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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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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3)
2016년 10월 19일 09시 23분  조회:176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8. 대학살

     별동대 야마모도 대장은 윙-윙- 눈보라 기승을 부리는 어둠 속 들판을 쓸어보다가 수길한테 대가리를 홱 돌렸다.
"대오를 집합시켯!"
"옛!"
야마모도는 유격대 재차 습격이 두려웠다. 
즉시 논밭에 흩어진 별동대 놈들이 우르르 모여왔다.
야마모도는 뻘건 피로 물든 논밭 두렁들을 돌아보고 나서 두덜거리었다.
“또 일여덟 잃었구나.”
먼동이 튼 후에야 야마모도는 별동대를 끌고 마을에 들어갔다. 마을 어귀에서 한철주가 안경알을 춰올리면서 마중하였다.
야마모도는 숱한 졸개들 앞에서 한철주를 쏘아 보면서 훈계하였다.
“눈깔 네개 가지고도 우리한테 사격해?!”
철주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죄송합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그 쪽에서 총알이 날아오니까 유격대인가 하고 사격했습니다. 확실히 우리한테 유격대가 사격한 거 같습니다.”
야마모도는 눈알을 희번뜩거리면서 두덜거렸다.
“흥! 그 놈들은 도망친지도 오래!”
철주는 야마모도와 함께 촌공소 쪽으로 들어가면서 자랑스레 지껄였다.
“그 놈들 어디로 달아난단 말입니까? 눈 위에 찍힌 발자국도 메우고 달아나지 못하죠. 이미 한 소대를 파견해 뒷산 골짜기를 따라 추격하게 했습니다.”
야마모도는 코 방귀를 뀌어댔다.
“아직까지 총소리가 나지 않는 걸 보면 공 추격한 게 분명해!”
야마모도는 마을 뒤 두 갈래 산골짜기를 보고 물었다. 
“저 북으로 난 산골짜기 쪽을 추격했소이까? 아니면 동북쪽 산골짜기를 추격했소이까?”
한철주는 수하들을 다 나가게 하였다.
“두 산골짜기에 다 발자국이 어지럽게 났습디다. 동북쪽 산골짜기보다도 장백산 쪽으로 달아났겠다고 서남쪽으로 추격하게 했습니다.”
한참 궁리하던 야마모도는 수길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 했쏘가?”
수길은 머리를 조아리면서 한철주를 개여 올리었다.
“한 련대장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 놈들은 꼭 우리를 몇 매 쳐 놓고는 우리 대부대를 보고 겁나 자기 소굴로 되돌아갔을 겁니다.” 야마모도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북쪽 산골짜기에 난 발자국은 우리 발자국과 유격대발자국이 마구 찍혀 있네. 그러나 확정하게 알 순 없지만 유격대 놈들의 유격전술을 보면 동을 치는 척 하면서 서쪽을 치군 했네. 놈들은 우리를 밀림속의 밀영에 쳐들어가지 못하게 교란하면서 우리를 동만 쪽으로 유인하려고 한 거 같아.”
여기까지 생각하자 야마모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즉시 한 개 소대를 파견해 동북쪽 산골짜기 쪽도 추격하게 하게나.”
한철주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또 한개 소대를 보내고 밀림속의 유격대 밀영은 무슨 병력으로 친단 말입니까? 병력을 자꾸 나누지 말고 곧추 장백산 밀림속의 밀영으로 쳐들어갑시다. 그러지 않으면 유격대 놈들한테 코를 꿰어 여기서 헤매다가 말겠습니다.”
“밀영의 놈들만 유격대고 여기 유격대는 유격대가 아닌가? 대일본제국의 큰 국면부터 생각하게나.”
야마모도의 말에 한철주는 내키지 않은 대로 수하 중대장한테 포치했다.
“한개 소대를 동북쪽 산골짜기 발자국을 따라 추격하게.”
일본 놈 중대장은 두덜거렸다. 
“우리 중대는 이미 한개 소대나 별동대에 떨어져 나갔는데도 또 파견해야 합니까?”
(조까짓 조선 민병 같은 별동대 대장 다 뭐라고 우리 관동군과 이래라저래라 한단 말인가?)
