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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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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3)
2018년 11월 18일 09시 46분  조회:1272  추천:0  작성자: 김장혁




                 


             3 황해도 곡산군에서 
 
                    친선의 정이 흘러넘치는 산골

      1951년 6월 12일 밤에 해식이네 사단은 황해도 곡산군의 세림리와 외락리에 이르러 휴식정돈하게 되였다.
       곡산이란 곳은 문자 그대로 산과 골짜기가 많았다. 또 나무 숲이 우거져 군대가 주둔하기 좋은 곳이였다. 옥에 티라고나 할가 골짜기에 오불꼬불하고 올리막내리막이 많은 좁은 길뿐이여서 군용차들이 다니기 어려운 것이 흠이였다.
       부대가 들어오자 고즈넉이 잠들었던 이 산골은 들끓기 시작하였다. 이전에 자동차를 구경조차 하지 못한 산골의 조무래기들은 마을에 들어선 자동차며 찌프며 구경하느라고 차에 올라가 야단법석하였다.
      전사들은 나무와 풀을 베여다가 마을 뒤산기슭 수림에 간이막집을 지었다. 공병영에서는 괭이를 휘둘러 사단 수장들과 기관 동지들이 들 토막집과 2, 300명이나 들어갈 수 있는 깊고 큰 방공굴을 팠다.
      며칠 후 사단에서는 당지 조선 인민정부와 인민군중들과의 거래가 잦게 되자 리해식을 사단 대적공작과로부터 민운과에 전근시켰다.
사단 사령부와 정치부의 큰 방공굴에서 자주 영화를 돌리거나 문예공연을 하였다. 그때면 아무리 자리가 모자라도 리해식은 상급의 지시에 따라 당지 조선 백성들을 모셔다 제일 좋은 자리에 앉게 하여 구경시켰다.
모내기철이 되자 전체 장병들은 조선 백성들을 도와 모를 꽂아주었으며 사래긴 옥수수밭 기음도 매주었다. 그리고 쉼이면 전선의 승리소식도 전해주었다.
실로 온 산골짜기에는 친선의 정으로 들끓었다.
조선의 당지 도와 군 인민정부에서는 지원군부대에 말사료가 떨어진 것을 알고 인차 숱한 말사료를 실어왔으며 자주 문예단체를 파견하여 지원군 장병들에게 다채로운 위문공연을 해주었다. 어떤 때에는 미제의 공습에 위험했지만 조선위문단 배우들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사단 주둔지에 찾아와서 다채로운 문예종목을 공연하였다. 그들은 공연한후 쉼시간이면 피곤을 무릅쓰고 전사들의 옷을 씻는다, 옷을 깁고 단추를 달아준다 하면서 눈코뜰새 없이 보냈다.
장마철에 잡아들자 하늘은 개일줄 모르고 큰 구멍이나 뚫린듯이 소낙비가 대줄기처럼 쏟아져내렸다. 산홍수가 터져 오불꼬불한 산길은 뭉텅뭉텅 끊어져나갔다. 40년래 처음 보는 큰비로 하여 철도는 10여 곳이나 끊어졌고 다리는 백여개나 끊어져 40날이나 운수가 막혔다.
리해식의 소속사단에서도 산길이 끊어져 기관간부들은 10여킬로메터나 되는 곳에 가서 식량과 부식물을 메와야 하였다. 그리고 큰물피해로 하여 당지 백성들의 생활에도 막대한 곤난을 조성하였다.
