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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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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소설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6)
2017년 12월 27일 11시 40분  조회:1549  추천:1  작성자: 김장혁




                        10. 달밤의 추억
동녘하늘이 푸름히 밝아오면서 거무칙칙한 하늘을 파란 물감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성호는 온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창 밖에서 기승을 부리는 눈보라가 윙-윙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새우잠을 잤다.
그가 피뜩 눈을 떠보니 벌써 아침 해살이 창문에 새겨진 천태만상의 성에꽃무늬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어제 저녁에 순희 결혼식에 만취하도록 마신데다 제대로 자지 못해 머리가 좀 뗑 해나는 감을 느꼈다. 어려서 사랑의 어섯눈이 뜨기 시작해서 그렇게 사랑했던 첫사랑 순희를 철주에게 보내고나니 아쉬웠다. 하지만 홀가분하기도 했다. 리상과 전도를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고 생각됐다.
(이래서 사랑은 요술쟁이요, 요귀라고 하는구나. 난 지금 사랑을 사닥다리로 쓰려고 하지 않는가.)
그는 스스로도 어이없어 피씩 웃으면서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성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사랑에 어섯눈이 뜨기 시작하면서 녀자애들을 너무 많이 좋아한 것 같았다. 진짜 사내 감정은 산꼭대기에 부어놓은 물과도 같아 산발을 타고 여러 갈래로 쫙 흩어져 흐르는 것인가. 그는 얼굴이 좀 반반한 처녀애만 보면 이것 저것 툭툭 건드리기는 잘 건드렸지만 순희처럼 남에게 빼앗기거나 넘겨주는 일이 많았다.
은영을 하늘땅이 울게 사랑했지만 성사하지 못하고 승호한테 빼앗기지 않았는가!
성호는 JH시에 있는 둘째누나 춘자네 집으로 놀러 갔다가 또 매형 홍수의  외조카벌 되는 영화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좋아했다.
그때 춘자는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성호가 연변에서 기차를 타고 간 날 춘자는 탄광마을에서 교원학습반에 참가하고 집에 없었다. 외조카 정춘과 정일을 보고 싶은데 둘 다 소학교에 가고 없었다.
정춘과 정일은 부모의 말을 아주 잘 들었다. 특히 아버지를 똑 떼닮은 정춘은 새물새물 웃을 때면 얼마나 귀여운지 몰랐다. 어머니가 길에서 마차나 소수레가 오면 걷지 말고 길옆에 서있으라고 했다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500메터 밖에서 오는 마차를 보고 미리 길옆에 서 있었다. 어머니가 멀다고 일없다고 했지만 어머니 말한대로 한다면서 마차가 지나갈 때까지 길옆에 서서 기다렸다. 8살 밖에 안되는 정춘은 늦잠꾸러기였다. 그러나 체육위원을 맡은 그는 추운 겨울에  항상 제일 먼저 학교에 가서 난로불을 피웠다. 후꾼후꾼한 교실에 들어선 담임선생님과 학생들은 매우 감동됐다. 홍수가 술을 마시기 좋아하는 걸 아는 정춘과 정일은 서로 앞장서 현관에 나가 술을 병에 퍼담아가져다 드렸다.
성호는 빈집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집 열쇠를 가지러 누나를 찾아 소학교로 갔다.
그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녀교원들 속에서는 모두 "우~와~ 잘 생겼어." “멋져!” 하고 환성이 터졌다.
그중 나이 어린 한 처녀교원은 새물새물 웃으면서 "김선생은 이런 미남동생을 뒀어요?" 하고 감탄했다.
춘자는 씨물 웃으면서 “영화야, 우리 동생한테 잘 해줘라.” 하고 씨물 웃었다.
“그럼요. 친해도 괜찮지요?”
“처녀총각들 일을 난 몰라.”
영화라는 그 처녀교원은 알고보니 정춘의 담임교원이였다. 그녀는 난로 우에 놓인 물주전자를 기울여  컵에 김이 몰몰 나는 물을 따라 성호한테 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성호가 영화의 하얀 손에서 컵을 받아쥐면서 피뜩 보니 어글어글한 눈이 정신 나게 빛나고 있지 않겠는가.
