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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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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종장)
2018년 08월 23일 10시 44분  조회:2482  추천:3  작성자: 김장혁




                        
                10. 망향의 한


      얼마나 그리운 조상들의 고향 산천인가? 
      그 얼마나 꿈에도 가보고 싶은 부모의 고향이던가?
      꼭 4년이나 기다려서야 덕돌은 끝내 아내 명숙을 데리고 부모들의 고향 명천 땅을 밟아보게 됐다.
덕돌의 아버지는 7세에, 어머니는 18세에 일제의 철 발굽아래 살 길을 찾아 탯줄을 묻은 정든 고향인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을 떠나 만주의 허허벌판에 들어왔다. 그때 그들은 쪽박을 차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주먹밥을 얻어 드시면서 보름동안이나 걸어서 쓸쓸한 두만강을 건넜다. 덕돌의 아버지는 그때 일곱 살 밖에 안됐는데 형님의 지게 우에 놓은 쇠솥에 이불을 깔고 앉아 두만강을 건넜다. 너무 추우면 지게에서 내려 걷기고 하였다.
그때부터 덕돌의 부모들은 한시도 고향 산천을 잊은 적이 없었다.
보모들은 결혼한 이듬해인 1938년에 함께 고향의 산천을 밟아 본 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들은 항상 6남매에게 고향 산천을 외우군 했다. 어려서 고향 기운봉 아래에 가서 돌 버섯이랑 다래랑 머루랑 깸이랑 뜯어먹던 이야기로 치마를 씌워 놓은 듯 기상천외한 치마봉의 전설도 들려 주군 하였다. 또 누런 모래가 깔린 모래밭에 홈을 파놓고 기다리면 밀물에 밀려들어온 고등어며 명태며 홈채기에 빠져 바다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풀떡풀떡 뛰노는 것을 붙잡아 삶아 먹던 동화 같은 이야기도 늘 들려주었다. 세상을 뜨기 전에도 고향 산천이 그리워 세상을 뜨면 골회로 돼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게 두만강에 띄워 보내 달라고 했다. 허나 덕돌은 부모를 차마 두만강에 띄워 보낼 수 없어 부모의 소원대로 고향 산천에 보내드리지 못하고 고향 뒤산에 모셨다. 그것이 내내 속에 내려가지 않았다.
칠보산 관광코스가 열린지도 오래됐지만 덕돌은 칠보산이 바로 부모가 그렇게 외우던 고향 명천의 옛날 기운봉과 치마봉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여 라진과 선봉, 묘향산과 평양에는 관광을 갔지만 칠보산관광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우연한 기회에 한 호텔에서 조선 지도를 사서 두루 살펴보다가 아버지 고향이 바로 명천군안에 있는 칠보산 부근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튿날부터 덕돌은 칠보산 관광을 하려고 서둘렀다. 90세도 넘도록 부모가 74년 동안이나 그리면서도 가지 못한 부모를 모시고 고향의 산천을 구경시키려고 했다. 허나 려행사 측에서는 늙은이는 안전문제로 해 모시고 갈수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덕돌은 최저한도로 부모가 너무나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항상 외워온 부모의 고향 산천을 비디오촬영이라도 해서 부모에게 보여드리려고 비디오촬영기까지 사놓았다. 허나 관광코스가 취소되지 않으면 단위의 월간잡지를 꾸리는 일로 몸을 뺄 수 없었다. 또 기타 여러 가지 여건이 모자라 수속하지 못해 부모 생전에 칠보산 관광을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부모님 생전에 부모에게 고향 산천 구경도 시켜드리지도 못했고 비디오촬영이라도 해서 구경시키려던 최저한도의 꿈마저 실현하지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4년 동안이나 애 쓴 끝에 끝내 부모 고향 땅을 밟아보는 꿈을 이루었다.
거의 한세기 전 옛날에 부모가 주먹밥을 주어 자시면서 보름동안 눈보라를 무릅쓰고 걸어 두만강을 건넌 길로 새까만 밤에 기차를 타고 온 밤 달려 이른 새벽에야 부모의 고향 명천 땅에 내려섰다. 순간 덕돌은 가슴이 울컥 하고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끝내 부모가 생전에 그렇게 보고파 외우던 부모의 고향 산천에 왔지만 부모를 모시고 오지 못한 것이 얼마나 한스러운지 몰랐다.
“아버지, 어머니, 이 도리깨아들이 이제야 끝내 부모들의 고향에 왔습니다.”
그는 울먹이며 속으로 외치면서 부모님의 고향 산천을 돌아보았다. 입북시조 김려생 할아버지대로부터 14세 고조부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의 뼈가 대대로 묻힌 조상들의 고향 명천의 산천을 눈물이 없이는 볼 수 없었다.
      (어느 산이 입북 시조 김려생 할아버지 산소가 계시는 산일까?)
      아무리 둘러보면서 물어 봐도 뭇산들은 반겨 맞아줄뿐 대답이 없었다.