하여 아군단에선는 각 사의 병력을 떼내여 군부 참모장 등사준의 지휘하에 주둔구역의 주요운수선인, 문암리로부터 룡암리에 이르는 21킬로메터 도로를 너비가 7메터 되는 큰길을 닦기로 결정하였다. 사단에서는 정치부 주임 범극양의 지휘아래 3개 보병영이 길닦기에 참가하였다.
이 구간의 길은 동서로 뻗었는데 굽인돌이가 많은데다가 걷기조차 힘든 령길이였다. 룡암리에서 문암리로 가자면 강변을 따라 가다가 크고 작은 26개의 강한 올리막굽인돌이를 거쳐 산꼭대기에 올라야 했다. 또 그 산꼭대기에서 다시 18개의 경사도가 강한 내리막굽인돌이를 내려 작대동에 이른 후 강곬을 따라 굽인돌이 5킬로메터 남짓한 길을 가야 하였다. 큰비가 내린 후 다리와 작은 배수로들이 홍수에 밀려 끊어났거나 무너져 사람이나 소나 다 걷기도 힘들었다. 그런 길로 군용자동차는 달릴 엄도도 내지 못하였다.
이런 길을 닦는다는 것은 실로 난사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로동도구도 없어 곤난이 막심하였다. 량미간을 쪼프리면 꾀가 생긴다고 전사들은 미제 공중날강도들이 내리뜨린 나팜탄탄피로 톱을 만들어 나무를 베왔고 버드나무가지를 베다가 광주리를 결어 흙을 날랐다.
어느날 장병들이 한창 들끓는 열의로 길닦이를 할 때였다. 갑자기 남쪽 하늘에서 적기들이 아츠런 엔징소리를 내면서 공중을 짜개며 날아왔다.
“적기다! 은페!”
전사들은 모두 길옆의 수림에 들어가 피신하였다.
적기들은 기수를 숙이더니 기관총으로 소사하고 폭탄을 마구 투하하였다. 갓 닦아놓은 길에 폭탄구뎅이가 벌집처럼 수태 났다.
쿵! 쿵! 쿵! 쿵쿵!
아군의 맹렬한 고사포사격에 적기 한대가 시꺼먼 연기를 뭉게뭉게 풍기면서 저 먼 산에 처박혀 폭발하였다. 나머지 적기들은 겁을 집어먹고 황급히 남쪽으로 꽁무니를 뺐다.
“만세!”
“만세!”
전사들은 삽과 괭이, 멜대를 추켜들고 환호했다.
사기 오른 아군에서는 이른바 “공중교살전”을 벌리려는 공중날강도 3대를 떨구고 한대를 격상해버려 길닦이부대를 엄호하였다.
아군 사단 모 퇀 전사 하명산은 하루에 정으로 돌 7립방메터나 깨냈다. 전사들은 하명산처럼 손바닥에 피물집이 졌지만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억세게 돌을 캐고 흙을 메날라 길을 닦았다. 길바닥에 펼 모래가 없으면 심지어 10~15킬로메터 길을 오가면서 모래를 한광주리 한광주리 날라다 폈다.
전사들은 무거운 모래짐을 메나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모래 한광주리를 더 날라 길을 닦으면 그만큼 중조친선의 꽃이 더 아름답게 필 것이 아니겠소?”
아군 전체 길닦이장병들은 31일 동안 적기의 공습과 장마비를 무릅쓰고 악전고투하여 룡암리로부터 문암리에 이르는 21킬로메터나 되는 길을 너비 7메터나 되는 빤빤한 모래길로 닦아놓았다. 그들이 메나른 흙과 모래는 93만여립방베터로서 가히 자그마한 산을 이룰 수 있었다. 그들은 다리 3개를 수축하고 배수로 93개를 뺐으며 자동차은페소 20개를 구축해놓았다.
큰길을 닦아놓았기에 부대의 운수와 당지 조선 백성들의 생활에 커다란 편리를 가져다주었다.
당지 조선 백성들은 이 길을 걸을 때마다 지원군 장병들의 창거에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황해도와 곡산군 등 당정지도자들도 여간 감탄해마지 않았다.
 
