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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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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2)
2016년 05월 24일 15시 17분  조회:2092  추천:0  작성자: 김장혁



                         
                   4. 험난한 고향
      1938년 찜통더위가 대지를 갑갑하게 품은 무더운 여름이다. 
      어느 하루 죽순 고모가 명옥을 찾아왔다.
      명옥은 가마 목을 걸레로 닦다가 고모를 반겨 맞았다.
      죽순은 구들에 올라와 가마 목에 앉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내 조선에 갔을 때 아버지가 너희들을 영 보고 싶어하더라. 이번에 나와 함께 가보자.”
      뜻밖에 상순이 가시고모의 말에 선뜻이 대답했다.
     “여보, 고모와 함께 고향에 나가보기요. 고향에 퍽 가고프오.”
     상순은 정말 고향에 가보고 싶었다. 물론 조선에서 일곱 살 때 중국 만주국에 건너왔지만 눈만 감으면 고향의 산천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이전에 홀락 벗고 목욕하고 모래불에 물도랑을 파면서 놀던 운주강도 보고 싶고 남대성하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고향 마을을 지척에 두고 지나가면서도 감히 들리어 보지 못했다. 또 유격대의 쌀이 긴박한지라 들릴 시간도 없어 약담배짐을 지고 박달령을 넘어 만주 허허벌판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명옥은 신랑이 말하자 인차 “나도 열여덟 살에 여기 들어온 후 계속 할머니와 작은고모 생각이 납데.”라고 했다.
죽순은 “그럼 채비를 해라. 내 차비를 대줄게 뒷근심은 말고 가자.”라고 말하며 고무신을 신고 집에서 나갔다.
그때 세 살 난 영자가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종알거렸다.
“아빠, 나도 가겠소.”
“영자야, 엄마와 아빠 인차 돌아온다. 그새 고모랑 할머니랑 함께 맘마 많이 먹으면서 있어. 응?”
영자는 도리머리를 흔들며 왕왕 대성통곡 쳤다.
“싫다, 싫어. 응-응-”
명옥은 상순의 품에서 영자를 안아다가 손등으로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주면서 다독여주었다.
“그래, 그래. 우리 맏딸을 데리고 고향에 가야지. 이 다음에 크면 엄마가 꼭 영자를 고향에 시집보내주마.”
영자는 엄마의 얼굴을 애고사리 손으로 매만지면서 흑흑 흐느꼈다. 명옥은 상순을 건너다보며 눈을 찔끔 감아 보였다.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밖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가 울더니 장대비가 쫙쫙 쏟아졌다.
상순은 밀짚모자를 쓰고 마을에 나가 지 촌장을 찾아가 고향에 갔다 오겠다고 청가를 맡았다. 그 어지러운 세월에 일본 놈들은 조선 사람을 2등공민이라고 하면서도 조선에 두고 온 고향에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했다. 일본 놈들은 이른바 집단부락을 만들어놓고 마을 둘레를 서너길씩 되는 장대기로 바자를 세워놓고 네귀에 보초까지 세워놓았다. 놈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백성들과 유격대를 격리시키고 유격대에 쌀이랑 생활필수품을 날라가지 못하게 통제하였던 것이다. 어디로 가려면 괴뢰촌장이거나 일본 놈들의 분주소나 파출소에까지 가서 출국신고를 한 후에야 내 보냈다. 심지어 나무하러 가도 지학사 촌장한테 청가를 맡고 갔다가 와선 몸수색과 짐수색을 받아야 했다. 그간 상순과 충국은 조선에 나간 사실을 지학사 촌장에게 알리지도 않고 바자에 구멍을 내고 드나들었던 것이다. 지촌장한테 들키우면 약 캐러 갔다든지, 병 보이러 갔다든지, 장 보러 갔다든지 두루두루 왕청 같은데 둘러 대군 했다. 지학사는 걸 하나도 눈치채지 못한건 아니지만 상순은 겁나고 충국은 자기 외가집 조카인지라 한쪽 눈은 뜨고 한쪽 눈은 감고 모르는척 했던 것이다.
며칠 후 억수로 쏟아지던 장맛비가 뚝 끊고 맑은 하늘에 해가 째듯이 떴다. 소서구 오두막마을에도 따스한 아침해살이 비췄다.
상순과 명옥은 일을 하러 가는척하면서 호미를 들고 문밖에 나섰다. 영자는 열두 살 밖에 안 되는 고모 금옥의 잔등에 업혀 아빠와 엄마를 빤히 쳐다보았다.
“영자야, 아빠와 엄마가 일하러 먼데 갔다가 인차 온다. 고모와 할머니 말을 잘 들어라. 응?”
영자는 머리를 끄덕이다가 고사리 손을 내밀면서 흑흑 흐느껴 울었다. 상순은 우는 영자를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영자야, 아빠 낯에 뽀뽀.”
영자는 울음을 그치고 아빠의 얼굴에 뽀뽀를 했다. 명옥이 얼굴을 들이대자 엄마의 낯에도 뽀뽀를 했다.
상순과 명옥은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죽순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들은 부르하통하 통나무다리를 건너 진수해 시내에 들어가 곧추 남쪽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기차역으로 나갔다. 일본 놈들이 게다짝을 신고 딸까닥딸까닥 자그마한 역 대합실을 휩쓸었다. 요염하게 치장한 일본 년들이 비단화복을 입고 엉덩이를 빼뚤거리면서 종종 걸음 쳐 개찰구 쪽으로 나가고 있었다. 온 세상은 모두 일본 놈들의 세상으로 된 듯 했다.
그들이 기차표를 떼서 들고 개찰구로 나가 홈에 들어섰을 때였다. 일본 헌병들과 기생 년들이 죽 늘어서서 기차가 달려오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기차가 뽕- 고동을 울리면서 서쪽으로부터 천천히 들어섰다.
기차가 홈에 들어서자 일본 기생 년들이 고약딱지 기대를 흔들면서 “빤짜이!(만세!)” “빤짜이!(만세!)” 하고 외쳤다.
기차가 멈춰 섰다. 차문이 쭉 열리더니 검은 테 안경을 건 일본 장교가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군도자루를 부여잡고 거들먹거리면서 기차에서 내렸다. 일본 기생 년들이 앞장서 꽃다발을 장교의 목에 걸어주었다. 일본 헌병들이 경례를 착 붙이고 송장처럼 까딱하지 않고 못 박힌 듯이 서있었다. 일본 장교는 안경 밑의 눈깔을 번뜩거리더니 하얀 장갑을 낀 왼손을 들어 답례하면서 개찰구 쪽으로 나갔다.
상순은 그 장교 놈이 퍽 눈에 익었다.
