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효자와 쥐며느리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봄바람에 실려 연분홍빛 봄아가씨가 치마자락을 날리며 온 천지꽃산에 사뿐사뿐 날아내려와 방실방실 웃음지으며 노래하고 있었다.
연분홍 진달래가 만발하는 화창한 봄날에 종수는 “조선족렬사영웅 이야기집” 도서출간식을 열게 되였다.
종수는 양복까지 차려입고 도서출간식장 문어귀에서 하객들과 인사하며 반갑게 마중하고 있었다.
승호와 성호는 나란히 도서출간식장에 들어섰다.
“축하한다, 종수.”
그들은 문어귀에서 종수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부조봉투를 건넸다.
“오기만 해도 감사한데 뭘 가지고 왔니? 감사하다. ”
성호는 종수의 인사말을 받으면서 진심에 찬 인사말을 했다.
“네가 민족의 력사기념비를 세우는데 우리도 한몫 해야지.”
대회장 저쪽에 은영과 최웅봉 전임부시장, 허경옥과 허철군 전임부서기, 안수련 리사장이 눈에 띄였다.
출간식에서 신문사 김범수 부사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축사를 드렸다.
그는 축사에서 광고부 주임 종수가 펼쳐낸 도서 “혁명렬사영웅이야기” 내용을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이 도서의 중대한 의의를 아주 높이 평가했다.
회의참가자들은 종수가 토비숙청을 간고하게 취재하던 이야기를 듣고 못내 찬탄을 금치 못했다.
종수는 출간식에서 열정에 넘쳐 연설했다.
“…저는 우리 민족의 력사적전통을 세우기 위해 계속 붓을 날리겠습니다.”
성호는 종수야 말로 민족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느겼다. 그러나 자기는 여직껏 가정의 울타리에 얽매여 사회에 해놓은 일이 없다는 것을 재삼 느꼈다.
종수와 류려평은 연회석의 손님들한테 일일이 술을 권하면서 인사하였다.
이윽고 그들은 성호와 승호, 범송이 앉은 자리에 다가왔다.
종수는 동창생들을 둘러보면서 정색해 말했다.
“지금 전국각지에 우후죽순마냥 일떠선 조선족로인협회는 우리 민족의 전통을 지키고 민족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데 중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나는 이제 전국각지로 돌아다니면서 조선족로인협회를 취재해 신문에 내고 도서도 출간할 예산이다. 이 사업은 우리 조선족의 전통과 정신기둥을 세우는데 중대한 력사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술잔을 들며 뒤말을 이었다.
“한가지 부탁하자. 너희들도 자기 조상들이 두만강을 건너와서 살아온 이야기를 정리해라. 이담 ‘조선족이민사’에 내자.”
성호와 승호는 서로 마주보면서 희죽이 웃었다.
승호는 성호를 보고 “난 집안 력사를 잘 몰라. 네나 써라. 이담 책을 낼 때 내 인쇄비나 대주지.” 하고 씨무룩이 웃었다.
성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우리 집안 력사는 그래도 우리 둘이 함께 쓰는 게 옳은 것 같애.”
그때 김범수 부사장이 잔을 들고 다가왔다.
“자, 이번에 리경리 덕분에 우리 리과장이 놀라운 광고실적을 쌓았소. 감사하오.”
성호는 잔을 들더니 승호한테 권했다.
“다 리과장이 자기 능력으로 올린 성과입니다. 축하한다. 리과장!”
“그래, 일이 잘 되면 아즈바이 좋고 조카 좋고 다 좋지. 허허허. 한잔 듭세나!”
승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맞잔을 들었다.
옛날부터 불효한 아들과 며느리는 “도리깨아들”, “쥐며느리”라고 욕했다.
종수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효자로 불리웠지만 류려평은 불효를 저질러 쥐며느리로 소문났다.
어느 날 밤, 려평은 잠자리에 들어서 또 푸념질했다.
“어째, 동무네 엄마한테서 무슨 냄새 자꾸 납니다. 원, 더러워서 함께 밥을 먹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냄새 난다고 그러오? 그저 냄새, 냄새 하면서 못된 소릴”
종수는 듣기 싫어 훌 돌아누워버렸다.
