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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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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2)
2018년 11월 13일 10시 47분  조회:140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제2 잊을 없는 첫봄
 
     새로운 전투임무

조선 중부의 춘삼월은 말 그대로 산과 들에 봄빛이 무르녹는 계절이였다.
1951년 봄은 리해식이 조선에서 맞는 첫봄이여서 더구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어느날 아침, 해식이 금방 일어나 세루를 하려고 하는데 교도원이 찾아왔다.
교도원은 여느때와는 달리 낯선 사람을 대하듯이 해식의 표정을 살피면서 천천히 말을 꺼내는 것이였다.
“우리 군은 조국에 돌아가게 됐소.”
“예?!”
해식은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랐다.
“아니, 아직 4차 전역도 끝나지 않았는데 귀국하다니?”
교도원은 해식과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하였다.
“조국에서 다른 군이 나와 우리 군을 대신해 싸우고 우리 군은 조국에 돌아가 휴식정돈하게 됐소.”
“예- 거 참 기쁜 소식이군요.”
해식은 하루빨리 부모형제들이 계시는 조국 마을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긴 그는 시간도 없었지만 군사비밀을 지키기 위해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조선전쟁터로 떠나오면서도 어머니와 조선전쟁에 나간다는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그는 나이 어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리해하지 못했다. 기실 심양공안총지대에서 리석재촌까지 5킬로메터 밖에 되지 않기에 반나절이면 부모를 만나보고 올 수도 있었다. 썩 후에 안 일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오래동안 아들자식에게서 편지 한장 없자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무릅쓰고 그가 있던 심양공안총지대에까지 찾아왔댔다. 그때 공안총지대의 책임자들은 그가 조선전쟁에 나갔다는 말을 에둘러 말해줘 돌려보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날마다 속을 바질바질 태우면서 둘째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해식은 당장 부모형제를 만날 생각을 하니 기뻤다.
“그래 언제 떠나게 됩니까?”
“오늘 떠나게 되오.”
“예? 오늘 말인가요?”
“음, 그렇소.”
그런데 교도원은 기뻐하는 기색은 별반 없고 매우 침울한 표정이였다.
한참 담배를 피우던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 군에 있는 조선말번역원들은 몽땅 남아야 한다오.”
“예?”
해식은 잘못 듣지나 해서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조선 싸움터에 새로 오게 되는 군에도 번역원들이 필요하다오. 하긴 동무들이 없이야 정말 말하는 벙어리, 듣는 귀머거리지.”
실로 그러했다. 조선전선에서 조선족번역원들이 없이는 한발자욱도 내딛기 힘들었다. 길을 물어도 그렇고 특무를 심문해도 그렇고 쌀을 얻어와도 그렇고 주숙을 배치하자고 해도 그렇고 조선말번역원들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해식이랑 조선말번역원들은 모두 사상상 잘 납득되지 않았다. 그들도 똑 같은 지원군 전사들이고 번역원질만 한 것이 아니라 전우들과 어깨겯고 똑같이 적들과 싸웠는데 왜서 그들만 귀국하고 번역원들은 귀국하지 못하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해식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는 교도원을 찾아가 다시 말해볼가고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지원군총부의 결정이라는데 말해서 무슨 소용 있겠는가고 잠자리에 털썩 되들어눕고 말았다.
다섯달이나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전우들과 갈라질 시각이 닥쳐왔다.
1951년 3월 23일에 부대는 귀국의 길에 올랐다.
영장과 련장, 지어 통신원까지 해식과 굳게 악수를 나누면서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하였다.
진귀산 교도원은 해식을 와락 끌어안았다.
“리동무, 그간 고생 많았소. 우린들 왜 동무를 데리고 가고 싶지 않겠소. 부대 수요니깐 방법없소. 조선전선엔 동무들이 수요되오. 꼭 끝까지 수고하오.”
해식은 목이 꽉 메여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리해식 소속군의 170여명 조선말번역원들은 사상상 잘 납득되지 않았지만 대렬을 지어 원 부대에서 남은 간부들의 지휘 밑에 길을 떠났다. 그들은 황해도 곡산군 장림동에 가서 명령을 대기하였다.
곡산군 소재지는 포화에 거밋거밋한 재더미로 돼 볼품도 없었다.
해식이네는 곡산군과 그리 멀지 않은 산간마을 장림동에 들었다. 이 마을은 곡산군 소재지와는 달리 대부분 초가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몇달동안 전쟁의 연기 속에서 그슬어난 해식 등은 담이 커진데다가 정서파동까지 있어 적들의 공중날강도의 폭격도 두려워 하지 않고 조선온돌방에 척 들었다.
책임자들은 170여명 번역원대오에 림시당지부를 세웠다. 리해식 소속사단에서 온 50여명은 한개 행정대조로 되였다. 리해식은 당지부 위원 겸 대조장으로 되였다. 그가 이끄는 행정대조는 단독으로 장림동의 한 부락에 들었다. 우리 행정대조에는 한 퇀에서 번역을 한 전우들도 여럿이 있었다.
장림동에 온 다음에도 학교에서 부대에 온 동무들이 귀국해 계속 공부하려고 의견이 많았고 사상정서파동이 제일 심하였다. 어떤 동무들은 책임자를 질질 따라다니면서 손이 발이 되게 빌면서 애원하는가 하면, 어떤 동무들은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까지 하였다.
어떤 동무는 이렇게 질문하기도 하였다.
“우리도 부대와 함께 네개 전역에 다 참가했습니다. 다른 동무들이 고생할 때 우리도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귀국할 때 우리는 왜 귀국하지 못합니까?”
심지어 어떤 동무들은 책임자의 코등에 대고 손가락질하면서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고 떠들어댔다.
“통말이 아니야. 어떤 동무들은 귀국해 쉬게 하고 우린 여기다 팽개친단 말인가?”
책임자들이 상급의 지시에 따라 이런저런 해석을 했지만 그런 동무들을 쉽게 설복할 수 없었다.
하긴 당시 어떤 부대에서는 귀국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바삐 귀국하다보니 조선에 남게 될 번역원들에 대한 사상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동무들은 행군하다가 남게 되였는가 하면, 어떤 동무들은 외출해 사업하다가 불리워 와 남게 되였는가 하면, 어떤 동무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남아 이 곳에 모여오게 되였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때 해식이네와 함께 한 마을에 든 김동무가 불시로 사망하였다. 그는 원래 리해식과 한 퇀에 있었댔는데 며칠전 전선에서도 아무 일도 없었다. 전쟁 때여서 이런 산골엔 의사도 없다보니 앓다가 불행하게도 사망하였다.
봄비가 지꿎게 구질구질 내리는 날, 함께 싸워온 전우를 포탄파편이 널린 조선 땅에 파묻은 그들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원래 들떠 있던 동무들은 안착되지 않아 들락날락하였고 어떤 동무들은 귀국하려고 인계사업책임자에게 아첨하기까지 하였다.
