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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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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3권 (34) 김장혁
2022년 08월 21일 10시 26분  조회:1242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3
    김장혁

                   44아들


       교활한 정호는 허병칠한테 손목시계핸드폰을 줘보내 수사일군들의 시선을 따돌린 후 오토바이에 나영을 태워가지고 도주방향을 돌려 성내로 되돌아왔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네놈들 발 밑에 돌아왔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어? 흥!)
그는 오토바이가 수사일군들의 표적이 됐다는 걸 알고 수림 속 후미진 곳에   버리고 나무가지를 꺾어다가 잘 덮어놓았다.
정호는 나영을 데리고 고속도로 옆에 서 있다가 달려 오는 택시를 불러 세워 타고 순식간에 B시로 달려갔다.
정호는 나영을 데리고 한 미용리발실로 스적스적 다가갔다. 이 시내는 정호가 늘상 출장왔던 곳이여서 손금 보듯 했다.
그러나 나영은 겁나 사처를 힐끔거렸다.
“겁내지 마. 괜히 경찰들 눈에 박히겠다.”
“미용실에 들어가 뭘 해요?”
“분장술을 써야 수사망을 피하지.”
“네-“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정호 팔을 끼고 붙어서서 걸으며 한숨을 호- 내쉬였다.
미용실에 들어가 정호는 미용사를 불러 까만 사마귀 기미를 수술해 빼버렸다. 제일 큰 표적으로 될 수 있는 기미를 빼버리니 한숨이 절로 났다.
그는 리발사를 불러 한줌도 안되는 머리카락을 짧게 깎아버리고 꺼슬꺼슬한 콧수염과 부시시한 팔다리 털도 말끔히 밀어버렸다.
나영도 긴 머리카락을 썩뚝썩뚝 잘라버렸다. 아까운 가지색 머리카락이 발 밑에 떨어져 널렸다.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지?)
그녀는 거울로 애지중지하던 머리카락이 한줌 한줌씩 잘려나가는 것을 들여다보며 아쉬운 한숨을 호- 호- 내쉬였다.
       나영은 얼굴 피부미용과 전신 마사지 한 후 샤와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에 샤와를 하였다. 순간 그간 추격당하면서 당한 피로가 스르르 풀렸다.
      정호는 긴 가지색가발과 까만 짧은 가발을 하나씩 골라 사서 머리에 얹어보았다. 진짜 정호의 옛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나영도 긴 까만 가발을 하나 골라 썼다. 진짜 가지색머리 미녀로부터 검정머리미녀로 탈바꿈했다.
반나절이나 거의 돼 정호는 나영을 데리고 미용실에서 나왔다.
그는 구석진 골목에 들어가 배낭을 벗어 열어제꼈다. 인민페 몇 묶음을 꺼내 나영의 배낭에 걷어넣었다.
“옷이랑 트렁크랑 근사한 걸로 갖추오. 내 몸에 맞는 녀자 옷도 사오. 바지는 청바지를 사오.”
“네? 녀자로 분장하곤 공항에서 비행기 타지 못할 걸.”
“잠시 녀자로 둔갑. ㅎㅎ.”
한참 후 나영은 녀자 옷 몇벌을 사 새 트렁크에 넣어 끌고 핸드빽을 팔에 걸고 나왔다. 진짜 미녀마님 같았다.
“백화점에서 건강마를 보자고 해서 혼났어요.”
“그래? 어떻게 들어갔어?”
“불시에 건강마 어데서? 문지기를 구석에 데리고 가서 가만히 백원짜리 쥐여주고서야 겨우 혼입했죠.”
“음. 건강마가 문제야.”
“건강마 있기 전엔 그러루한 장소에 들어가지 말죠.”
“안돼.”
정호는 주위를 두루 살피며 중얼거렸다.
“시내에서 거지 행세할 생각 말라. 하루를 살아도 우린 고급호텔과 고급식당에 드나들면서 신사숙녀처럼 살아야 해.”
“좀 좋아서. ㅎㅎㅎ.”
정호는 나영의 어깨를 다독여주고나서 원피스를 골라쥐였다가 그만 두었다. 다리에 난 부시시한 털은 말끔히 밀어도 털뿌리가 드러나 가릴 수 없었다.
