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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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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소설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26)
2019년 04월 07일 10시 55분  조회:140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49. 고군분투.
       곰도 맵짠 추위가 싫어 통나무 속으로 숨어버린 엄동설한이다. 박달나무도 얼어서 탁탁 갈라터지고 모닥불도 추워서 이불 안으로 마구 기어들 지경이다. 그러나 엄동설한에도 봄아가씨는 봄노래를 흥얼거리며 동장군을 밀어낼 기운을 키우면서 태동하고 있었다.
성호는 요즘 광고회사가 돌아가는 형편이 상서롭지 못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느날 그는 선녀음식점에 갔다가 이상한 장면을 발견했다. 우연히 카텐 틈으로 들여다보니 김범수 경리가 굉팔과 마주 앉아 뭔가 은밀히 의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윽해 승호도 찾아왔다.
성호는 선화를 찾아가 결산하고 슬그머니 나와버렸다.
그후부터 성호는 김범수를 다른 눈길로 보게 됐다.
       (안팎이 다르게 노는구나!)
그의 예감은 맞았다.
        (세상에 믿을게 없구나.)
며칠 후 광고회사에 굉팔과 승호가 들어섰다.
김범수가 그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인사시켰다.
“성호, 굉팔 경리와 승호가 우리 회사에 들어오게 됐소. 이후에 잘 합작하오.”
(진짜 이변!)
굉팔은 성호를 쓴 외 보듯했다.
기실 굉팔네 광고회사는 김범수네 광고회사와 경쟁하다가 망했다. 상급에서는 불필요한 경쟁을 피면하기 위해 굉팔네 광고회사를 없애고 굉팔과 승호를 김범수네 광고회사에 전근시켰다.
굉팔은 수치스러운대로 머리를 숙이고 일반직원으로 들어왔다.
성호는 또다시 광고회사가 싫어졌다. 그는 뗐던 담배까지 풀썩풀썩 피웠다.
정희는 조용히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단위에 무슨 일이 있어요?”
“승호와 굉팔이 광고회사에 들어왔어.”
“파리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겠어요? 딴 생각 말고 광고회사에 지긋이 뿌리를 박고 일하세요. 돈도 벌고 얼마나 좋은 단윈가요?”
성호는 그저 묵묵부답하며 담배만 풀썩풀썩 피웠다.
이때 한나가 기침을 콜록콜록 깇었다.
“담배를 그만 피우세요.”
성호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우쭐 일어났다.
정희는 성호를 붙잡고 신신당부했다.
“또 현실을 도피할 생각을 하지 마세요. 시아버님도 현실을 도피해서 국장을 다 내놓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는가요? 그 바람에 칠순고개 넘도록 시골에서  고생하지 않고 뭔가요.”
“누가 광고회사를 떠난다고 했어?!”
정희는 해시시 웃었다.
“돈 많이 벌어야 당신도 아들 보죠?”
성호는 정희를 꽉 안더니 웃음이 남실거리는 걀죽한 얼굴에 키스를 뻑뻑 안겨주었다.
그는 바깥에 나와 담배를 붙여물고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저도 몰래 택시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또 머리를 쳐들었다. 이모사촌처남이 하는   택시영업을 알아보았는데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데 손에 쥔 돈이 없었다.
(10만원이나 하는 택시를 어떻게 사? 모험성도 너무 커. 택시를 강도들한테 빼앗기는 날엔 집을 다 팔고 허망 나앉겠는가?)
실로 어지간한 담량으로는 엄두도 못낼 모험적인 영업이였다.
성호는 택시영업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그때 뜻밖의 불행한 일이 생겼다.
고향 마을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성호가 전화를 드니 고향 마을에 사는 셋째누나 은숙의 목소리였다.
“얘, 성호야, 아버지 글쎄, 중풍 맞은 것 같애.”
“야~ 어쩌다 그런 일이 다 생겼소?”
성호는 오토바이를 타고 정신없이 고향 마을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성호는 정희와 한나까지 뒤에 태우고 눈길에 몇번이고 쓰레미를 맞아 나동그라질 번했다. 하지만 성호는 핸들을 꽉 부여잡고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성호가 초가집 안에 뛰어들어가 보니 아버지는 정신이 말쑥한데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아버지, 어떻습니까?”
상진은 아들며느리와 손녀까지 온 것을 보고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가만 누워계셔요. 자꾸 움직이면 나빠요.”
정희는 시아버지를 부축해 제자리에 눕히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할아버지-”
한나가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안겼다.
성호는 한나를 아버지 품에서 떼내면서 아버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째 왼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오른쪽입귀가 좀 올라간 것 같았다.
그는 마음 속으로 아버지한테 못내 미안했다. 칠순이 넘도록 소를 기르게 한 불효를 저지른 것이 죄송스럽고 후회됐다.
