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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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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7)
2016년 07월 14일 17시 25분  조회:206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5. 경성 여관집
울울창창한 수림 속을 말 타고 달려가면서 진달래는 근형에게 물었다.
“그래 큰아버지는 이맘때면 어디까지 갔을까?”
근형은 말을 타고 작은고모와 나란히 달리면서 대답했다.
“글쎄 말이요. 수레를 몰고 떠났기에 잘 갔으면 경성군 경내에나 들어섰을 게요. 할아버지가 애타게 기다리겠는데 빨리 가기요.”
“그래. 무사히 갔는지 근심스럽구나.”
근형은 새단과 함께 타서 늦은 것 같아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했다. 검둥이도 그들이 탄 백마를 따라 달렸다. 장사꾼으로 가장한 유격대원 셋이 말을 타고 뒤따랐다.
황혼이 붉게 타오르고 땅거미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경성군의 시골에서 깎아지른 절벽 앞에 자리 잡은 마을에 이르렀다.
절벽 앞에 도사리고 있는 첫 집은 좀 잘 사는 여관인 것 같았다.
진달래는 깎아지른 절벽과 같은 산세와 절벽 앞의 마을 그리고 여관집을 살펴보더니 철색얼굴에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회룡 쪽으로 가는 길목이기에 일본 놈들이 꼭 중시할게요. 이전에 성칠 오빠도 이 부근에서 날강도를 만나 적토마를 빼앗기고 목숨마저 잃을 번한 적이 있다고 했소. 꼭 안전에 각별히 주의하오. 말이 지쳤기에 먹이를 먹이고는 인차 떠나기요. 금별 장군께서 우리 소식을 애타게 기다릴 거요. 바위돌과 근형인 저 집에 먼저 들어가오. 정황이 발생하면 조카가 검둥이를 내보내고 바위돌은 총을 쏘아 신호를 보내오. 우린 여기 있다가 쳐들어가겠소.”
두 어깨가 쩍 벌어지고 바위처럼 튼튼하게 생긴 유격대원 바위돌이 나서면서 “옛!” 하고 대답한 후 근형 쪽으로 돌아섰다.
근형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작은고모 네는 저녁 식사도 하지 않겠소? 배고프겠는데.”하고 근심했다.
진달래는 말 잔등에 달아맨 주머니를 툭툭 쳤다.
“여기 며칠 먹을 주먹밥이 있어. 돈 좀 주고 말들이나 잘 먹여라.”
근형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바위돌과 함께 말 다섯 필이나 끌고 여관집 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진달래는 새단과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길옆의 나무숲에 들어가 숨었다.
근형이 앞장서 나가 높다란 대문을 두드렸다.
“주인님, 계십둥?”
울안에서 신발을 끄는 소리가 작작 들리었다.
이윽고 대문의 작은 문짝이 삐꺼덕 열리더니 안에서 허리가 구부정하고 구레나룻을 기른 곱사등이 나와 사팔뜨기 눈으로 근형과 바위돌의 아래 우를 훑어보았다. 그의 눈길은 말 다섯 필 가운데서도 백마에게서 멈추더니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예, 말장사군인 모양이구먼. 아, 이 좋은 말을 다섯 필이나 끌고 오다니. 쯧쯧. 정말 희한한 백마로구먼요.”
곱사등은 대문을 열면서도 사팔뜨기 눈으로 백마와 근형이 네를 흘끔흘끔 훔쳐보며 끝없이 중얼거렸다.
“오늘 맨 부자들만 우리 집을 찾는구먼. 허허, 참 재수 좋은 날인데.”
곱사등이영감은 구레나룻을 매만지다가 백마의 고삐를 덥석 잡더니 왼손으로 대문 안을 가리켰다.
“어서 들어 오시우. 내가 마구간에 가서 말먹이를 푼푼히 줄 테니까. 숙비나 푼푼히 주오.”
“예, 근심하지 마오.”
근형은 대문 안에 들어서면서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여관은 몸채에 사랑방에 모두 두 채나 됐고 마구간과 우사간도 있었다. 마당에는 수레가 있고 우사간에는 소 한마리가 먹이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수레와 소가 퍽 눈에 익어보였다.
(저건 상철이 부자네 증조부 유골을 싣고 가던 수레 같은데. 혹시 할아버지네 여기에 든 게 아닐까?)
근형은 곱사등이영감이 백마를 마구간에 매놓고 나오는 것을 보고 뒤따라 사랑채에 있는 손님방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사랑방에는 할아버지와 상철의 부자가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아니, 이 불효자식아, 어데 달아났다가 이제야 왔느냐? 엉?”
최구장은 벌떡 일어나 근형의 뺨을 찰싹 갈겼다.
근형은 바깥동정을 살펴보더니 그간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간단히 말했다.
최구장은 근형을 품에 꽉 끌어안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참 잘했어. 넌 과시 효자로구나. 엄마 유골을 외가 집에까지 모셔가다니. 쯧쯧. 과시 내 장손답구다. 넌 우리 가문의 14대 장손이야,  오해해서 미안해.”
      최구장은 바위돌의 너부죽한 어깨를 툭툭 쳤다. 
“참 수고 많았소. 당신들이 아니면 우리 일가는 정말 몇 번이나 죽었겠는지 모르겠소. 우리도 이제 금방 이 집에 들었소.”
이때 밖에서 신발을 끄는 소리가 작작 들렸다.
“손님들, 저녁상을 올리랍둥?”
북으로 올라갈수록 함경도 사투리가 짙었다.
“빨리 들여오오.”
한참 후 신발을 작작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랑방문이 삐꺼덕 열리였다. 양태머리를 딴 열댓 살 돼 보이는 처녀애가 먼저 작은 개다리 밥상을 들여오고 중년여성 둘이 멱국에 조이밥사발들을 쟁반에 들고 들어왔다.
뚱뚱한 중년여성이 밥상을 다 차려놓고 치마를 걷어쥐고 일어나면서 손님들을 보고 말했다.
“먼 곳에서 오느라고 허기 나겠는데 갖춘 건 없어도 많이 듭소.”
“예, 맛있게 들겠습구마.”
최구장이 인사를 받으면서 벽에 기댔던 허리를 떼고 밥상에 다가앉았다. 그는 어쩐지 뚱뚱한 중년여성은 별로 눈 덕에 살이 진 것이 살이 세보였다. 모두들 밥상에 다가앉았다.
