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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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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92)
2018년 02월 12일 09시 53분  조회:128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제25장 시련

                   1. 함흥대대 당지부 서기

      여우도 눈물을 흘리고 박달나무가 얼어 탁탁 터질 것만 같던 겨울이 아무리 발버둥질 치며 물러가기 싫어해도 끝내는 서서히 다가오는 훈훈한 봄 아가씨한테 밀려 이영 끝초리에서 눈물로 방울방울 곤두박질쳐 떨어지고 있었다. 겨우내 눈보라에 날려와 용을 쓰던 허연 눈도 녹아 내렸다. 여기저기 얼어 갈라 터진 땅 바닥에 봄아가씨의 미소가 흘러 들어가며 진흙물을 채워가고 있었다.
백열화된 반우파투쟁 그리고 대약진, 인민공사 세 폭의 붉은 기가 대지를 휩쓸고 지나간 후 정치기후가 확 달라져 갔다.
상급당조직에서는 정성해 서기의 지시에 따라 허영주 사장의 우파 모자를 벗기고 일약 현인민정부 부현장으로 제발시켰다.
허영주 부현장은 부임되자마자 현당위 부서기 이계삼과 토론한 후 함흥대대와 조개덕 대대를 합병해 함흥대대로 재편성한 후 대대 당총지부를 재구성하는 일부터 착수했다.
허영주 부현장과 이계삼 부서기는 진수해당위 조직위원을 데리고 함흥대대에 내려 왔다.
대대 당 지부 회의에서 장수로인 김병완은 당 지부 확대회의에서 아들 셋을 앞 세운데다 나이도 많기에 더는 당 총지부 서기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젊은 당원을 제발시켜 양성할 것을 제의했다.
그러자 흥수가 제꺽 뛰쳐나왔다.
“좋습네다. 로서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제가 서기를 맡아 할라우.”
그는 우먹눈으로 상순과 병완의 눈치를 살피면서 계속 횡설수설 입을 널어놓았다.
“병완 서기 말이 옳아요. 젊은 서기를 세워야 생기발랄하고 사업도 척척 해재낄 수 있는기우.”
학수는 이 기회에 동생 흥수가 대대의 권력을 장악했으면 하면서도 병완과 상순의 눈치를 흘끔거렸다.
관건적인 시각에 이계삼 부서기가 나서서 엄숙하게 말했다.
“김병완 로서기는 광복 후 줄곧 우리 함흥촌에서 농민들을 이끌어 많은 일을 한 훌륭한 농촌 당지부 서기요. 항일전쟁시기 조선에서 일본 놈들의 경찰국과 숱한 군용다리를 무너지게 만들었소. 간도에 온 후 집 식구들을 이끌어 농사를 지어 장백산 항일유격대에 쌀을 실어 보냈습니다. 그는 또 아들 기준과 창준과 손자 상순을 데리고 장백산에 들어가 유격대에 통나무집을 지어주었고 지하당원으로 돼 항일투쟁을 여러 모로 지지하였습니다. 그는 자손들을 조직해 마을에서 항일투쟁을 하였고 토지개혁 때에는 지주를 청산하여 빈농들에게 밭과 재산을 나눠주었습니다. 항미원조 전쟁시기에는 공안부문을 도와 마을에 기어든 남조선 특무를 숙청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반우파투쟁 속에서도 그는 상급 당조직의 영도아래 견정히 사회주의 길로 나아가면서 실제적인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한평생 공산당을 따라 혁명하였고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젠 연세가 많으시기에 지부서기 사업을 젊은이들에게 대담히 맡기려고 하는데 이는 로지부서기의 아주 고상한 품성이라고 봅니다.”
병완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과분하게 평가해서 몸둘바를 모르겠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상순이 뭐라고 입을 열려고 할 때었다.
허영주 부현장이 입을 열었다.
“내 보건대, 흥수 동무는 입당한지 이제 겨우 반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지도경험이 없어 당총지부 서기를 하기 적합하지 못합니다.”
흥수는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세우면서 우멍눈을 부라리며 발끈 성을 냈다.
“아니, 뭐라노? 반우파투쟁 때 허 현장을 투쟁하는데 앞장섰다고 보복하는 건 아니기우?”
학수도 허영주 부현장을 흘겨보았다.
그러나 허영주 부현장은 견결히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흥수 동무는 정치두뇌가 명석하지 못하오. 보오, 그때 허백호 서기가 이 마을에 와서 심갱밀식농사법을 강요했지. 내 반대해 나섰다고 동문 날 대약진을 반대한 우파분자란 모자까지 씌우지 않았소. 그때 흥수 동무는 허 서기 심갱밀식농사법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잘 분석하지 않고 나를 투쟁하는 데만 앞장섰소. 흥수동무에게 충고하오. 이후에는 뭐나 맞는가, 틀리는가 잘 분석하고 정치투쟁에 나서란 말이오.”
심장을 찔린 흥수는 입을 쩝쩝 다시면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때 상순도 한마디 했다.
“옳습니다. 흥수는 자칫하면 정치착오를 질 수 있습니다. 뭐나 덧대고 앞장서기만 합니다. 앞뒤를 재지도 못하는 흥수에게 우리 대대 당 지부를 맡길 수 없습니다.”
흥수는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붉으락푸르락 하면서 상순을 손가락질하며 고함쳤다.
“그럼 당신이 지부 서기를 하라우. 원래 함흥촌은 대대로 당신들 김씨네 조손 3대 세상인 거니까. 지껌은(제길할), 흥!”
“당원이란 사람이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허영주 부현장은 흥수를 준절히 꾸짖었다.
“엄숙한 당지부 회의에서 그게 무슨 말이오?”
진수해 공사당위 조직위원은 좌중을 둘러보더니 엄숙하게 말했다.
“함흥촌은 확실히 병완 할아버지와 그의 자손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개척한 마을입니다."
실로 그렇다. 함흥촌의 소서구나 계동이나 장개골안나의 숱한 밭과 논 어느 밭고랑엔들 그들 조손 3대의 피땀이 배지 않은 게 있겠는가?
"이 마을에서 경력이나 조직능력이나 군중토대나 모든 걸 다 보아도 상순 동무가 당총지부 서기를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허영주 부현장은 학수를 건너다보며 “동무 보기에는 어떻소?”하고 바투 들이댔다.
학수는 대세가 기운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상순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흥수는 아직 경험도 없기에 선전위원을 시켜도 과분합니다. 상순에게서 많이 배우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 말에 흥수는 흥! 코방귀를 뀌었다.
“그럼 조직위원은 누가 하면 좋겠습니까?”
허 현장의 물음에 병완은 가슴까지 드린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학수가 계속 조직위원을 하면 좋을 거 같소.”라고 말했다.
“상순 동무, 어떻소?”
허영주 부현장의 물음에 상순은 인차 “동의합니다.”하고 대답했다.
허영주 부현장은 총화발언을 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함흥대대 당총지부 서기에 김상순, 조직위원에 리학수, 선전위원에 리흥수로 결정합시다. 모두 동의되면 박수로 통과합시다.”
모두 박수를 쳤다. 그러나 흥수는 또 상순 밑에서 길 생각을 하니 썩 달갑지는 않았다. 하여 박수를 치지 않고 덤덤히 앉아 있다가 마지못해 박수를 치었다. 선전위원이라도 주어했기에 다행이었다.
(학수 히야(형)까지 둘이 합세하면 당지부 서긴들 어쩐기오? 상순은 독불장군이 될거잖아.)
