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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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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5)
2018년 10월 08일 12시 28분  조회:1858  추천:1  작성자: 김장혁


장편정탐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김장혁


      살인악마 김춘일은 수사일군들의 압송하에 사건현지에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자랑삼아 여기에서 누구를 어떻게 죽였고 저기에서 누구를 어떻게 엎디게 하고 강간하였다고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자인하고 확인하였다.
심문하는 수사일군들이나 김춘일을 압송하던 수사일군들이나 모두 살인악마가 저지른 죄행에 다시한번 섬찍함을 느꼈다.
김춘일을 나포한 전역에 참가한 전체 수사일군들과 경찰들은 더 없이 흥분에 감겼다.
김광진 국장은 김춘일심문비디오테프를 전우들과 함께 돌려본 후 처음으로 지휘부에서 차탁 우에 도라지짠지와 마른 명태 같은 간단한 안주에 맥주를 갖춰놓고 이번 승리를 경축하여 축배를 높이 들었다.
“자, 동무들, 수고 많았소. 승리를 경축해 건배!”
“건배!”
김광진 국장의 제의에 따라 수사일군들은 기쁨의 축배를 들고 통쾌하게 마셨다.
그들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이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 김광진 국장이 자지 못한 밤은 얼만가? 집에 돌아가지도 않고 지휘부 사무실을 집으로 삼고 지새운 밤은 또 얼마였던가!
그가 이 사건으로 애태운 속은 또 얼마인가!
그가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전우들도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수사일군들이 한밤중에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면서 털끝만한 단서라도 얻으려고 달아다닌 밤은 얼마인가!
그들이 수집한 정보와 자료는 또 얼마인가!
백성들도 소식공개회를 통해 사건해명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그들은 너무 기뻐 1월 30일 주동적으로 연길시공안국 대청 앞에 모여와 폭죽을 터뜨리고 춤판을 벌렸다.
그들은 꽹과리를 울리고 북을 둥둥 두드리며 도라지춤을 추고 양걸춤을 추면서 살인악마를 나포해 백성들의 해를 제거한 위대한 승리를 경축하였다.
백성들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밤이면 홀로 거리를 다니기 무서워하던 그들이, 아이들을 홀로 학교에 보내기 무섭던 그들이 아닌가!
낮이나 밤에 자기를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어도 머리카락이 곤두서며 공포에 떨던 그들이 이젠 발편잠을 자게 됐다.
그들은 마효동 국장과 김광진 국장 그리고 수사일군들에게 축기와 채색표어를 드렸다.
표어에는 다음과 같은 금빛글발이 새겨졌다.
 
인민생명의 보호신, 인민의 훌륭한 충복
 
인민경찰들 수고하셨습니다!
 
인민을 위해 해를 제거한 공안기관 감사합니다!
 
그렇다, 살인악마가 나포된 날은 백성들과 경찰들에게는 경사스러운 나날이였다.  이 사건해명에 중대한 기여를 한 김광진 국장과 수사일군들은 승리를 경축하는 희열에 잠겨 백성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나누었다. 녀경찰들은 기쁨의 사탕을 수사전역에 참가한 수사일군들에게 드렸다.
연길시공안국 앞마당은 승리의 희열로 오래동안 출렁이였다.
국가공안부와 길림성공안청에서는 이번 특대살인강간강탈계렬사건을 해명한 승리를 축하하여 축하전보를 보내왔다. 성공안청에서는 이번 사건해명에 중대한 기여를 한 집체와 수사일군들에게 상금10만원을 주기로 결정하였으며 국가공안부에서는 그들에게 공훈을 기입해주었다.
 
        살인악마의 뿌리

“삼자경”에서는 “인간은 애초에 원래 성질이 착하였다. 그러나 배우면서 달라진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태여날 때는 모두다 똑같이 “응-아”하고 순결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이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면서 태여났다. 인간은 결코 원래부터 악의 본성을 가지고 태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라면서 차차 처한 환경과 배우는 것이 다르기에 성격도 달라지게 되며 사람마다 부동한 길을 걸으면서 각이한 성격과 이미지를 가지고 변하여간다.
       어떤 사람은 탐관오리로 되고 어떤 사람은 뱅성들을 해치는 살인악마로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럼 김춘일은 어떻게 돼 평범한 인간으로부터 사람마다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살인악마로 되였는가? 