“아니, 저 놈은 한길수의 아들 한철주 놈이 아닌가? 정말 동만으로 나왔어?”
상순은 그 놈을 힐끔 되돌아보다가 그 놈에게 들키기라도 할까봐 제꺽 머리를 돌렸다.
일본 군 놈들이 기차에서 다 내려가자 일본 사람들과 상순이네가 기차에 올라갔다.
자리를 찾아 앉은 후 죽순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에이, 학준도 영자 못잖게 어찌나 떼를 쓰는지 혼났어.”라고 했다.
기차는 칙 소리와 함께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덜거덕거리면서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죽순은 명옥의 큰고모이자 상순의 8촌 할머니 벌이 돼 인연이 깊었다.
죽순은 석은과 결혼한 날에 우스운 일이 있었다.
첫날밤에 불시에 신방에서 “사람 살려라!” 하고 고함소리 나더니 죽순이 정지로 달려 나왔다.
정지에서 자던 어른들은 모두 깜짝 놀라 등잔불을 켰다.
“웬 일이냐?”
여럿은 모두 잠자리에서 일어나 어리둥절해 새 각시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죽순이 한다는 말은 유치하기로 그지없었다.
“신랑이란 저게 건달이요.”
“어째?”
시어머니 물으니 죽순의 말은 더 웃기는 소리.
“글세 날 마구 만집니다. 내 속옷까지 마구 벗기려고 들지 않겠습둥? 우추사단 말입구마. 어찌 저런 건달과 살겠습둥? 본가 집에 돌아가겠구마.”
그 말에 모두들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어유, 열여덟을 먹고서도 쯧쯧쯧.”
“각시, 신랑 각시 사는 게 원래 그러는 법이요.”
시어미는 며느리애기 귀에 대고 뭐라고 여쭈고 방에 억지로 잔등을 밀어 넣었다.
그는 방에 밀리어 들어가면서도 “세상에 별난 법이 다 있다. 오늘 밤에 다시 그래봐라. 내 막 물어놓겠다.” 하고 두덜거렸다.
그 바람에 석은은 사람들을 웃길까봐 그날 밤에 각시를 더 다치지도 못했다. 그러나 며칠 후 본가집에 갔다가 친정어머니에게서 설득을 받고서야 죽순은 신랑이 하는대로 억지로 수긍했다고 한다.
그들이 탄 기차는 온 하루 밤낮을 달려서야 어두운 밤에 우시장역에 이르렀다.
그런데 고향의 이전 우시장이 아니었다. 역 대합실 꼭대기에는 고약딱지 같은 일본 기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철갑모를 쓴 일본 헌병들이 총칼을 부여잡고 개찰구와 홈에 촘촘이 늘어섰다. 손님들은 포로병들처럼 그자들의 쏘아보는 눈총을 받으면서 개찰구 쪽으로 나가야만 했다.
죽순이네가 개찰구로 나가려는데 일본 헌병이 총창 끝으로 막았다.
“도꼬까라 끼다까?(어데서 왔는가?)”
그러자 죽순이가 “만슈고꾸까라 끼마시다(만주국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일본 헌병이 꽥꽥거리자 헌병 분대장이 다가와 음흉한 눈길로 죽순과 상순이, 명옥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물었다.
“메이센니 끼데 나니오 신다이까?(명천에 와서 뭘 하려고?”
죽순은 일본 말로 줄줄 대답했다.
“교리에 있데 오지상 또 오까상오 미요우(고향에 가서 아빠와 엄마를 보려고요.)”
이번에는 헌병 분대장이 상순의 밀짚모자를 벗겨 땅바닥에 던지면서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어깨를 꽉 쥐여보면서 물었다.
“아나따와 나니오 스루 히도까?(넌 뭘 하는 사람이냐?)”
분명 총이나 어깨에 멨나 어깨를 만져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상순은 시끄러워서 밀짚모자를 주어 쓰고 눈을 부릅뜨며 조선말로 대구했다.
“에이 씨, 제 고향으로 가는데 시끄럽게 무슨 개소리냐?”
그 말귀를 알아들은 일본 헌병 분대장은 상순의 귀쌈을 찰싹 치면서 고함쳤다.
“빠까요로! ‘개소리’? 나니? 빠까모노(멍청이같은 놈! 개소리? 뭣이?) 제길 할!”
상순은 손으로 볼을 만지면서 도끼눈을 부릅뜨고 대들었다.
“고향을 찾아왔는데 무슨 상관이야?”
옆에서 바빠 맞은 죽순이가 옆구리를 치면서 말리였다. 그러나 그때는 늦었다.
일본 헌병은 호각을 불어댔다. 그러자 헌병 대여섯이 달려오더니 분대장이 뭐라고 꽥꽥 고함치자 상순을 붙잡고 초소 쪽으로 끌고 갔다.
명옥은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굴렀다.
“저걸 어쩌오?”
그래도 일본 말도 알고 융통성이 있는 죽순이가 여러 번 고향나들이를 해보았기에 머리가 잘 돌았다. 그는 제꺽 머리에서 은비녀를 뽑아 일본 헌병에게 주면서 양해해달라고 했다.
일본 헌병 분대장은 은비녀를 쥐고 매만지면서 눈을 가슴츠레 뜨고 여겨보더니 입에서 이런 소리가 구렁이처럼 기어 나왔다.
“요로씨이(좋아), 쯔기니 마다 고우 시레바 신데시마우(다음에 또 이랬다간 죽고말아).”
헌병 분대장은 아래 헌병에게 뭐라고 귀속 말을 했다.
이윽고 맞아서 얼굴이 퍼렇게 멍이 든 상순이가 욕지거리를 하면서 초소에서 풀려나왔다. 죽순과 명옥은 상순의 양팔을 끼고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그들은 일본 놈들이 쫓아오기라도 할까봐 뒤를 흘끔흘끔 되돌아보면서 역에서 멀리 달아났다.
한참 달려 역에서 멀리 벗어난 후 명옥은 숨이 차 헐떡거리면서 꾸중했다.
“당신 때문에 고모가 은비녀를 일본 놈에게 줬소.”
그러자 상순은 명옥을 흘겨보면서 “내 뭘 잘못했다고 은비녀까지 줬소?”라고 하더니 한숨을 길게 쉬었다.
(아, 어쩌면 내 고향이 이 지경이 됐는가? 일본 놈들이 뭘 믿고 우리 조선을 다 먹어치우고서도 모자라 만주국에까지 쫓아가서 우리를 못살게 군단 말인가?)
그는 생각할수록 속에서 분통이 터져 참기 어려워 길가에 침만 퉤퉤 뱉었다.
