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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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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6)
2017년 04월 24일 14시 12분  조회:142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4. 토성 개구멍의 비밀

       늦가을이 돌아오더니 며칠 새 이른 아침이면 하얀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매서운 겨울이 이제 곧 다가올 것을 미리 알리는 상 싶었다.
       병완은 마을 사람들이 타작까지 다 하자 사위 범호를 시켜 정미소에서 쌀을 찧게 했다. 벼를 마대채로 정미기 아궁이에 왈왈 쏟아 넣기만 하면 이으고 새하얀 입쌀이 쏟아져 나왔다. 마을 아낙네들은 팔이 아프게 절구꽁이 질 하던 고역에서 풀려나 만면에 춘풍이 감돌았다.
상순이 토성 안 촌공소로 들어가 보니 할아버지가 벌써 와서 곰방대를 뿍뿍 빨며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식사를 하셨습둥?”
“응.”
병완은 구들에 올라와 앉는 막내손자를 대견스레 바라보면서 분부했다.
“이계삼 서기는 이젠 마을의 일을 나한테 맡기고 완전히 진수해구위로 올라갔다. 넌 참군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집과 집, 촌공소와 주변의 집들과 통하는 갱도를 파라. 일단 토비들이 쳐들어오면 갱도를 이용해 마을을 지켜야 한다. 네가 참군해도 마을 보위에 빈 구석이 없게 하고 민병도 잘 훈련시켜라.”
병완은 그러고도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장학산을 잘 살피니?”
“예, 민병들을 시켜 밤낮 윤번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병완은 상순에게 당부했다.
“장학산을 놓치는 날엔 그 놈이 우리 마을 정황을 토비들에게 알릴게다. 충국도 우리 마을 주변에 기여 들어 정찰할 수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라.”
“예. 알았습니다. 인삼 아즈바이 낯을 봐서 전번에 장학산을 놔뒀습니다. 이제 다시 국민당을 돕는 날엔 당장 총살해 버리겠습니다.”
상순은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러 떠나가려고 했다.
“잠간!”
병완의 부름소리에 상순은 주춤 멈춰 섰다.
병완은 상순의 어깨를 다독이었다.
“얘야, 장학산은 항일전쟁 때 우리 유격대에 양식을 대줬기에 밭만 청산하고 살려 준 게야. 장학산은 항일에 공훈이 있는 애국적인 지주이기에 현재 표현을 봐서 다른 지주와 달리 대해야 한다. 만약 그가 공산당을 옹호하고 우리 토지개혁을 파괴하지 않으면 놔둬야 한다. 만약 이제부터 우리 공산당과 적대시하면서 국민당을 등에 업고 토비를 돕는 날엔 처단해 버려야 한다.”
상순은 허리를 굽히면서 “할아버지 말씀을 명기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날부터 땅이 얼기 전에 상순은 할아버지 지시대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갱도를 파고 마을 주변에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비술나무를 베다가 두 장 높이로 든든한 방어바자를 세웠다. 마을 네귀에는 높은 망루를 세워 놓고 민병들에게 보초를 서게 하였고 토성 안 촌공소 마당에도 높은 망루를 세워 전투지휘소를 차려 놓았다.
병완은 높다란 방어바자와 망루 그리고 갱도를 일일이 돌아보고 만족해했다.
“내 용정에 한번 가봐야겠다. 정규상과 원삼이네 형제들과 자식들도 두루 찾아봐야겠다.  마을을 잘 지켜라.”
할아버지 말씀에 상순은 “예. 근심하지 마시고 무사히 갔다가 오십시요.”라고 하며 바래주었다.
상순이 촌공소 마당에 세워놓은 지휘소 우에 올라가는데 성수가 촌공소 마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김 련장, 큰 일 났소.”
“무슨 일이요?”
성수는 헐레벌떡 지휘소우에 뛰어 올라왔다.
“장학산이 달아났소.”
“아니, 내 이패장 보고 잘 지키라고 하지 않았소?”
성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우린 토성대문을 윤번으로 밤낮 지켰소. 헌데 장학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더구먼.”
"제미랄! 무슨 보초를 그렇게 섰소?”
상순은 성수를 책망하더니 지휘소에서 내려갔다.
“가 보기오!”
상순은 성수, 학수, 창걸, 흥수 등 민병들을 데리고 쏜살 같이 소서구 어귀 토성 안으로 달려 가보았다.
그들은 다짜고짜로 장학산의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안 남쪽구들에는 장학산의 딸 미련 밖에 없었다. 상순을 보자 미련은 이불을 들쓰고 사시나무 떨듯 했다.
“애비는 어디 있어?”
상순은 권총을 뽑아 들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미련은 겁이 나 낯이 새파랗게 질린 채 도리머리 질 했다.
“모르겠소. 내 자구 일어나니 아버지와 엄마가 보이지 않았소.”
상순은 동쪽 방을 발칵 뒤져보았다. 하지만 장학산과 여편네 충씨는 그림자도 보이지도 않았다. 상순이 민병들을 데리고 서쪽 방에도 올라가 여기저기 들춰보았다.  집안에 어디에로 기여 들어간 흔적도 하나도 찾아낼 수 없었다.
“어허, 참,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데.)
상순은 민병들을 보고 미련을 지키게 하고 혼자 바깥으로 나와 토성 안을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이게 뭐냐?”
집 뒤 토성 구석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놈들이 분명 이 개구멍으로 도망쳤구나.”
상순은 권총을 허리에 차고 쪼그리고 앉아 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뒤에는 장학산 부부가 일하기 싫어 채 베지 않은 마른 강냉이대가 꽉 들어선 강냉이 밭이 내다보였다. 장학산 년 놈들이 이 구멍으로 소리치며 나가 강냉이 밭으로 하여 도망친 것이 분명했다.
(대문만 지키니까 여기로 도망치는 거 몰랐지. 에이 참,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상순은 상서롭지 못함을 느꼈다.
장학산네 집 안으로 돌아오는 상순의 뇌리에서는 숱한 궁리가 번개처럼 번쩍이었다.
(옳다. 이렇게 된바하고는 적들에게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꾸미고 미련을 볼모로 잡아두고 큰 그물을 늘이어 고기를 잡아야지.)
상순은 미련을 보자 따지고 들었다.
“네 애비 어미가 집 뒤 토성 구멍으로 도망친 걸 다 안다! 그래도 어디로 간 걸 말하지 않겠느냐?”
그러자 미련은 구들에 머리를 마구 쪼아대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오빠, 난 정말 아무 것도 모르오.”
“오빠라구 부르지 말라!”
미련은 머리를 끄덕이고 뒤 말을 이었다.