영옥은 성호를 보고 자초지종을 말했다.
“어제 오후까지도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일어나 소변 보러 나가다가 쾅 넘어지는 소리 나더라. 전등불을 켜고 보니 저 령감이 쓰러졌더라. 일어나려고 자꾸 애를 쓰던데 왼다리와 팔이 말을 듣지 못해 자꾸 왼쪽으로 쓰러지더라. ”
은숙은 성호를 보고 “어서 병원에 모셔가자.”라고 했다.
셋째매형 경만은 가시아버지 이불을 여며주면서 중얼거렸다.
“차 있어야 모셔가지. 내 뭐라고 했습둥. 밭이랑 내놓으라니까. 말을 듣잖더니.  쯧쯧쯧.”
은숙은 남편의 허벅지를 꼬집어놓으면서 눈을 흘겼다.
“빈정거리긴? 아버질 노엽게 굴어 병이 더 하면 어쩌자고?”
웃마을에서 백호와 맏손자 일복, 둘째손자 정국까지 줄줄 들어섰다.
“아버지, 어떻습둥?”
백호는 들어서자마자 아버지께 문안드리고 성호한테 이것 저것 물었다.
맏며느리 명희도 달아들어오면서 “시아버지, 다 맏며느리 잘 모시지 못한 탓입구마.”하고 대성통곡쳤다.
명희는 말머리 무거운 시아버지를 마음 속으로 존경했다. 그녀는 큰집에 아들이 없어서 큰집 앞까지 선 남편과 함께 명희는 큰시부모를 모시느라고 여간 고생하지 않았다.
백호와 명희는 손자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아버지가 중풍에 걸린 것 같아 못내 죄송스러웠다.
백호와 명희가 아버지께 세수를 시켜주는 새에 정희는 본가집 이모사촌오빠한테 핸드폰을 쳤다.
“오빠, 차를 몰고 우리 시집마을에 올 수 있소? 양? 양, 우리 시아버지 중풍에  걸린 거 같소. 병원에 모셔가자고 그러오. 양. 수고하겠소.”
“에이고, 감사하긴 한데. 눈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오겠소?”
영옥이 막내며느리 일이 감사하면서도 미안해 두 손을 마주 비볐다.
정희는 눈물을 닦으면서 “괜찮아요. 하루 택시를 못하더라도 시아버지를 모셔갸야죠.”라고 하더니 시아버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주물러주었다.
“우리 택시비를 줄테니 근심하지 맙소.”
상진은 아들며느리 소행에 주름진 눈시울에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성호는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
성호가 눈물을 흘리자 상진은 나지막하게 나무랐다.
“사, 사내자식이, 누, 눈물이 헤퍼서야 쓰니?”
아버지는 성호를 보고 이전에도 나무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내자식이 말이 달고서야 쓰니? 뜨는 소는 끙 소리 없이 뜬다. 빈 퉁재(초롱)일 수록 소리가 더 나느니라.”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는 바깥에서는 거위털 같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그 쓰라리게 흩날리는 눈발이 서글프기만 했다.
한시간 거의 지나 경철이 빨간 택시를 몰고 도착했다.
“사돈어른 어떻소?”
경철은 매형을 보고 문안했다.
“괜찮아. 사람을 알아본다.”
정희는 동생을 보고 “수고해라. 중풍환자기에 차를 덜렁거리지 말게 천천히 몰아라.”라고 당부했다.
“알았소.”
성호는 아버지를 업어 택시에 모셨다. 영옥과 은숙은 상진의 옷보따리와 이불을 택시에 실었다.
택시는 상진과 영옥을 모시고 시내 YB병원으로 달려갔다. 눈만 내리지 않았으면 반시간이면 될 길을 한시간이나 달려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그날 당직간호원은 우연하게도 간호장 벽화였다.
벽화는 성호를 알아보고 놀랐다.
“성호, 어떻게 돼…”
그녀는 황급히 성호의 잔등에 업힌 로인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김국장 아닌가요?”
상진은 머리를 겨우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성호의 잔등에 맥없이 떨어뜨렸다.
“어쩌다 이런 병에?”
벽화는 황망히 상진을 따라가면서 성호를 거들었다.
“이쪽에 오오. 의사한테 먼저 진찰받고 입원수속을 하오.”
의무실에 이르자 벽화는 성호를 거들어 상진을 침대에 눕혔다.
의사는 상진의 혈압을 잰다, 눈을 번져본다, 청진기로 청진한다 하면서 진찰하느라 분주히 서둘렀다.
이윽고 의사는 조용히 진단결과를 내렸다.
“뇌혈전에 걸렸습니다. 모세혈관이 몇가닥 막혔는데 점적주사를 좀 맞으면 인차 나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벽화는 성호를 보고 “뇌혈전은 경풍에 속하오. 너무 근심하지 마오.”라고 했다.