무더운 여름 어느날 밤, 눈썹 같은 초생달이 동녘하늘에서 고기비늘 구름 속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성호는 누나의 집과 길을 하나 사이 둔 영화네 집 주위를 맴돌면서 영화를 만나고 싶은 충동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이 찾아가기 어색해 머뭇거렸다.
이때 영화네 집문이 벌컥 열리면서 열대여섯살 돼보이는 영화 남동생 송철이 뛰여나왔다. 어데 가 싸우다가 맞았는지 송철의 눈덕에 붕대와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그래도 송철은 친척이라고 정춘과 정일이 애들한테 맞기만 하면 역성을 들어주군 했다.
“너 또 공부를 하지 않겠어? 어디로 가!?”
뒤에서 영화가 비자루를 쥐고 쫓아나왔다.
그녀는 희미한 달빛 속에 서 있는 성호를 발견하고 “어머!” 하고 주춤 멈춰 서면서 비자루를 뒤에 감췄다.
“언제 왔어요? 어서 들어와요.”
성호는 뒤덜미를 긁적이면서 “아니, 아니요. 집식구들이 보면 무슨 일인가 하겠소.” 라고 했다.
“아니, 아무도 없어요. 어서 들어와요.”
성호는 “아니, 아니.” 하면서도 영화를 따라 처마가 낮은 초가집에 들어갔다.
촉수 낮은 전등을 켜놓아 그런지 집 안은 퍽 어두웠다. 집 안에는 진짜 서발 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였다. 손바닥만한 남북쪽 높은 한족구들 우에 궤짝 하나씩 덩그러니 놓여 있을뿐 그렇다 할만한 가정기물도 보이지 않았다. 벽에는 옷이 몇견지 걸려 있었다.
“부모들이 보면 뭐라 하지 않을가요?”
“우메- 뭐 도둑질이라도 했나요? 왜 그리 겁나 해요?”
영화는 바닥에서 서성거리는 성호를 보고 구들을 가리키면서 “어쩌다  왔는데요. 앉아요.”라고 하면서 닦은 해바라기를 사발에 담아 가져왔다.
“자요. 우리 오누이뿐이래요. 부모도 없어요.”
“그럼 부모는 어디에 일하러 갔소?”
순간 영화는 얼굴색이 어두워지더니 어글어글한 눈에 침울한 기색이 피여올랐다.
“부모는 우리 오누이를 두고 모두 일찍 돌아갔어요. 그런데 저 종수는 공부를 통 하기 싫어해요. 쩍하면 싸움질만 해요.”
“오- 미안하오. 아픈 상처를 다쳐놓아서.”
영화는 돌아서서 손등으로 눈물을 쓱 닦더니 돌아서면서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괜찮아요.”
그녀는 성호 옆에 앉으면서 “연변 말씨는 어쩜 그렇게 듣기 재미있어요?” 하고 화제를 돌리며 어글어글한 눈으로 마주 보았다.
(정말 예쁘구나.)
성호는 부지중 “영화 말씨가 생긴 것처럼 곱소.” 하고 불쑥 말했다.
“호호호. 그래요? 이거 기장밥 한 대야 해드려야 하잖겠어요?”
성호와 영화가 한창 재미나게 얘기할 때 송철이 달려들어왔다.
“인사해라. 정춘의 외삼촌이야.”
“그래요? 안녕하세요?”
송철은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하고 주먹으로 누런 콧물을 씩 닦았다.
“얘, 종이로 콧물 닦아.”
영화는 필기장을 쭉 찢어 송철의 콧물을 닦아주었다. 송철은 나이에 비해 꽤나 훤칠하고 힘꼴을 쓰게 생겼다.
그는 성호를 뒤돌아보면서 “기실 우린 사돈이죠. 정춘의 아빠는 저의 이종륙촌 오빠거든요.”라고 했다.
그 말에 송철은 “아재네 처남이면 우리캉은 친척이겠네요.” 하고 성호를 보며 씨물씨물 웃었다.
“그래.”
영화는 성호를 돌아보면서 “얘는 어려서부터 부모 없이 자라서 친척이라면 좋아해요.”라고 했다.
영화는 대야에 빨래를 담아 이면서 “송철아, 숙제 해. 잉?”라고 했다.
송철은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영화는 성호를 보고 “집 안이 무더워서 바깥에 나가자요.”라고 했다.
성호는 영화를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눈썹달이 고기비늘 구름 속에서 나와 헤염치고 있었다. 성호는 빨래대야를 인 영화를 따라어디라 없이 걸어갔다.
마을 뒤로 좀 가니 달빛을 실은 희읍스름한 개울이 나졌다. 영화는 빨래대야를 내리려고 머리 우에 손이 올라갔다. 성호는 다급히 다가가 빨래대야를 받아 강가에 내려놓았다. 저도 몰래 영화의 손을 잡았다. 어쩐지 그 손은 그렇게 차고 처녀의 손답지 않게 터덜터덜한 감이 들었다.
“고마워요.”
영화는 얼른 손을 빼더니 강가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녀는 빨래를 강물에 훨훨 헹구어 넓적한 빨래돌 우에 올려놓고 방치로 투닥투닥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성호는 영화 옆에 있는 넓적한 돌에 앉아 영화가 빨래하는 걸 지켜보았다.
어디에선가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어대 밤의 정적을 더해주었다. 강물은 달빛과 무더위를 싣고 출렁출렁 흘러가고 있었다. 밤의 정적과 함께 무거운 침묵도 흘러갔다.
한참 후 성호는 “영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됐소?” 하고 물었다.
