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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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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1)
2016년 09월 23일 09시 06분  조회:1742  추천:1  작성자: 김장혁


                   4. 샘물터의 총소리
원시림에 눈보라가 윙윙 세차게 휘몰아쳐 협곡과 산골짜기에는 어느덧 허연 눈이 몇 길씩 뒤덮이었다. 그 두꺼운 눈은 세찬 산바람에 떵떵 굳어 사람이 딛고 건너가도 됐다. 협곡의 막바지는 원시림 밑바닥에 1 미터 남짓한 넓이로 패인 깊은 협곡으로 사시장철 새하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물이 흐르는 밑바닥은 자연 석굴처럼 널찍하고 윗부분은 좁아 천연적인 은신처나 다름없었다.
성칠은 진달래를 데리고 작전계획대로 돌아다니면서 매복습격전투준비정황을 검사하였다.
그는 협곡과 골짜기에 뒤덮인 눈을 직접 건너보면서 진달래를 돌아보았다.
“정말 용천대장이 말한 대로 될 거 같구나. 이제 여기에 놈들의 커다란 무덤을 만들어 놔야지.”
진달래도 동을 달았다.
“그래요. 놈들은 통나무집 안의 갱도를 생각지도 못했을 거예요. 더구나 이 협곡과 산골짜기의 눈은 생각지도 못했을 거예요.”
성칠은 진달래의 흩날리는 단발머리를 마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 놈들은 가메다와 응세의 거짓 정보를 믿고 한바탕 너덜거릴 거야. 죽탕 먹을 줄은 모르고. 흥!”
뒤이어 성칠은 주저주저하다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진달래야, 넌 용천대장을 어떻게 생각하니?”
“참 훌륭한 지휘관이죠."
진달래는 어망간에 대답했다가 이상해났다.
"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건 왜?”
진달래는 의아해 깜장 눈을 치켜떴다.
성칠은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이젠 마흔 고개를 올려다보지 않니? 용천 대장한테 시집가면 좋잖니?”
“안 가요.”
진달래는 눈을 곱게 흘기며 앵돌아졌다.
“용천 대장만큼 좋은 신랑감이 어데 있다고 그러니?”
“시집 안 간대도. 오빤 내 마음 몰라 그래요?”
성칠은 떠나려는 진달래 손을 잡아챘다.
“너 미쳤니? 날 조강지처를 버린 나쁜 놈으로 만들자고?”
“그러게 안 간다지 않아요.”
진달래는 앵돌아져 눈덮인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어깨를 세차게 들먹였다. 눈보라치는 수림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녀는 홱 돌아서며 당돌하게 물었다.
“오빤 날 사랑하지 않았는가요?”
“그래, 나도 널 사랑해.”
성칠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억지로 삼켜 버리었다.
뒤이어 그는 두 손으로 진달래의 어깨를 잡고 흩날리는 눈보라 속에 진달래의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간곡히 말했다.
“난 절대 조강지처를 버릴 수 없어. 더구나 본댁을 두고 절대 후처를 할 수도 없다.”
성칠은 어깨를 들먹이며 흑흑 흐느껴 우는 진달래의 어깨를 놓고 주먹으로 언 소나무를 꽝꽝 쳤다.
“누가 나더러 유격대 대장이 되라고 했는가!”
진달래는 성칠의 허리를 뒤로 꼭 끌어안고 가슴이 미여지게 울었다.
이때 아름드리나무 위에서 눈가루가 우수수 흩날려 내려 두 사람의 머리 위에 꽃 너울을 씌워주었다. 그들은 꿈속에서나마 사랑하는 신랑, 각시로 돼 보았다.
땅!
이때 갑자기 샘물터 부근에서 총소리가 울리었다.
“뭐야?!”
성칠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 들고 허리 굽히더니 샘물터 쪽으로 뛰어갔다. 진달래도 권총을 빼 들고 뒤따라 뛰어갔다.
땅! 땅! 땅!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리었다.
