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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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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95)
2018년 03월 27일 16시 09분  조회:108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7. 전염병

       명옥이 순자와 성숙을 데리고 집의 살구를 다 뜯어 장마당에 가져다 팔았는데도 신자의 입원치료비는 엄청 부족했다.
궁리 끝에 상순은 집의 검둥이를 팔기로 했다.
      덕돌은 검은 바탕에 흰 반점이 간 검둥이를 참말 귀여워했다.
      그가 학교를 갔다 올 때면 저 멀리에서부터 보고 꼬리를 흔들면서 뛰어와 반겨 맞곤 했다. 그 놈은 덕돌의 몸에 앞발을 쳐들고 매달리는가 하면 “끼깅” 하고 소리치면서 주둥이로 바지 가랭이를 들추면서 응석을 부리기도 했다.
덕돌이 고기를 잡으러 갈 때면 늘 앞에서 물도랑 옆의 숲에 코를 대고 씩씩 냄새를 맡으면서 달아다녔고 소 방목을 갈 때에도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곤 했다.
덕돌은 검둥이가 어찌나 귀여운지 손으로 대가리를 쓰다듬어주고 끌어안고 그 놈의 볼에 볼을 비비기도 했다. 지어 어떤 때에는 검둥이와 누룽지를 나눠 먹기도 하고 이불안에서 검둥이를 안고 자기까지도 하여 어머니의 욕을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하루, 아버지가 돈 19원을 받고 검둥이의 목에 올가미를 걸어 나무대기에 감아 개장사군에게 넘겨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때까지도 검둥이는 자기를 팔아먹는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검둥이야, 넌 팔려 가면 죽는다, 죽어. 저 개장사군이 너를 잡아먹자고 끌고 가련다.”
그러나 검둥이는 어안이 벙벙해 아버지를 주인이라고 믿고 올가미를 걸 때까지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겠는가.
“안 돼, 내 검둥이를 가져가지 못한다!”
덕돌은 고함치면서 끌려가는 검둥이를 끌어안고 발버둥질을 쳤다.
그러나 어머니는 덕돌을 마구 뜯어내 꽉 붙잡았다.
“얘야, 저 검둥이와 넷째누나 중에 누가 더 곱니?”
“당연히 넷째누나 더 곱지.”
“그럼 됐다. 저 검둥이를 팔아 넷째누나 병을 치료해 집으로 데려와야지. 이젠 그만 떼를 써라.”
그러나 덕돌은 계속 발버둥질을 치며 떼를 썼다.
“안 된다, 안 돼! 난 넷째누나와 검둥이 다 함께 살아야 해. 안 돼. 어~엉, 엉.”
그제야 뒤늦게 상서롭지 못한 것을 눈치 챈 검둥이는 올가미를 이발로 깨물어 끊으려고 애쓰면서 “끼깅” 하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검둥이는 왕왕 울부짖으면서 개장사군에게 덮쳐들려고 했다. 허나 목을 조인 올가미를 감은 나무대기가 길어 개장사군을 물 수 없었다.
그러자 검둥이는 덕돌에게 구원을 요구하는 애원에 찬 눈길을 보냈다.
“끼깅—”
검둥이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쳤다.
그러나 덕돌은 어머니에게 두 팔을 붙잡힌 채 발버둥질을 칠뿐 개장사군에게 끌려가면서 슬프게 울부짖는 검둥이를 구할 수 없었다.
덕돌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검둥이는 개장사군에게 끌려가면서 구원을 요구하는 애원에 찬 눈길을 보내며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따르던 검둥이를 구해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검둥이에게 미안했다. 마음이 미여지는듯이 죄송스러웠다.
      세상에 사노라면 검둥이처럼 주인에게 충성을 다 하던 자가 주인의 올가미에 걸려 팔려가거나 죽은 자가 수두룩하리라. 항전시기에도 그러했다.  자기가 살려고 형제와 겨레, 동지의 의리도 버리고 뒷잔등에 총을 놓은 자가 어디 한둘인가? 항일영웅 조상지도 반역자의 총에 뒷잔등을 맞고 쓰러졌다. 항일영웅 양정우도 반역자의 밀고로 일본 놈들에게 발각돼 장렬하게 싸우다가 희생되지 않았던가!