성호는 아버지를 업고 벽화가 이끄는대로 지정된 병실에 갔다. 그때까지 상진의  옆에서 걱정하는 승호 어머니가 고마우면서도 이상야릇했다.
(승호 어머니 어떻게 아버지를 알아보지?)
벽화는 이전에 성호가 마음에 들어 선금과 맞선까지 보인 적도 있었다.
(왜 저렇게 관심을 보일가? 사위가 됐으면 몰라도. 그때 절대 선금과는 안된다면서 얼마나 반대했는가.)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승호 친구라고 관심하는가?)
이윽고 벽화는 간호원을 데리고 와서 상진한테 점적주사를 놔주었다.
정희는 벽화가 시켜주는대로 달아다니면서 입원수속을 마쳤다.
밤에 정희는 한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성호가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 대소변을 받아냈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맨날 김경리한테 청가 맡기도 그렇고. 광고를 물어오지 못하면 뭐라겠는가? 아버지 병간호가 문젠데.)
성호는 생각하다 못해 큰누나보다도 둘째누나 춘자한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큰누나 춘애는 소학교문도 나오지 못한 농사군인데 아주 힘겹게 살고 있었다.
요즘 춘애는 아들 군춘의 련애문제로 해 골머리를 앓았다. 군춘은 부대에 가서 운전사면허증을 타고 천수해술공장 운수대 대장으로 잘 나가고 있었다. 보통키에 꽤나 말쑥하게 생긴데다 항상 밝게 웃는 모습이 처녀애들의 호감을 샀다. 그리하여 따르는 처녀애들도 줄을 섰다. 어느날 군춘은 한 처녀애를 데리고 집에 와서 한 이불에 들었다. 처음에는 군춘이 처녀애를 데리고 와 조용한 집에서 그저 련애나 하려는가고 춘애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바깥에 나갔다가 우연히 집에 돌아와 가만히 쳐들린 창문 카텐 밑으로 집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춘과 처녀애가 한창 그 짓을 하고 있지 않겠는가.
(아니, 쟤들이 결혼 전에 저게 뭐냐?)
당연히 춘애의 전통관념에는 맞지 않았다. 그녀는 문을 탕탕탕 두드렸다.
군춘과 처녀애는 황급히 옷을 주어입고 문꼬리를 벗겼다.
“결혼 전에 이게 뭐냐? 응?!”
처녀애는 머리를 두 다리 사이에 파묻고 감히 쳐들지도 못했다.
군춘이 오히려 야단쳤다.
“어머니, 작작 삐칩소. 지금 무슨 세월이라고 그런 걸 다 따집니까?”
춘애는 어이없어 턱을 홰홰 가로저었다.
“이런 짓을 하려면 처녀애들을 작작 끌어들여라! 원, 꼴도 보기 싫다.”
춘애는 처녀애를 보고 훈계했다.
“결혼 전에 이러다가 갈라지기라도 하면 어쩌오? 창피한줄도 모르고. 쯧쯧.”
처녀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황망히 신을 꿰고 바깥으로 달아났다.
그 후 그 처녀애는 다시는 이 집 문언저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일로 군춘은 어머니와 한바탕 말다툼했다. 나중에 군춘은 잔소리쟁이 엄마와 함께 살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엄마 몰래 세집을 잡고 나가버렸다.
춘애는 아들을 망쳐먹었다고 온 시내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땅 밑에 스며들었는지 아들 그림자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군춘이 퇴근할 때 미행하려고 먼발치에 숨어서 술공장 대문어귀에 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눈치챈 군춘은 단위 차를 몰고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씽 도망쳐나가군 했다.
“이 새끼야, 애비 없는 너네 오누이를 내 어떻게 길렀다고 이러니?”
그녀는 아버지 병문안을 와서 아들의 일이 답답해 성호한테 한바탕 하소연하고 돌아갔다.
무슨 일이 있으면 성호는 어렵게 사는 큰누나 춘애보다도 대학문을 나온 둘째누나 춘자한테 말하군 했다. 이번에도 성호는 둘째누나한테 알려 다른 형제들한테 아버지의 병간호를 좀 도와달라고 기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까이에 있는 셋째누나와 다섯째누나가 제일 먼저 달려와 아버지 병간호를 거들었다.
어느날 성호가 병원에 왔을 때였다.
승호 어머니가 병실에서 점적주사바늘을 아버지 손등 혈관에 꽂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김범수가 직원들을 데리고 병문안 하러 오지 않았겠는가.
성호는 단위에 페를 끼치기 싫어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벽화가 승호한테 알린 것 같았다.
병문안을 온 직원들 속에는 굉팔까지 끼여 있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바쁜데 찾아와서.”
성호가 마주 인사했다.
해연이 두툼한 봉투를 꺼내 김범수 경리한테 건넸다.