“처녀 나이 물어 뭘 하는데요?”
영화는 방치질을 멈추고 옆에 앉은 성호를 피뜩 보더니 빨래를 물에 활활 헹구었다.
“글쎄, 괜찮지요?”
“오빠부터 말해요.”
“21세.”
“호호호, 오빠구먼요.”
“얼마기에?”
“기어이 알아야겠어요?”
“말하오.”
영화는 나직이 “소녀 올해 19세 밖에 안돼요.” 하고 말하고는 방치로 빨래를 탕탕 쳤다.
“일찌기 학교에 갔나 보오.”
“집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시험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고중을 졸업하자마자 마을학교 민영교원으로 들어갔어요.”
“오~ 그랬구먼.”
성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는 첫눈에 정이 든 영화가 점차 불쌍해 저도 몰래 동정심이 스르르 생기는 감을 어쩔 수  없었다.
“민영교원이기에 농민이래요. 오빠 같은 대학생들이 부러워요.”
성호는 부지중 “아직 늦지 않았소. 대학시험을 치면 되지.” 하고 불쑥 말했다.
영화는 빨래를 훌훌 헹구어 대야에 담으면서 “대학시험이 그리 쉬워요? 제가  대학 가면 누가 학비를 대고 송철을 먹여 살린대요?” 하고 한숨을 호- 내쉬였다.
성호는 아무런 도움조차 줄 수 없어 계면쩍고 한스러웠다.
사람의 땀내를 맡은 모기들이 어둠 속에서 앵앵 엄습해왔다. 성호는 자꾸 손으로 종아리와 목을 짝짝 쳐댔다.
“모기 물어서 안 되겠어요.”
영화는 씻자고 내놓았던 옷을 하나 가져다 성호의 종아리에 감싸주었다.
모기는 앵앵- 계속 엄습해왔다. 옆에서 성호가 저도 몰래 자꾸 손으로 목이고 얼굴이고 쳐댔다.
“안 되겠어요. 돌아 가자요. 모기도 물지 정춘의 아빠랑 오빠를 찾겠어요.”
영화는 빨래를 대야에 담았다.
“아니, 괜찮소. 다 큰 동생 범에게 물릴가봐 찾겠소?”
성호의 말에 영화는 빨래대야를 이려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래도 좋을 거 같잖아요. 밤중에 처녀총각이 빨래터에 나란히 앉아 있는 걸 보면 뭐라겠어요?”
성호는 별수 없이 황급히 일어나 빨래대야를 들어 영화의 머리에 얹어 주었다…
성호가 상념에 빠졌을 때 정지에서 갓난 경남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렸다.
미닫이가 쭉 열리더니 엄마가 웃방에 들어왔다.
“얘, 철주랑 농민인데도 결혼까지 했는데. 넌 제 짝이 없니?”
성호는 손시늉으로 미닫이를 닫으라고 했다.
영옥은 미닫이를 사르르 닫고 누워있는 성호의 옆에 와 앉았다.
“얘, 자꾸 이걸가 저걸가 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새애기 있으면 하날 꽉 잡아 데리고 오려무나.”
“알았소, 알아.”
“그래. 우리 아들 얼마나 잘나고 총명하다고. 남의 집 열 아들을 주고도 못 바꾸지. 철주 같은 건 백개를 주고도 못 바꾸지. 쯧쯧.”
정지에서 성숙은 “내 요리 작달막해도 이렇게 꺽다리신랑을 얻어서 떡돌 같은 아들까지 낳았는데. 우리 대학생오라비를 근심할 거 있소?”라고 하더니 갓난 애기 경남의 이마에 뽀뽀를 했다.
“경남아, 옳지? 저 칠한 외삼촌이 꼭 영화배우를 데려올 거야. 응~”
성호는 정지에서 노는 막내누나 부부와 조카를 내려다보면서 씨무룩이 웃더니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거두었다.
사실 어려서 성호는 계속 막내누나 성숙을 키 작다고 늘 “난쟁이”라고 놀리면서 “난쟁이신랑”을 얻어올 거라고 비양거리군 했다. 또 너무 깍쟁이질을 한다고 늘 “깍쟁이”라고 조롱했다.
그럴 때마다 성숙은 성이 날대로 나서 “난 꼭 키꺽다리 신랑을 얻을 거야. 네나 난쟁이각시를 얻지 말라.” 하고 반격하군 했다.
오누이간에 서로 한 말이 경종으로 돼서 성숙은 자기가 키 작아 가지고서도 혼사말이 들어오면 키 큰가부터 물으면서 키 작은 남자는 아예 맞선도 보지 않았다. 하여 끝내 키 1.75도 되는 꺽다리신랑 명선을 만난  것을 항상 흐뭇하게 생각했다.
성호는 고향 마을을 떠나 학교에 돌아오면서도 번개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순희를 철주에게 준 건 별로 아깝지 않아. 허나 은영마저 승호에게 빼앗길 수는 없어. 흥!)
성호는 어려서부터 처녀애들을 너무 많이 좋아한  것 같았다. 왕춘영이, 순희, 선화, 정희, 은영이… 이제 또 처녀애 몇을 사랑할지 모른다. 그래서 그럴가. 이번에 순희를 철주한테 빼앗겼을 때 전날까지도 쓸쓸했지만 밤을 자고나니 인차 마음이 정리돼가는 감을 느꼈다. 더구나 자기 리상을 실현하는데 짐으로 밖에 될 수 없다고 생각하자 어떻게 말하면 잘 된 일이라는 감까지 들었다.
(내가 순희를 사랑하기나 했는가? 순희는 내 첫사랑이 아닌가? 사랑이란 참말로 알고도 모를 불여우야.)
성호는 학교에 돌아와 침실에 누워 창문으로 비껴드는 휘영청 밝은 달빛을 내다보면서 또다시 끝없는 추억의 바다에서 돛이 없는 배를 타고 정처 없이 떠다녔다.
 