검둥이의 비극에서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는 속담의 철리를 뼈저리게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돌다리도 두드려보면서 건너라고 하였는가 보다.
      며칠 후에 덕돌이 집안에서 성욱과 함께 숙제공부를 할 때다.
“넷째누나 왔다.”
“뭐라고? 넷째누나 왔다고?”
덕돌과 성숙은 황급히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바깥에 나와 보니 넷째누나 신자가 아버지가 모는 수레에 앉아 내리지 않겠는가!
“누나!”
덕돌은 두 팔을 벌리고 수레 위에서 내려오는 넷째누나한테 뛰어갔다.
성숙도 “신자야! 살아났구나.” 하고 뛰어갔다.
덕돌은 신자에게 안긴 채 성숙을 보고 “막내누나는 어째 넷째누나를 보고 ‘응, 응’ 하니?” 하고 종알거렸다.
성숙은 어색하게 웃었다.
신자가 대신 대답했다.
“막내누나는 넷째누나보다 두 살 밖에 차나지 않는다. 괜찮다.”
“그래?”
애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상순과 명옥은 잠시나마 덩달아 웃음꽃을 피웠다.
홍자는 뒤늦게 돌아와 신자를 보고 기뻐 야단쳤다. 그래도 홍자는 이전처럼 헛웃음을 웃지 않았다. 형내와 자준 영감의 약을 좀 쓴데다가 마을에 내려온 정규상의 치료를 받아 많이 나았던 것이다.
마을에는 또 폐염이 무섭게 돌아가면서 전염됐다.
함흥촌에서 제일 먼저 흥수네 막내딸 미선이가 앓아누웠다. 정규상은 흥수가 미웠지만 그의 딸애를 알심 들여 치료했다.
춘실이 찾아와 울며불며 하자 정규상은 두 말을 하지 않고 함흥촌에 올라갔다.
그가 흥수네 집에 가서 미선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진찰해 보더니 깜짝 놀라했다.
“이거 큰 일 났구먼.”
흥수는 청진기를 거두는 정규상의 손을 잡고 황급히 물었다.
"무슨 급병에라도 걸렸시우?" 하고 
“폐염에 걸렸구먼. 조금만 치료를 늦추면 이제 피를 토하고 목숨도 잃을 수도 있소.”
정규상의 나직한 말에 흥수는 뒤로 쿵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춘실은 덴겁한 소리를 질렀다.
“아니, 폐염이라니?”
이윽고 정신을 차린 흥수는 정규상의 두 손을 꽉 잡고 애원했다.
“내 막내딸을 구해주시우. 양, 닭이라도. 아니, 필요하면 소라도 잡아주겠다니께.”
정규상은 그때라고 요구조건을 들이댔다.
“닭이나 소는 필요 없소. 난 밭머리에서 투쟁을 받는 게 생 질색이오.”
그러자 흥수는 머리를 조아렸다.
“근심하지 말라니께. 함흥촌의 투쟁대회야 대대 당 지부 선전위원인 내가 주도하지.”
정규상이 청진기를 되 꺼내면서 흥수를 슬쩍 곁눈질해보았다.
항상 물에 빠진 개처럼 조개턱을 쳐들고 다니던 흥수 같지 않았다. 조개턱을 떨어뜨리고 눈을 내리깐 채 풀이 죽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젠 상순 서기를 작작 괴롭히오. 우린 아버지 세대부터 각근한 세교요. 내 보건대 상순 서기와 그의 할아버지는 이 마을을 건설하려고 20년대 초부터 얼마나 고생했소. 지금 사원군중들을 배불리 먹고 살게 하려고 얼마나 속을 태우고 있소? 당신도 상순 서기가 입당시켰다고 들었소. 그런데 어찌 자기를 길러 준 은인과 그럴 수 있단 말이오?”
