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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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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02)
2018년 05월 18일 16시 03분  조회:1646  추천:3  작성자: 김장혁






                  14. 고향으로 날아간 혼

억수로 쏟아지던 비도 가을에 접어들면서 드물어지고 홧홧 달아오르던 열기도 서서히 물러갔다. 화가 난 세월의 화가가 산과 들판을 누렇게 물들여가더니 황금물결이 가을바람에 출렁이었다. 다만 세월의 바람에 화약내 나는 정치열기만은 우매한 정치몽둥이에 펄럭이고 있었다.
사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 가을을 기다리었던 차라 낫을 숫돌에 갈면서 가을 준비를 다그쳤다. 해마다 언제면 풍작을 거둬 배불리 먹고 살겠는가고 희망에 한껏 가슴이 부풀어 올랐지만 가을을 하고 타작을 하고나면 또 배고픈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이 농가의 살풍경이었다.
계급투쟁을 하다나니 곡식밭에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풀이 한 키씩 자라 곡식이 잘 자랐겠는가? 논밭에 가 보면 벼 밭인지 돌피 밭인지 분간하기조차 힘들 지경으로 검은 돌피가 대가리를 쳐들고 넘실거렸다. 조 밭으로 가 보면 누런 가라지들이 잘 난 듯이 대가리를 쳐들고 조이 이삭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느 날, 상순이 낫을 갈아들고 누런 밭으로 나갈 때다.
“김 서기―!”
상순이가 머리를 돌려 보니 글쎄 뜻밖에도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부 현장이 저쪽 우사 쪽에서 손을 저으면서 부르고 있었다.
“이 서기!”
상순은 낫을 쥔 채 그리로 뛰어갔다.
그는 이계삼 서기와 허 현장을 보자마자 양손으로 두 분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아니, 어떻게 돼 두 분이 여기 왔습니까?”
이계삼 서기가 머리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됐네.”
허영주 부현장은 “광활한 천지에는 우리가 할 일이 많지.”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제야 상순은 허영호 소장이 말하던 일이 피뜩 떠올라 한숨을 후 내쉬었다.
“어떻게 고생하겠습니까?”
그러나 노간부들은 오히려 상순을 위로해 주었다.
“우리 때문에 어떻게 속을 태우겠소?”
상순은 두 분의 손을 꽉 잡아 흔들면서 위로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마을에서 누가 감히 두 분을 어쩐단 말입니까?”
이계삼과 허영주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면서 마을을 돌아보았다.
저쪽에서 흥수와 종연이랑 이쪽을 쓴 외 보듯 힐끔거리었다.
반란파들은 가을걷이는 뒷전이고 투쟁대회를 여는데 혈안이 돼 미쳐 날뛰었다. 그 바람에 이계삼과 허영주 뿐만 아니라 흥수마저 반역자, 남조선특무로 몰리어 투쟁 받았다.
종연이랑 송희랑 먼저 흥수와 상순을 끌어내 투쟁하려고 들었다. 그런데 사원들이 투쟁대회장에 잘 나오지 않아 투쟁대회는 흐지부지 해졌다.
종연과 승연, 송희가 직접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투쟁대회장에 나오라고 동원했지만 모두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만은 예외로 됐다.
상순이 자원해서 대대 사무실 앞의 쇠종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오늘 중요한 회의를 합니다. 모두 대대 사무실 마당에 모이십시오.”
그러자 사원들은 하나, 둘 토성 안에 모여들었다.
게다가 상순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동원하자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토성 안에 모여와서 시루 속의 콩나물 대가리처럼 꽉 박아섰다.
이날 상순은 자기 절로 집에서 만든 개패를 목에 걸고 숱한 사람들 앞에 나섰다.
개패에는 다음과 같은 꺼먼 글씨가 쓰여 있었다.

  사원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한 대대 서기 김상순을 타도하자!

그것도 상순이란 이름은 거꾸로 쓰여 있었다.
모두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원 여러분들이 나를 투쟁하십시오. 난 착오가 많습니다. 난 할아버지 대신 당지부 서기를 한지도 십년이 다 돼가지만 우리 대대 면모를 개변시키지 못했고 우리 대대 사원들을 배불리 먹고 살게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당지부 서기를 할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젊은 당원을 발전시키지 못했기에 사회주의 새 농촌을 건설할 후계자가 없습니다. 종연이랑 송희랑 믿고선 우리 마을을 사회주의 새 농촌으로 절대 건설할 수 없습니다. 난 투쟁을 맞아야 합니다.”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부 현장 그리고 허백호 서기까지 모두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상순이, 지금 뭐 하는 거요?”
그러나 상순은 개패를 목에 건 채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었다.
그러자 사원들은 분분히 고함쳤다.
“김 서기 절대 자리를 내줘선 안 되오.”
“우리 대대는 김 서기가 영도해야 됩니다.”
“흥수가 영도해선 절대 안 된다니까!”
어떤 사원들은 뒤에서 나지막이 뒷소리를 했다.
“셈이 들지 못한 종연이 형제나 송희 안 되오.”
“몽둥이질이나 했지 농사를 알기나 하오? 뭘 아오?”
“몽둥이질도 어디 김 서기 발뒤축에나 가오?”
      회의실은 수라장이 됐다.
      이때 송희가 앞에 나섰다.
      “가만, 가만!”
       종연은 상순의 개패를 쥐어 당기면서 악담을 퍼부었다.
      “김상순, 당신 지금 투쟁 받으러 왔소? 아니면 자기 자랑 하러 나왔소? 당신은 지금 후퇴하는 척하면서 전진하는 게 아닌가? 서기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기실 내놓기 싫어 여론 조성하는 게 아니고 뭔가? 한보 후퇴하는 걸로 열 발자국 전진하려고? 누가 모르는가? 당신은 혁명은 모르고 생산만 하는 놈이오. 류소기나 등소평의 ‘3자 일포’거나 ‘유일생산역론’이거나 ‘물질자극’ 따위 더러운 사상에 물젖은 썩어빠진 서기요. 진작 물러나야 했소. 당신은 역사문제가 많은 사람이오. 우리 마을에까지 기어든 남조선 특무 이병수의 외 6촌 형이 아니오? 또 남조선에 가서 남조선 괴뢰군과 내통한 혐의도 있어. 오늘 잘 나섰어. 진작 투쟁 받고 서기를 우리에게 넘겨줘야지.”
상순은 머리를 들고 종연을 마주 보더니 눈을 흘겼다.
“넌 날 투쟁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상순은 사원들을 향해  말했다.
"사원 여러분들이 나를 투쟁하십시오. 난 착오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남조선 특무가 아니오. 난 항일전쟁 때부터 유격대를 도와 쌀도 날라 갔고 장백산 밀림에서 성칠 대장을 도와 일제와 총을 맞대고 싸웠소. 난 삼도만 토비를 숙청하는 전투에도 참가해 토비를 몰아내고 우리 마을 주변의 숱한 마을 사람들을 보호 했소. 이 상순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난 손바닥만한 땅도 없이 조선 고향을 떠난 너희 부모들을 이 마을에 받아 주었고 우리 할아버지와 함께 당의 영도아래 저 장학산과 지학사 같은 지주를 청산해 너희들 부모한테 밭을 나눠주고 배불리 먹고 살게 했다. 우리 조손 3대는 제일 일찍 이 마을에 들어와 황무지를 개간한 밭을 몽땅 내놓고 너희 부모들을 이끌어 생산대를 꾸리고 황무지를 개간해 논을 풀고 과수원을 차려 너희들을 배불리 먹고 과일도 먹게 했다. 이것도 죄냐? 너희들이 대대 권력 찬탈에 눈이 뻘개 미쳐 날뛰는 흥수 꼬드김에 들어 이렇게 반란하면 누가 좋아하느냐? 종연아, 너희들이 그래 저 장충국이나 지괴호 같은 지주 새끼들이 좋아하는 노릇을 하겠느냐?”