      김춘일은 중국 흑룡강성 동녕현의  한 시골 마을에서 5남매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살인악마가 아니였다.
       그럼 그의 가정환경이 나빠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변질하였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의 가정은 조국과 인민의 해방을 위해 영용하게 싸워온 영광스러운 군인세가였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 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서 영용히 싸운 투사였으며 중상을 입은 퇴역영예군인이였다. 그의 삼촌은 항미원조전쟁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히 희생된 렬사였다. 그의 형님도 중국인민해방군에 영광스럽게 입대하여 입당하였고 패장으로 제발됐으며 여러차례 공훈을 세운 퇴역군관이였다. 그의 누나 셋도 사회에서 사회공작을 아주 잘하는 훌륭한 간부와 사업일군이였다.
그럼 이렇게 훌륭한 가정에서 자란 그가 어떻게 돼 인민정부와 공안국, 인민을 등진 살인악마로 되였는가?
세상에서 제일 순결하고 대공무사하고 자애로운 사랑은 모성애라고 할 수 있다. 모성애는 세상에서 그 어느 사랑과도 비할바 없이 고결하고 열렬하고 일편단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형적으로 지나친 모성애, 편애는 애들을 애꿎게 자라게 하고 자기 밖에 없는 애, 자고자대자하는 애로 키울 수도 있다. 기형적인 모성애는 어떤 때에는 애들을 기고만장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누구 말도 잘 듣지 않는 애, 고집이 센 기형아로 키울 수도 있다.
김춘일은 바로 막내로 태여나서 집에서 너무 어루만진 모성애에 의해 기형적으로 괴벽한 성격을 가진 애로 변하였다. 막내인 김춘일이 형님과 누나들과 말다툼이 생기거나 손지검이 생기면 어머니는 고저장단과 시비를 따지지 않고 춘일의 역성을 들군 하였다. 그리하여 김춘일은 점차 자라면서 집에서 제 밖에 없노라고 우쭐거렸다.
김춘일은 마을에 나가서도 누구한테 지려고 하지 않았다. 원래 키도 작고 힘도 없는 그는 애들한테 늘상 맞아 울고 다녔다. 그때도 어머니가 동네에 나가 아들의 역성을 들군 하였으며 맏아들을 시켜 역성을 들게까지 하였다. 애들한테 늘상 맞아 얻어터진 김춘일은 반발심이 생겨 형을 믿고 쩍하면 애들과 걸고 들어 싸웠으며 얻어맞으면 꼭 보복하려고 하였다. 어떤 때에는 닥치는대로 낫이고 도끼고 마구 쥐여 휘두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춘일도 나이 좀 들자 어떤 때에는 좀 점잖을 빼기도 하였으며 엉뚱한 꿈을 꾸기도 하였다.
김춘일에게도 어려서 황홀한 인생의 꿈이 있었다. 그는 참군할 나이도 안된 17세 때 아버지와 형님의 영향을 받아 군인복장을 입고 씩씩한 군인이 되려는 엉뚱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꿈이 물거품이 되자 그는 사회에 불만을 품고 점차 범죄의 구렁텅이로 굴러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당시 그는 입대 신체검사도 다 통과되였다. 신체검사표의 어느 조목에나 다 큼직한 “합격”이란 글자가 씌여졌다. 그는 이제 마을사람들이 다 흠모의 눈길을 보내는 초록색군인복장을 입고 가슴에 꽃까지 달고 영광스럽게 참군하는 꿈이 현실로 되리라고 여긴 나머지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렸다. 그의 천진란만한 가슴은 황홀한 꿈으로 세차게 울렁거렸다.
그런데 남들이 군복을 입고 가슴에 커다란 꽃을 달고 동네 처녀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자동차에 앉아 마을을 떠날 때에야 그는 자기 꿈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알게 되였다.
(신체검사나 정치심사나 다 합격됐는데 어째 나를 가지 못하게 하는가?)
의심이 부쩍 든 그는 해당부문 책임자를 찾아가 따지고들었다.
“난 어째 부대에 못 갑니까?”
“넌 안돼!”
해당 부문 책임자는 단마니로 딱 잡아떼는 것이 아니겠는가!