“잉(양), 알았시우. 말이 길면 구리다니께. 알아서 할 터이니까. 미선이만 살려달랑께(달라는데).”
“네깐 놈이 정치를 뭘 알아서 그래? 그리 정치를 잘 했으면 우파 모자를 쓰고 이런 시골에 쫓겨 내려 왔겠어?”
흥수는 속으로는 정규상을 욕면서도 겉으로는 수긍하는 척 했다.
“예. 부탁드리니까. 꼭 합심해 이 마을을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어 보오. 미선은 잘 치료해보지.”
정규상은 미선의 치료를 내걸고 묘한 정치 흥정을 끝냈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정규상이 왕진하면서 주사를 놓았더니 미선은 기침을 깇지도 않고 페병도 인차 나아져갔다.
그때부터 흥수의 태도는 좀 변하였다. 쌀 공작대가 찾아와 생산대 쌀을 더 걷어가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쌀독을 뒤지었다. 흥수는 쌀공작대 미워서 겨죽을 끓여 먹였지만 정규상이 오면 꼭꼭 밀가루를 얻어서 밀국수나 물만두를 빚어 대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흥수는 후에 마을 사람들이 정규상을 우파라고 깔보거나 투쟁하자면  이런 저런 구실을 대면서 반대해 나섰다.
그러자 정규상은 의사재간으로 흥수와 같은 정치마귀의 손아귀에서 숱한 억울한 간부들을 보호면서 어려운 정치시련을 이겨내려고 마음먹었다.
그는 상순의 방조를 받아 식당자리를 수리하고 구들을 놓은 후 이사해 나갔다. 그는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병완과 상순을 찾아와 의논하곤 했다.
정규상이 찾아와 온 마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다는 말을 하자 상순은 한참 궁리하더니 과단성 있게 결단을 내렸다.
“토성 안 대대 사무실 옆에 대대 위생 소를 앉히기요. 동생이 위생소 소장을 맡고 이번 폐염이란 전염병을 전승하기요.”
정규상은 기뻐하면서도 적이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상순이 피뜩 보니 그의 얼굴에 검은 그늘이 비껴 있지 않겠는가.
“어째? 뭐 근심되는 일 있소?”
상순은 눈을 치켜뜨면서 물었다.
그러자 정규상은 근심을 털어놓았다.
“ 위생소 소장을 우파 맡아도 되겠소? 김서기 말을 듣지 않겠소? 괜히 흥수랑 또 뭐라고 형님을 헐뜯을까 봐 그러오.”
상순은 개의치 않았다.
“괜찮소. 대담히 해보오. 동생은 우파 아니오. 내가 있는 한 근심하지 마오. 마을에 도는 전염병을 없애 버리지 못하면 빈농들의 생명이 위험하오. 황차 정 선생은 미선의 병까지 치료했으니 괜찮을 거요.”
“그럼 손을 걷고 전염병을 치료해 보겠소.”
가을걷이가 끝나고 초겨울에 접어들면서 마을 길바닥에 널린 옥수수 대와 지푸라기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리었다.
그런데 어느 하루 성숙이 온 몸에 열이 나면서 기침을 쿨룩쿨룩 깇었다.
“아니, 얘가 마가을비가 내리는 날에 신자 치료비를 만들자고 마른 도토리랑 솔씨랑 이고 장마당으로 다니다가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가?”
명옥은 당황해 구들에 쓰러지다 싶게 누워 있는 성숙을 안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상순은 성숙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안 되겠소. 열이 후끈후끈한 게 큰일 나겠다.”
뒤이어 명옥을 보고 함지에 찬물을 퍼오라고 했다.
“뭘 하자고?”
“얘가 몸에 열이 나는데 찬 물로 씻어줘야겠소.”
“뭐라오?”
명옥이 이마 살을 찌푸리며 상순을 쳐다보았다.
허나 상순은 성미가 성급해 재촉했다.
“잔말 말구 찬 물 떠오라."
뒤이어 그는 명옥이 들어 온 찬물함지를 가리키면서 성숙을 재촉했다.
"성숙아, 옷을 벗고 함지에 들어앉아라.”
