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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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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89)
2017년 12월 03일 12시 27분  조회:1614  추천:2  작성자: 김장혁




                                     7. 콩꼬투리죽 한 사발

       고개, 고개 열두 고개에서 제일 넘기 어려운 고개는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는 아리랑 고개가 아니었다. 백성들이 제일 넘기 어려운 고개는 아직도 보릿고개였다.
      중국 전국적으로 반우파 투쟁과 함께 인민공사화, 대약진 바람이 거세지면서 허백호 서기는 이른바 우파분자 오옥선과 박성근을 투쟁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집체식당을 마을마다 차리게 하고 집체 화식을 강요했고 집집마다 문뜩문뜩 뛰어들어 가마뚜껑을 들었다놨다하면서 야단쳤다. 그는 혹시 쌀이나 감춰 두고 자기 집 가마에 뭘 끓여 먹는가 해 눈깔이 뻘개 삽살개처럼 싸다니면서 살폈다. 혹시 배추김치나 산나물 채를 따로 해 먹는 사원을 발견하기만 해도 몽땅 빼앗아 집체식당에 가져다 놓고 한바탕 비판대회를 열었다.
       사원들은 살금살금 능쟁이랑 세투리랑 캐다가 돼지를 먹이는 척 하며 끓여 돼지죽초롱 같은데 치워두었다가 허백호 서기와 흥수의 눈을 피해 가만가만 꺼내 먹으면서 주린 배를 달랬다.
허백호 서기는 참 우스운 일도 다 했다. 자기는 흥수네 집에 들어서 가만히 돼지고기랑 사다가 끓여먹으면서 사원들은 먹지 못하게 입을 봉해버릴 잡도리였다.
그는 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누구네 집 가마에 녹이 쓸었는가, 뭘 끓인 흔적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이른바 사상이 빨간가 누런가를 가늠했다. 물론 위에 있는 허백호 서기가 그런 사상교양정책을 내놓으면 사원들은 새 대책을 댔다. 사원들은 돼지죽을 끓이는 척하며 푸성귀를 끓여 먹고는 가마를 깨끗하게 가셔내 말리우군 했다. 하여 아무리 허백호와 흥수가 싸다니면서 가마를 열어보아도 뭘 끓여먹은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모두 허백호의 코개질을 하는 흥수를 미워했다. 그가 아무리 허백호를 믿고 개 잡은 포수처럼 삐죽한 조개턱을 쳐들고 우쭐거려도 모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허백호 그림자만 사라지면 모여들어 흥수를 놀려주었다.
어느 하루, 깡마른 콩밭에 물을 주는 일을 하는 날이었다.
나이를 먹은 아낙네들이 우쭐거리며 돌아다니는 흥수를 보자 놀려주었다.
“저 흥수, 허 서기한테 잘 보여서 또 화선입당하겠다!”
“코개 같은 게! 보기만 해도 눈에 불이 난다!”
“저 삽살개를 오늘 두들겨 팰까?”
“좋다! 모든 개 매를 맞아봐야.”
누가 선코를 뗐는지 아낙네들은 사전에 토론이나 한 것처럼 “와-” 함성을 지르며 흥수한테로 돌격해갔다. 그녀들은 우르르 모여들어 흥수를 깔고 들어앉았다. 가물에 실돌피 같은 흥수가 아무리 버둑거려도 숱한 아낙네들을 당하지 못했다. 
아낙네들은 흥수 웃옷을 와락와락 벗겨 낯빤대기에 들씌워놓고 한바탕 두들겨패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낙네들은 흥수의 바지를 훌렁 벗기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고추람?”
“애들 거보다도 더 작아. 히히히.”
“우메-요렇게 작으니 딸 밖에 줄줄 낳지 못하지.”
“호호호.”
그것도 모자라 아낙네들은 흥수의 낯빤대기에 젖을 짜서 마구 발라놓았다. 이 때 개 한마리가 왕왕 짖어대며 구경하러 뛰어와 똥오줌을 쫘르르 내쏴놓고 달아났다.
한 아낙네는 개똥을 퍼다 흥수 주둥이에 마구 쑤셔넣었다.
"에, 퉤. 함경도 가시나들, 퉤!  어더렇게 죽고 파?!"
흥수는 주둥이만은 살아 있었다.
"이 놈, 남도치!"
"고슴도치야?!"
"이 콧개!"
"전라도 깎쟁이!"
"오늘 톡톡히 망신 주자!"
아낙네들은 흥수의 바지와 속옷을 몽땅 벗겨 안고 "와야-"하고 저 멀리 밭머리로 달아났다. 한 아낙네는   망신시키려고  비술나무에 바라올라갔다. 아래서 흥수의 옷을 나무꼬챙이에 걸어올려보내면 그 아낙네가  말라 죽은 나무 가지에 걸어놓았다.
실 한 오리 걸치지 못한 흥수는 창피해 젖 투성이 된 거시기를 손으로 싸쥐고 콩밭에서 달아나 옥수수 밭에 숨어 있었다.
해가 서산에서 뚝 떨어져서야 사원들이 마을로 내려갔다. 그제야 발가숭이 흥수는 슬금슬금 옥수수 밭에서 나와 사위를 흘끔흘끔 훔쳐보며 옷이 걸려 있는 나무쪽으로 다가갔다.
“으흐흐!”
갑자기 하늘에서 뭔가 쯘쯘한 것이 발가숭이 엉덩이와 낯에 뚝 떨어졌다. 흥수가 황급히 닦으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까욱!
    흥수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마귀 날아지나가면서 똥을 찔찔 내리 쏘았다. 재수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콧등을 깬다더니 날아가는 까마귀가한테 흥수는 똥벼락을 맞았던 것이다.
“에크, 퉤! 재수 없어.”
흥수는 옥수수 이파리를 뜯어 쥐고 낯과 엉덩이를 쓱쓱 닦았다. 그런데 시허연 까마귀 똥은 얼룩덜룩하게 대충 닦았는데 저걸 어쩌나? 엉덩이와 낯이 옥수수 이파리에 긁혀 아려나기 시작했다.