그들이 뛰어 갔을 때 눈 덮인 샘물터에 하옥이가 권총을 쥔 채 가슴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깨진 물동이마저 깨져 있었다.
성칠은 하옥을 와락 끌어안았다.
“여보,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언니, 이걸 어쩌나? 가슴에 총을 맞았네요.”
경위원 조 꼬마가 저쪽에서 밀림에 대고 총을 쏘며 경계하다가 뛰어 왔다.
“김 대장, 특무 놈이 불시에 나타났습니다. 나와 아주머니가 먼저 특무를 발견하고 총을 쏘았습니다. 특무 놈은 달아나면서 아주머니를 쏘았습니다. 칠백 중대장이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추격해 갔습니다.”
“알았소. 계속 경계하오.”
“옛!”
성칠은 하옥을 진달래에게 맡기고 총소리 난 쪽을 향해 뛰어 갔다.
총소리에 놀란 산짐승들이 여기저기 뛰어 다니었다.
피뜩 아름드리나무 사이에서 흰 옷 위에 털조끼를 끼어 입은 놈이 얼른거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디로 도망쳐?)
성칠은 나무 뒤에 딱 붙어 섰다. 저쪽에서 총소리 또 울리었다. 그 놈이 기대선 나무에  총알이 푱 하고 박히었다. 질겁한 그 놈은 성칠이 숨은 나무쪽으로 비실비실 뒷걸음질 쳤다.
“꼼짝 말엇!”
“앗!”
그 놈은 권총을 쥔 손을 쳐들며 몸을 천천히 돌리었다.
땅!
"앗!"
그 놈은  비명을 지르더니 몸을 날리어 눈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면서 총을 쏘았다. 성칠은 나무 뒤에 몸을 착 붙이며 날래게 피했다.
“어디로 도망쳐?!”
성칠은 눈 바닥에서 나뒹구는 놈에게 호랑이가 승냥이를 덮치듯이 덮쳐들었다. 둘은 눈 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싸웠다. 성칠이 왼팔을 상했지만 특무 놈은 근본 적수가 되지 못했다.
성칠은 상한 왼손으로 권총을 쥔 특무의 손을 내리눌렀다. 특무 놈은 깔리어서도 방아쇠를 자꾸 당기었다.
땅! 땅! 땅!
성칠이 총신을 허공에 탈아 버리어 총알은 허망공중에로 날아갔다. 권총에 이젠 탄알이 없었다.
성칠은 권총으로 최후 발악하는 특무의 대가리를 딱 내리깠다. 특무 놈은 당장에서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 까딱하지 못했다.
이때 칠백이랑 뛰어왔다.
“김 대장, 괜찮소?”
“빨리 이 놈을 압송하오. 아직도 특무가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주의하오.”
“옛!”
몇몇 유격대원들이 특무 놈을 압송해가려고 할 때었다.
경위원 조 꼬마가 뛰어왔다.
“보고! 응세 특무 놈이 혼란한 틈을 타서 도망치었습니다.”
그러자 성칠은 피씩 코웃음을 치었다.
“모든 게 우리 계획대로 돼 가는구먼.”
유격대원들은 어안이 벙벙해 하면서 특무를 끌고 갔다.
“잠간!”
유격대원들이 특무 놈을 눈으로 질질 끌고 가다가 주춤 멈춰서 성칠을 쳐다보았다.
성칠은 권총을 허리춤에 찌르며 말하였다.
“그 놈을 야영지에까지 끌고 갈 게 없어. 산골짜기 쪽에 가서 심문하오. 전번에도 응세 놈이 우리 진영을 다 정찰해가지고 도망치지 않았고 뭐요.”
그러자 유격대원들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특무를 압송하고 나머지 유격대원들은 밀림에 흩어지어 특무가 더 있나 수색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저쪽에서 바위돌과 억복이가 다른 특무 놈을 끌고 왔다. 그 놈도 통나무집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골짜기 어귀에 압송돼 아름드리나무에 결박되었다.