해식은 사단 번역대오 책임자의 신분으로 부대 정치기관을 거쳐 장림동에서 사망된 김동무의 혁명렬사증명서를 수속하여 한통의 편지와 함께 그의 집에 부쳐보냈다.
해식은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강가를 조용히 거닐면서 동무들의 사상정서문제에 비추어 자기 사상도 검토해보게 되였다.
사색의 쪽배는 바람 따라 한곬으로 달렸다.
(일찌기 조국에 돌아가 어머니를 본다면 물론 어머닌 속을 태우지 않을 게다.)
그는 머리를 들어 어머니가 계시는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허나 그 푸른 하늘아래 포화에 그슬린 조선의 산이 피끗 보이는 순간 그는 강뚝의 조약돌을 발길로 툭 걷어찼다.
조약돌은 사내물에 날아가 떨어지면서 촐랑 하며 물꽃을 일구었다.
해식은 머리를 들어 남녘하늘을 바라보았다.
(포화에 그은 저 구름 아래 남녘땅은 지금 미제의 철발굽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다.)
순간 그의 눈 앞에는 물바다로 된 락동강반이 떠올랐다. 일곱살에 어머니 손을 잡고 살길을 찾아떠난 락동강반 고향마을이 삼삼히 떠올랐다.
(안돼. 내 고향에는 지금 양키놈들이 욱실거릴 거야. 미제를 놔둔다면 조선도, 고향도 어머니도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조선은 아직도 싸우고 있다. 미제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지도 못하고 귀국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어머니를 본단 말인가? 미제 양키놈들을 고향 땅에서 몰아낼 때까지 싸워보자.)
해식은 마음을 굳게 다잡자 마을 향해 제방뚝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느날 인계사업을 책임진 지도자는 마을 앞의 푸르무레 물이 오른 버드나무와 백양나무 아래에서 번역원대오 당지부확대회의을 열었다.
봄빛을 머금은 내가의 버들개지는 오동통하게 살이 쪄오르고 천지만물은 양춘을 즐기려는듯 제맘껏 기운을 펴고 춘흥을 떨치려는 상 싶었다. 버드나무숲 사이로 출렁이며 흐르는 시내물에는 해빛이 반사되여 천만개의 은싸락이 뛰노는듯 반짝거렸다.
지부확대회의에는 각 사의 매개 당소조 조장도 참가하였다. 지도자가 사상토론을 하도록 하였다.
어떤 동무들은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살구면서 의견을 제기하였다.
“우리도 전사들과 함께 비발치는 탄우 속에서 사선을 넘나들었습니다. 우리도 당연히 조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또 어떤 동무들은 온화한 어조로 분석하였다.
“우리 번역대오의 절대 대부분 동무들은 당중앙과 모주석의 호소에 따라 자원적으로 지원군에 참가했고 사상바탕이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시에 부대가 돌아가는데 남게 되니 사상이 잘 타개되지 않은데 있습니다.”
회의장소는 벅적 들끓었다.
마지막으로 지도자가 여러 동무들의 이견을 종합해 말하였다.
“동무들의 의견은 모두 도리가 있습니다. 우리 적지 않은 동무들은 모두 당과 모주석의 호소에 따라 자원적으로 중국인민지원군에 참가한 열혈청년들이며 혁명성이 강한 혁명전사들입니다. 몇차례 전역에서 매우 용감하였으며 적극적으로 사업했고 시련을 겪어냈습니다. 이는 여러 분들의 사상은 아주 밑바닥이 든든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함께 싸우던 부대가 귀국하는데 남게 되니 사상정서파동을 일으키게 됐습니다. 이 점은 리해됩니다. 그러나 전선에는 수많은 번역일군이 수요됩니다. 상급에서는 전투시련을 격은 로번역원동지들을 남겨 새로 조선전선에 나온 부대에 번역골간으로 배치하게 됐습니다. 이는 미제를 타승하고 항미원조전쟁의 승리를 취득하는 수요입니다. 번역원들이 없으면 조선전선에서 한발자욱도 걷기 힘듭니다. 동무들은 제4차 전역까지 공훈이 아주 큽니다. 여기 모인 동무들은 모두 당지부 위원 이상 골간들입니다. 당지부의 골간동무들이 앞장서 조선전쟁에 남고 또 여러 동무들에게 남게 되는 중요성을 설명하고 도리를 똑똑히 알려준다면 사상문제는 꼭 해결될 것입니다.”
“옳습니다.”
“견결히 상급의 명령에 복종하겠습니다!”
지도자는 당지부 위원들과 당소조 조장들의 의견이 통일되자 번역원대오의 사상문제를 해결할 구체 요구와 방법을 제기하였다.
“먼저 사상동원대회를 엽시다. 그래도 터득돼하지 않는 동무들은 소조장동지들이 개별사상공작을 합시다.”
며칠 동안 동원대회준비를 한 후 이번에도 역시 마을 앞 개울가의 버드나무와 백양나무숲이 푸르르게 우거진 전번 당지부확대회의를 연 그 곳에서 전체 번역원 사상동원대회를 열었다.
지도자가 또 여러 번역원동무들에게 조선에 남게 되는 중요성을 설명하고 도리를 똑똑히 설명해주었다.
번역원들 대부분은 부대와 동북 여러 기관과 기업소, 학교, 사업단위에서 온 혁명청년들이여서 일정하게 사상각오가 높았기에 사상이 타개되였다. 실로 그들은 조선인민들의 곤난을 자기 곤난으로 생각했지 남의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의 공동한 특징이고 한피줄을 타고난 겨레 넋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 번역원들은 사상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이 안착돼 자기 든 집의 마당을 쓴다, 물을 길어준다 하면서 돌아쳤다. 개별적으로 의연히 들락날락하면서 안착하지 못하는 몇몇 동무들은 조장들이 책임지고 조용히 찾아 속심을 나누었다. 하여 모든 동무들이 한결같이 조선전선에 남아 계속 번역원을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정찰병
 
조선 황해도 곡산군 장림동에 있을 때 리해식은 한 퇀에서 번역원을 한 로전우 김진태를 만났다. 김진태도 처음에는 역시 다른 동무들과 마찬가지로 정서가 퍽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해식을 만나자 김진태는 너무 반가와 그간 서로 회포를 털어놓게 되였고 사상문제도 해결되였다.
김진태는 꺽다리인데다가 강직하고 통쾌한 성격을 가졌는데 사업심이 아주 강하였다. 그는 일찍 1946년에 동북민주련군에 참군하여 정찰병을 하였었다. 조선전쟁이 폭발하자 흑룡강성의 어느 현 공소사에서 간부사업도 그만두고 자원하여 지원군에 참가했다.