이때 처녀애가 중년여성을 따라 나가면서 까마잡잡한 얼굴로 바위돌을 흘끔 보더니 눈을 찔끔 감았다 뜨면서 턱 끝으로 밥상을 가리키고는 돌아나갔다.
바위돌은 그 표정에 뭔가 암시하는 것이 있는 거 같아 밥상을 쳐다보면서 양미간을 찌푸렸다.
근형이 배고파 숟가락을 들어 밥을 퍼먹으려고 할 때였다.
“가만!”
바위돌이 손으로 근형의 밥숟가락을 막았다.
“어째? 배고파 죽을 지경이오.”
“쉿-.”
바위돌은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바깥동정을 살피였다. 뒤이어 그는 웃 호주머니에서 가늘고 짤막한 은침을 쏙 뽑더니 멱국사발에 찔렀다. 그는 한참 후 은침을 쏙 뽑아 창문 쪽에 가더니 창호지에 비껴드는 저녁 노을빛에 대고 이리저리 보았다. 금방 은빛이 나던 은침은 시꺼멓게 타버렸다.
그는 밥상으로 다가와 까맣게 타버린 은침을 여럿에게 보이면서 조용히 “멱국에 독약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두들 “양?”하고 놀라 어안이 벙벙해 했다.
“이전에 작은 집 성칠 삼촌이 이 근방에서 날강도 삼형제를 혼내줬다더니 이 집이 아닌지도 몰라.”
상철이 하는 말에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옳소. 이 집이겠소. 어떻게 이 날강도들의 집을 벗어나 아버지 유골을 모시고 무사히 만주로 갈까?”
최구장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바위돌이 말했다.
 “아직 산 사람두 살아나가기 힘든데 유골 근심을 다 합니까? 내 하라는 대로 합소. 밥과 국을 다 버리고 죽은 척 하시요.”
이때 밖에서 신발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황급히 국과 밥을 몽땅 부엌아궁이에 쏟아 넣었다.
그들은 바위돌의 말대로 밥을 먹다가 다 쓰러진 것처럼 배를 끌어안고 여기저기 쓰러져 게 침을 입귀에 게 발랐다. 바위돌은 근형을 보고 검둥이를 진달래부대장에게 보내라고 하고 문 가까이에 쓰러져 있었다.
이윽고 몸채에 벅적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가보기요. 이 맘 때면 다 쓰러졌을 게요.”
뒤이어 삐꺼덕 사랑채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허허허, 약을 푼푼히 넣었더니 몽땅 뒈졌구먼. 승핵이 하구 승철인 빨리 주검이나 거둬라. 이젠 희한한 백마랑 몽땅 우리들 게다. 저 궤짝 안엔 이장사군들이 무슨 금은보화를 걷어넣었는지 어디 열어보자.”
바위돌이 눈을 가슴츠레 뜨고 보니 곱사등이영감이 들어오면서 구레나룻을 슬슬 매만지면서 지껄여 대고 있었다.
그 뒤에 더 젊고 뚱뚱한 두 중년사내가 들어왔다.
꺾다리가 지껄이었다.
“형님의 날강도 버릇은 개를 떼 주겠소? 이전에 명천의 성칠이란 놈에게 혼 나고서도 이런 짭짤한 맛에 자꾸 사람을 죽이지 않고 뭐요. 흐흐흐.” “그 놈 새끼, 잔말 말고 빨리 시킨 일이나 해라.”
곱사등은 구들에 올라오면서 발길로 바위돌의 다리를 툭 걷어찼다.
“에이구, 곰같이 생긴 놈도 독약을 먹고 이 모양을 봐라. 딱 썩어진 멧돼지 같아. 얘들아, 오래두면 누구한테 들키겠어. 싹 산골짜기에 실어다가 깊숙이 파묻어버려라. 에헴, 어디 궤짝이나 열어볼까. 무슨 보물단지가 있는지? 에헴, 에헴.”
키꺽다리 승핵이란 놈이 바위돌에게로 다가올 때 바위돌이 벌떡 일어나면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꼼짝 말엇!”
“아이쿠!”
승핵이와 승철이란 놈은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땅!
승핵이 비명소리와 함께 바깥에 쿵 쓰러졌다.
“이게 뭐야?”
곱사등이는 홱 돌아서면서 바깥으로 쫓아나가는 바우돌의 손에 든 권총을 보고 바들바들 떨었다.
형내와 상철이, 근형이 덮쳐들어 곱사등이를 땅바닥에 허공 재껴 놓고 팔을 비틀고 깔고 들어앉았다.
땅!
바우돌은 마구간에서 백마를 타고 말 잔등에 납작 엎드려 달아나는 난쟁이 승철을 향해 또 총을 쏘았다. 그러나 말의 배때에 총알이 푱푱 박혔다. 승철은 비수를 뽑아들었다. 그자는 몸을 반쯤 일으키더니 바위돌한테 비수를 날렸다. 바위돌이 옆으로 급히 피하였지만 비수가 팔에 꽂혔다. 그새 승철은 말 잔등에 다시 납작 엎드린 채 열린 대문을 빠져나갔다. 이때 대문바깥에 있던 진달래가 덮쳐왔다. 진달래는 백마잔등에 납작 엎드려 달아나는 사람이 모를 사람인지라 진작 쥐고 있던 조약돌을 날렸다.
딱!
면바로 그자의 대갈통을 명중했다.
“아이쿠!”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백마는 납작 엎드린 그 놈을 태운 채 저 멀리로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달아났다. 검둥이가 쫓아 달려가면서 “왕! 왕! 왕!”짖어댔다.
진달래가 유격대원 둘을 거느리고 대문 안에 들어서면서 호통 쳤다.
“장백산 유격대다! 몽땅 꼼짝 말고 바깥에 나와!”
집안에서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큰일 났구나.”
뚱뚱한 중년아낙네가 치마를 걷어안고 제일 먼저 엎어질듯이 나오면서 애걸복걸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우린 아녀자들이라 날강도 짓을 한 게 없습구마.”
진달래가 유격대원들을 돌아다보더니 집안을 향해 손을 홱 저었다.
“집안을 수색해!”
유격대원들이 집안에 뛰어 들어가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때 집안에서 상철과 근형이 곱사등이를 끌고 나왔다.
진달래는 뜻밖에 큰아버지 최구장을 만나 기뻐 어쩔 줄 몰랐다.
“큰아버지, 그러잖아도 큰아버지 행적을 몰라 바삐, 바삐 쫓아온 길이예요. 몸이 어때요?”