                                        미제의 세균전에 맞서
     
      1951년 7월, 제5차 전역에서 참패를 당한 미제는 개성에서 열린 정전담판에서 중조군대가 통제하는 커다란 지역을 싸우지 않고 제 손아귀에 넣으려고 시도하였다. 그 무리한 요구가 중조담판대표단의 거절당하자 미제는 그해 여름 장마철에 남조선의 수원, 군산, 부산, 김포, 성남, 대구 등 공군기지로부터 600여대 비행기를 띄워 중조군대의 주요교통요새를 폭격해 봉쇄하려고 망녕되게 시도하였다. 그러나 역시 참패를 면치 못하였다.
      미제는 실패를 달가와하지 않고 1952년 새해 벽두부터 조선전쟁터에서 세균전을 암암리에 들이댔다.
일찍 미제는 2차세계대전 때 동북지구에서 일제가 731부대를 이끌고 세균무기실험을 해온 세균연구자료와 일본세균전쟁범죄자들을 리용하여 새로운 세균무기를 연구하여 제조하였다.
그 놈들은 1950년 12월에 황해도 등지로부터 패주할 때 처음으로 전염병세균을 뿌린 적이 있었다. 그후 조선 신의주와 중국 단동 교외 일대에도 세균무기를 투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번마다 중조 두 나라 반세균전문가들에 의해 좌절당하였다. 극악한 미제는 그후에도 계속 남조선 경상남도 거제도 등 미군 전쟁포로관리소에서 중조 두 나라 포로들의 몸에 대고 비인간적인 세균실험을 했다. 반복적인 실험을 거쳐 미제는 끝내 새 세균무기를 제조해냈다.
미제는 공군 비행사에게도 “터지지 않는 폭탄”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그들을 보고 세균폭탄을 아군의 전연진지와 교통요새에 마구 투하하게 하였다. 그리고 대량의 특무들을 북반부에 파견하여 세균전의 효과를 정탐해오게 하였다.
3월 중순, 지원군은 황해도 금천군 구이면 경내 산속에서 미군 정보기관에서 파견한 왕지가라고 별명을 단 특무를 붙잡았다.
피끗 보아도 그 자는 중국인임이 틀림없었다. 그 자가 입은 지원군 군용외투 팔소매에는 “US”글자가 박혀 있었고 외투 왼쪽어깨에는 십자가 모양의 “부호가 새겨져 있었다.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인가? 낱낱이 교대하라.”
지원군 심문일군이 묻자 그 자는 머리를 푹 수그렸다가 천천힏르면서 무거운 입술을 뗐다.
“나는 본명이 왕기고 중국 절강성 사람입니다. 국민당 ‘반공항로단’ 성원인데 참조미군의 ‘원동정보과’ 정탐일군입니다. 나는 다른 9명의 중국적 대만특무들과 함께 서울 ‘미군전연정보기관련락처’의 명령을 받고 서울에서 두대의 비행기에 앉아 북반부 여기에서 락하산을 타고 내렸댔습니다.”
왕기라는 특무는 쪽걸상에 앉아 두 손을 바르르 떨더니 마주 비볐다.
심문일군은 그 자를 날카롭게 쏘아보면서 바투 들이댔다.
“임무는 뭔가?”
왕기는 심문일군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하면서 머리를 수그렸다.
“지원군으로 변장하고 세균전 효과를 알려고 왔습니다. 말하자면, 저- 공산군에 전염병이 도는 정도와 사망률과 같은 정보를 수집하려고 왔습니다.”
심문일군은 왕기의 몸에서 군용지도와 도청기 등을 수색해냈다. 이 놈을 체포할 때 전사들은 돌격총과 통신용비둘기를 빼앗아냈던 것이다.
미제의 세균전을 막으려고 지원군과 조선인민군, 그리고 조선 당지 인민정부에서는 중국에서 파견해온 40여명 반세군전 전문가들의 지도 밑에 한차례 반세균전을 벌리였다.
아군 주둔지인 곡산군에서는 2월 중순부터 적들이 투하한 세균벌레를 발견하였다. 적들은 밤중에 선후하여 51차나 세균탄을 떨구었다. 이런 세균탄에는 전염병균을 가진 벼룩, 파리, 거미 그리고 돼지고기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이런 세균탄은 밤중에 공중에서 터진데다가 세균벌레가 매우 넓은 지역에 널렸기에 잡기 매우 힘들었다. 어떤 세균벌레는 삐라와 함께 투하하였기에 삐라를 쥐기만 하면 전염병에 걸릴 수 있었다.