“평소에 아버지가 지학사 삼촌처럼 총살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했소. 이젠 인삼 오빠마저 떠나갔으니 이 집이랑 다 빼앗길 게 빤하다고 했소. 허나 나를 두고 사라질 줄은 정말 몰랐소. 이전에 한 집안처럼 살던 정을 봐서라도 제발 용서해주오.”
장미련은 새파랗게 질린 두 볼에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상순은 구들에 털썩 걸터앉아 한참 궁리했다. 이윽고 그는 바깥에 나가 성수를 보고 몇몇 민병들을 데리고 집 안팎에서 미련을 지키라고 하고는 함흥 촌 쪽으로 씨엉씨엉 내려갔다.
이튿날 상순이 답답해 뒤통수를 툭툭 치면서 토성 안 촌공소에 곧추 들어갔다.
촌공소에는 허영주와 할아버지가 마주 앉아 한창 뭘 토론하고 있었다.
상순은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할아버지, 언제 돌아왔습둥?” 하고 인사부터 한 후 물었다.
“죤슨과 정성문 삼촌 찾아봤습둥?”
병완은 호랑이 같은 막내손자를 대견하게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죤슨 신부는 확실히 영국으로 돌아갔더구나. 정성문과 알아보니 그는 원래 영국에서 동양에 파견해 간도 일본 놈들을 살피러 온 정탐군이였더라. 정성문은 내가 만난 날에 면바로 고향 조선 원산 쪽으로 떠나느라고 야단이더라.”
상순은 구들에 올라가 앉으면서 다급히 물었다.
“정규상도 조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까?”
병완은 상순을 마주 보면서 대답했다.
“정규상은 장춘(신경)에서 국비생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용정 일본병원에 와서 일하다가 지금 위생학교를 차려놓고 의사와 간호사들을 양성하더라. 그는 아버지를 따라 고향에 가지 않고 위생일군들을 많이 양성해 민주연군에 보낼 예산이더라. 앞으로 공산당 민주연군이 국민당 군과 싸우려면 의사와 간호사가 많이 필요하다면서 고향마저 돌아가지 않았더구나.”
병완은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이번에 원삼이네 둘째아들 장은과 넷째아들 종호가 사는 평란촌에 가 보았다. 그 마을에서도 한창 토지개혁을 해서 지주 박주호와 김경화를 청산해 종호와 장은이네도 밭을 분배받았더구나. 이젠 살 때를 만났다고 좋아 야단이더라. 종호는 그 마을 정득현 영감의 딸 정옥분이란 처녀와 결혼까지 했구. 초가삼간을 짓고 살림살이를 하더라. 종호네 가시아버지는 종호가 힘꼴을 쓰는 걸 보고 마음에 들어 사위로 삼았다더구나. 장은과 종호는 널 놀러 오라고 하더라.”
“에이구, 언제 놀러 갈 새 있습둥?”
상순은 할아버지와 영주한테 다가앉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일이 생겼습구마.”
“무슨 일?”
상순은 장학산이 달아난 일을 말했다.
병완은 주먹으로 구들을 쿵 치며 말했다.
“큰 일 났구나. 그 놈이 삼도만으로 달아나는 날엔 위험해. 토비 놈들이 유격대가 떠나간 걸 알고 우리 마을을 습격하러 올게 아니야?”
상순은 머리를 숙이었다.
“할아버지, 다 내 잘못입니다. 민병들은 밤낮으로 토성 대문을 지키면 되리라 생각했습디다."
병완은 상순을 정색해 보면서 타일렀다.
“이후에 무슨 일을 하든지 좀 빈틈없이 해라.”
상순은 머리를 조아렸다.
“예.”
까까머리를 한 허영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미 놓친 거 어쩌겠소? 이젠 토비들의 습격을 대처할 준비를 합시다.”
병완은 상순을 뚫어지게 보면서 말했다.
“넌 잠시 참군을 미루구 토비들의 콧대를 꺾어놔라.”
“예, 아버지두 자꾸 말리는 바람에 어쩔까 궁리하던 참입니다.”
함흥 촌 당지부 서기이자 촌장인 병완은 허영주와  토비습격을 막을 대책을 한참이나 토론했다. 뒤이어 그들은 촌공소에서 나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갱도와 목책을 돌아보았다. 나중에 망루에 올라가 마을 주변을 둘러보면서 구체적으로 대책을 토론했다.
하늘에서는 거위 털 같은 눈송이가 푸실푸실 흩날려 내렸다.
초겨울이 성큼 다가오자 을씨년스러운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허나 광복을 맞은 함흥 촌은 풍족한 생활로 하여 온 마을에 기쁨과 행복으로 들끓었다.
마을 이 집 저 집에서 떡을 치는 소리가 났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애들이 엿을 먹으면서 소리쳤다.
“얭, 얭 맛있다. 오래 오래 맛있다.”
상순은 할아버지와 영주와 토론한 대로 마을 호위에 빈틈이 없는가고 민병들을 데리고 순찰했다.
그는 함흥촌에만 민병들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할아버지와 토론하고 패용천 촌의 지학사의 토성 안 집 자리와 소서구의 토성 안 장학산네 집 자리, 조개덕의 토성 안 조덕림의 집 자리에도 민병들을 주둔시켜 지키게 했다. 그리고 집집마다 울바자 대신 목책을 세우고 목책 문을 꽁꽁 닫아걸어 토비들이 난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병완은 마을의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도끼나 식칼, 낫을 갖춰 놓고 토비들이 들어오면 싸울 수 있게 만단의 전투준비를 시켰다.
상순이 한창 망루에 올라 권총을 두자루나 찬 허리에 두 손을 지르고 서서 마을 주변을 둘러보는데 성수 패장이 헐레벌떡 달려 왔다.
성수 패장은 헐떡거리면서 보고했다.
“보고, 김련장, 장학산과 여편네가 돌아왔소.”
“엉?”
성수는 망루 우에 올라와 소서구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장 지주와 여편네가 글쎄 땔나무를 해 지고 돌아오지 않았겠소? 그 것도 토성 밑구멍으로 아니라 토성 대문 쪽으로 해 들어오지 않겠소.”
상순은 이상해 물었다.
“어디로 갔는가 물어 보았소?”
“땔나무가 다 떨어져서 땔나무 하러 갔다고 합데.”
상순은 한참 궁리하더니 손을 홱 휘둘렀다.
“가 보기오!”
상순을 따라 성수와 몇몇 민병들이 소서구 쪽으로 달려갔다. 학수 등이 장총을 메고 토성 대문을 지키고 있었다.
학수도 상순을 따라 장학산네 집 안에 들어갔다.
장학산은 상순을 보자 뜻밖에도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높은 구들 턱에서 뛰어 내리며 마중했다.
