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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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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4)
2016년 10월 27일 09시 44분  조회:1978  추천:0  작성자: 김장혁




        10. 밀림속의 함정

      일본 관동군 놈들은  사흘 후 밤중에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원시림 속에 철 발굽을 들여 놓게 됐다. 다행히 두꺼운 눈이 떵떵 굳은 덕에 순조롭게 밀림 속의 밀영 부근에 접근하게 된 것이었다.
      어둠 속에 눈을 하얗게 들쓴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는 밀림, 가없이 펼쳐진 눈 덮인 밀림에서는 눈보라가 윙윙 사납게 울부짖고 있었다.
     웬 일인지 유격대는 사흘 전에 두번 기습하고는 줄곧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철주는 그것에 더 불안했다. 그는 눈에 반쯤 메워진 깊은 산골짜기를 바라보았다. 산골짜기 막치기는 눈보라 치는 수림 속에 가리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가 골짜기 굳은 눈 우에 올라가 발로 탕탕 굴러 보아도 눈이 어름처럼 떵떵 굳어 빠지지 않았다. 피뜩 보니 무슨 눈 우에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히어 있었다.
(유격대가 활동하던 곳인가? 사냥꾼들이 다닌 발자국일까?)
착잡한 생각을 하던 그는 대오를 멈춰 세우고 앞에서 길안내를 하는 응세를 불렀다.
응세는 뒤로 달려와 허리를 굽실거렸다.
철주는 군도자루를 잡고 물었다.
“아직도 유격대 밀영이 먼가?”
“이 골짜기를 곧추 건너가면 한 3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쪽 골짜기 막바지로 에돌아가려면 얼마나 먼가?”
응세는 “한 10여 리는 에돌아야 할 겁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철주는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래 이 산골짜기를 이전에도 건넜는가?” 
      응세는 두루 살펴보더니 눈 우를 손가락질 하였다.
“예. 이전에도 우린 사냥꾼으로 위장해 가지고 여길 건너가서 밀림속의 밀영을 정찰하다가 발각됐지요. 난 이 골짜기에 굴러 떨어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때도 밤중에 여기 굳은 눈을 밟고 산골짜기를 건넜습니다. 그런데 재수 없이…”
응세는 하마터면 자기가 유격대에 나포된 말을 해버릴 번 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용케 삼켜 버렸다.
그는 한철주의 눈치를 흘끔 훔치어 보면서 중얼거렸다.
“백 소조장도 여기 눈을 건너 정찰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런 불길한 소리 하지 말라. 건너 봐.”
“예.”
응세는 말을 마치자 골짜기에 덮인 눈 우에 올라가 발로 눈을 탕탕 굴러 보았다.
“보세요. 말을 타고 건너가도 꺼지지 않을 겁니다. 건너 오십시오.”
한철주는 무슨 일이 떠올랐던지 응세를 손짓해 불렀다.
“이리 오게.”
응세가 헐금씨금 올라오자 나직이 물었다.
“김호랑 이상한 거동이 없던가?”
“없습구마.”
“음.”
한철주는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저었다.
“경각성을 늦춰선 안 돼. 돌다리도 두드려 보면서 건너라고 했네. 김호랑 불러다 앞세우게나.”
“예.”
       한철주는 산등성이를 따라 걷던 놈들에게 명령했다. 
"김호(김상순)랑 응세랑 앞세우고 눈 위로 산골짜기를 건너라!"
상순은 사위를 둘러보았다. 큰아버지와 용천 대장의 결정에 따라 유격대는 여기 협곡 밀림에서 매복습격 전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놈들은 순순히 밀림 속의 밀영에까지 발을 들여 놓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산골짜기를 두루 여겨 보고나서 응세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형내와 충국의 허벅다리를 툭툭 쳐놓고 주먹을 쥐어 보였다. 싸울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
      상순은 젤 앞에서 고의로 발을 쾅쾅 구르며 걸어나갔다.
"봅소. 눈이 떵떵 굳어서 여기로 건너도 됩니다. 언제 10리나 에돌아가개."
형내와 응세가 깊은 산골짜기를 내려가 굳은 눈을 밟으며 한 열 미터 들어가도 아무 일도 없었다.
일제 관동군은 산골짜기를 곧추 건너지 않으면 멀리 에돌아야 하였다.