사단에서는 3월 중순부터 동원되여 세균벌레를 잡고 면역사업을 펼쳐나갔다.
한번은 장병들이 산에 올라가 풀 속에 널린 세균벌레를 발견하였다.
한 전사의 발등에 커다란 세균벌레가 올라붙었다.
“어이, 빨리! 그 독거미를 털어내 태우오.”
다른 동무가 다급히 웨치자 그 전사는 대수롭잖게 빈정거렸다.
“쳇, 겁날게 뭐요? 이 어른은 전선에서 적기와 포탄도 겁나지 않았소. 요까짓 쪼꼬만 거미를 겁나할 거 같소? 원참.”
결과 그 전사는 전염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와 반면에 어떤 전사들은 진짜 바줄을 보고도 뱀인가고 놀라는 우수운 일도 있었다.
한번은 사단 정치부의 간부들이 조선 백성의 집뜨락에서 밥을 먹을 때였다.
갑자기 쥐 한마리가 집 안에서 뛰쳐나왔다.
“쥐, 쥐! 아이유, 쥐요!”
모두 후닥닥 뛰여일어나 밥사발을 쥔 채 쥐를 피해 이러저리 뛰여다녔다. 쥐가 달아나자 밥사발을 쥔채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배를 끌어안고 껄껄 폭소를 터뜨렸다. 실로 싸움터에서 오십보를 달아난 자가 백보를 달아난 자를 웃는 격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단에서는 반세균전 전문가들을 청해 반세균전상식을 강의하게 하고 사상사업을 하여 장병들의 공포심리와 한시름 놓는 사상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전체 장병들을 동원하여 며칠새에 쥐 몇만마리나 잡아 마을에서 800여메터 떨어진 곳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렸다. 그리고 취사칸과 들집, 변소를 자주 깨끗이 쓸어 전염병세균 벌레가 끼지 못하게 하였으며 몸도 자주 씻어 정결을 유지하고 벼룩 같은 전염병균벌레가 끼지 못하게 하였다.
조국에서는 면역주사를 보내 모든 장병들과 당지 백성들에게 제때에 놔주었다.
면역주사를 맞은 전사들은 주사자리를 문지르면서 감개무량해하였다.
“모주석과 조국 인민들이 비행기로 면역주사까지 보내주었는데 우린 꼭 적들의 세균전을 이겨 모주석과 조국 인민들의 배려에 보답해야 하오.”
아군의 선전과 동원을 거쳐 당지 조선 인민들도 세균벌레를 잡고 면역사업을 열성스레 벌렸다.
한번은 해식이 조선인민군 문화련락처 동지와 함께 일보러 어느 한 마을 동구 밖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을 길어귀에 세운 소독실을 지키던 두 처녀가 앞길을 막아나섰다.
“서세요. 소독실에 들어가 소독하고 마을로 들어가세요.”
“우리는 일이 바빠서 그만두기요.”
해식의 말에 두 처녀는 웃음기를 거두더니 때뜸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안돼요. 이건 인민위원회와 지원군부대에서 공동으로 결정한 규정입니다. 부대 동지들도 꼭 소독해야 마을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길옆에 있는 소독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소독실에 들어가니 뜨끈뜨끈한 온실에서 김이 문문 났다. 한 5, 6분 들어가 있으니 온몸이 뜨거워 견디기도 힘들었다. 온몸에는 땀이 후줄근히 내배였다. 밖에 나오니 온몸이 축축해졌다.
“호호호. 뜨겁지요? 이젠 마을에 들어가도 돼요.”
얼굴이 걀죽한 처녀는 그들을 보고 깔깔깔 웃어댔다.
“음, 괜찮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들처럼 이렇게 온실에 들어가 소독하여야 하였다.
이밖에 군민은 련합으로 몇개 방역구와 공중관찰소를 내오고 적기가 세균탄을 투하하는가를 밤낮으로 밤하늘을 지켰다.
일단 적기가 세균탄을 투하하기만 하면 책임구역에 따라 즉시 군민들이 총출동하여 세균벌레를 잡아 없애버렸다.
3개월 동안 군민이 함께 노력 끝에 아군 구역에서 전염병이 돌지 못하게 하였다. 하여 미제가 벌린 세균전은 곡산군에서 철저히 실패하고 말았다.
 