일부 사원들은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김 서기를 투쟁해선 안 되오. 안 돼!”
종연은 상순의 빈틈없는 말에 더 할 말이 없어 몽둥이만 쳐들었다.
“이 나그네 한 대 맞아봐야 알겠는가? 전탕 자기 좋은 소리만 한다니까.”
종연이 몽둥이를 들어 상순을 내리쳤다.
그때 옆에 서있던 성환이 손으로 막았다.
“종연이, 말로 해야지. 몽둥이를 휘둘러서야 되오?”
종연은 상순을 투쟁하려다가 오히려 민심만 잃고 말았다.
그날 회의는 상순을 투쟁한다기보다 상순이가 인심을 얻고 종연이랑 반란 파들의 기염을 꺾는 회의로 돼버렸다.
그날 회의에 참가한 후 병완은 앓아눕고 말았다.
병완은 고향을 떠나 쪽박을 차고 두만강을 건너 함흥 촌에 들어와 함흥 촌의 군중들을 배불리 먹고 살게 하려고 한뉘 정성을 다했다 하건만 계급투쟁의 예봉이 자기와 손자에게 돌려지자 정치투쟁의 참혹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여 그는 깊고 깊은 심연 속에 빠져 허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상순이 달려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꼭 일어나셔야 합니다. 꼭 밝은 세상을 보셔야 합니다.” 
허나 병완은 더는 깨어나지 못했다.
정규상이 달려와 맥을 짚어보고 중풍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상순과 상길은 할아버지를 수레에 싣고 진수해 병원으로 가려고 서둘렀다. 그때 아랫사랑집 보준이 말렸다.
“큰아버진 집에서 편이 운명하시게 놔두오. 진수해병원에 간들 우리 마을 정교수만 용하겠소? 정 의사, 치료방법이 없소?”
정규상은 수레에 병완을 모시려는 상순과 상길 그리고 상훈을 말렸다.
“뇌출혈에 걸린 환자를 들어 수레에 싣고 가느라고 덜렁거리면 뇌가 울리면서 더 중해질 수 있습니다. 집에 모시고 중약을 써봅시다.”
      정규상은 먼저 혈관주사를 가져다 놓으면서 직접 약을 져 가져왔다. 그러자 상길과 상순은 손수 풍로를 피웠고 명옥과 상길의 처 리련옥은 약탕기를 씼은 후 중약을 쏟아 넣고 풍로에 올려놓고 달였다.
한참 후 명옥과 련옥은 중약을 사발에 짜서 좀 식인 후 양쪽에서 한술한술 떠 입에 넣어드렸다.
병완은 손자들과 손비들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아 보름 후에야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상순과 상길의 얼굴을 매만지면서 겨우 몇 마디 했다.
“나, 난, 안, 안 되겠다. 꼭 머, 머리를 들, 들고 꿋꿋이, 꿋꿋이 살아나가야 한다.”
상순은 세 귀 눈에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할아버지,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인민군중들을 위해 살려는 저를 어쩌지 못 할 겁니다. 난 당과 인민에게 미안한 일을 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공산당을 믿습니다. 반란 파들이 아무리 일시 미쳐 날뛰어도 당과 인민들은 꼭 정확한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병완은 상순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자기 주위에 둘러 앉아 눈물을 흘리는 상훈과 상길 등 손자들과 손녀들 그리고 증손자, 증손녀들을 둘러보면서 상길에게 물었다.
“성, 성칠이, 큰며느리 진, 진달래, 인섭이 보고 싶구나. 그들은 참, 참, 장하다.”
상길은 할아버지 손을 잡고 귀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진달래 큰어머닌 편지에 조선에 나갈 때 몇몇 악질분자들을 돌멩이로 까 눕힐 수 있었대요. 하지만 정치소용돌이 속에서 미혹된 군중들이라고 생각돼 놔뒀답니다. 조선에 나간 큰어머니와 인섭 삼촌 그리고 은녀 아주머니 모두 잘 있답니다. 옥선도 조선에 나가 중학교 교장으로 사업한답니다.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병완은 맥없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이 눈귀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 밭고랑 같은 주름살을 흥건히 적시었다.
“고, 고향,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이 언, 언제 오겠니? 누구든 이후에 고, 고향에 돌아가면 조상님들의 산, 산소에 찾아가 꼭 인, 인사를 드리어라. 부, 부모님과 조상들이 계시는 고향 땅에 묻히고 싶구나.”
상길은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할아버지, 왜 이런 말씀을 합니까? 흐흑, 할아버지, 일어나십시오. 정신을 차리십시오.”
그러나 병완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상순과 상길은 정규상과 규혁이 지어준 첩약을 달여 계속 할아버지께 대접하였다.
그 덕에 병완은 사흘만에 또다시 겨우 눈을 떴다. 그는 사위를 두리번거리었다.
“할아버지,”
병완은 상순과 상길의 손에 손을 얹고 간신히 물었다.
“성, 성칠은 어디 있니?”
“예? 큰아버지는 조선에서 희생됐습니다.”
상길의 말에 병완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드디어 병완은 숨을 길게 톺아 올리더니 후 내쉬면서 천천히 숨을 거두었다.
“할아버지!”
“할아버님!”
상길과 상순이 할아버지 두 손을 잡고 대성통곡 쳤다.
“노할아버님!”
온 집 식구들은 눈물의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도 조상의 뼈가 묻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건만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타향에서 병완은 한을 품은 채 영영 두 눈을 감았다.
바깥에서 초겨울 바람에 앙상하게 마른 버드나무 가지들이 몸부림치고 까마귀 두 마리가 원통해 떨고 있는 비술나무 가지에 앉아 꽁지를 들썩이며 “까욱”, “까욱” 하고 처량하게 울어댔다.
상길은 할아버지 흰 적삼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복!” “복!” “복!” 하고 처량하게 할아버지 혼을 불렀다.
그러나 초겨울 바람을 타고 날아난 할아버지 혼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였다. 육신은 타향에 있어도 혼이나마 고향 명천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으리라.
온 집 식구들은 상모를 쓰고 베옷을 입고 조상객들을 맞이하였다. 석철과 석은 형제를 비롯한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이 윗방 앞에서 큰절을 세 번씩 올리었다.
“형님, 이게 웬일이요? 우린 함께 농사를 잘 지어가지구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하지 않았소? 아이고, 형님~”
석철의 말에 상순과 기준은 구슬픈 곡소리를 하였다.
뒤이어 마을사람들이 하나, 둘 조상하러 찾아왔다. 평소에 웃새집 병완 영감네 신세를 진 사람들이 투쟁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왔다.
상순은 덕팔의 손을 굳게 잡고 “장례에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였다.
사흘 후 마을 사람들은 병완을 모신 상여를 메고 천지꽃 산중턱으로 올라 갔다. 그들은 반란 파들의 위협도 무릅쓰고 장례대오를 뒤따랐다. 장충국과 조덕산도 장례에 왔다.
곡성과 함께 자손들은 할아버지를 할머니의 묘지에 피눈물과 함께 합장하였다.
병완의 후노친은 진작 리성희의 묘지와 산골짜기 하나를 사이 두고 뒷산에 썼던 것이다. 본댁과 후처를 한데 산소를 쓰면 구천에서도 서로 싸운다는 풍속에 의해 그리 된 것이었다.
함흥촌 서쪽 천지꽃산 중턱 산비탈에, 마른 개암나무가지가 몸부림치는 황야에 커다란 묘지 하나가 쓸쓸히 누워 있었다. 그 묘지 속에는 고향을 지키려고 목숨을 내걸고 싸우던 병완이, 숨을 거두기 전까지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 차마 눈을 감지 못하던 리성희 량주가 쓸쓸히 누워 계시었다.