흥수는 속으로 시퍼런 칼을 갈며 음흉한 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병완 서기, 그간 수고 많았습니다. 상순 동무랑 젊은 동무들의 농촌 사업을 많이 지도해주십시오.”
그러자 병완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난 늙었소. 90고개를 바라보지만 난 의연히 노당원이요. 새 당총지에서 우리 대대를 잘 이끌도록 뒤에서 도와주겠소.”
“감사합니다.”
허영주는 마음속으로부터 노서기에게 감사를 드렸다.
사실 병완은 년세가 든 것도 있었지만 모든 고민과 사상부담을 벗어버리려는 장구지책도 있었다.
(맹자는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무섭다고 하지 않았는가? 백열화된 정치시련을 겪을 필요 없이 깨끗이 물러나야지.)
병완은 당지부 서기를 벗어 멘 뒤 얼마나 홀가분하고 거뿐한지 몰랐다.
허영주 부현장은 진수해공사 함흥대대를 시점으로 잡고 대약진을 할 때 우에서부터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싹이라던 “3자 1포”(시장 등 3가지 자유, 1가지(토지) 도급)를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함흥대대에 내려와서 우의 지시대로 시장자유를 회복하면서 사원들이 마음대로 진수해 시내에 가서 장을 볼 수 있고 자류지에 곡식이거나 남새를 심어 먹어도 된다고 했다. 게다가 집체식당을 폐지하고 집집마다 자유로 자기 집 가마에 밥을 지어 먹어도 된다고 했다. 또 개인 집에 밭을 떼 맡겨 개체로 농사를 제 마음대로 지으라고 했다.
사원들은 위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면서도 떼 맡은 밭을 기름이 찰찰 돌게 알뜰히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원들은 한쪽구석으로 이러다가 또 자본주의 길로 나가는데 앞장섰다고 투쟁을 받을까봐 겁났던 것이다.
허나 자기 집에서 밥을 끓여 먹으라는 것만은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집체 식당에서 멀건 죽물을 마시면서 사회주의 좋다는 노래를 날마다 부르기보다 자기 집에서 자기 구미에 맛게 죽을 끓여 먹는 것이 좋았다. 봄이 짙어가자 풀이나 많이 캐다가 푸성귀라도 마음대로 많이 끓여 보태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사원들은 이런 날이 얼마나 갈 까고 근심이 태산 같았다. .
박성근은 병완을 찾아갔다.
“보오, 내 뭐라고 했습니까? 소련에서도 꼴호쯔가 폐단이 많았습니다. 생산 적극성이 내려가고 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 이화영 영감도 그 머나먼 우즈베크에서 여기까지 달아왔지. 그 영감 말이 멀고도 먼 우즈베크에서 소련을 지나오면서 보니 다 그 즛살(모습)이더라오. 우리 여기선 절대 소련에서 한 대로 하면 안되오, 안돼."
그는 덤덤히 앉아 듣기만 하고 일언반구도 대구를 하지 않는 병완의 눈치를 보고 화제를 돌려 이번엔 지청구를 들이댔다.
"김서기, 한 가지 청을 들어 주겠습니까? 나에게 씌운 우파 모자를 벗겨 주십시오.”
허나 병완은 의연히 입에 빗장을 지른 채 덤덤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성근은 이번에는 상순을 찾아갔다.
“김 서기, 내 말한 말이 맞지? 내 말은 모두 진리요, 진리! 내 우파 모자를 벗겨 주오. 내 무슨 잘 못 말한게 있소.”
허나 상순도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갑갑해난 성근은 버럭 고함쳤다.
“들었소? 못 들었소? 억울하게 쓴 우파 모자를 벗겨 달란 말이오? 당신들이 뭘 잘 한 게 있소? 숱한 군중들이 집체식당에서 굶어 죽게 해놓고서! 흥!”
참다못해 상순은 입을 무겁게 뗐다.
“빈 양철통이 소리가 더 난다고 개뿔도 모르면서 함부로 혀끝을 놀리지 마오! 또 다른 모자를 더 쓰기 전에! 지금 무슨 세월이라고 입을 벌리기만 하면 구렁이 나가는지 뱀이 나가는지 모르고 함부로 지껄이오?!"
그는 상순을 상냥한 얼굴로 보면서 뒤말을 이었다.
"입건사만 잘하오. 그럼 우파모자를 벗기는 일은 내 상급당조직에 말해보겠소.”
“에이, 씨! 서기 모자를 벗겨주면 벗는 건데. 뭘 그리 질질 끄오? 벗겨주지 않겠으면 그만두오!”
박성근은 엉덩이를 들더니 휑하니 가버렸다.
턱을 쳐들고 가는 저 모양 보소. 딱 나래 부러진 수탉 같지 않은가?
병완은 백열화된 정치마당에서 뒤로 물러나 앉으니 얼마나 편안한지 몰랐다. 게다가 손자 상순이 사원들을 잘 이끌어나가니 속으로 얼마나 대견한지 몰랐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상순이 정치에 계속 휘말려들어 혹시 착오라도 변하면 고생할 까봐 적이 근심됐다.
(집체식당을 했다가 마스는가 하면 심갱밀식농사법을 했다가 틀렸다고 하지 않는가? 또 언젠가는 다시 집체 식당을 꾸리라고 할지 누가 아는가? 또 언젠가는 사원들에게 떼맡겼던 밭을 찾아내 집체농사를 짓겠는지, 자류지도 빼앗아 생산대에 들여놓고 집체로 다루라고 할지 누가 아는가? 이랬다저랬다 하는 노선을 어느 걸 따라 가야 한단 말인가?)
병완은 곰방대를 뿍뿍 빨았다. 담배연기를 후 내뿜자 세파에 부대끼며 시련을 겪을대로 다 겪어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얼기설기 잡힌 볼이 훌쭉해졌다. 이가 다 빠져 너부죽하던 그의 아래턱이 길쭉해진 것이 알렸다.
(아무래도 시름놓을 수 없구나.)
병완은 상순을 찾아가려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때 때마침 상순이 대대 사무실 쪽에서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할아버지, 아침진지 드셨둥?”
“오, 그래.”
상순은 윗방에 들어갔다.
“할아버지, 우에서 몇 해에 한번씩 이랬다 저랬다 해서 원, 어떻게 해야 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병완은 곰방대를 들어 빨다가 말했다.
“이런 시국에 뭐나 너무 열성을 부리면서 앞장서지 않는 게 좋아."
병완은 사위를 둘러보더니 상순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공자나 맹자나 왈 '중용지도'  일리 있어. 무슨 정치운동이든 젤 앞장서지 않는게 좋아. 알만해? 언제 어떤 정치몽둥이에 맞아댈지 어떻게 아니?”
“글쎄 말입니다.”
병완은 속심의 말을 다했다.
“공자 성인이 가로사대, ‘자기를 억제하여 례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이 세월에는 중용지도가 제일이야. 그것이 자기를 지키고 집안을 지키고 인민을 지키는 정치이다.”
상순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그래도 어찌 시비에 틀린 걸 보고 가만 앉아 있겠습둥. 저 흥수랑 봅소. 소불알 달걀처럼 이 볼 쳤다 저 볼 쳤다 하는 게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납니다.”
“허허허.”
병완도 가소로워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 인간 그렇게 벌레처럼 정치에 앞장서면서 살 놈이야. 옛날 한길성 같은 놈이야. 일본 놈들에게 아부하면서 사는 더러운 버러지 같은 놈이야.”
상순은 할아버지네 집에서 나와 대대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오랜 시련을 겪은 할아버지의 의미심장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때 상길이 다가와 상순을 보고 "정치에 작작 삐쳐."하고 충고했다.