그는 상을 찡그리면서 나무 가지에 걸려 너펄거리는 옷을 벗겨 입고 아낙네들을 윽, 윽 벼르면서 마을로 내려갔다.
그 일이 있은 후 흥수는 혼자 마을로 싸다니면서 콧개처럼 이집 저집 냄새를 맡으며 싸다니지 못했다.
대대 당지부 서기와 치보 주임을 겸한 상순은 눈가림으로 대충 이 사건을 조사하는 척 하고 두루뭉실하게 지나쳐 버렸다.
"망신당해 싸다, 싸!"
상순은 속으로 잘코사니를 불렀다.
후에 흥수는 상순과 병완을 믿어서는 앙갚음을 못할 것을 알고 창피한대로 그번 이른바  "능욕사건"을 공사당위 서기 허백호에게 고발했다.
허백호의 지시를 받고 공사 파출소 허영호 소장이 조개덕대대에 내려왔다. 그러나 허영호도 용빼는 수가 없었다.
"누가 때렸는지 어떻게 수사한단 말인가?"
조사해보니 흥수의 머리에 웃옷을 푹 씌워놓고 숱한 아낙네들이 달려들어 옷을 벗기고 물매를 안겼던 것이다 .
"얼마나 미움개를 샀으면 아낙네들한테 물매를 맞아? 개꼴망신당해 싸다, 싸."
영호 소장도 깨고소해 조사하는 척 하다가 그저 사원대회를 열고 아낙네들을 경고나 해놓고 치보 주임 상순에게 맡기고 돌아가 버렸다.
상순은 더 조사하지도 않고 지나쳐버렸다.
흥수는 마음을 곱게 먹지 못했기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입당하려고 허백호 서기 앞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개처럼 뛰어다녀도 헛수고였다. 당 지부 대회에서 그의 입당문제를 토론만 하면 함흥 촌 당 지부 서기 병완의 반대를 받아 통과 되지 못했다. 게다가 마을 사원들에게서 흥수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면 별의별 나쁜 의견이 다 올라왔다.
허백호는 사원들이 푸성귀를 뜯어다 돼지죽을 끓이는 척 하면서 먹는 것을 눈치 챘다. 그는 외까풀 눈을 내리 깔고 어떻게 이른바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려는 싹"을 미연에 뿌리를 뽑아치우겠는가를 고민했다.
며칠 후 그는 상순을 보고 생산대 우사 옆에 커다란 돼지 굴을 지으라고 했다.
상순은 속으로 돼지라도 많이 치면 배를 곯는 사원들에게 좀 보탬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여 그는 사원들을 데리고 패용천산과 칼산에 가서 정으로 돌을 캐 실어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커다란 돼지 굴을 열 칸이나 지었다.
그러자 허백호는 집집이 기르던 돼지마저 몽땅 집체돼지우리에 몰아다 넣고 함께 기르라고 지시했다.
사원들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돼지마저 치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살라는 거요?”
“글쎄 말이오. 우린 원래 돼지보다 못한게 무슨. 돼지도 푸성귀를 마음대로 먹잖소? 근데 우리 사원들은 자본주의로 갈가봐 푸성귀도 마음대로 끓여먹지 못하게 한단 말이요.”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며 반대했다.
박성근이 제일 떠들어댔다.
“소들도 보오. 수수대로 엮은 집체 우사로 들어가더니 다 얼어 죽고 굶어 죽을 지경이오. 막부득이 하면 황소들이 우사에서 뛰여나서 옛날 옥수수랑 감자랑 심어먹던 두만강변으로 도망쳤겠소?"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다. 사람들이 굶어 죽을 지경인데 언제 소를 잘 먹일게 있겠는가? 어느 하루 몇마리 황소가 고삐를 끊고 잃어지지 않았겠는가. 혹시나 해서 상순과 흥수가 옛날 합작사에서 부업으로 감자를 심었던 두만강변 범바위골로 가 보았다. 그런데 소들이 글쎄 거기서 무리로 풀을 뜯어먹고 있지 않겠는가.
"이 놈 소새끼들이."
흥수가 돌멩이를 쥐고 쫓아가자 소들은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다행히 흥수가 황소 한 마리 끊어진 고삐를 붙잡았다.
"생산대 우사로 돌아가자."
흥수가 고래고래 고함치며 아무리 고삐를 쥐여당겨도 황소는 네발로 벋디디면서 대가리를 흔들어댔다. 코에서 피가 흘러도 황소는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박성근은 계속 떠들어댔다.
"아무리 우둔한 소도 생산대 우사에 돌아가면 굶어 죽는다는 거 알았단 말이요."
그때 상순과 흥수는 황소들을 하나하나 붙잡아 생산대 우사로 몰고 오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어떤 소들은 뿌리로 흥수를 마구 뜨기까지 하며 반항했다.
"이제 돼지마저 집체 돼지우리에 들어가면 다 굶어 죽지 않는가 보오.”
허백호는 빈정거리는 성근을 아니꼽게 쏘아보았다.
"야, 이 우파분자야, 주둥이를 다물지 못해? 계속 씨부렁거리면 소처럼 주둥이에 꾸러미를 꽉 채우지 않는가 봐라. 저 주둥이 대사긴 대사야." 
그의 고집스러운 지시와 협박을 누가 언감 막겠는가?
“어째 성근이나 오옥선처럼 우파 모자를 쓰고 개고생 해봐야 알겠는가?”
그제야 누구도 감히 찍 소리를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돼지를 생산대 돼지우리에 몰아갔다.
돼지들은 집체 돼지우리에 들어가 서로 물고 뜯었다. 보기도 난처했다.
소련에서 중학교까지 다닌 성근은 우파 모자를 쓰고서도 뒤에서 계속 두덜거렸다.
“그래도 흐루쑈브 XX주의 채가 좋지. 흐루쑈브는 감자에 소고기 볶음은 XX주의라고 했소. 얼마나 도리 있소? 빨리 감자에 소고기볶음채를 먹으면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소?”