진달래는 큰아버지 얼굴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난 괜찮아. 넌 참말로 장해, 진달래야, 네가 유격대를 거느리고 마천령에까지 쫓아가서 오라비들을 다 구했다는 걸 근형에게서 다 들었다.”
최구장은 진달래를 끌어안고 잔등을 다독여주었다. 진달래는 몸을 돌려 바위돌에게서 자초지종을 보고 받았다.
이때 유격대원들이 얄팍한 중년아낙네와 양태머리를 땋아늘인 처녀애를 끌고 나왔다.
“대장, 이 둘 밖에 없습니다.”
“알았소.”
뚱뚱한 아낙네는 살진 눈 덕을 치뜨면서 진달래라는 유격대 여자대장을 흘끔 훔쳐보았다. 철색 얼굴에 까만 포도알눈은 일반 여성들보다 퍽 달랐다. 여자 대장은 퍽 위엄 있고 날래 보이었다.
진달래는 바위돌의 팔 상처를 수건으로 싸매주고 몸을 돌렸다. 그는 곱사등이 백승만과 뚱뚱한 아낙네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네 놈들은 여기에 여관을 차리는 척하면서 전문 길손을 살해하고 재물이나 약탈하는 날강도들이구나. 네놈들을 살려뒀다간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겠는지 모르겠구나.”
“제발 살려주오. 강도질이야 사내들이 했지비. 우리 아녀자들이야 어찌?”
뚱뚱한 아낙네는 승핵의 시체와 진달래를 번갈아보면서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며 애걸복걸했다.
곱사등이영감이 하늘을 쳐다보다가 머리를 푹 떨어뜨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만 떠드오. 명이 이만한 걸 빈다고 살려주겠소? 죽어도 함께 죽는 게 낫지?”
“저 영감을 봐라. 당신 죽더라도 여편네와 제수는 살려 달라고 빌지 못할망정 쯧쯧!”
옆에 있던 바위돌이 진달래의 귀에 대고 양태머리 처녀애를 가리키면서 귀속 말로 뭐라고 말했다.
진달래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는 양태머리 처녀애한테 다가가 다정하게 손목을 쥐고 물었다.
“이 날강도 집 애냐?”
처녀애는 뚱뚱한 아낙네와 곱사등을 번갈아 할끔할끔 곁눈질해보면서 진달래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일없어. 말해 봐. 겁나 말고 말해 봐!”
처녀애는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머슴인데요.”라고 했다.
“알았어. 넌 이쪽으로 오너라.”
양태머리 처녀애는 뚱뚱한 아낙네 눈치를 흘끔흘끔 보면서도 진달래 쪽으로 건너왔다.
진달래는 건 가래를 떼더니 권총을 뽑아들었다.
이때 옆에 서 있던 최구장이 나서서 진달래의 권총을 내리누르면서 말했다.
“얘, 조카야, 살생을 그만해라. 이 사람들은 길을 잘못 들어서서 날강도질을 하는 게야. 한길수처럼 일본 놈들의 개다리질은 한 것 같지 않아. 내버려 둬라. 우린 갈 길이나 빨리 가자.”
이때 토성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었다. 진달래가 대문 밖을 내다보니 숱한 마을사람들이 총소리를 듣고 먼발치에서 구경하다가 유격대가 왔다는 말을 듣고 모여왔다.
진달래는 마을 사람들 쪽으로 걸어 나갔다.
한 사내가 나서더니 백승만을 손가락질했다.
"이 놈을 죽여치웁소. 이 놈은 명천에서 경찰서를 지을 때도 일본 놈들한테 병완 영감이랑 우릴 고자질한 개다립니다. 죽여 치웁소."
"옳습구마. 죽여치웁소!"
"우리 마을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악당들입구마!"
"저 미친개 같은 삼형제 없애치우면 우리 편안하게 살겠는데. 흥!"
진달래는 최구장과 눈길을 맞추고나서 다시 권총을 빼들었다.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여러분, 우리는 일본 놈들과 싸우는 장백산 항일유격대입니다. 유격대는 우리 조선 인민들의 군대입니다. 오늘 날강도질을 일삼는 악질지주 백승만을 처단하고 곡창을 열어 여러분께 식량을 주겠습니다.”
진달래 말을 듣고 마을사람들은 살 때를 만났다고 웅성거렸다. 어떤 사람들은 유격대가 왔다고 하면 이런 좋은 일이 있을 것을 예견하고 벌써 쌀 주머니랑 버치랑 들고들 왔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 악질날강도 삼형제를 죽여 버려라!”
“죽여 버려라!”
진달래는 바위돌을 돌아보면서 명령했다.
“백성들을 대표해 이 날강도 놈을 처단하라!”
바위돌이 권총을 들었다.
땅!
날강도 곱사등이 백승만은 한뉘 날강도질을 하다가 자기 집 문 앞에서 처단 당했다.
“여러분, 곡창을 열고 쌀과 가정기물을 마음대로 가져가십시오!”
마을 사람들은 “와야!”하고 쳐들어와 창고 문을 괭이로 까부시고 식량을 주머니에 가마니에 버치에 퍼 담아 메고 들고 좋아 야단쳤다.
진달래는 유격대 대원들을 거느리고 궤짝을 까부시고 들춰낸 금은붙이들을 꺼내 로비로 남기고는 백성들에게 몽땅 나눠주었다. 그는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백성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대장답게 유격대원들을 거느리고 최구장 등을 모시고 길을 떠났다.
최구장은 상철과 형내를 보고 “사돈, 우리 일을 돕느라고 연루될 건 빤하오. 아예 이 길로 함께 만주국으로 가기요. 상철을 보내 집식구들을 데려오게 하면 안 되오?”라고 권고했다.
상철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우리가 언제 일본사람들을 노엽힌 일을 하였소? 사돈어른의 유골을 모셔다주었는데 무슨 죄가 있단 말이요? 부모자식들을 고향에 두고 어찌 내 혼자 살겠다고 만주국으로 가겠소? 우린 될 수 있으면 그래도 고향에서 병을 보면서 살겠소.”
최구장은 더는 권고하지 못하고 근심스레 말했다.
“내 조카랑 말을 가지고 왔으니 아버지 유골을 말 잔등에 실어가도 되오. 이젠 사돈어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오.”
상철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우린 사돈들을 더 바래지 못하고 돌아가겠소.”