성칠이 자기 통나무집 앞에 돌아왔을 때다.
집안에서 하옥의 목소리가 들리었다.
“진달래야, 김성칠은 참 좋은 남자야. 자네한테 맡, 맡기네.”
“언니, 무슨 말을 해? 난 용천 대장한테 시집 갈라요. 언닌 꼭 살아야 해. 언니—”
성칠이 황급히 통나무 집 안에 들어가니 하옥은 진달래 품에 안긴 채 또 중얼거리었다.
“난, 난 둘이 서로 사, 사랑하는걸 아, 알고 있어.”
진달래는 성칠이 들어 온 줄도 모르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 언닌 꼭 살아야 해. 흑흑흑.”
성칠도 무릎을 꿇고 하옥의 얼굴을 매만지면서 진정을 토로하였다.
“여보, 당신은 내 조강지처요. 죽어선 안 되오. 꼭 살아서 고향의 광복을 봐야 하오.”
하옥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손으로 성칠의 손을 더듬으려는 듯이 허우적거리었다. 성칠은 제꺽 하옥의 손을 잡고 퍼더버리고 물앉았다.
“여보, 미안해요. 애, 애 하나 나아 주지 못, 못해. 진달래하구 꼭 행복, 행복하게 사, 살아요.”
“무슨 소리요. 진달랜 용천 대장과 결혼한다 하잖았소. 당신 죽지 않소! 아니, 죽어선 안 되오.”
성칠은 눈물을 쫙 쏟더니 하옥의 손을 잡고 애타게 흔들었다.
“조 꼬마!”
“옛!”
“위생원을 불러 왓!”
“옛! 이미 불렀습니다.”
이때 통나무집 문이 벌컥 열리더니 위생원이 뛰어 들어 왔다.
성칠은 자리를 내주면서 “내 아내를 꼭 살려 내오. 구하지 못하면 군법으로 처리할 테다!”라고 을러멨다.
“옛!”
위생원은 처음으로 성칠 대장이 이다지도 이지를 잃은 것을 보았다. 그는 두말없이 약솜으로 하옥의 상처를 닦아주고 손맥을 짚어 보았다.
“약이 없어 어쩌지?”
위생원은 진달래와 경위원을 돌아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놈들의 봉쇄로 산에는 쌀과 약이 다 떨어지었던 것이다. 약이 없이 위생원인들 아무리 김성칠 장의 아내라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성칠은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훔치면서 “어떤가?” 하고 물었다.
위생원은 성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알려 주었다.
“탄알이 페 한쪽을 뚫어 위험합니다. 우선 수술해 탄알을 빼내야겠습니다. 그런데 마취약도 없지.아주머니가 피를 너무 많이 흘리어 혈압이 내려 갈 거 같아 손을 대기 무섭습니다. 베니실린이 있어야 총상 염증을 빼겠는데... ”
성칠은 씩씩거리며 “그렇다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만 있겠는가?” 라고 하더니 함지를 들고 바깥으로 씽 나갔다.
이윽고 들어온 성칠은 함지를 들고 하옥의 곁으로 가서 내리어 놓았다.
그는 진달래와 은녀를 보고 “한쪽으로 앉아라."라고 하더니 하옥의 저고리를 헤쳤다.
진달래는 “왜 이래요?” 하고 물으며 까만 포도알눈을 치켜떴다.
성칠은 약솜을 가져다 함지에 잠그면서 “조상이 물려준 비방 약으로 상처를 처치해 줄 테다.”라고 하였다.
은녀는 의아한 눈길로 “오빠, 이게 뭔가요?”라고 물었다.
성칠은 붕대마저 풀어내고 약솜으로 하옥의 탄알구멍 상처에 괴여 오른 뻘건 피를 닦아내면서 대답하였다.
“세상에 둘도 없는 조상들의 비방 약이야."
"뭔데요?"
" 내 오줌이야.”
“오줌?”