상순은 성근의 곁에 다가가서 삽으로 돼지우리 둼을 쳐내면서 나직이 말리었다.
“쓸데없이 횡설수설하지 마오. 우파 모자를 쓰고서도 아직도 말장난이오?”
허나 성근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이미 우파로 됐는데 이제 죽이기까지야 하겠소?”
“날마다 투쟁 받는게 고달프지도 않소?”
“이 놈 세월에 속심말 한마디도 하기 힘드오. 어떻게 살겠소? 배불리 먹지 못하는데 말이라도 씨원하게 했으면 얼마나 좋겠소?”
상순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성근을 돼지우리 한쪽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은밀히 물었다.
“소련에서는 무슨 폐단이 있었소?”
성근도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른 사람들이 돼지우리 저쪽에서 돼지 똥을 쳐 내는 것을 보고 말했다.
“어째 우파 모자를 씌워놓고서도 모자라오? 어쩌자고 자꾸 험한 말까지 다 묻소?”
성근은 볼 부은 소리를 한마디 내뱉고서는 입에 빗장을 질렀다.
상순은 쉼에 성근을 데리고 마을을 벗어나 태평강 가에 가서 조용히 말했다.
“나를 믿소. 절대 비밀에 붙일게. 나는 집체생산을 한 후 어쩐지 사원들의 생활이 이전에 호조조를 할 때보다도 못해가니까. 소련의 경험과 교훈을 알려고 그러오.”
그래도 성근은 주위를 흘끔거리면서 입에 빗장을 빼지 않았다.
상순은 속심의 말을 했다.
"인민들이 배불리 먹고 행복하게 사는 새 사회를 건설하혀고 그 얼마나 많은 선렬들이 희생됐소. 그런데 새 사회에서 백성들을 굶겨서야 되오? 그래서 쏘련 사회주의 경험교훈을 알려는 거요. 그래야 우리 소련의 굽은 길을 다시 걷지 말고 백성들이 행복하게 사는 새 사회를 하루 빨리 제대로 건설하지."
그제야 성근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꾹 다물었던 입을 겨우 열었다.
“소련 꼴호즈에서 집체생산을 하니까. 사람들이 노동적극성이 없고 노라리만 쳐서 지금 우리 생산대 꼴이었소. 개체 생산을 할 때보다 형편없었소. 소련 원동 울라보지또스크 주변 그 좋은 시꺼먼 밭에서 감자 몇 알을 거둬들이지 못했소. 그래서 흐루쑈브는 쓰딸린을 마구 물어뜯으면서 기여 올라 갔소. 흐루쑈부는 레닌과 쓰딸린이 건설한 소련 사회주의 기틀을 마구 허물어 버리고 수정주의를 해나갔소. 쓰딸린 때 지금 중국처럼 정치 백열화가 됐소. 밤을 자고 나면 꼴호즈의 간부들이 없어졌단 말이오. 쓰딸린을 욕하는 사람은 모두 반혁명으로 몰리어 어디로 갔는지 다시 돌아오지 못했소. 쓰딸린이 독재였다면 지금 흐루쑈브도 보나마나 나쁜 놈이오. 보오. 쓰딸린 때 중국에 숱한 지원을 한 걸 다 빚받이를 해간단 말이오. 글쎄 2차 대전 때 빚마저 다 받아가고 중국에 파견한 기술자를 몽땅 철수하지 않았소? 그 놈 기술자들이 돌아가면서 용광로에 쇠 물이랑 그대로 식혀 굳혀버린 바람에 용광로랑 못쓰게 만들었다오. 그래서 우리 여기서 공장뿐만 아니라 학교와 상점, 농촌에서까지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기치를 들고 전민이 동원돼 강철을 생산한다고 떠들고 있지 않소? 허나 우리 농민들이나 공인계급이나 얼마나 살기 어렵게 됐소? 팽덕회를 타도했지만 팽덕회 말에 일부 도리 있소. 어떻게 한헥타르에서 10만근을 내오? 우리 마을도 보오. 허백호 서기 말대로 해서 한헥타르에 5만근을 냈소? 소련에서도 꼴호즈를 반대한  정치인들이 몽땅 숙청당했소. 허나 흐루쑈브가 올라가 몽땅 억울한 사건을 시정했소. 나도 언젠가는 진리를 견지한 영웅으로 재평가돼 억울한 모자를 벗을 날이 있을게요.”
상순은 성근의 말을 듣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말은 조심해야 하오. 우린 공산당을 믿고 사회주의를 믿고 이 땅에서 살아야 하오. 우리 공산당도 어떻게 하면 인민들이 잘 살게 하겠는가고 새 길을 탐색하는 과정이 아니고 뭐요? 이제부터 말을 조심해 하오. ”
박성근은 도리머리를 홰홰 둘렀다.
"딱 쏘련의 옛길로 나가서야 어떻게 잘 살 수 있소? 쏘련에서 잘 못한 건 우리 무조건 따라 하지 말고 교훈을 섭취하고 새 길로 나가야지. 에이구, 말이 통하지 않소."
      상순은 속으로 성근은 오옥선보다는 다른 우파라고 느꼈다. 오옥선은 확실히 공산당원을 모욕한 죄가 있었다. 그러나 성근은 두갈래 로선투쟁에서 착오를 진 우파라고 생각되였다. 그러나 무조건 당을 반대한다고 우파모자를 마구 들씌운 건 어쩐지 도리머리를 흔들며 심사숙고하게 됐다.
3년 재해 시절에 쌀 고생이 막심했다.
화영은 원래 소련에서 조선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오느라고 해방직 후에 중앙아시아로부터 도망쳐 중국 만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성근보다 못지 않게 소련 꼴호즈를 잘 알았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살피며 입에 빗장을 지른 채 진종일 수걱수걱 일만 하면서 한마디 말도 삐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도 너무 배고파 마을 집체식당에서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에구, 그놈 마우재들이 중국에서 빚을 받아가는 바람에 우리 중국 사람들이 잘 살지 못한다.”
그런데 그 말을 이번에는 학수가 허백호 서기에게 달려가 고발했다.
그러자 허백호 서기는 기뻐 무릎까지 쳐댔다.