“왜 안됩니까? 우리 가정 성분이 안됩니까? 뭐가 안됩니까? 난 신체검사도 합격됐는데 왜 안됩니까?”
그제야 책임자는 실토정했다.
“넌 밸때기 더러워서 부대에 가지 못해.”
김춘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소립니까? 그래도 내처럼 사내같은 청년이 군인답지비.”
“안돼, 넌 부대 기률을 지킬 수 없어.”
“네?”
김춘일은 억이 막혀 한참이나 뒤말을 찾지 못하였다.
참말로 칼자루를 쥔 강자가 이기지 칼날을 쥔 약자가 이기겠는가?
그 책임자는 “입대할 나이 안됐다”는지 어떻다는지 이 구실 저 구실 수태 대면서 그를 가지 못한다고 딱 잡아뗐다.
무슨 수가 있단 말인가?
그때부터 김춘일의 세계관은 기형적으로 변하여갔다.
그는 정부의 관리들을 보기만 해도 다 나쁜 놈들로 보여 미웠고 인간세상이 미웠다. 남이 잘되는 것도 심술이 났고 남들이 행복에 겨워 웃어도 증오하였다. 어덴가 불만을 쏘아부어 분풀이를 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사실 그때 그가 조금만 랭정하게 생각해도 문제는 기회가 있어 해결됐을 수도 있었다. 그때 그는 17세 밖에 안되기에 아직도 몇번이고 입대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 합격돼도 가지 못하였기에 자기는 완전히 기회없다고 절망에 빠졌던 것이다. 그의 사상이 세속을 따라 굽이를 돌지 못하였다.
진짜 허황한 꿈 같은 산에서 가볍게 내려올 수 없었다.
입대하지 못한 김춘일은 그때부터 어중이떠중이들과 휩쓸려 다니면서 무리싸움도 하고 산에 가서 수림에 불을 지르기도 하였다. 하여 그는 공안기관에 나포돼 형사구류되기도 하였다.
며칠후 미성년이라고 공안기관에서는 그를 교육한 후 석방하였다.
그는 자기를 단속할 대신 이번에는 공공장소에서 여러차례 도폭뢰관을 폭발시켰다. 그리하여 공안기관에 체포되여 15일이나 류치소에 구류되였다. 그러자 그때부터 그는 점차 공안기관과 경찰마저 증오하기 시작하였다. 나아가서 점차 이 세상 사람들을 다 증오하기 시작하였다.
버들가지는 홰친홰친할 때 후려잡쳐야 곧게 펼 수 있다. 그러나 버드나무가 사발통처럼 굵어진 다음엔 곧게 펼래야 펼 방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애들의 나쁜 버릇은 어릴 때 단단히 혼살내 떼버려야 한다. 뼈다귀 굵어진 다음에는 편애와 모성애에 휘말려든 나약한 어머니인들 어쩌겠는가? 아니, 호랑이마냥 사나운 아버지인들 어쩌겠는가?
김춘일의 골잣이 삐뚤어져 먹고 심술이 바르지 못한 것을 뻔히 보면서도 부모들은 용빼는 수 없었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씨네 둘째아들 맹자를 사람으로 만들려고 일곱번이나 이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맹자는 어려서 백정네 이웃에서 살면서 백정이 돼지를 잡는 것을 보고 개고 고양이고 뭐고 다 잡아 파묻기도 하고 팔자고 들었다. 그리하여 맹자의 어머니는 애들은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궁리 끝에 일곱번째로 서당 옆으로 이사했다. 맹자는 서당에서 애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고 공부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자녀교양에 방법이 있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이사를 일곱번이나 한 덕분에 맹자는 나중에 유교학설의 창시자 가운데의 한 성인으로 되였다고 한다.
맹자를 알리 없는 어머니였지만 김춘일이 고향의 나쁜 애들과 휩쓸려다니면서 싸움질하면 사람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 하나 마을의 나쁜 애들과 떼놓아야지. 그럼 사람이 될지 누가 아는가?)
어머니는 이제라도 막내아들을 사람으로 만들려고 1982년에 춘일을 데리고 한뉘 살아온 정든 고향을 떠나 산설고 낯선 연길시 산골마을인 의란진 명랑촌 제3촌민소조로 이사하여왔다.