안개 속에 칼로 깎아지른 듯이 백여 미터씩이나 소소리 높이 치솟은 칠보산의 절벽, 천길 벼랑에 하늘을 찌르면서 펼쳐져있는 울울창창한 소나무원시림, 부모의 고향 산천은 그야말로 가는 곳마다 물로 씻은 듯이 감탄이 나올 지경으로 말쑥하고 수려했다. 아마 조상들의 고향 산천이어서 그렇듯 아름답게 보였으리라. 흰 구름이 감돌아 흐르는 천하절경 절벽위에 우뚝 솟아 있는 부부바위와 피아노바위를 보는 순간 덕돌은 아버지가 항상 외우던 치마바위와 어머니가 항상 돌버섯을 따던 기운봉은 어느 것일 까고 둘러보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가이드도 모른다며 도리머리를 흔들었고 산천도 대답이 없었다. 그는 부모 생전에 부모를 모시고 오지 못해 알 길이 없는 치마봉과 기운봉으로 해 또다시 초조하고 마음이 아파났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가의 새하얀 백사장을 밟아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이 곳이 밀물에 밀려들어왔다가 되나가지 못한 고등어를 줏던 바다가일까?). 수백 년 동안 조선에서 명태의 고향으로 불리어 온 명천에는 낙지와 생복, 명태 등 수산물이 아주 풍부했다. 바다 가에서 덕돌은 눈물과 함께 생신하고 쫄깃쫄깃한 해산물을 씹어 삼켰다.
그의 가시아버지 고향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면 해변 가에서 파도가 출렁이는 푸르른 바다를 보는 순간 가시아버지가 고향에 돌아가게 임종 전에 골회를 두만강에 띄워 보내라고 하시던 말씀을 외웠다.
그러자 명숙은 아버지 고향 산천을 돌아보면서 “아버지는 두만강을 따라 동해로 나와 여기 고향에까지 왔을 거예요. 아버지도 우리를 보고 기뻐하실 겁니다.”라고 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울먹였다.
       덕돌은 명천의 칠보산과 해변 가를 돌아다니면서 아내와 함께 숱한 영원한 기념사진을 남겼다. 가는 곳마다에서 기념으로 반들반들한 조약돌과 하얀 모래, 그리고 누런 흙을 한 가방 가득 넣었다. 가이드와 관광객들이 이상해 도리머리를 흔들었지만 그들은 해산물 한 마리도 사 넣지 않고 대신 아내의 들 가방에까지 조상들의 고향 산천의 흙과 돌을 불룩하게 넣어 메고 돌아왔다.
      조상들의 고향 산천을 사랑하는 덕돌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내가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해관 일군들도 돌과 흙이 가득 찬 가방들을 열어보고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아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증조부모와 조부모, 부모의 산소로 달려가서 고향의 흙과 돌을 산소에 일일이 정중히 얹어드렸다.
덕돌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조상들에게 말씀드렸다.
“제가 끝내 부모가 그렇게 그리고 외우던 조상들의 고향에 갔습니다. 부모들을 생전에 모시고 고향의 산천을 돌아보지 못한 이 불효자식을 널리 용서하옵소서. 대신 조상들의 뼈와 혼이 묻혀있는 고향의 흙과 돌이나마 얹어드려 망향의 혼을 위로해드립니다.”
입북시조 김려생 할아버지가 단종을 보호하기 위해 궁정의 호조정랑 벼슬마저 버리고 천신만고를 겪었다. 덕돌은  한국 강원도 영월군에 가서 단종이 묻힌 장릉도 찾아보았다.
        그가 영월군으로 떠나는 날, 아침에만 해도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막내 누나와 매형은 큰물에 영월군 산골에 산사태도 터져 바위돌이 굴러내려 큰길마저 막혔다면서 가지 말라고 했다.
       "왜 위험한 곳에 가?"
       "편안히 있다가 집에 돌아가."
       사실 한국에 떠나올 때 도망칠가봐 려행사에서는 가옥소유증까지 차압해두었다. 만약 이튿날 제때에 출국해 중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날엔 124평방미터나 되는 가옥을 내놔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언제 다시 올지 모를 형국인지라 덕돌은 기어이 우산 하나 달랑 들고 멜가방에 제주만 챙겨가지고 서울 청량리에서 영월행 렬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웬 일인가? 그가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찾아왔다고 조상님이 도와주시는 건가? 그가 영월역에 내리자 언제 소낙비 내렸나 싶게  해가 바짝 뜨지 않겠는가.
      그는 오후에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막차를 놓칠가봐 역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운전수와 물어 대번에 영월역 서북쪽 한 5, 6리 떨어진 장릉에 달려갔다.   
     아늑한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단종 왕릉을 찾은 덕돌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면서 인사드렸다.
       “저의 입북시조 김려생 할아버지가 그렇게도 충성한 단종 왕이시여, 그대의 충신 호조정랑 통정대부 김려생의 18세손 덕돌이 이제야 찾아와 인사 올립니다. 려생 할아버지께서는 임종 시에도 자손들에게 누구라도 살아남으면 꼭 대왕님을 찾아뵈라고 했습니다. 이제야 인사드릴 수 있어 죄송합니다.”
       뒤이어 제주를 부어 올리고 큰 절을 올린 뒤 계속 살아 있는 단종 대왕에게 말하듯이 뇌까렸다.