진달래 중대장은 두 유격대원에게 상철과 형내를 고향에까지 호송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백승만의 뚱뚱한 첩과 얄팍한 제수를 한바탕 훈계하고 놓아주었다.
진달래는 두 유격대원과 함께 최구장 등을 호송하면서 북쪽을 바라고 밤도와 떠났다. 그녀는 자기 말에 곱단이라고 부르는 양태머리처녀애를 태워가지고 떨꺼덕떨꺼덕 북으로 뛰어갔다.

                     6. 추포
 

        연속 유격대에 골탕을 먹은 늙다리 끼무라 국장은 앓아 눕고 말았다. 운주동에서도 유격대 습격을 받아 응삼을 잃었고 마천령에서는 서대문형무소로 반일분자들을 압송하다가 유격대 습격을 받고 빼앗겼다. 이번에는 신설동 뒷산 기슭에서 유격대에게 습격당해 한길수 대대장을 비롯한 졸개를 여섯이나 잃고 말았다. 그 번 유격대의 매복습격을 받아 그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번했던 것이다. 요행 한길수가 목을 매워 끌려가는 새에 매복 권에서 빠져나와 도망쳤으니 말이지 늘그막에 천당으로 갈 번했던 것이다.
일본 헌병대병원의 새하얀 병상에 누운 끼무라 국장은 생각할수록 잔등에 소름이 쪽 끼쳤다.
“또 돌팔매유격댄가?!"
그는 최구장 등을 쫓다가 돌멩이가 날아오자 도망쳐 돌아간 일본 놈과 개다리들의 보고를 받고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일본 헌병총대 대장 놈은 헌병대와 자위대에 경성으로부터 두만강가까지 길목을 봉쇄하고 돌팔매유격대를 검거할 것을 명령했다. 특히 돌팔매유격대가 자주 출몰하는 명천과 경성, 회령, 종성, 무산 등 군의 헌병대 대장들에게 유격대를 한해 내에 모조리 나포해야 하며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군법으로 목을 치겠다고 했다.
끼무라 등 헌병대장들은 말을 타고 운주동에 번쩍, 수 백 리나 떨어진 마천령에 번쩍,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일본 놈들을 족치는 최동욱과 진달래가 거느리는 유격대의 그림자도 붙잡지 못했다.
(쳇, 그래 전문 군사학원에서 훈련을 받은 우리 대일본제국의 헌병대가 일개 시골의 계집년이 이끄는 돌멩이유격대도 당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대로 물러설 순 없어. 한길수의 백마를 빼앗아갔으니 백마를 탄 놈만 나포하면 돌팔매유격대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야. 혀를 잡기만 하면 간도사령부거나 관동사령부에 보고해 그 놈들의 장백산 본거지를 소탕해버려야 해. 뭐? 금별장군이라지. 그 괴수부터 나포해야 하는 건데. 에이, 골머리야.”
끼무라 대대장은 주먹으로 이마를 툭툭 쳤다.
“옳아, 먼저 관준 조손 3대를 쥐어짜면 뭔가 필시 나올 거야.”
이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곱살하게 생긴 일본 간호사가 들어왔다.
예쁜 간호사의 새하얀 위생복 밑으로 드러난 하얀 우유빛 다리를 보자 끼무라는 아랫배로보터 전기에 붙은 듯 찡해오면서 온 몸에 정욕이 끓어 번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는 간호사를 와락 끌어안았다.
“대장님, 왜 이래요? 이젠 건강이 많이 회복됐는가 봐요.”
“너 대장님을 위안해주면 안 돼?”
“대장님, 이러지 마세요. 이러면 제가 어떻게 대장님의 병을 치료해드려요? 이러지 말고 위안부나 기생집에 가 예쁜 기생들을 찾으세요.”
“그래?”
끼무라는 간호사를 스르르 놓으면서 기생 생각을 하자 온몸이 조금 흥분되는 감을 느꼈다.
그러나 인차 도로 자기를 욕질했다.
(그까짓 돌팔매유격대와는 꼼짝하지도 못하면서 야들야들한 기생들과 큰 소릴 쳐? 쳇, 난 군인이야. 그 놈의 돌팔매유격대를 붙잡지 못하고선 기생방에 안 갈 테야! 음.)
끼무라 대장은 이불을 활 차버리면서 벌떡 일어났다.
“이리 급히 기생집에 가나요? 주사나 맞고 가요.”
“그만 둬!”
끼무라 대장은 간호사를 밀쳐버리고 환자복을 활활 벗어버렸다.
그는 군복을 척 갈아입더니 권총과 군도를 허리에 차고 병실 문을 박차고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뒤에서 간호사가 눈이 똥그래 놀란 표정을 짓다가 코를 싸쥐고 캐득거렸다.
"까르르, 깔깔깔, 캐득캐득."
헌병대사무실에 돌아간 끼무라 대장은 수하들을 몽땅 불러 모았다. 사무 상에 위엄 있게 마주 앉은 끼무라가 수하들을 둘러보니 맨 무능한 밥통들 밖에 눈에 뜨이지 않았다.
“가메다!”
“하이(옛)!”
끼무라 대장은 벌떡 일어나서 가메다 앞으로 씨엉씨엉 걸어가더니 귀쌈을 찰싹, 찰싹 갈겼다.
가메다는 두 발을 착 붙이면서 “하이(옛)!”하고 군례를 붙이였다.
“무능한 놈! 신설동 뒷산 기슭 길에서 돌멩이가 몇 개 날아오니 유격대라고 도망쳐? 운주하에서는 탄약상자를 메고 강을 건넌 유격대 놈을 왜 놓쳐 버렸어? 빠가요로(멍청한 놈)!”
끼무라 대장은 발을 탕 구르면서 호통 쳤다.
“사흘 내에 유격대 한 놈이라도 잡지 못해 봐. 네 놈의 배를 군도로 갈라놓겠어. 당장 신설동의 관준을 잡아와!”
“하이(옛)!”
가메다가 황급히 밖에 뛰어나가 울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졸개들을 데리고 말을 타고 황급히 신설동으로 덮쳐갔다.
끼무라 대장은 눈길을 야마모도 소장에게로 돌렸다.
“지금 유격대는 수림속이거나 령 길을 타고 출몰하고 있네. 자넨 삼림경찰들을 거느리고 운주동과 신설동, 영월동, 신흥동, 운주동과 가마골 일대의 수림과 령 길을 몽땅 봉쇄하게!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말이야?! 알았어?!