한철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군도를 빼들어 앞으로 홱 휘두르며 나직이 나직이 명령하였다.
“천천히 전진.”
숱한 적들은 산골짜기를 우르르 쓸어 내려가 총칼을 빼들고 굳은 눈을 밟고 달려 나갔다.
쿵! 쿵!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굳은 눈이 푹푹 꺼져 버렸다. 상순이랑 응세랑과 함께 눈 함정에 빠져 몇 길 되는 눈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뒤따르던 놈들이 “함정!” 하고 되돌아서려 했다.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쿵!
하늘땅이 뒤번지어 지는 소리가 나더니 어지간한 집 울안만큼 눈이 단꺼번에 풀썩 꺼졌다. 또 십여 명의 놈들이 눈 함정에 빠져 없어졌다.
“멈췃!”
“빨리 산골짜기를 벗어나라!”
한철주가 고함칠 때었다.
“사격!”
고함소리와 함께 산골짜기 맞은편 눈속 여기저기에서 자지러진 총소리와 함께 섬광이 번쩍이었다. 적들은 헛총질을 하면서 맞불질 하였다. 그러나 눈 동굴에 은폐해 쏘아대는 유격대원들의 몰 사격에 적들은 삼대 쓰러지듯 하였다.
원래 성칠과 진달래는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협곡막치기로부터 산골짜기를 따라 눈 동굴을 파고 내려와 여기에 눈 바닥 밑으로부터 올리 큰 함정을 군데, 군데 파놓았던 것이다. 눈 위에 어지러운 발자국이랑 그대로 굳어 있어 근본 눈 함정을 알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스무 길이나 되는 새까만 눈 함정에 빠진 상순이랑 미처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을 때었다. 새까만 눈 함정 밑바닥에 가로 난 눈 동굴에서 유격대원들이 총을 쏘면서 뛰어 나왔다.
“총을 쏘지 마십시오. 우리 셋은 조선 백성들이오.”
“조선 백성?!”
“어느 게 백성이고 적인지 어떻게 알아?!”
“조선백성은 소리 쳐라!”
유격대는 총을 쏠 대신 총창으로 마구 찔렀다.
“내 조선 백성이오”
“나도!”
상순은 충국에게 한어로 소리치라고 고함치었다.
그리하여 충국까지 다른 동굴에 끌리어 들어갔다.
나머지 응세랑 가메다는 유격대원들이 휘두르는 란도와 날창에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다른 큰 눈 함정에 빠진 일본 놈들도 함정 밑바닥에 쓰러지었다가 일어나자마자 총창에 찔리어 개죽음을 당하였다. 함정 밑바닥 여기저기 난 동굴에서 일본 놈들을 총으로 쏘고 총창으로 찌르는 고함소리와 적들의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순식간에 수십 명을 잃은 한철주는 눈 함정 밑에 숱한 유격대가 있는 줄도 모르고 맞은쪽 산등성이 눈 속에서 사격하는 유격대를 쏘아 보며 악이 받쳐 발을 탕탕 굴렀다.
“철퇴!”
나머지 적들은 산골짜기에서 기어 올라와 다리야 날 살리라고 철퇴하였다. 맞은편의 유격대원들은 맞은쪽 적들에게 명중탄을 안기다가 눈 동굴에 들어갔다. 그들은 눈 함정 밑의 일본 놈들의 시체에서 군복과 군화를 벗기어 내고 무기를 걷어 가지고 눈 동굴 어귀를 막아버린 후 눈 동굴을 따라 산골짜기 막치기에 있는 협곡에 들어가 숨어 버렸다.
협곡은 밀림에서 보면 자그마한 틈 밖에 없었지만 협곡 밑에는 수십 길 깊은데다가 널다란 동굴이 생겨 있어 천연적인 은신처였다.
성칠과 용천은 작전계획을 세울 때 적들이 산골짜기 눈 함정에 빠져 혼난 후 꼭 산골짜기를 에돌아 협곡 위쪽으로 건너가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북만 유격부대와 함께 미리 여기 매복해 기다리기로 했던 것이다.
성칠은 병수와 득호를 돌아보고 “위생원과 함께 상순이랑 데리고 밀림 속의 밀영으로 돌아가오.”라고 하였다.