“김 련장 왔소?”
상순은 인사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따지고 들었다.
“어디로 갔댔소?”
“땔나무 하러 갔댔소. 겨울이 닥쳐오는데 땔나무가 없어 어쩌오? 어우, 추워라. 얼어 죽겠다.”
장학산은 미리 대답할 말을 준비나 해놓은 듯이 상순이 묻자마자 술술 주어 댔다.
상순은 허리에 찬 권총을 매만지면서 집안을 둘러보다가 또 한마디 물었다.
“왜 대문으로 나가지 않고 토성 밑에 개구멍을 내고 가만히 나갔는가?”
그 물음에도 장학산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나를 이 토성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지키는데 어쩌겠소?”
상순이 마당에 나가 보니 장작을 패서 가려 놓은 것도 가득했다.
(개놈새끼, 땔나무가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분명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구나.)
상순은 집 안으로 되들어갔다.
“장 지주, 왜 미련은 데리구 가지 않았는가?”
장학산은 여편네와 힐끔 눈을 맞추더니 입을 뗐다.
“달아나지 않겠는데 딸애까지 데리고 가서 뭘 하겠소.”
상순은 장학산이 치밀하게 궁리한 후 토성 밑에 구멍을 내고 나갔다는 것을 봐냈다. 허나 그는 짐짓 모르는 척 했다.
“이후에는 나무 하러 가겠으면 민병들과 말하고 가오. 알았소?”
장학산은 “예, 예. 알았소.”라고 하며 여편네와 미련을 흘끔 건너다보는 것이었다.
(네 딴에는 아주 쉽게 속여 넘겼다고 여기겠지? 흥!)
상순은 그쯤 해놓고 성수랑 데리고 집안에서 나왔다.
그는 토성 밖으로 나오자마자 토성 안쪽을 흘끔 들여다보면서 성수에게 말했다.
“뭔가 있어. 숱한 땔나무를 두고 밤중에 불시에 땔나무를 해?”
“미련을 두고 간 걸 봐서 도망치자는 건 아닌 거 같소.”
성수의 말에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옳소. 그 놈은 땔나무를 하러 나간 척 하면서 우리 마을의 정보를 삼도만 쪽에 보낸 거 같소.”
그러자 성수는 눈이 동그래 도리머리 질 했다.
“그 놈이 전날 저녁에도 집에 있었는데 날개라도 있어 삼도만까지 날아갔다가 이튿날 점심 전에 돌아온단 말이오?”
상순은 성수의 어깨를 다독였다.
“성수, 생각해보오. 딱 지학사가 삼도만으로 가야만 전할 수 있겠소?”
“그럼 웬 놈이 마중하러 왔단 말이오?”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토비들이 왔다 갔을 수 있소. 대문으로부터 눈 우에 찍힌 장학산의 발자국을 따라 가만히 가 보기요.”
“그게 옳소.”
상순은 민병들을 돌아보았다.
“장학산의 집 서쪽 방에 들어가 있으면서 잘 지키오.”
창걸은 “알았소. 건데 토성 바깥에 토비들이 오는 가 살피지 않고?” 하고 의아해 했다.
“토성 대문 안에서 지키오. 장학산네 집을 지키지 않는 척 하자는 거요.”
상순의 말에 창걸이랑 토성 안에서 대문과 여기저기 보초를 서고 장학산네 집에 들어가 지키었다.
상순은 성수와 함께 장학산과 여편네가 돌아온 발자국을 따라 가보았다. 처음에 발자국은 천지꽃산 쪽으로 났다가 소서구 막바지 쪽으로 굽으러들더니 북쪽으로 향했다. 북으로 한참 걸어가니 일성 촌 부근 산마루 수림에까지 가서 발자국이 어지럽게 많아진 것이 보였다. 허나 눈이 내려 발자국이 몇 사람의 발자국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됐다.
상순은 숱한 발자국을 일일이 여겨보더니 성수에게 말했다.
“보오. 여기서 웬 놈과 만나 우리 마을 정황을 알렸을 거요. 적들은 우리 마을에 유격대가 떠나가고 민병들 밖에 없는 걸 안다면 꼭 요즘 쳐들어 올 것 같소. 정황은 아주 위급하오. 즉시 전투준비를 해야 하겠소.”
성수는 상순의 분석에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상순은 일성 촌 부근을 둘러보며 속궁리를 했다.
“토비들이 여기서 장학산과 만난 걸 보면 이번엔 저 동쪽의 계수동으로 멀리 돌아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성수는 상순의 총명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상순은 성수에게 전투준비를 이리 이리 하라고 시켰다.
성수는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오- 참 좋소. 그럼 토비 놈들을 혼쭐 낼 수 있을 거요.”
사실 상순의 짐작은 비슷하게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장학산은 땔나무를 하는 척 하면서 여편네를 데리고 밤도와 가만히 괭이로 토성 밑에 구멍을 내고 나갔던 것이다. 그들은 자는 미련을 깨워 데리고 달아나려다가 괜히 민병들에게 붙잡히면 미련까지 죽일 가봐 겁나 놔두고 자기들만 삼도만을 바라고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일성 촌 부근에서 뜻밖에도 토비무리를 만났는데 그 속에는 충국도 있었다.
원래 충국은 전보흥 소교의 파견을 받고 토비 대여섯을 데리고 함흥 촌과 진수해와 팔도, 태양 등 지의 민주연군 정황을 정찰하려고 나왔던 것이다.
충국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자 무릎을 꿇고 엎디어 왕왕 울었다.
“아버지, 어머니, 살아 계셨구먼.”
장학산은 충국의 머리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쳤다.
“이게 꿈이냐? 흑흑, 생시냐? 난 다신 너를 보지 못 하는가 했다. 이 놈아, 우릴 버리고 혼자 어디에로 갔니? 흑흑, 흑.”
장학산의 여편네 충씨는 충국을 끌어안고 욕했다.
“내 뭐라더니? 국민당군이구 빨갱이군이구 까딱 삐치지 말라는데도. 유격대를 그렇게 도와주었건만 빨갱이들은 우리 일가 밭을 다 빼앗아 갔다. 이 못난 놈아! 이젠 집으로 돌아가자.”
허나 충국은 일어나면서 도리머리 질 했다.
“안 되오. 이젠 빨갱이들은 우릴 용서하지 않소.”
장학산이 오히려 충국을 말리었다.
“빨갱이들이나 유격대나 모두 애증이 분명하게 처리했다. 그들은 이전에 우리 유격대에 쌀을 지원해 준 일과 네가 유격대와 함께 일본 놈들을 족친 공훈을 봐서 우릴 총살도 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이 어시들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충국은 옆의 토비들의 눈치 보여 부모를 끌고 한쪽으로 가서 나직이 말했다.