       “대왕님은 아십니까? 당신의 충신 김려생 할아버지는 이 곳에서 당신을 보호하려고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 우린 원래 경순대왕의 후손 경주 김 씨입니다. 려생 할아버지는 충신 엄흥도 호장 함께 단종 대왕임을 이 곳에 모시였다가 세조왕의 눈에 났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처자들을 데리고 함경도 명천군 상우남면에 달아나 감자를 심어먹고 바다의 명태를 잡아자시면서 숨어 살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임종 시에도 그이께서는 우리 경주 김 씨 본마저 당신이 계신 영월로 고쳤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경주 김 씨로부터 영월 김 씨로 됐습니다. 저 아래를 보십시오. 엄흥도 호장은 충신으로 추대돼 충신기념관마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어째 저의 할아버지 김려생 통정대부께서는 기념관은커녕 역사에 이름 세 글자도 없습니까? 물론 저의 김려생 할아버지께서 명예나 지위를 바라고 당신께 충성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후손은 섭섭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명예나 궁정 통정대부 대신 벼슬도 버리고 간 할아버지신데.”
      한참 단종 왕릉에 대고 넉두리를 하고나니 덕돌은 가슴이 후련했다.
      참 귀신이 곡할듯이 이상했다. 그가 영월역에 돌아와 렬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올 때 그렇게 맑던 하늘이 갑자기 흐리더니 소낙비가 창대처럼 쫙쫙 쏟아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짜 조상님들이 보우해준 것 같아 덕돌은 이를데 없이 감개무량했다. 
      덕돌은 이듬해에 또 경주로 내려가서 시조 알지님이 태어난 허허벌판의 원시림- 계림을 찾아보았다. 2천여년 전 옛날 밤중에 신라 석탈해 왕의 궁전은 궁터만 남고 그 뒤에 계림이 있었다. 그 원시림이 바로 석탈해왕이 호공을 시켜 밤중에 우는 닭을 찾아보라고 보냈던 원시림,  시조님의 출생지였다.
      (그럼 누가 알지를 낳아 금궤에 담아 이 원시림 나무에 걸어놓았을까? 알지의 아버지, 아니, 조상은 누구일가?) 
      덕돌은 천고의 비밀이 잠긴, 알지를 금궤에 담아 걸어두었던 2천여년 전 계림의 고목을 유심히 살폈다. 철갑을 두른듯 터덕터덕한 고목, 그 유서 깊은 고목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드디어 시조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계림에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반나절이나 계림을 돌아본 뒤 덕돌은 선덕여왕임이 애써 세운 첨성대도 감명 깊게 우러러 보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천년 신라의 정신기둥이었던 불국사에 가보았다. 턱턱 갈라터진 나무바닥을 밟고 조상왕님들이 기도를 드렸던 대웅전 아미타불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천년 묵은 부처님께 조상왕님들의 명복과 우리 겨레의 행운 그리고 집안 후손만대 행복을 빌고 또 빌었다.
      덕돌은 기부함에 만원을 기부하고 기록부에 이름을 남겼다.
      그는 토함산에 올라 신라 유명한 천년 묵은 에밀레종도 울려보고 석굴암에 들어가 2천년 묵은 돌부처한테도 똑 같은 례를 갖추었다. 부처님께 조상왕님들의 명복과 우리 겨레의 행운 그리고 집안 후손만대 행복을 빌고 또 빌었다.
      덕돌은 기부금 만원을 석굴암에 드렸다. 적은 돈이지만 조상님들의 정신기둥에 자그마한 디딤돌이라도 되고 싶은 성의였다.
     관리일군들은 석가모니 오시는 날에 련꽃등에 이름을 박아 천날기도를 드려주겠다고 하였다.
      석굴암에서 불국사로 내려가는 등산길 수림 속에는 놀랍게도 파란 대나무가 마치 신라 대바른 기상을 자랑하듯 하늘을 찌르면서 꼿꼿이 서 있었다.

     그는 점심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 력사를 돌아보았다. 점심식사를 한 후 천년 신라를 통치한 미추 대왕과 내물 대왕을 비롯한 조상 대왕님들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경주의 고분-왕릉, 계림 수림 남쪽의 조상대왕 내물 대왕 왕릉도 일일이 찾아뵙고 큰 절을 올렸다.
    산더미 같은 조상 대왕님들의 왕릉을 우러러 보는 순간 덕돌은 폐부에서 흘러나오는 격정을 즉흥시로 읊었다.

천년 신라의 으리으리한 금빛 왕궁은 어디로 가고
쓸쓸한 옛 산소만 적막한 허허벌판에 외롭게 남아 있는가요
천하를 호령하던 조상 임금들은 어디로 가시고
금빛 왕관과 갑옷만이 진토 속에 조용히 누워 있으시오
처량하게도 잡초 속에 비바람 속에

목 메여 애타게 조상임금들을 불러 봐도
옛 산소 잔디에서 들려오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내 가슴을 아프게 허벼요
너울너울 춤추던 궁녀들은 어디로 가고
나뭇가지에서 쓸쓸히 들려오는
참새들의 울음소리만 나를 울려요

그대들의 혼을 애타게 불러요
그만 쉬시고 어서 일어나세요
당신의 서자와 같은 이 선비후손
눈물이 넘치는 제주를 부어 드리옵니다

천년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빛낸 조상 대왕님들을
하느님이 보우해 주세요
조상 대왕님들의 명복을 빌고 또 빕니다

그대들의 이 가난한 선비후손은
정녕 들립니다
불국사의 종소리
한가슴에 메아리칩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대왕님들의 목소리
고전노래로 들립니다
선덕여왕님, 진덕여왕님, 진성여왕님의 치마소리에

방불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자애롭고 당당한 그대들의 용안이
마음속에 뿌리 내립니다
경주 땅에 살아 숨 쉬는 조상 왕님들의 얼과 혼이
한가슴 뿌듯이 벅 찹니다
천년 신라의 유연한 외교와 민주주의 기상이!