상순은 총 한 자루를 들고 형내와 충국을 데리고 병수와 득호를 따라 밀림 속의 밀영으로 밤도와 달리어 갔다.
그들이 밀림 속의 밀영부근에 이르렀을 때었다.
“군호!”
둘러보니 보초병이 나무 위 어디에선가 군호를 묻는 것이었다.
“진달래!”
병수가 대답하자 보초병이 눈 덮인 미인 송 나무 가지 위에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장백산 밀림속의 밀영에 들어선 후 상순은 자주 다녔기에 곧추 성칠네 통나무집에 찾아 갔다.
바깥에서는 경위원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군호!”
“진달래!”
경위원은 병수와 상순을 알아보고 집안으로 안내하였다.
형내는 성칠의 통나무집 구들에 신음소리 내며 누워 있는 작은할머니를 알아보고 문안인사를 하였다.
진달래는 은녀와 함께 하옥의 옆에서 간호하다가 병수에게 물었다.
“전선정황은 어떤가요?”
병수는 진달래와 은녀를 돌아보면서 대첩을 보고하였다.
“대승을 거뒀소. 숱한 놈들이 눈 함정에 빠져 무리죽음을 당했소.”
등이 굽은 득호도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그 놈들이 이제 협곡에서 또 몰살당할 게요. 허허허.”
진달래는 하옥의 상처를 처치해 주는 형내를 보다가 구들에서 일어났다.
“내 바깥에 나가 보초병들을 돌아보고 오겠어요. 수고들 하세요.”
말을 마치자 진달래는 득호와 병수를 데리고 나갔다.
하옥의 상처는 많이 호전됐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더니 상순의 팔을 붙잡고 떠듬떠듬 말했다.
“조카, 날 두고 빨리 도망쳐.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어째 상서롭지 못해. 여긴 적들이 빤히 아는 곳, 곳이오. 여기를 가만 놔두겠나?”   
       상순은 “큰어머니, 함께 도망치깁소.” 하고 총을 쥐고 바깥에 나갔다.
그는 집 뒤 눈 덮인 가산에 가서 밤 장막에 묻히어 버린 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밀림의 동정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폈다.
한편 한철주는 그런 줄도 모르고 졸개들을 끌고 멀리 밀림 속으로 철퇴하였다. 적들은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고 굶은 이리떼들이 여기저기서 우는 무시무시한 눈 덮인 밀림 속에서 군데군데 우등 불을 피워 놓고 모여 서서 밀림의 동녘 하늘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었다.
땅땅!
갑자기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렀다. 우둥불에 둘러 앉아 불을 쪼던 몇놈이 푹푹 꼬꾸라졌다.
"반격!"
한철주가 군도를 빼들고 고함쳤다.
질겁한 놈들은 눈바닥에 엎디거나 아름두리 나무에 기대 밀림에 대고 헛총질을 한바탕했다.
그러나 맞은 켠 밀림은 총소리마저 없었다. 유격대원들은  몇놈을 쓰러눕히고는 밀림 속에 자취를 감췄다.
놈들이 총을 거두고 불을 쬐려고 할 때였다.
땅! 땅! 땅!
또 다른 쪽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몇놈이 또 풀썩풀썩 눈 위에 더러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유격대원들은 놈들이 시름 놓고 좀 자려고 하면 야밤을 타 기습하군 하였다.
유격대의 교란 작전에 놈들은 온 밤 공포 속에서 한잠도 자지 못했다.  
지루한 밀림의 밤이 흘러가고 드디어 동녘 하늘이 희붐히 밝아 왔다.
한철주는 응세와 가메다가 정찰하지 못한 새 정황에 부딪치어 골탕을 먹은 것이 안타까워 속이 바질바질 탔다.
“내 기어이 장백산 밀영을 토벌해 네 놈들의 소굴을 깡그리 불태워 버릴 거야! 네놈들을 칼 탕 쳐 놓을 테다!”
그는 먼저 특무들을 시켜 앞에 나가 밀림에 매복 군이라도 있나 령탐하게 하였다. 특무들은 날이 훤히 밝아서야 돌아 왔는데 사방 몇 리 안에 유격대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자 한철주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밀림을 쏘아보더니 이를 악물며 군도를 빼 들었다.