“늦었수. 그때는 인삼의 낯을 봐준 거오. 인삼이 갔기에 누구도 우릴 봐주지 않을 거요. 게다가 전번에 내가 함흥 촌 정황을 조덕산에게 알려주고 앞장서 들이쳤기에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걸. 그 놈들이 용서한다고 쳐도 우리 밭과 집을 다 빼앗기고 어떻게 살겠소? 이젠 그 놈들을 몽땅 쓸어버려야만 우리 집과 밭을 찾아낼 수 있소. 우리 조상들이 세세대대로 몇 천 년 살아온 우리 땅을 무슨 이유로 조선에서 굴러 온 거지 놈들이 빼앗아 가야 한단 말이오? 그 놈들이야 말로 날강도가 아니고 뭣이오?”
장학산은 집과 밭 말이 나오자 이를 쁙쁙 갈았다.
“빨갱이 놈들이 괘씸하긴 괘씸하다. 그런데 꼬리빵즈들이 몽땅 빨갱이 편이다. 그 놈들을 이길 수 있겠느냐?”
장충국은 목청을 돋궈 호언장담했다.
“근심하지 맙소. 여기 몇 개 마을에 꼬리빵즈빨갱이들이 많지만 삼도만과 묘령, 천교령 일대에는 우리 국민당 군이 우글거리오. 황차 관내에서 이미 우리 국민당 대부대가 장춘과 길림을 점령하고 이제 오래잖아 교하를 치고 신개령과 할바령을 넘어 동만에도 쳐나올 게오. 그때면 저 산 아래 빨갱이 놈들을 몽땅 없애치우고 우리 집과 밭을 찾아 내얍죠.”
충국은 부모를 데리고 보초를 서는 토비들 쪽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밤이 깊었으니 일성촌에 들어가 쉬고 가깁소.”
장학산은 도리머리질 했다.
“안 돼. 집에 미련을 두고 왔다. 우리 혼자 살겠다고 걔를 두고 달아나겠니? 집에 가 가만히 있으면 적어도 상순이랑 우리를 죽이진 않는다. 상순은 적어도 너의 의형제 아니야?”
"픽!"
충국은 코 방귀를 뀌었다.
“아버지, 아직도 병완 일가에 미련을 두오? 절대 믿지 마오. 그 놈들은 빨갱이들을 믿구 우리 밭을 청산한 놈들이오. 얼마나 좋소. 소작료도 내지 않고. 흥!”
그는 주먹으로 소나무를 꽝 쳤다. 그 바람에 눈가루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지금은 그 놈들이 자기 세상이라고 우쭐거려도 며칠 후에 그 놈들을 싹 쓸어버리지 않는가!”
충국은 큰소리를 땅땅 치더니 마을의 정황을 일일이 물었다.
마을의 정황을 알아낸 후 충국은 허연 눈이 뒤덮인 수림을 둘러보더니 어둠속에서 부모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병완을 믿지 말고 이 길로 삼도만으로 들어 가깁소. 리국과 미련이야 집에 놔두면 죽이진 않겠지.”
장학산은 도리머리 질 했다.
“죽으면 죽었지. 조상들이 물려준 집과 밭을 두고 소서구를 떠날 수 없어. 죽어도 제 집에서 죽고 고향 땅에 묻히겠다. 너를 봤으면 됐다. 네나 무사히 살아 집으로 돌아오너라.”
장학산이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려 몇 발자국 뗐을 때였다.
“잠간만!”
충국이 불러 세웠다.
“아버지, 밤도 깊었으니 우리와 함께 일성 촌에서 쉬고 내일 아침에 일찍이 떠나오.”
그리하여 장학산과 여편네는 충국을 따라 갔다.
충국은 토비들을 끌고 일성촌의 토성안의 지주네 집 자리에 쳐들어갔다.
     가난한 집 식구들은 밤중에 들이닥친 토비들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른들이 이 집에서 하루 밤 자고 가야 하겠다. 우린 삼도만 토비들이다. 짹 소리 치면 몽땅 죽여치우겠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오.‘
집 주인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장학산은 비수를 쳐든 아들의 손을 잡아 내리웠다.
“얘야, 살생은 하지 말라. 하루 밤 자고 가면 된다.”
허나 장충국은 팔을 홱 뿌리쳤다.
“아버지, 이 놈들을 살려주면 내일 우릴 상순에게 고발할 거오.”
“고발하겠으면 하라지. 우리 떠나가면 다야.”
그래도 충국은 고집을 썼다.
“이 놈을 살려 주면 아버지가 내일 마을로 돌아 갈수 있소? 우리 만난 것도 다 들통 날 턴데. 흥!”
장학산이 더 말릴 새 없이 어둠속에서 충국과 토비들이 비수로 온 집식구들을 몽땅 푹푹 찔러 살해했다.
뒤이어 그 놈들은 시체를 바닥에 끌어 내려 가고 옷을 입은 채 구들에 들어 누워 한잠 잤다. 장학산과 충씨는 무서워 치를 덜덜 떨었다.
동녘하늘에 초겨울 해가 떠서 싸늘한 빛을 뿌렸다.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충국은 졸개들을 시켜 밥까지 지어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자그마한 땔나무 단을 꿍꿍 묶어 아버지에게 메워 주었다.
“땔나무를 하러 갔다고 민병들을 속이오. 수상하게 토성 밑의 구멍으로 들어가지 말고 대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오. 미련을 두고 왔으니 도망쳤다고는 보지 않을 거요.”
부모를 보낸 후 충국은 졸개들을 데리고 곧추 삼도만을 바라고 떠나갔다.
일성촌의 토성안집 지주 집을 분배받아 살던 가난한 농민 일가가 몽땅 살해된 사건은 오후에야 일성촌 민병 패장 태수가 발견하고 달려와 상순 련장에게 보고했다. 상순은 장학산이 전날 잃어진 것과 눈 우에 찍힌 장학산의 발자국이 일성촌 부근에까지 뻗어있었다는 성수의 보고를 연계시켜 본 후 분명 토비들이 왔다 갔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상순은 일성촌 태수의 귀 쌈을 챨싹 갈기었다.
“보초를 어떻게 섰으면 자기 마을에서 한 집 식구들을 몽땅 살해하는 것도 몰랐는가? 이제 다시 보초를 허술하게 서는 날엔 용서 안 해!”
“옛! 김 연장!”
상순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퉁방울눈을 부라리면서 황소숨을 씩씩 몰아쉬었다.

                       5. 허장성세

       을씨년스러운 눈보라가 산골짜기를 메울 듯이 윙- 윙- 휘몰아쳤다. 눈보라 속에 산골짜기에 촘촘히 꽉 박아세운 통나무 목책이 한 눈에 안겨 왔다.