      봄날씨가 어찌나 따뜻한지 경주 곳곳 옛 집 울안에 벚꽃이 활짝 피어 그윽한 향기를 풍기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경주에는 감도 난다고 했다.
     (용천 대장은 이렇게 좋은 고향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 타향에 묻혔구나. 모두다 동존상잔의 희생물이야. 쳇.)
     그는 산더미 같은 내물왕 왕릉과 선덕여왕 대에 축조했다는 첨성대를 배경으로 저 멀리 바라보이는 옛집을 둘러보면서 이런 생각이 피뜩 들었다.
     (혹시 저게 김용천 대장의 옛 고향집이 아닐까? 남조선 특무네 집? 용천과 경주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장미련이 뭐가 돼서 아들 토함산을 데리고 한국 경주에 와? 용천대장의 유산을 상속한다면서? 대만으로 달아난 둘째오빠 장리국과 죽은 남편 경주 덕에 일약 갑부로 된 지주의 딸. 어허. 옛말이나 신화로군.)
덕돌은 토함산에 가서 천년 석굴암에 들어가 천년 돌부처님을 보고서야 용천이 아들 경주와 토함산의 이름에 담긴 깊은 사향의 철리를 알듯 했다.
       덕돌은 조상들의 혼이 살아 있는 천년 신라 경주를 돌아보면서 가슴이 알알하게 
사뭇 괴로워 났다.  천년 신라 사직을 하루 아침에 내놓고 이런 좋은 고향을 떠나 처자들과 신하들을 데리고 개경으로 올라가야만 했던 경순대왕 김부식 할어버지, 경순대왕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
      불현듯 만주에 남조선특무로 들어갔다가 정든 고향에 돌아오지도 못한 용천 대장이  유령처럼 떠올랐다.
     덕돌은 머리를 가로 절레절레 저었다. 비극적인 동족상잔 전쟁으로 인해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한 원혼이 비치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신라 말대왕 경순대왕을 비롯한 조상들은 천년이나 살던 이 고향을 등지고 핍박에 의해 개경에 올라가야 했다. 나라가 망해 고려 시조 왕건한테 천년을 대를 이어온 신라왕국을 내주고 처자들을 거느리고 개경으로 떠나갈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조상대왕들께 얼마나 죄송했겠는가. 또 이 씨 조선 세조왕 대에 려생 할아버지는 단종 왕을 보호하다가 세조왕에게 쫓기어 입북해 함경도 명천군 골 안에 들어가 감자농사를 지으면서 숨어 살아야 했다. 일제 때 병완 증조부와 김기준 조부, 아버지 상순은 일본 놈들의 등살에 배기지 못해 눈보라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에 정든 함경도 명천군 고향 마을을 떠나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였다.
       시조 알지님으로부터 김려생 할아버지, 아버지 김상순 대까지 2천여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경주로부터 개경(개성)으로, 한양(서울)으로, 명천군으로, 만주 함흥촌까지 고향을 이별한 발자욱마다 망향의 피눈물이 고여 있지 않겠는가. 고향을 떠난 천년비극의 사연과 함께 새 고향을 건설한 개척의 역사가 깃들어 있지 않는가!
      덕돌은 착잡한 생각에 잠긴 채 한국을 떠나기 전에 또 한국 경기도 장단 군에 가서 신라 마지막  대왕 경순대왕 조상임의 왕릉도 찾아보았다. 3.8선 경비초소와도 아주 가까와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에서 한국 군인들이 총가목을 부여잡고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종친회 인사들이 한참 해석해서야 덕돌 일행은 장단군 동북쪽에 있는 성거산에 달려갔다. 장단 고부에서 남쪽으로 한 8리 좌우 떨어진 지점에 왕릉이 모셔져 있었다.
      릉이 계시는 곳은 38선 부근에서 유유히 감돌아흐르는 림진강을 끼고 우뚝 솟은 성거산(圣居山)의 한 주령이 서남으로 뻗어내려온 자리, 명당이였다. 이북 개성(고려 수도 개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거산의 아늑한  기슭에 향기로운 꽃내음 속에 룡이 하늘로 승천하는 형국으로 발좌정향이였다. 둘러보니  하늘의 기운이 마치 밀물파도가 밀려오는듯 하고 주위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릉은 활짝 핀 련꽃을 연상케 하였고 황금알을 품은 격이 아니겠는가. 성가산에는 마치 룡호가 교태하는듯이 살아 꿈틀거리는 모습이 떠오른 상 싶었다. 참말로 아늑한 명당이였다.