이튿날 아침 종수는 혹시나 해 밥상에 마주 앉아 어머니한테서 정말 냄새나는가 슬그머니 맡아보았다.
(진짜 무슨 냄새 있구나.)
아들은 며느리와는 판판 달랐다.
종수는 어머니 냄새를 꺼린 것이 아니라 옷을 제때에 빨아 입히지 않았는가고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자주 빨아 입어 옷에서 나는 냄새 같지 않았다.
나중에 그는 어머니한테 비염이거나 위염 같은 병이 있지나 않는가고 근심했다.
그는 그날로 어머니를 모시고 큰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보였다.
의사는 확대경을 끼고 코부터 검사하더니 도리머리를 저었다.
“비염이 엄중하구만. 아니, 이렇게 엄중할 때까지 치료하지 않고 뭘 했소?”
의사는 종수를 나무라는 눈치였다.
뒤이어 의사는 종수 어머니를 보고 CT촬영을 해보라고 했다.
종수는 어머니를 모시고 CT촬영실에 갔다.
한참 후 촬영결과를 보고 의사들이 모여서 쑤근거렸다.
“아니, 이렇게 엄중할 때까지 어떻게 견뎠을가?”
“글쎄 말이요. 모질 아팠겠는데.”
의사는 어머니와 종수를 번갈아보며 설명했다.
“비염에 걸린지 꽤나 오랜 거 같은데 아주 엄중합구마. 이걸 보십시오. 비염이 심해서 고름이 비강으로부터 대뇌쪽으로 들어가 꽉 찼습니다. 좀 놔두면 대뇌가 손상받으면 큰 일 납니다. 인차 수술해야 됩니다.”
그때 언제 왔던지 려평이 끼여들었다.
“아이구, 숱한 치료비 들겠구만. 비염을 키워서 수술비를 내게 됐잖고 뭡니까? 진짜 부스럼을 긁어서 혹을 만들었구만요.”
의사는 억이 막혀 입을 딱 벌리며 려평을 쏘아보았다.
종수는 난처해 려평을 한쪽으로 끌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여보, 지금 수술비 문제요. 엄마 비염이 중하다는데.”
려평은 코웃음쳤다.
“진짜 혹 떼러 왔다가 혹을 더 붙였네. 고까짓 비염이 뭐 그리 대단해 이럽니까? 약 몇알이면 될 걸 가지고.”
종수는 억이 막혀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는 의사한테 돌아와 토론조로 말했다.
“어떻게 수술하지 않고 중약으로 치료하면 안됩니까?”
의사는 수술비 아까와 그러는가 여기고
“중약을 쓰면 수술비보다 더 듭니다. 씨원히 수술해 대뇌 쪽으로 들어간 고름을 말끔히 긁어내면 낫습니다.” 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종수는 의학서적을 두루 읽어보았기에 자기 의견을 고집했다.
“비염도 염증인데 왜 중약으로 치료하지 못하겠습니까? 될 수 있으면 중약으로 치료해 주십시오.”
의사는 종수를 다른 눈길로 여겨보았다.
그때 려평이 또 끼여들었다.
“개뿔도 모르면서 작작 헛소리치세요. 교수들이 하자는대로 수술할게지. 왜 비싼 중약을 쓰려고 덤벼? 흥! 돈이 썩어났다. 어우, 정말 늙은이들 때문에 못살겠다.”
종수는 듣기 거북해 퉁사발눈을 부라리며 버럭 고함쳤다.
“그만 하지 못하겠소?”
의사도 손사래쳤다.
“그만하십시오. 환자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수술하지 못하지. 먼저 중약으로 치료해봅시다.”
그 말에 바위처럼 떵떵 굳었던 종수의 얼굴근육이 좀 풀렸다.
려평은 두덜거리며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종수는 밸 같아서는 뒤통수를 한대 갈겨주고 싶었다.
몇달간 의사가 준 중약 10여곽을 복용하고 종수 어머니의 비염은 기적적으로 치료됐다. CT검사결과 놀랍게도 고름은 말끔히 사라지지 않았겠는가.
어느날 밤중에 종수가 답답해 성호한테 전화를 걸었다.