다른 중대장들도 달갑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기실 한철주는 수백명 명천 조선청년들을 사기쳐 관동군에 강제 입대시킨데다가 친일조선인토벌대를 끌고 만주벌에서 유격대를 토벌한 덕에 부련대장까지 승진했던 것이다. 그가 부련대장이지만 일본 수하들이나 야마모도나 모두 그를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그러나 개도 주인을 보고 차라고 한철주 수하 일본 장교들은 아무리 허수아비라도 자기 상전 한철주를 마구 휘두려는 야마모도가 눈에 거슬렸다. 
(한 련대장 애비를 이래라저래라 하던 개 버릇을 어데 와서 해?)
그런 줄도 모르고 야마모도는 살기등등해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이 놈 안보촌에 유격대 있는 게 분명해. 유격대 놈들은 마을 사람들과 결탁해 이 마을에 미리 잠복했다가 우리를 매복 습격한 거야. 이 마을 백성을 백 명을 잘못 죽이더라도 유격대 한 놈을  살려 둬선 절대 안돼.”
한철주도 이를 뿌드득 갈며 일어섰다.
“마을 사람들을 몽땅 끌어 오라!”
한 중대장이 보고하였다.
“다 달아나고 열대엿 밖에 없습니다.”
“제길 할, 됐어. 이전에 이 마을에서 우리 지게꾼과 십가장이 유격대한테 죽었어. 마을에 숱한 자위대가 지켰다는 게 모두 눈깔을 펀이 뜨고 뭘 했어? 허수아비 같은 놈들.”
이윽고 미처 달아나지 못한 남녀노소 열대여섯이 끌리어 왔다.
한철주와 야마모도는 유격대에게 얻어맞은 앙갚음을 무고한 마을 백성들에게 하려고 피비린 학살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한철주는 군도를 빼들고 머리를 숙인 백성들을 두루 돌아보다가 어린애를 업은 한 여성에게 눈길이 뚝 멎었다.
“나와!”
한 바깥노인이 여성 앞을 막아 나섰다.
“우리 며느린 안 되오.”
한철주는 그 노인의 팔을 홱 채더니 발길로 아래 배를 걷어찼다.
“죽고 싶어?!”
“날 죽여라! 내 며느린 다치지 못해.”
노인은 일어나면서 라고 고함치며 며느리 앞을 또 막아 나섰다.
한철주는 군도를 빼들어 노인의 쳐든 오른팔을 탁 내리 찍었다.
“앗!”
노인의 팔이 썩 뚝 잘려 땅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팔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리었다.
“아버지!”
며느리는 꿇어앉으면서 시아버지를 부축하였다.
로인은 상을 찡그리더니 왼팔을 들어 한철주를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개다리 놈아, 넌 조선 사람이 아니냐? 개 같은 네 놈들이 썩어지고 광복의 날도 멀지 않을 거다.”
한철주는 악이 치받치어 군도로 노인의 왼팔을 탁 내리 찍었다.
양팔을 다 잃은 노인은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유격대들이 네 놈의 목을 치어 꼭 내 원수를 갚을 거다!”
“이 영감태기 유격대군. 죽어 봐라!”
한철주는 피 뚝뚝 떨어지는 군도로 노인의 목을 툭 치었다. 로인은 일본 주구 놈의 군도에 비참하게 살해됐다.
“아버지!”
며느리는 머리가 없는 시아버지를 안고 대성통곡 쳤다.
잔등에 업힌 어린애도 어머니와 함께 애고사리 손을 입에 물고 자지러지게 울었다.
백성들은 그 참경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한철주는 졸개들을 시켜 시아버지 몸을 안고 우는 며느리마저 끌어내게 했다.
“이년, 누가 유격댄가? 대라!”
며느리는 한철주를 쏘아 보며 챙챙한 목소리로 “모른다!” 하고 고함치었다.
“안 되겠어! 이 년이 정말 죽어 봐야 알겠니?”
한철주가 그 애 어머니의 목을 겨누어 군도를 쳐들 때다.
“잠간!”
야마모도가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쳐들었다.
“그 년의 대가리를 우리 가져 가겠네.”
야마모도는 가메다와 수길을 불러 수군거리었다.
“우린 여자 대가리를 몇 개 가져가야 하네. 유격대 진달래 대장 년의 대가리로 말이야. 스즈끼 국장이 알 턱이 있나?”
류강철이 옆에서 통역하자 입이 빠른 수길이 떠들어댔다.
“오, 참 고명합니다. 고명해! 우리 스즈끼 국장도 진달래를 본적이 없으니까.”
야마모도는 황급히 손으로 수길의 입을 틀어막았다.