단동에 모일 때 그는 정찰병을 한 적이 있었기에 해식이네보다 한주일 앞서 압록강을 넘어와 사단 정찰과에 배치받아 조선말번역원으로 되였다. 그는 사단 정찰과에 간 날 밤으로 정찰과장 리옥봉과 통성명을 할 새도 없이 50여명 정찰원들과 함께 정찰하러 떠났다. 그들은 태천남면의 한 산봉우리에서 불시에 적들과 맞다들게 되였다. 리옥봉 과장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매미가 껍데기를 벗어버리는 전술을 써서 모든 등짐을 몽땅 벗어 나무가지에 걸어놓고 산 아래로 슬쩍 내리빠졌다. 적들은 포위해 올라오면서 나무에 걸린 등짐에 대고 총질을 해댔다. 나중에 어두운 밤에 저희들끼리 맞불질해댔다. 산마루에 올라와 나무가지에 걸린, 숱한 탄알구멍이 펑펑 뚫린 등짐을 보고서야 적들은 속은줄을 알았다. 
그날 밤, 그들은 적들을 뒤떨궈놓고 혀를 붙잡아 적정을 몽땅 정찰해냈다. 그때 김진태는 번역을 잘해 혀를 제대로 심문하여 적정을 알아내고 길안내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였다. 하여 정찰과에서는 무슨 일을 하나 그가 없어서는 안되였다.
38선을 돌파할 때 그가 부대를 따라 설한풍이 휘몰아치는 화악산에 올랐다가 산꼭대기에서 사흘 밤과 낮을 뛰여다니면서 뛰여다니면서 사업하다나니 동상까지 입었다. 산에서 내리자 한 산골마을에서 동상을 치료하게 되였다. 동상을 입은 김진태는 쩔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다니면서 80여명 동상환자들이 들 자리를 해결해준다, 조선 백성들에게서 먹을 쌀을 얻어준다, 남새를 얻어온다 하면서 눈코뜰새없이 맴돌아쳤다.
함께 동상치료를 받던 한 영장은 감동돼 이렇게 말하였다.
“김진태동무 때문에 우린 굶어죽지 않게 됐소. 동무는 번역원이고 난 영장이지만 지금 우린 모두 김동무 말대로 하겠소. 무슨 일이 있으면 분부만 하오.”
이처럼 조선전선에서 조선말번역일군들은 모두 중국인민지원군 지전원들의 아낌을 받았고 존중받았다.
실로 부대 지휘원들의 말대로 “번역원들이 없이는 한발자욱도 내딛기 힘들었다.”
적들도 “지원군 한개 영을 놓칠지언정 번역원 한명이라도 놔두지 않겠다.”고 떠들어댈 지경이였다.
리해식과 김진태는 련 몇달간 갈라졌다가 만났기에 할 얘기도 많았다.
그들 둘은 천천히 시내물이 졸졸 흐르는 강가에 걸어갔다.
버들개지 오동통하게 싹트고 푸러러가는 버드나무밭을 지나 그들은 봄빛도 따사로운 제방뚝에 나란히 앉았다.
“그래 동상을 입은 다리 이젠 괜찮소?”
“음, 그래.”
“아마 그간 인상깊은 얘기도 많을건데…”
“그래, 어험.”
김진태는 습관처럼 마른 기침을 깇더니 지나간 추억을 더듬었다.
“그게 아마 지난 2월일 거요.
그때 나는 금방 동상을 치료하고 나오자 조선인민군부대와 련락할 임무를 맡고 통신원 두 사람을 데리고 이천군의 어느 한 두메산골을 지나게 됐소.
련 며칠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걷다나니 길을 가면서도 끄떡끄떡 졸음이 오구 배에서는 꾸르륵꾸르륵 소리 날 지경이였소. 그래 두루 두메산골을 살펴보니 길옆에 오두막 같은 화전민집 한채가 보이더군.”
“그럼 어무데서나 푹 잘게지.”
“그래, 그래서 그 길옆집에 가서 사립문을 두드리니 서른댓살 되는 한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내다보더구만.
내가 조선말로 ‘우린 지원군인데 하루밤 쉬여 갑시다.’라고 했지.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들어오세요.’라고 하더구만.
집에 들어가보니 서너살 푼한 아이 하나 있더군. 주인은 어데 갔는가고 물으니 로력대로 며칠 나갔다고 하지 않겠소. 우리 셋은 곤한지라 그녀가 해주는 저녁밥을 먹자마자 웃방에 들어가 쉬였지. 통신원들은 잠자리에 들자마자 코를 드렁드렁 골더구만. 외딴집이여서 방공할 근심은 없었는데 나는 정찰병의 민감성으로 해서 바스락소리만 나도 귀를 도사리는 습관이 있었소.”
해식은 숨을 죽이고 그의 이야기에 점점 끌려들어갔다.
“잠이 들가말가하는데 아래방에서 앓음소리가 나질 않겠소. 인차 깨난 나는 우리 셋에게 손목시계 하나 없지 등잔불도 없어 내려가 보기도 그렇고 해서 웃방에 앉은채로 ‘어디 편찮습니까?’ 하고 물었지. 아주머니는 그저 배 아프다고 하더구만. 아무 대책도 댈 수 없어 근심하면서 공연히 이 집에 들렸다고 후회했지. 곤하게 잠든 통신원을 깨워도 별 수 없고 해서 나는 그냥 웃방 사이문 옆에 앉아 동정만 살폈지.
그런데 그 녀자의 앓음소리는 점점 급해졌소. 급해난 나는 아무것도 가릴 새 없이 아래방에 가서 병고를 물어봤지. 아주머니도 안되겠던지 해산할 모양이라고 하지 않겠소.”
“저런, 거참 야단났구먼.”
그의 말을 들은 해식마저 등골에 식은땀이 돋았다.
“그래, 난 총각 아니구 뭐야? 얼마나 망칙하오? 이젠 그 자릴 피할 수도 없고 총각의 체면도 가릴 새 없게 됐지. 자칫하면 두 생명이 잘못될 판이잖소. 그래서 아주머니가 하라는대로 했소. 자리도 깔아주고 궤짝을 들춰 헌 천쪼각두 꺼내주었지. 등불이 없는지라 캄캄한 밤에 평생 처음으로 당하는 봉변이라 어쨌으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소. 그렇다고 곤히 잠든 통신원을 깨워야 별 수 없어 혼자 진땀을 뺐댔소.
둬 시간 걸려서 어린애를 낳는데 역겨운 냄새가 물큰 풍겨 막 토할 것만 같더군. 억지로 참으면서 방 귀퉁이에 흙으로 만든 코굴에 불을 피워 산모와 어린애를 안치해두었지. 아궁이에 불을 피워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지어 산모에게 먹였소.”
“허허. 자넨 제법 조산원노릇을 했구만.”
“에끼, 이 사람.”
김진태는 해식의 어깨를 떠밀고는 뒤말을 이었다.