“야,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니? 려평이 리혼하겠단다.”
“뭐라고? 출간식 때만 해도 화기애애한 것 같더니. 웬 리혼 소리냐?”
“출간식 때도 돈이 많이 들어갔다고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야단쳤다. 에이구, 이게 어디 하루이틀에 생긴 일이냐?”
“도대체 무슨 일이냐?”
“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성호는 집 부근 조용한 다방에 가서 종수를 만났다.
종수는 커피를 후후 불면서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이 무겁고 신의를 지키는 성호를 믿고 집안의 불화를 쭉 이야기했다.
출간식을 한 날 류려평은 음식점에서 먹고 남은 돼지고기채며 소고기채며 물고기채며 한보따리 싸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종수는 식당에서 가져온 채로 한 상 차려 어머니를 대접했다.
종수의 어머니는 젊어서 청상과부로 나 혼자 아들딸 셋을 키우느라고 아글타글 고생했다. 그리하여 답답하기만 하면 소주를 마셨다.
종수는 식탁에서 소주까지 가져다 어머니 술잔에 부어올렸다.
류려평은 대뜸 얼굴이 청얼음장처럼 퍼르뎅뎅해났다.
“에이유, 시아버지도 아니고 시어머니가 맨날 술만 마셔? 이 집안이 망하지 않게 생겼어?”
종수는 언짢아 한마디 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우린 식당에서 잘 먹었지만 엄만 하나도 잡숫지 못하였소. 엄마 술 한잔 마셔서 우리 못살게 되오?”
류려평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당신도 문제죠. 맨날 글을 써서 해놓은게 뭔가요? 돈이 썩어났어. 책 한권 냈으면 됐지. 숱한 사람들을 불러다 퍼먹여서 뭘 해요?”
만수와 숙희는 보기 구차해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종수의 어머니는 아들을 말렸다.
“얘, 사내란 숱한 사람들 앞에서 녀편네를 꾸짖어선 못 써.”
그러고나서 려평한테 머리를 돌렸다.
“며느리, 아들이 책을 냈다니 기뻐서 한잔 마셨소. 이젠 다신 술을 마시지 않겠소. 며느리도 이젠 시집온지 20년이나 넘는데 조선족 례절과 풍속을 좀 알아야지. 남편이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면 돈이야 얼마 들든지 지지해야 하네. 남편 하는 일에 이러쿵저러쿵 해서야 되오?”
류려평은 단통 시어머니한테 손삿대질했다.
“뭐라구? 오늘 시집식구들이 한 구들 들어앉아 날 포위공격하겠습니까? 아이유, 섧어서 못살겠다.”
그녀는 구들에 퍼더버리고 앉아 어린애처럼 대성통곡쳤다.
그때 류려평의 어머니가 집에 들어서다가 딸이 통곡치는 것을 보고 노발대발했다.
“어째, 누구 신세에 시내에 들어와 이 집에서 살면서 남의 딸을 못살게 굴어? 왜 한구들 들어앉아 불쌍한 우리 딸을 울려?”
류려평은 어머니가 역성을 들자 더 서럽게 울면서 별소릴 다했다.
“시집온지 20년이 돼도 시집에서 날 해준게 뭔가요? 금손목걸이를 물려줬습니까? 뭘 줬습니까? 우리 본가집 신세에 이 집에서 살면서 무슨 잔소리 그리 많은가요? 내 시집살이를 하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누이와 시동생을 시집장가를 보냈으면 됐지. 뭐 모자라 이래요? 엉- 엉- 원, 원통해 죽겠다.”
류려평은 보기에는 눈이 어글어글하고 훤칠해 통쾌한 녀성 같았다. 그러나 훤칠한 체격과는 달리 치사하게 옹졸하고 꽁한 녀성이였다.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몇년이고 속에 꽁꽁 넣고 두고 두고 행악질하거나 승풀이를 했다.
류려평의 말에 의하면 결혼 때 보통 한족들은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몇만원씩 하는 금팔찌를 한쌍씩 물려준다고 했다. 종수네는 당시 한족들한테 그런 법이 있는 것도 몰랐다. 더구나 종수 어머니가 무슨 돈이 있어 금팔지를 사준단 말인가?