모두들 제주를 붓고 장례가 끝났다. 그러나 상순과 상길은 조부모의 묘지를 끌어안고 대성통곡 쳤다.
상길이 대성통곡을 쳤다.
“할아버님! 할머님! 이게 웬 일입둥?”
상순도 할아버지의 묘를 끌어안고 엎디어 어루만지면서 대성통곡을 쳤다.
“할아버님, 할머님! 조부모님들에게 효성을 다하지 못한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옵소서. 이 추운 겨울에 입을 거 제대로 입히지 못 하고 잡수실 거 제대로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불효자손들을 용서하십시오. 어째 우리를 두고 홀로 가십니까?”
      자손들은 모두 묘지 앞에 꿇어앉아 대성통곡을 치었다. 애절한 울음소리는 눈이 풀풀 흩날리는 황야에 처량하게 울려 퍼지었다. 산소 남쪽의 백양나무 가지에서 까마귀가 까욱까욱 스산하게 울고 있었다.
고향을 그렇게도 사랑하던 병완이,  조상들의 산소가 계시는 고향을 그렇게도 사무치게 그리던 조선의 한 효자가, 고향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던 한 용사가 노친과 함께 타향의 황야에 영영 묻히었다.
아, 태줄을 묻은 고향이여, 희망과 사랑을 묻어 두고 조상들의 산소를 모셔둔 고향이여, 사망하면서도 고향이 그리워 눈을 감지 못한 이 고독한 영령들을 위로해 주시라. 육신은 죽었어도 혼이라도 고향 명천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으리라.






















                    제27장 암야
     
                    1.비밀사형

먹장구름이 대지를 짓누르면서 감도는 깜깜한 밤이었다. 달도 별도 찾아 볼 수 없는 암야였다.
지하감방 구석구석까지 공포의 어둠이 서리서리 도사리고 있었다. 억울한 모자를 쓰고 갇힌 노간부들은 지하감방에서 끌려나가 가혹한 고문을 당하다가도 어디엔가 끌려가면 종적을 감추고 말 때도 있었다.
갑자기 철창 밖에 반디 불 같은 남포등 불빛이 다가왔다.
천정에 개구멍만큼 난 철문이 드르릉 열리더니 두 자가 뚜벅뚜벅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희미한 남포등 불빛에 그자들의 군복 팔에 뻘건 완장을 두른 것이 눈에 뜨이었다.
“박영발! 나왓!”
“예.”
박영발은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또 무슨 고문을 들이 댈지 몰라 머리끼 곤두섰다.
고문실에 나가자마자 몽둥이찜질부터 들이대며 고문했다.
“이 놈! 로실히 말해! 반혁명 폭란 때 누가 구락부에 불을 질렀어?”
“난 모르오.”
“아니, 이 자식, 누구 앞이라고. 이 분은 모원신, 아, 아니, 이씨 지도자 김 통역이야, 이분이 한마디만 하면 네 놈은 목이 썩둑 날아날 줄 알아라.”
옆에 선 놈이 퉁퉁한 자를 춰 올렸다.
이씨의 통역이라고 하는 퉁퉁한 김용만은 남포등을 들어다 영발의 코앞에 들이대고 이발을 사려 물더니 물었다.
“구락부에 불을 지른 사건을 이실직고하지 못해?”
“모르오!”
찰싹!
영발은 귀 쌈이 얼얼하게 한대 맞았다.
“말해! 누가 불을 질렀어?!”
“말해도 너희들이 믿지 않을 걸.”
“말해! 누가 불을 질렀어?!”
악에 받친 그는 맞고함을 쳤다.
“반란파들이 불을 질렀다. 왜 우리한테 들씌우는 거야?”
그러자 김 씨는 돼지처럼 살이 진 상판대기에 흉악한 몰골을 지었다.
“정말 죽고 싶으냐? 너희들 두목들도 다 탄백했다. 한영수랑 김진욱이랑 다 불었어. 그 사람들은 로실히 탄백하고 발편잠을 잔다. 집에 가서 편안히 식구들도 만나고 편안히 살고 싶지 않니? 아니면 계속 지하 감방에서 고문을 당하겠는가?”
김용만은 돼지 대가리를 홱 젖히더니 뒤에 선 졸개들에게 손시늉 했다.
졸개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형틀에 영발의 두 팔을 달아맸다. 졸개들은 마치 모래주머니나 치듯이 영발의 몸에 대고 사정없이 주먹질을 해댔다.
“억, 억.”
영발은 졸개들의 주먹에 배를 얻어맞으면서 비명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졸개들의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졸개들은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몽둥이로 영발의 머리를 탁 내리쳤다.
“앗!”
영발은 끝내 비명소리와 함께 까무러치고 말았다.
졸개들이 영발의 낯에 찬 물을 한 대야 퍼 쳤다. 그러자 영발은 천천히 피 흐르는 머리를 들었다.
“말해! 누가 불을 질렀어?!”
허나 영발은 입에 빗장을 지른 채 물이 줄줄 흐르는 눈으로 맥없이 김씨를 쏘아볼 뿐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김용만은 이발을 앙물고 영발의 길쭉한 턱을 쳐들더니 눈깔을 부라리면서 을러멨다.
“이 놈이 정말 목이 날아나야 불겠니?!”
뜻밖에 김용만은 어조를 부드럽게 바꾸면서 물었다.
“누가 불을 지른 것만 불면 넌 자유다. 병원에 돌아가 계속 서기를 하면서 고운 간호사들이랑 얼려서 데리고 살아도 된다.”
김용만은 고문 방법을 바꾸었다.
“듣자니 네 놈은 서기를 하면서 내과 간호사장 박윤희를 간음했다더구나. 옳지?”
영발은 머리를 숙이었다.
“빨리 탄백하고 윤희한테 가게나.”
김용만은 꿈지럭거리는 영발을 보고 만족한 웃음을 웃었다.
“그 고운 노처녀를 두고 저 세상으로 가긴 싫지?”
영발은 대뜸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래, 고운 간호사들을 수태 두고 이 세상을 떠나긴 싫은 거지. 명지한 선택을 하라고.”
김용만은 퉁퉁한 낯을 영발의 얼굴에 닿을 정도로 들이대며 물었다.
“말해, 누가 불을 질렀어? 한영수? 김진욱? 아니면 너냐?!”
“난 ‘항대’의 먹을 쌀과 기름을 책임졌을 뿐이야!”
“이 놈이, 이게! 네 놈이 채를 하라고 들여보낸 기름을 치고 불을 달았지!?”
“어느 얼빠진 놈이 자기들이 숨은 구락부에 불을 지르겠는가?”
“반란파 조직에 죄를 들씌우고 네 놈들이 반혁명 폭란을 일으킬 도화선에 불을 지르려는 게 아닌가? 진상을 모르는 조선족 군중들에게 홍색이 악독하게 네놈들을 불태워 죽이자고 불을 질렀다는 여론을 조성하려는게 아니야?! 홍색이 민심을 잃게 만들고 네놈들이 반혁명폭란을 일으키려는게…”
“퉤!”
영발은 김씨에게 침을 퉥 뱉었다.
“이 놈 새끼! 매우 쳐라!”
김용만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졸개들은 몽둥이와 쇠파이프로 영발을 육장 버러지 되게 때렸다.
그런데 영발은 몽둥이찜질을 당할 때 이상하게 덜 아픈 감이 들었다.
후에 알고 보니 몽둥이를 날린 사람은 강운룡이었다. 강운룡은 교통정보과에서 근무하다가 형사정찰과에 전근해 왔던 것이다.