그는 조선 명천에서 아홉 살 밖에 안된 자기 손목을 잡고 일본 놈들과 한길성의 추적을 피해 가녿 소서구에 들어온 삼촌이 불쌍했다. 지독한 정치세파에 못이겨 굶어 사망까지 한 삼촌이 한없이 억울했다.
"범도 무서워 피할 힘장사 삼촌이 굶어 세상 뜨다니? 정말 더러운 세월이야. 무서운 세월에 정치에 작작 삐치는게 집안을 지키는 수야."
상순은 할아버지와 사촌형의 충고를 심중히 들었다.
(정치파도 속에서 주의해야지. 허나 정치몽둥이에 맞아 죽을가 봐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보고서야 어찌 목을 움추린단 말인가? 사람이 빚을 지고 살아도 어찌 시비에 지고 살겠는가?)
그는 토성 굽이에 가 서서 흐릿한 하늘을 둘러보며 한숨을 후 내쉬었다.
“무슨 속 탄 일이라도 있소?”
난데없이 지춘실이 나타나 생글거리며 배죽거렸다.
상순은 거들떠보지 않고 대대 사무실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춘실은 대대 사무실에까지 따라 들어오면서 상순의 팔소매를 쥐어 당겼다.
“조용히 말할게 있소."
“무슨 말? 흥!”
춘실은 새침해졌다.
“연길에 백과부네 집에 간 을준이 결혼한다오. 가보지 않겠소?” 
그 말에 상순은 주춤 섰다가 홱 돌아섰다.
"백호가 벌써 결혼하게 됐는가?"
그러나 인차 자리를 떴다.
“내게 무슨 상관이오?”
“몰인정한 사람이라고. 제 새끼도 모르고 그래…?”
이때 지새금이 대대 사무실과 붙은 서쪽 칸에서 나오며 알은체 했다.
“어우, 생원이구먼. 사촌여동생도 오고.”
그제야 지춘실은 입술을 쫑긋 하며 상순을 가로 쏘아보더니 토성 밖으로 나가 버렸다.
상순은 아주머니와 알은체 하고 대대 사무실로 들어갔다.
성이 날대로 난 그는 사무상에 마주 앉아 한참이나 씩씩거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대로 돼가는 일이 없었다.
(효성을 하려고 공안국 국장마저 하지 않고 마을에 돌아왔건만 부모도 온전히 모시지 못했다. 마을 백성들을 배불리 살게 하려고 애를 써도 어디 잘 되는가?)
상순은 세상이 돌아가는 눈치를 보면서도 생산대 우사의 소들을 몽땅 개인 집에 나눠줘 기르게 했고 밭도 몽땅 사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사원들은 이제야 살 때를 만났다고 좋아 야단쳤다. 병완 네는 생산대에서 비녀뿔을 되찾아다가 외양간에 매고 여물을 주었다.
상순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코 깜쟁이 암소를 집에 끌고 돌아왔다.
명옥은 코가 새까맣고 눈확도 새까만 코 깜쟁이 암소를 보고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여보, 이전에 어른들이 말하던데. 코 새까만 소는 말을 잘 듣지 않는다던데.”
상순은 벌컥 화를 냈다.
“아무 소리나 줴치지 마오!”
명옥은 빗자루로 갈비뼈가 어룽어룽한 소잔등을 쓱쓱 쓸어주면서 “소가 말을 잘 듣지 않아 답답하단 말이오.”라고 했다.
상순은 안해를 닦아세웠다.
“당원에게 소만 생겨도 괜찮은게지. 무슨 좋고 나쁘고 말이 그리도 많소?”
명옥은 이때까지 남편의 말이라면 두말없이 꼽싹꼽싹 순종해왔다. 그런데 이번만은 아니었다.
“당원은 사람이 아니오? 당원은 욕심이 하나도 없소? 가져 오는 바 하고는 둥글소를 가져 왔으면 얼마나 좋았겠소."
상순은 우사에서 나오면서 아내를 보고 정중하게 말했다.
“당원을 아무래나 말하지 마오. 정치문제에 걸리겠소. 당원은 항상 대공 무사해야 하오. 암소라도 생겼으면 입을 꾹 다물고 잘 먹이기나 하오. 노동력이 없는 집에 저렇게 비틀거리는 암소를 줘서야 어떻게 농사를 짓겠소?”
명옥은 “공산당원은 항상 대공 무사해야 한다.”는 남편의 말이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다.
“공산당원은 뭐기에? 당원은 자기 집 안속을 차릴 줄도 모르는 사람인가?”
명옥은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리었다.
코깜쟁이 암소도 이들 부부간이 주고받는 말을 알아듣기나 한듯이 귀를 벌쭉하고 그들 부부를 번갈아 보며 여물을 우물우물 씹어 꿀꺽 삼키는 것이었다.
                     
                           
                                   2. 개구쟁이 시절

 
        어느 날, 상순과 명옥이 일하고 맥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은숙이랑 애들이 울안의 옥수수 밭에 모여 서서 뭐라고 떠들어댔다.
“아이구, 해바라기 불쌍해라.”
“이게 살 수 있을까?”
“해바라기 끝내 요 새끼한테 들켰다.”
상순과 명옥이 터밭에 들어 가 보니 옥수수 속에 숨어 자라던 해바라기 대가 분질러지지 않았겠는가! 은숙이랑 분질러진 해바라기 대를 일궈세우고 한창 수수대를 대고 새끼줄로 동여맨 후 진흙을 이겨 발라 놓고 있었다.
“덕돌이 한 짓이겠구나.”
상순이 세 귀 눈을 부릅뜨자 애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었다.
덕돌만은 쌔물거리면서 씩씩거렸다.
“내보다도 키 더 큰데 해바라기 대는 견디지도 않는다. 야.”
그 말에 명옥은 손으로 덕돌의 엉덩이를 쨩 치면서 호통쳤다.
“이 놈아, 어째 해바라기 대를 끊었니? 다시 그러겠니?”
“아이 그러게. 해바라기 꽃이 너무 고와서 뜯자고 쥐여 당긴게 뚝 끊어지지 않겠습니까? 으흐흑, 흑흑.”
덕돌은 흑흑 흐느껴 울면서 변명하려고 했다.
상순은 세 귀 눈으로 덕돌을 무섭게 쏘아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하나 밖에 없는 덕돌과 성을 낼 대신에 은숙이가 밥상 우에 퍼 놓은 돌피죽사발을 창문으로 바깥에 훌 내던졌다. 누런 사발이 물웅덩이에 엎어져 고인 빗물에 밑굽만 보일락 말락 빙그르르 돌아갔다.
“아니, 돌피죽을 어떻게 쑨 게라고 그렇게 내던지오?”
명옥은 밖에 달려 나가 물웅덩이에 엎어진 돌피죽사발을 주어들고 보았다. 사발은 이발이 빠졌을뿐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다. 허나 돌피죽은 빗물에 쏟아져 먹을 수 없게 됐다.
사실 쌀 고생이 심해 지난해 가을에 은숙이랑 홍자랑 논밭에 나가서 돌피를 뜯어다가 말리어 절구에 찧어 돌피 쌀을 얼마간 장만해두었던 것이다. 보릿고개를 넘기 바쁠 때 금싸래기 같은 돌피 쌀이었다.
애들은 모두 기분이 상해 무서운 아버지 세 귀 눈을 피해 벽 밑에서 머리를 숙이고 훌쩍거렸다.