     그는 더운 대로 청바지에 녀자와이샤츠 하나 골라쥐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정호는 보기 어슬픈대로 걸음걸이부터 녀자처럼 비뚱거렸다.
나영은 코를 싸쥐고 웃었다.
그녀는 사위를 둘러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에이, 아무리 봐도 녀자 같잖아요.”
“뭔 소리냐?”
“그 팔 보세요. 부시시한 털. ㅋㅋ.”
정호는 거머스름한 팔을 내려다 보고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되겠어. 리발관에 가서 팔의 털을 밀어버릴가?”
“아니, 그럴 필요없어요. 옷만 너무 눈에 띄우는 걸 입지 않으면 돼요. 남들이야 녀자인지 남자인지 알 턱이 뭔가요?”
정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나영은 화장실에 들어가 새 원피스를 갈아입고 도주할 때 입었던 때 묻은 청바지와 와이샤쯔를 벗어 화징실 쓰레기통에 훌 던졌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오자 정호의 팔을 끼고 자매처럼 나란히 걸었다. 어색하나마 신분을 속이기는 괜찮은 것 같았다.
가지색에 가리울락말락한 우멍눈에 메부리코… 정호는 딱 서양 녀성 같은 멋이 났다.
그들은 택시를 잡아타고 먼길을 떠났다. 택시는 건강마도 검사하지 않고 실명제도 하지 않기에 도망치기 젤 좋은 교통운송도구였다.
며칠 동안 그들은 련이어 택시를 십여번 갈아타고 몇개 성과 시를 꿰질러 끝내  S시에 이르렀다.
“공항으로 가는가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나영이 물었다.
정호는 도리머리를 가로 저었다.
“아니오.”
“그럼 어디로 가는가요?”
“먼저 내 아들 만나 도움을 받아야겠소.”
나영은 혼비백산했다.
“아니, 무슨 소릴. 수사일군들이 당신 아들 핸드폰을 감시하겠는데.”
“그만한 거야 나도 알지.”
“그럼 무슨 수로 만난다고 그래요.”
“다 궁리해놨소.”
정호는 공원 의자에 나영을 물앉혀놓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시내 서북쪽으로 해 자리잡은 공원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져 뜨거운 해볕을 막아주었다. 그늘진 수림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정호는 자기들을 주시하는 사람이 없자 나직이 말했다.
“이제부터 최국장이요, 뭐요 하지 마오. 우린 만족, 나는 사영기업인 김성수 사장. 려권에도 그렇게 돼 있으니깐.”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다가 청포도 쌍까풀눈으로 정호를 치켜보았다.
“안돼요. 김씨는 조선족 성 아니고 뭔가요?”
“모르는 소리. 만족에도 김씨 있소.”
“네? 금시초문인데요.”
정호는 평소에는 말수가 적었는데 미녀들 앞에서는 말도 변설이였다.
“아이신줴러 누르하치가 바로 김씨요.”
그는 큰 발견이나 한 것처럼 건가래를 떼며 말했다.
“‘아이신줴러’는 바로 만족어로 ‘김씨’라는 말이라오. ‘줴러(觉勒:겨레)’는 한자어 어음을 따온 건데 고대조선어에선 ‘겨레’란 말이라오. ‘겨레”는 씨족(氏族)을 말한다오. 누르하치는 이름이고.  그러니깐. ‘아이신줴로 누르하치’란 이름은  ‘김씨 누르하치’ 즉 ‘김누르하치’란 말이라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진짜라니까. 이전에 나도 믿어지지 않았소. 어떤 학자가 북경도서관에까지 가서 중국 금조와 청조 력사책을 찾아보았단 말이오. 누르하치는 원래 중국 금태조 직계후손이라오.”
“금조는 녀진족이 세운 나라 아닌가요?”
“그렇지. 금조의 주체민족은 녀진족이지만. 금조 황가는 김씨라더군.”
“최국장, 아니,”
나영은 제꺽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사위를 살피고 나서 나직이 뒷말을 이었다.
“김사장은 력사도 잘 아네요. 누르하치가 김씨 후손이라니요. 참.”