“전군은 협곡을 넘어 장백산 밀영에 진군하라!”
적들이 협곡을 넘어 밀림에 들어섰을 때었다.
땅! 땅!
난데없는 총소리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밀림의 고요를 깨뜨리었다. 몇몇 일본 놈들이 보기 좋게 꺼꾸러졌다.
“유격대!”
“아이고, 유격대!”
일본 관동군이 거의 절반이 협곡 뒤로 돌아 갔을 때 유격대가 또 나타나 맹렬한 사격을 가하였다. 적들은 비명소리 아우성소리 쳐 댔다. 삽시에 적들의 진영은 수라장이 돼 버리었다. 정말 장백산 기슭 밀림의 항일유격대는 말 그대로 신출귀몰하는 천병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몇 리 안에 없다던 유격대가 하늘에서 떨어진 건가? 땅 밑에서 솟아났단 말인가?”
한철주도 신출귀몰하는 유격대를 두고 어찌는 수 없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모든 전투는 유격대의 작전계획대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철주는 제 놈들 무기와 수적 우세를 믿고 군도를 빼 들고 밀림이 떠나가게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도쯔께끼(돌격)!” 하고 .
일본 놈들은 더는 살 길이 없는 것을 알았든지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총을 쏴대며 눈무지 뒤에서 사격하는 유격대원들에게 덮쳐들었다.
성칠은 최후발악하며 개미떼처럼 덮쳐드는 적 무리를 보고 대낮인데다가 전세가 불리한 것을 보고 철퇴명령을 내리었다. 그러자 유격대원들은 협곡으로 통한 눈 동굴로 들어갔다. 그들은 눈으로 동굴어귀를 막아버리고 다시 협곡을 따라 깊숙이 숨어 버리었다.
한철주가 유격대가 사격하던 눈 무지들을 점령했을 때에는 유격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유격대원들이 엎드려 총을 쏘던 자리와 어지러운 발자국 자리 밖에 보이지 않았다.
“유격대가 하늘로 날아 났는가? 땅속으로 스미어 들었단 말인가?”
그는 군도를 쥔 오른손을 허공에 대고 고함쳤다.
뒤이어 한철주의 안경알 밑의 우멍한 눈에 음흉한 빛이 번쩍이었다.
“네놈들 유격전술에 넘어 가 눈 함정에 빠질 거 같은가? 성칠아, 네 놈이 아무리 잔꾀를 부려도 유격대 밀영을 메고 달아나겠는가?”
그는 이빨을 악물더니 군도로 밀영 쪽을 가리키었다.
“곧추 밀영으로 진군!”
적들은 추운 밀림의 해 빛에 총창을 번뜩이며 억지로 사기를 높이어 가지고 밀영 쪽으로 진군하였다.
땅땅! 땅땅!
잠잠하던 밀림 속에 또 자지러진 총소리가 울리었다. 사라졌던 유격대가 또 눈 동굴에서 나타나 적들의 후미에 대고 맹사격을 가하였다. 적들의 더러운 시체가 허연 눈 우에 나뒹굴었다.
한철주는 오도 가도 못하다가 더는 유격대의 유격 술에 코를 꾀여 끌리어 다니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1중대는 산골짜기 유격대 놈들을 견제하라. 나머지 2중대와 3중대는 밀영을 진공!”
1중대의 한개 소대 밖에 안 되는 적들이 협곡 쪽으로 총부리를 돌려대자 유격대는 성칠의 명령에 따라 눈 동굴 속으로 되들어 가 버리었다. 그들은 동굴어귀 천정의 눈을 무너뜨려 자취를 감춘 후 협곡의 눈 동굴을 통해 전날 밤중에 싸우던 산골짜기 눈 함정 쪽으로 전이하였다.
성칠은 적들이 장백산 밀영을 공격하려는 것을 알고 장백산 밀영 쪽으로 포위권을 좁혀왔던 것이다.

                                                              11. 결사전

       한철주가 끌고 온 관동군 일본 놈들은 원래 야밤에 밀림의 밀영을 기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젠 발각된 바 하고는 대낮에 내놓고 밀영을 진공하였다. 밀영 쪽에서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리었다.