범수는 상진의 손에 돈봉투를 쥐여주면서 “아바이, 병치료를 하는데 보태십시오.”라고 했다.
상진은 입술을 씰룩거릴뿐이였다.
성호는 황송해 몸둘바를 몰라했다.
 “아니, 와봐도 대단한데 뭐 들고 왔습니까? 감사합니다.”
해연은 과일칼로 사과를 깎아 잘게 쪼갰다.
그녀는 손수 사과쪼각을 상진의 입에 넣으면서 문안했다.
“김대장, 저를 알아보겠어요?”
상진은 한참 그녀를 바라보더니 머리를 약간 끄덕였다.
“집체호 새애기 해연인데요. 꼭 완쾌되리라 믿습니다.”
이때 벽화는 뒤에 서 있는 승호를 한쪽에 끌고 가서 뭐라고 말했다.
승호는 황급히 앞으로 나와 상진의 손을 잡기까지 하고 문안을 드렸다.
“성호 아버지, 전 성호 대학동창생입니다. 하루빨리 병치료를 하고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상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이변이 생겼다.
벽화가 상진과 승호 옆에 다가가더니 “얘가 제 아들놈입니다. 승호예요.”라고 했다.
상진은 떨리는 손으로 승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두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광고회사 직원들은 그저 우연한 만남이라고 여겼다.
제일 충격을 받은 사람은 성호였다. 아버지와 승호 어머니는 똑마치 잘 아는 옛친구가 오랜만에 만난듯 했다.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 이상해.)
성호는 자기가 모르는 뭔가 있지 않는가고 미심해났다.
며칠 후 벽화의 주선으로 다른 병원에 가서 CT의기로 상진의 뇌촬영을 하게 됐다. 그 CT의기는 이 시내 병원들에 단 한대 밖에 없었다.
그날에도 승호가 찾아왔다. 분명 승호 어머니가 기별해 데리고 온 것 같았다.
벽화가 승호한테 눈짓하자 승호가 직접 상진을 업으려고 잔등을 들이댔다.
“얘, 내 업을게. 물러나.”
성호는 싱거운 승호가 슬그머니 반감이 났다.
“친구 사이에 따질게 뭐 있니? 친구 아버지는 내 아버지나 다름없지.”
승호가 기어이 아버지를 업자고 잔등을 내대자 성호는 화를 냈다.
“얘, 내 체면이 뭐냐?”
그제야 승호는 마지못해 물러나 일어나더니 손수 상진을 부축해 성호의 잔등에 업히워주었다.
층계를 내려갈 때 성호는 아버지를 춰업다가 그만 발을 빗디뎌 앞으로 쓰러질 번했다. 다행이 승호가 제꺽 상진을 끌어안는 바람에 성호는 간신히 몸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내 업을게.”
승호 모자의 권고에 성호는 아버지를 승호에게 업혀주었다. 승호는 상진을 업고  간신히 한계단, 한계단 다 내려갔다.
목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버지를 업고 가는 승호의 뒤모습을 보면서 성호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자식, 어떤 땐 굉팔한테 붙어서 죽기내기로 광고를 빼앗아가려고 발광하더니. 어떤 땐 과분하게 친절을 베풀어?)
CT검사를 한 결과 확실히 대뇌모세혈관 두개나 막히지 않았겠는가.
벽화는 성호와 승호를 번갈아보며 위안했다.
“괜찮아, 이제 치료를 좀 하면 인차 호전될 거야.”
벽화의 예측과는 달리 중풍환자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자꾸 업고 들락날락해 그런지 병세가 악화돼 상진은 사지마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황급해난 성호는 먼 곳에 있는 형제들한테 아버지 병세가 위급하다고 전보를 쳐보냈다.
이튿날 춘자와 넷째누나 봉금이 밤차를 타고 황급히 달려왔다.
그녀들은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버지 량손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텀벙텀벙 쏟아냈다.
그녀들은 병치료에 보태라고 돈봉투를 앓는 아버지 손에 쥐여주고나서 얼굴을 닦아준다, 손발을 씻어준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하면서 효성을 하느라 분주히 서둘렀다.
성호는 외인들이 다 간 후 둘째누나와 조용히 휴계실에 나가 물었다.
“편지를 써보냈는데 받았소?”
“응.”
봉금은 성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뜻밖의 말을 했다.
“부모문제 참 곤난하다. 우리 출가집 외인이 어쩌겠느냐?”
“그게 무슨 말이요? 그래 딸들은 자식이 아니오?”
성호가 오만상을 찌푸르자 봉금은 정색했다.
“옛날부터 아들이 부모를 모셨지. 딸들이 어디 모셨니? 우리 집에서도 큰오빠가 부모를 모시는게 맞아.”
“농사군이 어떻게 모시오? 누가 조건이 더 좋으면 누가 모시는게 옳지. 내 부모를 모시겠으니까. 누나네도 한해에 생활비만 조금씩 도와주면 안되겠소?”