그들은 마른 누룽지를 길가의 내 물에 퍼지워 먹으면서 온 종일 산을 넘고 들을 지나 끝내 어슬녘에야 고향 운주동에 이르렀다.
명옥은 열여덟 살에 고향을 떠났기에 어둠속에서도 고향 집을 인차 찾을 수 있었다.
죽순이 목조 팔간 집 울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소리쳤다.
“엄마! 아버지!”
명옥도 고함쳤다.
“할머니! 할아버지!”
죽순과 명옥은 소리치면서 엎어질 상으로 집안에 달려 들어갔다. 집안에 등잔불이 켜졌다.
뒤이어 집안에서 자그마한 그림자가 나오더니 “아니, 이게 웬 일이냐? 죽순과 명옥이가 오다니? 쯧쯧!”라고 하며 반겨 맞았다.
활발한 죽순은 뒤를 가리키면서 종알거렸다.
“저 뒤에 누가 왔나 보오. 명옥이 신랑도 왔습구마."
그제야 최구장과 성단은 반갑게 마주 나왔다.
“오, 그래, 우리 큰사람 왔구먼. 어서 들어오게나.”
상순은 성큼 앞으로 나가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절을 받읍소.”라고 하면서 태산이 무너지듯이 넓적 엎드려 절을 올렸다.
최구장은 그의 절을 황망히 받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쯧쯧, 급하기도. 집에 들어가 인사해도 늦지 않아. 쯧쯧, 어서 들어가 앉게나.”
“예.”
그제야 상순은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최구장은 등잔불을 빌어 상순의 얼굴과 몸을 두루 살펴보더니 무릎을 탁 쳤다.
“에이, 앞으로 큰일을 할 미남이로구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똑 떼 닮았구나.”
그들이 밤중에 기약 없이 들어서자 고방에서 자던 근형(봉인)과 새 각시 리새단도 깨어나 위방에서 나와 서로 인사했다.
“명옥아, 갈라질 때는 그렇게 싸우면서 갈라졌지만 네가 떠나가니 정말 보고 싶더라.”
근형(봉인)이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자 명옥도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우리 네댓 살에 엄마를 잃고 얼마나 고생하면서 자랐소? 나도 오빠를 두고 혼자 중국에 간 후에 오빠 생각이 자주 나서 혼자 울었소.”
둘은 다 통곡 쳤다.
최구장과 할머니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엄마 잃고 고생스레 자란 오누이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길게 쉬었다.
최구장은 죽순에게서 그간 상순이가 지방의 지주 지학사와 송사놀음을 해서 이긴 이야기도 들었기에 그가 똑똑하고 강한 사내대장부라는것을 알고 있는 터였다. 허나 너무 짝지는 것 같아 좀 근심스러웠다.
그들은 오랜 만에 한자리에 모여 앉아 저녁식사를 하면서 밤중까지 그간 있은 일을 얘기했다.
5. 쑥밭이 고향
이튿날 이른 아침 날씨는 유난히 좋았다. 치마봉과 기운봉 쪽을 내려다보아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비가 올 것 같으면 기운봉 쪽이 시꺼멓게 흐리면서 번개가 산중턱을 치군 하였던 것이다.
근형은 밥도 먹지 않고 초신을 신고 바깥에 나가면서 집안의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내 저 명옥과 매부를 데리고 엄마 산소에 피뜩 갔다가 오겠습꾸마.”
“그래, 산에 갔다가 가마골에 들려 계순을 데려오라.”
최구장은 수염을 슬슬 만지면서 부탁했다.
“예.”
근형은 새단과 함께 명옥과 상순을 데리고 선산으로 떠났다.
한참 후 예전처럼 돌로 토성을 한 성안으로 들어가자 거기에 그간 잘 모신 산소가 나타났다.
근형은 산소에 달려가 꿇어앉더니 “엄마, 명옥과 매부 엄마를 보러 왔습구마.”라고 하며 왕왕 울었다.
명옥도 꿇어앉아 엉엉 울었다.
“엄마, 엄마, 어쩜 우리 오누이를 두고 그렇게 일찍이 돌아갔습둥? 엉엉, 흐흐흑. 엄마- 엉엉.”
그들은 한참이나 선산이 떠나가게 울었다.
상순은 “처남, 그만 우오. 가시엄마에게 인사를 해야겠소.”
그제야 깨달았는지애들처럼 울던 근형과 명옥은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산소 앞에 죽 늘어섰다.
근형은 새단과 함께 먼저 절을 올렸다.
“엄마, 명옥이 신랑을 데리고 와서 인사를 드립구마.”
상순과 명옥이 산소에 큰절을 세 번 씩 세 번 올렸다.
근형은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매부를 바라보고 나서 명옥한테 얼굴을 돌렸다.
“명옥아, 기억나니? 너는 이전에 엄마가 세상 떴을 때 네 살 밖에 안 됐다.”
“양.”
명옥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울면서 말했다.
“그런데 셈이 못 든 난는 숱한 사람이 모였다고 벽 구석에 세워놓은 좁쌀가마니우에서 뚝 뛰어내리고 뚝 뛰어내리곤 했다.”
명옥은 땅을 치면서 점점 더 섧게 울었다.
“아이고, 엄마, 그때 엄마가 세상을 뜬 것도 모르고 이 철부지는 사람이 많이 오니까 좋다고 그렇게 뛰놀았지 않았겠습둥. 엉, 엉. 그때 다섯 살인 오라비는 셈이 들어서 엄마 세상떴다고 엉엉 우는데 말이요. 에이, 내가 철부지였지. 엉엉.”
그들은 한창 울다가 떠나오면서 다 함께 큰절을 아홉 번이나 올리었다.
“엄마, 이 딸이 이후에 오라비네와 함께 또 엄마를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편안히 계십시오.”
명옥은 산성을 떠나면서 자꾸 엄마의 산소를 돌아다보았다.
상순과 명옥은 집으로 돌아가고 근형은 가마골로, 새단은 불붙이에 들려서 명옥 부부와 죽순이 왔다고 알리러 갔다.
상순은 운주동에 돌아가자마자 어려서 놀던 운주강 강가에 가서 세수를 하려고 스적스적 걸어 나갔다.
전날 밤에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전의 고향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이 최구장 어른네 마당이 아주 널찍했고 강냉이와 감자를 심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당이 한 푼도 되나마나 하고 그 손바닥만한 마당마저 곡식이나 남새는 한포기도 볼 수 없었고 적송을 촘촘히 심어놓았다. 십여 년 살이 적송들이 촘촘히 들어앉아 수림을 방불케 하였고 그 속에 듬성듬성 배추와 파가 자라나 있었다.