       원래 야마모도는 진작 가메다를 앞세워 별동대를 끌고 가파른 산골짜기를 넘기 싫어 남쪽으로 멀리 에돌아 전날에 벌써 장백산 밀영에 박근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활한 야마모도는 실력을 남기려고 눈 덮인 밀림에 잠복해 있으면서 섣불리 진공하지 않았다.
      이튿날 한철주가 골짜기와 협곡에서 한창 얻어맞는 틈을 타 야마마도는 별동대를 끌고 생각지도 못한 남쪽으로부터 장백산 유격대 밀영을 습격하기 시작하였다.
   야마모도는 수길을 보고 쑤근거렸다.
   “그저 강공만 해선 안되겠어."
그는 허꺽쇠를 불렀다.
"허꺽쇠 분대장은 10여명을 유격대원들로 가장시켜 저 놈들의 밀영을 기습하게 해라.”
“옛!”
야마모도는 유격전술에 능한 유격대가 빤히 드러난 장백산 밀림속의 밀영에 남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헛물을 켜면서 자기들의 정체를 드러낼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허연 겨울 한복차림에 털조끼를 껴입고 개털 모자를 쓰고 수길과 허꺽쇠 등은 밀림의 밀영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그때 병수가 멀찍이 나무 뒤에 숨어 이상한 사냥군 복색의 한무리 낯선 사람들을 발견하였다.
“군호!”
“장백산!”
허꺽쇠는 제법 군호까지 주어 댔다.
그러나 병수는 제일 앞의 허꺽쇠가 별로 눈에 익은 것을 발견하였다.
“누군가? 군호!”
“장백산!”
이전에 쓰던 군호였다. 유격대는 특무사건 후 군호를 “진달래”로 바꿨던 것이다. 그러나 놈들은 가메다와 응세에게서 들은 묵은 군호를 썼던 것이다.
“우린 사냥꾼들이오. 항일유격대하구 일본 놈들이 싸우는지라 지나가다가 유격대를 도우려고 찾아 왔소.”
“꼼짝 말엇!”
병수는 당년에 한길수의 마차를 몰고 우시장에 갔을 때 허꺾쇠가 경찰이었다는 것을 대뜸 알아보았다. 나뭇가지 우에 있던 득호도 그 놈을 알아보고 총을 겨누었다.
“꼼짝 말라!”
“까딱하면 쏜다!”
땅!
나뭇가지 위에서 득호가 먼저 총을 쏘았다.
“에쿠!”
허꺾쇠가 왼팔에 총을 맞고 장총을 눈 우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 놈은 인차 오른 손으로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득호를 쏘았다.
땅!
죄악의 총소리와 함께 득호가 흉탄에 맞아 총을 뚝 떨어뜨리더니 가슴을 부둥켜안고 눈 우에 털썩 쓰러지었다.
땅!
병수도 총알을 맞아 나무 우에서 거꾸로 퉁 떨어졌다.
“여보!”
은녀는 통나무집에서 그 광경을 보고 목숨 걸고 뛰어갔다.
"가지 말라!’
성칠은 소리치며 허꺽쇠를 겨누고 총을 쏘았다.
땅!
허꺽쇠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푹 꼬꾸라졌다.
뜻밖에 통나무집과 나무 가지 우에서 울린 총소리에 깜짝 놀란 적들은 눈 우에 납작 엎드리었다. 그 놈들은 나무 가지에서 총을 쏘는 성칠 등을 향해 몰 사격을 가했다.
은녀는 눈 덮인 땅바닥에 엎드리어 품에서 권총을 빼들어 적들에게 사격하면서 한 뼘 한 뼘 남편 병수한테로 기어갔다.
“진달래야! 저 대장 년의 대가리를 떼 오면 황군이 큰 상을 준다! 돌격!”
적들은 병수에게 기어가는 은녀를 진달래로 알고 맹사격을 가하였다. 은녀는 다리에 총을 맞고 뻘건 피를 흘리었다. 그러나 총상을 입은 다리를 질질 끌며 눈 우에 뻘건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병수 옆으로 계속 기어갔다. 그가 한 뼘 한 뼘 기어간 뒤에는 뻘건 피로 하얀 눈에 핏줄을 그리었다. 그러나 득호는 이미 숨져 있었다.
“은녀! 가지 마라!”
성칠이 고함치며 뛰어갔다.
땅!