"하이!"
"이제 그 곳에서 유격대가 출몰하는 거 놓치는 날엔 네 놈부터 군법에 의해 목을 칠줄 알아!”
야마모도 소장은 십여 년 전만 해도 다 같은 소장이었지만 지금은 헌병대장과 소장이란 엄연한 급별 차이가 있고 당상급인지라 용빼는 수가 없었다.
“왜 꾸물거리면서 대답이 없쏘까?”
야마모도 소장은 마지못해 느릿느릿 “예.” 하고 대답했다.
좀 지나 이런 말꼬리를 달았다.
“끼무라 대대장, 전번 신설동 수림속 전투를 잊었소? 대대장네 헌병대와 우리 삼림파출소 경찰에 한길수 대대장의 자위대까지 합세해 포위공격해서도 유격대를 한 놈도 붙잡지 못했지 않았소? 한길수 대대장마저 유격대의 돌멩이에 맞아 처참하게 죽었잖소? 그런데 우리 삼림파출소 경찰들로만 신출귀몰하는 유격대를 나포하라는 건 너무 무리한 것 같소.”
끼무라 대대장은 사무 상을 탕 쳤다.
“저런 멍청한 놈을 봤나? 다 당신같이 무능한자들이 소장자리를 차지했기에 그까짓 돌팔매유격대를 번마다 놓친단 말이야!”
끼무라 대대장은 일어나 야마모도소장을 교활한 눈길로 보면서 간사한 웃음을 지었다.
“자넨, 잊었나? 유격대 손에 처참하게 죽은 형님을.”
야마모도 소장은 축 쳐졌던 어깨를 들먹이더니 눈에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어떤가? 할만 한가?”
“하이, 내 손으로 그 놈 돌팔매유격대를 붙잡아 칼탕 치지 않고선 돌아오지 않겠소이다! 한 대대장 백마를 빼앗아 타고 달아 난만큼 백마를 찾는 날엔 유격대 꼬리를 밟을 수 있소이다.”
“참 좋아. 항상 저렇게 머리를 써야 돼. 꼭 이 명천에서 유격대 씨를 없애치우잔 말이야. 그래야 우린 살 길이 있는 거야. 군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
“하이!”
야마모도 소장도 군례를 척 붙이고 문 밖으로 나가 헌병대 울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졸개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졸개들 속에는 조선 친일구 경찰 허꺽쇠를 내놓고도 친일특무 똘만이도 있었다.
       똘만은 함흥촌 동쪽 늙은 비술나무 부근에서 밤중에 기준을 우연히 만나 붙잡아가다가 유격대 기습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때 기준이 권총을 빼앗아 대갈통을 연신 까는 바람에 똘만은 하마트면 죽을 번했다. 그는 정신 잃고 피를 줄줄 흘리며 쓰러졌댔다. 그런데 유격대가 기습하고 수림 속으로 사라진 후 졸개들이 되돌아와 숨이 가물거리는 그를  업어갔던 것이다. 똘만은 용정 일본군병원에서 반년이나  치료받고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일본 놈들은 몸값이 꽤나 높은 특무라고 똘만을 서울 일본군 병원에 보내 치료받게 하였다.  그리하여 일년 후에야 똘만은 겨우 살아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 놈은 육체는 살았지만 기억력이 형편없이 떨어져 기준을 붙잡은 일, 지어 기준한테 맞아 죽을번 한 것마저 아리숭해했다.
       끼무라가 병완 부자 행방을 물었을 때 함흥촌 부근에서 발견한 것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끼무라는 페물이 된 똘만을 잠시 간도에 보내지 않고 업동 헌병대에서 개처럼 부려먹었다.
      가메다 경찰은 똘만과 허꺽쇠 등 조선 졸개들을 끌고 신설동에 있는 신설집 관준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그들이 삽작 문안에 쓸어 들어갈 때 관준이 마루에까지 나와 쏘아보면서 서있었다.
“잡아 족쳐!”
관준은 졸개들에게 끌리어 마루에서 내려가면서 욕설을 퍼질렀다.
“아니, 이 놈들아, 왜 이래?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래?”
가메다는 볼의 털 한 모숨을 슬슬 만지면서 실눈으로 관준을 노려보았다.
허꺽쇠란 경찰 놈이 꺽꺽거리면서 지껄여댔다.
“어, 김, 김영감, 의사, 의사인척하면서 장백산유격대, 유격대하구 내통하였지? 탄백해!”
관준은 바 줄에 양팔을 뒤로 비틀리어 묶이면서도 허리를 펴려고 애쓰면서 고함쳤다.
“이게 무슨 망발이요? 난 앓는 사람을 치료했지 유격대란 말은 듣다 첫소리요.”
이때 부실한 상철의 아낙네가 문 밖으로 나오면서 혀를 끌끌 찼다.
“아이고, 시아버님, 내 뭐랬습둥? 그 최구장을 묻어 다니지 말라는데두. 쯧쯧쯧, 최구장네 유골을 싣고 가라더니 꼴 보기 좋게 됐습구마.”
경학이가 엄마를 쏘아보았다.
“이 부실한 엄마를 봐라. 아버지를 잡아가라는 게요? 아무 말이나 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오.”
경학은 참다못해 자기 엄마를 마구 부엌으로 떠밀어 들여보냈다. 형내의 아내는 문설주를 짚고 밖을 내다보면서 그저 눈물만 속절없이 흘리다가 돌아서면서 동전으로 눈 굽을 찍었다.
이때 가메다 놈은 경학을 가리키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저 놈 새끼를 잡아라! 저 놈도 전번에 유격대 유골을 실은 수레를 따라 갔다. 돌멩이질을 한 유격대와 내통한 적이 있어.”
졸개들인 허꺽쇠와 똘만이 부엌 문 어귀에 있는 경학에게로 덮쳐들었다.
경학은 울상을 지으면서 몸부림쳤다.
“아니, 이걸 놓소. 내 무슨 죄 있소? 남의 면례하는 걸 도와 유골수레를 몰았는데도 죄요?”
“잔말 말고 헌병대로 가자! 네 형과 애비는 어디로 갔어?”
“우리 아버지와 형님이 무슨 죄 있다고 이러오?”
경학이가 변명하려고 해도 가메다는 점점 더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 날 네놈들이 분명 수레를 몰고 나를 유인했어. 그 바람에 난 산에 매복해있던 유격대 놈들의 돌멩이에 맞아 하마터면 죽을 번했다! 끌어가!”