진달래는 의아해하다가 성칠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이전에도 처음 만났을 때 성칠 오빠는 자기 오줌으로 동상을 치료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총상 염증도 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아직 의문스러웠다.
그때 옆에 있던 위생원이 해석해 주었다.
“놔두시오. 옛 의서에 오줌으로 소독하고 소염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칠은 오줌으로 총알구멍을 닦아 낸 후 위생원을 돌아보았다.
“빨리 수술해 탄알을 빼 내오!”
그러나 위생원은 “마취약이나 지혈제가 없이 어떻게 수술하겠습니까?”라고 하며 난감해 했다.
“이건 명령이오! 당장 수술해 탄알을 빼 내오!”
위생원은 대장의 아내여서 수술하기 적이 손이 떨리었다. 그래도 별수 없었다. 위생원은 수술칼로 하옥의 오른쪽가슴에 난 총알구멍을 십자로 한 칼, 한 칼 짜갰다. 하옥의 신음소리가 토굴 방을 아프게 톱질하였다.
성칠은 자기 가슴을 오리, 오리 칼로 저며 내는 것 같아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가 눈보라 치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한숨만 푸, 푸 몰아쉬었다.
한참 후 진달래가 머리를 숙이고 바깥으로 나왔다.
“어떠냐? 수술 다 했느냐?”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 걸 보세요.”
진달래가 내민 손에서 피 묻은 총알을 받아 들고 보는 성칠의 눈에서는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리었다.
“특무 놈을 살려 두지 않을 테다!”
이때 보초 서던 경위원 조 꼬마가 다가와 머리를 숙이었다.
“김 대장, 처분하십시오. 아주머니를 경위하지 못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성칠은 “아니오. 이제부터 잘 보호하오.”라고 말하고는 통나무집으로 화닥닥 뛰어 들어 갔다.
하옥은 고요히 잠들어 버린 것처럼 두 눈을 꼭 감고 누워 신음소리마저 내지 못하고 있었다.
위생원은 성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말하였다.
“위험에서는 벗어났습니다. 다행히 총알이 폐를 빗뚫으면서 페 동맥은 상하지 않았습디다. 오줌 약 덕분에 지혈도 됐습니다. 지금 맥박도 고릅니다.”
"음."
성칠은 응어리진 어혈을 토해내듯이 신음에 가까운 소릴 냈다.
“음, 그래."  하옥은 죽을 수 없어. 절대 죽지 않아!”
성칠은 바깥으로 나오면서 “은녀야, 그 오줌으로 좀 더 상처를 닦아 줘라.”라고 당부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경위원 조 꼬마가 뒤따라 나왔다.
“특무 놈은 어데 있소?”
“저 인삼 중대장의 통나무 앞 산골짜기에 있습니다.”
“알았소. 동무는 여기서 보초를 잘 서오.”
성칠은 이렇게 분부하고 떠나가려다가 조 꼬마의 귀에 대고 뭐라고 귀속 말을 하였다.
조 꼬마는 “예- 알았습니다.” 하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성칠은 특무 놈을 결박해 놓은 아름드리나무 쪽으로 가면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 쥐었다.
“어떻게 하면 원수를 갚을까?”
성칠의 발길 앞에서 눈보라가 세차게 휘몰아쳐 눈 파도가 사납게 휘몰아치었다.

                              5. 매복

      성칠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특무 놈들한테로 다가갔다. 대가리를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던 특무 놈이 놀랍게도 깨여나지 않았겠는가.
     그는 특무를 지키는 칠백중대장과 바위돌을 보고 말했다.
      “두 놈을 멀리 떨어진 곳에 끌고 가서 따로 심문하기요. 한마디만 거짓말을 하면 당장에서 총살해 버리오.” 라고 하였다.
     “양!”
     칠백과 바위돌은 몇몇 유격대원들과 함께 한 특무를 끌고 고개를 넘어가서 심문하였다.
     성칠은 증오의 불길이 이글거리는 세 귀 눈으로 특무를 쏘아보면서 “대가리를 들어!” 하고 을러멨다.