 
 
 
 
 
 
 
 
 
 
 
 
 
 
 
 
 
 
 
 
 
 
 
 
 
 
 
 
 
 
                                                      11. 결투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아물거리는 달밤이 오면 성호는 검은 구름 속에 숨어버리는 달을 쳐다보면서 은영을 어떻게 승호 손아귀에서 찾아오겠는가고 속궁리를 굴렸다.
간혹 맞은 편 침대에 와서 자는 승호를 보면 단매에 때려 눕히고 싶은 충동이  속에서 불끈거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승호의 비쭉한 코와 개턱처럼 쳐든 조개턱만 보아도 눈에 불티가 탁탁 튀였다. 그런줄도 모르고 은영은 이전에 성호에게 늘 어째 승호가 성호와 비슷하게 생긴 점이 많다고 쌍둥이 아닌가고 호들갑을 떨기까지 했다.
(개소릴 친다. 내 어찌 바람둥이를 닮아?)
성호는 은영마저 괘씸해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승호와 최후결판을 내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승호와 결투를 벌려 쳐눕혔다고 해도 승호가 은영에게서 떨어지려고 하겠는가. 한뼘은 더 크고 시내에서도 한다하는 싸움군과 결투를 벌려 승산도 없어. 관건은 승호에게 있는 거 아니야. 다 은영한테 달렸어. 은영이 승호한테서  떨어져 나한테 오면 모든게 다 풀릴 거야.)
기말이 코 앞에 닥쳐왔건만 성호는 련 며칠 책도 들지 않고 침실에 들어누워  어떻게 은영을 떼내겠는가 궁리만 하고 또 했다.
갑자기 성호는 벌떡 일어나더니 무릎을 탁 쳤다.
“옳지! 그래. 바로 그거야!”
성호는 오른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여 승호의 빈 침대 기둥을 탕 치며 구두를 신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가 숙사 복도 층계를 텅텅 내려갈 때였다. 뜻밖에도 층계 아래 쪽에서 은영이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올라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잘 됐어. 제 발로 찾아오는구나.)
성호는 층계를 둘러보고 나서 “은영이, 좀 보기요.”라고 하며 앞을 막아섰다.
“어머, 왜? 미안해요. 급한 일 있어서.”
은영은 성호를 피해 층계를 텅텅 올라갔다.
성호는 뒤따라 올라가면서 “또 그 바람둥이를 찾아가? 갠 침실에 없어.”라고 했다.
허나 은영은 곧이듣지도 않고 곧추 침실로 향했다. 그녀는 숙사 문을 줴당겨보았다. 문이 잠가진 것을 보고서야 되돌아섰다.
“잠간만.”
성호는 급히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은영을 잡아 마구 끌고 들어갔다.
그는 문까지 걸어버린 후 은영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왜 이래요?”
은영은 깜짝 놀라 걀쭉한 얼굴에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성호는 단도직입적으로 돌직구를 날렸다.
“너 승호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알고 따라다녀? 걔는 바람둥이야!”
“승호는 학교에 오기 전에 벌써 약혼녀가 있었어. 걔 지하독서실에서 어쨌는지 아니? 홍희와도…”
“됐다, 됐어. 그만해!”
은영은 놀라기는커녕 신경질적으로 화만 냈다.
“너 아니? 승호 처녀애들을 몇이나 해쳤는지?”
“그만해라도. 알면 이제 어쩌라는 거야?”