온 마을을 둘러보니 몽땅 수림 속에 파묻혀있었다.
(허참, 밭에다 곡식을 심지 않고 나무를 심어 팔면 더 잘 살까? 입에 풀칠도 못하면서 나무를 심다니?)
상순은 운주강에 가서 개울물에 대충 세수를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가시할아버지인 최구장에게 물어보았다.
“어째 집 마당에 나무를 심었습니까? 곡식이나 남새를 심지 않고?”
최구장은 한숨을 천정이 날아나게 후- 내쉬었다.
“누가 곡식을 심어먹으면 좋은 줄 몰라? 거 일본 놈들이 제 욕심을 차려서 밭에 곡식을 심지 못하게 하고 나무를 심으라고 강박했지. 자네 할아버지도 그래서 고향을 버리고 만주에 간 거야.”
그 말에 상순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내 고향의 우리 집 자리도 나무가 들어섰겠구먼요.”
최구장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 고향집에 가보겠습니다.”
최구장은 담배 물 주리를 툭툭 재떨이에 털더니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상순을 데리고 바깥에 나섰다.
상순은 최구장을 따라 개울둑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어디라 없이 밭은 보이지 않고 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졌다. 최구장은 집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산을 등지고 적송이 꽉 우거진 곳으로 찾아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이 바로 자네 아버지 기준이가 살던 집 자릴세.”
그 말에 상순은 적송 밭 속으로 걸어 다니면서 혹시 아버지랑 엄마랑 살던 흔적이라도 있겠는가고 찾아보았다. 그러나 도자기그릇 하나 없이 반반했다. 한참 눈 빗질해 겨우 나무 밭 속 평평한 곳에 재가 섞인 흙무지가 있었다. 그 흙무지에 쑥이 한 발씩이나 자라 집터라기보다 쓸쓸한 둔덕을 방불케 했다.
(아, 이것이 바로 내 고향 집이란 말인가?)
상순은 억이 막혀 쑥이 한발씩이나 자란 쑥밭과 나무 밭이 된 집터에서 눈길을 떼 최구장에게 얼굴을 돌렸다.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후 내쉬었다.
상순은 쭈크리고 앉아 손으로 재를 한 움큼 쥐고 일어나 후루루 날려 보냈다.
“돌아가기요. 일본 놈들의 성화에 점점 살기 힘드네. 20년 전부터 밭이란 밭은 몽땅 나무를 심게 하고 쌀 한 되라도 줘? 저 산성 저쪽으로 해서 수림 속에 황무지를 개간하구 감자라도 심으면 꽤나 보탬이 되겠는데. 헤이, 까딱 다치지 못하게 하네. 한길수가란 놈이 일본 놈들의 말대로 나무를 심으라고 생 지랄을 했소. 별수 있소. 나무를 심으니 뭘 먹고 살겠소? 이전에 차린 서당방도 못 차리게 한지 오래오. 애들의 학비라도 받아서 메밀이라도 사 보탬을 했는데.  허참, 이젠 정말 살기 어렵게 되였소. 일본말만 배우고 말해야 되구. 조선말을 하면 큰 경을 치고 마오. 제 민족 말도 못하고 제 민족어도 배우지 못한다니 어데 될 말이요. 나는 구장 자리도 빼앗겼소. 내 대신 응삼이란 자가 구장이 돼서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하오. 저 강 건너 만춘집 김구장도 구장자리를 빼앗기고 대신 영팔이 구장을 하오.”
최구장은 한숨을 푸 내쉬더니 허무한 웃음을 지었다.
상순은 운주강 둑으로 해서 집에 돌아오면서도 자꾸 고향집 쪽을 돌아다보고 한숨을 지었다.
상순은 주먹을 부르쥐면서 “나도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서 한길수란 놈의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악질지주가 지금도 영월동에 있습둥?”라고 물었다.
“아니, 지금 우시장에 나가 자위대 대대장이 돼 갖은 악랄한 짓을 다 하네. 그 놈들의 성화에 어데 살겠나?”
상순은 걸음을 멈추고 “한길수 아들 한철주 놈이 지금 만주에서 일본 놈들을 등에 업고 일본 놈들을 미화하느라고 연설하러 다니는 거 길림에서 봤습구마.” 라고 했다.
최구장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참말로 한심한 세월이구먼. 그 놈 부자 놈들이 우리 고향 마을을 일본 놈들에게 팔아먹더니. 에이, 이젠 중국 만주국마저 짓밟는 판이구나.”
상순과 최구장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어느덧 최구장에 팔간 집 앞에 이르렀다.
그때 안에서 계순이 어린애를 업은 채 뛰어나오면서 “아버지, 편안히 계셨습둥?” 하고 허리 굽혀 인사를 올렸다.
그녀는 상순을 보더니 “아유, 조카사위는 정말 끌날같은 미남이구먼.”라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상순이가 어리벙벙해하자 옆에 서 있던 최구장이 인사시켰다.
“ 막내딸 계순이네.”
상순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최구장은 막내딸 계순의 잔등에서 외손자 녀석을 쑥 뽑아내 안고 뽀뽀를 하였다.
“그래 어디 보자. 우리 홍기야.”
“외할아버지, 꿀꿀이도 왔습구마.”
최구장은 방에 들어가 앉아 한 팔에 하나씩 안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명옥은 죄꼬만 동생들을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이, 이렇게 예쁜 애들을 이름을 별나게 꿀꿀이라고 지었소?”
계순은 “돼지처럼 잘 먹고 앓지 말고 자라라고 아버지가 그렇게 지었단다.”라고 명옥에게 알려주었다.
그때 최구장의 노친도 외손자와 외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핥을 상했다.
“아이고, 내 외손자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성단은 정지를 내려다보면서 계순에게 “그래, 정서방은 왜 오지 않았니?”라고 물었다.
계순은 걀쭉한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입을 비쭉거렸다.
“언니와 조카들이 왔을 때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일본 면장이 구장을 데리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가마골의 저수지 둑을 든든히 막아야 한다고 떠들더니 끌고 갔어요.”
“에이, 일본 사람들이 뭘 안다고 그래? 장마가 오면 둑의 물을 빼서 줄여야 하지 막아 물을 가두면 무슨 사고라도 치자고 그런대?”
최구장의 상서롭지 못한 말을 듣자 계순은 아버지가 더 말하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 그만 하세요. 가뜩이나 애 아버지를 두고 와서 근심스러운데 불길한 말씀을 하지 마세요. 예?”
최구장은 외손자를 안고 뽀뽀를 하면서 “응, 그래. 말하지 않으마.”라고 했다.
이때 바깥의 검둥개가 왕왕 짓는 소리에 뒤이어 왁작 떠드는 소리가 들리었다.