성숙이 언감 아버지 말을 거역하겠는가?
그 애는 부끄러운 대로 인차 옷을 벗고 함지의 찬물에 들어섰다.
“물에 앉아라. 앉아.”
상순은 성숙의 손을 잡아 함지에 억지로 앉히고는 찬물을 잔등이며 배에며 끼얹고 팔이랑 씻어주었다.
“그래도 정의사한테 보이는 게 어떻소? 혹시 저 윗마을의 미선처럼 폐염에 걸린 건 아닌지?”
“개뿔도 모르면서 작작 떠들어라!”
상순이 세귀눈을 부라리자 명옥은 찍 소리 못했다.
상순의 호통질에 막무가내로 연 며칠 몇 번씩 성숙을 함지에 들여 앉혀놓고 찬물로 온 몸을 씻어주었다. 그러나 열은 내리기는커녕 온몸이 점점 불덩이 같았다.
(이러다간 성숙을 영자처럼 집에서 죽이겠다.)
명옥은 황급히 성숙을 업고 토성안집에 차린 대대 위생 소로 가서 정규상을 찾았다.
“정 선생, 얘를 살려 주오.”
“양?”
정규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숙을 받아 내리우면서 덴겁한 듯이 놀랐다.
“애가 불덩이 같구먼.”
그는 청진기를 꺼내 성숙을 이리저리 진찰해보더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왜 이제야 불렀소?”
“무슨 병이오?”
정규상은 청진기를 거두면서 “감기는 감긴데 폐염으로 넘었구먼. 좀 늦추었더라면 애가 잘못 될 번했소.”라고 했다.
명옥은 눈물을 흘리면서 “정 선생, 얘를 살려 주오.”하고 간곡히 애원했다.
정규상은 바삐 성숙에게 주사를 놓은 후 중약을 준비하면서 말했다.
“아주머니, 근심하지 마오. 며칠 치료하면 나을 게요.”
그제야 명옥은 눈물을 훔치면서 성숙의 불덩이 같은 얼굴을 매만졌다.
상순은 정규상을 볼 면목이 없었다.
정규상은 왕진을 왔다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고 상순을 바깥으로 불러 조용히 말했다.
“형님, 열을 빼려면 찬 물질을 하면 절대 안 되오. 좋은 의사 동생을 두고 왜 부르지 않고 그런 도깨비짓을 했소?”
“자네 온 동네에 폐염이 돌아서 바람개비처럼 돌아치는데 찾기 미안해서 그랬네. 우리 애보다 폐염에 걸린 미선이랑 다른 애들을 구하라고 그랬소.”
“야, 정말 형님도. 병 치료에는 시간이 생명이오. 이후에는 누가 앓으면 인차 알려주오.”
상순은 정규상의  두 손을 꽉 잡았다. 
“고맙소. 동생, 온 마을에 도는 폐염을 무슨 수를 쓰든지 전승해야겠소. 온 마을에는 지금 전염병 공포가 살판치고 있단 말이오. 이러고서야 어찌 시름 놓고 일하겠소? 무슨 뾰족한 수가 없소?”
정규상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꼭 폐 염을 전승하기요. 지금 마을의 애들로부터 어른 쪽으로 올라가면서 폐염이 전염되고 있소. 쌀 고생 때문에 영양이 따라가지 못해 면역력이 떨어진 게 주요 원인이요. 형님이 사원들을 동원해 감자를 껍질 벗기지 말고 씻어 먹게 하오. 저 흔한 강냉이 대를 그저 소를 먹이지 말고 썰어서 가마에 푹 끓이라고 하오. 단백이 나오게 푹 끓인 물에 죽이나 밥을 지어 먹으라고 하오. 그러면 밤 맛과 죽 맛도 있는데다가 영양가도 높여 면역력을 높일 수 있소. 장기로 음식습관을 개변하면 폐 염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소. 이미 폐 염에 걸린 환자는 내가 책임지고 왕진하면서 치료해주겠소. 마을 사람들이 서로 내왕을 적게 하게 하는 게 좋소. 그래야 전염을 상대적으로 막을 수 있소. 투쟁대회 같은 회의를 작작 해야 하오.”