명옥은 이발이 빠진 사발을 들고 들어오면서 아까워 두덜거렸다.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죄 없는 그릇을 왜 내던지오?”
“뭐라니?!”
상순은 점심을 먹을 기분이 없어 숟가락을 밥상에 탕 놓았다.
그는 담배쌈지를 꺼내 담배를 말아 물고 부시를 쳐서 불을 붙이더니 하염없이 창 밖을 내다보면서 무슨 궁리를 하고 또 했다. 은숙이 돌피 죽을 퍼다 밥상에 재차 올렸지만 상순은 숟가락을 들지도 않았다. 상순은 일이 잘 되지 않아 신경질이 나면 집에 와서 가정기물을 부시지지 않으면 마구 내던졌다. 아버지가 굶어 세상을 뜬 후에는 더욱 신경이 좋지 않았다. 글쎄 약 한첩도 온전히 써주지 못하고 세상을 뜨게 했으니 아들된 마음이 오죽하랴. 그때 비를 맞으면서 순자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난 농학원에 붙었습니다.”
“뭐? 우리 맏딸 대학에 붙었어?”
상순은 후닥닥 일어나 순자의 손에서 입학통지서를 받아 쥐고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야, 우리 맏딸 정말 장하구나. 우리 대학생 딸!”
오늘 따라 처녀 티가 나는 맏딸 순자가 얼마나 고운지 몰랐다. 금시 돌피죽 사발을 내던지던 상순이 같지 않게 만면에 춘풍이었다. 불티가 튕기던 세귀눈에는 전에 없이 자애로운 빛이 반짝였다.
“순자야, 대학에 가서 공부 잘해라. 너 아비는 가난해 소학교 문에도 가보지 못했다. 만약 공부를 너만큼이라도 했으면 여기서 땅을 파고 있겠느냐?”
그 말에 순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버지는 사회에서 군정대학을 나오지 않았습니까? 아버지야 말로 사회대학 대학생입니다.”
“저 윗마을 봉선 여동생 네 성환은 어느 대학에 가니? 그 앤 학교에서 A생인데.”
상순의 물음에 순자는 고개를 숙이면서 도리머리질을 했다.
“참 안됐습니다. 성환이, 그 앤 페결핵으로 앓아서 대학시험을 치지 못했습니다.”
울먹울먹하면서 말끝을 흐리는 순자를 보고 상순도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참 아까운 일이구나. 우리 집안에 이름난 수재감인데.”
사실 성환은 청화대학을 목표로 지나치게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 밤늦도록 공부했기에 폐결핵에 걸려 각혈까지 하여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저 삿갓봉 집 경산은 어떻게 됐니?”
순자는 다소곳이 숙였던 머리를 들면서 말했다.
“저 윗집 경산인 나와 함께 농학원에 가게 됐습니다. 그 앤 수의학부로 가고 난 농학부로 가게 됐습니다.”
“오, 경산인 공부를 잘 하더니 끝내 대학에 붙었구나. 그런데 우리 조카 철국이랑 철봉이랑 안됐구나. 좀 공부를 더 했더라면 대학에 갔겠는 걸 말이야.”
상순은 순자의 대학입학통지서를 명옥에게 주고 나서 은숙에게 머리를 돌렸다.
“미안하구나. 널 13세 때부터 집에서 일을 시켜서.”
은숙은 쌍까풀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
“아버지, 언니나 공부하면 됩구마. 집이 가난한데 언제 내까지 공부하겠습둥?”
은숙의 눈에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것을 보고 부모들은 가슴이 뭉클했다.
명옥은 순자에게 입학통지서를 돌려주고 나서 “은숙은 이제라도 농중에 다니면 안 될까?” 하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은숙은 어려서부터 글도 잘 쓰고 산수도 아주 잘했지.”
상순은 은숙을 돌아보았다.
“농중에 가서 공부해라.”
순자도 옆에서 그러라고 눈짓했다.
허나 은숙은 도리머리를흔들었다.
“부모들의 호의는 감사합니다.”라고 하더니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언니와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 덕돌이나 공부를 하면 됩니다.”
부모는 은숙의 말이 고맙긴 했지만 평생 자식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은 죄를 질까봐 기어이 은숙을 농중으로 다니라고 했다.
그리하여 이튿날부터 은숙은 2년제 농중을 다니게 됐다. 농중을 다니면서도 은숙은 농망기만 되면 청가를 맡고 집에 달려와 부모를 도와 벼모 내기로부터 김매기, 가을걷이를 도왔다.
소낙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시 공안국에서 민경을 하는 강운룡과 옥순이 상순의 집에 놀러 왔다.
최옥순은 명옥의 넷째삼촌의 셋째딸이었는데 훤칠한 키에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이랑 꽤나 곱게 생겼다.
그녀는 간장물 같은 빗물이 벽을 타고 줄줄 내려 사발과 대야로 받아내는 시골의 초가집에 새 신랑을 데리고 온 것을 후회했다.
명옥은 사촌여동생보다도 새 생원을 보기 민망했다. 새 생원이 왔는데 집에 돌피 죽을 내놓고 대접할 만한 쌀과 풀채도 변변히 없어 궁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운룡은 허물하지 않고 사나이 대장부답게 능쟁이를 데쳐서 올린 채에 자기기 사온 술을 동서인 상순과 함께 마주 앉아 쭉쭉 마셨다.
“형님도 한잔 내오.”
운룡이 술병을 쳐들고 상순의 잔에 부으려고 했다.
“아니, 난 한잔만 마셔도 취하오.”
상순은 메부리코 운룡을 마주 보며 정색해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앉았다.
채가 없어서는 나무리지 않던 운룡은 형님이 술을 받지 않자 상을 찡그렸다.
“형님, 원래 술을 마시지 않았소?”
“아니오.”
상순은 술병을 받아 운룡에게 부어주고 자기 잔에도 좀 부었다.
“이전엔 좀 마셨소. 헌데 사회 공작을 하면서 술을 점점 마시지 않았소. 이젠 습관이 돼서 술이란 말만 해도 얼굴이 벌개나면서 취한단 말이오.”
그러자 운룡은 “형님, 한잔만 드오.”라고 했다.
상순은 마지못해 한잔을 드네 했다.
운룡은 술이 서너 잔 들어가자 말이 많아졌다.
“그럼 그렇겠지. 사회 공작을 하려면 술도 마시는게 옳소. 술도 교제 도구인데 술을 마시지 않으면 교제가 없이 어떻게 공작을 하오. 옆에 친구가 없고 기반도 없이 어떻게 사오? 참.”
그러나 상순은 자기 관점이 있었다.
“술을 마시면 실수를 할 까봐 마시지 않았소. 지금 세상 정치풍파가 얼마나 사납소? 혀를 잘못 놀리면 우파 모자를 쓰고 투쟁받고 노동개조를 해야 하는 판이 아니고 뭐요?”
운룡도 술 맛이 없어 술잔을 내려놓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오늘 점심상에야 정치 투쟁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두 난 형님이 영월구 공안국 국장을 한적이 있어 마음이 통하오.”
“가난한 때 와서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 미안하오. 이 다음 내 농사를 잘 지어놓으면 감자랑 가지러 오오.”
“감사하오.”
운룡과 상순은 돌피죽을 한 사발씩 드네 마네 하고 그만두었다.
오후에 비가 멎고 날이 기적적으로 개였다. 운룡은 새 색시를 태우고 시내로 쥉쥉 돌아갔다.
명옥은 옹색한 살림에 손님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운룡이 가자 그녀는 한숨을 호- 길게 내쉬었다.