“아주머니 부탁대로 한 십리 떨어진 곳에 가서 그 아주머니의 시어머니를 알렸댔소. 시어머니는 깜짝 놀라더니 자그마한 보따리에 뭘 싸들고 치마꼬리에 휘파람소리 나게 달려갔댔소. 그땐 벌써 먼동이 훤히 떴는지라 우리는 그 집 시어머니가 해준 아침밥을 먹고 가라는 만류도 불구하고 길을 떠났댔소.”
“허, 자긴 고사하고 숱한 고생 했구만.”
“거야 어쩌오? 뜻밖에 당한 봉변인데.”
김진태는 담배를 둬모금 들이빨더니 계속 뒤말을 이었다.
“그후 또 그 곳을 우연히 지나게 되였소. 그때 내가 마당을 쓰는 주인을 보고 지난 사연을 말했지. 그러자 주인은 내 손목을 으스러지게 잡고 ‘안해한테서 사연 들었지요. 헌데 숱한 지원군 속에서 주소도 이름도 남기지 않은 분을 어떻게 찾겠는가 했지요. 그런데 오늘 귀인을 만났구만요.’라고 아주 반가와하질 않겠소. 그는 자기 안해를 불러 인사시킵데.”
“정말 감격적인 상봉이였겠구만.”
“두 말이면 잔소리지. 아주머닌 부끄러움을 참아가면서 인사하더니 아들애를 내 품에 안겨주더구만. 그리고는 ‘그때 잠간 본 면목이라 만나도 말치 않으면 알 수 없었지요.’라고 하면서 앞으로 오빠로 모시겠다고 하지 않겠나. 그런데 나이를 따져보니 그 아주머니가 이상인지라 결국 나는 동생벌이 됐소. 그날 나는 그들 내외가 정성껏 차려준 산나물채에 점심밥을 달게 먹고 후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섭섭히 헤여졌소. 아마 후엔 다시 만나볼 것 같잖소.”
김진태는 담배연기를 길게 후- 내뿜었다.
해식은 그의 이야기를 솔깃해 듣다가 정찰병들은 단독행동할 때가 많아서 재미나는 이야기도 많을 것 같았다.
“참 재미나는 이야기구만. 하나 더 하게나.”
“하참, 이 친구, 답답한 판에 그런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나는가?”
해식은 “답답할수록 얘기타령이나 하면 속이 시원할게 아닌가?” 하고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지청구를 들이댔다.
그러자 김진태는 이런 이야기를 한토막 들려주었다.
한번은 김진태가 김화군 금곡리에서 북쪽으로 약 20리 떠어진 군부 2선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억수로 쏟아지는 비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보도랑오솔길이 어찌나 질척질척한 진탕길인지 신발에 누른 진흙이 떡떡 붙어나 한발자욱도 걷기 힘들었다. 한 열흘 전선에서 지친 몸은 기진맥진하여 아무데서나 좀 쉬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군단부에 이르니 오후 7시가 되였다. 김진태가 앉아 쉬기도 전에 작전과에서는 1선지휘부의 전화지시를 전달하면서 군의와 함께 속히 금남면 천곡리로 갔다가 돌아오라는 것이였다.
김진태는 맥이 딱 없으면서도 젖은 옷을 짤 새도 없이 돌아서서 군의와 함께 길을 떠났다. 철원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진창길을 넘어서니 봄비가 더욱 억수로 쏟아져 어두운 밤은 더욱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김진태는 부주의로 미끄러져 도랑에 철러덩 빠져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 군의의 부축을 받아 겨우 도랑에서 기여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추위에 온몸이 오돌오돌 떨리고 이빨이 덜덜 맞쪼였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간신히 한 초가집을 만나 그 집에서 하루밤 묵을 작정을 하고 주인을 찾았다.
헌데 뜻밖에도 그 집 녀자는 문을 딱 막으면서 “딴 집으로 가세요.”라고 하는 것이였다.
“아니, 어두운 밤에 어데로 가라는 거요?”
그들이 아무리 사정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북조선에 어디 이런 사람이 있는가고 생각하면서 억지로 그 녀자를 밀고 웃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녀자는 할 수 없는지 아래방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이런 백성들에게는 사정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였다. 젖은 옷을 짜서 입고 차디찬 방에서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서서 저녁밥도 먹지 못한 채 서로 한족말로 토론하였다.
“아무래도 이 집 녀자 수상해.”
“경각성을 높여야겠소.”
그들은 벽을 의지하여 섰는지 앉았는지도 모르게 엉거주춤 서 있다가 어느결에 경각성이고 뭐고 굳잠에 곯아떨어져 코를 드렁드렁 골았다.
그녀가 깨우기에 와뜰 놀라 일어나보니 밤 열한시가 되였다. 그녀가 아래방에 내려와서 저녁식사를 하라고 하니 더럭 의심났다.
(초저녁에는 집 안에 들여놓지도 않더니 지금 청하지도 않았는데 밥까지 해줘?)
그들은 밥을 먹느냐, 안 먹느냐고 토론하다가 군의가 아래방에 내려가서 둬술 떠서 검식해보았다.
“일없소. 먹기요.”
군의가 한어로 말하자 김진태도 아래방에 내려가 숟가락을 들었다. 그들은 한 사발이나 되는 밥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다 재꼈다.
그런데 아래목에 있던 둬살 되는 어린애가 모질게 앓고 있었다. 군의가 어린애 이마를 짚어보니 몹시 따가왔다. 군의는 인차 주사를 놓아주고 약을 먹였다. 어린애의 신혈은 인차 점점 내려갔다.
그러자 그 녀자는 “옷도 젖었는데 아래방에서 자세요.”라고 친절히 말하는 것이였다.
그러나 그들 둘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웃방으로 올라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녀자는 웃방은 너무 추운데 기어이 아래방에서 자라고 하면서 이불까지 내려다 펴주는 것이였다. 의심이 더럭 난 그들은 권총에 장탄을 하고 서로 교대하면서 자기로 하였다.
“허허, 헌데 먼저 군의가 지키구 내가 둬시간 자기로 했는데 나는 그만 시름놓고 어찌나 달게 잤는지 깨고보니 창 밖이 훤하더구만. 옆에서 군의도 정신없이 자지 않겠소. 허허허. 내가 흔들어 깨우자 깜짝 놀란 군의는 벌떡 일어나 제꺽 권총을 쥐지 않겠소. 내가 말리니 눈을 비비면서 ‘언제 잠들었는지 몰랐네.’ 하지 않겠소.
우리가 이불을 거두면서 보니 어린애는 병이 나아서 앉아 놀구 그 녀자도 기뻐 생글거립데. 집주인 녀자는 아침밥을 해놓구 우리가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았겠소. 우린 그 녀자가 끓인 된장국에 아침밥을 달게 먹고 길을 떠나게 된 판이였지.
떠날 때 나는 그 녀자한테 ‘어제는 왜 그렇게 랭대했소? 헌데 오늘은 왜 또 이렇게 환대했소?’ 하고 물어보았댔소. 그러자 그 녀자는 방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지 않겠소.