“그럼 심심한데 력사 이야기 해줄가?”
“그래요.”
나영은 정호의 팔을 안고 나란히 앉아 머리를 어깨에 대며 귀를 기울였다.
정호는 아녀자 앞에서 큰 걸 아는척하면서 일장연설을 해댔다.
     "금태조는 흑룡강 동부 일대에서 녀진족의 우두머리로 돼 점차 세력을 확충해나가면서  동북의 녀진족부락들을 통일하고 금조를 세웠소. 그후 관내로 진군하는데 박차를 가해 중원을 다 점령했지. 금조를 어째 김씨라는 ‘금’자를 박아 금조라고 했겠소. 김씨가 세운 나라라는 걸 두드러지게 하자는게지. 금조가 망한 후 금조 황가 김씨네 후손 누르하치는 동북을 평정하고 녀진족후예들을 이끌고 후금조를 세웠고 후에 후금조를 청조로 고치고 녀진족을 통합해 만족으로 개칭했다오. 지금도 누루하치 직계후손들은 자기들은 김씨라는 걸 잊지 않고 있다오."
"그럼 청나라 말대황제 부의도 김씨겠지요?"
"그럼. 그도 아이신줴러(김씨) 황가 후손이니깐. 북경대학 한 아이신줴러(김씨) 만족녀교수도 아이신줴러는 김씨라고 분명히 밝힌바 있소. 그 녀교수 집에 있는 아이신줴러(김씨) 족보에는 직계조상 누루하치를 비롯한 ‘아이신줴러’ 가족은 김씨라고 밝혀져 있고 그들의 직계조상은 바로 아이신줴러(김씨) 누르하치라고 밝혀져 있다오. 금태조 조상이 어데서 왔는가를 더 깊이 파고 들면 더욱 놀라울게요. 그럼 넘 복잡하지. 음-"
말을 마치자 정호의 표정은 침울해졌다.
“그럼 그 만족녀교수- 김교수는 말대황제 부의와도 촌수 있겠지요?"
"촌수 있다뿐이겠소? 아주 가까운 친척이라오."
"와-   참 내 이제껏 모른 력사이야기군요.”
나영은 정호를 쳐다보며 종알거렸다.
"최국장, 아니, 김사장은 아는 것도 많아요. 참 아까운 사람이 이 지경 됐어요."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있겠소? 이젠 국장이구 뭐구 다 버리고 나영이 얼굴만 쳐다보고 살자고 뛰쳐나왔지."
정호는 나영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물었다.
“이젠 내 성씨를 만족 김씨라고 해도 괜찮겠지?”
“네- 괜찮을 거 같아요.”
“김사장, 전 뭐라 할가요?”
“김사장의 안해 허가인.”
“네? 푸-”
나영은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좋은 조상이 남겨준 나씨를 두고 조상까지 바뀌였네요."
"살자니 그렇게 됐네."
나영은 쌍까풀눈을 찔끔 해보이면서 능청을 부렸다.
"딸이라는게 더 어울릴 거 같은데요.”
정호는 우멍눈이 데꾼해졌다.
“왜? 부부라면 안돼?”
“수무살이나 차 나잖아요. 어떻게 안해로 돼요?”
정호는 씨무룩이 웃었다.
“어째 어울리잖나? 지금 세월에 무슨 나이타령인가? 우린 진짜 현실 부부잖아?”
“거야. 그렇지만요. 공항에서 믿겠어요?”
“믿고 믿지 않는 건 제 나름이지.”
정호는 나영의 무릎을 툭툭 쳐주었다.
“얼마나 랑만적이오? 지금은 개방 세월이여서 별 사이비한 일 다 있잖소? 스무살이 아니라 서른살 차 나는 부부도 수두룩하잖소?”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최국장이야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 서른살이나 차 나는 애인, 딸 같은 애인 임하영도 점유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루한 애인 어디 한둘인가? 이번에 내 쫓아왔으니 말이지. 최국장은 얼마든지 하영을 데리고 왔을 수도 있잖은가.)
정호는 나영의 어깨를 꼭 끌어안고 다정하게 쑤근거렸다.
“나영이, 수고해주겠소?”
나영은 정호 어깨에 머리를 가져다대며 물었다.
“뭐든 말해요.”
정호는 주위를 살피면서 부탁했다.
“내 아들 군철을 만나고 오오.”
“네?”
나영은 새물새물 눈웃음짓던 청포도눈이 대번에 데꾼해졌다. 봉이 버들잎눈섭마저 한데 찰싹 붙을 지경이였다.
“군철인지 뭔지. 당신 아들이라구 했죠?”
“그래, 내 아들이지.”
“아니, 당신 자식 하나도 없다고 본댁을 나무라더니. 허. 웬 아들 나졌어요?”
나영은 짐짓 이제껏 모른 것처럼 능청을 떨었다.
“그렇게 됐어. 나도 처음엔 영희 뱃 속의 애가 내 아들인줄도 몰랐지.”