“옳소. 그게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을 때는 격이오. 폐 염도 치료하고 투쟁대회도 작작 열면 겨우내 사원들과 간부들이 마음 놓고 살게 아니오.”
정규상은 자기 묘안이 서는 것을 마음속으로부터 기뻐했다.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정규상에게서 연 며칠 주사를 몇 대씩 맞고 중약을 달여 먹였더니 폐 염에 걸렸던 애들이 열이 내리고 기침도 멎으면서 치료됐다. 마을 사람들은 집안에 들어박혀 옥수수 대를 우려낸 단 물에 죽이나 밥을 지어 먹으니 맛있다고 엄지를 내둘렀다.
한 둬달 정규상의 말대로 하니 다만 성근이가 계속 기침을 쿨룩쿨룩 할 뿐 전염 세는 수그러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정규상에게 엄지를 내둘렀다.
미선이랑 성숙이랑 앓던 애들의 병도 완전히 나아 밖에 나와 달아다니면서 눈을 쥐여 뿌리며 눈싸움을 하면서 놀았다.
애들이 달아다니면서 뛰노는 마을 길에 하얀 눈송이들이 춤을 추며 하늘하늘 내려앉으면서 춤추고 있었다.
강아지들도 애들과 함께 밤송이 같은 눈송이 내리는 속을 깡충깡충 뛰어 다니며 놀았다.

                              8. 분권과 관용
 
      어느 날, 덕돌의 눈앞에는 노란 배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배를 방불히 눈으로 보는 상 싶었다.
“그래, 큰어머니 보고 과수원에 가서 배를 따달라고 해야지.”
덕돌은 군침을 꼴깍 넘기면서 주먹을 쥐고 윗마을에 달려가 토성안집 큰어머니네 집 문 꼬리를 쥐여 당겼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덕돌은 몸까지 배배 탈면서 서적을 부리면서 졸라댔다.
"어머니, 배를 먹고파 죽겠습니다. 빨리 과수원으로 가깁소.” 
그러자 새금은 어처구니 없어했다.
"얘, 덕돌아,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에 사과 배라니? 겨울에는 추워서 배가 없다.” 
“안 돼. 이전처럼 과수원에 가서 배를 뜯어줍소.”
“이 떼꾼아, 겨울에 어데 가서 배를 뜯니?”
“그래도 과수원에 가깁소. 과수원에는 노란 배가 다닥다닥 달렸구마.”
지새금은 동선이 조선으로 나간 후 작은집 덕돌 밖에 믿을게 없다고 생각하고 각별히 귀여워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가을에 덕돌이 놀러만 오면 유서집 시형 상진이네 집에 가서 비난사정을 해 그 집 아들이 보초를 서는 과수원으로 덕돌을 데리고 가군 했다.
덕돌은 과수원에 가서 파란 잎 속에 주렁주렁 달린 사과 배랑 쪽지가 길쭉한 바가지 배를 보고 군침을 꼴깍 삼켰다.
새금은 덕돌이 먹고파 하는 배를 뚝 따서 내밀었다.
“옜다, 먹어라.”
덕돌은 배를 사각사각 맛있게 먹으면서 쪽지가 길쭉한 배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큰어머니, 저건 무슨 배요?”
새금은 쪽지 달린 길죽한 배를 뜯어주었다.
“이건 바가지 배야. 먹어.”
덕돌은 배를 받아 돌려가며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바가지배? 야, 이 많은 배를 몽땅 집에 가져다가 놓고 먹었으면 좋겠다.” 
“근심하지 말라.”
새금은 버들광주리에 노란 배를 무루기 뜯어 담아 이면서 말했다.
“이걸 몽땅 너를 줄게. 집에다 두고 먹어.” 
덕돌은 실컷 먹고서도 숱한 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덕돌은 가을에 큰어머니를 따라가 배를 실컷 먹던 생각을 하면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에 노란 사과배를 내라고 야단쳤다.