졸개들은 관준과 경학을 마구 묶은 채 밀고 닥치면서 삽작문을 나섰다.
경학은 근형이 수림 속에서 돌팔매질을 한 걸 가지고 돌팔매질을 한 유격대라고 떠들어대는 꼴이 너무나도 가소로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입술을 깨물며 내막을 밝히지 않았다.
이때 신설집에서 아우성소리가 나자 마을사람들이 모여와 억울하다고 혀끝을 쯧쯧 찼다.
가메다는 허꺾쇠와 똘만이 등 졸개들과 함께 관준과 경학을 끌고 개를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면서 명천을 바라고 휭 하고 떠나버렸다. 뒤에서는 관준의 노친과 부실한 상철의 아내가 아우성쳤다.
오후에야 가메다 일행은 관준과 경학을 끌고 헌병대 대문 안에 들어섰다.
끼무라 대장은 사무실에서 시퍼런 군도를 뽑아들고 살기어린 가슴츠레한 눈길로 칼날을 훑어보면서 관준의 일가를 어떻게 심문할 것인가부터 못된 궁리하고 있었다.
“보고! 관준과 손자 녀석을 잡아왔습니다.”
가메다가 사무실에 들어와 널 바닥이 다 울리게 발뒤축을 척 붙이면서 군례를 올리며 보고했다.
끼무라 대장은 군도를 칼집에 척 박아 넣고 몸을 홱 돌렸다.
“그래 유골을 싣고 간자들은 어쨌는가?”
가메다는 털 한 모숨이 날아날듯이 숨을 몰아쉬고 나서 가슴을 쑥 내밀며 대답했다.
“그자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디다. 아마 아직 돌아온 것 같지 않습니다. 이제 돌아만 오면 당장 나포해오겠습니다.”
“요로씨이(좋아), 그 놈들을 혹독하게 족쳐 돌멩이유격대 향방을 알아내게.”
“하잇(옛)!”
가메다는 군례를 척 붙이고 나갔다.
그는 씩씩거리면서 지하에 있는 고문실로 들어갔다. 허꺽쇠와 똘만이가 한창 관준과 형내의 웃통을 벗기고 심문대 가름대에 두 팔을 머리 위로 쳐들어 단단히 비끌어 매고 있었다.
가메다는 먼저 가죽채찍을 골라 쥐더니 다짜고짜 관준의 가슴을 사정없이 쨩, 쨩 후려쳤다.
“말해! 돌팔매유격대가 어데 갔어?”
관준은 신음소리를 내더니 간신히 머리를 쳐들었다.
“모르오.”
“네 아들과 손자들이 유격대와 내통하지 않았으면 산에서 돌멩이가 날아왔겠어?”
그때 경학이가 머리를 쳐들고 어망간에
“그건 유격대가 아니라 …” 하다가 입술을 깨물더니 말끝을 삼켜버리었다.
맞은편에서 관준이가 “어험.”하고 건 가래를 뗐다.
제꺽 눈치 챈 경학은 입에 빗장을 꼭 채워버렸다.
제꺽 눈치 챈 가메다는 허꺾쇠에게 눈짓 했다.
허꺽쇠와 똘만이 경학한테 늑대처럼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래, 네 놈이 그날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제일 잘 알겠구나. 산 위에서 돌멩이를 뿌린 자들이 유격대가 아니면 누구냐?”
“모르오.”
똘만은 만두 낯에 박힌 빈대 눈을 때록거리면서 채찍질했다.
“얼른 말하지 못해? 죽기 전에!”
경학은 아파 눈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리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난 그저 최구장 사돈어른이 조상의 유골을 간도에 가져가는 걸 도와주었을 뿐이요.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오?”
가메다는 경학이 어린것을 보고 돌파구로 삼으려고 들었다.
“묻는 말만 사실대로 대답하면 넌 어리기에 내보내겠다. 그래 그 날 산에서 돌멩이를 뿌린 게 누구냐?”
“유격대가 아니란데.”
가메다는 채찍으로 경학의 턱을 쳐들면서 턱밑에 다가들며 언성을 낮춰 물었다.
“그래 누구냐?”
“최구장네 맏손자입꾸마. 유격대도 아닌데 그저 겁이 나서 도망쳐 가지고.”
그 말에 허꺽쇠와 똘만은 적이 놀랍고도 우스워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가메다는 뒤로 물러서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 분명 유격대가 돌을 뿌렸어.”
관준이 또다시 건 가래를 떼자 경학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망한 털 한모숨이 가메다는 채찍을 놓고 멍하니 서서 관준과 경학을 쳐다보면서 착잡한 궁리를 하고 있었다.
(최구장의 맏손자 근형이란 녀석을 가지고 유격대라고 거짓보고 할까? 진상이 밝혀지는 날에는 군법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는 자기 배를 내려다보았다.
(끼무라 대장은 유격대를 붙잡지 못하면 군법에 따라 배를 갈라버리겠다고 했다. 아니야, 이 놈들을 쥐어짜선 아무것도 얻어낼 게 없어. 시간이 없어. 빨리 최구장과 근형을 붙잡아야 돌팔매유격대의 꼬리를 밟을 수 있다.)
털 한 모숨은 몸을 홱 돌리면서 똘만을 날카로운 눈길로 쏘아보면서 명령했다.
“허꺽쇠에게 이 놈들을 맡기고 넌 날 따라 최구장 네를 붙잡으러 가자!”
“옛!”
가메다와 똘만은 채찍소리와 신음소리가 어울려 울리는 고문실에서 황급히 나왔다.
그들은 그 바람으로 한개 헌병 기병 소분대를 끌고 경성 쪽을 바라고 성난 사자들처럼 덮쳐갔다.
그들은 한길수의 백마를 타고 달아난 돌멩이유격대정황을 알아보려고 백승만이네 여인숙에 들리었다. 그런데 여인숙 마당에 들어가자마자 가메다네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곱사등이 백승만의 시체가 그때까지도 집 마당에 쓰러져있었다. 돌멩이에 맞아 피투성이로 된 낯은 팅팅 부어서 딱 잡아놓은 여윈 돼지대가리 같았다.
말을 탄 일본 헌병들이 들이닥치자 백승만의 여편네랑 기절초풍했다.
똘만이가 말에서 뛰어내려 썩 나서면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백승만의 여편네에게 질문했다.