총소리와 함께 성칠이 푹 쓰러지며 은녀를 뒤덮었다.
총알이 날아와 그들의 주위에서 눈 꼬치를 튕기었다. 성칠은 은녀를 안고 데굴데굴 옆으로 굴러 통나무집 문 앞으로 굴러 돌아왔다.
진달래랑 상순이랑 통나무집 문에서 엄호 사격했다.
“오빠, 병수를 살려야 하오.”
“병수는 이미 희생됐다. 빨리 동굴 안에 들어가라!”
은녀는 부상당한 왼쪽다리를 질질 끌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서 대성통곡쳤다. 형내는 동굴어귀에서 은녀의 부상당한 왼쪽다리를 약솜으로 처치해주고 붕대로 꽉 동여 매 주었다.
동굴 밖에서는 눈보라 휘몰아치고 총소리 콩 볶듯 했다.
병수의 선혈은 밀림의 하얀 눈 덮인 산비탈을 빨갛게 물들이며 연분홍 진달래꽃을 피우는 상 싶었다.
장백의 밀림도 비통한 나머지 세찬 눈보라에 몸부림쳤다. 아름드리 미인 송 나무 가지들에서 눈 더미들이 눈물을 쏟으며 와르르 무너지어 내리며 눈가루를 흩날리었다.
쒹- 딱!
허꺽쇠가 날아 오는 돌멩이에 대갈통을 얻어맞고 즉살하였다.
쒹 딱!
또 한 놈이 꺼꾸러지었다.
수길은 대갈통을 싸쥐고 어데서 날아오는 돌멩이냐고 두리번거리었다.
이때 나무 가지를 구르며 이 나무 저 나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하얀 옷을 입은 날랜 여인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나무 사이를 평지 달아 다니듯 날아다니면서 염낭에서 돌멩이를 꺼내 연신 돌팔매질 하였다. 또 몇 놈이 돌멩이에 대갈통을 맞고 쓰러지었다.
수길은 권총을 휘두르며 “저 나무 우의 귀신을 쏴!” 하고 고함치며 총을 쏘았다.
그러나 진달래는 몸을 날리어 피하며 조약돌로 적들을 까부시며 통나무집 쪽으로 날아 갔다.
야마모도는 접전해 보고 유격대 주력은 북쪽에서 한철주 부련대장의 관동군과 싸우고 있고 장백산 밀림속의 밀영에는 소분대만 남았다고 추측하였다.
그는 군도를 뽑아 들고 부하들을 돌아보더니 “도쯔께끼!” 하고 고함치었다.
약 두개 소대나 되는 적들이 남쪽에서 불의에 장백산 밀림속의 밀영에 덮치어 들었다.
적정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리자 눈보라 속의 밀영에서는 큰 전투가 시작되었다. 성칠은 함정을 팠던 골짜기 눈 동굴에서 소 분대 유격대원들을 거느리고 관동군을 앞 찔러 가산의 갱도에 뛰어 들어 갔다. 그들은 재빨리 갱도로 하여 밀영의 가산과 통나무집들로 통한 갱도에 들어갔다.
별동대 놈들은 나무우로 날아다니며 돌팔매질하는 진달래를 겨누고 몰 사격을 가하였다.
진달래는 아버지가 엄호 사격하는 틈을 타 발로 나무 가지를 힘껏 구르며 날아 내리어 자기 통나무집 안으로 철퇴하였다.
상순은 통나무집 뒤 가산의 갱도 총구멍에 총을 걸어 놓고 덮쳐드는 적들을 향해 사격하였다. 그러나 명중률이 높지 못하였다. 충국도 통나무집 안에서 사격하였다. 저쪽 통나무집에서 사냥꾼 출신 최구철이 쏜 총소리가 날 때마다 한 놈씩 꼬꾸라지었다.
진달래는 통나무집안 부엌의 갱도로 뛰어 들어가 어둠을 더듬으며 성칠의 통나무집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하옥 언니를 갱도로 업어 들여와야 해!)
진달래가 갱도에서 성칠의 통나무집 안에 들어갔을 때였다. 상순과 충국은 총을 쥐고 문을 지키고 형내는 하옥을 업고 안 칸의 동굴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때 갱도 안에서 성칠이 뛰어나왔다.