       조상대왕님- 김부 경순대왕 왕릉을 보는 순간 덕돌은 눈앞을 가릴 수 없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덕돌은 중국에 있는 경주 김씨 종친들의 마음을 담아 어깨를 들먹이며 제주를 부어 올리고 나서 큰절을 아홉 번 올렸다. 경순 대왕임은 싯누런 족보에서도 제일 마지막 왕으로 명함을 찾아 볼 수 있던 조상 할아버지가 아닌가.
       (난 경순대왕 김부할아버지 32세손이 아닌가. 아흐야. 슬프도다.)
       덕돌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경순 대왕님은 나라를 두 손으로 왕건에게 바치고 조상대왕님들을 볼 면목이 없어 경주에 돌아가 묻힐 엄두도 내지 않고 여기 산골에 조용히 묻히기를 바랐을 거야.
       고려조 제3대 왕은 김부 경순대왕의 외손자였다. 그는 외할아버지, 신라 말대왕 김부 경순대왕을 고인의유언대로 이 곳에 대왕의 례로 후하게 장례를 지내주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왜놈들의 철발굽 아래에서 나라를 빼앗기고 경순대왕의 묘비마저 잃어졌다. 후손들도 뿔뿔히 흩어지고 왕릉을 감히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1973년 한국 륙군 려길도 대위가 38선 부근을 순라하다가 비물에 씻겨 드러난 경순 대왕의 엄청 큰 묘비와 지석을 발견하였다. 그후부터 대한 경주김씨대종친회의 주최하에 수많은 종친후손들이 해마다 청명과 추석이면 이 왕릉에 찾아와서 대제례를 지낸다고 하였다.   그때면  하얀 한복을 입은 경순 대왕 김부 할아버님의 후손 경주 김씨들 수만명이 성가산 서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산소 주위를 새하얗게 뒤덮을 지경이라고 한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고 덕돌은 엉거주춤 일어나 저녁 낙조를 밟으며 귀로에 올랐다. 해마다 찾아뵙지 못할 산골에 묻힌 조상 대왕임의 산소를 떠나는 덕돌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드디어 조상의 뼈와 살이 묻힌 한국을 떠나야만 하는 날이 다가왔다.
     인천 국제공항 출입국 사무일군이 독돌의 려권을 들추보면서 째려보는 눈길로 치켜보면서 영어로 물었다.
     "what's your name(이름은 뭔가요)?"
    "My name is derk doll kim.(저의 이름은 덕돌입니다.)" 
    "What's your job?(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요?)"
     덕돌은 영어로 심문하는 듯한 안경쟁이가 얄미웠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조선말로 대답했다.
    "나는 기자입니다.(I'm a journalist(Reporter)." 
안경쟁이는 흘끔 치떠보며 또 물었다.
      "Which Soul hotel are you staying in? (서울 어느 호텔에 투숙했는가요?)"
      "...서울 햇빛호텔에 들었어요(I stay in Soul's sunshine hotel) ."
      그자는 안경 넘어 덕돌을 째려보면서 두덜거렸다.
      "영어 a lttle(좀) 아는 같구먼. 왜 영어로 답하지 않지?'
     덕돌은 스트레스를 주는 안경쟁이가 슬그머니 괘씸해 화를 버럭 냈다.
     "누가 할 말을 누가 하는가요? 왜 좋은 한국말 두고 몰상식하게 영어로 물어보는가요? 당신도 한국인인가?!"
     그제야 그 자는 도장을 쾅 찍어 내보냈다.
      번마다 한국에 출입국할 때면 출입국 일꾼들이 까다롭게 굴었다. 자기 조상들 나라에도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지 못하였다. 지난 세기, 그때만 해도 한국에 입국하려면 도망간다고 가옥소유증과 돈 몇만원을 차압당해야 했다. 어데 가나 한국 인들은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을 깔보고 천시하고 업신여겼다. 진짜 서자 대접하였다. 조상들의 고향에서 소외감, 그것이 서러웠다.
      해외에서도 한국 인들은 처처에서 조선족들을 업신여겼다. 한국이 조금 조선인들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아 으시대는거였다. 
      덕돌이 일본 오사까에 갔을 때였다. 덕돌이네 부부는 일본 인이 차린 호텔보다 그래도 동포니깐 한국 인이 차린 호텔이 나으리라고 여겨 한국 인이 차린 호텔에 투숙하게 됐다. 그런데 카운터의 아가씨는 분명 한국 인이 돼가지고서도 일어도 아니고 영어로 종알거리면서 려권이랑 이것 저것 요구했다. 덕돌은 처음엔 한국인이 차린 호텔에 온다는 것이 잘못 오지 않았는가 미심해 일어로 말했다.
"분명 동양인인데 왜 일어로 말하지 않고 영어로 물어요?"
그래도 아가씨는덕돌을 할끔 치켜보더니 "일어 알아듣지 못해요." 하고 계속 영어로 물어댔다.
      덕돌 부부를 째려보는 그 표정, 아주 얕잡아보는 못난 얼굴. 덕돌은 영어를 좀 알아서 겨우 투숙수속을 하고 호텔방 열쇠를 가지고서야 한숨이 후 나왔다.