“잘 됐소. 우파분자는 한 놈, 한 놈 생기는 족족 투쟁해야 하오.”
그날부터 화영도 우파 모자를 쓰고 오옥선과 성근과 함께 투쟁을 받았다.
허백호 서기는 화영의 우파 죄장은 어머니 사회주의 모국인 소련을 모욕, 중상했다는 것이었다. 오옥선과 박성근, 화영의 죄는 지주 장학산이나 국민당 장충국, 조개덕의 대지주 장용객과 패용천 촌의 이봉각 등의 죄보다 더 크다고 했다. 하여 그들 세 우파분자들은 지주, 부농, 역사반혁명분자, 국민당분자들과 함께 고깔모자를 쓰고 한 줄로 서서 투쟁을 당했다.
농사는 제체 놓고 정치투쟁을 백열화하는 바람에 농사는 망쳐 먹었다. 게다가 연속 자연재해까지 덮씌워 농사꾼들은 입에 거미줄을 칠 지경이었다.
만물이 누렇게 번져가는 가을이 돌아오자 허백호 서기의 심갱밀식농사법대로 심은 밭에서 옥수수 몇 알을 거두지 못했다. 반대로 병완과 상순의 말대로 심은 옥수수는 그래도 모진 가물에 물을 길어 주어서 그런대로 한 헥타르에 5천근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자연히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허백호 서기는 이젠 심갱밀식농사법을 더 고집하지 못하고 정치투쟁의 몽둥이를 휘둘러 우파 모자를 씌워 자기를 따르지 않는 사원들을 하나하나 타도했다.
자연재해에 정치 투쟁의 세찬 파도 속에 떠밀리어 다니는 사원들은 주린 배를 끌어안고 보릿고개를 넘지 못해 죽어가는 소리로 아우성쳤다. 지어 굶어 하나하나 이 세상을 떠나가기도 했다.
상우는 너무도 굶어서 피골이 상접할 지경으로 되였다.
어느 날 너무 배고파 상우는 태평강 건너 양돈장 근처 동생 상순이네 집으로 찾아갔다.
“형님, 왔소? 어서 올라오오.”
상순은 바람에 날려갈 듯이 여윈 형님의 손을 잡고 구들에 올라갔다.
“아주버니 왔습둥?”
명옥은 아주버니를 반갑게 맞으면서 점심 차비를 했다.
그런데 쌀 고생을 어찌나 하였던지 가마에 쌀을 얹은 지 며칠 됐다.
명옥은 밑바닥이 난 쌀독을 떠올리자 어쩌다 온 시형에게 뭘 끓여 대접할 가고 근심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바깥에 나가 생산대에서 돼지죽을 끓일 불을 때라고 돼지 굴 부근에 쌓아 놓은 콩깍지를 안아 들여왔다. 그녀는 콩깍지를 맷돌에 갈기 시작했다.
상우는 앓아누운 아버지를 보자 두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그렇게 정정하던 아버지가 앓다니? 이 놈의 3년 재해가 아버지를 쓰러지게 만들었구나. 아버진 고향 명천에서도 한다하는 힘장사였는데. 빈손이 돼서 앓는 아버지를 찾아와 문안도 못한 불효자식을 용서합소.”
범도 마구 잡아먹을 근력을 가졌던 천하의 기준도 굶어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상우는 호주머니에서 동전 열다섯 개를 꺼내 앓는 아버지 손에 쥐어 주었다.
“아버지, 이 돈으로 약이라도 씁소.”
기준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상순은 “감사하오. 형님, 며칠씩 굶으면서 이게 어디서 난 돈이오?” 하고 의아해 했다.
상우는 손사래를 쳤다.
“더 묻지 마라. 너 아주머니 몰래 모아둔 돈이다.”
상순은 도리머리를 흔들며 “좌우간 감사하오. 이 돈을 보태 아버지께 약을 지어다 대접하겠소.”라고 했다.
기준은 명옥에게 건사하라고 동전을 건네주었다.
한참 후 명옥이 콩깍지 가루를 끓인 죽을 퍼서 밥상에 올렸다.
상우는 콩깍지 죽을 받아 후후 불면서 맛있게 먹었다.
“에구, 이 세월에 콩깍지 죽이라도 한사발이면 온 하루 견딜 만 하지.”
상순은 목이 꺽 막혀 입을 하 벌리고 있다가 죽사발을 밥상에 내려놓았다.
“아니, 형님, 그래 죽 한 사발을 잡숫고 어떻게 온 하루 삐친단 말이요? 형수는 형님을 죽 한 사발도 안 준단 말이오?”
상우는 제수 앞인지라 아내의 허물을 하기 싫어 에둘러댔다.
“네 아주머닌들 빈 쌀독을 가지고 용빼는 수가 있니? 처하구 순애가 먹고나면 죽물 한 숟가락도 남는 게 없다.”
상순은 한숨을 천정이 날아나게 내쉬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어질고도 어진 상우형님이 불쌍했다. 그리하여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형님, 아주머니하구 말해서 때마다 죽물이라도 얼마간씩 나눠 잡숫소. 처자만 처자라고 사양하다가 정말 형님이 세상을 뜨기라도 하겠소. 이 놈의 재해 년에 정말 형님이 근심스럽소.”
동생의 충고에 상우는 그저 묵묵히 앉아 아무런 대답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순은 형님이 맥없이 머리를 숙이고 비틀거리며 함흥 촌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고 코마루가 시큼해나는 것을 어찌는 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항상 인민군중들이 배불리 먹고 잘 살게 하려고 뛰여다녔지만 허사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놈의 세월에 범바위골로 들어가 감자라도 심어먹게 했으면 좋으련만…)
장닭이 “꼬끼오-오-” 홰를 길게 치며 우렁차게 목청을 뽑았다.