강운룡은 마음속에 민족심이 있었기에 조선족 노간부 정성해 서기를 보호하려고 똘똘 뭉쳐 싸우다가 체포된 한영수나 김진욱, 박영발을 동정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몽둥이로 칠 때면 솜방망이로 치듯이 슬쩍슬쩍 치는 척했을 뿐이었다.
허나 한 졸개의 몽둥이질에만도 영발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김용만은 졸개들에게 명령했다.
“끌어내가! 저 놈을 오후에 모아산에 끌어내다가 총살해버려!” 
영발은 졸개들에게 질질 끌리어 지하 감방에 들어갔다.
한참 후에 영발은 신음소리를 내더니 점차 정신을 차렸다. 눈을 슬며시 떠보니 깜깜한 감방 안은 어디가 어딘지 알아 볼 수 없었고 축축한 시멘트 땅바닥이 온 몸을 차갑게 지졌다.
영발은 홍색의 무리들이 구락부를 불태우고 점령한 뒤 조직을 따라 의학원 사무 청사에 철거했다. 그 곳도 포위되고 점령당하게 되자 그는 자살하자고 의학원 사무 청사 2층 지붕에서 뛰어내렸었다. 허나 질긴 것이 사람의 생명이었다. 그 높은 2층 지붕에서 뛰어내렸는데 두 발이 진흙탕에 푹 빠져 들어가면서도 죽지 못하고 까무러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까지 끌리어 와 지독한 심문을 받게 됐던 것이다.
(한영수나 김진욱은 절대 승인하지 않았을게다. 그들이 승인했으면 나를 이다지도 심문하겠는가?)
저쪽에서 매질 소리로 고함소리로 비명소리로 지하감방이 처참하고 살풍경이었다.
한참 후 저쪽에서 남포등 불빛이 밝아오더니 지하감방 철문이 드르릉 열리었다. 졸개들이 누군가를 끌어다 들이뿌리치고 가버렸다. 감방은 또다시 공포에 찬 어둠으로 꽉 메웠다.
깜깜한 감방에는 간간히 신음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졸개들이 멀리 간 것을 확인한 영발은 어둠을 헤집고 겨우 기어가 쓰러진 사람을 흔들었다.
“진욱이요? 영수요?”
신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몸과 얼굴을 만져보고 키가 작은 것을 보고 한영수인 것 같았다. 허나 인차 부인했다. 진욱도 한영수보다 크지만 그도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에야 쓰러진 사람이 입을 쩝쩝 다시면서  숨 넘어가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물을…” 
그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영발은 대뜸 한영수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영수는 YJ시 당위 판공실 주임이었고 정성해 서기를 보호하는 군중단체에서 책임자였다.
“영수, 영수!”
“누구요? 진욱이오? 영발이오?”
“영발.”
“오, 살아 있구먼.”
“죽자고 층집에서 뛰어내렸는데 죽지 못하고 살았소.”
“죽기보다 못하오. 오후에 우리를 총살하겠다 했소. 사상 준비를 했소?”
“양?”
영발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인차 진정했다.
“차라리 죽으면 더 좋을 거 같소.”
“정성해 서기를 구하지 못한 바에야 죽는 게 낫지. 여기서 고문당할게 있소? 나도 반란 파들에게 손을 들고 투항해 나오는 게 싫어서 자네를 따라 2층 사무 청사에서 뛰어내렸네. 그런데 엎어져서 갈비뼈만 끊어지고 죽지 못했네. 진욱인 내 앞에서 손을 들고 나가는 척 하다가 문을 나가자마자 도망쳤소. 헌데 반란파들한테 붙잡혀 몽둥이에 맞아 여기까지 질질 끌려 왔다오. 쯧쯧쯧.”
감방 안에서 죽음을 앞둔 두 사람이 두려움 없이 비장한 대화를 나누었다.
“세상이 어떻게 돼 이렇게 됐소? 반란파들은 한족간부 전인영 부서기랑 요흔이랑 배극이랑 정성해 동지를 끝까지 보호했다고 타도한다오. 그분들도 이 지하감방에 갇혀 고문당하다오.”
영발의 말에 한영수도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전인영 부서기는 참 좋은 한족간부지. 그는 정성해 등 숱한 조선족간부들을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단결을 위해 애썼소. 그의 아내는 조선족인데다가 며느리 감도 조선족을 골라두었다오.”
“그러니 반란파들이 민족반역자라면서 타도하자고 혈안이 돼 미쳐 날뛰지.”
“그러나 저러나 군 분구 조모 동지가 정성해 동지를 보호해 안전하게 북경으로 전이시켰기에 다행이오.”
“가족들은 어찌 한다오?”
“그게 문제요. 허나 김영순 동지랑 애들도 밤에 빼서 자동차에 실어 의란으로 해서 안도 역에까지 실어갔다오. 거기서 기차에 앉혀 북경으로 빼 보냈다오.”
“그럼 됐소. 가족들까지 무사하면 됐소.”
“헌데 정성해 서기 안전문제가 큰 걱정이오.”
영발은 한영수의 귀가에 대고 귀속 말을 했다.
“소리를 낮춰 말하오. 저 놈들이 꼭 우리 말을 염탐할 거오.”
“알았소. 허나 오후면 죽게 됐는데 무서울게 뭐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면 어쩌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그들은 소리를 낮추어 한참이나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후 지하 감방 복도가 조금 훤해지더니 철문이 드르릉 열리는 소리가 들리었다.
한영수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벽을 붙잡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저승사자가 오는구먼.”
그러자 영발은 따라 일어서더니 어둠컴컴한 지하 감방에서 자못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한뉘 혁명을 해온 우리가 여기서 반란파들에게 죽을 줄은 몰랐소.”
“북소리 둥둥 저승사자 갈 길을 재촉하는구나.”
영발은 발을 탕 구르면서 화를 발끈 냈다.
“아니, 형님! 형님은 아직 시나 읊을 기분이 있소?”
“허허허, 혁명자들은 죽는 것을 예사로운 일로 여기네.”
허나 영발은 계속 두덜거렸다.
이때 감방 문이 드르릉 열리더니 군복을 입고 뻘건 완장을 낀 자들이 대여섯이 남포등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그 놈들은 다짜고짜로 한영수와 영발의 두 팔을 잡아끌고 나갔다.
영발은 끌려 나가면서도 소리를 질렀다.
“이 놈들아, 우릴 어디로 끌고 가는가?!”
“비밀사형이다!”
“잔말 말고 걸엇!”
햇볕을 오래 동안 보지 못한 그들은 지하 감방에서 땅 위로 올라갔다. 순간 눈이 시려 어디가 어딘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참 후에야 실눈을 짓고 여기저기 두루 알아 볼 수 있었다. 지상의 저쪽 감방에서도 또 누군가 끌려 나왔다. 영발이가 보니 박윤희었다.
“윤희!”
“박 서기!”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발에 뿌리 내린 듯이 우뚝 멈춰 섰다.
“걸어! 이 년 놈들아!”
반란파 졸개들은 총 박죽으로 그들의 잔등을 떠밀고 두 팔을 잡아 끌어내갔다.
박영발은 끌려 나가면서도 고함을 멈추지 않았다.
“윤희, 미안하오!”
“네 놈들이 저 불쌍한 처녀애를 죽일게 뭐냐?! 죽이겠으면 나 하나만 죽일 거지. 우리가 무슨 죄 있느냐? 억울한 모자를 쓰고 타도되는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을 보호했을 뿐이다. 네놈들이야 말로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간부를 잡는 죄인들이다. 살인악마들이다. 이제 제 명에 죽지 못할 거다!”
“이 놈 새끼, 썩어질 때까지 아가릴 벌릴 테야?!”
반란파들은 박영발과 한영수의 입과 눈을 검은 천으로 동여매고도 모자라 반창고를 몇 겹으로 마구 감아 놓았다. 한영수와 박영발은 입이 있어도 소리도 치지 못하고 끙끙 벙어리 소리를 내면서 자동차 운전실에 떠밀리어 올라갔다.