하옥은 형내의 잔등에 업힌 채 성칠을 보고 손사래를 치었다.
“여보, 날 놔두고 빠, 빠지어 나가세요. 몽땅 잘, 잘못 돼요.”
허나 성칠은 하옥을 바꿔 업으면서 결연히 말하였다.
“여보, 절대 그런 말 하지 마오. 이제 오래잖아 광복을 맞게 될 거요. 우린 조국이 광복되는 날 고향에 돌아가 살아야 하오.”
성칠은 하옥을 업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진달래는 문고리에 수류탄을 처매놓고 문선의 고리에 수류탄 심지를 뽑아 달아 매 놓았다. 그녀는 권총을 뽑아 들고 상순이네를 이끌고 집안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서 통나무동굴 문을 꼭 닫아걸어 버리었다.
이윽고 야마모도가 별동대를 끌고 장백산 밀림의 밀영에 쳐들어 왔다.
한 놈이 총을 쏘며 밀림의 밀영 문어귀에 이르렀다. 그 놈은 수류탄을 통나무집 안에 들이 뿌리려고 문을 활 열어 재끼었다.
꽝! 꽝!
순간 진달래가 문고리에 달아맸던 수류탄과 놈이 쥐였던 수류탄이 연발로 폭발하였다. 수류탄 폭발폭음과 함께 그 놈은 형체도 없이 산산이 날아나 버리었다.
“샤께끼(사격)!”
뒤따라 덮치어 온 야마모도는 성칠의 통나무집을 향해 군도를 휘두르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적들은 기관총까지 사격해댔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아무런 반격도 없이 잠잠했다.
의아해 하던 야마모도는 “도쯔께끼!” 하고 군도를 휘두르며 제일 먼저 무너진 통나무집 앞으로 뛰어갔다.
그때 가산에 난 총구멍에서 총소리가 울리었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야마모도 옆에서 돌격하던 일본 졸개 놈이 푹 꺼꾸러지었다. 야마모도는 무너진 통나무집자리 통나무 틈새에 납작 엎드려 총알이 날아 온 나무가 드문드문 들어선 가산 쪽을 두리번거렸다.
“여기 갱도 있다!”
“갱도 어귀를 찾아 내!”
적들은 헛총질을 해대며 허장성세해댔다. 통나무가 폭파되면서 마구 흩날렸다. 쌓인 통나무들 속에서 동굴 문을 발견하였다.
“동굴을 찾았어!”
갱도 통나무 문을 열어 재끼자 야마모도는 졸개들에게 고래고래 고함치며 군도를 휘둘렀다.
“갱도로 들어가 유격대를 잡앗!”
땅!
진달래가 총을 쏘았다.
“앗!”
야마모도 놈이 군도를 툭 떨어뜨리더니 가슴을 붙안고 쓰러지었다.
“대장님!”
그러나 야마모도 놈은 다시는 그 흉악한 눈을 뜨지 못하고 네 각을 쭉 뻗고 뒈지고 말았다.
땅!
가산 동굴에서 상순이 총을 쏘았다.
수길의 옆에서 총을 쥐고 가산 쪽을 기웃거리던 놈이 푹 꼬꾸라지었다.
적들은 기관총으로 가산 쪽을 맹렬히 사격하였다. 기관총질의 엄호하에 몇 몇 놈들이 갱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땅! 땅! 땅!
갱도 안에서 진달래가 유격대원을 지휘해 사격하였다. 최구철까지 자기 집 뒤 가산에 판 동굴 어귀에서 합세하며 교차로 사격하였다. 복수의 탄알이 빗발치며 날아갔다. 갱도 안에 뛰어 든 적들은 컴컴한 갱도 벽을 더듬으며 들어 가다가 몽땅 격살 당했다.
적들은 최구철과 성칠의 집 뒤 가산에 판 갱도 어귀에 수류탄을 뿌리었다.
꽝! 꽝!
수류탄이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최구철이 사격하다가 쓰러졌다. 뒤이어 갱도 안은 조용해지었다.
진달래와 성칠은 동굴어귀가 폭파되자 진달래네 통나무집 동굴로 전이하였다.
진달래는 동굴에서 사냥총을 쥐고 쓰러진 아버지를 발견하고 꿇어 앉아 붙안고 목 놓아 불렀다.