정호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몰라. 아들과 손자들을 퍽 만나고 싶구만. 송림이하구 길림인 이젠 아주 컸을 거야.”
그는 영희와의 비극적인 사랑로맨스를 간단히 죽 이야기해주었다.
“최국장은 참 대단해요. 자기 노릇 다 했…”
정호는 손으로 나영의 입을 막으며 주위를 살폈다.
“또, 또. 무슨 최국장이야?”
“네, 김사장, 호호. 남의 배를 빌어 진짜 아들을 낳아 길렀군요.”
정호는 머리를 천천히 숙이며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무슨 남의 배야? 기실 영희는 내 젤 사랑하던 녀자야. 영희도 날 사랑했구. 우리 사이에 군철이 생긴 건 당연한 일이지.”
“군철이 당신을 아빠로 생갹할가요? 괜히 코만 떼우지 못해. 흥.”
“언제 그런 거 고려할 새 다 있소? 내 아들인 이상. 아들애 방조받아야 공항을 빠져나갈 거 같소.”
“네?”
정호는 배낭을 다시 메고 나영을 데리고 공원 한쪽 구석으로 갔다.
그는 한아름이나 되는 나무에 기대 서서 배냥을 내리워 열고 려권 두개에 주옥목걸이와 옥팔찌 한쌍, 손목시계핸드폰 두개 꺼내 나영한테 건네주었다.
나영은 일일이 받아 핸드빽에 챙겨넣었다.
정호는 영희 귀에 대고 군철을 이렇게 만나서 이리이리 말하라고 했다.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우쭐 일어섰다.
“헛 참. 이상 아들을 다 보러 가야겠군요. ㅉㅉ.”
정호는 나영이 몸을 돌려 떠나려는데 불러세웠다.
“잠간.”
그는 배낭을 열고 손목시계핸드폰 하나 더 꺼냈다.
“군철이 보고 무슨 일 있으면 이걸로 련락하라고 하오.”
“아니, 도청하지 않을가요?”
정호는 사위를 흘끔거리며 나직이 말했다.
“이건 신분증 없이 올린 대포폰이오. 허나 이걸로는 내 말고 다른 사람과는 통화하지 말라고 하오. 저도 절대 다른 사람과 통화는 금물이오. 알았소?”
“그럼 군철한테도 전화하지 말란 말인가요?”
“그래. 저승사자들이 지금 군철의 전화를 제일간 도청할 거야. 군철의 주위에 숱한 스파이들이 욱실거리면서 살피고 있을게요. 주의하오.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지 마오.”
“네. 제가 무슨 세살짜리 앤가 하는가요?”
나영은 곱게 눈을 흘겼다.
“항상 강가에 내놓은 애 같아 내내 근심스럽소. 별일 없으면 이 공원에서 만나기오.”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정호는 떠나가는 나영의 훤칠하고 섹시한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제발 순조로와야겠는데. 하느님이 보우해주옵소서.)
한편 나영은 정호 시켜준대로 택시를 잡아타고 군철이네 기업소 부근에 달려갔다.
한참 후 푸른 잔디가 깔린 넓다란 광장과 해자를 사이 두고 오성붉은기와 태극기가 휘날리는 커다란 기업소 대문이 바라보였다.
나영은 택시에서 내려 광장 구석진 곳에서 기업소 대문을 지키면서 군철이 퇴근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에이, 언제 퇴근하겠니?)
 아직도 한시간 넘어 기다려야 했다.
그는 손목시계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피뜩 군철한테 가만히 전화를 하고 싶었다.
“저승사자들이 지금 제일간 군철의 핸드폰을 도청할 거야.”
정호가 하던 경고가 귀전을 때렸다.
나영은 감히 전화하지 못하고 한숨만 호- 내쉬었다.
그녀는 용빼는 수가 없어 지루한대로 대문 안에 세워진 통근뻐스를 살피며 기다려야만 했다.
정호 말에 의하면, 군철은 이 중한합자기업에서 년금 몇십만원을 타는 부장질을 한다고 하였다.
“쳇, 부장이란 놈이 통근뻐스를 타고 다녀? 한국 기업이기에 청렴한 척 안해도 되겠는데. 흥!”
나영은 세상 만난 적도 없는 군철을 사진 한장 달랑 들고 대조해보면서 찾아내야 했다.
“아니야. 뻐스에서 내리는 걸 만나나 집에 가 만나나 다 꼬리를 밟히기 쉬워.”