자동차 운전실 차창에는 검은 보를 쳐놓아 바깥을 볼 수 없었다.
자동차는 시내를 벗어나 한참 달리더니 산으로 올라가는지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드디어 덜커덕덜커덕 자동차가 몹시 들추더니 엔진이 뚝 꺼지면서 멈춰서는 것이었다.
“내려!”
자동차에서 그들을 끌어내리자 눈과 입을 싸매 동였던 수건을 풀었다.
그들이 둘러보니 소나무 숲이 우거진 모아산으로 올라가는 산비탈 중턱이었다. 여기는 이전부터 비밀리에 사형을 집행해온 비밀사형장이나 다름없었다.
반란파 우두머리 김용만이란 자가 찌프에서 내려와 피둥피둥 살진 몸뚱이를 앞으로 움직여왔다.
그 자는 허리에 찬 권총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이제래도 말해라! 너희들 두목 누구인가? 너희들이 구락부에 불을 질렀고 반혁명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을 승인만 하면 살려주겠다.”
한영수는 앞으로 나서면서 떳떳이 말했다.
“내만 죽여라! 난 정성해 서기를 보호한 군중단체의 책임자다! 이 박영발이나 윤희는 상관없다!”
“허, 그 놈이 죽음 앞에서까지도 꽤나 책임자답구나. 악질반동분자!”
“우리 공산당원들은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 죽일 테면 어서 죽여라!”
김용만은 한 발자국 다가서면서 가슴을 쭉 내밀고 떳떳이 서서 자기를 쏘아보는 한영수를 주먹으로 떠밀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 놈들이 불을 지르고 반혁명 폭란을 일으켰지?”
“아니다. 네놈들이야 말로 반혁명 폭동을 일으킨 놈들이다. 네 놈들은 할빈에서 온 이 씨 놈의 충동질을 받고 군중들에게 총질하면서 억울한 간부들을 붙잡아 고문하고 억울한 모자를 씌워 타도하려고 했다. 네 놈들이야 말로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뒤엎으려고 반혁명폭동을 일으키고 미쳐 날뛴 폭군이다. 반혁명 반란파 놈들이다. 총살 맞은 놈들은 바로 네 놈들이다!”
“이 놈을 끌어내라!”
성이 꼭뒤까지 치민 김용만은 낯이 지지벌개 나더니 돼지 멱따는 소리로 고함쳤다.
졸개 이일룡 등이 한영수를 미리 파놓은 구덩이 앞으로 끌고 갔다. 옆에 보니 아직도 구덩이가 여럿이 있었고 저쪽에는 주검을 갓 파묻었는지 자그마한 애기 묘지 같은 것이 여러개 있었다.
반란 파들이 한영수를 무릎을 꿀리려고 하자 한영수는 꿋꿋이 서서 뻗치었다.
“난 아무 죄도 없는 공산당원이다. 왜서 네놈들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단 말이냐?”
“잠간만!”
김용만은 박영발과 박윤희를 돌아보고 음흉하게 웃었다. 그 살진 낯에 발린 웃음 속에는 살인마의 살기가 가득했다.
“네놈들은 아주 바람난 연놈들이라면서? 헤헤헤. 비록 태어난 날은 하루가 아니지만 바람둥이 짝과 함께 죽어서 기분 좋겠구나. 허허허.”
김용만은 다가와 박윤희의 피로 얼룩진 턱을 쳐들고 물었다.
“네 년은 코신부대에 들어가서 자갈을 날라다 항대에 섬겨줘 우리 혁명반란파들을 치게 했다지?”
박윤희는 가슴을 쭉 내밀고 떳떳이 대답했다.
“그랬다. 네 놈들을 더 족치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이 한일뿐이다.”
김용만은 윤희의 귀 쌈을 찰싹 갈겼다.
“이년, 죽게 됐는데도 개소리냐?”
그자는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코신부대 두목 누구야?!”
“말해!”
일룡이랑 졸개들이 잡아먹으려고 덮쳐드는 승냥이무리처럼 고아댔다.
“내다! 어서 죽여라!”
윤희가 굴하지 않자 용만은 슬쩍 전술을 바꿨다.
“넌 새파란 나이에 이 쉬 빠진 자들과 함께 죽을 작정이냐? 나이 아깝다. 아까워.”
그 자는 윤희의 잔등을 매만지면서 지껄였다.
“넌 영발보다 더 좋은 총각한테 시집가서 애기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느냐?”
“이 더러운 세상을 보기도 싫다. 어서 죽여라!”
작달막한 일룡은 실눈으로 윤희의 높은 젖가슴을 노려보면서 지껄였다.
“너무 아깝지. 저렇게 새파란 노처녀를, 헤헤헤.”
“악질반동분자들은 살려둘 수 없다!”
용만은 이를 악물면서 “윤희를 끌어가라!”라고 고함쳤다.
졸개들이 우르르 덮쳐들어 윤희를 결박지운 채로 밀고 닥치면서 구덩이 앞에 끌고 갔다. 일룡이란 자는 윤희를 밀고 가는 척 하면서 손으로 젖가슴을 스리슬쩍 만져보았다.
“퉤!”
윤희는 일룡에게 침을 뱉었다.
“더러운 놈새끼!”
일룡은 낯의 침을 쓱 닦으면서 윤희의 얼굴을 골로 떠받아 코피를 터지어 놓았다.
윤희는 코피 흐르는 얼굴을 들어 일룡을 쏘아보았다.
이쪽에서 용만은 영발에게 족따졌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 놈들이 구락부에 불을 지르고 반혁명폭란을 일으켰지? 두목은 누구냐?”
“죽어도 그 말이다. 불은 반혁명반란 파 네 놈들이 질렀다. 혁명정권을 보위하는 군중조직의 총책임자는 내다. 어서 죽여라!”
김용만은 악이 치밀어 이를 악물더니 손을 홱 휘저으면서 고함쳤다.
“이 놈들을 몽땅 총살해라!”
박영발도 구덩이 앞에 끌리어갔다.
한영수는 구덩이 앞에 선 영발과 윤희를 보고 말했다.
“우린 사전에 준비한대로 하기요.”
그러자 박영발도 비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다만 혁명지도자들을 보호하지 못한 게 한이오.”
윤희도 쉰 목소리로 외쳤다.
“반란 파들이 총살당하는 날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일찍이 죽는 것이 한일뿐이다!”
그러자 김용만은 유들유들한 살진 네모낯짝에 살기찬 웃음을 게바르며 찌껄이었다.
"어째 계속 박영발과 통간하지 못하는 게 한이라고 하지 않니? 퉤! 더러운 연놈들.” 
뒤이어 그자는 이발로 입술을 사 물더니 오른 손을 쳐들고 돼지 멱따는 고함을 질렀다.
“이 놈들을 당장 총살해."
뒤이어 그는 명령을 내렸다.
"사격준비!”
“잠간!”
뜻밖에 박영발이 고함쳤다.
“뭐야?”
김용만이 벌벌 떠는 박영발한테 다가갔다.
박영발은 한영수를 흘끔 훔쳐보더니 용만의 귀에 입을 가져가더니 나직이 쑹얼거렸다.
“우리 두목은 저 한영수입니다. 난 졸개일뿐입니다...”
“오- 그래? 좋아. 진작 고발할게지.”
김용만은 퉁퉁한 낯바닥에 음흉한 몰골을 드러냈다.
“박영발은 살려준다. 나머지 놈들은 몽땅 총살이다.”
한영수는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때 이구동성으로 구호소리가 울렸다.
“공산당 만세!”
“모주석 만세!”
한영수와 윤희는 구호를 불렀다.
땅! 땅!
총소리와 함께 한영수와 윤희는 구덩이에 채워 굴러 떨어졌다.