     이튿날 희극이 벌어졌다. 중국 한족관광단도 그 호텔에 투숙했다가 떠나가게 됐다. 
카운터 그 아가씨가 바빠맞아 관광뻐스께로 뛰어나왔다. 중국 관광단 가이드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 허둥지둥 찾아헤맸다. 
"가이드 어데 갔어요. 결산도 채하지 않고 어데 갔단 말인가요?"
그 아가씨가 한어를 몰라 일어로 뭐라고 떠들었지만 중국관광객 속에는 일어를 아는 이가 없어 모두 멍해 앉아 있었다. 
    바빠맞은 그 아가씨는 덕돌을 보고 한국어로 사정했다.
     "오빠, 도와주세요. 이 중국인관광단에서 호텔비도 채 결산하지 않은 부분 있어요. 가이드 어데 갔는지 중국(한족) 손님들과 알아봐주겠어요? "
"한국 인이구만. 어젠 한국말도 일어도 알아듣지 못하더니 갑자기 한국 말도 아주 잘하네요."
그러자 그 아가씨는 얼굴을 붉히면서 머리를 숙였다.
덕돌은 전날 아가씨 행위는 괘씸했지만 중국 손님들과 가이드 전화 번호 물어서 그 아가씨한테 알려주었다.
     "아가씨, 우린 다 같은 피 흐르는 한국 동포인데요. 언제 어디서나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지. 몰상식하게 남을 깔보고 시기해선 안돼요."
     그 아가씨는 창피해 감사하다는 인사말도 못 남기고 도망치듯 호텔로 뛰어갔다.
     어찌 그 아가씨만 나무람하겠는가. 우리 세상에는 이런 아가씨들, 안경쟁이들이 많으니깐. 다 동포애란 하나도 없는 랭혈인간들이 아닌가. 우리 민족은 총명하고 슬기롭고 용감하지만 단합되지 못하고 항상 모래알처럼 산산히 흩어지는 것이 큰 흠이 아닌가.
       (야, 이 놈들아, 난 조선반도를 천년이나 통치한 신라 대왕님들 당당한 후손이야. 옛날 우리 조상대왕님들 언저리에도 얼씬하지 못 하던 놈들 후손, 옛날 우리 조상왕님들 왕궁 헛간이나 지켰는지도 모를 놈의 후손놈들, 네놈 따위들이 다 뭐냐? 괘씸한 것들! "
       덕돌은 비행기에 올라 스스로 위안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어쩐지 한국 사람들의 째려보는 눈길, 업신여기는 눈길, 그 곱지 않은 눈길이 자꾸 섭섭해 가슴이 알알해났다. 조상들의 뼈와 령혼이 묻힌 고국에서 받은 소외감이 심장을 파고 들어 헐어먹고 있었다. 진짜 심부전에 걸렸을 때보다도 더 아파났다.
      조상들의 고향이 촘촘히 들어앉은 한국 땅을 둘러보는 순간 덕돌은 코마루가 시큼해나며 어깨를 조용히 들먹였다.
       (아, 나는 떠나야만 했다. 조상의 뼈와 살이 묻힌 고국을 끝내 떠나야 했다. 어째 자기 고국을 떠나야만 하나? 조상님들께 미안하지 않게 뭔가 하려고 돌아가야만 하는게 아닌가? 아, 이제 가면 또 언제 고국 땅을 밟아 볼까?)
       비행기에 앉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솜뭉치 같은 구름 위로 날면서 덕돌은 조상의 얼과 혼이 살아 숨 쉬는 한반도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홀연 금궤에서 나오신 알지 시조님, 미추왕, 내물왕과 고구려와 백제, 신라를 통일한 태종무열왕 김춘추 대왕님과 문무대왕의 늠름한 용안, 평화를 사랑하고 유연한 민주주의 기상을 떨치고 백성들을 위해 천년 사직을 내놓은 경순대왕 김부 대왕님, 충신 김려생 할아버지의 충혼이 푸른 하늘에 나타났다. 이상하게도 그이들의 빛나는 령혼은 하나의 거대한 갈무리로 두둥실 떠올랐다. 드디여 그들의 거대한 왕혼이  밝은 거울로 돼 온 누리를 밝게 비추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밝은 거대한 거울로 한반도를 비춰보니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두 조각 난 한반도는 깨어진 거울 같지 않겠는가! 하늘에서도 쟁그랑 댕그랑, 옥신각신 헐뜯고 야단치지 않겠는가? 조상들이 남겨준 거울이  두 토막 났건만 이제도 너야, 내야 옥신각신 싸우다나면 이제도 몇으로 더 깨질지 누가 알겠는가!
     그 깨진 두 쪼각 거울로 자기 얼굴을, 아니, 우리 모두의 얼굴을 비춰보니 험상궂고 엉망진창이 된 두 쪼각 얼굴로 보였다. 그 깨어진 거울 같은 한반도가 가슴 아팠고 깨어진 모두의 얼굴이 안타까웠다.
       덕돌은 그 깨어진 거울로 한국에서 서자 대접을 받은 가난한 선비 얼굴을 비춰 보니 더구나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이 모든 것을 어찌 덕돌이 한 사람의 비극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 지구촌 8천만 겨레의 력사 비극이 아닌가!