“얘, 임마, 떠들지 말라.”
그제야 수길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한철주는 피씩 웃었다.
     관동군이나 조선에서 온 별동대나 다 그저 거짓말쟁이들이었으니 말이다. 이전에 국자가와 용정의 관동군과 경찰들도 계수동과 함흥촌을 기습해 숱한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한 후 그들의 귀를 잘라다가 바치고 전공메달을 타지 않았던가. 그런데 웃기는 일도 있었다. 어린애들 귀까지 잘라다 바치면서 유격대 수자를 부풀린 바람에 거짓보고 진상이 드러났던 것이다. 이번에도 별동대에서 딱 관동군이 했던 것처럼 거짓을 꾸미고 있어 한철주로선 코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야마모도는 수길과 류강철, 가메다, 응세까지 끌고 애를 업은 애 어머니한테로 어슬렁, 어슬렁 다가갔다.
여성은 시아버지 몸을 놓고 뒤로 물러앉았다.
야마모도는 애 어머니에게 달려들어 잔등에 업은 애를 쑥 뽑아냈다. 어린애가 엄마를 부르며 애고사리 손을 쳐들고 처절하게 울었다.
“말해! 이 마을에 누가 유격대구 누가 공산당이냐?”
야마모도가 호통 치는데 옆에서 수길도 개처럼 짖어댔다.
“네년이 말하지 않으면 애를 불에 태워 죽여 버릴 테야!”
그러나 애 어머니는 단말마적으로 애를 안아 가려고 달려들었다.
“이 년이! 말하지 않겠는가!”
야마모도는 흉악하게 이발을 뿌드득 갈았다.
“북데기를 가져다 불을 질러라!”
졸개들이 울안에 나가 벼 짚과 북데기를 가져다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야마모도는 애를 들어 활활 타오르는 삼단 같은 불길 우에 대면서 호통 쳤다.
“말해! 공산당과 유격대가 누구냐? 유격대 어데 갔어?”
“죽어도 모른다!”
“대지 않으면 애를 불에 처넣는다!”
“형철아!”
애 어머니는 애한테로 달리어 나갔다.
“말해!”
“이 개놈 새끼들아, 오늘 내 죽고 네 죽고 해 보자! 내가 바로 공산당 유격대다!”
여자는 육탄이 돼 야마모도에게 달려 들어 애를 쳐든 손을 깨물었다.
“이야! 이다이!(아갓! 아파라!)”
순간 야마모도는 애를 툭 떨어뜨리며 물린 왼손을 붙잡았다.
애 어머니는 애를 안고 달아나려고 하였다. 그때 수길이 발길로 애 어머니를 걷어찼다.
“앗!”
애 어머니는 애를 안은 채 수길의 발앞에 폭 꼬꾸라졌다.
독이 오른 야마모도는 살기등등해 덮쳐들어 엉엉 우는 애를 빼앗아 활활 타오르는 불에 처넣었다. 불길 속에서 애의 비명소리가 나며 뿌지직 타버렸다.
“말해!”
류강철이 을러멨다.
애 어머니는 천천히 일어나 비칠거리었다. 그녀는 불시에 수길을 떠밀면서 함께 불구덩이에 뛰어 들었다. 수길은 깜짝 놀라 불에 엎어졌다가 그 여자를 뿌리치며 불길 속에서 요행 빠지어 나왔다.
“저 년 대가리를! 빨리!”
“옛!”
수길은 불에 데 가지고서도 여자를 끄집어냈다. 그 여자는 온 몸이 불에 데여 보기 흉하게 됐다. 놈들도 그 참상에 눈이 동그래졌다.
“목을 쳐!”
야마모도가 호통 치자 가메다가 비수로 목을 툭 쳐 잘라 냈다. 야마모도는 피 쿨쿨 쏟아지는 여자의 머리를 군도로 꿰들고 쳐다보면서 중얼거리었다.
“그 대가리 항일유격대 진달래 대장 대가리 같구먼. 흐흐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흉물스러운 악귀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머리를 숙이고 외면하였다.
한철주는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해 거들먹거리었다.
“모두 봤지? 공산당과 유격대를 대지 않으면 모두 저런 끝장이야!”
마을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 뒤로 물러서려고 하였다. 그러나 뒤에는 일본 놈들의 서슬 푸른 날창 뿐이었다.