그녀는 간장물 같은 빗물이 흘러내리는 바람벽과 집 손질도 방정히 하지 않는 남편을 번갈아 보며 한숨만 호-호- 내쉬었다.
상순은 바깥에서 정신을 놓고 삽으로 물도랑을 파면서 장난 치는 덕돌을 내다보며 명옥에게 말했다.
“저 자식, 이젠 일곱살을 먹었으니 학교에 일찍이 붙이기오.”
“저 어린 걸 어떻게 붙이오? 괜히 큰 애들한테 얻어맞기나 하겠소.”
명옥은 가마를 부시다가 돌아앉았다.
“일찍이 공부를 시켜야 남의 애들보다 셈이 일찍이 드오.”
“그래도 그렇지. 너무 어리오. 급하기도 우물터에 가서 숭늉을 달라 할 지경이구먼.”
명옥은 내키지 않아 했다.
허나 상순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저걸 보오. 집에서 저런 장난이나 했지. 배울 게 있소. 애비 어미 삽이나 괭이로 땅을 파는 게나 배웠지. 언제 철이 들겠소?”
상순은 명옥이 반대해도 일하고 돌아오면 덕돌을 불러 품에 안고 목에 팔베개를 베워주고 이러루한 물음에 대답하는 것부터 배워 주었다.
“우리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름이 뭐냐?”
“덕돌.”
덕돌은 까만 집안에서 아버지 물음에 잘 대답도 했다.
“성은 뭐냐?”
“김씨입니다.”
“본은 뭐냐?”
“영월 김씨.”
“몇 살이냐?”
“일곱 살입니다.”
“만으로는 몇살?” “여섯살입니다.”
“아버지 이름은 뭐냐?”
“아버지는 김상순, 어머니 이름은 최명옥입니다.”
“허허, 그 자식 총명하구나.”
상순은 아들을 꼭 껴안으면서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우리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담 공부를 잘 해라. 응?”
“예, 아버지와 어머니 말씀을 잘 듣고 공부도 일등 하겠습니다.”
상순은 “그래야지. 아버지 몫까지 네가 다 공부를 해야 한다. 알만하지?”라고 다짐을 땄다.
덕돌은 아버지 품에 안긴 채 “예. 그런데 아버지, 내 어째 아버지 대신 공부를 해야 합니까?” 하고 천연스레 물어서 누나들도 구들에 누워 듣다가 키득거렸다.
“이 자식아, 아버지와 어머닌 집이 가난해서 어려서부터 일하다나니 학교로 가지 못했단다.”
“허, 별나다.”
“넌 아직 잘 모른다. 그땐 집에 먹을 쌀도 없는데 언제 학교에 낼 돈이 있었겠니? 넌 아버지와 어머니가 굶어 허리띠를 매고서라도 공부를 시킬 테니 공부만 잘 해라. 알았지?”
“예, 공부를 잘 하겠습니다. 날 학교에 보내 줍소.”
“됐다. 이젠 입 다물고 자라.”
“예.”
까만 집안은 조용해졌다.
이윽고 덕돌은 꿈나라로 들어가 코를 다랑다랑 곯았다. 그는 꿈에 학교로 가서 공부하는 푸른 꿈을 꾸었다.
덕돌은 꿈도 많았지만 일도 많이 치는 개구쟁이였다.
이튿날, 상순과 명옥이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었다.
덕돌은 두 손을 벌리고 달려오며 소리쳤다.
“엄마, 엄마, 내 고양이를 죽였소.”
“뭐라고?”
명옥은 덕돌을 안고 집 울안으로 들어서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글쎄 울바자에 고양이 목을 매달아놓지 않았겠는가?
“아니, 이 자식아,”
상순은 말이 더 나가지 않았다.
덕돌은 울안에 있는 윗집의 철주를 가리키면서 종알거리었다.
“내 양, 저 철주 말대로 고양이를 다 죽였소.”
“뭐? 철주 시키는 대로 했어?”
“양, 철주 말하는 게 자기 집 고양이를 죽이는 게 영 재미있더라고 하지 않겠소?”
“이 놈 새끼! 철주가 똥 먹으라면 똥 먹겠니? 줏대 없이!”
상순은 아내 품에 안긴 덕돌을 욕하면서 엉덩이를 찰싹 쳤다.
그런데 윗집 철주가 제 풀에 놀라 겁을 집어 먹고 “아이쿠머니!” 하고 종 주먹을 쥐고 뺑소니쳤다.
덕돌은 한 대 얻어맞고 와 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상순은 집에 들어간 후 덕돌을 보고 을러멨다.
“이후엔 철주하고 놀지 말라.”
“심심한데 그래 누구와 놀라오?”
“그 애 할아버지부터 애비까지 다…”
명옥이 외까풀 눈을 치뜨자 상순은 말끝을 삼켜버렸다. 윗집 철주라는 애는 역사문제가 있는 이화영의 손자요 병진의 아들이었는데 어찌나 쏠락거리면서 말썽을 일으키는지 동네방네에 소문이 있었다. 방아 호박에 똥을 싸지 않겠는가, 똥을 누는 애를 물 앉혀 놓지 않겠는가. 별의별 말썽을 다 일으켰다. 그런 불량한 철주와 함께 놀면 덕돌도 나쁘게 번질까봐 근심됐다.
설상가상으로 병진은 또 먼 집안 집 조카사위지만 심술이 바르지 않아 상순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날, 병진은 자기 집 뿔이 위로 난 둥글소 뿌죽이와 조개덕 5대 황시연이네 황소와 싸움을 시켰다. 그리하여 5대의 황소가 그만 뿌죽이한테 박혀 한쪽 뿔이 빠져 피를 줄줄 흘렸다.
그때 상순이 달려가면서 말렸다.
“조카사위, 이거 무슨 짓이오? 한창 밭갈이를 할 소들을 죽일 예산이오?”
뿌죽이와 5대의 황시연네 황소는 서로 떠받으며 싸워 피를 흘리면서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상순은 황급히 벼 짚단을 둬 개 얻어다가 불을 달아 뿌죽이와 5대 황시연네 황소 사이에 따라가면서 들이댔다. 활활 타오르는 불에 대가리 털이 타들어가서야 소들은 싸움을 멈추고 갈라졌다.
허나 5대의 황소는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며칠 후에 죽고 말았다.
5대의 황시연을 비롯한 사원들은 병진을 욕하면서 대대 당총지 서기이자 치보 주임인 상순을 찾아와 떠들어댔다.
“병진은 마땅히 황소 값을 내게 해야 하오"
상순은 파출소에 알렸다. 파출소 민경이 와서 조사한 후 병진을 보고 죽은 황소 값 800원을 내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때 돈으로 800원은 적지 않은 돈이었다. 허나 남의 소를 싸움시켜 죽였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내지 않으면 안 됐다. 병진은 죽인 황소 고기를 팔아 얻은 돈을 제하고 나머지 300원을 물어야 했다. 불시에 돈을 낼 수 없어 늙은 비술나무 밑의 두 간 집을 팔지 않으면 안 됐다. 동지섣달에 허망에 나앉게 된 병진은 핍박에 의해 양산에 오르듯이 부득불 한족들이 사는 조개덕에 가서 토성안집 한족 장지주네 사랑방을 빌어 곁방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 일로 한이 맺힌 병진은 쩍하면 마을 사람들과 심술을 부리었던 것이다. 상순은 조카사위지만 늘 퉁방울눈에 웃음 짓고 “아즈바이, 아즈바이.”하면서 다가드는 병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덕돌이 병진의 아들 철주와 노는 것도 말렸던 것이다.