      덕돌은 그새 꿈만 같이 조선 회령에 네 번이나 나가 하나 밖에 없는 사촌형님 김동선을 만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생전에 형님을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상순은 사망하기 전 일주일전에도 하나 밖에 없는 조카를 외우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어째 오지 못한다니? 조선에 나가 형을 만나봐라.”라고 하며 
      아버지 생전의 유언대로 덕돌은 사촌누나 순애와 함께 숱한 식품과 옷, 가전제품 등을 한 자동차 꽉 박아 싣고 회룡에 나갔다.
     옛날 아버지와 조상들이 망국노 설음을 안고 쪽박 차고 피눈물 흘리면서 건느던 두만강, 그 피눈물의 두만강을 넘으면서 덕돌은 콧마루가 시큼해났다. 그가 어찌 두만강다리를 어찌 무심히 건늘 수 있겠는가.
     두만강 저쪽에서 흰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사촌형님 동선이 손 저으며 마주 나오고 있었다. 다섯살에 헤여진 사촌형님이었다. 예순 고개를 넘은 동선 형님을 처음 만나는 순간 서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굳게 굳게 포옹했다. 조카 성국이, 성일이, 성춘이 그리고 여조카 애숙과 애화를 처음 보는 순간 덕돌은 희구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선은 벌써 등마저 휘고 파뿌리노인으로 됐었다. 그는 삼촌 생전에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고 연이어 말했다. 너무 짧고 짧은 사흘 상봉 기간에 동선은 덕돌에게 고향에 있는 형제들과 마을 사람들의 형편을 자꾸 물어보았다.
      “집안 집 조카 성욱이랑 잘 있느냐?”
     동선은 고향 마을의 형편도 자꾸 물어보면서 고향을 몹시 그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금방 상봉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사흘 만에 그 백여년 서린 한도 많은 두만강 다리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만 했다. 옛날 조상들이 피눈물을 휘뿌리며 부모형제와 이별하던 그 피눈물로 얼룩진 두만강다리에서 혈육의 이별, 아, 그 이별은 눈물의 바다였다.
    (이제 갈라지면 언제 다시 만날가?)
    덕돌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두만강다리 이쪽에 건너와서도  두만강다리 저쪽에서 손을 젓고 있을 파뿌리형님과 조카들 쪽에 자꾸 눈길을 보내면서 눈물을 훔치였다. 다만 사정없는 두만강 흙탕물이 두만강다리 교각을 처절썩처절썩 무정하게 치며 구슬프게 통곡치는 소리가 애처롭게 들릴뿐이었다.
     덕돌은 몇 천원 먹여 1미터 반도 넘는 용과 봉황 쌍기둥을 세운 육중한 기념비를 세운 조상들과 부모님 산소, 그들의 고향의 흙과 돌을 얹어드린 산소들을 바라보면서 한국과 조선에 갔다 온 얘기를 죽 해드렸다. 딱 마치 살아계시는 조상님들과 부모님에게 회보하듯이 하나도 빠짐없이 쭉 말씀 드렸다.
      덕돌은 부모님 생전에 다하지 못한 효성의 빈 구석을 너무나도 많이 발견하고 아픈 마음을 달랠 길 없었다.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제 불효자식이 부모님 계신 구천에 가게 되면 다시는 불효를 저지르지 않고 영원히 부모님 옆에서 조석으로 효성을 다해 모셔드리렵니다. 아, 정말로 부모님께 불효를 저지른 빈 구석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효성의 빈 구석을 다 채울 길도 기회도 이젠 없습니다. 이 불효자식은 그저 효성을 다하지 못한 빈 구석을 돌아보면서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면서 안타깝고 쓸쓸하기만 합니다. 세상에 후회약이 있다면 후회로 만리장성이라도 쌓으련만.)
       덕돌은 부모의 산소를 끌어안고 어린애처럼 엉엉 대성통곡을 쳤다. 부모와 조상들도 산소 속에서 나와 함께 흐느껴 우는 상 싶었다.
      부모님의  고향 산천과 조상들의 산소를 바라보는 순간 마치 조상들의 넋이 맑은 하늘에 솟아오르더니 그리운 고향 산천으로 훨훨 날아가는 상 싶었다.
     조상들의 산소에 얹어준 조상들의 고향 산천의 흙과 돌에는 고향 산천에 대한 조상들의 향토애와 우리 민족의 피눈물 나는 이민의 역사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고향 산천에 대한 조상들의 절절한 그리움과 망향의 서러움이 서려 있고 일제 식민지통치하에서도 길가의 잔디처럼 그 어떤 폭압에도 끈질기고 억세게 살아온 우리 민족의 넋이 살아 숨 쉰다. 고향의 흙과 돌에는 조상들 생전에 고향의 산천을 구경시키지도 못한 불효자들의 후회의 눈물과 한이 배어 있다.
     아, 고향의 흙과 돌을 산소에 얹어드려 조상들 망향의 혼을 위로해 드릴 수만 있다면 조상들 고향의 칠보산이라도 옮겨다 얹어드리리다. 아니, 조상들의 고향 산천을 몽땅 옮겨다 산소에 얹어 드리련만.