나영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어쩐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자 그녀는 일단 군철이 퇴근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는 부지중 정호가 얄미웠다.
(자기는 아들을 만나도 되고. 난 어째 아들을 만나면 안되니?)
그녀는 저도 몰래 아들이 보고 싶었다.
장간 아들을 보고 싶은 강한모성애와 충동은 그녀를 모험의 낭떠러지로  떠밀었다.
(이 핸드폰으로 치면야. 누군지 알턱이 뭐냐?)
그녀는 요행을 바라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감히 남편 철석한테는 직접 전화를 치지 못했다. 생각하던 중 소학교 동기가 떠올랐다.
(걔는 저승사자들도 내 친구라는 걸 모를 거야.)
나영은 손목시계핸드폰을 들어 친구한테 전화했다.
“얘, 나야. 응? 지금 타성에 있어. 응? 남편과 싸우고 가출했어. 응. 너도 알지만 우린 금술이 그닥 좋지 않아. 응. 그래, 부부 생활이 원활하지 못하면 화목할 수 없잖아? ㅋㅋㅋ. 그래. 우린 한창 나이니깐. 욕구가 강렬하지. 그저 어구지에서 맨지작거려서야 어떻게 만족감을 느껴? ㅎㅎㅎ. 그래 대판 싸우고 가출했어.”
나영은 진말 절반, 거짓말 절반해 친구를 그럴듯하게 얼려 넘겼다.
“얘, 떠난지 오래니깐. 성림이 보고 싶구나. 응. 네가 좀 지금 수고해달라. 그래. 지금 인차 택시 타고 유치원에 가서 성림을 데려내다가 동영상 찍어 보내달라. 응. 될 수 있으면 성림과 화상통화를 하고 싶어. 응. 그럼 수고해라. 원쑤는 후에 톡톡이 갚을게. 응. 친구라도 그렇지. 신세야 갚아야지. 애를 유치원에서 데려내오면 이 번호에 전화해달라. 응.”
나영은 핸드폰을 끄려다가 또 뒷말을 이었다.
“잠간. 이 전화번호 누구한테도 알려주지 말라. 네만 알고 있어라. 응, 그 잘난 나그네한테도 절대 알려주지 말라. 응. 철석이를 만나면 성림하구 영상통화 그만 둬라. 응. 그래, 수고해라.”
나영은 전화를 끊고 기업소 대문 안을 살폈다. 그러나 아직 때 일렀다.
한참 후 핸드폰이 울렸다.
나영은 황급히 핸드폰을 켰다.
자그만한 손목시계핸드폰위에 레이자빛확대화면에 성림과 녀친이 눈앞에  큼직하게 나타났다.
“성림아!"
"엄마-! 엉엉엉- 엄마! 빨리 오라! 엄마 보고 싶어-"
"엄마 보고싶다고?”
"응. 하늘만큼 보고 싶다. 빨리 오라. 엄마."
성림은 엄마를 보자 마구 손짓하며 엉엉 울었다.
“엄마! 어데 갔어? 엄마 보고 싶어 죽겠다. 빨리 오라.”
“응, 그래. 엄마 지금 아파서 주사 맞으러 멀리 왔어. 엄마 이제 네 좋아하는 놀음감이랑 수태 사가지고 갈게. 응. 그래. 과자랑 아이스크림이랑 하늘만큼 사 갈게. 성림아, 엄마 우리 귀여운 아들 성림이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개쌍년아, 애를 두고 어디 갔어?!”
(아니, 이게 뭐야? )
화면에 욕지거리하는 남편 철석이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옆에서 성림은 엉엉 울고 있었다.
“어디로 간단 말도 하지 않고 뭐야? 지금 어딜 갔어? 빨리 돌아오지 못해?”
“ 지금 내 한국에 나와 있어요. 사전에 말하지 못해 미안해요. 부관장 철밥통 던지고 한국 나오겠다면 당신 동의했겠어요? 성림이 아빠, 지금 내 돈이 다 딸는데요. 내 로임카트 돈을 몽땅 찾아 보내줘요. 직접 보내기 그럼 지영한테 넘겨서 보내줘요.”
“픽, 개소릴 다 친다. 일전한푼 줄 거 같아?”
“이제 카드번호 알려주면 꼭 보내줘요.”
“주는가 봐라. 집에 돌아오면 줄게. 전번에 심계국과 반부패국에서 널 찾더라. 네 어디 있단 소식 있거나 전화 오면 알려달라더라.”
“절대 말하지 마쇼. 내 관장 돼 번 돈을 우리 삶림살이에 쓰잖았는가요? 절대 누구한테도 내 어데 있단 걸 알려주지 마쇼."
나영은 주위를 흘끔거리며 마무리했다.
"여기 바쁜데요. 끊습니다. 성림아, 빠이, 빠이-”
나영은 인차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녀는 인차 친구한테 위챗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얘, 어쩜 나그네 있는데 화상통화를 계속 해?
 