그러나 그 특무 놈은 아까 깔리어서도 단말마적으로 발악하던 놈 같지 않고 대가리를 점점 숙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아래 백지장같이 허연 낯과 매부리코가 퍽 눈에 익었다.
“대가리를 들어!”
옆에서 억복이 특무 놈의 머리카락을 쥐어 대가리를 쳐들었다.
순간 그 놈은 대가리를 툭 떨어뜨렸다.
“백승철, 이 놈, 대가리를 쳐들고 날 봐라!”
성칠은 주먹으로 그 놈의 가슴팍을 꽝 치었다.
“형님, 날 살려주오!”
“형님? 누가 네 형님이냐? 개 같은 놈!”
억복과 유격대원들은 그 놈과 성칠 대장을 번갈아 보면서 의아해 하였다.
“일본 개다리질 하는 네 놈을 웅진에서 죽여 버리어야 했어. 그랬더라면 네 놈의 손에 우리 여유격대원이 목숨을 잃지 않았을 거야
성칠은 비수 끝으로 그 놈의 턱을 쳐들고 심문하였다.
“말해! 일본 놈들이 뭘 정찰해오라던가?”
백승철은 불티 튕기는 눈길로 성칠을 쏘아보았다.
“모른다! 죽어도 모른다! 어서 죽여라!”
       “네놈이 당장 죽게 돼서도 갱갱 소릴 지를 테냐?”
성칠은 억복에게 눈짓하였다.
억복은 특무의 대가리를 언 나무에 마구 쪼아 놓았다.
성칠은 승철을 쏘아보며 “저 놈을 저녁에 승냥이들이 뜯어먹게 묶어 둬라!”라고 말하고는 고개 넘어 스적스적 걸어갔다.
이윽고 고개 넘어 눈 덮인 산비탈에서 칠백이랑 아름드리나무에 특무를 결박해놓고 심문하는 것이 보이었다.
성칠은 칠백을 한쪽으로 불러 조용히 심문결과를 묻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었다.
“됐소. 이 놈을 끌고 백승철한테로 가기요.”
“양!”
칠백은 힘차게 대답하고 나서 “그 놈을 끌고 가자!” 하고 명령하였다.
눈보라 속에서 고개를 넘어가면서 성칠은 결박돼 끌려가는 특무 놈을 보고 말하였다.
“우린 네놈들의 소조장이 백승철과 무슨 죄악적 임무를 맡고 여기 왔다는 걸 다 알아냈다. 백승철, 그 놈은 웅진이란 곳의 날강도야. 놈의 형 둘도 우리 유격대에 몽땅 총살당했어. 알았어?”
“이 놈과 더 물을 필요 없소. 총살해 버리기요.”
그러자 특무는 풀썩 물앉으면서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장관님, 제발 목숨만 살려 줍소. 몽땅 다 교대하겠습니다.”
그때라고 성칠은 심문을 들이댔다.
“말해. 우리한테 쓸모 있는 말인지 어디 들어보자.”
특무 놈은 꿇어앉은 채로 대가리를 쳐들어 성칠을 보고 참대 통에서 콩알을 굴리듯이 주어 댔다.
“이번에 사실 별동대 야마모도 대장과 한철주 부련대장은 대군을 끌고 토벌하기 전에 유격대 군영지도를 그려오고 병력과 무기, 쌀 같은 정황을 속속들이 탐지해 오라고 했습니다. 응세가 붙잡힌 바람에 겁을 집어먹고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백 소조장은 유격대 정황을 알아내지 못하고 돌아가면 총살당한다면서 여기서 계속 정찰하자  했습니다. 오늘 샘물터에서 물을 긷는 여 유격대원을 발견했죠. 백 소조장이 총을 쏘려고 하자 난 말렸습니다. 총소리 나면 숱한 유격대 몰려온다고. 그런데 백 소조장은 김 대장네 여편네, 저, 아니, 부인이라면서 기어이 죽여 버리겠다고 총을 쏘았습니다.”