그런데도 류려평은 20여년이나 지난 이제야 그런 한족들의 풍속을 꺼내들고 시어머니가 사주지 못했다고 두덜거렸다.
종수 어머니는 이때까지 꾹 참다가 한미디 했다.
“며느리, 대학문도 나오지 못한 주제에 기자신랑을 얻었으면 대단하지. 뭐가 모자라 이래오? 결혼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꿰들고 야단치면 어쩌오?”
려평의 어머니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사돈, 우리 딸이 대학을 못나왔다고 작작 업신여기오. 그 집 아들이 대학을 나왔다뿐이지. 우리 딸보다 로임을 더 타오? 이 집에 해놓은게 뭐 있는가?”
종수는 언짢았지만 가정불화가 생길가봐 어머니를 말렸다.
“엄마, 이러지 맙소. 가시집 신세 많은데 참읍소.”
류려평은 이젠 조선족말을 꽤나 알아들었다.
“누가 할 소릴 누가 하오? 내야 딸을 보고 이 집에 눌러 있는줄 알아라.”
“뭐라오? 계속 악다구니질 하겠소?”
“우리 본가집이 아니면 제따위 신문사에 들어가기나 하겠구나. 원, 배은망덕한 놈이라구야.”
“그만두지 못해?!”
종수는 참다 못해 려평의 귀쌈을 찰싹 갈겼다.
“왜 때려?!”
가시어머니는 종수한테 달려들어 머리를 마구 끄당기면서 행악질했다.
종수도 자존심이 상해 가시어머니를 활 밀쳐놓았다.
“네놈이 감히 우리 엄마를 때려? 오늘 죽고 살고 해보자!”
려평은 어머니와 함께 달려들어 종수를 물고 허비고 때렸다. 종수는 이리저리 피했다. 보다못해 만수와 숙희가 싸움을 뜯어 말렸다.
“옳지. 개종자들이 몽땅 달려들어? 아이고, 원통해라!”
류려평은 대성통곡치며 미친듯이 종수 일가에 덮쳐들어 허비고 뜯고 물어놓으면서 발악했다.
이 집은 진짜 초상난 집 같이 곡성이 울리고 쿵당쿵당 싸우는 소리 요란하게 들렸다.
종수는 동네 창피해 신을 꿰고 동네 구경군들 속을 빠져나갔다. 숙희와 만수도 엄마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종수의 어머니가 집에서 나가는데 종수는 저쪽 베란다 벽에 기대서서 어깨를 들먹이면서 울고 있지 않겠는가.
종수 어머니는 중간에서 시집살이를 하는 아들이 불쌍해 다신 오지 않기로 마음 먹고 딸 숙희네 집으로 가버렸다.
“이게 무슨 꼴이야?”
종수는 이튿날에 단위에 나갈 면목이 없었다.
려평은 리혼하겠다고 신문사에까지 찾아가 리혼소개신을 떼달라고 한바탕 행패를 부렸다.
성호는 종수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보니 한심했다. 벙어리가 말 못하는 벙어리 고통을 안다고 그는 종수가 너무나도 불쌍했다.
“한 시내에 맏이를 두고 둘째네 집으로 간다는 건 말도 안되지. 둘째며느리는 일본각시여서 한족며느리보다도 더 묘하게 놀아. 앞에서는 해쭉해쭉 웃으면서 두 손을 맞잡고 ‘아링아도(감사해요)~’, ‘곤니찌와(안녕하세요)?’ 해도 속으론 딴 궁리를 해.”
“아니, 너네 만수는 왜 세살이나 이상인 일본녀자한테 장가갔니?”
“만수 말만 해도 속이 타 재가루 될 지경이야. 그 놈 일본녀자는 기실 남한테 시집갔던 여자야.”
“뭐라고?”
“설상가상으로 우리 청화보다도 세살이나 이상인 딸애까지 달렸어.”
“?!”
성호는 너무나도 한심해 입을 짝 벌렸다.
“그럼 진작 말려야지.”
“언제 타이를 새나 있나? 저네끼리 정이 다 든 다음에야 어떻게 뜯어놓니? 너도 알지만 결혼날자도 다 잡아놓고 오라고 해서 가보니 일본녀자가 아니겠니? 그런데 과부년이고 계집애까지 달려있을줄은 몰랐지.”