친구에게서도 메시지가 날아왔다.
 
유치원에서 낯도 모르는 나에게 애를 내놓자니? 그때 딱 네 나그네 애를 데리러 왔다가 마주 띄였다. 그래 애를 데리고 나온게야. 미안해.
 
큰 일 났어. 나그네 어디 있는 걸 알면 어쩌지?
 
돌아오라. 그런대로 살아라.
 
아니야. 이젠 그 나그네하구 하루도 못 살아. 이젠 졸혼하고 나 홀로만의 인생을 살겠다.
 
그래 언제까지 외지에서 떠돌이를 하겠니? 그게 졸혼하고 사는 네 인생이냐?
 
단 하루 살아도 녀자답게 살고파. 넌 몰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사내 같잖은 수아매하구 사는 고통을 몰라.
 
애를 봐서라도 돌아오라. 정 철석이하구 살기 싫으면 리혼하든지. 나도 봐라. 남편이 바람둥이지만 애를 보고 억지로 살지 않니? 
 
너도 리혼하고 나처럼 자유로운 녀자로 살자.

난 너처럼 그럴 담이 없어.

함께 자유로운 녀자로 살 날, 그날 그다릴게.  한가지 부탁하자.

뭔데?

절대 철석이나 누구한테나 내 전화번호 알려주지 말라. 여기 바쁘구나. 끊자.
 