거무스레한 어둠살이 안개 발이 흩어지듯이 사라지면서 시들고 말라 죽어가는 나무와 풀들이 뒤덮인 산과 들판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패용천산 기슭을 연분홍으로 물들였던 진달래꽃들이 지고 개울가의 개나리들이 샛노랗게 피어나고 있었다. 산과 들의 꽃들이 시들어 떨어지고 나무와 풀들이 시들고 말라 죽는 살풍경은 사람들을 전에 없이 쓸쓸하게 만들어버렸다.
상순은 이튿날 생산대 대장 허동원에게 청가를 맡고 일을 제쳐놓고 아버지 약을 지으러 가려고 서둘렀다. 명옥은 까래 밑을 들춰 집에 있던 동전들을 긁어모아 전날 시형이 준 돈에 합쳐 상순에게 주었다.
상순은 돈을 쥐고 윗방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 함께 병원에 가 봅시다.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약을 씁시다.”라고 했다.
그러나 기준은 누운 채 우명하게 패운 눈으로 효성이 지극한 아들을 올려다보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난 병이 없다. 병원에 가지 않겠다. 그 돈으로 쌀, 쌀이나 얼마간 사다 밥이나 한술 다구.”
“예.”
상순은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일어나 돌아나갔다.
그도 진작 알았다. 원래 몸이 굉장했던 아버지는 속에 병이 없었다. 다만 자연재해와 인재로 인해 제대로 잡숫지 못해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상순은 그래도 앓는 아버지 기를 도와주려고 동전과 부스럭 돈을 주어들고 진수해 약방에 가서 인삼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약방 점원은 동전을 안경 너머 내리 보더니 코웃음쳤다.
“요걸로 어떻게 인삼 사오?”
상순은 “아버지가 앓는데 기맥을 출 약을 지어주오.”라고 했다.
그제야 점원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약 세봉지를 달랑 지어 주고 동전을 세 받았다.
집에 돌아오자 상순과 명옥은 풍로 불을 피워놓고 약탕기에 약을 닳였다.
해가 지기 전에 상순과 명옥은 약을 광목천에 쏟아 짜서 약을 한 사발 받아냈다.
그들은 정성 들여 약 사발을 들고 아버지한테 들어갔다. 아버지를 안아 일으키고 효성의 약을 대접했다.
상순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 온 마을을 다 돌아다니면서 돈을 꿔 가지고 YB병원에 가서 정규상을 찾았다.
심혈관내과에 가보니 문이 꼭 잠겨져 있었다. 문을 똑똑똑 두드려도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복도로 이리저리 다니면서 찾아보아도 정규상을 찾을 수 없었다.
(에참, 한창 병을 볼 시간에 문을 꼭 닫고 뭘 해? 혹시 칸을 옮기지 않았는가?)
상순은 심혈관내과란 간판을 단 칸이란 칸은 다 돌아다니면서 아무리 이 칸 저 칸 들여다 봐도 정규상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허, 별 일이다. 심장전문가가 심혈관내과에서 병을 보지 않고 어디로 갔담?)
그때 심혈관내과 사무실에서 이전에 정규상과 함께 마주 앉아 병을 보던 서기인지 뭔지 했던 의사 박영발이 걸어 나왔다.
(안에 있으면서 문을 열지도 않았어?)
상순은 속으로 두덜거리면서 박영발 서기에게 다가갔다.
“여보세요. 박서기 아닙니까?”
“어, 허,”
박서기는 농사꾼차림을 한 상순의 아래위를 훑어보다가 면목이 좀 있었는지 “오, 그래. 무슨 일이오?” 하고 물었다.
상순은 정규상이 있던 칸을 가리키면서 “아버지가 편찮아서 정규상 주임을 찾아 왔습니다. 안에 있습니까?” 하고 말했다.
그러자 박서기는 대뜸 낯색이 퍼렇게 변했다.
“정규상은 주임이 아니오. 우파분자를 찾아서 뭘 하오? 흥!”
“우파라니? 그래 이 병원에 없습니까?”
박영발 서기는 검퍼래서 “저 아래 2층 소화내과에 가 보오.”라고 마지못해 알려 주고 사무실로 휭 하니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상순은 우두커니 서서 꼭 닫긴 심혈관내과 사무실을 멍해 바라보다가 2층으로 내리어 갔다.
2층 복도에서 두리번거리며 소화내과를 찾을 때 누군가 뒤에서 옆구리를 슬쩍 건드렸다.
“아니, 이게 상순이 아니오?”
상순이 머리를 돌려 보니 정규상이 아니겠는가!
“형님, 그간 무사했소?”
상순이 반가와 소리치자 규상은 사무실과 복도를 두리번거리더니 상순을 데리고 세면실로 들어갔다.
상순은 따라 들어가면서 이상한 감이 들었다.
(무슨 눈치 보여?)
규상은 세면실에 들어가서 수도 물을 틀어놓고 문 밖의 동정을 살피면서 나직이 물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소? 아버지는 잘 있소?”
상순은 수척해진 규상을 보자 대뜸 울먹해졌다.
“아버지 편찮아 왔소.”
“안됐구나. 어떤 정황이냐? 모시고 올 게지.”
규상은 아버지 정황을 죽 이야기 하고나서 뒷말을 이었다.
“올해 농사를 쫄딱 망쳤소. 허백호 서기는 무슨 심갱밀식농사법인지 해서 한 헥타르에 5만근을 거두라고 강박했소. 그런데 50근도 거두지 못했소…”
이때 안경을 건 의사가 세면실에 물 초롱을 들고 들어왔다. 그러자 정규상은 변소로 들어가 소변을 보는 척 했다.
상순은 의아해 하다가 안경쟁이가 나간 후 규상에게 물었다.
“어째 이상하오. 형님은 왜 남의 눈치를 그렇게 살피오?”
규상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복도에 누가 엿듣는 사람이 없는가 살피고 되들어왔다.
“동생만 아오. 난 지금 우파 모자를 쓰고 병을 볼 권리마저 박탈당했소. 세면실과 변소를 청소하라오. 난 환자와 만나지도 못하게 하오.”
“뭐라오? 어쨌다고 그런다오.”