“고약한 놈들, 이건 누구의 시첸데 아직도 치우지 않느냐? 황군이 왔는데 썩은 냄새를 피우면서.”
백승만의 처는 똘만을 핼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사실, 우리 집 영감인데요. 며칠 전에 유격대에게 맞아 죽었어요. 며칠 전에 산에 장례를 지냈는데 마을의 고약한 놈들이 시체를 파내서 마당에 되가져다 버렸어요.”
그간 조선어를 전문 배워서 진작 알아들은 가메다는 머리를 끄덕거리었다. 뒤이어 그는 말에서 내려 채찍으로 승만의 대가리를 이리저리 건드려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네 영감이 와루이고도(나쁜 짓)을 많이 했소다. 마을 사람들이 이러는 거야.”
가메다의 말에 승만의 로친은 머리를 땅바닥에 떨어뜨릴 지경이었다.
똘만이 물었다.
“유격대들이 어느 쪽으로 갔느냐?”
승만의 처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가메다가 피 묻은 채찍으로 승만의 여편네를 툭툭 건드리면서 지껄였다.
“우리 황군은 너희 영감 원수를 갚아 주겠소. 말이 해. 유격대 어디로 갔어?”
유격대에게 경고를 받은 적이 있는 승만의 여편네는 감히 혀끝을 놀리지 못했다.
가메다는 턱에 난 털 한 모숨이를 쓱쓱 매만지다가 서슬 푸른 군도를 쑥 뽑아 승만의 여편네의 목에 척 들이대면서 고함쳤다.
“말하지 않으면 죽어, 죽었쏘까! 유격대 어디로 갔어? 엉?!”
승만의 여편네는 그만 풀썩 물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기 경성 쪽으로 달아났는데요. 두만강 변으로 갈 거예요."
"유격대 몇 사람인가?"
가메다의 호령에 여편네는 흘끔 도적눈을 치뜨다가 내리깔며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서넛 밖에 안됩니다. 우리 영감은 어떤 계집애가 쏜 총에 죽었수다. 그 계집애 우두머린 거 같았소이다."
"쏘까? 전번에도 계집이 지휘했어. 그 유격대 계집년을 추포해야 해."
가메다는 군도를 칼집에 도로 척 꽂아 넣고 말에 오르면서 을러멨다.
“이후에도 그 놈 돌팔매유격대들이 나타나면 인차 황군에게 고발해라. 그러지 않으면 목이 날아날 줄 알아라.”
한바탕 을러메 놓고 가메다는 똘만이랑 끌고 집 대문을 나가자마자 동북쪽을 바라고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덮쳐갔다.
그들은 말을 타고 한참 달려가다가 경성군 주을면의 한 산기슭에서 웬 괴한이 팔뚝만한 나무를 두 손으로 잡고 어깨로 떠밀어서 툭툭 끊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저런 괴물도 있단 말인가?”
가메다는 말을 달리다가 말고 그 괴한한테로 말을 탄 채 달려갔다.
“어이, 당신 누구요?”
그 괴한은 힐끔 가메다의 낯을 쳐다볼 뿐 의연히 나무를 어깨로 떠밀어 툭 끊을 뿐이었다.
“이 놈, 묻는 말이 왜 대답 안 했소까?”
“내가 누구든 당신들과 무슨 상관이요?”
똘만이 나서면서 말했다.
“네 놈이 언감 누구 앞에서 쌍스럽게 말대답이야?”
가메다가 채찍을 들어 똘만을 제지시켰다.
그러자 똘만은 어조를 좀 부드럽게 고쳤다.
“이보. 힘장사, 이분은 우리 황군 헌병대 소대장이란 말이요. 댁은 누구요?”
조금 누그러든 그 말에 그 괴한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난 이 마을에 사는 리무삼이요.”
사실 원삼의 동생 무삼은 어려운대로 고향을 지키려고 춘삼이, 인삼이, 원삼이 세 형님을 따라 간도로 가지 않고 남았던 것이다.
“리무삼? 음, 참 대단한 힘장사구먼.”
가메다는 리무삼을 손아귀에 넣고 싶었다.
“힘장사, 여기 산골에 묻혀서 고생하지 말고 우리 자위대에 가서 일하지 않겠소? 황금을 푼푼히 줄게.”
리무삼은 허리를 펴면서 가메다를 쳐다보다가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흔들었다.
“왜?”
“난 여기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게 제일 편안하오. 총을 메고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면서 살기 싫단 말이요?”
가메다는 아주 실망스러워 격장법을 피웠다.
“당신 사내대장부 옳소까?"
그는 새끼손가락을 내들어 아래로 내리 찌르는 시늉을 했다.
"당신 이거야, 쫄장부!”
리무삼은 가메다를 힐끔 곁눈질하더니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똘만은 리무삼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심기가 곧은 자이기에 끌어당겨오기 힘들 것 같았던 것이다.
“저, 한 가지 물어보기요. 며칠 전에 여기로 유골궤짝을 멘 사람을 보지 못했소?”
똘만의 물음에 리무삼은 소잔등 같은 잔등이 흠칫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며칠 전에 자기 집에서 묵어간 최구장 네를 묻는다는 것을 번연히 알았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못 봤소.”
가메다는 교활한 눈빛을 번쩍이더니 한걸음 다가서면서 물었다.
“그럼 백마를 탄자가 여기로 지나가는 건 보지 못했는가?”
그것은 며칠 전에 백마를 타고 자기 집에 들린 승철이란 자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무삼은 경성 일대에서 소문 높은 날강도 삼형제 백승만, 백승핵, 백승철을 귀못이 박히게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승철은 며칠전에 그의 마을에 나타나 무삼을 보고 처음에는 자기가 날강도들에게 쫓기어 피신해 다닌다면서 먹을 걸 달라고 가련하게 사정했다. 그러나 하루도 아니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사흘이 멀다하게 찾아왔다. 나중에 승철은 실상 자기는 유격대에게 쫓기어 달아났다고 이실직고했다.
한참 궁리하다가 무삼은 승철과 같은 날강도는 경성 일대에서 없어져야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을 게 아닌가고 생각됐다.
“봤소.”
“어데 있소까?”
“며칠 전에 우리 집에 왔다가 먹을 걸 가지고 밀림 속으로 들어갔소.”
“좋아, 참 좋아.”
가메다는 똘만에게 눈짓하더니 꽥 고함쳤다.
“이 놈을 묶어라!”
뜻밖에 결박된 리무삼은 어안이 벙벙해 고함쳤다.