이윽고 나영은 자기가 큰 실수를 한 것을 서서히 느꼈다.
“이 일을 어쩐담? 나그네 날 찾으려고 공안국에 찾아가 신고하면 어쩌지? 위치추적하면 어쩌지? 정호가 알면 큰 일인데.”
나영이 한창 바늘방석에 앉은듯이 조마조마해할 때였다.
기업소 대문이 활짝 열리면서 직원들이 퇴근해 우르르 쓸어 나왔다. 대부분 직원들은 주차장에 가서 자가용을 타고 퇴근하기 시작했다.
그때 통근뻐스 한대가 먼저 미끌어져 나왔다.
(아차, 통화하다나니 놓쳐버렸군.)
나영은 황급히 뻐스가 달리는 쪽으로 뒤따라가 길가에서 택시를 불러 탔다.
“저 앞의 뻐스를 따라 가세요.”
“네- 알았습니다.”
택시는 통근뻐스 꼬리를 물고 달렸다.
나영은 손목시계핸드폰을 들어 통근뻐스 번호를 찰칵 찍었다.
(통근뻐스 수태더구만. 어느 뻐스에 앉았는지 어떻게 알아? 좌우간 군철이네 집 부근에 가는 뻐스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통근뻐스가 다행히 군철이네 집으로 향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이였다.
(다행이구나.)
도중에 통근뻐스가 서면서 한 직원이 내렸다.
그런데 뻐스가 몇번이고 부르릉, 부르릉 시동을 걸어도 웬 일인지 떡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나영이 백도지도를 훑어봐도 아직 군철이네 집에 가려면 멀었다.
나영은 무릎을 탁 쳤다.
그녀는 택시비를 결산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통근뻐스 고장났는지 운전수가 운전석에서 뭘 손질하는 것 같았다.
나영은 통근뻐스에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인가? 시끄럽게.”
운전수가 투박하게 투덜거렸다.
“급한 일이 있는데요. 사람 찾아요.”
“누굴?”
“혹시 최군철 부장이 있는가요?”
“네. 있습니다.”
운전수 말투가 인차 부드럽게 바뀌였다.
순간 나영은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자기 아들도 아니고 정호 아들이였지만.  만나자고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 만나게 돼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뻐스 안에서 운전수가 누군가와 뭐라고 말을 주고 받더니 이윽고 차문이 활짝 열렸다.
훤칠한 번대머리가 커다란 핸드빽을 옆구리에 끼고 성큼 내렸다.
“어마나!”
나영은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 번했다.
그 번대머리는 최정호를 딱 떼닮지 않았겠는가.
번대머리라든지 우멍눈이라든지 심지어 이마에 박힌 기미까지 너무나도 정호  복제품에 가까웠다. 다만 정호보다 퍽 젊어보일뿐이였다.
나영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우멍눈은 단통 실눈이 돼 가슴츠레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군지요?”
나영은 활짝 웃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최부장, 이쪽으로 가서 천천히 얘기하죠.”
군철은 녀자 홀몸인데다가 조선말을 하는지라 경계심을 풀고 따라갔다. 뻐스에서 숱한 직원들이 그들의 뒤잔등에 눈길을 박고 쑤근거렸다.
나영은 통근뻐스와 좀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가서야 머리를 돌렸다.
“최부장, 아버지가 심부름 보내서 왔어요.”
“네? 아버지라니? 저의 아버지 리문걸씨는 지금 일본에 갔는데요.”
“아니예요. 지금 이 시내에 와 있어요. 최국장은 아들을 보고 싶어 이 시내까지 찾아왔는데요.”
그러나 군철은 랭소했다.
“내겐 범죄자 아버지 없습니다. 내 아버진 리문걸 밖에 없습니다.”
찰싹!
나영은 손바닥을 쫙 펴 잽싸게 군철의 뺨을 한대 갈겼다.
“이 놈아, 친애비도 모르는 개자식! 최정호 국장이야 말로 네 친아버지야. 에이구, 최국장도 눈이 멀었지. 이런 새끼도 아들이라고 날 보내? 흥, 너도 애를 둘이나 키우는 애 아빠 아닌가? 왜 아들로 생겨서 아버지 마음 그렇게도 모르니?”
군철은 재차 치려는 나영의 손목을 후려잡고 물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나영은 당당하게 말했다.
“난 네 애비 애인이야. 아니, 지금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유일한 현실안해야.”