     덕돌은 조상들의 산소를 모신 산등성이에서 고향 사람들이 대대로 한뉘 고생하면서 건설한 고향 마을과 피땀을 몰 부어 개간한 황무지 밭을 돌아보면서 한 숨을 길게 내쉬며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이 땅을 개척하고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피땀을 흘린 병완 증조부와 기준 조부, 아버지 상순과 어머니 명옥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조상들과 부모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 북망산에 갔다. 그들은 북망산에서도 고향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으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
     고향 마을에는 태평강 모래톱에서 물도랑을 파고 흐르는 강물에 물레방아를 돌리며 놀던 동림과 성욱도 순녀도 없다. 버들방축에서 버들모자와 꽃다발을 쓰고 숨박곡질을 놀던 순희, 연애쪽지를 받고 당황해하던 누룽지 친구 은숙도 보이지 않는다. 달밤에 꽃 담배쌈지를 주던 조영희 등 집체호 처녀 조영희도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다만 정신이 좋지 못한 해월이 관내 어느 절당에 갔다가 함흥촌에 되돌아와 충국과 살아서 낳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충국의 아들 덕분에 미련과 함께 학교 자리 널찍한 집에 들어 호광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해월은 청명이거나 추석이면 고향으로 돌아와 덕돌의 할아버지 산소 옆에 있는 부모 흥수와 춘실을 합장한 묘지에 찾아와서 절을 했다.
     그는 산마루에 있는 산소 앞에서 덕돌을 만나기만 얘기타령이다.
       “세상에 사내들은 다 색마야. 이 놈의 세상을 떠나 절에 갔더니 어쩌는지 아니? 살생하지 않고 간통을 하지 않는다던 중들이 밤이면 어찌나 달려드는지 내 혼자 몸으로 배겨내기 힘들더라. 중들도 고기 맛을 보면 빈대도 잡아먹는다더니 여자 맛을 들이니 세간의 사내들보다 더 색마더라. 내 하마터면 숱한 중들에게 깔리어 세 쌍둥이를 낳을 번했다.”
      분향하러 온 숱한 사람들이 듣고 웃는 데도 해월은 계속 자랑 삼아 구렁이가 나가는지 뱀이 나가는지도 모르고 잔뜩 늘여놓았다.
     “절에서 애비 누군지도 모르는 애를 세 쌍둥이나 낳을 번했어. 아무튼 중들의 애겠지. 유산한 게 다행이다. 야, 야! 호호호!”
     해월은 손으로 낯을 가리며 웃고 떠들었다.
     “그래서 절에서 겨우 빠져 나와 마을로 달아났다. 그래도 내 고향이 제일이야. 언제 저렇게 큰 집을 쓰고 살리라 꿈에나 생각했겠니? 다행히 충국에게 몸을 맡긴 덕분이지. 팔자를 고쳤다. 내 팔자 상팔자지? 호호호.”
      덕돌은 허무한 웃음만 나갔다.
      고향에 아무리 뻘건 벽돌집이 들어앉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조선족들이 살 둥지가 다 허물어지고 흩어지고 있지 않는가. 후대들이 고향을 버리고 다 떠나가 버렸는데. 고향 사람들이 돌아오자고 해도 돌아와 살 집과 터전마저 없어졌다. 지괴호랑 조선족들이 살던 집을 다 헐어버리고 토성을 높이 쌓고 살고 있다.
      아들 운선도 대학을 졸업하고 머나먼 상해로 가버렸다. 다행히 한족 곳에 가서도 조선족색시 정하나를 만난 것이다. 그 애들의 자손들은 조선족학교도 없는 한족 곳에서 조선어를 배우기 힘든데 조선족처럼 살 수 있을까? 이제 내가 죽으면 조상들의 산소를 누가 지킬까? 그 애들이 비행기를 타고 성묘를 하러 올 수야 없지 않는가?
     덕돌은 고향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퇴직하면 고향 마을 조개덕에 지괴호랑 보란듯이 조선 옛 목조팔간 집을 덩실하게 짓고 살고 싶었다. 마당에 절반은 남새를 심어 먹고 절반은 갖가지 꽃을 심어 놓으면 꽃향기가 그윽해 얼마나 좋을까! 무더운 여름이면 팔간 집 널마루에 앉아 동네 노인들과 장기를 두거나 책을 보면 얼마나 좋으랴. 널마루에서 목침을 베고 척 들어누워 고향의 시원한 공기를 한껏 마시면서 낮잠을 잔다면 얼마나 황홀하고 낭만적이랴!
      그러나 지괴호와 말해 보니 한 평방에 천금을 준다고 해도 집터를 손바닥만큼도 팔 수 없다고 지껄였다.
     (개자식!)
     그는 어처구니없어 쓸쓸한 고향 마을에서 눈길을 떼 조상들의 산소에 돌리더니 천천히 머리를 숙였다.
      순간 덕돌은 저도 몰래 두 어깨가 무거워나는 감을 느끼면서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말 못할 민족의 사명감과 의무감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조상들의 산소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대성통곡 쳤다…
     아, 고향이여,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여!

                               (끝)
                                                                            
                                             2013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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