‘저는 열성군속인데요. 사실 며칠 전에 지원군이라고 자처하는 자가 우리 집에 들렸댔는데요. 그 자가 어찌나 치근거리면서 행실이 추잡한지 겨우 빠져 달아났댔어요. 그 자는 꼭 괴뢰군특무인 거 같아요. 그래서 어제도 겁이 나서 막아버렸지요. 헌데 여겨보니 당신들은 아주 정직한 진짜 지원군이더군요. 그래서 있는 힘껏 대접했죠.’
그래서 우린 그 녀자와 뜨거운 악수를 나누면서 헤여졌소.”
“음, 실로 당신은 고생도 많이 하고 과거사도 많구만.”
시내물이 황혼빛에 붉게 물들어서야 그들은 시간이 퍼그나 흐른 것을 깨닫고 자리를 떴다.
 
                  포로를 압송
수무날 푼히 조선 황해도 곡산군 장림동에서 휴식정돈한 170여명 번역원들은 제5차 전역이 시작되기 전에 새로 조선전선에 나온 부대로 배치돼갔다.
리해식 등이 사단 대적공작과에 배치받은지 이틀도 안되여 1951년 4월 22일 제 제5차 전역의 포성이 쿵쿵 울렸다.
리해식은 대적공작과의 리보화 과장을 비롯한 주자가, 장광우 등 여섯 동무들과 초면이였지만 구면처럼 서로 서먹서먹한 것이 털끝만치도 없이 무람없이 보냈다.
리해식 소속사단은 1944년 8월 태항산1려, 385려 및 신사군 일부 장병들로 무어진 부대로서 일찍 항일전쟁시기 하남 서부에서의 적후무장투쟁, 해방전쟁시기 2천리중원포위돌파, 청구와 련수, 림성 등 도시보위전, 림분과 태원성 공격전, 맹량고와 진령 산구에서의 운동전 및 함양저격전 등 수많은 이름난 전투에서 빛나는 공훈을 세운 부대, 전투경험이 아주 풍부한 영웅부대였다.
리해식이 이 사단에 배치된 이튿날, 이 사단은 제5차 전역에 뛰여들었다. 사단에서는 미군 제25사와 토이기려단, 미군 3사단간의 련계를 끊어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선봉퇀은 비교적 약한 토이기려단의 방어선을 돌파구로 삼고 무찔러나갔다. 그들은 이튿날 밤 2시에 적군의 종심에로 41.5킬로메터나 무찔러들어가 한탄천으로부터 한강 북안의 금곡리에 이르는 방어선까지 점령하여 전투임무를 순조롭게 완수하였다.
뒤이어 그들은 비오는 밤낮이 따로 없이 계속 적들을 추격하였다. 이때 적들이 많이 포로되였다. 사단 대적공작과의 주자가와 장광우가 전문 미군과 토이기 포로들을 영어로 심문하였다. 괴뢰군 포로가 잠시 없었기에 해식은 포로들과 별로 접촉하지 못하였다.
제5차 전역 제2단계에서 지원군총부에서는 력량을 집중하여 정전담판에 응하지 않는 동부전선의 리승만괴뢰군을 족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리해식 소속사단은 서부전선으로부터 동부전선으로 진군하여 5월 15일에 춘천 부근에 들이닥쳤다.
5월 16일 오후 6시부터 제5차 전역의 제2단계 전투가 시작되였다.
17일 밤, 이 사단은 격전 끝에 토이기려단과 프랑스군 한개 영의 방어선을 돌파하였다.
18일 밤, 이 사단은 계속 남쪽으로 진군하였다.
리해식이 한창 부대를 따라 행군할 때였다.
리보화 과장이 영어번역원인 주자가와 해식을 불렀다.
“동무들은 사 경위련 부련장과 함께 한개 경위패를 거느리고 전연진지에 가서 포로롤 사단포로수용소에까지 압송해오시오.”
“옛!”
리보화 과장은 그들을 번갈아보면서 포로를 인계받을 위치와 주의할 점을 차근차근 얘기하였다.
“전연진지로 가자면 적들의 포격이 심한 도로와 큰 강을 건너야 하오. 특별히 주의하오. 포로들을 꼭 안전하게 압송해야 하오.”
“예, 알았습니다.”
이때 경위련의 부련장이 경위전사 20여명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길을 다그쳤다.
억수로 비를 쏟아붓는 하늘에 언제 흐렸더냐 싶이 별들이 반짝였다.
해식은 모젤권총을 차고 청신한 밤공기를 한껏 들이켜고는 대오의 제일 뒤에서 걸었다.
한 2, 3킬로메터 걸어갔을 때였다.
먼 곳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씽-” 하는 소리가 들렸다.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였다.
그들은 제자리에 납짝 엎드렸다. 포탄 몇발이 그들이 엎드린 곳에서 저만치 멀리 떨어졌다.
(눈먼 포탄이구나.)
해식은 이젠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고서도 어데 떨어져 폭발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엎드렸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한 산비탈의 보리밭을 와삭와삭 헤치고 나갈 때였다.
쿵, 쿵-
먼 곳에서 포소리 울리더니 포탄이 씽- 하고 귀청을 때리면서 날아왔다.
해식은 불길한 감이 들어 앞에 대고 고함쳤다.
“엎드렷!”
무두들 거리를 띄워 납짝 엎드렸다.
꽝, 꽈르릉, 꽝꽝!
고막이 터질듯한 폭발소리와 함께 묵직한 물건이 면바로 해식의 오른 허벅지를 탁 쳤다. 순간 그는 오른 허벅지가 끊어지는듯 아파났다.
(끝장났구나. 파편에 다리가 끊어진 모양이지?)
그는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옥물면서 오른손으로 때끔때끔 아파나는 허벅지를 죽 내리만져보았다. 그런데 축축한 피는 만지우지 않고 대신 대야만큼한 흙덩이가 만지웠다.
“음, 살았구나.”
그는 허벅다리 우의 흙덩이를 밀어버리고 일어났다. 안도의 숨이 후- 나갔다. 앞을 보아도 상한 사람이 없었다.
보리밭을 나서니 산비탈 아래 희읍스럼한 신작로와 그 앞에 굽이쳐흐르는 강물이 보였다. 물소리를 들어보면 그리 깊지 않을 상 싶었다.
해식은 옆에 선 주자가와 부련장에게 얼굴을 돌렸다.
“안되겠소. 여기 있어도 위험하오. 거리를 띄워 신작로를 건너기오.”
“예, 그렇게 합시다.”
그들은 거리를 띄워 번개같이 신작로를 건넜다. 금방 신작로 아래에 내려섰을 때였다.
쿵, 쿵, 쿵쿵!
씽-
“엎드렷!”
해식은 고함치며 신작로 밑에 가로 뚫린 배수관구멍에 머리르 쑥 들이밀고 엎드렸다. 다른 동무도 뛰여와 머리를 해식의 머리 옆으로 쑥 들이밀었다. 머리는 도관 안에 들어갔지만 몸뚱이와 다리는 도관 밖에 몽땅 드러났다.