“쉿-”
정규상은 상순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여기서 말할 일이 아니오. 말 한마디를 했다가 좌우간 이렇게 됐소. 기준 삼촌의 약 처방을 떼는 날엔 또 투쟁당하고 검사서를 써야 되오. 언제 시간 있으면 함흥 촌에 가서 삼촌의 병을 보기요.”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이 너무나도 험악해 상순은 더 말도 나가지 않았다.
“알았소. 우린 함흥 촌 아랫마을 조개덕에 이사했소. 그럼 형님, 주의하오.”
정규상은 상순을 바래며 미안해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상순은 정규상의 처지가 불쌍해 목이 꽉 막힌채 작별하고 병원을 떠났다.

                                         8. 함정

     붉은 태양이 대지를 비추자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 갔다. 태양의 따뜻한 햇볕에 만물이 소생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다. 하건만 온 한 해 불비를 퍼부었기에 온 대지가 후꾼후꾼 무덥고 가물어 한해 농사를 또 망쳐 먹었다. 사원들은 쌀 고생을 하다못해 서북풍을 마실 지경이다.
그렇게 뜨겁던 태양은 초겨울이 되기 바쁘게 이번에는 대지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눈보라가 사납게 윙윙 불어치면서 창문을 두드리며 찬 기운이 집 안에까지 마구 파고 들었다.
여우도 맵짠 추위에 눈물을 똑똑 떨어뜨릴 엄동설한이건만 시내에서는 정치투쟁이 백열화돼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도가니 속 같았다.
정규상이 억울하게 우파 모자를 쓴 것은 아주 억울한 정치사건이고 무함사건이었다. 어떻게 말하면 음흉한 자들이 계획적으로 은밀히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고 할 수도 있었다.
언제 우파 모자를 쓸지 몰라 모두 신경을 도사리면서 출근하던 어느 날이었다.
YB대학에서는 교원대회를 열었다. 정규상도 의학학부의 부교수였으므로 회의에 참가했다. 회의에서 한 책임자는 동원연설 가운데서 당의 정풍을 협조해달라고 동원하면서 당에 대한 의견이 있으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말고 제기하라고 했다.
회의가 끝난 후 사무실에 돌아온 YB대학 의학학부 당총지 서기 박영발은 정규상을 조용히 찾았다.
그는 복도를 두리번거리더니 사무실 문까지 절컥 잠그고 아주 신비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정주임, 정주임이 책임지고 교원들을 동원해 의견을 청취한 후 정리해 당위에 회보하오.”
정규상은 이마 쌀을 찡그렸다.
“아니, 난 당원도 아닌데 왜 하필 나한테 그런 일을 시키오?”
그러자 박영발은 눈을 가슴츠레 뜨더니 바투 들이댔다.
“당신은 우리 의학학부 부학부장이 아니오? 당의 정풍을 도와 달라는데 고만한 일도 못하겠소? 황차 당신도 당원에 들자고 신청한 적극분자가 아니오?”
정규상은 그래도 선뜻이 대답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망설이면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열이 불끈 오른 박영발은 마땅찮은 눈길을 보내는 것이었다. 
     “당조직에서 도와달라면 할 게지. 무슨 군말이 그리 많소. 당에 대한 고만한 충성심도 없소?” 
박영발의 그 눈길에는 아주 음침하고 복잡한 내면세계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정규상은 그 눈길 속에 숨어 있는 음흉한 심보를 보아내지 못했다.
“그럼  의견을 수집해 당위에 보고하겠소.”
“좋소. 당에서는 정주임을 믿소. 그래야 입당도 남 먼저 하지. 허허허.”
박영발의 길죽한 낯에서는 사특한 웃음기가 너불거리었다.
정규상은 이튿날 오전에 의학학부 교원들과 YB병원 내과 의사들 그리고 간호사들까지 불러 의견청취회의를 열었다. 회의를 당장 시작해야 하겠는데 박영발 서기만은 2층 회의실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정규상이 내과 서기 사무실에 가보니 문이 꼭 닫겨 있었다. 그가 노크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박영발은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앉아 있었다.
“회의를 시작하겠는데 박 서기 없어서 시작하지 못하고 있소.”
“정 주임, 당원들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회의인데 내 가면 불편해하오. 누가 서기 앞에서 당에 대한 의견을 제기하겠소?”
“오, 알았소.”
회의실에 돌아 온 정규상은 당에 대한 의견을 제기하라고 교원과 의료일군들을 동원했다.
교원들은 모두 서로 눈치를 보면서 입에 빗장을 지르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회의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한참 후 한 교원이 대담하게 발언했다.
“당과 군중간의 관계가 긴장한데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 주십시오.”
삽시에 회의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교원은 제 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규상은 그 교원을 돌아보며 팽팽하던 신경을 느슨하게 만드는 말을 했다.
“구체적으로 실례를 들어 얘기하십시오. 의견을 드리는 것은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당에 허물이 있으면 제기해서 고치게 하면 우리 당이 더욱 발전하고 위대하게 될게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구애 받지 말고 얘기하십시오.”
그제야 그 교원은 우쭐 일어나 대담히 말했다.
“우리 내과 박 서기를 보십시오. 진종일 문을 꼭 닫아걸고 신문만 본단 말입니다. 병원의 한개 과 당총지 서기 뭡니까? 의사라면 환자들 병을 봐야지 신문만 보다가 퇴근하면 됩니까? 또 군중들이 당총지 서기를 찾아가 담화를 하려고 해도 무슨 일을 하는지 항상 문을 꽉 닫아건단 말입니다. 사실 군중들은 서기 사무실 문고리를 쥐였다가도 두려워서 말도 하지 못하고 만 적이 많습니다.”
그 교원이 선코를 떼자 웅성거리던 회의실은 도가니 속처럼 부글부글 들끓기 시작했다.
교원들은 너도 나도 앞장서 신변의 당원들에 대한 별의별 의견을 다 드렸다.
회의가 끝난 후 정규상은 당의 정풍을 도우려는 충성심에서 교원들과 의료일꾼들을 찾아다니면서 당 조직에 대한 의견을 더 수집했다.
뒤이어 며칠 밤도와 교원과 의료일군들이 제기한 의견을 12가지로 귀납해 당 조직에 바쳤다.