허나 한참 후 한영수는 자기가 죽지 않고 의식이 있는 것을 느꼈다. 머리를 매만져보아도 성한대로 있었다.
영문을 모르고 죽은 척 하고 있을 때다.
“이 놈들아, 죽은 척 하지 말고 기어 나와!”
일룡이란 자가 고함치면서 구덩이 안에 자갈을 쥐어 뿌렸다.
한영수는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면서 반란파 두목 김용만에게 물었다.
“왜 죽이지 않고 또 시달리게 하는 거야?”
그러자 용만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네 놈들을 그리 쉽게 죽게 할 거 같으냐?”
일룡이란 자는 “허허허.” 웃더니 주둥이를 너펄거렸다.
“‘공산당 만세!’ ‘모주석 만세!’를 부르는 자들을 어떻게 총살하니? 그럼 우린 국민당이 되래?”
그들은 다시 한영수와 영발 그리고 윤희의 입과 눈을 수건으로 꽁꽁 싸맨 후 자동차에 싣고 돌아와 다시 지하 어둠 컴컴한 감방에 처넣었다.

                  2. 신음하는 꽃송이들
어둠컴컴한 감방 철문이 드르릉 열리더니 남포등이 쑥 들어오면서 이일룡이란 자가 윤희의 감방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룡이 혼자 들어왔다.
순간 윤희는 두 팔로 몸을 감싸 안고 옹송그리면서 감방 구석에서 바들바들 떨었다.
“히히히, 아까운 미인이 누추한 감방에 갇혀 있다니?”
일룡은 남포등을 들고 음충스러운 눈길로 윤희의 풍만한 젖가슴을 노려보았다.
“윤희, 나와.”
윤희가 바들바들 떨면서 감방 구석에 앉아 있자 일룡은 덮쳐가 마구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윤희! 윤희! 무슨 일이 있소?”
박영발이 소리쳤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요!”
허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작달막한 일룡은 가물에 실돌피 같았지만 그래도 사내인지라 굶고 지친 윤희는 당해낼 수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문설주와 벽모서리를 잡고 바둑거려도 용빼는 수가 없이 감방 당직실로 끌려갔다.
당직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원래 반란 파들은 술을 마시러 가고 당직으로 일룡을 남겨 두었던 것이다.
일룡의 징글스런 눈길을 보는 순간 윤희는 겁에 질려 와들와들 떨리면서 두 다리의 맥이 쪽 빠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겁내지 말라.”
일룡은 일단 먼저 덜덜 떠는 윤희를 구슬리면서 다가섰다.
“윤희는 청년당원이라면서. 투쟁정신만은 좋아. 조선족 여성들로 코신부대를 무어 조선족 노간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보황파들에게 자갈을 주어 날라다 주었다? 허허, 그 돌멩이에 우리 홍색의 수많은 반란 파들이 머리 터졌단 말이야. 참 아까운 나이에 어쩜 한영수나 영발이 같은 보황파들의 더러운 물을 먹었어?”
허나 윤희는 쓴 외 보듯 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 년아, 죽고 싶으냐?”
갑자기 일룡은 당장 잡아먹을 상을 지으면서 고함쳤다.
“네년의 목숨은 내 손에 달려 있어! 알만해? 고분고분 묻는 말을 대답해. 누가 보황파 우두머리냐?”
“모른다!”
윤희는 이를 악물로 고함쳤다.
그러자 일룡은 음흉한 몰골을 드러냈다.
“이 년이 이게, 특수고문을 당해 봐야 알겠니?”
그 자는 바 줄로 윤희 두 손을 뒤로 꽁꽁 묶어 까딱 할 수 없이 책상 다리에 끌어매놓았다. 뒤이어 윤희의 높은 젖가슴에 손을 쓱 넣어 슬슬 매만졌다.
윤희는 구렁이가 가슴에서 기는 것 같아 신음소리를 냈다. 그녀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침을 일룡의 낯에 퉤 뱉었다.
“이년이, 이게. 말해! 누가 우두머리냐? 영발이 고발했다. 두목은 한영수지?”
“더러운 자식, 네가 다 대학생이야? 대학공부를 밑구멍으로 했니?”
“뭐라고? 이년이 어디 죽을 맛을 봐라!”
일룡은 윤희의 웃옷을 홀딱 벗겼다. 순간 우유 빛 젖가슴이 훌렁 드러났다. 그녀가 몸부림칠수록 야들야들한 젖무덤이 두부모처럼 하들거렸다.
짐승 같은 야욕이 발정한 일룡은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윤희에게 와닥닥 덮쳐들었다. 그 자는 윤희의 풍만한 젖무덤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마구 만지다가 침이 질질 흐르는 뻘건 혀 바닥으로 마구 감빨아댔다.
“이 짐승 같은 놈아, 아, 아, 아!”
윤희가 욕설을 퍼부으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신음소리를 낼수록 짐승 같은 일룡의 더러운 손이 더 거칠게 젖가슴을 쓰다듬고 만지고 틀어쥐어 흔들고 빨고 핥아댔다.
한참 더러운 짓을 하던 일룡은 징글스럽게 윤희를 쏘아보며 물었다.
“말하겠니? 말하지 않겠니?”
“퉤!”
일룡은 낯에 묻은 건 가래를 닦으면서 지껄이었다.
“이 년이, 환장했구나. 어디 언제까지 뻗치는가 보자!”
그자는 사무 상 앞에 다가가더니 서랍에서 가는 노끈을 꺼내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뒤이어 노끈으로 윤희의 앵두알 같이 빨간 젖꼭지를 동여맸다.
“말해! 누가 우두머리야?”
“…”
윤희는 응대도 하지 않았다.
일룡은 이발을 악물고 노끈을 쥐어 당기었다.
“아가!”
윤희는 젖꼭지가 아파 비명을 질렀다.
“말해!”
허나 윤희의 입에서는 욕설만 터져 나왔다.
“짐승보다 못한 놈, 언젠가는 네놈을 심판할 날이 올 거다.”
일룡은 악에 받쳐 노끈을 꽉 당겼다. 그만 젖꼭지가 끊어지면서 빨간 피가 젖무덤으로 줄줄 흥건히 적셨다.
윤희는 너무 아파 신음소리를 냈다.
“말하겠니? 안 하겠니? 이 년이 정말 지독한 악질이구나!”
윤희는 머리를 천천히 들면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사이로 일룡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일룡은 그 무서운 눈길을 피하더니 권연을 붙여 물고 풀썩풀썩 피웠다. 연기가 감방 당직실에 서리서리 올라가면서 매캐한 냄새를 피웠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일룡은 윤희에게 다가오더니 담배를 길게 빨아댔다. 빠지직 소리와 함께 담뱃불이 새빨갛게 피어올랐다.
갑자기 그자는 담뱃불을 피가 줄줄 흐르는 윤희의 끊어진 젖꼭지에 빠지직 빠지직 지져댔다.
“아이고머니!”
윤희는 너무 따가워 비명을 지르면서 마구 몸을 배배 꼬았다.
“하하하.”
일룡은 짐승처럼 너털웃음을 웃어댔다.
“말해! 우두머리가 누구야?”
“내다. 내가 코신부대 책임자이다. 내가 조선족 여성들을 보고 네놈들을 족치라고 자갈을 날라다 주라고 시켰다! 네놈의 대갈통을 까부시지 못하고 잡힌 게 원수다! 원수!”
“이 년이 또 혼나봐야 주둥이를 열겠니?!”
한 쉼 쉬고 난 일룡은 또다시 야욕이 발작했다.
그자는 씩씩거리면서 윤희를 마구 끌어다가 허리를 굽혀 책상다리에 마구 매놓고 치마를 훌렁 벗겨 놓았다.
“뭘 하려는 거야?!”
일룡은 말 대신 괴춤을 까고 달려들었다.