안경을 낀 한철주의 흉측한 우멍눈이 한 열서너 살 되는 소녀 애한테 멎었다. 소녀 애는 질겁해 사시나무 떨듯하며 뒤로 물러서며 어른들 속에 숨으려고 하였다.
“저년을 끌어내!”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가 들리었다.
소녀 애는 공포 어린 눈길로 한철주를 흘끔흘끔 훔치어 보았다.
“이년 말해 봐. 이 마을에 누가 유격대냐? 말하면 네 일가 몽땅 살려 준다. 허나 말하지 않으면 네년을 우리 황군들이 윤간하게 할 테야!”
그 말에 일본 놈들은 “헤헤헤.” 하고 징글맞게 웃어댔다.
“어서 말해!”
“모르오.”
“모른다구?”
소녀는 겁을 먹고 말하리라고 꿈꾸었던 한철주는 군도를 쳐들었다.
“정말 죽고 싶니?”
한철주는 쳐들었던 군도를 내리우더니 일본 놈들을 뒤돌아보며 고함쳤다.
“이 년을 윤간해!”
“하이!”
일본 놈들이 승냥이가 양을 덮치듯이 소녀한테 덮치어 들었다. 일본 색마들은 소녀를 밀고 닥치고 하며 눈 덮인 언 땅에 깔고 넘어갔다. 소녀의 허연 몸이 홀랑 드러났다.
"히히히."
"허허허."
색미치광이들은 애어린 소녀의 두 팔을 내리누르고 바둥거리는 두 다리마저 깔고 들어앉았다. 놈들은 가냘프게 몸부림치는 소녀를 앞다퉈 강간하기 시작하였다.
      “닥쳣!”
     이때 하늘땅을 뒤흔드는 고함소리와 함께 웬 중년사나이가 천정 구멍으로부터 뛰어 내려 마당에 나섰다.
“내가 바로 네 놈들이 찾는 공산당 간부다! 그 소녀하군 아무런 관계없다! 무고한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지 말라!”
당당한 목소리와는 달리 졸개들이 몸을 수색했지만 몸에 무기가 없었다. 다만 호주머니에 꽁다리연필과 종이조박이 둬 장 나왔다.
류강철이 통역하자 야마모도와 철주는 전리품이나 얻은 듯이 헤벌쭉해 하였다.
“결박해!”
야마모도는 물리어서 아픈 왼손을 주무르며 호통 쳤다.
공산당 간부는 집 대들보에 거꾸로 높이 매달리었다.
야마모도는 또 고문을 들이댔다.
“네 놈 공산당 간부? 유격대 대장?! 이름이 뭔가?”
“난 종래로 이름을 속이지 않는다! 리성화다!”
한철주는 피씩 웃었다.
“간만은 큰 놈이구나! 말해! 유격대에서 무슨 간부냐?”
리성화는 거꾸로 매달려서도 턱짓으로 마을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 마을 사람들을 다 풀어 줘라. 그래야 말하겠다.”
리성화는 마을 서당 훈장으로 위장한 지하당 공작일군이었다.
한철주는 코 방귀를 “흥!” 하고 뀌었다.
“네놈의 잔꾀에 넘어갈 관동군인가 하는가? 이 놈 말해! 네 놈을 내놓고 마을에 또 누가 항일유격댄가?”
“없다! 내 혼자다! 무고한 백성들을 풀어 놔라!”
“네 놈이 말하지 않으면 풀어 줄줄 아는가. 말해!”
리성화는 혀를 물어 끊어 야마모도 놈의 낯에 내뱉었다.
야마모도는 “에크!” 하고 피 튕긴 낯을 닦으며 땅바닥에 떨어진 피 묻은 혀를 보았다.
“이 놈이 악질이구나!”
야마모도는 강철이를 시켜 리성화에게 금방 들춰낸 종이조박과 꽁다리연필을 주었다.
“이 놈, 말하지 못하면 연필로 유격대 이름을 써라!”
그러자 리성화는 손가락을 입에 넣더니 마구 물어뜯어 내뱉었다.
“이 놈을 불태워 죽여!”
야마모도가 고함치자 졸개들은 리성화의 밑에 짚을 쌓고 불을 질렀다. 활활 타 번지는 불길이 삽시에 리성화를 삼켜 버렸다.
리성화는 불에 타면서도 계속 일본 놈들과 그 주구들을 욕하며 구호를 불렀다.
“일본 침략자들을 타도하자!”
“일본 놈들이 망할 날이 오래잖다!”
“중국 공산당 만세!”