그런데 포탄은 그들이 엎딘 곳과 좀 떨어진 곳에서 꽝, 꽝 작렬하였다.
그들은 머리만 보호하고 몸뚱이를 보호하지 않은 자기들이 우스워 낄낄 웃었다.
폭발소리가 멎자 그들은 일어나 그 배수관을 들여다보면서 또 껄껄 웃었다.
그들은 황급히 우르르 쓸어나가 무릎팍까지 오는 강물을 뛰다싶이 해 건넜다.
전연진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적들의 봉쇄포격이 더 심하였다. 나중에는 몇발자국 달리군 하다가도 포탄을 피해 엎드려야 했다. 여기저기에서 불기둥이 자꾸 일어났다.
송고봉진지에까지 다 갔을 때에는 경위패의 전사들 가운데서 따라온 전사가 10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
해식과 주자가는 전연진지의 모 퇀 부퇀장을 찾아갔다. 부퇀장은 그들 보고 한무리 포로를 압송하라고 하였다. 피뜩 봐도 80여명은 잘 되였다.
이때 동녘하늘이 푸름히 밝아왔다.
그들은 량옆에 소나무숲이 우거진 으슥한 작은 골짜기를 찾아 거기에 포로를 압송해 몰아넣고 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렸다. 포로들 속에는 코가 크고 눈알이 파란 프랑스군의 포로들이 있는가 하면 키가 작달막한 괴뢰군 포로도 30여명 있었다. 프랑스군 포로는 주자가가 맡고 괴뢰군 포로는 해식이 맡았다. 그리고 10여명 경위패 전사들은 부련장의 지휘 밑에 경위임무를 맡았다.
그들이 포로를 접수할 때까지도 프랑스군 포로들은 두덜거리면서 미군 놈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미군 2사단은 죽을 림박까지도 우리 프랑스사람들까지 못살게 군단 말이야. 제길, 하느님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해식과 주자가는 먼저 포로들에게 미시가루를 나눠주었다. 괴뢰군 포로들은 그래도 미시가루를 받아 억지로 먹었지만 프랑스군의 “나으리포로”들은 음식습관에 맞지 않아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좀 지나 그들은 해식이랑도 미시가루에 닦은 콩을 먹는 것을 보고 배고픈지 억지로 따라 먹는 것이였다. 후에는 먹기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주는 족족 다 받아먹었다.
뒤이어 해식과 주자가는 각기 자기가 맡은 포로들에게 간단한 교육을 하였다.
해식은 자기를 쳐다보는 괴뢰군 포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중국인민지원군은 포로를 너그럽게 대합니다. 우선 당신들의 생명안전을 보호하며 절대 당신들 개인재물을 가지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우리 지휘에 복종해야 됩니다. 특히 대낮에 방공기률을 엄격히 지켜야 합니다. 허가 없이 마음대로 움직여서는 안되며 마구 달아다녀선 절대 안됩니다.”
우리 교육을 받은 프랑스군 포로들은 담이 콩알만해져 말을 괜찮게 들었다. 그런데 괴뢰군 포로들은 배고프다는둥, 대소변을 보겠다는둥 하면서 야료를 부렸다.
이런 형편에서 해식이랑은 뜻밖의 사단을 막으려고 포르들의 손칼이나 라이터 같은 것을 몽땅 몰수하였다. 라이터는 원래 몰수규정에 든 물건이 아니였다. 그러나 수용수에 가면 돌려주기로 하고 몰수하였다. 그것은 적기가 날아올 때 고의로 불을 질러 목표를 드러내면 적기가 와서 폭격, 소사하게 하고 그 혼란한 틈을 타서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어느덧 포화에 그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어둠의 장막이 산골짜기를 뒤덮었다.
해식과 주자가는 포로들에게서 로획한 총을 가져다가 격침을 다 빼서 그들이 보관하고 한자루씩 나눠 포로들이 메게 하였다. 뒤이어 말을 잘 듣지 않는 괴뢰군 포로들을 앞에 세우고 프랑스군 포로들을 뒤에 일렬종대로 세우고 경위패 전사들의 호송하에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이 전날에 건는 강과 신작로에 이르렀을 때였다. 놈들의 포탄은 의연히 무시로 날아와 작렬하였다.
해식과 주자가 그리고 부련장은 토론 끝에 뜻밖의 사고를 방지하려고 전사들을 시켜 신작로에 널린 전화선을 주어오게 하였다. 그리고 포로들더러 반메터씩 사이 두고 줄을 서게 한 후 전화선으로 포로들의 왼손을 차례로 얽어매놓았다.
그러자 포로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더럭 겁나 숨소리마저 씩씩 거칠어졌다.
“겁나 마시오. 안전하게 봉쇄선을 넘으려고 묶습니다.”
그제야 포로들은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였다.
“예- 그런 걸 또…”
“글쎄 말이야. 괜히 놀랐잖아.”
해식은 재삼 기률을 강조하였다.
“포탄이 날아와도 절대 마구 뛰지 말고 지휘에 복종하시오.”
포로들은 “예.”, “예쓰(Yes)” 하며 수긍하였다.
그들이 시작로 남쪽의 강변 모래톱에 이르렀을 때였다.
쿵, 쿵, 쿵쿵!
포격소리와 함께 포탄 몇발이 씽-씽 날아와 그들의 부근에서 작렬하였다. 강물에서 여러개 물기둥이일었다.
질겁한 포로들은 우르르 강물에 뛰여들어 마구 달려나갔다. 그런데 한 손을 전화선에 묶인 포로들은 목숨을 살리려고 제마끔 뛰다나니 적잖은 포로들이 물에 넘어졌다. 포로들은 마구 당기고 끌리우고 하면서 앞으로 좀처럼 나가지 못한채 고함만 질렀다.
(안된다. 이러다간 여기서 대포밥이 되겠다.)
해식은 날창을 빼들고 전사들에게 고함쳤다.
“동무들! 포로를 묶은 전화선을 서너사람씩 건너 끊어놓소!”
해식과 전사들이 몇 사람 사이씩 건너가면서 전화선을 끊어놓았다.
해식은 허리에 찬 모젤권총을 뽑아들고 공중에 대고 휘두르면서 목청을 돋구어 고함쳤다.
“당신들은 몽땅 앞으로 달려나가시오. 강물과 도로를 건넌 다음 둔덕에 모이시오. 누구든지 마구 달아나면 총살할테요!”
 그러자 포로들은 찍 소리 못하고 삼삼오오 짝을 져 무릎을 치는 강물을 달려 건넜다.
도로까지 건는 포로들은 둔덕에 서서 뒤의 포로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봉쇄선을 지나온 다음 포로들을 세여보니 한명도 차나지 않았다.
해식은 포로들을 둘러보면서 위안하였다.