“왜 이럽니까? 묻는 말을 제대로 대답해도 죕니까? 이건 너무 억울하오.”
그러자 가메다는 살기찬 낯에 냉소를 지으면서 코 수염을 옴짝거리면서 지껄였다.
“하하하, 이 시골뜨기야, 네놈은 분명 최구장을 알고 있어."
그 놈은 뒤를 돌아보면서 팔을 홱 휘둘렀다.
"이 놈 집으로 가자. 이 놈의 집에 매복해있으면 최구장과 백마를 탄 돌팔매유격대 꼭 나타날 거야!”
가메다 일행은 리무삼을 꽁꽁 바줄로 묶어 앞세우고 산기슭아래 마을로 향했다.
리무삼이 일본헌병들에게 꽁꽁 묶이워 산에서 끌리어내려 오는 것을 보고 무삼의 아내와 자식들은 놀랐다.
“아니, 나무하러 간 사람에게 무슨 죄 있다고 이러오?”
키가 작달막한 무삼의 아내가 도도거리었다.
똘만이가 나서면서 무삼의 아내를 활 밀어 재끼고 집안으로 늑대처럼 어슬렁어슬렁 들어갔다.
“네 놈 집 식구들은 돌멩이질을 하는 유격대와 내통한 혐의를 받고 있어. 한 놈도 꼼짝 말고 집안에 있어!”
무삼의 일가식솔들은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 그들은 몽땅 집안에 갇히어 밖으로 얼씬하지도 못하게 됐다. 혹시 뒷간으로 가도 일본 헌병 놈이 따라가 뒷간을 지켰다.
교활한 가메다 놈은 자기는 고방에 들어가 몇몇 헌병들과 함께 편히 자면서 몇몇 헌병들이 교대로 집안과 수림 속에서 보초 서게 했다. 일단 마을 사람들이라도 이 집에 얼씬거리기만 하면 다 잡아가둬 아무도 자기들이 이 집안에 있는 동정을 알지 못하게 했다.
사흘이 지났다.
백승철이 백마를 타고 이 집 마당에 나타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살기 찬 이 집안에 일본헌병들이 한개 분대나 들어있는 줄도 모르고 승철은 거들먹거리면서 집안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게, 무삼이, 먹을 게 다 떨어졌네. 주먹밥을 해놓았는가?”
그자가 지껄이면서 마당에 들어섰을 때다. 몇몇 일본헌병들이 승냥이가 양을 덮치듯이 일제히 덮쳐나가 백마를 탄 승철을 나포해 말 잔등에서 끌어 내리었다.
가메다와 똘만도 뒤따라 뛰어나갔다.
똘만은 백마를 보자 말대가리를 어루만지면서 지껄였다.
“허허허, 사랑스런 백마야, 이 백마는 분명 한길수대대장의 백마입니다.”
“요로씨이(좋아), 한 대장 백마가 끝내 우리 손에 돌아왔구먼.”
가메다는 버릇처럼 턱의 털을 슬슬 어루만지면서 꽁꽁 묶인 채 꿇어앉은 난쟁이 승철의 턱을 채찍으로 쳐들었다.
“이 놈, 유격대 놈아, 네 놈이 담대하기로 우리 한 대장을 살해하고도 시퍼런 백마까지 척 타고 돌아다녀?”
승철이 가메다를 보고 고함쳤다.
“뭐? 유격대라니요? 난 유격대 놈들에게 형님 잃고 겨우 목숨을 건져가지고 이렇게 수림속에서 근근득식하면서 피난살이 하는뎁쇼.뭘? 유격대?! 이거 억울해 어떻게 살아랍둥?”
가메다와 똘만은 승철을 들여다보았다.
“그래 네놈이 누, 누군데. 유격대와 그런 원, 원수를 졌다고 그, 그래?”
가메다는 급하면 말을 먹는 모병이 또 도졌다.
“난 백승철이요. 웅진의 백승만의 막내동생이란 말이오.”
“백승만?”
순간 가메다는 눈깔의 흰자위마저 번져지게 희번뜩거리며 승철의 아래위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백승철은 진달래가 이끈 유격대에 당하던 전후과정을 쭉 이야기했다.
“그래, 유격대를 이끈 놈이 확실히 계집이었단 말인가?”
“예, 피뜩 그자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니 그 계집 대장은 진달래라고 부르는 거 같았습구마.”
“음, 진달래 대장? 그년을 꼭 잡아야 해.”
가메다는 백승철을 풀어주라고 한 후 가을바람에 우수수 울부짖는 산을 멀리 바라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또 헛수고를 했어.)
가메다는 몸을 홱 돌리더니 교활한 눈으로 무삼을 쏘아보더니 “저 놈도 풀어줘라.”하고 명령했다.
똘만은 의아해 가메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가메다는 이렇게 지껄였다.
“이 놈은 우직한 놈이야. 금방 백마를 탄 승철이 왔다간걸 고하지 않았던가?”
백승철은 무삼을 원망어린 눈길로 힐끔 쳐다보았다.
“알고 보니 영감이 날 물어 먹었구먼.”
그 말에 무삼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황군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자넨 한뉘 날강도질을 해먹는 자가 아닌가? 언제 자네한테 당할지 누가 아는가? 일찌감치 황군에게 바치는 게 낫지.”
그들 둘이 말싸움을 하는 것을 보던 똘만이 신경질을 썼다.
“됐네, 됐어. 이후에 둘 다 우리 황군을 위해 일해 주게나.”
무삼은 묵묵부답 하였으나 백승철은 만면춘풍이었다.
“대장님, 권총 줍소. 우리 형님들을 살해하고 우리 집안 여인숙을 망하게 만든 유격대 놈들을 몽땅 잡겠습구마.”
가메다가 피씩 코웃음을 치면서 말 잔등에 올라탔다.
“저 놈을 묶어가지고 가자. 저 놈이 우리 황군을 우습게 보는구나. 우리가 잡지 못하는 돌팔매유격대를 저 놈이 혼자 잡아?”
뒤결박을 당하면서 승철은 억울하다고 고함쳤다.
“황군을 돕겠다는데 무슨 죄라고 이럽니까? 당신들 꼭 후회할 겁구마.”
그러건 말건 가메다 일행은 백승철을 결박해가지고 동북쪽을 바라고 말을 놓아 산길을 달려갔다. 그 놈들의 뒤로 먼지가 새뽀얗게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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