“조선 공산당 만세!”
“항일유격대 만세!”

커다란 촌가에 불이 달리었다. 그러자 놈들은 바깥에 뛰어 나왔다. 그 놈들은 총창으로 마을 사람들을 불타는 집안에 마구 밀어 넣었다. 야마모도가 소녀만은 끄집어 낸 후 문을 꽉 닫았다.
일본 놈들이 문마다 돌아가면서 널을 가로 세로 대고 대못을 꽝꽝 박아버렸다.
“아니, 그년도 태워 죽입시다.”
한철주의 말에 야마모도는 “종군위안부로 써야지. 흐흐흐.”라고 하며 징글맞게 웃었다.
땅! 땅! 땅!
이때 뒷산 쪽에서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리었다.
“유격대다! 유격대!”
혼비백산한 놈들은 총칼을 빼들고 촌공소를 빠지어 나갔다.
불타는 집안에서는 한참 아우성소리 높이 들리었다. 그러나 천정이 불타버리면서 안으로 쿵 무너지어 버리자 모든 것이 잠잠해지었다. 다만 세찬 불길에 나무가 타면서 탁탁 튀는 소리가 세차게 들릴 뿐이었다.
불타는 촌가의 외양간 벽 밑으로 하여 소똥을 치던 자그마한 구멍이 있었다. 몇몇 노인들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그 자그마한 구멍을 막은 돌을 치웠다. 그들은 소똥구멍으로 어린애들을 데리고 빠지어 나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처 빠져 나가지도 못한 나머지 마을 사람들은 몽땅 불에 타 장렬히 희생됐다.

                    9. 밀림으로 진군

      일본 놈들은 유격대에 기습당하기까지 해 분이 풀리지 않았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불을 지르고 약탈하면서 만행을 저질렀다.
     어떤 놈들은 닭 우리의 닭을 붙들어 집에 불을 지른 후 그 불에 구워 먹었다. 놀란 닭들이 푸 닥닥 풍기어 사처로 날아났다. 어떤 놈들은 돼지우리에 들어가 총창으로 돼지를 찔러 죽이고 엉덩이 살을 도려내 돼지우리에 붙은 불에 구워 먹었다.
삽시에 온 마을에는 삼단 같은 불길이 치솟아 올랐고 여기저기에서 돼지와 소 같은 집 짐승들의 비명소리가 요란하였다.
온 하루 불에 탄 마을은 잿더미로 돼버리었다.
      한철주는 “별동대라는 놈들이 마을 사람들과나 우쭐거렸지. 흥!” 하고 야마모도 대장을 못내 비웃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야마모도는 간음하고 놀 소녀 애를 끌고 가면서 흐뭇해 헤벌쭉거렸다.
그가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후에 진짜 진달래를 잡지 못한다고 해도 진달래 머리로 대용할 여자 머리도 잘라 내 뒀으니까. 또 스즈끼 국장에게 처단당할 근심도 없게 됐으니까. 이제 그는 유격대를 잡든 잡지 못하든 간도에서 살아남아 명천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땅! 땅! 땅!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총소리 울렸다. 몇놈이 썩박나무 쓰러지듯 쿵쿵 눈바닥에 처박혔다.
"이게 뭐야?!"
야마모도는 깜짝 놀라 군도를 빼들고 수레바퀴 밑에 한쪽 무릎 꿇고 살폈다. 
일본 놈들이 기습유격대 꼬리를 물고 인차 추격하지 않고 마을에서 대학살을 감행하자 인삼 중대장이  유격대를 이끌고 되돌아와 재차 기습하고 있었다. 그들은 백성들을 더 학살당하게 수수방관할 수 없었다.
야마모도는 죽을 위험이 많은 원시림 항일유격대 대부대와의 싸움을 피하려고 꾀를 썼다.
“한 련대장! 저  놈들부터 족치게!”
꼬리를 빼려는 야마모도의 속내를 빤히 꿰뚫어 본 한철주는 이젠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듣지 않았다.
“우리를 기습하면서 교란 작전하는 유격대 놈들에게 언제까지 코를 꿰여 끌려다닐 예산입니까? 우리 관동군은 곧추 원시림속의 밀영을 치겠습니다. 별동대나 여기 소 분대 유격대 놈들과 싸우십시오. 흥!”