순애 누나는 궁리 끝에 뒤 문을 열고 나가더니 까만 언 배를 바구니에 담아다가 주었다.
그러자 덕돌은 구들에 나누워 땔땔 굴면서 떼를 썼다.
“안 된다, 안돼. 노란 바가지배를 달라- 으~ 응.”
새금은 순애한테 눈을 찔끔해 보였다.안 되겠다.
"얘를 데리고 과수원에 가봐라.”
순애는 별수 없이 덕돌을 데리고 과수원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애들이 태평강 얼음판에서 썰매를 타면서 노는 것이 보였다.
순애는 눈 덮인 과수원의 벌거숭이 배나무들을 가리키면서 차근차근 말했다.
“봐라, 나무 잎도 다 떨어지고 배가 없지? 눈이 오는 겨울에는 배 없다.”
“어째 이러야? 이전에 큰어머니하구 함께 왔을 때는 배가 가득했는데.”
덕돌은 이상해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겨울에는 추워서 배가 달리지 않는다.”
“그래 배 나무 이파리는 다 어데 달아났소?”
순애는 눈 밑을 가리키면서 “저기 있다.” 하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덕돌은 눈 밑에 드러난 시꺼멓게 마른 배나무 이파리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럼 배도 추워서 눈 밑에 숨어 자지 않을까?”
순애는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어 웃었다. 그녀는 덕돌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겨울엔 없다, 없어. 배나무 잎이 땅에 떨어진 걸 눈이 뒤덮어 놓은 거야. 호호호. 애도 정말.”
“그게 이상하다. 나무 잎은 떨어져 땅 위에 있는데 배는 어째 땅 우에 떨어진게 없니?”
“배는 사람들이 가을에 다 따가서 없지. 호호호.”
순애는 덕돌의 천진한 말에 코를 싸쥐고 웃었다.
덕돌은 별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뒤를 달았다.
“누나, 그럼 언제 또 배를 먹을 수 있소?”
“명년 가을에. 그러니까 백날 같은 게 세 번쯤 있어야 한다.”
“그렇게 오래? 그때면 배가 하늘만 하오?”
덕돌은 두 팔을 벌려 뒤로 둥그렇게 그리면서 물었다.
“응.”
덕돌은 눈이 동그래졌다.
돌아오는 길에 순애 누나는 덕돌을 되돌아보면서 썰매를 타는 애들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덕돌아, 너도 저 애들처럼 썰매나 타면서 놀겠니?” 
“추운데 무슨 재미 있겠소?”
덕돌은 몸을 옹송그리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후에 지새금이 작은 집으로 놀러 내려왔다가 상순과 명옥 앞에서 덕돌이 겨울에 배를 뜯어내라고 떼를 쓰던 얘기를 해 모두들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증조부 병완은 놀러 왔다가 윗방에서 그 말을 듣고 “허허허.” 하고 웃었다.
“덕돌아, 이제 패용산과 칼산 골짜기에 새 과수원에 배나무를 심으면 배를 실컷 먹을 수 있을 게다.”
덕돌은 증조할아버지 무릎 우에 올라가 앉아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물었다.
"노할아버지, 언제면 배를 먹을 수 있습니까?”  
병완은 무릎 위의 덕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이제 오, 륙 년 기다리면 될 거야.”하고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5, 6년이면 몇 날이 있어야 됩니까?”
“백날 같은 게 한 스무 번?”
“그리 오래 기다려야 합니까?”
“그래, 네가 중학교에 올라 갈 때면 배를 실컷 먹을 수 있다.”
“야, 언제 중학교에 가겠니? 배를 실컷 먹게.”
“하하하.”
“호호호.”
모두들 덕돌이 우스워 웃음보를 터뜨렸다.
상순은 덕돌을 오라고 해 자기 무릎 우에 올려놓았다.
“아버지, 나두 성욱이 털모자 같은 거 사주십시오. 귀 시립니다.”
이때 명옥이 정지에서 소리쳤다.
“덕돌아, 여기 내려오라.”