“그래, 만수도 그런 녀자인줄을 몰랐댔니?”
“응. 실컷 정이 들고 결혼하자고 하니까. 그제야 실토정하더란다.”
“에이구, 세상에 별난 일도 다 있구나.”
“요시꼬는 우리 엄마한텐 잘해준다. 아마 과부로 남의 총각한테 들어섰으니까 그러겠지.”
“그럼 너네 엄마 둘째네 집에 가 있을게지.”
“안돼. 맏이를 두고 둘째네 집에 가면 뭐냐? 내 허물만 날 게 아니냐? 안돼. 만수네 집에 못가. 며느리네 본가집 부모가 와서 한데 살다싶이 해. 집두 아래웃층이여서 한집이나 다름없어. 우리 엄만 고향에 돌아겠다고 한다. 몇십년 살던 고향에 돌아가면 마을 사람들과도 자주 만나고 답답한 일이 있으면 속시원히 말할 데도 있어 좋단다.”
종수의 말소리는 점점 떨리고 있었다. 아마 아들 구실을 못한 죄책감이 마음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도 알지만 두만강변에 자리잡은 우리 고향 마을에 조선족들이 몇이 남아 있니? 쓰러지는 초가집에 엄마를 홀로 보냈다는 건 말도 안돼. 그런 쥐며느리와 리혼하면 리혼했지. 엄마를 절대 못 보내겠어. 난 절대 도리깨아들로 될 수 없어.”
“야,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대길이야. 우리 나이에 무슨 리혼이냐? 그러고서야 어찌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일하겠니?”
성호는 진정으로 충고했다.
“어쩌겠니? 류려평을 슬슬 얼려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라.”
종수는 답답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가시집 신세에 신문사에도 들어가고 새 집에서 살게 돼 기뻤어. 그런데 가시집 신세를 진게 큰 빚이야. 두고두고 신세진 일을 꿰들면서 나와 부모형제를 괴롭힌단 말이야. 네가 부러워. 어렵게 살더라도 자기 능력으로 사는게 제일이야.”
성호는 어떻게 하면 종수를 도울 수 있을가고 한참 궁리했다.
종수는 자포자기하는지 심드렁해했다.
“가시어머니 사흘 건너 우리 집에 와서 잔소리 하는 건 괜찮아. 안해 인정머리 없는 건 절대 용서하지 못해.”
종수의 어머니는 간암말기여서 오래 앉을 것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한번은 불시에 어머니가 간혼미 왔는지 점적주사를 맞혀야 하였다.
그런데 류려평은 펄쩍 뛰였다.
“그만둬요! 오래잖으면 사망하겠는데 쓸데 없이 자꾸 주사를 놔서 뭘 해?”
“아니, 마지막으로 점적주사마저 놓지 않겠소? 여보, 우리 어머니 아프지 않게 진정제라도 좀 놔주오.”
그러나 류려평은 쌀쌀하게 거절했다.
“난 몰라. 칠순 넘어 모셨으면 됐지. 병원에 가도 약을 주지 않아요. 늘그막에 무슨 약이 있는가? 간암에 걸려가지고도 술을 자꾸 마셨는데. 빨리 사망해야 곁사람도 시름놓지. 원, 새끼들을 다 잡아먹고야 북망산에 갈 작정인 모양이야. 흥!”
종수가 아무리 비난사정해도 류려평은 점적주사를 놔주려고 하지 않았다.
“재간 있으면 병원에 가서 간호사를 데려다 놓으라고.”
류려평은 원래 위생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은행에 전근해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점적주사를 식은 죽 먹기로 놓을 수 있었다.
(어쩌면 시어머니한테 주사마저 놓아주지 않는단 말인가?)
종수는 생각할수록 야속했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정치학부에 가지 말고 의학원에 갔을 걸. 그럼 마음껏 어머니한테 주사라도 놔드리겠는데.)
그는 이런 막연한 생각까지 하면서 여러 진료소를 돌아다니면서 주사를 놔달라고 비난사정을 했다. 그러나 하루에 고까짓 15원을 벌려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오려는 간호사도 없었다.