      야마모도는 혹시 스즈끼 대대장에게 고발이라도 올라 갈까봐 억지로 마지못해 장백산 밀림에 가기로 하였다. 하지만 한철주를 떨어져 단독으로 별동대를 데리고 유격대를 기습한 척 하면서 몸을 숨길 속궁리를 따로 해두었다.
그런데 유격대는 백성들이 다 살해되고 마을이 이미 잿더미 된 것을 보고 기습작전을 펼치다가 수림 속으로 신출귀목해버렸다. 
야마모도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듯이 한철주 눈을 피해 별동대 두개 소대 병력을 끌고 서남쪽을 향해 부랴부랴 떠나가 버렸다.
한철주가 관동군을 끌고 눈 덮인 황야를 허우적거리며 곧추 원시림을 향해 들어갈 때다.
갑자기 앞에서 통신병이 뛰어왔다.
“보고! 한 련대장!”
“무슨 일인가? 또 유격대 기습부댄가?”
“아닙니다. 의사라고 하는 놈과 농사군 같지 않은 놈 두 놈을 붙잡았습니다.”
“그래? 무기는 없던가?”
“소금과 약 밖에 없었습니다.”
한철주는 수하들과 눈길을 맞췄다.
“흥, 이 밀림 속에 약과 소금을 가지고 왔다? 필시 유격대와 관계있는 놈들이야! 끌어 왓!”
“하이!”
이윽고 통신병과 졸개들이 앞에서 배낭을 멘 세 사나이를 끌고 왔다.
한철주는 세 귀 눈을 치뜨는 청년이 어쩐지 눈에 퍽 익어 보였다.
“너 이놈, 이름이 뭔가?”
상대방도 일본 장교복을 입은 한철주가 안경알 밑의 우멍한 눈을 판들거리며 조선 말을 하는 것에 퍽 놀라는 눈치었다.
“김호입니다.”
“김호?”
“고향은 어딘가?”
한철주는 한걸음 다가서며 물었다.
그러나 상순은 아주 태연자약하게 대답하였다.
“조선 함흥 산골입구마.”
“지금 어데서 사는가?”
“일성촌에서.”
“그래? 딱 어데서 본, 아, 아니야. 딱 기준 놈 같은데. 나이가 너무 차 나.”
한철주는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너 혹시 조선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에서 온 김병완이나 김기준을 아느냐?”
“모릅구마. 건 왜 묻습둥?”
“아니야, 우린 한 고향 친구야.”
그 말에 상순과 규혁도 이 놈이 바로 철천지원수 한철주 놈이겠다고 대개 짐작했다. 그 놈 안경을 끼었지만 생김새가 우멍한 눈이나 날선 코는 한길수 놈을 똑 빼닮았기 때문이었다.
철주는 물음이 끝이 없었다.
“뭘 하러 이런 밀림에 온 거야? 약과 소금은 누굴 주려고?”
상순은 호주머니에서 종이 장 한 장을 꺼내 건네었다.
“이건 용드레분주소 소장이 써준 소개신입구마.”
졸개의 손에서 소개 신을 받아 보니 이렇게 씌어 있었다.
 
       대일본제국 장병 여러분:
      저의 관할구역 일성촌의 장충국과 김호, 김형내는 전선에서 유격대와 싸우는 대일본제국 장병들의 로고와 부상병들을 헤아려 특히 약과 소금을 가지고 위문하러 갑니다.
     대일본제국의 충신
들을 여러모로 도와 것을 희망하나이다.
 
                                          용드레분주소 소장 스즈끼희로시마
                                                                                                     
                                                        소화 18년
12 24
 
       아무리 아래 위를 살펴보아도 일어로 쓴 소개신은 흡잡을 데 없었다. 황차 용드레분주소 도장과 소장의 도장까지 박혀 있지 않겠는가!
“좋아, 대일본제국의 충신들이구만.”
그러면서도 한철주는 우멍한 눈에 교활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보자, 무슨 약을 가져 왔는가?”
상순이랑 배낭을 내리워 헤쳐 놓았다. 철주는 배낭안의 소금이랑 약재랑 두루 번지어 보는 것 이었다.
그는 상순이랑 끌고 온 졸개들에게 일어로 물었다.
“몸에는 총이랑 없던가?”
“하나도 없습니다.”
“비수도?”
“예.”
철주는 규혁의 길쭉한 얼굴을 우멍한 눈으로 보면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규혁은 진작 일어를 알기에 다 알아들었지만 그런 속내는 내비치지 않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철주는 한족 장충국까지 그들 속에 끼어 있는 것에 못내 감탄하였다.