       충국이 토비들과 함께 이튿날 해 질녘에야 기진맥진해 삼도만 평강촌 토비소굴에 들어섰다.
때마침 삼도만의 전 소교가 마을 복판에 있는 토비 지휘소에 일본 여편네 요시꼬까지 데리고 와 있었다. 전 소교의 여편네 요시꼬는 원래 일본군을 따라 조선 명천에 들어온 일본군 위안부였든데 꽤나 아직도 예쁘고 젊었다. 삼도만 삼림경찰소 소장은 진수해 위안소에 내려와 요시꼬와 하루 밤 데리고 놀았는데 두고 가기 아쉬웠다. 소장 놈은 묵직한 돈뭉치를 내놓고 요시꼬를 사서 삼도만에 데리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 놈들이 소련 홍군에게 쫓길 때 전 소교가 도망치던 일본 삼림파출소 소장 놈을 도끼로 찍어 죽이고 그 놈의 마누라 요시꼬를 빼앗아 강제로 데리고 살았던 것이다.
       요시꼬는 지금도 전보흥한테 남편 고모리가 도끼산장을 당하던 일을 생각하면 끔찍해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날 고모리는 황급히 집에 들어와 요시꼬를 보고 도망치자고 했다.
"여보, 우리 고향 나가사끼가 원자탄에 맞아 없어졌소. 우리 대일본제국은 전쟁에서 졌소. 어서 도망치기오."
"고향이 없어졌는데 어디로 도망쳐요?"
"여기 있으면 중국사람들한테 맞아죽어."
"그럼 패용천촌에 보낸 야마꼬도 데리고 도망치자요."
"안돼. 지학사 촌장한테 야마꼬를 주면 보호를 받겠는가 했는데. 안돼. 지촌장도 우릴 보호하기는커녕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어."
고모리는 당장  요시꼬 손을 잡고 다짜고짜로 집문을 나서자 울창한 수림에 들어섰다.
       "서랏!"
       갑자기 고함소리와 함께 꺽다리 괴한이 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그 뒤에는 총을 든 토비들이 나타났다.
       고모리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았다.
      땅!
     수림 속에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토비가 쏜 총에 고모리는 총을 툭 떨어뜨리고 오른팔을 붙잡았다.
       "썩어져라!"
      꺽다리괴한은 도끼를 휘둘렀다. 고모리의 어깨가 찍혀나갔다.
"악!"
비명소리와 함께 고모리의 머리가 두 쪼각 났다.
"앗!"
야마꼬가 기절해 쓰러졌다...
그녀가 깨났을 때는 실 한오리도 걸치지 않은채 꺽다리괴한의 옆에 누워 있었다. 턱주가리에 칼자욱이 난 흉측한 그 꺽다리괴한이 바로 토비두목 전보흥이였다. 
   요시꼬는 원쑤 놈을 보는 순간 눈에 불이 일었다. 그녀는 구들에서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눈에 턱주가리에 칼 흉터가 들어왔다. 목에 칼을 깊숙이 박고 싶었다. 남편의 원쑤를 갚고 싶었다. 
위안부로 짐승처럼 짓밟히며 죽지 못해 살다가 고모리를 만나 사람처럼 살게 됐다. 그 남편을 믿고 기대며 이 산골에서 살았다. 그런데 일본 고향에 돌아가려는 그 남편을 이 놈이 죽였다. 그것도 도기로 찍어 처참하게 죽였다. 그녀의 희망은 완전히 파멸되였다. 
     그녀는 속에서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러나  손에 쇠붙이 하나 없는 연약학 아녀자 몸으로 어쩌는 수 없었다선.
    "허허허. 깨났어."
    전보흥은 말이발을 드러내며 징글스레 웃으며 다가왔다. 뒤이어 다짜고짜로 요시꼬를 구들에 깔아 눕혔다. 또 짐승처럼 깔고 들어앉아 그 짓을 하려고 들었다. 요시꼬가 아무리 발버둥질치며 반항해도 도깨비처럼 둔중한 그 놈을 어쩌는 수 없었다. 요시꼬는 강간당하면서 들쑤시는 아픔을 참으며 외씨처럼 걀죽하고 창백한 얼굴에 증오에 찬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날부터 그녀는 원쑤에게 깔려 처참하게 짓밟혀야만 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이를 옥물고 복수의 기회만 기다려야 했다....
      한편 야마꼬는 통신병과 함께 삼도만에 들어온 후 형부한테 말해서 통신병을 혼내주라고  하자고 했다. 그런데 요시꼬가 뜻밖에도 일본 삼림경찰소 소장이 아닌 전 소교와 사는 것을 보고 저으기 놀랐다. 더우기 야마꼬는 몸이 남산만한 자기를 오자마자 그날 밤부터 깔고 들어 앉아 그 짓을 하는데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전보흥 놈이 강간하는 바람에 하신에서 숱한 피를 흘리고 조산까지 했던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전보흥이 자기가 낳은 아들애를 지학사의 씨라고 내다버리라고 하였다. 그때 지학구 패장이 나서서 말렸다. 사실 지학사의 아들이자 자기 조카였기 때문이였다.
       알고 보니 전소교는 야마꼬도 데리고 살려고 요시꼬부고 삼도만에 들어오라는 쪽지를 쓰게 강요했던 것이다.  요시꼬한테서 형부가 전보흥 소교한테 살해된 전후 사연까지 다 들어 알게 됐다. 
       야마꼬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그녀는 그날 밤부터 언니와 함께 겉으로는 아양을 떨며 전소교한테 몸을 맡기는 척 하고 속으로는 기회를 봐서 전소교를 죽여치우려고 이를 쁙쁙 갈았다. 그러나  연약한 아녀자들인 자매는 시종 손을 쓰지 못했다. 그리하여 요시꼬와 야마꼬 자매는 전소교가 자리를 비운 틈이면 암암리에 통신병 마씨와 전소교의 문서 조씨한테 추파를 보냈다. 그녀들은 마씨와 조씨를 미인계로 나꾸어 그들의 손을 빌어 전소교를 죽이려고 들었다.
     그런줄도 모르는 전소교는 량팔에 요시꼬와 야마꼬를 껴안고 희희닥거리었다.
장충국이 들어서자 전소교는 길쭉한 낯을 기우뚱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하면서 충국을 맞이했다.
“장 반장 돌아왔는가? 그래 길에서 고생하지 않았어?”
충국은 비틀거리다가 지휘소 구들에 풀썩 물앉았다.
“모든 걸 정찰했습니다. 전 소교, 먹을 걸 주십시오.”
“얘들아, 밥 한 대야 가져오라.”