                                                                                   간부문화학습반
  
리해식 소속사단의 적지 않은 패장들은 신문을 읽을줄 몰랐고 어떤 련장들은 전사들의 이름마저 틀리게 불러 웃음통을 터뜨릴 때도 많았다. 심지어 어떤 영장이나 영급간부들도 행군작전할 때 지도마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명을 틀리게 말해 작전에 막대한 장애를 조성하였다. 그리하여 어떤 영장은 문서나 비서를 불러 지도를 보고 해석해달라고 할 지경이였다. 이런 실정에 근거하여 사단에서는 700여명이나 되는 패 이상 간부들을 조직하여 간부문화학습반을 조직하였다.
전사들은 사단 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는 동산기슭의 이깔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수림 속에 간부문화학습반 강당과 숙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방공에 편리하게 하려고 강당 자리의 나무가지와 풀을 한대도 다치지 않고 해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삼복염천의 무더위를 무릅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른 산에 가서 억척스레 나무와 풀을 베 날라다가 700여명이나 들어갈 수 있는 강당을 지었다. 그리하여 이 강당에서는 문화학습도 하고 영화나 문예공연도 구경할 수도 있게 되였다. 숙사와 숙사 사이를 50메터씩 띄우고 이갈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하고 못이 없으니 칡넝쿨로 얽어매서 웃갓을 씌워놓고 풀로 이영을 이어놓았다.
해식은 학습반을 꾸리자 한자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불붙듯하였다. 열한살부터 시골의 일본학당에서 겨우 4년 공부한 그는 반문맹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일본글 밖에 배우지 못해 한자는 한글자도 몰랐다. 다행히 8.15광복 후 마을야학교에서 “천자문”이나 “삼자경”, “론어” 같은 옛글을 좀 배운 적이 있어 몇글자를 알뿐이였다. 부대에 온 뒤 비로소 한자를 조금 배웠지만 반문뱅모자는 의연히 벗지 못하였다.
“야- 이 좋은 기회에 한자를 배웠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때 때마침 사단 정치부 주임 범극양이 그를 찾아왔다.
“리동무, 이번 학습반에 참가하오. 이 좋은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소?”
“예. 꼭 참가하겠습니다.”
리해식은 어찌나 기뻤는지 범주임의 손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날부터 해식은 리직하고 공부를 하나 다름없었다.
개학 첫날에 700여명 학원들은 사단 수장의 동원보고가 끝나자 인차 문화교원의 가르침 밑에 한자를 한글자, 한글자 배우기 시작하였다.
큰 강당에는 걸상마저 없어 땅바닥에 박은 빤빤한 나무통에 앉아 무릎 우에 책을 놓고 공부하였다. 필기장이 없어 학원들은 나무꼬챙이로 땅바닥에 한획한획 그으면서 한자를 익혔다.
그들을 가르치는 문화교원은 당시 전국적으로 널리 쓰는 “기건화속성식자교수법”에 따라 교수하였다. 이름난 기건화동지는 원래 이 군단 후근부 문화교원이였는데 그가 고안해낸 속성식자교수법은 당시 전군, 나아가서 전국에 널리 보급되였다. 그후 기건화동지는 북경에 전근돼가서 전국문맹퇴치위원회 부주임으로 부임되였다.
그들은 기건화속성교수법에 따라 먼저 한어주음자모와 병음을 배운 뒤 그림을 보면서 병음을 달고 글을 익혔다. 학원들은 전면교육과 개별교육을 결합하여 가르침을 받았기에 매우 빨리 한자를 익혔다. 하루에 스무나문개 한자를 익혀 한주일에 2, 3백개 한자를 익힐 수 있었다.
뙤약볕이 재글재글 내리쪼이는 낮에 나무그늘 밑에서 공부하기도 숨이 막혔지만 모두 아주 즐겁게 공부하였다. 다만 조명등이 없는데다가 등불관제가 엄해 아까운 밤시간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뿐이였다.
후에 학원들은 손전지불을 리용하여 공부하였다. 숱한 손전지불이 대낱같이 환하게 켜져 밤중 반공습에 불리하게 되였다.
량미간을 쪼프리면 꾀가 생긴다고 여러 동무들은 침대에 모기장을 치고 손전지 앞끝에 작은 구멍이 뚫린 천씌우개를 씌우고 그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빌어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침대 안은 밝지만 밖에 불빛이 새가지 않아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었다.
스무나문날 밖에 안되는 돌격적인 학습을 거쳐 학원들은 대부분 500 내지 600자 이상 한자를 배워냈다. 학원들의 실제 진도에 따라 공고반과 제고반으로 나눠 계속 공부하게 되였다. 리해식은 이전에 고한어를 좀 배운 기초가 있어 한자를 600자 이상 술술 내리쓸 수 있게 돼 제고반에 들어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반문맹의 모자를 벗게 되였다.
대부분 학원들은 한달 반의 학습을 거쳐 문맹의 모자를 벗고 흥겹게 각기 자기 사업터로 돌아가 서부전선으로 진군해 새 전투임무를 완수하게 되였다.
 