“거짓말! 총은 네가 쏘고서도.”
억복이 총 박죽으로 그 놈의 잔등을 내리 치었다.
“아닙니다. 정말 백 소조장이 쐈습니다. 정말입니다. 거짓말을 하면 당장 죽이십시오.”
“됐어.”
성칠은 그 놈이 뭐라고 또 말하려는 것을 중도이폐했다.
“토벌하러 오는 별동대와 관동군이 얼마나 된다던가?”
그 놈은 “아마 별동대 30여명에 관동군 300여명이 토벌하러 온다는 거 같습디다.”라고 말하였다.
“언제 온다던가?”
“양력설 전에 토벌해 음력설전엔 원시림의 항일유격대를 몽땅 소멸하겠다고 합디다.”
그 말에 성칠과 칠백은 눈을 맞추었다.
“한마디라도 거짓말을 하면 죽인다!”
권칠백이 어름 장을 놓자 특무는 “누구 앞이라고 함부로 거짓말 하겠습니까?”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끌고 가자!”
유격대원들은 그 특무 놈을 끌고 눈보라 치는 고개를 넘어 백승철을 결박해 놓은 아름드리나무 앞으로 갔다.
성칠은 군화발끝으로 백승철의 턱을 춰올리며 호통쳤다.
“백승철, 이 놈, 우린 응세와 다른 특무 놈들 입에서 모든 걸 알아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백승철은 이를 쁘득, 뿌득 갈며 성칠과 유격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네놈의 여편네를 죽이어 치우지 못한 게 아쉽다. 네놈하구 진달래 년을 대가리를 쳐서 두 형님의 원수를 갚지 못한 것이 한일뿐이다! 어서 죽여라! 응세가 도망쳤으니 이제 야마모도 대장과 한 련대장이 토벌하러 올 게다. 그들은 응세와 가메다를 앞세워 대부대를 데리고 와서 네 놈들을 몽땅 죽일 거다! 으하하하. 네놈들의 제사날도 멀지 않다! 어서 죽여라!”
성칠은 밀림이 떠나가게 고함쳤다.
“300명이 아니라 3천명이라도 오라고 해라! 한철주 애비도 우리 여대장 손에 썩어졌어. 철주 놈도 오면 장백산 밀림의 귀신으로 만들 테야.”
칠백도 격분해 고함쳤다.
“일본 놈들과 주구 놈들을 여기서 몽땅 소멸해 버릴 테다!”
백승철은 대가리를 툭 떨어뜨렸다.
“어서 한방에 죽여라!”
그러나 성칠은 비수를 뽑아 들고 호통쳤다.
“네놈을 그리 쉽게 썩어지게 할 거 같은가? 우리는 중조 인민들을 대표해 일본 놈들의 개다리를 처단한다!”
“가만!”
이때 진달래가 저쪽에서 눈보라 속을 헤집고 뛰어 왔다.
“이 놈은 언니를 총으로 쏜 놈이닌데요. 내 끝장낼 게요.”
진달래는 염낭에서 조약돌을 꺼내 돌팔매를 날리었다.
딱!
"앗!"
백승철 놈의 이마빼기에서 피가 주르르 흘렀다.
딱! 딱!
유격대원들이 연신 돌팔매질을 하였다.
백승철은 대가리가 볼품없이 터져 피와 뇌 장이 마구 흘러 나왔다. 일본 놈을 등에 업고 세상에서 못된 짓이란 짓은 다 하던 일본 주구 백승철 놈은 이렇게 더러운 끝장을 보고야 말았다.
유격대원들은 눈 덮인 산골짜기에 더러운 일제 개다리의 시체를 나무 가지와 눈으로 덮어 버리었다.
나머지 특무 놈은 백승철의 끝장을 보고 풀썩 물앉더니 대가리로 눈 덮인 언 땅을 떵떵 쪼면서 목숨을 구걸하였다.