연길시 교외였지만 적막한 시골인데다가 아는 친구도 없다고 김춘일은 마음을 붙이지 못하였다. 그는 자꾸 친구들이 있는 고향마을에 돌아겠다고 심술을 부렸다.
막무가내로 부모들은 인맥을 통해 막내아들한테 연길 시내한 차수리부에 일자리를 찾아주었다.
시내로 들어가 일하게 되자 다행히 김춘일은 부대로 가지 못한 일을 점차 잊어버리고 삶의 새 길을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부대로 가지 못한 것도 김춘일 본신에게 문제 있었다. 밸때기 더럽다고 눈에 난데는 자기 잘못이지 누구 탓인가. 그러나 김춘일은 자기한테서 문제를 찾지 않고 무장부장이 뒤문거래를 했다 오해하면서 늘 꽁한 속에 넣고 나쁜 놈이라고 욕하고 보복하려고 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날따라 번영해가는 연길시내를 돌아보고 그의 젊은 가슴은 처음으로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부대고 뭐고 가지 않길 잘했어. 돈만 있으면 이런 시내에 집을 사고 고운 색시를 얻어놓고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삶의 희망과 욕망은 그로 하여금 잠시나마 심리 균형과 안정을 되찾고 부지런히 일해 돈을 벌게 하였다. 그는 아침 일찌기 차수리부에 출근해 보스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차수리부에 널린 낡은 부속품도 거두고 비자루를 찾아들고 청소도 말끔히 해놓았다. 그는 걸레를 들고 수리하러 들어온 차 앞뚜껑을 열고 발동기도 쓱쓱 닦아놓았다. 스푸를 모시고 차수리기술을 익히려고 땅바닥에 들어누워 먼지투성이 부속품을 뜯어내고 바궈넣기도 하였다. 엄동설한에 땀을 철철 흘려도 힘드는줄 몰랐다. 그는 자기 힘으로 번 돈을 타는 날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쉬는 날에 뻐스를 타고 부모를 보려고 이사해온 마을에 돌아갔을 때였다. 이웃집 한 처녀와 부모가 정미소에서 쌀마대를 소수레에 싣지 못해 낑낑거리고 있었다.
“물러납소. 내 실어줍지비.”
김춘일은 두말없이 다가가 혼자 쌀마대를 훌쩍훌쩍 들어 수레에 실어주었다. 그러고도 소수레를 집에까지 몰고 갔다. 그는 숨도 돌리지 않고 쌀마대 두마대를 집 안에까지 안아들여간 후 쌀독에까지 좌르르좌르르 부어넣어 주기까지 하였다.
“감사하오. 이사온 집 총각이.”
허리구부정한 령감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오빠.”
처녀는 복숭아 얼굴에 홍조가 어린채 두 손을 앞에 맞잡아쥐고 곱게 인사하였다.
김춘일은 사내답게 인사를 받았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잖습니까? 이후에 집에 무슨 힘든 일이 있으면 날 부릅소. 내 얼마든지 해드립지.”
그는 처녀가 떠 주는 바가지를 받아 랭수를 단모금에 꿀떡꿀떡 밑굽을 냈다.
“야, 이 집 물이 시원합구마.”
김춘일이 집 안에서 나오는데 복숭아 얼굴의 처녀가 따라나오면서 또 곱도록 인사했다.
“오빠, 이후에 놀러 오오.”
“오, 그래, 그래. 무슨 일이 있으면 날 찾소.”
“네- 잘 가요.”
곱도록 인사하는 복숭아 얼굴의 귀여운 처녀를 보는 순간 김춘일은 처음으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래배로부터 전기가 찡 명치끝까지 쭉 뻗치면서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빠도 없는 처녀는 그때부터 이웃집 춘일을 친오빠처럼 믿고 따랐다.
(이게 웬 떡이냐? 복호박이 넝쿨채로 굴러떨어지는 판이 아닌가.)
김춘일은 얼마나 흐뭇했는지 몰랐다. 그는 시내에서 일해 로임을 타면 얼마간 떼내고 어머니한테 바치고 슬그머니 처녀한테 과자랑 과일이랑 맛있는 걸 사다주기도 하였다. 어떤 때에는 연길 시내에 데리고 가서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도 사먹이기도 하였고 연길공원에 들어가서 연애도 하였다.