그때 은숙이 끼여들었다.
“야, 말도 안돼.”
봉금은 얼굴이 새빨개나면서 떠들어댔다.
“우리 두 집에서 모여서 의논했어. 이제껏 부모의 모든 경제는 네가 틀어쥐고 살지 않았니? 어떤 때는 혼자 득을 보고 어떤 때는 공동히 부담하자고 하니? 말도 안돼. 우리한테 손을 내미는게 말이나 되나? 우리 경상도에서는 출가집 외인은 본가집 일에 삐치지 않아.”
시집간지 20년 가까이 되더니 말투마저 경상도 거친 말투로 번지지 않았겠는가.
“그래, 우리 경상도에서는 딸들이 본가집 일에 삐치면 재수 없다고 삐치지 않아.”
“누난 그래 함경도 사람이지. 경상도 사람이오? 경상도 사람들은 그래 본가집 부모를 돌보지도 않는답데? 완전히  이상해졌구만.”
성호의 말이 고울리 만무했다.
춘자는 원래 팩하고 고집이 센 녀자였다.
“얘, 죄꼬만게 무슨 말 버릇이냐? 이제껏 우리 부모한테 숱한 돈을 부쳐보냈어. 네가 고작 얼마나 부모를 보살폈다고 누나들 보고 떽떽거려?”
봉금도 고운 눈길이 아니였다.
“얘, 우린 아무리 곤난해도 남한테 손 내밀지 않았어. 이날 이때까지 자기 힘과 노력으로 살아왔다. 너도 이젠 네 힘으로 살아라. 언제까지 막내노라고 서적  부리면서 여기저기 손을 내밀겠어?”
성호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누나들 믿고 말을 꺼냈건만 이다지도 뜻밖으로 나올줄은 몰랐다.
(딸들은 그래 우리 엄마 하늘땅이 맞붙게 아프게 낳아 기른 자식이 아니오? 이젠 올챙이때 일을 다 잊었구만. 그래 정춘과 정빈을 키울 때 누가 업어 키웠소? 울 엄마 돈 일전한푼 받지 않는 전문보모로 돼 애 둘을 다 업어 키우지 않았소? 봉금누나, 쌀고생한다고 영희와 근봉을 업고 본가집에 왔을 때 누가 숱한 쌀이랑 보내주었소? 누나 대수술 두번이나 하면서 죽는다 산다 할 때 누가 숱한 빚더미에 깔리면서도 치료해줘 살려냈소?)
그는 누나들한테 너무나도 섭섭하고 억이 막혀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부모가 저런 누나들의 말을 들으면 얼마나 섭섭하고 실망해하겠는가.)
성호는 더는 말을 나누고 싶지도 않았다. 저런 딸들을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없이 불쌍해났다.
성호는 고독함을 이기기 힘들었다. 조선에 나간 둘째형님 동선을 빼고도 형님과 누나 여덟이나 돼 항상 속이 든든했던 그였다. 그러나 이 시각 그는 믿던 기둥이 와그르르 무너지며 고독해나는 것을 가슴 아프게 느꼈다.
그는 형제들을 쭉 내리 훑어보며 재검토해보았다.
대학문을 나온 누나가 저러니 중학교문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형님과 누나들은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맏형님 백호는 큰집 큰아버지 앞을 가서 모시느라고 큰아주머니를 여간 고생시키지 않았다. 게다가 이젠 년세도 예순고개를 바라보는데다 두 아들 놈들의 일이 풀리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큰누나 춘애는 음악교원인 박주룡한테 시집갔지만 남편이 뇌출혈로 불시에 사망하는 바람에 아직도 농사를 지으면서 힘겹게 산다. 그는 생활이 가난할 때 자기를 업어다 키운 토성안집 큰어머니를 모시고 있어 이쪽 부모를 돌볼 겨를이 없이 보내고 있었다.
셋째누나 은숙은 아들 낳자다가 딸 셋을 줄줄 낳고 그 애들의 뒤바라지를 하느라고 허리가 물러날 지경으로 농사일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다섯째누나 은자는 아래마을에 시집갔다가 애를 낳지 못한다고 쫓기다싶이 해 리혼하고 본가집에 얹혀서 살았다. 후에 여러번 재혼했지만 철준을 낳고 또 리혼했다. 그녀는 하는수 없이 웅걸을 본가집 부모한테 맡겨놓고 시내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음식점일이나 주어하면서 사는 형편이였다.