 
 
 
 
 
 
 
 
 
 
 
     
                                  제4장 동부전선에서 

                         저격전
      아군은 조선 황해도 곡산군에서 1년 넉달 동안 휴식정돈한 뒤 1952년 10월 25일에 동부전선에 이르러 조선인민군으로부터 어음산 일대의 20킬로메타나 되는 방어진지를 물려받았다. 아군 사단에서 맡은 진지는 동으로는 어음산 서쪽으로부터 서로는 북한강 동안에 이르기까지 10킬로메터나 되였다. 조선 동부전선의 지형특점은 가파롭고 높은 산이 많고 나무숲이 우거진 것이다.
      적아 쌍방은 모두 5, 6백메터로부터 천여메터 되는 높은 고지에 견고한 진지를 쌇고 대치하고 있었다.
중조 두 나라 부대의 간고한 노력 밑에 조선반도의 허리를 가로 질러나간 250킬로메터나 되는 갱도식방어체계를 세워 진공할 수도 있고 방 어도 할 수 있는, 력사상 전례없는 “지하장성”을 이루었다. 이런 “지하장성”은 거의 모두 인공적으로 괭이나 삽 같은 것으로 판 것이다. 이는 실로 중조 두 나라 장병들이 피땀으로 수축한, 적들이 쳐들어올 수 없는 금성철벽이였다.
      이런 금성철벽의 진지와 대치한 적들의 제일 먼 거리는 천여메터, 제일 가까운 거리는 백여메터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저격전을 벌리기 아주 좋았다.
      그때 40일 사이에 적 103명이나 쏴죽이고 9명의 저격수를 육성해낸 리해식 소속 사단 모 퇀 5련의 반장이며 청년저격수인 양지문의 사적은 전 지원군에 널리 알려졌다. 사단 비서과에 있던 리해식은 그때 양지문의 사적을 직접 정리하였고 또 그의 저격재능을 직접 목격한바 있다.
양지문은 전 반 전사들과 함께 적들과 제일 가까운 북한강 동안의 전연진지인 572.4고지에 배치받았다. 572.4고지와 굽이쳐흐르는 북한강을 사이 두고 2, 3백메터 떨어진 곳에 적들의 진지가 있었다.
양지문이네 고지는 대안의 적들이 지키는 고지보다 훨씬 높아 적들의 일거일동을 손금보듯 환히 볼수 있었다.
상급에서는 명사수인 양지문에게 저격임무를 주었다.
어느날, 적 취사원이 밥배낭을 메고 주요진지가 있는 서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 놈, 어디 깜장콩알 맛이나 봐라!”
양지문은 그 놈의 엉뎅이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땅, 땅땅!
그 놈의 엉뎅이를 20여메터나 따라가면서 스물대여섯발이나 쏘았다. 그러나 그 놈은 쓰러지기는커녕 양지문을 놀리기나 하듯 느릿느릿 걸어갔다.
“제길, 저 놈새끼를 거저! 헤이.”
그는 주먹으로 전호 벽을 꽝 쳤다.
좀 지나 양지문은 그 놈이 나무 세그루가 서 있는 곳을 돌아 서쪽으로 가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첫나무 쪽에 총을 겨누고 그 놈의 옆구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아니나다를가 그 놈이 첫나무에서 둬메터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양지문은 인차 방아쇠를 당겼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그 놈은 두다리로 나무를 걷어차면서 대가리를 땅바닥에 처박더니 까딱하지 못하였다.
이윽고 한 놈이 그 곳에롤 달려와 그 놈의 시체를 끌어가려고 하였다.
땅!
그 놈도 네각을 뻗고 쓰러졌다.
이때 바빠맞은 적 몇놈이 시체를 끌어가려고 그 곳에로 욱 뛰여나왔다. 한 놈이 섶나무무지 가까이로 달려오다가 “땅!” 하는 총소리와 함께 뻐드러졌다. 뒤따라오던 두 놈도 두 방의 총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적들은 다시는 그 곳에 얼씬하지도 못하였다.