“제발 살려 줍소. 낱낱이 탄백하면 살려준다 해 놓고 왜 죽이자고 자꾸 이럽니까?"
그 놈은 벼룩이 눈을 끔쩍이더니 중얼거렸다.
" 아차, 잊을 번했구나. 한철주 련대장은 ‘이번에 아버지 원수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별동대 기습과 관동군 포위섬멸전을 결합해 토벌하겠는데 우리 보고 적정을 잘 정찰해오라.’고 했습니다.”
성칠은 발길로 특무 놈의 잔등을 밟고 섰다가 툭 차 놓았다.
“이 놈, 작작 지껄여라. 우린 벌써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이 놈을 가둬 둬라! 우리 일본 놈들을 소멸하는 걸 구경시켜! 네 놈 대가리를 잠시 붙여 뒀다가 네 놈 말이 한마디만 거짓말인 날엔 그때 가서 대가리를 쳐버릴 테다!”
특무 놈은 끌려가면서도 대가리를 조아리었다.
“장관님, 살려 줘 고맙습니다. 이제 더 생각나면 유격대에 이실직고하겠습니다.”
유격대원들이 그 특무 놈을 끌어갔다.
성칠은 픽 냉소하더니 눈보라치는 밀림의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때 인삼 중대장과 동욱 중대장이 다가왔다.
인삼은 성칠을 보고 조용한 곳에 가서 “응세란 놈이 도망쳤으니 우리 군영을 놈들이 손금 보듯 빤할 게요. 우린 빨리 전이해야 하지 않겠소?” 하고 물었다.
진달래도 동을 달았다.
“글쎄. 통나무집이 아까운대로 당장 전이해야 할 거 같아요.”
그러나 성칠은 “아니오. 지금 전이할 때 아니오.” 라고 하더니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조용히 귀속 말을 하였다.
“내 조 꼬마를 보고 응세란 놈을 고의적으로 놔 주게 했소.”
“양?”
성칠은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집에 들어 가 말하기요.”
그들은 진달래네 집안에 들어갔다.
모두들 자리를 정하고 앉자 성칠은 나직이 말하였다.
“그 놈을 고의로 놔줘서 거짓정보가 놈들한테 가게 한 거요. 놈들은 우리 밀림속의 군영에 병력이나 무기나 형편없고 쌀도 떨어진 걸로 알고 마음 놓고 쳐들어 올 거요. 예로부터 교오하는 병사는 싸움에서 진다고 했소. 우린 여기 통나무집들로 된 밀영에 적들을 깊이 유인해 들이어 섬멸전을 벌리잔 말이오.”
인삼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참 그럴듯하구먼.” 라고 찬동하였다.
그러나 진달래가 도리머리를 가로흔들었다.
“안 돼요. 환히 드러난 군영에 적들을 끌어 들인다는 건 놈들의 기습을 당할 수도 있어 너무 위험해요.”
그러나 성칠은 고집을 썼다.
“여자들이란 왜 그리 생각이 짧아? 그런 담도 없이 어떻게 싸워? 예로부터 담과 용기 있는 자가 싸움에서 이긴다고 했다. 희생정신이 없이 어찌 일본 놈들을 소멸하겠느냐?”
뒤이어 그는 중대장들을 몽땅 불러다 작전포치를 하였다.
유격대 각 중대는 김성칠 대장의 포치에 따라 눈보라를 무릅쓰고 급급히 움직이었다.
인삼 중대장은 자기 중대를 영솔해 군영을 떠나 영월구 쪽으로 진군하였다. 그들은 토벌하러 오는 적들을 기습하여 교란하고 피곤하게 만들 전략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동욱 중대장과 칠백 중대장은 각기 자기 중대를 거느리고 밀영에서 5리 쯤 떨어진 서쪽과 북쪽에 가서 매복하였다. 다만 진달래중대장만이 성칠 대장과 함께 제일 위험한 밀영에 남아 유격대원들을 영솔해 전투준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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