청명과 추석 전 음력 7월 15일이면 이  수로로 호화로운 유람선을 타고 부모 산소에 와서 이 향로에 향을 태우면서 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박문과 미라씨는 향로를 향해 합장배려하고 두 눈을 꼭 감고 허리를 세번이나 굽히며 하느님께 속으로 빌었다.  
제나라 공주 모왕태후의 명복을 빌었을가?
오왕 성의 효성을 빌었을가?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리라.
그들은 천천히 걸어 낮다란 토성 대문을 지나 천천히 호구 산둔덕으로 올라가 탑 가까이에 이르렀다.
탑 아래서 탑 꼭대기를 올려다보니 눈뿌리가 아찔할 지경으로 높았다.  이끼 낀 탑 꼭대기에 구름이 걸릴 지경이였다.
윤선과 하나는 유서 깊은 사탑을 배경으로 박총경리 부부에게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미라씨는 터덕터덕한 사탑에 다가가 재빛벽돌탑을 매만지더니 너무나 의경이 짙은 사탑을 두고 시흥이 끓어번져 즉흥시조를 읊었다.
 
                
                 사탑(斜塔)
                             
 
        2천년 세월 흘러 기념탑 비뚤어도
 
       왕자의 충효심은 퇴색치 않았구나
 
       장하다 효자 왕자여 천년만년 기리리
 
 
“명시조 탄생을 축하합니다!”
모두들 박수갈채를 보냈다.
미라씨는 경건한 마음으로 한참이나 사탑을 쳐다보다가 군철을 따라 호구 산둔덕을 내려갔다.
왕족들이 제사를 지내고 쉬던 옛날 차집도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지 않겠는가.
군철은 그들 일행을 데리고 차집에 들어갔다. 미라씨는 옛 차집 창가에 앉아 커피를 호호 불어 마시면서 호구 산 아래를 내려다 보노라니 감회가 깊었다.
산 아래에서는 겨울이건만 락엽이 우수수 지는 산 기슭에 푸른 참대숲이 설레이고 월계화가  꽃웃음짓고 있어 별유천지였다.
한참 후 그들은 산 중턱에 있는 벽계수에 놓인 석조 궁형다리 위에 올라갔다.
군철은 미라씨한테 알려주었다.
“저 절벽 밑에 오왕 광과 왕비(제나라 공주)의 무덤이 있다고 해요. 오왕 성은 부모의 산소가  후세인들한테 들키지 않게 하려고 벽계수 물을 가두어 산소를 물로 묻어버렸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산소 입구를 찾지 못하고 있지요. 사탑이 한쪽으로 비뚠 것은 이 벽계수 수토층이 한쪽으롤 낮아졌기 때문이라고도 해요.”
미라씨는 머리를 끄덕였다.
궁형다리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백여평방메터나 넓이나 되는 빤빤하고 경사진 거대한 석판이 나타났다.
“오왕은 부모의 산소와 탑을 다 건설한 후 내부시설 비밀이 루설될가 봐 목수와 석공, 민공 등 천여명이나 이 넓은  석판에 모여놓고 몽땅 칼탕쳐 죽였다고 합니다. 이걸 보세요. 이 돌판이 아직도 벌겋잖아요? 그때 살해된 인부들의 피로 물들어 아직도 돌판이 뻘겋다고 해요.”
군철의 설명을 듣고 미라씨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끔찍하기도. 아무리 효성이 중해도 어쩜 무고한 백성들을 지독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요?”
그녀는 쓸쓸히 머리를 들어 산정에 우뚝 솟은 한 맺힌 사탑을 다시 쳐다보았다.
       하늘도 구슬퍼 눈물을 흘리는가. 초겨울 하늘에서 불시에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아마 왕자가 지독한 마음을 삐뚤게 먹고 백성을 도륙냈다고 탑도 비뚤어졌겠어요.”
미라씨는 산당가에 되돌아와 유람선을 타고 호성하를 달리면서도 자꾸 사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즉흥시조를 더듬기 시작하였다.
 
            한 많은 사탑아
 
      왕자의 효성에야 머리를 숙인다만
      백성들 비명소리 귀전에 쟁쟁하다
       한 많은 사탑아 원귀 곡성안고 무너져라
 
      어느덧 서산에 황혼의 락조가 유람선을 업고 달리는 호성하를 누렇게 비추었다. 뒤이어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리드리우기 시작하였다.
      유람선은 소주 옛성 서쪽 중간에 난 서문(胥门)을 지나 호성하를 스피드를 높여 달리고 있었다.
군철은 소주 명승고적 자랑을 늘여놓았다.
“소주 구경은 이제 시작인데요. 아마 한달 동안 구경해도 다 구경하지 못할 걸요. 소주에는 명승고적 원림이 많아요. 졸정원(拙政园)사자림, 오원(藕园), 류원(留园)...  또 수향(水乡)도 많아요. 주장(周庄), 동리(同里) ...  수많은 수향 너무 독특한 풍치 있는데요."
"소주 구경거리 너무도 많지요. 한달이나 두달에 다 볼 거 같지 못해. ”
군철이 끼여들었다. 
미라씨는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그래요? 한달이면 어떻고 반년이면 어때요. 온 바 하고는 소주 구경 다 해야죠. 소주 유람 참 좋아요.”
박문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소주 구경뿐이겠나? 우리 이제 항주 서호, 해남도 천애지각, 북경 만리장성, 남경 장강대교 다 구경해야지. 안 그래?”
“네."
군철은 미라씨에게 권했다.
"사모님은 소설가시니깐요. 절강 소흥에 가서 중국 유명한 작가 로신의 고향도 돌아보아야죠. 오진에 가서 유명작가 모순의 고향도 돌아봐야죠."
"그래요. 중국 명승고적이랑 작가 고향이랑 실컷 구형해야죠.”
“OK!”
미라씨의 말에 박문은 군철을 돌아보며 엄지와 식지를 딱 튕기며 희죽이 웃었다.
미라씨는 유람선을 타고 호성하를 돌며 소주 옛성의 황홀한 야경을 구경하면서도 아직도 한 많은 사탑을 생각하며 비감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유람선은 초롱불이 환한 반문에 이르렀다.
      반문의 항홀한 야경은 더욱 가관이였다. 미라씨의 눈 앞에는 반문 루각에서 마치 장검을 휘두르며 전투를 지휘하는 오자서 장군의 거룩한 모습이 방불히 보이는 상 싶었다. 달 밝은 밤에 대운하에 전고소리 둥둥 울리고 용사들의 고함소리 천지를 지동친다. 
      달리는 대형유람선에 불시에 림대옥이 나타났는가. 옛날 아가씨 복색을 한 이쁜 강남 처녀가 해금을 뜯으면서 청아한 목소리로 강남풍의 곡조로 제나라 귀공주의 "사향가"를 간드러지게 불렀다. 노래 가사도 쓸쓸한데 곡조가 어찌나 제나라 공주의 애절한 심정을 담아 쓸쓸히 노래하는지 달 밝은 밤에 유람선을 타고 달리는 유람객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박총경리와 미라씨는 소주 옛성 야경 정취에 흠뻑 취해 강남 아가씨가 부르는 "제공주의 사향가"를 흥에 겨워 흠상하였다.
      달리는 유람선을 따라 구중천의 밝은 별들도 인간세상의 희로애락을 즐기려고 호성하에 날아내려와 자맥질하며 금싸락 은싸락을 휘뿌린다.
       저기 저 오색령롱한 등불이 걸린 웅장한 반문 앞 높다란 궁형아치교 위에서는 아가씨들이  발돋음하며 련정을 못이겨 보름달과 키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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