약삭빠른 근형이 달려 들어오더니 헐떡거리면서 “할아버지, 삼촌과 사촌 댁들이 왔습구마.” 라고 했다.
최구장은 엉거주춤 일어서더니 마루에 나갔다.
경인과 어금은 맏아들 근덕(봉순)과 둘째아들 근원, 딸 해옥과 막내아들 근환까지 데리고 왔다.
상순이 보니 큰 매형 경인은 긴 외태머리 대신 하이칼라를 하고 있어 더 멋져보였다.
모두들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정해 앉았다.
그들이 한창 그간 회포를 털어놓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울 때었다. 바깥이 불시에 새까맣게 어두워지더니 먼 곳에서 우르릉 꽝 하는 우레 소리가 울렸다. 명옥이가 습관대로 문밖에 나가 마루에 서서 동쪽의 기운봉 쪽을 내려다보았다.
기운봉 산중턱에서 번개가 번쩍하더니 우르릉 꽝꽝 우레 소리가 울렸다. 마당에 열콩알만한 비방울이 마구 떨어졌다. 뒤이어 쏴- 소리와 함께 마당의 적송 밭과 들판의 나무 밭에, 그 어데라 없이 대 줄기 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추녀 끝에서 실 폭포를 방불케 빗물이 쏴 쏟아져 마당의 어지러운 발자국을 메우면서 마당 밖으로 흘러내려갔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에이, 너희들이 정말 딱 맞춰 왔다. 좀 늦었으면 소낙비를 맞아 물병아리로 될 번했구나.”라고 했다.
부모자식들이 모인 집안은 큰 잔치 집을 방불케 했다. 웃고 떠들썩하면서 장밤이야기꽃을 피웠다. 특히나 성단과 죽순, 계순 그리고 명옥 등은 온 밤 이야기를 하다가 소낙비 내리는 바깥이 훤해져올 때에야 잠간 눈을 붙였다.
6. 고향의 버섯과 딸기
온밤 내리던 소낙비가 이튿날 오전 9시쯤 되여 아이들의 장난을 하듯이 믿기 어렵게 뚝 멎었다. 그때까지 최구장의 집안은 큰 잔치 집 같이 떠들썩했다.
아침 상을 물리자 경인과 경민, 경욱 네는 집에 집짐승도 있고 하여 집을 비울 수 없어 애들을 데리고 먼저 돌아갔다. 그러나 어금은 오라비 상순이 왔기에 하루만 더 묵기로 했다. 그는 상순과 만주에 간 부모형제와 친척들의 형편을 묻기도 하고 이 말 저 말 하면서 놀았다.
계순은 애를 아버지께 맡겨놓고 부엌에 내려가 버들바구니를 둬 개 얻어들고 명옥을 불렀다.
“얘, 우리 엄마와 함께 저 운주강가 버드나무 숲에 버섯을 따러 가지 않겠니?”
명옥은 상순의 눈치를 보면서 “그게 좋을 것 같소. 할머니 함께 가깁소.”라고 하며 짚신을 신으러 마루에 나갔다.
이전에도 성단은 막내딸 계순과 맏손녀 명옥을 데리고 기운봉과 운주강가 버드나무숲에 가서 버섯을 따다가 보태군 했다. 이번에도 그는 막내딸의 말을 듣고 바구니를 들고 따라나섰다.
죽순은 “나는 홀랑 빼놓고 가겠습둥?” 하고 눈을 곱게 흘기었다.
그 말에 성단은 “넌 집에서 점심채비나 해라. 우리가 버섯을 따오면 버섯채나 볶아 놓고.” 라고 했다.
성단은 막내딸과 맏손녀를 데리고 운주강가로 갔다. 비온 뒤 해볕이 내리 쬐자 바람에 춤추는 버드나무아래에 하얀 버드나무버섯이 뿌죽 뿌죽 자라나 있었다.
계순은 원래 활발한 여자인지라 애 엄마가 됐는데도 엄마 앞에서는 항상 어린애처럼 뛰어다니면서 놀았다.
그녀는 버섯을 하나 뜯어서는 바구니 안에 넣으면서 “또 하나 흥흥!”하고 말하며 코 노래까지 흥얼흥얼 불렀다.
성단은 버섯을 따면서 명옥을 보고 “얘, 너 신랑이 생기기는 잘 생겼는데 밸 때기는 무섭다던데. 어떻니? 싸우지는 않고 사니?” 하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원래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믿는 명옥이는 속이는 것이 없이 다 말했다.
“에이, 잘나면 낯을 뜯어서 밥을 해먹겠소? 밸 때기는 시아버지보다도 더 유다릅구마. 한번은 아주머니가 소를 쓴다고 말한다고 작두날을 뽑아들고 씽 달려가더니 소 궁둥이를 탁 내리찍지 않았겠소. 헤이고, 농사꾼이 소를 믿고 농사를 짓는데 그 황소가 죽으면 한해농사를 어찝니까? 그래서 시아버지는 겨우 분을 참고 쩍 벌어져 피가 줄줄 흐르는 소 궁둥이에 재를 바르고 조상들의 밀 방약이라면서 대야에 눈 오줌을 쳐주었댔습니다. 그래 겨우 그 황소를 살려내서 지난해 농사를 졌습구마.”
순금은 한숨을 호- 내쉬었다. 계순은 그 끔찍스런 소리에 버섯을 뜯어 쥔 채 명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얘, 네 팔자도 불쌍하구나. 그렇게 밸 때기 더러운 신랑을 만나서 이 다음 어떻게 마음고생을 하겠니?”
그 말에 명옥은 한숨을 호 내쉬면서 할머니와 막내고모를 바라보며 뒷말을 이었다.
“한번이면 모르지. 또 한 번은 동네 사람이 자기를 욕했다고 집 마당에 있는 화로 불을 들어 남의 지붕에 훌 올리던져 불이 달릴 번 한적이 다 있소.”
“에이, 저 둘째오빠가 왜 저런 신랑한테 너를 소개했을까? 자기 처남이면 성질이랑 잘 알았겠는데 말이야.”
계순이가 경인까지 거들어 도도거리자 성단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얘, 알지도 못하면서 둘째오빠를 나무랄게 뭐냐? 네 둘째오빠는 저 명옥이 네 살에 엄마를 잃고 고생스레 자랐다고 처남에게 시집보내면 잘 살겠는가고 중매를 섰다. 괜히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라. 명옥이도 우리 앞에서는 일없는데 남들 앞에서 절대 신랑의 허물을 하지 말라. 신랑을 잘 받들어야 복을 받는다. 에이고, 이 답답한 것들아, 알겠니?”