그중에 이런 의견도 있었다.
“당과 군중은 물과 고기와 같아야 되는데 당 총지 서기실 문이 꽁꽁 닫혀서야 되는가? 당과 군중 간에 문턱이 있어야 되는가? 응당 이런 문턱부터 없애야 합니다.”
당총지 서기 박영발은 정규상이 종합정리해 가져온 두툼한 의견서를 받아들고 펼쳐 보더니 길죽한 말상에 간교한 웃음을 지었다.
“당에 대해 의견이 아주 많구만. 좋소. 수고했소.”
며칠 지난 뒤 문제가 터졌다. 정규상은 그 의견서가 화근이 돼 우파 모자를 쓰고 몇 십 년이나 고생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해 3월에 정규상은 전국소수민족참관단의 120명 가운데의 지식분자 소조 조장으로 돼 할빈, 대련, 천진, 북경, 상해, 광주, 내몽골 등 전국 각지를 참관했다. 그 사이에 북경 5.1국제노동절을 경축하는 천안문성루 관례대에 올랐다. 그런데 그 좋던 기분이 사라지기도 전에 의학학부에 돌아와 보니 2층 회의실로 올라가는 난간에 그를 공격하는 대자보가 다닥다닥 나붙은 것이 첫눈에 띄었다.
대자보의 주요 과녁은 그가 수집해 제기한 12가지 의견서였다. 기실 그것은 정규상이 한 말도 아니고 군중들이 제기한 의견을 그가 귀납해 제기한 것뿐이었다. 그것은 또 당위 지시에 따라 정풍을 돕자는 합리화건의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허나 정치모자공장에서는 그에게 터무니없는 “우파모자”를 끝내 들씌웠다.
하긴 YB대학 의학학부에서도 몇 프로에 해당된 우파분자를 만들어 투쟁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우파대상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아 박영발 서기는 쩔쩔 맸던 것이다. 그 대목에 정규상이 그처럼 엄청난 12가지 의견을 도처에 뛰어다니며 수집해 귀납해 바쳤다.
박영발은 무릎을 탁 치며 잘코사니를 불렀다.
"이런, 이런! 네 놈이 우파 모자를 써 봐라.”
하느님도 무심하지. 당에 대한 충섬심이 오히려 화근으로 되다니?
청청 하늘이어, 어이하여 세상에 이런 억울한 일도 다 있는가?
억울한 우파 모자를 들쓰고 집에 돌아온 정규상은 침식을 잊은 채 구들에 털썩 들어 눕고 말았다.
그는 부모를 조선에 보내면서도 조선 고향에 나가지 않았다. 지어 그를 보고 연변에 남으라고 동원하던 림춘추까지 조선에 가벼렸다. 하지만 그는 조선 고향에 가지 않고 이 땅에서 중국 공산당과 조선족의 의학교육을 위해 룡정에서부터 국자가에 들어와서까지 불철주야 가시덤불을 헤쳐 왔다.
그가 그래 중국 공산당을 반대한 우파분자란 말인가?
       1949년 여름에 정규상은 조선 평양의과대학으로 고찰하러 나갔을 때다. 그렇게 함께 살자고 하는 부모와 여동생들을 보고 중국 조선민족의학교육 사업이 자기를 요구한다면서 그들을 중국에 되돌아오라고 동원한 그가 아닌가! 하나 밖에 없는 아들로서 어린 여동생과 매부에게 부모와 어린 여동생 셋이나 맡겨 놓고 하루 밤 묵어서 부모를 떠난 그의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그릇마저 없어 바가지에 밥과 국을 떠 자시는 부모형제들을 조선에 남겨두고 하나도 돕지 못하고 두만강을 건너온 그, 6.25전쟁에 두만강이 막힌 미국비행기 폭격에 시체마저 남기지 못한 아버지를 보지도 못하고 사업한 그의 충성심, 당과 인민, 민족의 의학교육사업에 대한 그의 충성심을 무엇으로 다 표현하랴!
그런데도 우파란 말인가! 건국 전에 입당신청서를 쓰고 당 조직에서 시키는 일은 발을 벗고 나선 그가 아니었던가!
그는 깊은 함정에 훌렁 빠지고 말았다. 누가 그것이 정치 야심가들이 파놓은 보이지 않는 정치 함정일 줄을 꿈에나 생각했겠는가! 그 함정은 어찌나 어둡고 깊고 침침한지 몇 십년을 허우적거리고 발악해도 헤어 나오기 힘든 함정이었다.
밤이 가고 흐린 날이 희붐해지도록 그는 천정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튿날 밤 먹장구름이 덮쳐왔다. 창밖에서는 소낙비가 우르릉 꽝꽝 우레 소리와 더불어 억수로 퍼부었다. 웬 승용차가 문 밖에 와 조용히 멈춰 섰다.
이윽고 똑똑똑 노크 소리가 나직이 들렸다.
(밤 일곱 시도 넘었는데 누구일가? 날 붙잡으러 온 게 아닐까?)
착잡한 생각에 모대기면서 정규상이 일어나면서 들어오라고 맥없이 말했다.
그런데 들어온 이는 생각 밖으로 정성해 서기의 부인 리영희었다.
“어떻게 돼 오셨습니까? 혹시 정 서기 앓습니까?”
“…”
정규상은 아무 말도 없는 리영희를 따라 밖에 나가 승용차에 앉았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데 그들은 어느새 자그마한 호수 옆에 있는 정성해 서기의 주택에 이르렀다.
정규상은 화분에 물을 주던 정성해 서기가 들어오라고 하자 온돌 침실에 들어갔다.
정성해가 손을 씻고 올라왔다.
정규상은 인차 “어데 아픕니까? 봅시다.”라고 하면서 다가앉았다.
그러자 정성해는 “아니요. 동무 속이 아픈 거 같아 속이나 풀어주자고 오라 했소.”라고 했다.
뒤이어 술상이 들어왔다.
“자, 한잔 들면서 얘기하기요.”
정성해 서기가 권하자 정규상은 마음을 놓고 함께 한잔을 쭉 냈다.