그는 사랑하는 처녀로 하여 아무리 어지럽고 힘든 일을 하여도 힘든줄을 모르고 차수리부 보스가 시키는대로 억척스레 일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였다. 정확한 인생관을 수립하지 못했기에 자기 언행과 생활에 대한 규칙이 별로 없고 엄격히 단속하지 못하였다.
그날 춘일은 차수리부에서 별로 할 일도 없어 차수리부 문 앞에서 시내 큰길에서 오가는 차와 행인들을 멍청히 바라보면서 해볕쪼임을 하였다.
그때 빨간 적삼을 입은 한 소녀애가 빨간 자전거를 타고 올리막으로 느릿느릿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저 자전거를 타고 큰길로 한번 씽 달려볼가?)
일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일을 치고 말게 되였다.
초중 밖에 다니지 못한 김춘일은 머리가 아주 단순하였다. 그는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치는지도, 후과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소녀애를 쫓아가 자전거를 홱 빼앗아 타고 내리막으로 씽 달아났다.
소녀애가 발을 탕탕 구르며 김춘일을 손가락질하며 고함쳤다.
“날강도를 붙잡아요!”
“그 앞의 놈이 내 자전거를 타고 달아났습니다!”
“섯!”
“경찰이다!”
“도망치면 쏜다!”
하늘에서 경찰이 날아내렸는가.
김춘일은 200메터도 달아나지 못하고 그만 순라하던 경찰한테 앞길이 막혔다. 그는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붙잡혔다.
경찰은 김춘일의 손목에 쇠고랑이를 철컥 채우고 자전거를 끌고 파출소로 갔다.
1983년 9월은 당시 형사범죄자들을 호되게 타격할데 관한전국인대상무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전국적으로 강타(严打)투쟁을 진행한 시기였다.
그리하여 그해 9월 8일에 김춘일은 연길시인민법원 법정에 나세게 되였다. 연길시인민법원에서는 호되게, 엄중하게, 신속하게 범죄자를 타격하는 원칙에 따라 김춘일에게 상상하기도 어렵게 중한 처벌을 내렸다.
“자전거를 강탈한 김춘일을 강탈죄로 유기징역 10년에 언도한다!”
법관이 판결서를 랑독하자 김춘일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법맹인 그는 저도 몰래 이를 악물었다.
(어쩜 자전거 빼앗아 탔는데 10년이나 판결한단 말인가?)
자기를 붙잡은 경찰이 가증스럽고 법관이 미웠다.
(이 놈의 세상에 어디 공정한 법이 있단 말인가?)
그는 머나먼 진래감옥에 가서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억울했다. 심지어 빨간 옷을 적삼을 입은 소녀애마저 미웠다.
(개쌍년, 내 나가기만 해봐라. 네 년부터 죽여치울 거야.)
그때부터 확실히 김춘일은 빨간 옷을 입은 녀자를 보기만 하면 눈에 증오와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던 것만은 사실이였다.
만기석방돼 출소 후 빨간 옷을 입은 녀성만 보면 혹시 자전거를 타고 가던 그 소녀애가 아닐가고 추측하기도 하면서 복수의 이발을 간 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진래감옥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김춘일은 세상 법이 리해되지 않았다. 후에 감옥에 들어오는 죄수들을 여겨보아도 손잡이뜨락또르나 택시를 강탈하고서도 중해야10년이고 경하면 5~6년 밖에 판결받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가 출소하기 전에는 고급승용차를 도적질한 절도범도 10년 내지 12년 징역을 받은 자들도 있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심리균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돈도 먹이지 못하고 문도 없는게 죄지. 아무 권세도 돈도 없는 농민의 자식이라고 업신여겨 그렇게 중한 10년 판결을 내린게 아니고 뭔가?)
법맹인 그는 오해를 가질수록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하고 괘씸했다. 생각할수록 법원이 공정하지 못한 것 같았고 자기를 붙잡은 경찰이 미웠고 자기를 물어먹은 그 빨간 옷 입은 그 계집애가 괘씸하였다.
고된 강제로동을 하고 감방 바닥에 들어누우면 명랑촌에 두고 온 이웃집 처녀의 복숭아 얼굴이 떠올랐다.
법관이 판결서를 랑독할 때 법정에서 통곡치던 어머니와 복숭아 처녀의 비통한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더우기 면회하러 온 어머니한테서 이웃집 처녀가 10년이나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한테 시집갔다고 하지 않겠는가.