계순과 명옥은 숨이 한 줌만 해서 찍소리 못했다.
“아이유, 이 빨간 딸기를! 명옥아, 빨리 와서 딸기를 따가자.”
“딸기?”
명옥과 성단이 달려가 보니 버드나무숲과 비술나무숲이 마구 어우러진 가운데 빨간 딸기가 새빨갛게 다닥다닥 달려있었다. 그들은 한참이나 딸기를 뜯어 버드나무바구니에 무드기 담겼다. 그런데 계순은 딸기를 뜯으면서 딸기를 자꾸 쥐여 입에 넣고 오물오물 먹어댔다.
“아이유, 시쿨어. 어쩜 이렇게 맛있을까?”
명옥도 딸기를 씹으면서 시쿨어 상을 찡그렸다.
“아재네 가마골엔 딸기 없소?”라고 물었다.
계순의 걀쭉한 얼굴에는 대번에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지나갔다.
“에이고, 딸기 있으면 우리를 먹으라고 할 것 같냐? 그 일본 놈의 앞잡이 구장 놈이 버섯이고 딸기고 따오면 집까지 찾아와서 가마골에서 난 버섯이고 딸기고 다 자기한테 바쳐야 한다면서 뺏아 가지 않겠니?”
성단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말했다.
“얘,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일본 놈들의 말을 하지 말라. 운주동에서도 일본 놈들이 알면 버섯과 딸기를 따지 못하게 하고 다 빼앗아간다. 그 새끼들은 우리가 조선 말을 해도 안 되고 이름마저 조선이름을 달면 안 되는데다가 일본 사람들의 이름으로 창씨 개명해야 한다고 한다. 명옥아, 너네 만주는 좀 낫니?”
      “우리 거기는 산골이 돼서 그런지 모르겠습구마. 전번에 온 마을에서 일본 파출소에 협화회라는지 뭔지 들었습구마. 그래서 그런지  일본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는 그렇게 행패를 부리지 않습꾸마.”
성단은 버섯을 따서 바구니에 넣으면서 “글쎄, 네 큰고모네 작년에 와서 하는 말이 만주국에 황무지도 많고 일본 놈들도 덜 성화를 부린다고 하더라. 여기서 어디 일본 놈들의 성화에 살겠니? 산나물도 못 캐먹게 하니 어떻게 사니? 우리도 만주국에 가 살아야 할 것 같아.” 라고 말했다.
계순은 엄마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엄마, 그래 이 막내딸은 가마골에 버리고 혼자 만주에 갈 예산입니까? 나도 정서방을 데리고 만주국에 가겠습니다. 언니와 명옥이도 거기서 된장국에 기장밥을 먹고 잘 산다던데 내 무슨 저 가마골에서 일본 놈들의 눈치 밥을 먹으면서 살겠소?” 
“그래, 내 어찌 막내딸을 버리고 혼자 잘 살겠다고 가겠니? 우리 다 만주국에 가서 잘 살자.”
성단은 흐릿한 하늘을 쳐다보더니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얼른 버섯이나 좀 더 뜯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자. 저 기운봉 쪽을 봐라. 어둑시그레 해나는 게 또 비 오겠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입을 다물고 한참 버섯을 더 뜯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명옥은 할머니를 보고 “우리 언제 비가 오지 않는 날에 이전에처럼 막내고모와 함께 기운봉에 돌 버섯을 따러 가지 않겠습둥?” 하고 물었다.
계순은 어린애처럼 서적을 피우면서 “엄마, 함께 가깁소. 예?” 하고 말하면서 걀쭉한 얼굴을 갸우뚱했다.
성단은 “그래. 해만 나면 가자. 돌 버섯을 캐다가 물에 퍼지어 데쳐서 기밀가루에 반죽해 먹으면 얼마나 쌀 보탬이 된다고.” 하고 선선히 응낙했다.
계순은 점점 흐려오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에이유, 그런데 이 놈 하늘이 맑은 날이 있을 것 같지 않아.”라고 하며 입술을 쫑긋해보였다.
이때 갑자기 말발굽소리가 났다. 그들이 머리를 들어 보니 일본 군도를 차고 말을 탄 한 일본 놈이 채찍을 들고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아이유, 큰일 났다. 삼림지킴 야마모도소장이다. 어서 숨자.”
성단의 황급한 말에 계순과 명옥은 숨이 한줌만 해서 버드나무숲속에 납작 엎드렸다. 야마모도는 말에서 내려 채찍으로 버드나무숲을 헤치면서 이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대로 엎드려 있으면 야마모도에게 잡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였다. 성단은 달아나자고 버드나무 숲속 쪽으로 손짓했다.
계순과 명옥은 바구니를 안고 허리를 굽힌 채 살금살금 버드나무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겁이나 여기저기 살피던 계순이 그만 일본 놈의 눈에 딱 띠였다.
“난노 온나다까?(웬 계집인가?) 고이!(오라!)”
야마모도가 채찍을 쳐들고 흔들면서 오라고 을러멨다.
당황해난 계순은 다리야 날 살리라고 버드나무숲속을 헤치고 줄행랑을 놓았다. 명옥과 순금이도 선불을 맞은 노루처럼 버드나무 숲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야마모도는 버드나무 숲속에서 그들 셋과 한식경이나 숨바꼭질 하였지만 끝내 붙잡지 못했다.
이때 하늘에 먹장구름이 뒤덮이고 번개가 번쩍이더니 우레 소리가 하늘땅을 진동했다. 딸기 알 같은 비방울이 툭, 툭, 툭 떨어졌다.
야마모도소장은 재수 없다고 두덜거리면서 말에 올라 채찍질을 하더니 어디로인가 달려가 버렸다.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질 때에야 여자 셋은 물병아리로 된 채 버섯과 딸기를 무드기 담은 바구니 셋을 들고 웃고 떠들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하늘에 큰 구멍이 났는지 연 일주일이나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그새 계순은 마침 잘 됐다고 본가 집에 눌러앉아 둘째오빠 경인이네 부부와 언니 죽순이네 부부 그리고 명옥 부부와 함께 웃고 떠들면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순은 무슨 할 말이 어쩌면 그렇게도 많았을까?
그는 조왕간 쪽으로 앉아 죽순을 보고 물었다.
“언니, 왜 복금이하구 양금이, 어금이, 학준이를 몽땅 데리고 오지 않았소? 그 애들이 영 크겠는데. 학준은 이젠 저 봉순만큼 크지 않소?"
죽순은 눈을 곡베 흘기였다.
“얘를 봐라. 이젠 다 큰 봉순을 자꾸 애명을 부르지 말구 근덕이라고 불러라. 열 살 밖에 안 되는 학준을 데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겠니? 우리 어른들이 오는 것도 기차 길이 다 끊어나서 혼났다.”