“옛!”
전 소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토비들이 수수밥 한 대야에 멧돼지 고기를 섞어 볶은 배추 채를 한 대야 들여왔다.
충국과 몇몇 토비들은 이리떼처럼 욱 모여들어 밥 한 대야나 게 눈 감추듯 했다. 허나 밥에 체해 그들은 몽땅 스르르 쓰러졌다.
전 소교는 충국한테서 정황을 알아보려고 마구 쥐여 흔들었다. 허나 충국 등 몇몇 토비 놈들은 술에 취한 놈들처럼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뻐드러진 채 쿨쿨 잤다.
이튿날 아침에야 충국 등은 지휘소 구들에서 부스스 일어나 두 손으로 눈통을 비비었다.
전소교는 충국에게서 유격대가 확실히 마을을 떠났고 마을에는 민병들뿐이라는 것을 알고 즉시 지학구를 불렀다. 지학구는 지학사의 사촌동생인데 해동파출소 소장을 하던 자였다.
“지 패장,   함흥 촌 일대 지형을 잘 알지 않는가. 즉시 20여명 형제들을 데리고 내려가 함흥 촌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려라.”
지학구는 개 턱 같은 뾰족한 턱을 쳐들고 도리머리 질 했다.
“20여명으로 어떻게 함흥 촌 일대 놈들을 칩니까? 자칫했다가 전번 개꼴이 되겠습니다. 함흥 촌 일대 민병들은 오합지졸이지만 진수해 민주연군한테 걸려들면 목이 댕강 잘립니다. 빨갱이들은 원체 매복습격전과 유격전에 능한 놈들이라서…”
그러자 전 소교는 독살이 오를 대로 오른 눈깔로 지학구 패장을 쏘아보았다.
“나무 잎이 다 떨어졌는데 그 놈들이 어데 매복한단 말이냐? 치는 척 해서 그 놈들의 반응을 보란 말이야.”
“오, 전 소교님의 의도를 이제야 알 거 같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원수를 갚을 때 됐어. 내 그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테다!”
충국은 호통치더니 지학구를 따라 나갔다.
전 소교는 평강촌 토비지휘소를 떠나는 토비들을 보고 제법 장교답게 한마디 호통쳤다.
“나의 병사들이여, 우리 국민당 군의 본때를 보여주라!”
지학구 등 토비들은 총을 쳐들며 고함쳤다.
"옛!"
전 소교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출발하라고 손을 홱 저었다.
지학구 패장은 충국 반장과 함께 20여명 토비들을 데리고 그 길로 산을 넘고 령을 지나 온 하루 함흥 촌을 바라고 강행군을 했다.
그들은 밤중에야 일성 촌 부근에 이르렀다.
충국은 산등성이 길에 주춤 멈춰서면서 지학구를 보고 제의했다.
“지 패장, 일성 촌에 내려가서 하루 밤 쉬고 내일 밤에 칩시다!”
그러자 지학구는 계속 걸으면서 반대했다.
“안돼, 내일까지 멀쩡하게 기다리다가 빨갱이들에게 잡히자고. 군사행동은 신속해야 하네.”
충국은 지학구를 따라가면서 지꿎게 들이댔다.
“병사들이 다 지쳐서 어떻게 싸웁니까?”
그 말에 지학구는 어둠속의 일성 촌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어쩐지 일성 촌이 범의 아가리처럼 무시무시하고 으쓸한 느낌이 들었다.
“장 반장, 전날에 일성 촌 토성 안 집 사람들을 도륙 냈다면서? 빨갱이들은 꼭 이 마을의 보초를 강화하였을 거야.”
그제야 충국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어데서 쉬겠습니까?”
지학구는 충국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물었다.
“자네 집에서 자면 어떨 가?”
“정신 있습니까? 안됩니다."
"왜?"
"외삼촌, 놈들이 지금쯤 우리 집을 철통같이 지킬 거요.”
“어떤 땐 등잔불 밑이 어두운 법인데.”
“아닙니다. 외삼촌, 요즘 그 놈들은 버쩍 신경을 곤두세울 겁니다. 아예 우린 산등성이에서 나무이파리를 덥고 잡시다.”
허나 지학구는 결단을 내렸다.
“조카, 이 추운데 어데서 잔다고 그러는가? 아예 좀 곤한 대로 병사들을 내몰아 함흥 촌을 치는 척 하자.”
       “어떻게 그렇게야. 온바 하고는 빨갱이 놈들을 몇 놈이라도 죽이고 갑시다."
“그럼 이렇게 결정하자.”
교활한 지학구는 전날 충국이 밟은 함흥 촌 서쪽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지 않고 길을 바꿔 함흥 촌 동쪽 계수동으로 하여 함흥 촌에 접근했다. 지학구는 어쩐지 전날 충국이 일성 촌에서 사람까지 죽이면서 왔다간 서쪽 령길이 상서롭지 못한 감을 느끼었던 것이다.
그들은 동산 계수동 폐허에 조심스레 기어들어 벌벌 기여 산마루에 올라 함흥 촌을 내려다보았다.
계수동 쪽에는 어쩐지 보초를 서는 민병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지학구는 충국의 옆에 엉금엉금 기여와 나직이 말했다.
“조카는 저 골짜기를 따라 마을에 접근해 마을 서쪽에 서 있는 망루를 까부시게. 놈들이 서쪽으로 몰려 갈 때 내가 동쪽에서 목책을 폭파해버리고 촌공소를 습격하겠네. 일이 끝나면 소서구 골짜기를 따라 철거하게. 내일 삼도만에서 승리의 축배를 들자.”
“알았습니다.”
충국은 필경 유격대에서 싸워본 적이 있어 담대했다. 그는 토비 대여섯을 데리고 골짜기를 따라 벌판에 내려간 후 무덤을 지나 함흥 촌 서쪽에 접근했다. 민병들이 순라를 하면서 지나가기 바쁘게 충국은 졸개들을 시켜 수류탄을 준비하게 했다.
그때 뜻밖에 개들이 왕왕 짖어대면서 이쪽으로 덮쳐왔다.
이윽고 마을 토성안집 쪽에서 종을 댕, 댕, 댕 치는 소리가 들리었다.
망루 우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푱! 푱! 푱!
토비 두 놈이 쓰러졌다.
“수류탄을 뿌려!”
충국의 고함소리에 토비들은 마을 서쪽 망루에 수류탄을 뿌렸다. 그런데 수류탄이 망루를 맞히지 못하고 빗날아갔다.
이때 마을 밖에서 함성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버드나무숲 속에서 숱한 민병들이 덮쳐오면서 맹사격을 가했다. 황급해난 충국은 제일 앞 서쪽에 있는 상진이네 집과 학수네 집에 수류탄을 마구 뿌리었다. 대뜸 집에 불이 달렸다.