고지에는 어느덧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리드리웠다. 별들이 하나, 둘, 반짝거리고 구리바라 같은 둥근달이 동녘하늘에 두둥실 떴다.
양지문은 전호 속에서 전사들을 모아놓고 이날 벌린 저격전 경험을 총화하였다.
“처음에 명중하지 못한 건 흐르는 북한강 큰 강물과 골짜기가 탄알을 흡인하여 탄도에 편차가 생겼기 때문이오.”
“옳습니다. 강과 골짜기를 넘어 저격하자면 양반장처럼 목표를 정하고 기다렸다가 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양지문은 어둑시그레한 전호 속에 둘러선 전우들을 둘러바다가 달빛을 빌어 강 건너편을 손가락질하면서 차근차근 말하였다.
“그럼 저 세그루 나무가 선 곳을 1호 목표로 정하고 저 땔나무무지 부근을 2호 목표로 정합시다. 거리는 300메터로 정하고…”
“예, 그렇게 합시다.”
이튿날, 동녘하늘에 아침해가 뿔끈 솟아올라 산을 타는듯 붉게 물들였다. 타는듯하던 단풍잎이 이젠 다 떨어진 뒤라 적들의 진지 안의 동정이 똑똑히 내려다보였다. 저격전을 벌리기엔 참 안성맞춤하게 목표가 잘 보였다.
이때 적진에 두 놈이 나타났다. 그 두 놈은 전날에 저희들 동료들이 총에 맞은 교훈을 섭취했는지 이전처럼 걷지 않고 후미진 곳으로 해 에돌아 양지문의 사격대 맞은켠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이쪽으로 어정어정 걸어왔다.
“흥, 그 놈새끼들이.”
양지문은 앞으로 묘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여섯발의 총소리와 함께 그 두 놈은 뻐드러졌다. 놈들은 시체를 글어갈 엄두도 못내고 기관총으로 양지문의 사격대 쪽에 대고 쏘아댔다.
양지문은 머리를 들 수 없었다.
“어이, 양반장, 여기 와 보오.”
전호 저쪽에서 포병패장이 망원경을 들고 불렀다. 양지문이 전호로 기여가서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적기관총의 위치가 똑똑히 보였다. 양지문은 사격대에 돌아와 잘 묘준하여 두루룩 뚜루룩 한배짐 갈겼다. 그 놈의 기관총도 벙어리로 되였다.
그런데 다른 적 기관총이 계속 울부짖었다. 머리만 쳐들면 총알이 푱, 푱 소리를 지르면서 전호 벽에 박혔다. 그런데 적 기관총의 위치가 알리지 않았다. 량미간을 쪼프리면 꾀가 나온다고 궁리하던 끝에 양지문은 련락원더러 나무작대기에 모자를 벗어 전호 우에 올리밀었다 내리웠다 하게 하였다. 과연 모자를 올리밀기만 하면 총알이 쌩쌩- 날아와 모자에 구멍을 뚫었다.
양지문은 다른 곳에 엎드려 인차 적기관총의 위치를 발견하고 총을 겨눠 한 수무발을 련발로 갈겼다. 그 놈의 기관총도 벙어리로 돼버렸다.
뒤이어 적들은 참을 수 없었던지 한놈한놈 시체를 끌러 나왔다. 양지문은 적들이 나오는 족족 쏘았다.
이날 양지문 반의 전사들은 적 11명이나 쏴죽였다.
사흩날, 적들은 전호에 중기관총 한정을 걸어놓고 미친듯이 사격해댔다. 그리고 진지 뒤에서 숱한 놈들이 점점 더 많이 오락가락하였다.
“제길할 놈들, 어디 대포 맛이나 봐라!”
양지문은 패의 주봉진지에 알려 포사격을 요구하였다.
쿵! 쿠궁! 쿵쿵!
아군의 무후좌력포가 불을 토했다. 적진지가 뭉청뭉청 날아났고 적 기관총도 벙어리로 돼버렸으며 세 놈이 즉살하였다.
이때 무너진 적진에서 다섯 놈이 슬금슬금 기여나왔다. 양지문은 인차 한배짐 쏘았다. 세 놈이 쓰러지고 나머지 두 놈은 시체에 길이 막혀 황급히 무너진 동굴 속에 뛰여들어갔다.
이윽고 그 두 놈은 동굴 속에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나무막대기에 모자를 걸어 동굴 밖으로 내밀었다 들여갔다 하면서 시탐했다.
“허허, 고놈의 잰내비들이 흉내는 잘 낸다.”
양지문은 웃음보를 터뜨리면서 전사들과 함께 그 두 적을 가만 놔두었다. 몇분이 지난 뒤 그 놈들은 시름놓고 동굴에서 나와 되돌아가는 것이였다.
땅! 땅!
두방의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그 두 놈은 땅에 키스를 하며 버둥거렸다.