그러자 계순은 상큼한 코를 발름거리면서 “기차를 타고 오는데 무슨 일이 있소?”라고 말했다.
죽순은 상순과 명옥을 번갈아 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얘, 우시장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 학준을 데리고 왔더라면 당날로 밤중에라도 들어서지 못했을 게야. 이담 너네도 그 잘난 가마골에서 살지 말구 만주국에 들어오라. 그러면 조카와 저 명옥의 딸애 영자도 보구 우리 애들도 봐라. 그러지 않아도 학준이랑 복금이랑 어찌나 이모를 보고 싶다면서 외가 집으로 가자고 떼를 쓰는지 겨우 떼놓고 왔다.”
그제야 계순은 해시시 웃으면서 짙은 눈썹아래 까만 쌍까풀눈에 활기를 띠였다. 그 눈에는 앞날의 행복한 생활에 대한 갈망과 희망의 빛이 반짝였다.
“야, 우리도 언제 언니와 명옥을 따라 땅도 넓고 장국에 조이 밥을 먹는 만주국에 가서 발 펴고 살까? 언니와 아저씨네 좀 우리 여기 있는 본가집식구들이 다 그곳에 가게 자리를 봐두오. 이곳에서는 일본 놈들의 등살에 어디 살겠소? 정말 신물이 날 지경이오. 이렇게 비 오는 날에 우리 정서방을 글쎄 저수지 둑막이에 내모니 어찝둥?”
이때 성단이 휘어든 허리를 펴고 바깥을 내다보더니 일허게 말했다. 
“계순아, 날이 차츰 개는구나. 출가 집 외인이라고 어서 집에 돌아가라. 네가 온지도 이젠 일주일이나 된다. 정서방이 기다리겠다.”
계순은 쌍까풀 깜장눈을 곱게 흘기면서 “엄마는 어쩌다 언니와 명옥이네 왔는데 더 놀면 뭐라오? 정서방두 이제 올지 누가 아오? 아유, 나는 가기 싫다.”라고 하면서 가마 목에 드러누웠다.
애들도 어미를 따라 가마 목에 활 드러누우면서 “아이고, 가기 싫어라. 외가 집에서 더 놀자.”라고 말하며 떼를 썼다.
그 모양을 보고 최구장과 경인이 윗방에서 “허허허.” 하고 웃었다.
최구장은 위방에서 경인과 근형과 함께 상순과 마주앉아서 그 곳 형편을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그래, 우리 맏이 네가 무고한가?”
“예, 세 식구가 모두 남의 밭이나 붙이고 황무지를 얼마간 개간해서 입에 풀칠이나 합니다. 남의 건너 간에 들었는데 이젠 집도 새로 지어서 들었습구마."
최구장은 한시름 놓은 듯이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윽고 그는 제일 관심이 가는 일을 묻기 시작했다.
“그래, 그 곳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여기처럼 살판치지 않는가?”
상순은 담배를 말아서 입에 붙여 물고 길게 빨아들였다가 연기를 후 내보냈다.
“천하의 까마귀는 다 검다고 우리 진수해의 일본 놈들이라고 우리를 살게 하겠습둥? 그 놈들은 중국 사람들과 우리 조선 사람들을 자꾸 이간을 놓습구마. 우리 조선 사람들은 2등공민이라면서 좁쌀을 한줌 먹게 하구 중국의 한족사람들은 3등공민이라면서 수수밥이나 옥수수떡을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마을에 와서 어찌나 사람들을 군대에 나가라고 강박하는지 혼났습니다. 그리고 양민이 되겠으면 협조회나 협파회에 들어야 한다고 강요했습니다. 우리 함흥촌에서는 구장이 시키는 대로 거진 협파회에 들었습구마. 그런 후부터 우리가 일본 사람들의 양민이 됐다고 그리 들볶지는 않습더구마.”
경인은 조용히 앉아 듣다가 상순에게 “여기서는 일본 놈들이 우리 아버지를 서당 방에서 조선 글을 배워주지 못하게 하고 일본글을 배워주라고 강박했네. 그래서 서당 방이 문을 닫고 말았네. 그곳에서는 어떤가?”
상순은 아는 대로 대답했다.
“우리 곳이라고 에누리 있겠습니까? 난 소학교 문에도 가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소만 학교에서 조선 애들이 일본 말을 하지 않고 조선말을 하면 목에 개패를 걸구 청소를 일주일동안 시킨답구마.”
그 말을 듣더니 경인은 최구장을 돌아보았다.
“봅소. 어디를 가면 우리 고향과 다르겠습니까? 다 일본 놈들의 세상인데. 아버지가 자꾸 내 보고 처남네 함흥촌으로 가서 알아보라고 하지만 난 주춤주춤 하고 있소.”
최구장도 속이 타서 담배 물 주리 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더니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나도 오죽하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정든 고향 개성을 떠나서 이곳에까지 왔겠느냐? 사실 아버지 산소가 저 산성에 있고 할아버지 산소는 업동에 있는데 조상의 산소를 두고 멀리 만주에 간다는 것도 조상들에게 얼마나 죄를 짓는 일이냐. 그래서 지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오.”
옆에서 듣던 근형이 끼어들었다.
“증조부 산소를 파서 업고 함흥촌에 가지 뭐.”
최구장은 외까풀눈이 대번에 휘동그레서 근형을 바라보았다.
“에끼, 이 놈아. 아버지는 파서 업고 간다고 하자. 그럼 업동에 있는 내 할아버지는 어쩌겠느냐? 개성에 있는 내 증조부와 고조부는 어찌 하겠느냐? 고조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랑 다 대대로 개성에 산소가 있는데 그분들을 다 어떻게 파가지고 가겠느냐? 참 답답하고 한심하구 기막힌 일이 아니냐?"
머리가 잘 돌아가는 근형이었지만 그 말에는 어찌는 수가 없었다.
경인과 상순은 다 한숨을 푸푸 내쉬었다.
납덩이같이 무거운 침묵이 한창 흘렀다. 바늘이 구들바닥에 떨어져도 다 들릴 듯이 위방과 정주는 조용해졌다.
한참 후 상순이가 코마루가 시큼해나서 말했다.
“우리 증조부도 좋고 고조부도 그렇고 다 저 운주동 산성 안에 있지 않습니까? 그 우에 조상들의 산소도 대대로 다 여기 명천에 있지 않습니까? 생각하면 조상들을 여기에 모셔 두고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난 게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이때 바깥이 왁작 떠들썩했다. 처음에는 애들이 바깥에서 놀거니 하였는데 아니었다.