여섯째누나 성숙은 경박호 폭포 근처에 시집가서 아들애 경남과 경춘을 낳고 살고 있었다. 키 작다고 나무린 시부모형제와 틀려서 항상 옥신각신하면서 힘겹게 살았다. 설상가상으로 매형이 자식 없는 큰아버지 앞을 서서 큰시부모까지 모시고 어렵게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성호는 아무리 올리 훑고 내리 훑어보아도 둘째누나 춘자와 넷째누나 봉금이 제일 괜찮다고 여겼다. 둘째누나 부부는 대학졸업생으로서 그래도 달마다 로임이 나오지 않는가. 정춘과 정일 두 애들도 이젠 오래지 않아 대학을 졸업할 판이다.
정춘은 중학교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들게 공부를 잘했다. 대학입시를 칠 때 중학교 담임교원이 그를 보고 첫 지망에 길림대학을 쓰라고 했다. 그런데 그해 길림대학 입학점수가 어쩌나 높은지 정춘은 길림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고 할빈과학기술대학에 입학했다. 원래 중소학교에서 줄곧 체육위원을 한 그는 대학에 가서도 각종 활동에서 장기를 보였고 정치사상발전에도 힘써 학생당원으로 발전하였다. 또 그는 대학교 운동대회에서 장거리달리기 1등도 여러번 했으며 학생회 체육부장으로 활약했다. 할빈공업대학 석사연구생으로 된 후에는 연구생학원학생회 부주석을 담임해 맹할약했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어머니와 성호한테 편지를 써보냈다. 그는 자기 앞에 두갈래 길이 있는데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옳은지 외삼촌의 고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한갈래 길은 대학교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아 미국에 가서 박사공부를 하고 돌아와 교수로 되는 길이라고 했다. 지도교수님은 일찍 미국에 류학가서 박사학위를 탔다. 그는 미국의 자기 지도교수라는 인맥을 통해 정춘을 미국에 류학보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미국으로 가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그것은 자기 딸과 약혼하고 함께 미국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정춘은 지도교수의 딸이 키가 1메터 70, 남자같이 우둔하게 생겨 녀자 같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한갈래 길은 지금 한국의 한 유명한 기업에서 인재초빙하러 왔는데 기업으로 나가는 모험의 길이라고 했다.
성호와 춘자는 정춘한테 편지를 써서 미국으로 류학갔다가 교수로 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특히 지금 세월에 누구나 다 미국에 류학갈 수 있는가고 하면서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정춘은 어머니와 외삼촌의 말을 듣지 않고 모험의 길로 나갔다.
졸업을 앞둔 어느날 화동의 한 한국기업의 인사과장이 할빈공업대학에 와서 인재초빙공개회의를 열었다.
정춘은 외자기업의 소개를 듣고 초빙에 응했다. 오과장은 정춘의 략력을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리정춘, 조선족, 26세, 할빈공업대학 연구생, 학생당원, 학생총회 체육부장, 부주석 력임.”
오과장은 학습성적이 특출하게 우수하고 학교 각종 활동에서 뛰여난 조직능력을 보여준 리정춘의 리력서를 따로 잘 건사해놓았다. 그러나 “학생당원”이란 것을 보면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인차 리정춘을 불러 면접을 보았다. 1메터 75나 되는 훤칠한 키에 싱글벙글 웃는 미남자의 얼굴이 첫눈에 호감이 갔다.
오과장은 기업경영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뭘 보고 저의 기업에 오려고 해요?”
정춘은 꽤나 선견지명이 있었다.
“세계에서도 유명한 이 외자기업이라면 저의 청춘을 바쳐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좋은 기업이라고 봅니다…”
“좋아요. 우리 기업에 와서 함께 일해보자요. ”
정춘은 그 자리에서 그 한국 기업의 인사과 과원으로 초빙돼갔다.
리정춘은 지도교수의 딸이 아닌 다른 처녀, 할빈의 중등전문학교를 다닌 조선족처녀 김미옥을 데리고 남방으로 나갔다.
김미옥의 부모는 모두 할빈에서 한다하는 재벌가로서 집에 기업이 몇개 있었는데 장차 아들과 딸한테 경영을 나눠 맡기기로 했다는 것이였다. 만약 딸 미옥이 정춘과 결혼하면 할빈의 경영을 떼맡기겠다고 했다.
춘자 부부는 정춘이 미옥을 집에 데리고 왔을 때 대학생이 아닌데다가 키도 1메터 58 밖에 안된다고 나무랐다. 그들 부부는 키 1메터 75나 되고 잘 생긴 미남자 맏아들은 적어도 키 160 이상 되는 대학생처녀를 색시로 데려와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김미옥은 예쁘긴 했지만 학벌이나 체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무랐다.
심지어 춘자 부부는 자기 집 문선에 1메터 60을 자로 재여 금까지 그어놓고 그녀가 나들 때면 눈이 시리게 키를 여겨보았다. 아무리 문으로 드나드는 그 처녀 키를 여겨봐도 문선에 그어놓은 표준키 1메터 60에는 미치지 못했다.
정춘이 그 처녀애를 데리고 강남에 나갔다고 하자 하늘땅이 뒤번져질 지경이였다.