정성해 서기는 채를 집어 정규상의 앞에 놓인 접시에 놓으면서 말했다.
      “지금 시국에 주의해야 하오. 그러나 아무 근심하지 말고 계속 자기 앞의 일을 잘하오.”
     그 우렁우렁한 말소리에 정규상은 속이 훅 풀렸다. 속이 든든해지는 감이 들었다. 코마루가 시큰해났다. 그것은 곤경에 빠져 억울한 우파 모자를 쓰고 정치투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들어 허우적거릴 때 구명환을 뿌려주는 구명은인을 만난 심정이었다.
정규상은 뒷심이 든든해졌다. 그는 시름 놓고 술잔을 쭉쭉 굽 냈다.
정성해 서기는 그에게 술을 부어주면서 따금하게 충고해주었다.
       “동무는 정치안광이 너무 없소. 자기 속심의 말을 아무한테나 다 해서야 되오?”
       정규상은 인차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아니, 건 내 개인 의견이 아닙니다. 군중들의 의견을 귀납해 제기했을 뿐입니다.”
       정성해 서기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과 군중 관계를 혼돈하지 마오. 좌우간 근심하지 마오. 당에서 시키는 일을 했으니까. 계속 당에서 시키는 일을 잘 하오. 시간이 흘러가면 공정한 판결이 있을 게요.”
      정규상은 정성해 서기 말을 듣고 시름 놓고 술을 마셨다. 하여 그날 밤에 둘이서 한 근 술을 다 마셨다…
그 후 정규상은 YB대학 의학학부 부학부장 직무를 철직받고 YB병원 내과의 청소공으로 돼버렸다. 환자도 보지 못하고 진종일 변소와 병실을 청소하면서 사상개조를 해야 했다. 그때부터 그는 거의 날마다 우파 고깔모자를 쓰고 이른바 우파 분자라는 모자 외에도 “반당분자”, “심장내과 반동권위”, “반역자”, “내부간첩”, “일본특무”, “조선특무”, “매국역적” 등등 숱한 터무니없는 모자를, 억울한 모자를 쓰고 투쟁당했다.
박영발 서기는 투쟁대회에서 정규상의 머리를 쥐어 시멘트땅바닥에 마구 짓 쪼아 놓았다.
정규상은 머리가 터져 대뜸 피가 질벅하게 흘렀다.
박영발 서기는 악에 받쳐 꽥꽥 고함쳤다.
“이 놈은 철두철미한 반당분자입니다. 당에 어떻게 의견이 많으면 12가지나 만들어냈겠습니까?”
정규상은 억울해 숙이었던 머리를 쳐들면서 고함쳤다.
“억울하오. 건 박서기가 날 보고 시키지 않았소? 내가 당원도 아닌데 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박 서기는 사무실에서 문을 걸고 뭐라고 했소? 당조직을 돕는 셈치고 군중들의 의견을 수집해 당위에 보고하라고 하지 않았소?”
“에끼, 이 놈, 생사람을 잡는다. 내 언제 그랬니? 이 놈이 사상개조 표현이 나쁘구나.”
박영발은 청년 교원과 의사, 학생들을 시켜 쇠줄에 큰 돌을 묶어 가져오게 해 정규상의 목에 걸었다.
“반당 우파분자 정규상”이라는 글줄이 달린 커다란 돌이 어찌나 무거운지 쇠줄이 목덜미를 파고들면서 목에서 피가 질벅하게 흘렀다.
정규상은 목이 아프다 못해 까무러치고 말았다. 그러자 박영발 서기는 학생들을 시켜 정규상에게 찬물을 끼얹게 했다.
찬물을 맞은 정규상은 겨우 일어났다.
“계속 투쟁합시다.”
박영발 서기는 정규상을 손가락질 하며 마구 무함했다.
“이 놈은 항상 심장전문가라는 기술을 뻗대고 서기인 나를 업신여긴 반당분자입니다. 이 놈 정규상은 일본 특무입니다. 항일전쟁시기에 일본 놈들이 대준 장학금으로 공부한 일본 국비생 대학졸업생입니다. 이 놈은 조선특무입니다. 이 놈의 아버지와 어미, 여동생들은 조선에 있습니다. 그래도 조선특무 아니라고 하겠는가!”
그러자 정규상은 너무 억울해 고함쳤다.
“일본 국비생이면 다 특무입니까? 조선에 부모형제가 있으면 다 조선 특무입니까? 여기 조선에 친척이 없는 교원이 몇입니까? 그래 박서기는 조선에 친척이 없습니까? 그럼 박서기도 조선특무입니까?”
말문이 막힌 박영발은 한참 입을 다물고 멍해 서있다가 다른 빈 구석을 찔렀다.
“이 놈이 정말 자기 죄를 승인하지 않는구나. 네놈이 이전에 농촌에서 온 네 아버지 친구네 아들이 왔을 때 뭐라고 했는가? 그 상순이라던가 그 사람 굶은 조카가 죽어나갔다는 말을 들을 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무래나 백성들이 배불리 먹구 살면 되지. 무슨 일이 중요한가?’…”
“난 그렇게 말한 적도 없소. 그저 농촌에서 빈하중농들이 배불리 먹고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말한 적은 있소. 생사람을 물지 마오!”
박영발은 정규상이 완강하게 부인하자 말로는 안 되겠으니 주먹다짐을 들이댔다. 그는 구두 발로 숙인 정규상의 머리를 마구 찼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목에 건 돌멩이를 매단 쇠줄로 마구 톱질 하듯이 쥐어 당겼다 밀었다 했다.
정규상은 목이 베져 뻘건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너무 아파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정경을 보던 군중들은 너무 구차해 상을 찡그리면서 머리를 숙이었다. 여기저기 여성의무일군들의 비명소리가 들리었다.
정규상은 그런 모진 투쟁을 받으면서, 비인간적인 모욕받고 피 흘리며 어둠속에서, 고통 속에서 외롭게 지지리도 깊고 긴 음흉한 함정의 어둠 속을 무릎걸음으로 기고 또 기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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