성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저도 몰래 두 손으로 은영의 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너 다 알고 있었니? 정신 좀 차려라! 이제라도 절벽 앞에서 말머리를 돌려라! 뒤에는 내가 있지 않니? 엉?!”
은영은 대답 대신 뜨거운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줄줄 흘리며 성호의  가슴을 마구 떠밀어버렸다.
승호의 침대에 털썩 물앉아 어깨를 들먹이는 은영을 보자 성호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은영이 불쌍했다. 아니, 승호에게 짓밟힌 약혼녀 경옥이, 홍희가 더욱 불쌍했다.
성호는 옆에 앉아 은영의 들먹이는 어깨에 왼손을 올려놓으면서 정색해 물었다.
“혹시 너도 승호에게 당하지 않았니?”
은영은 갑자기 일어나 성호의 뺨을 찰싹 갈겼다.
“걸 물어 뭘 해?! 더러운 자식!”
성호는 얼얼해나는 뺨을 매만지면서 오리무중에 빠졌다.
“더러운 자식? 색마 승호를 용서해? 왜 진정으로 널 사랑하는 날 받아주지 않니? 참 이상해.”
은영은 눈물범벅이 된 한쌍의 포도눈알로 성호를 바라보면서 미친듯이  고함쳤다.
“오빠를 증오해요. 한평생 증오할 원쑤예요.”
“그래, 증오한단 말이지. 날 사랑하고 있구나. 날 속이고 널 속이지 말어라!”
은영은 피씩 코웃음쳤다.
“진짜 미움깨만 살려고 그래?”
“그래, 널 위해서라면 미움깨겠니? 칼산에 오르더라도 바른 말 할테야.”
성호는 은영을 와락 끌어안으며 열변을 토했다.
“바람둥이한테서 떠나라. 나한테 오라!”
은영은 성호를 밀어내며 “흥!” 하고 콧방귀를 뀌였다.
“개구리 학의 고기를 먹으려고 해?! 정말 지겹게 논다. 승호 허물을 하면 오빠한테 돌아올 거 같아? 착각하지 마!”
“그래, 실컷 욕해라. 세상에서 널 사랑하고 아낄 사람은 그래도 나뿐이야.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은영은 눈물을 손등으로 닦더니 발딱 일어났다.
“다신 승호 오빠 흉을 보지 말라. 자꾸 끼여들지도 말고 소문도 까딱 내지 마세요.이젠  미련도 버리세요.”
은영은 오른손으로 체육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더니 전에 없이 외까풀눈을 매섭게 뜨고 쏘아보았다.
“똑똑히 말해 줄게. 난 아무런 능력도 없는 낙제생을 따라 농촌의 시부모를 모시고 시형과 시누이 아홉이나 되는 복잡한 시집에서 살지 못해. 승호는 체육위원 겸 학교 학생회 체육부장이지. 학습성적도 오빠보다 우수해. 난 승호 같은 영웅과 살고 싶단 말이야. 황차 가정환경도 얼머나 훌륭한가요? 그러니까, 오빤 이젠 제발 성가시게 지 말아요.”
성호는 맥없이 침대에 물앉아 묵묵히 침실에서 나가는 은영의 가냘픈 뒤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쾅!
문이 닫혔다. 찬바람이 능구렁이처럼 묻어들어왔다.
“농민의 아들, 그래, 난 농민 아들이야. 너희들은 세도가문의 대단한 새끼들이야.”
성호는 아직도 문벌장벽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승호 새끼를 어쩜 좋을가? 한각 분질러 놔야 알겠어?"
성호는 주먹으로 승호의 침대를 쾅 내리쳤다.
이때 문이 덜커덩 열렸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승호가 들어오지 않겠는가.
그는 의아한 눈길로 성난 사자 같은 성호를 마주보며 침대에 털썩 들어앉았다.
“무슨 일 있니? 우린 친구 아니야? 어려운 일 있으면 스스럼없이 말해라. 도와줄게.”