     상순은 애를 먹이던 덕돌을 생각하면서 도롱도롱 코를 골며 자는 덕돌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꼭 끌어안았다.
“여보, 얘를 인차 학교에 붙이기오.”
“양, 알았소. 밤도 깊었으니 어서 쉬오.”
두 간 자리 집안에는 마흔에 낳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덕돌에 대한 상순과 명옥의 푸른 꿈이 그윽한 향기를 풍기면서 어둠을 타고 바깥으로 나가 하늘 끝까지 훨훨 날아오르고 있었다.
상순은 낮에 밭일을 하고 돌아오면 저녁에 덕돌에게 공책을 매준다, 자대를 대고 줄을 쳐준다 하면서 무등 관심했다.
그는 또 “기윽 ㄱ, 니은 ㄴ…”를 가르친다 하면서 덕돌을 학교로 붙일 준비교육을 했다.
그때 상순이네 가난한 생활형편에서 덕돌에게 새 공책 하나 갖춰준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상순이네 대학을 간 맏딸 순자를 내놓고 홍자와 신자 그리고 성숙은 늘 공책이 아까와 공책에 연필로 살짝 가늘게 첫 벌을 썼다. 첫벌을 다 쓰면 고무가 없어 대신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첫 벌에 살짝 쓴 글씨를 살살 지우고 좀 더 진하게 두 벌로 썼다. 나중에는 만년필로 세벌 글을 썼다. 이렇게 공책 하나에 세벌을 쓰곤 했다. 그러니 공책 하나가 남들의 공책 세개 노릇을 담당한 셈이었다.
상순이 대대 사무실로 나가면 대신 명옥이 덕돌에게 1, 2, 3, 4를 가르치지 않으면 손을 꼬부렸다 폈다 하면서 “하나에다 하나를 합하면 몇이냐?” 하고 물으면서 산수도 가르쳤다. 부모가 없을 때에는 누나들인 은숙과 홍자 그리고 신자, 지어 덕돌보다 네 살 밖에 이상이 아닌 성숙까지 덕돌을 가르쳤다.
총명한 덕돌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들이 하나를 배워주면 둘을 알 지경이었다.
“이젠 학교에 갈만하다.”
명옥은 총기 좋은 덕돌을 대견스레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그녀는 양손에 덕돌과 시조카 네 아들 성욱의 손을 잡고 즐겁게 함흥소학교로 찾아갔다.
“엄마, 우리 어디로 갑니까?”
“너희들을 학교에 붙이러 간다.”
“학교에?”
“응.”
“야, 좋다.”
덕돌은 엄마 왼손을 잡고 외발띰을 하며 좋아하는 성욱을 보면서 “야, 성욱아, 우리 학교에 간단다. 얼마나 좋니?” 하고 입이 함박만 해졌다.
성욱도 “그래, 우린 이젠 학생이다. 야, 야!” 하고 고사리 손을 쳐들고 흔들면서 종알거렸다.
덕돌은 엄마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엄마, 이제 학교에 가면 어째야 합니까?”
“선생님이 묻는 걸 잘 대답해야 한다. 그래야 학교에 붙을 수 있다.”
성욱은 할머니를 쳐다보면서 “선생님이 뭘 묻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름이랑 나이랑 부모 이름이랑.”
“아, 알만합니다.”
성욱은 자신 있게 말했다.
과연 명옥이 두 애를 데리고 교무실에 들어서자 교무처 선생님은 덕돌에게 진짜 성과 이름이랑 나이랑 부모의 이름이랑 이것저것 묻더니 “순자 동생이구먼.”라고 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순자의 동생들은 모두 총명해 공부를 잘 합니다. 덕돌은 나이가 어려도 학교에 붙여도 되겠습니다.”
그 다음 성욱의 차례였다.
선생님이 덕돌과 똑 같이 묻자 성욱도 다 척척 대답했다.
나중에 선생님은 그 애들에게 노래를 시켜 보았다.
그러자 덕돌과 성욱은 목청을 돋구어 노래를 불렀다.
 
고개고개 고갯길
학교 가는 길

 
시간을 보고 교무실에 들어온 오옥선 선생님을 비롯한 여선생들은 덕돌과 성욱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박수쳤다.
선생님들이 춰주자 덕돌은 사기 났다.
“선생님, 난 한 자릿수 합하기도 할 줄 압니다.”
“그래?”
교무처 선생님은 신기한 눈길로 어린 덕돌의 초롱초롱한 깜장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하나에 하나 합하면 몇이니?”
“둘입니다.”
“하나에 셋을 합하면?”
“넷입니다.”
그 다음에는 선생님이 묻기도 전에 덕돌은 아빠와 엄마 그리고 누나들이 배워준 걸 내리 외웠다.
“…아홉에 아홉을 합하면 열여덟입니다.”
“와-”
선생님들은 입을 하 벌리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교무처 선생님은 성욱을 보고 “너도 할 수 있지?” 하고 물었다.
성욱은 고사리 손으로 뒷덜미를 긁적거리면서 “난 하나에 하나를 합하면 둘이란 것 밖에 모릅니다.”라고 했다.
교무처 선생은 머리를 끄덕였다.
“둘 다 학교에 붙입시다. 그런데 너무 어려서 한 살이나 둬 살씩 더 큰 애들 속에서 삐칠 수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명옥은 “근심하지 마십시오. 공부만 잘 하면 됩니다.”라고 했다.
그리하여 덕돌과 성욱은 일곱 살에 함흥소학교에 붙었다. 조개덕에서 일곱 살에 학교에 붙은 애들은 그들 외에 허동림과 철주가 더 있었다.
한 마을에 사는 금옥은 조카 덕돌을 고와 항상 맛나는 음식만 생기면 자기 집에다 업어다가 먹였다.
어느 하루 이른 아침이었다.
금옥은 일찍이 찾아와 아직 잠에서 깨나지도 않은 덕돌을 옷을 입히더니 업고 자기 집으로 향했다.
“고모, 오늘은 뭘 맛있는 걸 했습니까?”
금옥은 잔등에 업힌 덕돌의 엉덩이를 다독이면서 “우리 큰 조카님이 좋아하는 두부를 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야, 맛있겠다.”
덕돌은 벌써 하얀 두부를 먹을 생각을 앞세우면서 군침부터 삼켰다.
집에 들어서면서 금옥은 “우리 큰 조카 왔습구마.” 하고 말하면서 덕돌을 잔등에서 내리어 놓았다.
고모부 최학철은 퉁방울 같은 눈에 상냥한 웃음을 띠우면서 반겨맞았다.
“어이구, 우리 덕돌이 왔구나.”
철국은 말을 타고 집 문 앞을 지나가다가 반겼다.
“덕돌이 왔냐?”
“양, 형님! 나도 말을 탈까?”
덕돌은 마구 바깥으로 나가면서 소리쳤다.
급해 맞은 금옥은 따라나오면서 소리쳤다.
“덕돌아, 말은 이담 크면 타고 들어와 두부나 먹어라.”
“예.”
“에이유, 우리 큰 조카는 말도 참 잘 들어.”
금옥은 집에 되들어오는 덕돌에게 먼저 치하가 끝이 없었다.
그는 김이 문문 나는 네모 난 함지 안의 두부를 식칼로 쭉쭉 줄을 쳐 끊으면서 이렇게 되뇌었다.
“우리 덕돌은 모나게 공부를 잘하라고 귀퉁이모를 주자.”