“당장 그 처녀애를 떼버려라! 어데 가서 그런 처녀애를 얻지 못하겠어?”
미옥의 부모들도 어찌나 정춘을 따라 남방으로 가지 말라고 성화같이 닥달했는지 미옥도 점차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사업형인 정춘은 밤낮으로 사업에만 골몰하다나니 미옥을 동무해줄 새도 없었다.
미옥은 직업도 없이 집에서 밥이나 하면서 너무 심심해 퇴근해 들어온 정춘과 불평을 토로했다.
“어째 사업 밖에 몰라요? 쉬는 날엔 절 어델 데리고 가서 놀지도 못해요?”
뾰로통해하는 미옥을 보고 정춘은 그저 “우린 놀 시간이 아주 많소. 기업에 갓 와서 일 잘하지 않고 어쩌오?”라고 하고는 기업에 나가버렸다.
정춘은 그렇게 사업을 열심히 한 덕분에 인차 인사과 과장으로 승진했다.
“날 데려다 가정보모로 쓸 예산인가? 어림도 없어.”
미옥은 독수공방하기 싫어 끝내 할빈으로 돌아가버렸다. 정춘이 아무리 돌아오라고 전화하고 편지를 써 보내도 다시는 련락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아들 정일은 무한공업대학을 졸업하고 형을 따라 미국기업 기술과에 들어가 취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장으로 승진했다…
성호는 이젠 부모의 생활비 말을 일언반구 꺼내지 않고 자기 힘으로  고군분투하면서 부모를 모시리라고 작심했다.
순간 병실에서 병환에 계시는 머리 허연 아버지가 불쌍해났다. 부모는 자식을 열이나 낳았 건만 믿을만한 자식 몇이 없었다.
또 시아버지 발을 씻어드리고 발톱까지 똑똑 깎아드리는 사랑스러운 정희의 가녀린 모습이 눈물겹도록 불쌍해보였다.
성호는 코마루가 시큼해나 속으로 피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여보, 교수네 귀공주 같은 당신을 이 집에 데려다 해준게 없이 고생시키게 됐구만. 이 못난 농민 아들을 용서해주오.)
힘겨운 두달간이 지나자 상진의 병세는 호전돼 사지를 놀릴 수 있게 되였다. 그간 치료비만 해도 만여원이나 들어갔다. 성호는 광고를 해 번 돈을 몽땅 털어 아버지 병을 치료해주었다.
벽화는 성호를 불러놓고 입원치료비를 대기 힘들겠는데 집에 모시고 가서 약을 복용하고 간호원을 불러 점적주사를 놓으면 된다고 했다.
막내누나 성숙은 밤차로 달려와 아버지 손을 잡고 병문안을 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는 짝이 기운 신랑한테 시집가서 시집살이가 퍽 고달파보였다. 그녀는 키가 1메터 53밖에 안되는 작달막하게 생겼지만 신랑은 키가 1메터 75도 넘는 훤칠한 꺽다리였다. 성숙은 키는 작아도 총명해 무슨 일을 하나 궁리가 베아링처럼 잘 돌아갔다. 그러나 신랑은 그저 뚝심만 썼지 머리는 둔한 편이였다. 시부모와 시누이들이 짝이 기운다고 그녀를 난쟁이라면서 사람취급을 해주지 않았다. 하여 시부모와 시누이들과 항상 말다툼을 하기 일쑤였다.
성숙이 시부모를 욕하면 큰아들 경남과 둘째아들 경춘은 “엄마, 왜 자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욕합니까? 이담 우리도 크면 딱 엄마 하는대로 하겠소.”라고 했다.
그 말이 섬찍해 성숙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을 삼켜버리군 했다.
성호는 막내누나 성숙도 부모를 거들 겨를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저러나 성호는 형님과 누나들이 병문안이라도 와주어서 고마웠다. 특히 막내누나 성숙은 손에 쥔 것이 없어 돈 50원에 신랑이 송화강강물에서 잡아 말린 메기와 미꾸라지, 붕어를 한보꾸러미 들고 온 것이 고마왔다.
“물고기장국이라도 끓여서 아버지를 대접하자.”
성숙은 성호네 집에 가서 말린 물고기를 물에 푹퍼지워 물고기장국을 끓여 병실에 가져왔다.
아버지는 그 물고기장국을 얼마나 맛있게 잡쉈는지 몰랐다.
성호는 그보다도 순박하고 진심에 담긴 막내누나의 효성이 진하게 느껴졌다.
형제들이 그저 병문안이나 하고 말려는 눈치를 보이는지라 성호와 정희는 부득불 입원비를 더 지불하기 힘들어 약보따리와 옷보따리를 꿍져가지고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정희의 이모사촌오빠 리현철이 단위의 찌프를 몰고 와서 상진을 모셔 성호네 집으로 갔다. 영옥은 사돈이 고마워 인사로 쌀주머니를 차에 실어보냈다.