진짜 마른 하늘에서 내리친 청천벽력이였다. 그래도 이제껏 그 처녀가 마음 속에 있어서 아무리 고된 강제로동도 뻗치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처녀가 자기를 떠났다는 말을 듣자 그는 믿고 기댔던 정신기둥이 와그르르 무너지는 감을 느꼈다. 더는 삶의 용기마저 잃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아무런 꿈도 없어졌고 어둠컴컴한 절망의 심연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아예 자살해버리려고 마음먹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감옥에서 일하다가 옥경이 중시하지 않는 틈을 타서 뾰족한 곡괭이에 머리를 박고 죽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번마다 옥경한테 들키워 숨이 붙었다.
죽지도 못하게 되자 김춘일은 악한 마음을 먹게 되였다.
(죽기도 두렵지 않으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어디 이 놈의 세상 놈들과 한번 내 죽고 네 죽고 해보자.)
그때로부터 그는 악마로 돼 세상에 악명을 남기려고 들었다.
(숱한 년놈들을 죽여 이 놈의 사회에 보복할테야.)
법맹인 그가 오해할수록 세계관이  삐뚤어져 갔다.
가슴을 오리오리 저며는듯한 실련의 고통은 김춘일로 하여금가슴 속에 품은 원한의 비수를10년 동안이나 시퍼렇게 갈고 또 갈게 하였다. 사랑도 있고 부모형제도 알아보는 보통인간으로부터 그를 야수 같은 살인악마로 탈바꿈하게 만드는 시간과 공간이였다.
김춘일은 이전에 쇠살창으로 비껴드는 보름달을 보면서 항상 복숭아 같은 의란 산골의 련인의 얼굴을, 복숭아얼굴에 옴폭 패이는 볼우물을 련상하면서 그리고 또 그리였다. 항상 보름달의 볼이 똑마치 복숭아처녀의 볼 같아 보일 때도 있었다. 복숭아얼굴의 처녀가 볼우물까지 옴폭 파면서 수줍게 웃는 고 복숭아얼굴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래도 감방에서 나가면 그 처녀와 결혼해 애를 낳아 기르면서 깨알이 쏟아지게 사는 허황한 꿈도 꾸었다. 그러나 사랑의 황홀한 꿈마저 산산이 박산난 이젠 보름달마저 보기 싫어졌다. 오히려 보름달의 볼이 똑 마치 감방에 있는 자기를 조롱하고 비웃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그는 쇠살창 사이로 쓸쓸히 감방 바닥에 비껴드는 한많은 달빛이 싫어 누더기이불로 낯을 가리우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군 하였다.
그때마다 이빨을 뻑뻑 갈았다.
(더러운 년, 배은망덕한 년, 애나게 일해 로임을 타서 네년한테 숱한 옷과 먹거리를 사주었건만 날 배신해? 그간 내 머슴처럼 너네 집 일을 얼마나 해줬어? 그래도 차례진 건 배신이야?)
진짜 갑순이를 빼앗기고서도 어쩌지 못한 멍청이 - 갑돌이 같았다.
실련의 고통을 아프게 씹으면서 그는 이를 뿌드득뿌드득 갈았다.
복숭아얼굴처녀를 잃어버린 것도 몽땅 법관이 자기를 10년 징역으로 판결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1~2년 판결해도 혹시 처녀가 자기를 기다렸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할수록 법관이 괘씸했고 이 사회에 원한이 뼈 속까지 사무쳤다.
신문 한장 읽지 못하고 방송도 듣지 않은 법맹 김춘일은 당시 사회법제환경을 알 수 없었다.
1983년 당시 사회치안형세가 복잡해지고 혼란해지고 범죄률이 급상승하고 있는 새로운 정황에 근거하여 전국인대상무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엄하고 중하게 신속하게 범죄자들을 타격하는 시기여서 강간을 한번 하고서도 15년 판결을 받거나 정상이 악렬한 강간범은 총살을 받은 자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세상물정을 알고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잘못부터 반성해보고 그런 오해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절도죄와 강탈죄는 형량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승용차를 훔친 죄보다도 자전거를 강탈한 강도죄는 비하지 못할 중죄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프랑스의 한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쟝발쟝은 만두 하나 훔쳤다가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쟝발쟝은 몇번이고 탈옥하다가 붙잡혀 형벌이 배로 늘어난다. 탈옥전과자가 있는 루범이기에 죄에 죄를 가해 나중에 16년이나 징역살이를 해야 했다.