금옥은 네 귀의 두부모를 몽땅 사발에 담아 덕돌에게 주었다.
그러자 인자누나는 외사촌동생이 귀여워 웃음을 보냈다.
덕돌보다 한 살 지하인 인숙과 네 살 지하인 국범은 자기네도 귀퉁이모를 먹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덕돌은 자기 사발의 두부모를 하나씩 나눠 주면서 “옳다, 너네도 먹고 공부를 잘 하자.”라고 했다.
그러자 고모부 학철은 덕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혀를 끌끌 찼다.
“덕돌은 속에 영감이 들어앉은 어린 영감이야!”
집안에서 항상 덕돌을 보고 공부를 잘 하라고 치하해주고 타이른 덕분인 것 같았다.
덕돌과 성욱 그리고 동림은 일곱 살에 학교에 붙었지만 나이가 두 살이나 이상인 애들보다도 공부를 잘 했다.
덕돌은 항상 100점을 맞은 시험지를 타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아빠와 엄마에게 바쳤다.
큼직하게 쓴 100점 맞은 시험지를 들고 보면서 상순과 명옥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느 날 점심, 덕돌이 함흥소학교에 갔다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환성을 질렀다.
“엄마, 엄마. 난 달래기 해서 2등을 했습니다.”
덕돌은 공책 하나를 어머니한테 내밀면서 “그래서 이 공책을 타왔습니다.”라고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명옥은 죽을 끓이다가 덕돌을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물었다.
“우리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참말 대단하구나. 그래 몇이 달았니?”
“둘이 달았습니다.”
“뭐라고?”
명옥은 상을 찌푸렸다.
“둘이 달아 2등이면 꼴찌 아니야?”
“예?”
덕돌은 자랑을 한다는 것이 꼴찌라고 하자 울먹해졌다. 그러다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엄마, 그런 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숱한 애들이 달았는데 나와 성욱만은 끝까지 달았습니다.”
“그래 달래기 시작할 때 다른 애들도 있었니?”
“예. 처음에는 일곱이 달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애들은 끝까지 닫지 않았는데도 뭐?”
덕돌은 입이 뾰족해 종알거렸다.
“다른 애들은 끝까지 닫지 않고 뭘 했니?”
명옥이 이상해 하자 덕돌은 웃으면서 뒷말을 이었다.
“다른 애들은 닫다가 중간쯤에 가서 ‘엄마!’ 하고 소리치면서 응원하는 엄마한테로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가 안겼습니다.”
“그랬니?”
“예.”
“호호호. 거 참 우스운 일이구나.”
“다른 애들은 엄마한테 가서 사탕을 달라해 먹었습니다. 헌데 성욱과 나는 엄마네 응원하러 오지 않은 바람에 오 선생이 소리치는 흰 끈을 든 데로 끝까지 달려갔습니다. 그래서 이 공책을 상으로 탄 겁니다.”
덕돌은 엄마 품에 안겨서 공책을 만지작거리며 종알거렸다.
“허허, 정말 우리 아들 장하다! 공부도 잘하지 달래기도 끝까지 달아 상까지 탔구나.”
명옥은 늘그막에 낳은 아들이 참말 장하기만 했다.
어느 날 덕돌은 강변에 가서 놀다가 물이 찰랑대는 한쪽 고무신짝에 모래무치 한 마리를 담아 들고 코노래도 흥겹게 흥얼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엄마, 내 물고기를 잡아 왔습니다.”
“뭐라고? 우리 아들 참말 장하구나. 이번에는 물고기를 다 잡아 왔구나.”
명옥은 덕돌이 고무신짝에 담아온 모래무치를 희구해 들여다보며 덕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상순이 담배를 말아 붙이면서 씨물씨물 웃으면서 빈정거렸다.
“덕돌아, 그 물고기 눈이 멀지 않았니?”
덕돌은 그 말을 딱 곧이듣고 고무신짝 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면서 “아니, 눈이 둘 다 있습니다. 어디 상한데도 없습니다.”
“허, 이상하다. 두 눈이 다 있는 물고기 어떻게 네 손에 다 잡혔을까?”
그러자 덕돌은 사실대로 말했다.
“아버지, 요건 동림이 잡은 물고기를 한쪽 고무신짝과 바꾼 겁니다.”
“뭐라고?”
그제야 명옥은 덕돌의 맨 발을 내려다보고 소스라쳤다.
“요놈 새끼야! 한쪽 고무신짝을 어쨌니?!”
명옥은 덕돌의 엉덩이를 쨕쨕 치며 소리쳤다.
“동림을 주고 이 모래무치를 가졌습니다.”
“아이고, 요놈새끼를 어쩌니?”
명옥은 덕돌의 손에 든 고무신짝을 탁 치며 욕했다.
그 바람에 덕돌은 왕 울음보를 터뜨렸고 모래무치가 땅 바닥에서 팔딱팔딱 뛰었다.
상순은 세귀눈을 치뜨더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동림이 어디 있니?”
“저기 태평강에 있습니다.”
덕돌은 손가락으로 문 밖을 가리켰다.
“가자!”
명옥은 덕돌의 손을 잡고 태평강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때 동림은 한창 태평강가의 모래톱에서 물도랑을 파면서 놀고 있었다.
명옥은 동림을 보자 황급히 “야, 덕돌의 신을 어쨌니?” 하고 물었다.
그러자 동림은 대수롭잖아 하면서 “내 모래무치와 바꾼 신이라고 저기 물에 배처럼 동동 띄워 보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뭐라고?!”
명옥은 어이없어 동림을 보고 소리쳤다.
“아이고, 그 신을 어떻게 산 게라고 그러니?”
“내 신인데 무슨 내 마음대지. 뭐.”
명옥은 물도랑을 파면서 거들떠보지도 않는 동림한테서 눈을 떼더니 출렁거리면서 흐르는 강물을 살피면서 아래쪽으로 달려갔다.
허나 명옥이가 강물을 따라 2, 3리나 내려가면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덕돌의 고무신짝은 보이지도 않았다.
화가 날대로 난 명옥은 돌아와 덕돌의 엉덩짝을 마구 패댔다.
“너 다시 신짝을 가지고 아무 거나 바꾸겠니?”
“다신 아이 그러겠습니다.”
덕돌은 엉엉 울면서 다짐했다.
명옥은 억이 막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통곡치는 덕돌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덕분에 덕돌은 온 여름과 가을에 맨 발 바람으로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안 됐다. 서발 막대를 휘저어도 거칠 것 없이 살림형편이 가난한 상순이네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 고무신짝 하나 사줄 돈도 없었던 것이다.
사실 우에서 생산대에 보조금이 내려와도 대공무사한 상순은 마을에서 제일 가난하나 다름없으면서도 자기에게 차례진 보조금을 항상 마반산 집 할머니거나 오보 호와 열사가족인 오옥선의 부모에게 더 드리고 일전 한 푼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귀여운 아들에게 고무신을 사줄 돈도 없었던 것이다.
명옥은 돈을 꿔서 검정고무신을 사주었다. 그 돈을 무느라고 후에 명옥과 은숙은 숱한 가마니를 짜야 했다.
명옥과 은숙은 가마니를 짜다가도 둬 뽐 짜고는 쉬면서 역을 틀기를 시합했다. 그런데 항상 명옥이 은숙에게 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덕돌은 엄마가 졌다고 “왕~”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덕돌이 우는 것을 보려고 은숙은 제꺽 역을 틀어 엄마를 지워놓고 덕돌을 놀렸다.
“또 울어. 울어! 이 울보야. 해해해.”