성호는 “흥!” 하고 코방귀 뀌며 랭소했다.
그는 쌀쌀한 눈길로 승호를 쏘아보았다.
“경고하마. 은영을 다치지 말라!”
“은영을 좋아하니?”
“그래, 은영은 내 목숨과 같은 사랑이야!”
“네깐 놈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해?”
“뭐라고?”
성호는 와닥닥 일어나 승호에게 덮쳐가 목덜미를 거머잡았다.
“내 입이 터지면 넌 퇴학, 아니, 감옥에 가야 할 색마야!”
승호는 능구렁이처럼 씨무룩이 웃었다.
“이걸 놔라! 친구간에 뭐야?”
“친구? 난  바람둥이친구 없어.”
승호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 고함치는 성호를 보고 능청을 부렸다.
“계집애 하나 때문에 친구 의를 상하겠느냐? 만천하 사람들이 웃겠다. 네가 은영을 좋아하는 거 같은데. 물어봐라. 널 좋아하는가? 넌 짝사랑을 한 거야. 친구니까 충고한다. 널 사랑하지도 않는 은영을 작작 쫓아다녀라.”
승호는 멱살을 꽉 움켜쥔 성호의 손을 비틀어 빼고 침대에 앉으면서 뒤말을 이었다.
“글쎄 은영이 널 사랑한다면 은영을 양보하겠어. 허나 은영은 나와 죽자 살자 한단 말이야. 알만하지?”
성호는 억이 막혀 말도 나가지 않았다.
승호는 풀이 죽은 성호를 보고 중얼거렸다.
“성호야, 너 혹시 무슨 소문 들었니?”
성호는 승호를 쏘아보면서 “네놈새끼 무슨 짓을 한건 네가 제일 잘 알게  아니야?!” 하고 공을 차넘겼다.
능글맞은 승호는 중을 떠보려고 했다.
“혹시 은영과 내 뭘 어쩌는 걸 보았니?”
성호는 승호를 쏘아볼뿐이였다.
(개자식, 지하독서실에서 짓밟은 처녀애가 은영이냐?)
그때 승호가 대수롭잖게 지껄였다.
“뭐 대단한 일이냐?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 인지상정이지.”
성호는 지하독서실에서 홍희와 그러는 거 못 본거 같으냐고 고함치려다 목구멍까지 터져나오는 말을 겨우 삼켜버렸다.
승호는 성호한테 다가와 어깨를 툭툭 치면서 지껄였다.
“친구니까 충고하마. 은영을 포기해라.”
“왜?”
“넌 농부의 아들이니까.”
“이 자식!”
성호는 승호의 멱살을 틀어쥐여 콱 밀쳤다.
“이 새끼야! 농민 아들이라고 업신여기지 말라!”
“타고난 팔자가 농부 아들인 거 어쩌겠니? 쇠나 방목하다 대학에 오기만 해도 대단한게지. 욕심이 너무 과하면 독이 돼 다친다, 다쳐.”
“뭣이?!”
성호는 승호의 멱살을 놓고 조용히, 그러나 면도칼날 같이 섬뜩한 말을 토했다.
“담이 있으면 나하고 결투 하자.”
“흥! 결투?!”
승호는 세귀눈으로 성호를 쏘아보며 랭소하더니 대수롭잖게 물었다.
“지금 나한테 도전하는 거냐?”
“그래, 깨끗하게 결투로 결판내자.”
“난 걸투 안 해.”
승호의 대답은 뜻밖이였다.
입귀에 조소를 흘리기까지 하는 걸 보고 성호는 모욕감을 느꼈다.
“겁나냐?”
 “계집애 땜에 친구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누가 다칠지 몰라. 쓸데없는 소릴 싹싹 걷어치우고 한판 붙어보자.”
승호는 흥흥거리면서 코웃음쳤다.
“너 력도도 하고 투탄도 멀리 한다만. 흥, 싸움은 달라.”
큰 소리도 땅땅 쳤다.
“난 시내 깡패두목들도 쳐눕힌 호랑이야. 흥, 소궁둥이나 치던 촌놈이 언감 도전해?”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아!”
“좋다! 결투면 결투지. 한판 깨끗하게 승부를 갈라보자. 한각 부러져도 절대 후회하지 말라.”
승호는 흉악한 상통에 조소를 날리면서 성호의 도전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뭘 걸고 결투하겠느냐?”
“은영을 걸고 결투하자! 네 지면 은영을 놔라.”
“허허허. 그렇게 쉽지 않을 걸!”
승호는 앙천대소했다.