김춘일은 시골에서 자라면서 견식도 좁고 본 책도 별로 없기에 무지막지하기로 짝이 없었다. 때문에 세상의 모든 법은 만약 전과자가 범죄하면 그 죄가 가중해져 더 가중하게 판결하게 된다는 것을 알리 없었다.
김춘일은 동녕 고향에서 산에 방화하고 공공장소에서 도폭뢰관을 폭발한 전과자로서 여러차례 공안기관에 체포돼 처벌받았다. 그러나 그 악습을 고치지 않았기에 자전거 한대를 강탈했지만 가중한 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또 당시 강타투쟁의 준엄한 현실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모른 그는 법관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고 여겼고 심리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복수의 칼만 갈고 또 갈았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세상물정을 알고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잘못부터 잘 찾아보고 자기를 살인악마로 변하게 만들 그런 오해의 구렁텅이에는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오해가 없었더라면 10여년 동안이나 원한과 증오를 가슴 속에서 싹을 키우고 나아가서 출옥 후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사회복수심과 녀성에 대한 변태적인 증오심을 활화산처럼 폭발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칫 손을 잘못 놀려 10년이란 아까운 청춘을 감옥살이에 매몰시켰으면 그 피의 교훈을 찾고 바른 길에 들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회에 보복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고 녀성들을 강간해서야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을 수 있겠는가?
문화정도, 신분, 가정배경의 고저를 물론하고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인민정부와 사회, 인민과 법을 등지고 보복하기에 혈안이 돼 미쳐 날뛰던 자들은 일시 횡행하더라도 결국 좋은 끝장이 없었다.
그러나 김춘일은 여지없이 파괴된 심리균형과 오해로 해 자기 인생궤적을 죄악적인 기로로 찍어나갔다.
부대로 가지 못한 일 때문에, 이른바 “억울하게 가중하게 판결한 일” 때문에, 떠나가버린 첫사랑 때문에 그는 철창 속에서 생각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복수심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의 기형적인 사상발전은 그를 점차 보통사람으로부터 죄수로, 죄수로부터 건달로, 건달로부터 나중에 살인악마로 변하게 하였던 것이다.
 
               악마의 유령
기형적인 복수심은 김춘일로 하여금 눈에 띄게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돌변해 탈바꿈하게 하였다. 그는 원래 강제로동을 하기 싫어 뼈대를 아꼈지만 갑자기 돌변해 억척스레 일해재꼈다. 겉보기에는 개조표현이 좋아진 것 같았지만 기실 내면으론 딴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개조표현이 좋은 것처럼 보여 하루 속히 지긋지긋한 징역살이를 앞당겨 끝내고 세상에 나가 복수하려는 것이였다.
1991년 10월 말, 김춘일은 끝내 감옥에서 석방되였다.
그는 연길에 돌아와 보고 몰라보게 변한 세상에 깜짝 놀랐다.
연변병원 앞에는 택시가 줄느런히 늘어서 있지 않겠는가. 거리마다에 음식가게가 줄느런히 열렸다.
그는 감옥살이 10년에 매몰된 자기 청춘이 아까와 가슴이 칼로 어이는듯이 아파났다.
(사람의 일생에 10년이 몇번이나 있는가.)
김춘일은 죄수의 몸으로 이사해와 몇해 살던 의란진 시골마을에 돌아갈 면목이 없었다.
그래도 무슨 수가 있는가. 그는 머리를 수깃하고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중에야 집에 들어갔다.
늙은 어머니는 감옥에서 돌아온 막내아들을 부둥켜안고 어루만지면서 울었다.
“얘야, 이젠 다신 나쁜 짓을 하지 말라. 아직 넌 젊다. 이제라도 바른 길로 가면서 엄마와 함께 조용히 살자.”
그러나 김춘일은 엄마 두 팔을 내려놓으면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엄마, 엄만 모릅꾸마. 난 억울합구마. 자전거 한대 빼앗아 탔는데 어찌 10년이나 감옥에 처넣습둥? 지금 봅소. 그보다 더한 죄도 몇해 밖에 감옥살이를 하지 않습구마.”