은숙이 이렇게 놀리면 죄꼬마한 덕돌은 “엄마, 기실 엄마 이겼소. 빨리 틀어 뭘 하오? 저렇게 밉게 틀면서. 엄마 튼게 더 곱소.”라고 했다.
그 말에 명옥과 은숙은 둘 다 가마니를 짜다가 그만두고 덕돌이 대견해 마주 바라보며 웃었다.
명옥은 은숙과 숱한 가마니를 짜서 덕돌에게 새 신을 내밀면서 신신당부했다.
“이담부터 다시는 신이나 옷으로 다른 걸 바꿔선 안 돼. 온 동삼에 맨발로 어떻게 학교로 다니니?”
덕돌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그때부터 덕돌은 신 건사를 잘하느라고 무척 왼 심을 썼다.
항상 어느 군일 집으로 가도 두 짝 신을 신끈으로 한데 무어 문 꼬리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다.
그러자 집안 집 어른들은 문 꼬리에 대롱거려 불편해 하면서도 덕돌을 희구해 했다.
“조놈은 뭘 닮아서 신 건사를 이렇게 무섭게 하니?”
“쯧쯧쯧, 애는 무서운 애오.”
“저 앤 고무신으로 물고기를 바꿔 먹더니 다신 신을 잃어먹지 않겠소.”
“허허허.”
“호호호.”
어른들은 덕돌과 문고리에 땅땅 매단 신을 번갈아보면서 웃고 떠들어댔다.
어느덧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겨울이 다가왔다.
다른 애들은 털모자를 쓰고서도 귀가 얼까봐 털실장갑을 낀 두 손으로 귀를 잡고 학교를 다녔다. 허나 덕돌은 털모자가 없어 항상 네 귀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귀를 얼면서 학교를 다녔다.
명옥은 학교로 갈 때면 항상 무릎을 꺾고 쪼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덕돌의 두 볼을 싸쥐고 신신당부했다.
“덕돌아, 귀 시려도 절대 울지 말라.”
“예.”
“울면 눈물이 얼어붙으면 눈을 뜨지 못해.”
“예? 눈을 뜨지 못한다고?”
“응. 그래. 그리고 귀가 시려도 손으로 만지지 말라. 귀가 더 언다.”
“예. 꼭 그럴게.”
덕돌은 집에 찾아온 성욱과 함께 학교로 떠나가려다가 몸을 돌렸다. 명옥은 학교로 가라고 손을 저었다. 그런데 덕돌이 쪼르르 되 달려왔다.
“왜?”
명옥은 이상해 했다.
덕돌은 성욱을 가리키면서 “엄마, 나도 성욱이 쓴 거 같은 털모자를 사주오.”라고 하면서 몸 동아리를 배배 탈면서 떼를 썼다.
“얘…”
명옥은 코마루가 시큼해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 돈이 없어 털모자 하나 사주지 못하는 어머니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가슴을 쇠 깍쟁이로 마구 허비는 것 같이 아팠다.
“후에 엄마 돈을 많이 벌어서 사주마.”
명옥은 덕돌을 겨우 달래며 동구 밖에까지 손을 쥐고 가서 학교에 보내고야 돌아서면서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어깨를 들먹였다.
덕돌은 수업이 끝나면 엄마 부탁대로 학교 복도로 해 넷째누나 신자네 교실에 가서 문을 똑똑 두드렸다.
선생님이 나오면 “신자누나를 찾습니다.”라고 했다.
신자는 나와서 덕돌이 가져온 네 귀 수건으로 초롱초롱한 눈을 내놓고 부상병처럼 머리를 싸매주었다.
박달나무가 얼어 터질 맵짠 추위에 덕돌은 귀가 얼어들어 쨍 아파나 참을 수 없었다. 허나 눈물을 흘리면 얼어붙어 눈을 뜨기 어렵다던 엄마 말이 떠올라 억지로 눈을 크게 뜨고 집으로 달음박질쳐 돌아오곤 했다.
벌써 이맘때면 학교에서 아들이 돌아오겠다고 명옥은 동구 밖에서 기다리다가도 포대기에 아들을 싸안고 집으로 돌아 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허나 엷은 수건은 귀여운 아들애의 얼어드는 귀를 보호해줄 수 없었다. 덕돌은 끝내 귀가 얼어들어 귀방울에서 진물이 흥건히 흘러내렸다.
그 살색을 잃고 거멓게 번져가며 진물이 흐르는 아들의 귀를 보는 상순과 명옥은 칼로 어이는 듯이 마음이 아팠다.
어느 하루 상순이가 당 지부 회의를 열고 당원들에게 “지부생활”에 난 상급의 문건정신을 전달하려고 찾으니 없지 않겠는가!
“아니, ‘지부생활’이 어디로 갔어?”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그런데 농궤 뒤 벽밑에 쌓여있는 딱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지부생활”을 뜯어 만든 딱지가 아니겠는가!
“덕돌아, 여기 오라!”
독이 서린 아버지의 세 귀 눈을 바라보면서 덕돌은 겁부터 집어먹었다.
“요놈새끼, 책을 뜯어 딱지를 만들다니?”
상순은 덕돌의 귀 쌈을 찰싹 갈겼다.
덕돌은 대뜸 얼얼한 얼굴을 만지면서 통곡을 쳤다.
그러자 명옥은 “애를 어째 이렇게 모질게 치오?”라고 기절 난 소리를 치면서 덕돌을 훌 안아갔다.
상순은 세 귀 눈을 흘기면서 “애를 그렇게 역성을 들어서 교육이 들어가겠소? 이리 보내오.”라고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럼 때리지 말고 말로 타이르오. 어째 쩍하면 그렇게 치오?”
“잔말 말고 얼른 이리 보내라!”
호랑이처럼 호통 치는 남편의 성미를 아는지라 명옥은 울며 겨자 먹기로 덕돌을 내리어 놓고 그 옆에 앉아 또 칠까봐 지켰다.
상순은 덕돌을 보고 어조를 낮춰 “이 책은 내가 보는 중요한 책이다. 딱지를 만들어 책이 없어 어쩌니? 이후에는 다시 책을 찢거나 딱지를 만들어선 안 된다. 알겠니?” 하고 타일렀다.
덕돌은 고사리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말로 대답해라. 다시 그러겠니?”
“아이 그러겠습니다.”
“응, 그래야지. 그래야 훌륭한 애지. 우리 덕돌은 공부도 잘 하고 아빠 엄마 말도 잘 듣지? 응?”
“예.”
“그럼 내 묻는 말을 대답해라. 거짓말을 하면 못 쓴다. 알았지?”
“예.”
“딱지를 만들고 나머지 책 종이는 어쨌니?”
덕돌은 아버지 눈치를 할끔 쳐다보면서 “성욱에게 딱지를 만들라고 줬습니다. 우리 둘이 딱지치기를 놀자고.”라고 대답했다.
“응. 알았다.”
그 자리로 상순은 한집 건너 뒷집에 있는 7촌 조카 경학이네 집에 가서 성욱에게서 딱지를 찾아왔다.
상순은 덕돌이 앞에서 딱지를 싹 풀어 페지 수를 맞춰 책을 다시 맺다. 옆에서 초롱초롱한 포도알눈으로 아버지가 책을 매는 것을 여겨보면서 덕돌은 속으로 그 책이 아버지가 정말 읽기 좋아하는 책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 잘못을 새삼스레 느끼었다.
그 후부터 덕돌은 다시는 책을 찢어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책이라면 보배처럼 건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저 책이 하늘만큼 크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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