“네가 지면 어쩌지?”
성호는 여지를 두지 않고 제꺽 대답해버렸다.
“다신 은영한테 미련을 두지 않을게.”
“아니야. 내 사생활을 까딱 소문내지 말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라.”
성호와 승호는 아무 말도 없이 숙사에서 나와 눈보라 치는 학교 뒤산으로 올라갔다.
승호는 무릎까지 풍풍 빠지는 눈덮인 야산을 둘러보면서 두덜거렸다.
“이런데서 어떻게 결투 해?”
성호는 오른 주먹으로 왼손 바닥을 탁탁 쳤다.
“우리 촌놈들은 싸움터를 가리잖아!”
“눈보라 치는 야산이라. 뿌슈낀이 결투하던 장소와 비슷하구나. 오늘 여기가 네 무덤이 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개소릴 작작 치고 덤벼라!”
승호는 목을 놀리더니 발로 눈을 풍 차던지면서 지껄였다.
“시골 농부 새끼, 어디 내 주먹맛 봐라!”
그때 승호는 씽 번개같이 날아 들어오면서 승호의 면상을 주먹으로 퉁퉁 갈겼다. 성호는 몸을 옆으로 슬쩍 피했다. 허나 왼 주먹은 간신히 피했지만 오른 주먹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성호는 얼굴을 한대 얻어맞고 비틀거렸다.
승호는 성호 잔등에서 랭소하며 몸을 홱 돌려 성호의 뒤통수에 헤딩을 딱 했다. 그 찰나 성호의 팔굽이 굴에서 나온 구렁이처럼 승호의 이마를 찔렀다.
“앗!”
승호는 이마를 싸쥐고 몸을 날려 저만치 뛰여나갔다.
“흥!”
성호는 코방귀를 뀌면서 터진 입귀의 피를 쓱 닦았다.
약이 오른 승호는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면서 덮쳐들었다. 승호가 비발처럼 주먹을 휘두를 때다. 성호가 허리를 굽히며 승호의 아래배를 탁 올리쳤다. 승호가 아래배를 부등켜안고 허리를 굽혔다. 성호는 무릎으로 승호의 숙인 면상을 올리걷어찼다. 승호는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풀쩍 테 밖으로 뛰여나갔다. 용케도 성호의 무릎과 발길 공격을 피했다.
승호는 악이 날대로 났다. 이번엔 주먹을 휘두르며 날아들다가 몸을 키넘어 날리면서 양다리 질로 성호의 면상을 갈겼다. 성호는 주먹과 골만 잘 쓰는가 한 승호가 발길을 날리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결과 발길에 채워 저만치 날려 나가 꺼꾸러졌다. 승호는 맹호가 양을 덮치듯이 몸을 날려 성호에게 덮쳤다. 어찌나 날래고 무섭게 용맹스러운지 딱 마치 독수리가 토끼를 덮치는 상 싶었다. 성호는 위기에 처했다. 그 찰나 성호는 반듯이 누운채 두다리를 굽혔다가 덮쳐드는 승호의 아래배를 탁 차서 머리 우로 넘겼다. 옆으로 굴러 벌떡 일어난 성호는 무송이 호랑이를 때려잡는 기세로 주먹을 쥐고 승호가 일어나기를 대기했다.
“일어나라! 범도 죽은 양은 잡아먹지 않아!”
“네 따위가 다 범이냐? 퉤!”
승호는 점점 악이 나 벌떡 일어나더니 눈덮인 높은 지세를 리용해 발길로 성호에게 눈을 탁 쳐놓았다. 성호가 눈에 튄 눈을 손으로 닦는 틈을 타 승호는 몸을 날리면서 성호를 량다리로 걷어찼다. 허나 성호가 고의로 빈틈을 주었을 줄이야! 성호는 기다렸다는듯이 자세를 낮추면서 팔꿈치로 허공 뜬 승호의 아래 배를 탁 올리쳤다.
“앗!”
승호는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눈구뎅이에 나가 떨어져 때굴때굴 굴렀다.
“그만해!”
뜻밖에 한 처녀애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성호가 쓰러진 승호가 일어나기를 기다려 치려고 하다가 그쪽을 돌아보았다. 은영이 눈보라  속에 허우적허우적 뛰여오면서 고함쳤다.