그러자 엄마는 씽드르르 조왕 쪽에 가더니 시퍼런 칼을 찾아 들고 목에 댔다.
“엄마, 엄마, 왜 이럽둥? 칼을 놓읍소.”
엄마는 진짜 마지막수를 썼다.
“이놈새끼, 10년 감옥살이를 하고서도 나쁜 버릇을 떼지 못했구나. 어째 엄마 죽는 걸 보자고 아직도 개소리냐? 네 나쁜 버릇 고치지 않는 날엔 이 에미 당장 목을 베고 죽어버리겠다. 이젠 막내아들이 나쁜 짓 해 감옥에 다시 가는 걸 못보겠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그런 꼴 못 보겠다.”
엄마는 식칼로 목을 썩 베였다. 목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르 흘렀다.
“엄마, 이러지 맙소. 내 고칠게. 고칠게. 꼭 고칠게. 이러지 맙소.”
춘일은 제정신이 펄쩍 들어 덮쳐나가 어머니 손에서 피묻은 식칼을 빼앗아냇다.
뒤이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엄마, 제발 다신 이러지 맙소. 난 엄마 불쌍해 감옥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습구마.”
춘일은 어머니의 목을 싸매주고 칼자국을 여겨보았다. 다행히 칼이 깊이 들어가지 않고 살가죽을 좀 빗베였을뿐이였다.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이튿날 춘일은 잠시나마 인간성이 회복돼 어머니를 모시고 연길 시내 병원에 가서 상처를 처치하였다.
그는 뻐스에 앉아 집으로 돌아오면서 목에 붕대를 딜딜 감고 흰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어머니를 보고 불쌍해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죽음으로 위협한 것이 효과가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도 으름장을 놓았다.
“이 놈아, 이제 다시 나쁜 짓을 하는 날엔 엄만 언제든지 식칼로 목을 썩뚝 베고 죽어버린다. 잊지 말라.
“예, 예, 예. 야, 엄마, 다신 나쁜 짓을 하지 않을게.”
그는 어머니가 자살할가봐 궁리하다못해 날마다 채를 끓인 후에는 꼭꼭 식칼을 치우고 내놓지 않았다.
그런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한술 더 떴다.
“이 놈아, 식칼을 치운다고 죽지 못할 거 같아? 쥐약을 풀어먹고 죽을 수도 있다. 저수지에 뛰여들어죽을 수도 있지. 큰길에 달려나가 왕청에서 오는 차 앞에 뛰여들어 죽을 수도 있지.”
“야, 엄마, 제발 그런 궁리 하지 맙소.”
춘일도 엄마를 살리려고 마지막수를 썼다.
“엄마 죽는 날엔 내 무슨 짓을 할지 모릅구마. 이 세상에 엄마 내놓고 이젠 믿을만한 사람도 하나도 없습구마. 아까운 사람도 없습구마.”
“이놈 새끼야, 이제라도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 에민 우리 집 막내 사람이 되는 걸 보았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
김춘일은 이젠 어머니가 죽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엄마 죽는 날엔 내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리라고? 흥!)
잠시나마 인간성을 회복했던 그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느라고 잠시 복수계획을 멈추었다.
“엄마, 연길 시내 쪽으로 이사해가깁소. 이 마을에서 어떻게 머리를 들고 살겠습둥.”
춘일은 어머니와 말하지 않았지만 복숭아얼굴 처녀가 떠나가버린 마을을 보기만 해도 실련의 옛상처가 되살아나 아파났던 것이다.
어머니도 춘일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의란진 명랑촌 제3촌민소조를 떠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 모자간은 연길시 교외, 비행장 서쪽에 자리잡은 장백향 인평촌 제6촌민소조에 림시거주호로 이사해왔다.
그때 김춘일은 속으로 음흉한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어머니 때문에 복수심을 포기할 인간이 아니였다. 그렇지만 새로 이사해온 마을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 진짜 양가죽을 뒤집어 쓰려고 애쓰는 승냥이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전과를 모르고 겉표면만 보고 그를 닭의 모가지도 비탈지 못할 어진이로 착각하였다.
김춘일은 음흉한 발톱을 감추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자리를 찾아 일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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