덕돌은 오쫄 일어나 정지에 나가면서 소리쳤다.
“엄마, 이전에 돈을 많이 벌어 성욱 거 같은 털모자를 사주겠다고 해놓고 어째 겨울이 돼도 사주지 않습니까?”
“응, 그래. 엄마 꼭 사줄게.”
윗방에서 상순은 병완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흥수가 지부 서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내놓을까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병완은 주름살이 밭고랑 같이 패인 얼굴에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약한 소리를 하지도 말아.”
그러나 상순은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지부 서기가 무슨 벼슬이 아닙니다. 벼슬을 하려면 영월구 공안국 국장 자리를 내놓았겠습니까?”
“지부 서기를 내놓으면 무슨 잘못이나 있는가 할 게 아니냐? 그럼 흥수는 네 머리 위에 올라 앉아 똥을 싸자고 들게다.”
상순은 기어이 자리를 내놓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 정치투쟁에서 이기고 지는 걸 떠나서 내 한 사람이 물러나면 숱한 사람들이 피곤하게 살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디다. 흥수가 내 자리를 차지하면 투쟁대회를 자꾸 열지 않겠는 지도 모릅니다. 사원들이 투쟁대회에서 해탈돼 편안하게 살 수만 있다면 그까짓 서기 자리를 백번이라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병완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산이야. 너 하나의 붉은 마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는 거야. 흥수는 안 돼. 개 똥을 먹는 습관 고치겠니? 지부서기 자리를 차지하면 너를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물어뜯고 짓밟으려고 들게다. 정치는 물러설수록 피동이야. 절대 약하게 놀지 말라.”
철리 있는 할아버지 말씀에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바로 그 점이 근심스러웠던 것이다.
나중에 상순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할아버지 말씀을 듣기로 했다.
“그럼 지부 서기는 잠시 내놓지 않겠습니다. 결혼 비준서를 떼 주거나 흑판 보를 꾸리는 일을 흥수한테 시킬 예산입니다.”
“그래, 모든 걸 끌어안지 않는 게 맞다.”
병완은 손자의 성장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정지 문이 열렸다. 모두들 머리를 들어 보니 성욱이었다.
“덕돌아!”
“어째?”
덕돌은 아버지 무릎에서 일어나 정지 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성욱은 털모자를 덕돌에게 내밀었다.
“내 모자를 쓰고 학교로 가자!”
“나를 주고 넌 어쩌니?”
“우리 아버지 또 새 털모자를 사주었다. 봐라. 얼마나 좋니?”
성욱은 자기 머리우의 새 털모자를 벗어 자랑했다.
“고맙다. 성욱아. 우리 엄마도 새 털모자를 싸줄게다. 씨.”
덕돌은 입이 뽀로통해 엄마를 쳐다보았다.
윗방에서 상순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 털모자 하나 사주지 못해 남의 모자를 얻어 쓰게 하는 것이 못내 가슴이 아파 “음.” 하더니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손자와 손비가 기분이 상해하는 것을 보고 병완은 정지에 서 있는 애들을 내다보면서 소리쳤다.
“성욱이라고 했지? 우리 큰형님의 고손이 벌써 저렇게 컸구나.
병완은 하얀 구레나룻을 쓰다듬으면서 학교로 떠나가는 덕돌과 성욱을 내다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보자, 야, 어느새 대수가 이렇게 많이 뻗었느냐? 형님의 고손자 성욱이라. 내 증손 덕돌에겐 9촌 조카로구나. 8촌이 한 구들이라더니 정말 헛말이 아니구나. 너네 대엔 벌써 9촌이 다 됐구나. 허허허.”
“예, 9촌이 어디 먼 친척입니까?”
상순은 정지 덕돌과 성욱을 내다보면서 타일렀다.
“얘들아, 너희들은 9촌 숙질간이야. 알았어?”
“예. 우리 둘은 친척이기에 어디 가나 한편을 합니다.”
성욱이 코를 훌쩍거리더니 손등으로 허연 콧물을 쓱 문질렀다.