그때 승호는 벌떡 일어나 은영에게 눈길을 파는 성호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쳤다.
“억!”
성호는 비명소리와 함께 눈에 처박혔다.
“농부새끼! 감히 덤벼?!”
승호는 씽- 몸을 날려 날아가면서 기여일어나려는 성호의 목을 겨누고 발길을 날렸다. 성호는 날아드는 발을 덥석 잡아 홱 내동댕이쳤다. 승호는 소나무에 처박혀 머리를 꽝 쪼았다. 순간 눈언저리에서 뻘건 피가 주르르 흘러 얼굴을 뒤덮었다. 하얀 눈 우에 수치스러운 피가 벌겋게 물들었다.
“촌뜨기새끼, 죽여버리겠다!”
은영이 앞에서 망신당한 승호는 벌떡 일어나 갈범처럼 덤벼들었다.
성호는 련속 날아드는 승호의 주먹을 손으로 탁, 탁 쳐냈다.
 “그만해요!”
은영이 두팔을 벌려 호랑이들처럼 펄펄 날뛰는 성호와 승호 사이에 막아서며  통곡쳤다.
“왜 이래요? 네? 어째 내 죽는 걸 보고 싶은가요. 엉~ 엉~”
그제야 승호와 성호는 주먹을 내렸다. 승호는 터진 머리와 눈언저리를 눈을 쥐여닦고 성호는 입귀의 피를 눈을 쥐어 닦으면서 씩씩 거렸다.
“싸우지 말고 아예 날 죽여 버리세요. 그럼 다 끝날게 아닌가요?”
승호는 은영의  앞에서 우쭐거리면서 빈정거렸다.
“삐치지 말라! 내 이겼어. 이젠 성호가 약속을 지킬 거야. 아무리 농부의 아들이라고 해도 군자 협의야 지켜야지.”
성호는 눈을 쥐어 입귀의 피를 닦을뿐 묵묵부답이였다.
승호는 점점 떠들썩하게 고아댔다.
“하루 강아지 호랑이 무서운줄 모른다고. 촌뜨기새끼, 감히 호랑이를 건드려? 시내 가서 물어봐라. 호랑이란 별명만 들어도 깡패들이 다 달아난다. 졌다고 해라. 그럼 내 봐줄게.”
성호는 승호를 쏘아보면서 “아직도 입만 살아 있구나. 이 자식아, 아녀자 앞에서 자존심을 작작 건드려라!” 하고 반격했다.
성호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였다.
(저 새끼를 놔뒀다간 이제도 얼마나 많은 처녀들이 짓밟힐지 몰라!)
허나 인차 주먹을 스르르 풀었다.
승호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빈정거렸다.
“아무리 악을 써도 은영은 내 거야! 다 쑤어놓은 죽을 이제 와서 어쩌겠단 말이냐?”
성호는 은영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삽시에 은영은 얼굴이 새파래나면서 승호를 쏘아보았다.
“그만 해요. 원, 창피해서 어떻게 살겠니?”
은영은 돌아서서 얼굴을 싸쥐고 어깨를 들먹이였다. 허나 승호는 눈언저리에서 줄줄 흐른 피가 흘러 들어가는 입귀에 시누런 금이빨을 드러내면서 씨무룩이 웃었다. 성호는 은영의 가냘픈 뒤모습과 승호의 더러운 몰골을 번갈아보면서 무엇인가 짐작이 가는 데 있었다.
그때 승호는 머리를 숙이는 성호를 보고 또 지껄여댔다.
“활딱 벗고 나와야 물러나겠니? 허허허.”
성호는 머리를 숙이고 머리를 툭 떨어뜨린 채 자리를 터벅터벅 간신히 떠났다. 비틀거리며 멀어져 가는 성호의 넓은 등뒤를 훔쳐보며 은영은 서럽게 울었다. 뒤이어 그는 자기 목수건으로 승호의 눈언저리에서 멈출줄 모르고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주었다.
윙-윙-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성호의 뒤에서는 은영의 통곡소리에 반주하여 승호의 고함소리가 허연 눈덮인 소나무 숲  속에서 울려퍼졌다.
“은영은 내 거야! 내 거! 허허허!”
화답이나 하는듯이 은영의 울음소리가 눈덮인 황야에서 서럽게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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