“고까짓걸 보고 누가 주사 놔줄러 가요? 왕복 택시비도 모자라요.”
그는 한 약방에 들러 어머니 약을 사면서 너무 답답해 혼자소리로 한탄했다.
“어쩜 이 세상에 엄마한테 주사를 놔줄 간호사도 없단 말인가?”
약방의 쉰살 푼한 녀직원이 그의 효성에 감동돼 저으기 동정했다.
“손님, 전화번호를 적어놓으세요. 제가 간호사를 련계해보지요.”
드디여 그녀가 어덴가 전화를 걸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며칠 후 한 간호사한테서 주사를 놔주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점적주사를 놓으려고 문을 뚝 떼고 들어서던 간호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류려평네 남편이 아닌가요?”
“맞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위생학교 때 동창생인데요. 졸업한 후 한 병원에서 일했어요.”
그녀는 신을 벗고 구들에 올라서면서 이상해했다.
“어째 려평을 보고 놔달라고 하지 않는가요?”
종수는 창피해 더 할 말을 잃었다. 위생학교를 졸업한 좋은 자기 녀편네를 두고 동창생을 불러다 어머니께 주사를 놔줘야 했으니 말이다.
진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닌가.
그는 허구픈 웃음을 웃으면서 속으로 중얼걸렸다.
“여보세요. 그대의 동창생은 자기 생명을 희생해 시어머니를 구할 필요 없다고 주사를 놔주지 않소. 시어머니 오래 살면 새파란 자기부터 일찌기 죽는다오. 그대의 동창생은 이런 쥐며느리랍니다.”
한참 후 그는 녀편네가 팔릴가봐 슬쩍 에둘러댔다.
“려평인 장춘에 출장가고 없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미안합니다.”
간호사는 혀를 홀랑 내둘렀다.
“참말 효자군요. 약방에서 일하는 언니가 그러던데요. 면목모를 나그네 어찌나 효자인지 불쌍하다면서 주사를 놔주라고 하더구만요.”
종수는 려평의 동창생이 고마웠다. 쥐며느리 같은 안해가 미웠다. 창피해 머리를 들지도 못했다.
려평의 동창생은 련 보름동안이나 왕진을 다니면서 종수 어머니에게 정성껏 점적주사를 놔주었다.
나중에 수고비를 주니 그 중에서 백원짜리 한장을 빼서 되돌려주었다.
“보태서 어머니한테 맛있는 음식이라도 대접해요.”
“어쩜 동네 집 색시도 다 와서 주사를 놔주었는데 류려평이 시어머니한테마저 주사를 놔주지 않을 수 있느냐? 위생학교에서 의료기술과 인도주의를 배웠겠는데 어쩜 이럴 수 있어? 최저한도 인도주의도 없잖고 뭐냐? 이런 녀편네와 이날 이때까지 딸애를 보고 억지로 살았다. 도적놈은 살려줘도 인정을 버린 불효녀는 용서하지 못해. 자기를 낳아 길러준 어머니한테 림종에 주사마저 놓아주지 않는 년과 어떻게 사니? 하루라도 더 살지 못하겠다.”
종수는 눈물이 글썽해 눈시울을 붉혔다.
성호는 그제야 종수네 가정에 메꾸고 서로 뛰여넘기 힘든 깊은 골짜기가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면서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종수는 성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 고충을 툭 털어놓으니 마음이 후련하구나.”
“친구지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소통해야지.”
후에 성호가 알고 보니 종수네 집의 석자 두께나 되는 얼음은 하루이틀 사이에 언것이 아니였다. 원래 류려평과 시어머니는 가치와 소비 관념 그리고 생활습관 등이 판이하게 달라서 한 집에서 살기 힘들었다.
류려평은 비싸도 신선한 남새를 사다가 먹었다. 그러나 종수의 어머니는 돈이 아까워 한근에 20전씩 할 때에야 주글주글한 오이를 사다가 먹었다. 집 부근에 남새점이 있는데도 십여킬로메터나 떨어진 남새도매부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사오군 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눈이 내리는 날에 자전거를 타고 남새를 사러 가다가 내리막길에서 차에 치워 대퇴골골절이 와서 숱한 고생을 했다.