윤희는 뒤로 달려드는 일룡의 사타구니를 뒤발길질을 했다.
“이 짐승 같은 놈아, 네 놈이 날벼락을 맞아 썩어지지 않는가 봐라!아, 악, 아이유…”
사무상 다리마저 삐꺼덕거렸다. 윤희의 날카로운 욕설과 죽어가는 비명소리가 당직실을 메웠다…
세상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위에서 정성해 등 조선족 노간부들을 보호하는 이른바 “보황파”라고 일컫는 군중단체들과 이른바 노간부들을 타도하려고 미쳐 날뛰던 “반란파”들은 이젠 싸우지 말고 대연합을 하라고 했다. 위의 지시에 따라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젠 변론이고 돌팔매질이고 때리고 마스는 투쟁은 끝났다.
허나 실상 반란파들은 감옥에 들어간 자들이 하나도 없었고 각급 기관의 요직을 차지했다. 할빈에서 온 반란파 두목 이씨의 통역을 하던 자는 노국장을 몰아내고 모모한 국장으로 승급해 권총을 차고 찌프에 앉아 개 잡은 포수처럼 싸다니면서 계속 노간부들을 못 살게 굴었다. 그리하여 노간부들은 그를 보기만 하면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었고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했다.
이일룡이란 자마저 미녀들이 꽃송이들처럼 방실거리는 시내 문화단위로 들어가 원래 과장을 반란해 몰아내고 과장자리를 차지했다. 일룡은 이쁜 무용수나 가수를 보기만 하면 새파란 새애기든 각시든 상관없이 젖가슴을 스리슬쩍 만져 봐야 시름 놓는 건달 습관이 있었다.
일룡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복도를 지나가다가 무용수인 용만의 처 해복과 정성해 서기 처남댁인 송선을 만났다.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오, 그래, 그래.”
일룡의 눈길은 대번에 생글방글 웃는 송선의 얼굴로부터 풍만한 젖가슴에 가 꽂혔다.
송선은 그 찔러버리는 눈길이 너무 아파 가슴에 뭐가 묻었는가고 내려다보았다.
저고리에 뭐가 묻은 것도 없었다.
일룡의 나쁜 습관을 아는 송선과 해복은 눈인사를 하고는 바쁜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해복은 자기 남편이 국장인데 감히 나하고야 어쩌지 않으려니 했다.
“왁!”
갑자기 일룡이 뒤에서 덮쳐와 해복과 송선을 와락 끌어안으면서 젖가슴을 만져놓았다.
“어마나!”
해복은 국장 남편을 믿고 일룡을 쏘아보았다.
허나 송선은 감히 일룡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팔을 치워버리고 저리로 가버렸다.
“건달 같은게. 과장이라는 게 뭡니까?”
해복이 불평을 토로하면서 눈을 흘기자 일룡은 씨물씨물 웃으면서 변명했다.
“어허, 국장 부인님, 미안하오. 불시에 그만, 헤헤헤.”
그때 복도에 다른 무용수들이 나오자 해복도 더 어쩌지 못하고 눈만 흘기며 헤어져 갔다.
이러루한 일은 수두룩했다.
허나 여성무용수들은 예술과 과장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하긴 과장을 건드리면 무대에 오를 수 없었던 것이다.
일룡은 과장 실에 가서 걸상에 앉아서도 금방 해복과 송선의 풍만한 젖가슴을 움켜쥐었을 때 가슴이 뭉클하고 높뛰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직도 손에는 야들야들한 해복과 송선의 젖가슴을 만지던 감각이 남아 있었다.
(아, 그 야들야들하고 뭉글뭉글한 젖통! 어쩜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처럼 그렇게 크고 야들야들할까!)
눈앞에서는 송선의 외씨처럼 걀쭉하고 우유처럼 하얗고 해맑은 송선의 얼굴과 풍만하고 야들야들한 젖가슴이 삼삼거렸다.
“오호호.”
순간 아래배로부터 거기가 찡해나면서 사타구니 두 새가 부풀어 올랐다.
“에이, 이걸 어쩌지? 해복은 국장 부인이니까. 안돼. 송선아, 네년은 타도대상인 정 서기 처남댁이니까. 내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해. 헤헤헤. 타도 맞은 정 서기는 처자들도 구하지 못하고 종적을 감췄는데 언제 처남댁을 구해?”
일룡은 더는 참을 수 없어 어떻게 하면 송선을 손아귀에 넣고 데리고 놀 것인가 궁리했다.
이윽고 일룡은 외까풀 눈을 치뜨더니 발딱 일어났다.
그는 무용실에 가서 한창 내복바람에 춤 연습을 하는 송선을 불렀다.
송선은 자기 다리로부터 젖가슴을 얼이 빠진 듯이 뚫어지게 노려보는 이 과장의 게슴츠레한 외까풀 눈을 피해 옷을 입으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과장 실로 오오. 조직담화를 할 일이 있소.”
숱한 무용수들의 앞인지라 일룡은 제법 점잖게 과장 틀을 차리면서 한 마디 던지고 무용실의 무용수들을 위엄이 있는 외까풀 눈으로 빙 둘러보더니 훌 나가버렸다.
과장 실에 돌아간 일룡은 거만스레 의자 등받이에 잔등을 대고 권연을 꺼내 풀썩풀썩 피웠다.
똑, 똑, 똑.
노크소리가 가볍게 들렸다.
“들어오오.”
문소리가 가볍게 나더니 송선이 머리를 숙인 채 조용히 들어섰다.
“여기 앉소.”
일룡은 송선의 붕긋한 젖가슴을 보는 순간 버릇처럼 당장 만지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허나 짐짓 그런 안속을 드러내지 않고 마른 침만 꼴깍 넘기면서 맞은편에 앉는 송선의 몸을 노려보았다.
“송선이, 동무는 ‘문화대혁명’의 동풍에 날려가고 싶소? 살고 싶소?”
“예?”
안속과는 달리 일룡은 단도직입적으로 위협부터 들이댔다.
“제가 뭘 잘 못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몰라서 묻소?”
“뭘 말인가요?”
“내 말해 줘야 알겠소?”
“…”
송선은 공포에 새파랗게 질린 눈길로 일룡의 얇은 입을 쳐다보았다.
“넌 반역자, 내부간첩이야!”
“?”
“네 년은 한간이며 민족우파이며 독립왕국을 세우려던 정성해 서기 처남댁이야!”
그제야 송선은 십중팔구는 눈치를 차렸다.
“정 서기 처남댁인데 무슨 죄가 있는가요?”
일룡은 의자에서 일어나 송선의 곁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이년! 어째 날마다 투쟁받고 싶으냐?”
그는 불시에 송선의 젖가슴을 만지려다가 송선이 살짝 피하는 바람에 헛탕을 치고 말았다.
“왜 이래요?”
송선은 일룡의 손을 뿌리치면서 문 쪽을 쳐다보며 나갔다.
“할 말이 없으면 무용연습하러 나가겠습니다.”
“흥! 더러운 년.”
일룡은 낯이 지지벌개지더니 이발을 부득부득 갈았다.
“네년이 그 문을 나서는 날이면 투쟁받아야 한다.”
그 말에 송선은 감히 문을 박차고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문고리를 쥐고 섬섬 거리었다.
“이제야 세상이 돌아가는 걸 알만 해?”
일룡은 송선에게 뒤로 다가가 와닥닥 끌어안으면서 젖가슴을 노리고 손을 뻗쳤다.
“이걸 놓으세요.”
송선은 몸부림치면서 일룡의 손을 뿌리쳤다.
허나 일룡의 손이 인차 구렁이처럼 송선의 젖가슴 속으로 기어들어가 꿈틀거리었다.