어느날 양지문이 진소화를 데리고 사격대에서 저격요령을 가르칠 때였다. 때마침 적 두 놈이 진지에서 나와 강변으로 내려오는 것이였다.
“저 놈들을 쏴 보오.”
“예.”
진소화는 그 두 놈의 앞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땅땅! 땅!
몇방을 쏘았지만 한 놈도 꺼꾸러지지 않았다. 총알은 자꾸 적의 앞에 가 먼지를 폴싹폴싹 일궜다.
“진동무, 좀 뒤쪽으로 해 쏘오!”
“아니, 놈들이 앞으로 다가오는데 뒤에 대고 쏘다니요?”
“그럼 내 쏠테니 보오.”
양지문은 의아해하는 진소화를 피끗 돌아보면서 총을 받아쥐더니 적의 뒤로 한발자욱 사이 둔 곳을 겨누어 쏘았다.
한방에 한 놈씩 쏴눕혔다.
“아니, 웬 일일가?”
진소화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강물이 흐르기에 편차가 생기오.”
“예-“
그제야 터득이 된 나얼니 진소화는 처녀애처럼 귀 밑까지 빨개났다.
그 이튿날 진소화는 양지문의 말대로 좀 뒤쪽으로 해 겨누고 세방을 쏘아 세 놈을 쏴 죽였다.
그날 점심 때였다. 다섯 놈이 나와서 죽은 세 놈의 시체를 끌어가느라고 야단법석했다.
진소화는 기관총을 가져다가 뚜루룩뚜루룩 갈겼다.
다섯놈이 몽땅 쓰러졌따. 그런데 한 놈도 산 아래로 굴러내려오지는 않았다. 총을 맞지 않은 놈들이 죽은 것처럼 납짝 엎드려 있었다.
격분한 진소화는 방아쇠에 손을 건 채 숨을 죽이고 살폈다. 그때 한 놈이 머리를 불쑥 들었다.
땅!
점발사격에 그 놈은 땅에 머리를 푹 박았다.
뒤이어 네 놈에게도 한방씩 갈겨주었다. 네 놈이 즉살하고 한 놈이 부상입고 기여 전호로 돌아갔다.
오후에 적들은 보복하려고 아군의 진지에 대고 포격과 기관총 사격을 해대는 한편 시체를 끌어갔다. 뒤에서는 군관이 권총을 휘두르면서 감독하고 있었다.
양지문은 뒤에서 우쭐거리는 그 군관놈을 겨눠 갈겼다.
땅!
총소리와 함께 그 놈은 권총을 뚝 떨구고 산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내려왔다.
양지문은 시체를 끄는 놈들이 보이는 족족 쏴눕혔다. 그러자 적들은 더는 시체를 끌러 나오지 못하였다.
그후부터 적들은 대낮에 밖에 나와 오줌똥도 감히 누지 못하고 동굴 안에서 통졸임통에 눠서 밖에 내던지군 하였다.
적들이 나오지 않자 용사들은 60밀리메터포로 포격하여 진지 밖에 끌어내다 한놈, 한놈 쏴죽였다. 후에 적들은 아예 동굴 속에서 나올 념도 하지 못하였다.
“이젠 잘 됐네. 적들이 밥 먹거나 똥 싸는 것도 우리 손에 달렸구만.”
“우리가 굶으라면 굶게 됐다니깐.”
“하하하.”
전사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나중에 적들은 밤중에 흙을 넣은 벼짚가마니로 진지를 반키 넘게 쌓아놓고 결사적으로 저격을 막으려고 시도하였다.
적격수들은 적들이 나와도 잠시 쏘지 않았다. 그러자 적들은 점점 담이 커져 더 많이 나와 다녔다. 적들은 겁이 나 선불맞은 노루처럼 통로를 훌쩍훌쩍 뛰여 지나가군 하였다. 하여 몸뚱이를 내밀지 않아 저격하기 어려웠다.
“옳지!”
양지문은 무릎을 탁 쳤다.
그는 포병더러 적 전호에 포를 쏘아 큰 구멍 세개를 내게 하였다. 적들이 그 무너진 세 구멍으로 지날 때 몸뚱이가 드러나기만 하면 쏘군 하였다. 하여 적진에서는 비명소리와 아우성소리가 높아갔다.
      전연부대의 저격수들은 이런 저격방법으로 11월부터 12월까지 두달 사이에 도합 1,400여명이나 살상하였으며 포격하여 1,600여명이나 살상하였다. 당시 저격수들이 살상한 적의 인수는 동시기 섬멸한 적 총수의 46.6%에 달한다. 이밖에 포격으로 적 땅크 8대, 자동차 13대, 여러가지 포 13문이나 까부신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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