“문 열어! 이 놈들아!”
근형과 경인이가 내다보니 야마모도소장과 응삼 구장이 말을 타고 울 밖에서 고함치고 있었다.
그때 계순은 살구나무 위에서 살구를 뜯다가 질겁하여 살구를 담뿍 담은 바가지를 들고 살금살금 조심조심 내려왔다.
야마모도 소장 놈은 채찍으로 계순을 가리키더니 꽥꽥 고함쳤다.
“고노 빠까아맛꼬 새끼! (이 멍청이계집년새끼!) 니기리모데! (붙잡아라!)”
“하이(옛)!”
응삼은 말 잔등 우에서 길쭉한 말대가리를 조아리더니 훌쩍 뛰어내려 곧추 울안으로 덮쳐들어왔다.
계순이가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자 꿀꿀이가 왕 통곡 쳤다.
그 광경을 보고 성단은 “아이고, 범이 제 흉을 하면 온다더니 끝내 왔구나.”라고 하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최구장과 경인이가 바깥마루에 버선발바람으로 뛰어나갔다.
“리 구장, 대체 이게 무슨 일이요?”
응삼은 채찍으로 최구장을 한쪽으로 밀어내면서 땅방울같이 을러멨다.
“최 영감의 노친과 막내딸이 운주강가 수림 속에서 버섯과 딸기를 도적질해왔단 말이요. 도적 죄로 잡아가야겠소.”
가물에 실 돌피 같은 응삼이가 집안에 들어오더니 계순과 순금을 우멍한 눈으로 쏘아보면서 구들에 올라섰다.
최구장은 그래도 응삼이 학생이라고 일루의 희망을 안고 옆에 있는 응삼에게 한마디 조용히 했다.
“이보게. 이 구장, 내 딸을 좀 놔주게. 자기 마을 강가의 딸기랑 버섯이랑 따왔는데 도적질이라니? 말이나 되오?”
그러나 응삼은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면서 실눈을 흘기었다.
“지금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거요? 대일본제국의 황군 앞에서 다시 그런 소리를 했다간 영감부터 잡아갈 테요. 흥!”
그때 상순이가 위방에서 나오면서 고함쳤다.
 “네놈이 까딱 손을 대봐라! 여기서 살아서 나갈 것 같으냐?!"
깜짝 놀란 응삼이가 구들에서 주춤 뒷걸음치면서 상순을 눈알이 휘동그레서 쳐다보았다. 그러나 뒤에 야마모도 소장이 서있는지라 다시 억지로 침착성을 회복하더니 없는 용기를 내 을러멨다.
“이 놈은 어데서 굴러온 놈이냐? 이 구장어른을 감히 건드려?”
야마모도 소장도 군도를 쓱 뽑아들고 상순에게 덤벼들었다.
“빠까야로(제길할 놈)! 신다(죽는다)!”
그래도 상순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대들었다.
“제 고향 마을의 버섯과 딸기를 따왔는데 무슨 죄란 말이냐?”
응삼이 우쭐해서 상순의 가슴을 주먹으로 쥐여 박으면서 밀었다.
“뭐라고? 이 미친 새끼야! 지금 무슨 세월인데 버섯을 따 가지고도 죄 없다고 변명이냐! 온 조선이 일본 천황의 땅이 됐어. 이 마을도 일본 거야! 일본 딸기와 버섯을 따왔으니 도적질이 아냐?”
야마모도 소장은 군도로 이 사람 저 사람 가리키면서 꽥꽥 고함쳤다.
“니혼고데 하나세(일본말로 말햇)!”
응삼은 야마모도 놈에게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구십 도로 굽히면서 굽실거리었다.
“하이(옛)! 와까리마시다(알았습니다)!”
상순이가 세 귀 눈에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는 것을 보고 경인은 처남이 참지 못하고 일을 칠까봐 나서서 말리었다.
“처남, 참소, 참아!”
그러나 상순은 참기는커녕 씽 부엌으로 달려가더니 가마뚜껑과 시퍼런 식칼을 들고 야마모도 소장 놈과 응삼한테로 덮쳐들었다.
야마모도 소장은 이 돌발적인 사태에 깜짝 놀랐다.
"이런 미친 놈은 난생처음 본다."
응삼은 상순을 손가락질하며 지껄여댔다.
야마모도 놈은 군도를 번쩍 들어 상순을 내리찍었다.
상순이 가마뚜껑으로 막자 쟁강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튕겼다. 일본 지휘도는 보기 좋게 련속 가마뚜껑에 맞아 불꽃을 튕겼다. 근형은 놀라 바깥으로 뛰어나갔고 홍기랑 와 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응삼은 일본 상전을 도와 주먹으로라도 상순을 치고 싶었다. 그러나 옆에 둘러서서 노려보고 있는 경인이나 근형을 보고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소리만 꽥 쳤다.
“어데서 굴러온 놈이야, 담대하기로 대일본제국의 소장님에게 덤벼들어?”
“네놈은 언제든지 내손에 죽었어. 손을 떼지 못할까?!”
하긴 경인이가 검을 휘두르면 누가 당해내겠는가. 그의 검술솜씨를 아는 응삼은 손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고함소리에 놀라 칼질을 그만둘 상순이가 아니었다.
“얏! 이 일본 개놈새끼야! 죽어봐라!”
고함소리와 함께 상순이가 가마뚜껑으로 날아드는 일본 지휘도를 막으면서 식칼로 야마모도와 응삼을 마구 찍었다. 이제껏 이런 반격을 받아 본적 없는 야마모도는 식칼에 왼팔을 찍히고 선불을 맞은 노루새끼처럼 비명을 지르면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응삼도 잔등에 칼을 빗맞고 다리야 나를 살리라고 바깥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야마모도는 왼팔이 아파 오른손으로 움켜쥐고 오만상을 찌푸리면서도 입만은 살아서 울바자 밖에 세워놓은 말을 타면서 꽥꽥 고함쳤다.
“젠부 신데시마우(몽땅 죽여치우겠다)!”
응삼도 오른 손으로 잔등의 상처를 만지면서 고함쳤다.
“어데서 굴러온 놈 새끼야! 죽어 봐라! 흥, 최구장, 어데 운주동에서 사는가 두구 보라구! 몽땅 작두날로 목을 잘라치우겠어!”
“에끼, 이 놈 새끼들아! 죽어봐라!”
상순이  호랑이처럼 고함치면서 식칼을 들고 쫓아나갔다. 야마모도와 응삼은 말배를 차더니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뒤에서 온 마을의 개들이 으르렁거리면서 선불맞은 노루처럼 줄행랑을 놓는  놈들을 보고 컹컹 짖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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