“겁나 마시오. 이제 좀 더 가면 목적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산길이 질척해서 걷기 힘들 겝니다. 허나 한 사람도 대오를 떨어져선 안됩니다.”
포로들은 “예”, “예” 하면서 수긍하였다.
그들이 달빛을 빌어 어둠을 뚫고 사단지휘소와 좀 떨어진 개울가 오솔길을 걸을 때였다.
땅!
갑자기 앞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해식이 바삐 모젤권총자루에 손을 가져다대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웬걸!
한 괴뢰군 포로가 총에 맞아 땅바닥에 네각을 뻗고 쓰러져 있고 포로들은 질겁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해식은 죽은 포로의 시체를 살펴보다가 허리를 펴며 눈길을 부련장한테 돌렸다.
“웬 일이오?”
부련장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면서 대답하였다.
“이 포로가 맥이 없다면서 총을 메지 않구 떡 들어앉아 걷지 않습디다. 그래서 화김에 쏴죽였습니다.”
해식은 버럭 화를 냈다.
“적들이 총을 놨으면 우린 포로들을 너그럽게 대해야 하오. 이게 무슨 짓이오? 마음대로 포로를 총살하다니? 우리 군대 포로정책을 엄중히 위반했단 말이오! 에참! 포로들 속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 아오? 엉?!”
부련장은 입에 빗장을 지른 채 찍소리도 못하였다. 포로들은 겁기를 띤 눈으로 그들을 번갈아보았다.
해식과 주자가는 포로들에게 해석하여 공포정서를 해소하게 하였다. 그제야 포로들은 지휘대로 줄을 서서 목적지를 향하였다.
날이 푸름히 밝아올 때 그들은 포로들을 사단 포로수용소의 지정된 지점에까지 압송하였다. 그리고는 거뿐한 걸음으로 사단 대적공작과로 돌아갔다.
얼마 후 들은 말에 따르면, 포로를 죽인 그 부련장은 상급으로부터 행적철직처분을 받아 보통전사로 돼 반에 내려갔다고 하였다.
 
                    북한강반의 피어린 자욱
      5월 중순의 어느날 밤,  달빛도 없이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이따금 먹장구름 속에서 뻘건 구렁이가 불혀를 한강 쪽에 날름거려 핥고는 사라졌다. 하늘땅이 맞붙을듯 우뢰소리가 우르릉 꽝꽝 울리고 바가지로 퍼붓는듯이 대줄기 같은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렸다.
해식의 소속사단 기관과 직속부대 장병들은 비옷을 걸치고 소낙비를 무릅쓰고 북한강에 이르렀다. 손을 내밀어도 제 손가락을 똑똑히 볼 수 없이 캄캄한 밤에 허연 강물이 깊다란 골짜기로 해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굽이쳐 뻗어나간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장병들은 춘천 동북쪽에서 북한강을 건너 홍천 쪽으로 쳐들어가야 하였다.
해식이랑 북한강을 초조히 바라보았다. 그때 곁에 서 있던 조선 아바이가 석쉼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평소에는 바지가랭이를 걷고 건널 수 있었어요. 관데 비가 내려 깊은 곳은 아마 배꼽까지 올 거라구.”
“예-”
해식은 비옷을 입었지만 찬 비물에 추워 우둘우둘 떨었다.
부대 장병들은 까만 밤에 아래도리를 벗어 총과 문건주머니, 미시가루주머니와 함께 비옷 속에 넣어 머리에 이고는 손에 손잡고 차디찬 강물을 건넜다.
키 작은 해식이 강심에 들어서자 찬물이 가슴팍을 쳤다. 차디찬 강물에 뻗뻗해진 두 다리는 점점 옮겨딛기조차 힘들었다.
정치부의 년세 많은 과장들은 급류 속에서 휘웅적거리면서 걷기 힘들어해 해식이랑 청년전사들이 다가가 부축해줘야 했다. 쉰 남짓한 취사원은 커다란 밥가마를 지고 세찬 급류가 사품치는 강심에 이르자 한발자욱도 내딛지 못하였다. 그러자 한 청년전사가 그를 업고 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들은 강을 건느자 질척한 진창길을 더듬으면서 동북쪽으로 전진하였다.
밤중에 이르러 사단 기관대오가 행군해나가는 부근에 포탄이 씽씽 날아와 폭발하였다. 화광이 번쩍이고 굉음이 귀청을 때렸다.
꽝!
굉음과 함께 해식에게서 서너메터 떨어진 곳에서 포탄이 작렬하였다.
정치부 서류궤짝을 진 말이 파편에 맞아 대가리가 날아났다. 사양원이 가슴에 중상을 입었다. 해식의 앞에 웅크리고 앉았던 청년전사와 장과장이 다리에 파편을 맞고 쓰러졌다.
후에 안 일이지만 장과장은 다리가 썩어 절단하지 않으면 안되였다고 한다. 만강의 전쟁은 끌날 같은 젊은 청년전사의 목숨을 빼앗아갔고 젊은 간부 장과장을 종신불구자로 만들어놓았다.
아군 대오는 밤도와 그 오솔길을 따라 산에 올랐다. 그들이 산중턱에 오를 때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어둠과 나무에 가려진 바위들이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이때 앞선 제6대대(사단 사령부의 대호)로부터 제자리에서 숙영하라는 명령이 전해왔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누구의 명령이 없었지만 장령들은 작은 군용삽과 괭이로 어둠 속에서 각기 혼자 숨을 엄페호를 팠다. 그리고 그 엄페호 안에 축축이 젖은 나무잎을 훑어다가 펴고 비옷을 입은 채 엄페호 안에 쭈그리고 앉아 쉬였다. 전투가 앞에서 백열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엄페호 안에 들어앉자마자 코를 드렁드렁 골았다.
“어이, 일어들 나시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누가 소리치는 바람에 모두들 놀라 깨여났다.
어느덧 동녘하늘에 둥근 해가 두둥실 떠서 금빛을 뿌리고 있었고 아름다운 아침노을이 온 산비탈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빽빽이 들어선 나무숲 사이로 해빛이 부채살처럼 비껴들었다. 비도 멎은지라 이른아침의 수림 속 공기는 청신하기 그지없었다.
해식은 시원한 아침공기를 가슴 뿌듯이 한껏 들이켜면서 엄페호에서 기여나왔다.
그러자 주자가가 그의 얼굴을 손가락질하면서 킬킬 웃어댔다.
“허허, 똑마치 흑인 낯 같구려.”
해식도 주자가의 낯을 가리키면서 빈정거렸다.
“별, 검정개 돼지 흉 한다고 하오. 동무 낯은?”
“엉?”
“하하하.”
“허허허.”
서로 남의 까만 얼굴을 둘러본 동무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온 얼굴은 포탄에 날린 흙먼지에 두눈과 입을 내놓고 진짜 흑인처럼 새까맸다.
그들은 인차 산골짜기에 내려가 세수를 하고 엄페호에 다시 들어가 푹 쉬였다.