한편 지학구는 전번에 조덕산을 따라와 함흥 촌을 진공하다가 혼난 적이 있었기에 근본 마을을 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충국을 이용해 마을을 치는척하다가 도망칠 예산 밖에 없었다.
이때 상순의 포치를 받은 조개덕에 매복해 있던 병수랑 총소리를 듣자 민병들을 이끌고 함흥 촌 토비들 쪽으로 맹사격하며 돌격해 왔다. 토비 놈들은 어둠속에서 허연 눈 우에 숱한 민병들이 덮쳐 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또 매복습격전에 걸렸구나!)
지학구는 황급히 10여명 토비들을 끌고 소서구 쪽으로 도망쳤다.
그 때였다.
“토비 놈들아, 상순 연장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어디로 도망쳐?!”
뚜르륵 뚜르륵
눈덮인 겨울인지라 소서구 토성 안 장충국이네 집에 매복해 있던 상순은 태평강을 건너 도망쳐 오는 토비들을 향해 기관총소사를 해댔다.
바빠 맞은 지학구는 몇몇 주검을 남기고 살얼음이 간 태평강 바닥을 따라 북으로 일성 촌을 바라고 도망쳤다.
(상순 연장? 분명 지학사형님을 송사를 건 못된 놈이야!)
순간 지학구는 독살스러운 세 귀 눈을 가진 청년이 눈앞에 떠오르며 온 몸이 오싹 해났다.
지학구가 나머지 십여 명 패잔병들을 데리고 일성 촌에 거의 달아났을 때였다.
총소리를 들은 일성촌의 민병들은 사전 상순의 포치에 따라 마을을 순라하다가 몽땅 마을 어귀에 엎디어 남쪽을 주시했다.
이윽고 마을 남쪽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뿔뿔이 도망쳐 오는 것이 보였다.
“사격!”
태수 패장이 명령하자 일성 촌 민병들은 토비들에게 명중탄을 안겼다. 토비들은 또 몇몇 주검을 남기고 동쪽으로 도망쳤다.
“토비 놈들아! 어디로 도망쳐?!”
민병들은 토비 놈들이 멀리 도망쳐 흑점으로 보일 때까지 사격했다.
지학구와 충국은 일여덟 주검을 남겨둔 채 겨우 목숨을 건져가지고 삼도만으로 도망쳤다. 지학구는 도망치는 길에서 충국과 전 소교에게 거짓보고를 하기로 하고 졸개들에게 입단속을 단단히 했다.
그들은 이튿날 해질 녘에야 삼도만에 들어섰다. 전 소교는 돼지를 잡아 놓고 기다리다가 보초를 서던 졸개들에게서 그들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평강촌 마을 밖에까지 나가 마중했다.
“장하네.”
전 소교는 지학구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지휘소로 데리고 들어오며 물었다.
“그래 습격하러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지학구는 충국을 흘끔 보더니 전 소교 앞에서 거짓말을 퍼부었다.
“장관, 우린 적은 병력으로 마을을 기습해 쑥대밭을 만들어놨습니다. 수류탄으로 망루를 까부시고 빨갱이들의 집에 몽땅 불을 질러 놓았습니다. 그 놈들은 올 겨울에 얼어 죽지 않는가 보십시오.”
전 소교는 지학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말하게나.”
충국이 대답했다.
“우린 두 개 소조로 나뉘어 수류탄으로 두 개 망루에 집 십여 채를 불태워 버리고 꼬빨갱이들을 아마 2, 30명 죽여 버렸습니다.”
전 소교는 충국과 지학구를 번갈아 보았다.
“지패장, 사실인가?”
지학구는 속이 뜨끔해났지만 짐짓 웃음까지 지어보였다.
“옛, 틀림없습니다. 우린 장관님의 포치대로 우리 국민당군의 사기를 올리고 빨갱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줬습니다.”
“지 패장, 장 반장, 수고했네.”
그는 푹 삶은 돼지고기로 연회를 베풀고 토비들을 몽땅 불러다 이른바 승리를 경축했다. 함흥 촌 습격 전에 출전했던 토비들은 웃고 떠들면서 술을 실컷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되자 전 소교는 술잔을 들고 호언장담했다.
“형제들, 우리 국민당군은 800만 대군에 미국의 대포, 탱크, 비행기까지 있네. 빨갱이들은 비행기 한 대도 없네. 여기 동만의 민주연군 빨갱이들은 대포 하나도 없네. 이번에 우리 지 패장은 20명을 거느리고 가서 몇 백 명 민병들과 용감히 싸워 8명이란 적은 대가로 30명이나 죽여 버렸네. 지 패장과 장 반장은 우리 군의 사기를 대단히 높였네.”
전 소교는 흥미진진해 듣는 토비들을 향해 술잔을 들었다.
“자, 함흥 촌 기습작전 승리를 축하해 실컷 마시자!”
“마시자!”
토비들은 게걸스레 돼지고기를 뜯어먹으면서 술잔을 들었다.
전 소교는 또 술잔을 들고 고함쳤다.
“우린 목숨을 걸고 빨갱이들과 싸워 우리 마을을 지켜야 하네! 함흥 촌과 조개덕을 보지 못했는가? 장반장네 아버지처럼 빨갱이들에게 집과 땅을 빼앗긴다! 자칫하면 처까지 몽땅 빼앗기게 된다! 알만한가?!”
“빨갱이들에게 천하를 빼앗기면 안 된다.”
“그 놈들을 소멸하자!”
토비들은 여기저기서 고함쳤다.
산골짜기 토비들은 참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산골 안에서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취 김에 호언장담하며 떠들어댔다.
한쪽 구석에서 통신병 마씨는 어떻게 하면 예쁜 야마꼬를 계속 데리고 놀가 궁리하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문서 조씨도 마씨와 똑 같은 궁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저놈 전씨를 죽여치우고 요시꼬를 손에 넣을가? 흐흐흐.)
야마꼬와 요시꼬는 마씨와 조씨의 속내를 환히 들여다보고 날따라 살내를 풍기였다.
어느 하루, 요시꼬가 아들 지시룡의 기저귀를 갈아채우는데  지학구가 찾아왔다.
"전소교 있소?"
지학구는 집에 들어오며 두리번거렸다.
"없어요. 삼도만에 간다고 했어요."
지학구가 모를리 있겠소만 짐짓 모르는 척했다.
그는 지시룡을 안아 뽀뽀해주며 덕담을 했다.
"에이, 우리 조카 잘 생겼네. 요놈, 우리 지씨 뿌리를 이어야지."
순간 야마꼬는 피뜩 번개치는 생각이 있었다.