“우리 전번에도 조선 지도 새끼 접어드니 양쪽에서 다리 하나씩 들어 메쳐놓고 두드려 놓았습니다.”
“조선 지도라는 건 누구냐?”
“동림입니다. 그 새끼 이마에 조선 지도 새겨졌습니다.”
“오, 그래? 허나 공부를 잘 해야지. 둘이 한 당이 돼 다른 애들을 때리면 안 돼? 동림하고도 딱친구로 놀아야 해. 알만해?”
“예. 그런데 우리 조선 지도를 이기지 못하겠는 거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싸우면 나쁜 애야.”
성욱은 볼우물이 패일 지경으로 입을 악물었다. 덕돌과는 달리 그 애는 좀 성질이 꽁한 편이었다.
애들이 떠나간 후 병완은 물었다.
“그런데 저 경주를 어쩌겠니?”
“뭘 말입니까?”
상순은 눈초리를 꼿꼿이 치켜 올렸다.
“경주가 미련과 결혼하잡니다. 정신 있습니까? 지주 아들과 결혼해? 우리 집안이 어떻게 됩니까?”
“글쎄 말이야.”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다 기침을 쿨룩쿨룩 했다. 상순은 황급히 일어나 할아버지 잔등을 자근자근 두드려 주었다.
“됐다, 됐어.”
병완은 손을 들어 상순을 앉으라고 시늉했다.
“경주 결혼문제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우리 영월김씨는 원래 경주김씨와 한 핏줄이야. 황차 우리 막내손자 경수는 경주의 동복동생이 아니고 뭐니? 흥수가 자꾸 그걸 물고 늘어지니까 큰일 났다.”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지주 딸이라고 해도 혼인을 간섭할 수 있습니까? 결혼 소개 신을 떼는 일은 이젠 흥수한테 맡기겠습니다. 뭐라도 시켜야 더 물지 않겠는지?”
“옳다, 개는 먹이를 줘야 짓지 않는 법이다. 분권과 관용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겠는지 모를 일이다.”
상순은 할아버지를 부축해 윗마을 함흥 촌에 올라갔다가 흥수네 집에 들렸다.
흥수는 경계하는 눈초리로 상순의 아래 우를 훑어보더니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왔소?”
흥수는 추운 겨울에 집안으로 들어가자는 말도 하지 않고 바깥에서 막아섰다. 그러든 말든 상순은 정지 창문으로 핼끔 내다보는 춘실의 눈길을 피하면서 정식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내 독단, 독행 한 거 같아 미안하오. 이제부터 결혼 소개 신을 떼는 일이랑 대대 당 지부 회의를 사회하는 일을 하오.”
흥수는 감사하다고 할 대신 “흥! 고양이 쥐를 생각하는구먼.”하고 쌀쌀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상순은 더 할 말도 없어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흥수가 뒤에서 내쏘는 말이 들려왔다.
“그런 잔일만 내놓지 말라니까. 이젠 지부 서기도 윤번으로 하자니께.”
상순은 몸을 홱 돌려 정색해 말했다.
“지금 하는 꼴을 보면 자네가 지부 서기를 하면 날마다 투쟁대회만 하노라고 한지에 방아를 걸겠소.”
흥수도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김 씨네 조손 3대가 없으면 함흥대대 돌아가지 못하겠구먼. 세습이라도 무서운 세습이라니께. 흥!”
상순은 말할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여겨 몸을 돌렸다.
이때 정지문이 벌컥 열리더니 춘실이 불쑥 뛰쳐나왔다.
“여보, 또 시작하오? 당원들은 어째 맨날 싸우기만 하오?”
뒤이어 춘실은 상순에게 눈을 흘기며 입귀를 삐쭉했다.
      상순은 몸을 홱 돌리더니 문을 쾅 박차고 나왔다.
      그는 마을 사원들을 이끌어 아름다운 함흥촌을 건설하려고 잠시 대대당지부 서기를 내놓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제 봄이 오면 마을 앞에 큰 물도랑을 파고 물레방아를 놓아야지. 그럼 논머리에서 벼 탈곡을 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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