“아버지!”
      최구철이 가산 갱도 어귀에서 사격하다가 그만 불행하게도 수류탄에 폭사했던 것이다. 진달래가 아무리 아버지를 흔들며 애타게 불러도 아버지는 머리가 터진채 대답이 없었다.
성칠도 달리어 왔다.
“사돈어른! 사돈어른!”
성칠은 애타게 부르며 진달래 품 속에 안긴 최구철을 흔들었다.
그러나 얼굴이 피투성이 된 최구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성칠은 이미 숨진 최구철을 업었다.
“철퇴!”
성칠은 고함치더니 최구철을 업고 갱도 안쪽으로 달리어 들어갔다.
진달래는 뒤에서 따라 가며 “아버지!” 하고 통곡쳤다.
상순은 하옥을 업고 성칠을 따라 새까만 갱도를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수길은 놈들을 갱도 안에 몰아넣으면서 지껄였다.
“들었지? 계집 유격대가 썩어진 애비를 부르는 소릴. 숱한 유격대들이 갱도 안에서 썩어졌어. 빨리 들어 갓! 나머지 유격대들을 몽땅 잡아 내!”
몇몇 조선인 별동대원들이 갱도 안에 들어갔다.
“꽝!”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갱도 안에 들어간 적들이 몰살하였다.
수길이 또 졸개들을 들여보내려 할 때다.
“닥쳐!”
한철주가 적군 대부대를 끌고 덮치어 왔다.
한철주는 가산에 난 총구멍 쪽에 대고 사격을 들이댔다. 수류탄묶음도 날아갔다. 총구멍이 폭발하면서 깜깜한 꺼먼 동굴이 드러났다. 숱한 일본 놈들이 동굴 안에 맹사격을 가하면서 덮쳐들어갔다. 하지만 갱도 안에는 유격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수길은 “갱도로 진공!” 하고 고함치었다.
“닥쳐!”
철주는 수길을 욕지거리를 해댔다.
“갱도에 들어가면 몽땅 죽어! 네놈도 별동대 부대장이란 말이냐?”
수길은 욕을 먹고 뒤 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우리 별동대는 먼저 밀림의 밀영을 선제공격해 성칠 놈을 죽였습니다.”
“뭐? 성칠을?!”
수길은 강보에 싼 수급을 내밀었다.
강보에 싸인 피 묻은 수급을 들여다보던 한철주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며 수길을 한쪽으로 끌고 가 나직이 말하였다.
“이 놈아, 이건 우리 집 머슴 병수의 수급이야. 이걸 성칠의 수급이라면 누가 곧이듣겠는가?”
“예?”
수길은 다시 강보 안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한철주의 안경 건 우멍한 눈이 교활하게 판들거리었다.
“스즈끼 국장 성칠을 모르잖아. 가지고 가 성칠 놈의 대가리라고 하자.”
“예- 도련님 고명합니다. 참 고명해.”
수길은 머리를 끄덕이며 뒷말을 이었다.
“야마모도 대장도 마을에서 애기 엄마 머리를 떼 두고 진달래를 잡지 못하면 대용대가리로 쓰자고 하더니. 허허허. 참 고명합니다.”
“떠들지 마! 일본 놈들이 듣겠다!”
한철주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일본 놈들을 돌아보았다.
수길도 징글맞게 웃으며 졸개들 보고 잘 건사하라고 강보에 싼 수급을 넘기어 주었다.
한철주는 졸개들을 지휘해 저쪽에서 저항하는 진달래네 통나무집으로 돌격해 갔다. 놈들은 한철주와 수길의 지휘하에 텅빈 밀영의 통나무집들과 갱도어귀를 돌아가면서 수류탄으로 폭발해버리고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치고 불을 질렀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갱도 안에 한바탕 수류탄을 뿌리고 사격하였다.
“유격대 놈들 꾀임수에 들지 말라. 갱도에 들어가면 몰살당해!”
철주와 수길은 일본 놈들을 지휘해 텅 빈 유격대 밀영을 불살라 버리었다. 뒤이어 폭발하고 불타는 갱도와 통나무집 앞에서 병수의 수급을 쳐들어 보이면서 기념사진까지 찰칵찰칵 찍었다. 그건 상부에 보고할 때 쓸 좋은 전리품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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