“이 년아, 내 말을 순순히 듣고 무대에 오르겠느냐? 아니면 날마다 거리를 돌면서 개패를 메고 숱한 사람들 앞에서 비행기를 타면서 투쟁 받겠니? 응?”
“이걸 놔라!”
찰싹!
송선은 일룡의 귀 쌈을 한대 갈겼다.
일룡은 이발을 악물었다.
“이년, 미쳤구나. 어디 투쟁 받아봐라!”
뜻밖에도 송선은 일룡을 콱 밀치면서 버럭 고함쳤다.
“개 같은 자식! 누구를 능욕하려는 거냐!”
일룡은 괜히 끓어오르는 욕정을 가까스로 눅잦히면서 문을 박차고 나가는 송선을 닭 쫓던 개처럼 쳐다보기만 했다.
그날 오후부터 투쟁대회가 시작됐다.
일룡은 김용만과 짜고 들어 송선을 군중들 앞에서 투쟁했다.
용만의 처 해복과 송선은 예술학교 동기 동창생이었다. 가난한 빈농 가정에서 태어난 해복은 예술학교를 졸업했지만 시내 문화단위에 남기 힘들었다. 그때 정성해 서기 처남댁 송선이 나서서 정서기에게 줄을 달아주었기에 해복은 송선과 함께 시내 문화단위에 남게 됐던 것이다.
허나 김용만은 일룡을 불러 말했다.
“이번 기회에 아예 송선이란 년의 예술생명을 잘라 버려야겠네.”
“예. 알았습니다. 국장 어른의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일룡은 상전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년을 아주 그냥 정치상에서 대가리를 쳐들지 못하게 타도하고 무용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놔야죠. 그래야 국장님 사모님이 우리 단위에서 쥐락펴락 하지. 흐흐흐.”
김용만은 일룡의 정치민감성에 만족한 웃음을 짓더니 권총집을 매만지며 과장실을 나섰다.
일룡은 무용실에 숱한 책걸상을 쌓아놓았다. 책걸상 키가 천정에 닿을 지경이었다.
무용수들과 성악지도교사들 그리고 숱한 반란 파들이 모였다.
“반혁명 무용권위 김송선을 끌어내라!”
몇몇 반란 파들이 개패를 목에 건 송선의 두 팔을 뒤로 비틀어 끌고 나왔다.
일룡은 앞에 나가 송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어 흔들며 빈정거렸다.
“이년아, 어떠냐? 이런 날이 오리라고 몰랐지?”
허나 송선은 날카로운 눈길로 일룡을 쏘아보았다.
“누굴 감히 쏘아봐?”
일룡은 뒤로 주춤 물러서더니 손을 홱 휘두르며 천정이 날아나게 고함쳤다.
“이 년, 비행기를 타 보겠니?!”
그러자 숱한 반란파들이 송선을 숱한 책걸상을 쌓아 놓은 위로 올라가라고 핍박했다. 송선은 방법 없이 개패를 건채 책걸상 무지로 기여 올라갔다.
그가 천정에 머리 닿을 지경으로 올라가자 일룡은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세우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 반혁명예술권위야! 잘못이 뭔지 알만 한가?!”
그때 뜻밖에도 해복이 군중들 앞에 뛰어 나서더니 “반혁명예술권위 김송선을 타도하자!” 하고 외쳤다.
그러나 무용수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구호를 따라 부르지 않고 주먹을 들었다가 슬슬 내리웠다.
“모주석께서는 계급투쟁을 잊지 말자고 지시하셨습니다. 동무들, 이 치열한 계급투쟁 마당에 정치입장과 계급입장을 정확하게 수립해야 합니다!”
그제야 모두들 마지못해 주먹을 쳐들고 해복의 구호를 따라 부르네 마네 했다.
 “이년, 비행기 타봐라!” 
갑자기 일룡이 고함치더니 책상다리를 탁 걷어찼다.
꽈당!
요란한 소리와 함께 책걸상 무지가 넘어졌다. 그 위에 섰던 송선은 무용실 바닥에 무릎을 짓쪼며 꽈당 떨어졌다.
순간 송선의 머리와 팔굽, 무릎에서 빨간 피가 질벅하게 흘렀다. 다행히 송선이 무용수이기에 유연하게 떨어졌기에 덜 상한 셈이었다.
“히히히. 일어나!”
일룡은 겨우 기어 일어난 송선의 머리를 끌어 당겨 일으키면서 빈정거렸다.
“비행기 맛이 어때? 중국 속담에 권하는 술은 마시지 않고 벌주를 마신다더니. 헤헤헤.”
일룡과 해복이 사전에 사촉한대로 일부 무용수들은 정치표현이 나쁘다는 말을 들을까봐 앞다퉈 송선을 투쟁했다.
그때 송선은 이전에 투쟁을 받은 정성해 서기가 집에 돌아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중국 남방으로 가면 국연에 잔나비 대갈통을 까먹는 것이 최고 요리라고 했다. 그것도 산 잔나비를 쇠살창안에 가두고 면도칼로 빡빡 깎은 잔나비 대가리를 쇠살창 위에 고정시켜놓고 손님들이 망치로 대가리를 딱 까서 숟가락으로 뇌 즙을 파먹는다고 했다.
그리하여 벌써 취사원들이 잡을 잔나비를 고르러 잔나비 우리로 가기만 하면 잔나비들이 서로 죽을 까봐 눈을 판들거리면서 누가 죽을 차례인가고 둘러본다고 한다. 취사원이 한 잔나비를 손가락질만 하면 잔나비들이 욱 모여들어 그 잔나비를 붙잡아 마구 살창 밖으로 떠밀어 내보냈다. 취사원은 힘도 들이지 않고 그 잔나비를 붙잡아내 요리상에 올릴 수 있었다.
지금 자기를 투쟁하는 장면이 딱 그 숱한 잔나비들을 방불케 했다.
이튿날부터 용만 국장의 지시대로 일룡은 정치열성을 보이는 반란 파들을 지휘해 개패를 목에 건 해복에게 평소 무용복을 비롯한 숱한 값진 옷을 꽉 걷어 넣은 옷궤를 지워 거리로 끌고 다니면서 투쟁했다.
송선은 거리로 나가 반란파들에게 끌리어 절룩거리며 다니면서 꽹과리를 댕댕 치며 “반혁명예술권위 김송선을 타도하자!” 하고 구호를 부르면서 거리투쟁을 받아야만 했다.
“어우, 저 멋쟁이 무용권위 송선이 어쩜 저렇게 투쟁을 다 받소?”
“이전에 얼마나 잘난 척 했소.”
“그게 다 정 서기 처남댁이노라고 우쭐거린 게지.”
사람의 질투란 무서운 것이었다. 평소에 질투심으로 속이 꽤나 불편하던 일부 사람들은 송선이 투쟁을 받으니 깨고소해 했다.
지어 진상을 모르는 일부 군중들은 송선의 머리에 돌을 쥐어 뿌렸다. 송선의 머리에서는 뻘건 피가 줄줄 흘러 볼까지 적시었다. 피에 질벅하게 젖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드리워 예쁘던 무용수가 볼품없이 됐다.
그것도 모자라 용만은 일룡에게 지시해 정성해 서기 아내 김영희(김영순)도 끌어내 송선과 함께 개패를 걸고 옷궤를 메워 투쟁하게 했다.
이튿날부터 영희와 송선은 무거운 옷궤를 지고 개패를 건 채 꽹과리를 댕댕 치며 거리로 끌려 다니면서 처참하게 투쟁 받았다.
아름다운 무용수 송선의 예쁨은 오히려 변태적인 반란 파들에 의해 화를 불러왔다. 반란 파들의 사촉을 받은 자들은 질투하던 나머지 그 아름다운 꽃송이를 무참히 음해했다.
연변의 암흑에 찬 대시에서 아름다운 꽃송이들은 야수들에게 무참히 짓밟혀 신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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