남새돈 몇푼 남으려다가 숱한 치료비를 팔고서도 운신하지 못해 입원치료를 받으면서 통증에 몇달 동안 시달린 적도 있었다.
류려평은 어쩌다가 가정에서 외식을 한 다음 음식점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찌꺼기라고 싸들고 오지 않았다.
그런데 종수의 어머니는 먹다가 남은 음식을 몽땅 비닐봉지에 가져다가 장국에 넣어 끓여 먹었다.
심지어 식당에서 먹다가 남은 국물까지 비닐봉지에 퍼서 가져왔다.
국물이 흘러내려 고급승용차가 어지러워진 건 둘째고 숱한 사람들 앞에서 기자 남편의 얼굴이 깎인다고 류려평은 얼굴을 찡그렸다.
(고까짓 국물이 몇푼 간다고 저래? 돈을 버는 게 뭘 위해선가? 소비하지 않고 벌어서 뭘 해? 술도 항상 눅거리를 사다가 마셔. 그래서 심장 다 잘못 됐어. 정말 리해 안돼.)
류려평은 항상 속으로 불평을 토로하군 하였다.
더구나 한심한 것은 시어머니가 위생실에서 쓰는 위새종이마저 아까워서 헌 옷을 가위로 오리오리 베서 썼다.
(얼마나 한심한가. 위생종이 몇푼 한다고 저러는가? 대변을 헌 천쪼각으로 닦으면 하신에 병균이 들어가면 어쩌는가? 치료비는 둘째고 사람이 얼마나 고생하겠는가.)
성호는 종수네 집 고부 사이 일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제주도에 갔을 때 가정집을 둘러본 일이 피뜩 떠올랐다. 제주도에서는 옛날부터 부모와 자식이 한 룡마루 아래에서 사는 풍속이 있었다. 가마는 따로 걸고 살림살이를 하기에 고부 사이에 말썽도 없어 좋았다. 부모는 자손들을 날마다 볼 수 있어 천륜지락을 누릴 수 있었고 자식들은 조석으로 부모를 보살펴드리면서 효성을 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얼마나 실제적이고 효성스러운 풍속인가. 그러나 그것은 먼날 이야기, 지금은 제주도에서도 그 미풍량속이 깨져서 부모자식들이 한 집에서 살지 않기 시작한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여기도 부모자식이 제주도처럼 한 집이 아니라도 한 시내에서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것은 너무나도 막연한 리상 같아 보였다.
성호는 밤중에 집에 돌아와서도 종수네 집 일이 근심되였다.
그의 귀에는 아직도 울분을 토하던 종수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그 랭혈동물은 항상 ‘누구 신세에 기자 됐는가?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욕하지 않겠니? 어쩌다가 저런 쥐며느리를 만나 개고생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종수는 이런 한심한 말을 하였다.
“성호야, 세상에 졸혼이란게 있다더라. 새파란 딸애를 두고 리혼하긴 그렇고. 졸혼을 해서 분가해 살 예산이야. 가정도 마스지 않고 딸한테도 체면이 서고.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를 판이야. 별 수 있느냐?”
“졸혼? 금시초문인데.”
성호는 상을 찌프렸다.
“그래, 졸혼이야. 청화도 일본 류학을 갔지. 근심이 있느냐? 이젠 결혼생활은 졸업하고 내 밸대로 살고 싶다. 세집살이를 해도 제일간 아낙네 잔소리 듣지 않아 좋을 거 같다.”
성호는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야, 말도 안돼. 밥이랑 어떻게 해먹겠느냐? 빨래는 어쩌고.”
그러나 종수의 말은 아주 명랑했다.
“밥 짓고 빨래 하느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겠지. 지금 전기밥가마랑 세탁기랑 전자동이기에 크게 근심할게 없어. 내 로임을 내 마음대로 쓰면서 이민사를 취재하러 다녀도 막는 사람이 없어 세상 좋을 것 같아. 허허허.”
종수의 소탈한 웃음소리를 들으면서도 성호는 종수 앞일이 답답해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어쩜 우리 친구들 일이 이다지도 잘 풀리지 않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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