(지패장을 등에 업으면 이 마귀 소굴을 벗어날 수 없을가?)
야마꼬는 지학구한테 추파를 보내며 아양을 떨었다.
"지패장, 시룡일 보호해줘 고마워요. 제가 지패장께 뭘 해드리면 좋을가요? 분부만  하면 뭐든 다 해드릴게요."
지학구는 피끗 야마꼬를 돌아보며 달걀침을 꼴깍 삼키었다. 야마꼬는 이때라고 몸을 바싹 지학구한테 기대였다.
"이 마귀소굴에서 지패장 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요. 우리 모자간을 이 놈 마귀소굴에서 구해주세요. 이 몸은 지패장 거예요."
그러나 지학구는 품에 안겨드는 야마꼬를 밀어내며 시룡을 되안겨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형님의 여자를 차지하겠소. 다른 궁리 말고 전소교를 잘 모시라구, 그 길만이 너네 모자와 언니를 구하는 길이야."
지학구는 말을 마치자 휭 하니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흥! 여자에 굶은 주제에 배부른 타령은!"
"포기하지 말라."
옆방에서 요시꼬가 부풀어오른 배를 뚱기적거리며 들어왔다.
"사내들을 몰라 그래? 지패장은 분명 네가 욕심나지만 전소교가 무서워 그래."  
 야마꼬는 걀죽한 얼굴을 찌푸리며 성나 코방귀를 연신 뀌었다.
"언니, 요즘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마귀소굴을 벗어만 나면 우리 아무 문제 없이 살 같아."
요시꼬는 버들 눈섭 아래 외까풀눈을 치떴다. 
"건 무슨 소리야."
"패용천촌에 가서 살아도 이 마귀 소굴보다 나아."
"공산군이 지촌장마저 죽이잖았나?"
야마꼬는 시룡을 안고 흔들거리며 말했다.
"지촌장은 친일주구라고 죽였지만 우리 모자간은 놔두지 않았어? 그들은 처자들은 반동을 하지 않으면 갈라서 대하는 거야."
"뭔 소리?'
요시꼬는 눈을 흘겼다.
"우린 이 소굴을 벗어나 어떻게 하나 일본으로 돌아 가야 해. 그게 유일한 출로야."
야마꼬도 한숨을 호-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전소교 있소?"
이때 문서 조씨가 들어왔다.
"아니, 전소교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호호호."
요시꼬는 아양을 떨며 조씨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조씨를 데리고 자기 방에 들어가며 야마꼬를 되돌아보며 외까풀눈을 찔끔 끔쩍이었다.
"바깥에 개 오지 않는가 좀 지켜라."
야마꼬는 실웃음을 흘리며 문께로 돌아섰다.
이윽고 요시꼬 방에서는 여인의 아양 떠는 소리에 뒤이어 신음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아이유, 좀 살살, 애 눌리워 울겠어요."
"그래. 알았어.'
"전소교 있소?"
이때 바깥에서 개 짓는 소리가 또 들리고 마씨가 울안에 들어섰다.
야마꼬는 애를 안고 짐짓 눈을 곱게 흘기며 아양을 떨었다.
"아이유, 전소교 없으니 동네 개들이 다 모여드는구나."
"동네 개라니? 보호은인도 모르고. 흥!"
통신병 마씨는 눈깔을 희뻔뜩거리며 야마꼬를 집안으로 떠밀었다.
"잔말 말고 전소교 오기전에 빨리, 빨리."
"거 누구냐?!"
집안에서 울리는 소리에 마씨는 허리춤에서 권총까지 빼들고 바깥으로 달려나가려고 했다.
"호호호. 겁쟁이라구."
"엉? 전소교 아닌가?"
마씨가 되돌아섰다.
"겁내지 말아요. 언니 친군데요."
야마꼬는 마씨를 데리고 자기 방에 들어갔다.
이어 우는 어린애를 달래는 소리에 뒤이어 여인의 신음소리, 아양떠는 소리 들렸다.
"우리 모자를 지켜주지?"
"내 있는 한 근심 말라구."
"우리 자맬 이 마귀 소굴에서 구해주죠?"
"그래, 이 어른만 잘 모시면 목숨이라도 바쳐 구해주지."
"당신 정말 담짝도 커요. 진짜 사내대장부야. 호호호."
이때 갑자기 문을 쾅 차고 누군다 뛰여들었다.
"어마나!"
두 여인이 비명을 지른다.
"이 놈들, 잘한다!"
뜻밖에 뛰여든 자는 전소교가 아니라 지학구였다.
"죽을 죄를 졌소."
"제발 살려주오."
마씨와 조씨는 괴춤을 재대로 춰슬리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꿀러내려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했다.
"이 놈들아, 전소교가 말을 타고 반시간이면 삼도만에서 여기까지 온다. 담짝도 크구나."
마씨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이 일 덮어주면 뭐든 지패장 하라는대로 할 거요."
"제발 살려주오."
"네놈들 목숨은 내 손에 쥐웠다는 걸 알아!"
"아이고!"
"지패장, 제발 살려주오."
이때 요시꼬마저 사정했다.
"지패장, 조문서를 살려줘요. 이 마귀소굴의 2인자나 다름 없는 조문서 없으면 시룡과 우리 자매를 누가 보호해주겠어요."
그러나 지학구는 짐짓 아닌 보살을 떨었다.
"상전의 안해를 다쳤는데 살려 줄 순 없어. 량심없는 놈들"
그러자 야마꼬는 우는 지시룡을 안고 서쪽방아에 건너왔다.
"그럼 나와 애를 죽이고 마룡을 죽이세요!"
야마꼬도 통사정을 들이댔다.
"마룡도 살려 주세요. 지씨네 피줄을 지켜줄 사람은 마씨뿐인데요."
"허허허."
그제야  지학구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본색을 드러냈다.
"네 놈들 꼭 이들 자매와 시룡일 보호할 수 있겠냐?"
"네. 살려만 주면 꼭 목숨 걸고 이 녀자들 보호할게."
조소호와 마룡은 대가리를 땅바닥에 쫗았다.
"은혜 백골난망이오."
"지패장, 구명은인입니다.'
그쯤 하면 됐다고 생각한 지학구는 뒤짐을 짓고 문을 박차고 바깥으로 나갔다.
" 전소교 오겠어."
"예. 감사하오."
마룡과 조소호는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들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문밖에 가만히 나가 보았다. 그런데 지학구는  망을 봐주는지 삼도만쪽으로 통한 길 어귀에서 서성거리며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씨와 조씨는 서로 눈길을 마주치더니 집안에 씽 달려들어와 문까지 걸어놓은 후 시름놓고 일본 여인들을 데리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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