“안해? 흥! 구천에 간 우리 엄마를 릉욕하지 마쇼. 최정호는 내 이모부인데. 뭘 보고 생소한 녀자를 이모부 안해라고 믿어야 하오? 지금 미녀사기군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군철의 립장에서는 참말로 그럴 수도 있었다.
(낯선 녀자는 미녀사기군인지, 녀경찰인지? 저승사자 보낸 끄나뿔인지 누가 알겠는가?)
나영은 인차 군철의 립장을 리해하고 퍼러뎅뎅한 얼굴 근육을 스르르 풀었다.
그녀는 사위를 둘러보더니 군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 한 아름이나 되는 가로수를 등지고 섰다.
뒤이어 핸드빽을 열고 주옥목걸이와 옥팔찌 한쌍을 꺼내 군철에게 내밀었다.
“금방 너무 과했는데요. 널리 량해하세요.  최국장은 주옥목걸인 아들에게 주는 선물이고 옥팔찌 한쌍은 손자들께 하나씩 주는 선물이라고 했어요. 이게 마지막선물일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군철은 묵직한 선물을 보자 단통 굳었던 얼굴이 풀렸다.
“아니, 이모부가 어쩜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다 보냈는가요?”
나영은 청포도 쌍까풀눈을 치켜떴다.
“아직도 이모부요? 아버지란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요.”
군철은 선물을 핸드빽에 챙겨넣으면서 동문서답했다.
“그분 지금 어데 있는가요? 어째 저를 직접 만나지 않는답니까?”
나영은 인차 용건부터 전했다.
“그분 지금 수사일군들한테 쫓기는 몸이요.”
“그럼 왜 나를 련루시키려고 든답니까?”
“최국장은 구속받기 전에 마지막이겠는지 아들과 손자들을 꼭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쳇, 황당하군. 이제 새끼들을 다 잡아먹을 예산이구먼.”
군철은 실수한 것을 눈치채고 말을 돌렸다.
“이모부는 정말 무정한 사람이군요. 어쩜 범죄자 돼서 꼬리를 달고 다니면서 날 다 찾습니까?”
나영은 꼭두까지 치미는 분노를 가까스로 억제하면서 말했다.
“최국장은 지금 시급히 건강마와 방역복이 수요돼요.”
나영은 정호 귀에 대고 뭐라고 쑤근거리더니 려권 두개를 꺼내 건넸다.
군철은 핸드폰을 꺼내 려권 두개를 다 찍고 되돌려주었다.
"좋은 충주 최씨를 두고 조상까지 다 바꿔먹는군. 흥."
나영은 두덜거리는 군철의 팔을 붙잡고 간절히 부탁했다.
“될 수 있으면 인차 도와주세요... '”
“최부장, 차 수리됐습니다. 빨리 오르십시오.”
운전수가 저쪽에서 소리쳤다.
“네- 곧 가겠습니다."
군철은 나영에게 얼굴을 돌리고 량미간을 찌프리더니 나직이 말했다.
“금무호텔 5027호에 잠시 머무십시오.”
그는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더니 총망히 떠나갔다.
(금무호텔 5027호?)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며 총총히 떠나가는 군철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들은 아들이구나. 피는 속이지 못하지.)
그녀는 너부죽한 군철의 뒷잔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부지중 마음이 든든해졌다. 하여 한가슴 가득히 숨을 한껏 들이 쉬였다가 한숨을 호- 후련하게 토해냈다.
나영은 군철이 탄 통근뻐스가 스르르 떠나가자 인차 자리를 떴다. 그녀는 남편한테 들킨 일이 뒤가 켕기였다.
“최국장이 아는 날엔 또 펄쩍 뛰겠다. 전화질 한 거 절대 말할 수 없어.”
그러나 인차 이런 반발심도 생겼다.
(네 아들만 아들이냐? 내 목숨 걸고 네 아들 만나 큰 일 해냈으면 고만한 건 용서해야지. 안 그래? 최동무. ㅋㅋ.)
나영은 혼자 중얼거리면서 손목시계핸드폰을 쳤다.
“그 물건짝을 만났어요. 당장 금무호텔 5027에 가서 물건짝 찾으세요. 네. 거기 물건짝을 부치겠으니깐 거기 가서 물건을 찾으랍디다.”
나영과 정호는 진짜 암호를 주고 받으면서 특무들 같이 놀았다. ㅋㅋ.
말을 마치자 나영은 택시를 잡아타고 금무호텔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녀는 변해가는 자기 모습이 너무 허무해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해설원으로부터 재무과장, 부관장으로 되더니. ㅋㅋ. 이젠 추격당하며  특무놀음을 노는 도주자. ㅋㅋ.)
      이제 그녀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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