하루는 성호가 아버지 근심돼 집으로 가서 보았다. 그런데 글쎄 아버지는 방에 누운 채 대소변을 보아 오줌과 똥물이 주방에까지 흘러내려온 것이 아니겠는가.  집에서 지키던 엄마가 채소를 사러 시장으로 간 사이에 생긴 일이다.
성호는 아버지 똥오줌이 더러운줄도 잊고 대소변이 발린 옷을 몽땅 벗기고 구들의 오줌똥을 걸레로 깨끗이 닦았다. 뒤이어 똥빨래를 대야에 담아들고 세면실에 가서 손으로 똥을 털어버리고 물에 활활 휑구어 비누를 발라 썩썩 씻었다.
정희가 점심에 돌아와서 “어째 집에서 무슨 냄새 나요.” 하고 상큼한 코를 발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무슨 냄새 난다고 그러오?”
“냄새 나는 걸 냄새 난다고 하지 않겠어요? 흥!”
그녀는 시부모한테 밥상을 들여가다가 구들바닥에 슴밴 대소변자국을 발견하고 코를 막고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그 길로 코를 막고 학교로 가버렸다.
해가 지고 보름달이 휘영청 떴는데도 정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보통 그녀가 한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소식이 없었다.
“본가집에 데리고 갔을가?”
성호는 인차 가시집에 전화를 쳤다. 그러나 거기에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당황해난 성호는 자전거를 타고 천수해중학교로 달려갔다. 그러나 학교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황급히 자전거를 타고 한나가 다니는 천수해소학교에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러나 그 곳에도 없었다.
성호는 당황망조한 나머지 자전거를 타고 천수해를 한고패 돌았다. 그래도 찾지 못하자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그는 혹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가고 막연한 미련을 품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가 영화관 앞을 스쳐 달려가다가 정희와 한나가 나란히 걸어가는 뒤모습을 발견했다.
“한나야!”
성호는 자전거를 타고 그들의 앞에 달려가 급정거했다.
“이때까지 뭘 했소?”
“집에 들어가기 싫어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길입니다.”
성호는 정희를 보고 눈을 흘겼다.
“정신 있소? 집에 전화라도 칠게지.”
정희는 성을 낼 대신 나직이 말했다.
“우리 둘째를 가지지 맙시다.”
성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어째 우리 집 대를 끊을 예산이오? 그래 애를 낳기 싫어 집에 들지도 않소?”
정희는 정색해 말했다.
“한나도 사탕을 나눠먹기 싫어 동생이 싫다는데요.”
“됐소, 돼. 어서 앉소.”
정희는 자전거에 앉아 계속 도도거렸다.
“아들을 해 뭘 해요? 내 무슨 전주 리씨네 대를 잇는 젖손가요?”
“뭐? 젖소?”
성호는 어이없어 버릇처럼 도리머리를 홰홰 젓더니 정색했다.
“우리 아들을 낳지 않으면 진짜 이 집안 대 끊어지게 되오. 보오, 큰형님네 아들 셋이라도 모두 장가도 가기 힘든 세월에 손자를 언제 보겠소?”
“내 전주 리씨 집안 대를 있는 의무까지 있습니까? 지금 어디 애를 가질 형편인가요? 다른 형제들은 부모를 한푼도 도울 예산마저 없는데요.”
“알았소. 우린 대를 끊는 불효를 저지를 순 없소.”
“그만 두세요. 전 막내며느린데요. 무슨 의무가 그렇게도 많은가요? 대도 이어야 하고 시부모도 모셔야 하고…”
“관두오!”
성호는 정희가 뒤통수를 치는 것 같아 괴로왔다. 그녀를 데려다 고생시키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정희는 한나를 안고 자전거에 올라탄 후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집 앞에 와서 자전거에서 내려 시부모한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손수건으로 닦고 또 닦았다.
성호는 속으로 피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가슴이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
 
 
 
 
 
 
 
 
 
 
 
 
 
 
 
 
 
 
 
 
 
 
 
 
 
 
대하소설
진달래소야곡
3
실련의 눈동자
   차례
50. 한 기자의 일기
51. 련꽃의 눈물
52. 사랑의 무덤
53. 세상에 참사랑이 있는가요?
                         54. 열풍
55. 흐느끼는 울라지보스또크
56. 위기와 기회
57. 정미소특대참살사건
58. 빨간 장미꽃 함정
59. 조강지처
60. 밀모
61. 고민
62. 수림 속에서 벌어진 강간사건
63. 사위도 반자식
64. 기둥
65. 출렁이는 꽃서울
66. 부산에서 나래치는 갈매기
67. 애인파도
68.출렁이는 꽃서울
69. 실련의 눈동자
70. 부산에 피여난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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