그후 장병들이 그 산을 내려 화천으로 가자 군부에서는 지암리쪽으로 쳐들어가 북한강 남쪽에서 적들에게 포위된 형제사단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실 제5차 전역 제2단계에 동부전선에서 온 아군에서는 토이기려단의 방어선을 뚫고 홍천 동북쪽의 송고봉과 한계 일선을 점령하였으며 미군 제2사단의 지휘를 받은 프랑스영과 괴뢰군 제2사단의 일부를 섬멸하고 숱한 놈들을 포로하였다. 그러나 적진으로 너무 깊이 들어간 형제사단에는 쌀과 탄알이 거의 떨어졌다. 하여 지원군총부에서는 5월 21일에 전역을 끝마치고 긴급히 철거하라고 명령하였다.
해식의 소속사단은 북한강을 건느고 다른 한개 형제사단은 북한강 이남에서 부상병들의 호송을 보호할 임무를 맡았다.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이 북으로 철거하자 적들은 미군과 괴뢰군 13개 사단과 오토바이화한 보병 및 포병과 땅크부대로 “특견대”를 무어가지고 공군의 배합 밑에 도로를 따라 아군의 꼬리를 물고 추격하여왔다.
5월 24일에 미군 24사단 특견대는 가평과 북한강 나루터를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부상병호송을 엄호하던 아군의 형제사단은 적에게 삼면으로 포위되였다.
어둠은 포화에 그은 희미한 해를 서서히 삼키고 무수한 별들을 하나, 둘 낳기 시작하였다. 어두운 밤장막을 빌어 그 형제사단은 소양강 북쪽에서 저격전을 벌리고 금방 북한강을 건넜다. 그런데 또 화천 서쪽과 지암리 남쪽에서 포위당하였다. 아군 한개 군의 나머지 사단들에서는 그 형제사를 구출하라는 명령을 집행하였다. 그러나 수적으로 렬세여서 포위를 돌파하게 구출하지 못하였다.
군부에서는 형제사단을 보고 견결히 포위를 돌파하라고 명령하였다. 하여 그 형제사단에서는 병력을 두길로 나눠 포위를 돌파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숱한 부상병들을 가진데다 적들의 포격이 어찌나 심한지 한걸음도 전진하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두갈래 병력은 할수 없이 회합한 후 사단의 주요지휘원은 다시 분산하여 포위를 돌파하자고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식량이 떨어진지도 사나흘이 되였고 탄약도 거의 떨어졌다. 결과 사단과 퇀급의 지휘원과 전사 몇백명이 포위를 돌파하였을뿐 나머지 지휘원과 전투원들은 대부분 포로되였다.
당시 사단 부정위 겸 정치부 주임 오성독은 부상병 몇십명을 데리고 적들의 포화가 심한 봉쇄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말았다.
적들의 포위권이 점점 조여드는데다가 새날이 밝아왔다.
오성덕 부정위는 전사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유격전을 벌리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오성덕 부정위는 전사들을 거느리고 38선 남쪽의 고산준령에서 14개월 동안이나 기적적으로 유격전을 벌렸다. 마지막에 몇명의 전사들 밖에 남지 않아 전투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는 미군의 한 수색대에 발각되여 마지막탄알까지 다 쏘아 적들을 사살하고 불행하게도 체포되였다.
그 형제사단이 좌절당한 뒤 리해식 소속사단은 명령에 따라 화천에서 금화 남쪽의 광덕리와 상해봉, 복중산 일대에 나가 쳐들어오는 적들을 저격하는 동시에 포위를 돌파하여나온 전우들을 구출하였다.
5월도 막 가는 무더운 어느날 오전이였다. 김화 일대에 금방 들어선 사단 대적공작과의 동무들이 한 산비탈 소나무숲에서 공중날강도를 피해 숨어 있을 때였다.
“어이, 동지들!”
갑자기 해식이랑 엎드려 있는 산 아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산아래를 내려다보니 한 전사가 푹 쓰러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빨리 가보기요.”
리보화 과장이 해식이랑 데리고 산 아래로 달려내려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허리에 권총을 찬 삼십대 젊은 지원군 간부였다.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하였고 입술은 말라터졌다.
“분명 굶어서 까무러쳤군. 빨리 산 우에 업고 가 뭘 좀 먹이기요.”
해식이랑 그 동무를 번갈아 업으면서 대적공작과의 방공굴어귀 큰 나무 밑에까지 갔다.
증국생은 자기 비옷을 땅바닥에 펴고 그 동무를 눕혔다. 해식이랑은 바삐 미시가루를 풀어 그 동무의 입 안에 한술한술 떠넣었다.
이윽고 그 동무는 맥없이 눈을 천천히 뜨고 그들을 둘러보는 것이였다. 몸은 비록 겨릅대처럼 여위였지만 두 눈에만은 견강한 빛이 어려 있었다.
정신을 차린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형제사단 퇀 정치처 보위과장 가요선입니다. 포위를 뚫고 나온데는 이 권총의 공로가 컸습니다.”
그는 허리에 찬 권총을 매만졌다.
“나는 산마루에 숨어 있으면서 며칠동안이나 산에서 내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산에서 살금살금 내리면서 보니 철갑모를 쓴 놈들이 쌍쌍이 보초를 섭디다. 나는 보초 서는 적들을 피해 잔나무와 풀숲에 숨으면서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딱 피하지 못할 놈들은 이 총으로 한방에 한 놈씩 쏴죽이고 겨우 포위구역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내 머리 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꼭 자기 부대를 찾을 때까지 견지해야 한다.’ 그래서 배고프고 맥이 없어도 이를 악물고 견지했습니다. 헌데 저 산 아래서 우리 동지들이 보이자 나, 난 그만 맥없이 쓰, 쓰러졌댔습니다. 으흐흑, 흑흑…”
여기까지 말한 이 억센 사나이는 그만 울음보를 터뜨렸다. 두 줄기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적시였다.
이처럼 형제사단의 적지 않은 전우들은 나무숲에 숨어다니면서 간고하게 적들과 싸우면서 북두칠성을 바라보고 북쪽 방향을 확인하고 북으로, 북으로 걷고 또 걸었다. 그들은 배고프면 비술나무껍질을 벗기거나 나무이파리나 쑥을 뜯어 미국놈들이 먹고 버린 통졸임통에 넣고 끓여 요기를 하고는 계속 무거운 다리를 옮겨디디면서 끝내 부대를 찾아왔다.
포위를 돌파한 형제사단의 동지들을 구하는 임무를 완수한 사단에서는 량식과 탄약을 보충받은 후 덮쳐드는 적들과 주동적으로 싸우게 되였다.
       참말로 북한강반에 남긴 피어린 자욱마다에는 우리 지원군 용사들의 애국충정이 력력히 찍혀 있다. 오늘도 저 북한강은 지원군 용사들의 용맹과 슬기를 노래하며 흐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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