“한족청년까지 자진해 우리 대일본제국 장병들을 돕는다? 참 보기 드문 일이구먼.”
마지막 말만은 조선 말로 중얼거리었기에 상순도 알아들었다.
상순은 장충국을 내세우면서 “얘 삼촌은 분주소 소장입구마.” 하고 말하려고 하다가 함흥촌에서 산다는 것이 드러 날까봐 그만 두었다.
그는 담대하게도 한철주에게 “오늘 장관님을 만나 기쁩니다. 어쩜 우리 대일본제국에 조선 장관님도 있습니까? 우린 대일본제국 장병들을 위해 뭐든 하겠으니까. 여기 소개 신에 장교님께서 서명해 주시오.” 하고 당돌한 요구를 들이댔다.
“그래? 허허허. 좋아. 그러나 자네들이 우릴 위해 일을 한 후에 내 서명해주지. 어때?”
형내는 인차 “좋습니다.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 하고 소개신을 받아 품에 깊숙이 넣었다.
사실 그 소개신은 일어를 배운 형내가 가짜로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일본 관동군과 별동대가 장백산 밀영을 토벌하러 가는 긴급군사정보를 유격대에 알리라는 병완의 말을 듣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장백산지역 밀림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적들을 원시림 밀영이 있는 협곡과 산꼴짜기에 유인해들이라는 성칠 대장의 지시를 받고 장백산지역 밀림에서 내려와 인삼 중대장 부대를 찾아왔다.
       한편 새날이 밝아왔는데도 적들이 추격해오지 않고 꾸물거리는 것을 보고 인삼 중대장은 상순과 형내에게 구체적으로 적들을 유인할 전술을 포치했다. 그리하여 상순과 형내는 위험을 무릎쓰고 담대하게도 일본 관동군 부대를 곧추 찾아 왔던 것이다. 그들은 기어이 적들의 코를 꿰어 장백산 밀림 속 밀영 부근의 눈 덮인 협곡과 골짜기에 끌어 들여가야 했다. 더는 이것 저것 따질 것이 없었다.
      사전에 병완은 미리 장충국을 시켜 해동분주소 소장 지학구를 통해 용드레분주소 소장의 이름이 스즈끼히로시마라는 것을 알아 내 소개신에 써 넣었다. 그리고 용정 도장방에 가서 엄청난 돈을 주고 분주소 도장과 소장의 도장을 새긴 후 소개신에 그럴듯하게 찍어 놓았던 것이다. 김진과 김형내는 각기 상순과 규혁의 지금 쓰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상순은 혹시나 해서 김진이라고 밝히지 않고 김호라고 가짜이름을 써넣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옥이 부상당했다는 말을 듣고 전번에 최구철에게 임시구급약을 보낸 후 용정약방에 가서 첩약을 지었고 용정에 있는 일본 놈들의 병원에 가서 처치할 소독제랑 지혈제랑 여러 가지 약을 가지고 일본 놈들까지 코를 꾀 가지고 장백산 밀림속의 유격대 밀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행히 병완과 형내가 꾸며 낸 소개신 덕분에 위험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철주는 속으로 말투를 보아도 함경도 말투 맞지만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그는 졸개를 보고 일어로 “박응세를 데려 오게.”라고 명령하였다.
이윽고 박응세가 헐레벌떡거리며 뛰어 왔다.
철주는 교활하게 우멍한 눈으로 상순이랑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응세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 귀속 말을 하였다.
“이자들을 장백산 유격대 밀영에서 본 적이 있는가?”
박응세는 벼룩 눈을 띠룩거리며 한참이나 상순과 형내를 훑어보았다. 그는 상순을 자꾸 보더니 도리머리 질 하였다.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 귀 눈을 가진 놈이 딱 유격대 김성칠 대장이란 놈의 세 귀 눈과 비슷합니다."
“음~”
철주는 속으로 자기 생각과 같구나 하면서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는 가메다와 응세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 쑤군거렸다.
“좋아, 저 놈들을 인질방패로 삼아 앞에 세워서 길을 인도하게나. 저 놈들을 잘 감시하게나.”
가메다와 응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상순이랑 형내랑 독기어린 눈길로 건너다보았다.
교활한 한철주는 가메다와 응세를 시켜 상순이랑을 대오 제일 앞에 세운 후 관동군에게 계속 밀림으로 진군하라고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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