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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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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1)
2016년 02월 03일 11시 06분  조회:1872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3권

                        제12장 황야의 땅

 
 
                        1. 극적인 상봉
       흐릿한 하늘이 하나의 큰 천정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그래도 계절은 속일 수 없어 겨우내 모진 풍설과 엄동설한을 이겨낸 완강한 연분홍 진달래꽃은 천지꽃산 아래 황야를 뒤덮으면서 피어났다. 마치 진달래꽃이 만발한 온 산이 하나의 큰 진달래꽃나무를 방불케 했다.
      흐르는 물처럼 세월이 흐르고 흘러 몇 번 봄이 바뀌었던가. 해마다 돌아오는 봄은 농사꾼들에게는 황무지를 개간하고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가슴을 벅차게 하는 계절이었다.
      기준 일가는 천지꽃산 꼭대기까지 올라가면서 억척스레 황무지를 개간했다. 기준과 상우 부자는 패용천산북쪽 산등성이에 가서 시꺼먼 부식토를 한 수레 한 수레 실어다 인분과 돼지 똥을 섞어 개간한 누런 땅에 널어놓았다. 그런 다음 가대기로 밭갈이를 하니 기준 일가가 땀 동이를 부어 개간한 누런 황야의 거친 땅은 점차 거무스름하고 토실토실한 밭으로 번져갔다. 누런 땅에 옥수수를 심었을 때에는 누르스름하고 키가 허리를 넘지 못하였고 이삭도 애들 손만 하였다. 하지만 거무스름한 비옥한 밭이 된 후부터 옥수수나 조, 수수, 기장을 심으니 곡식이 퍼런 색을 띠고 키도 한 키를 넘은데다 이삭도 아주 컸다. 조이 이삭은 개꼬리 같았고 강냉이는 팔뚝만큼 한 이삭을 둬 개씩 업고 있었다. 기준과 상우가 억척스레 개간한 천지꽃산 그 황무지 밭은 후에 마을 사람들에게 상우지로 불린 옥답으로 됐다.
      그 덕분으로 기준 일가는 조선에서 집안의 문중전을 꿔 쓴 빚을 이자의 이자까지 다 물고 웃 새집의 둥글 소 값을 갚아주고도 먹고 살 수 있게 됐다.
새 봄이 오자 그들은 온종일 괭이로 나무뿌리를 찍어내고 밭을 만들었다. 그러다나니 기준과 상우의 베적삼을 입은 잔등에는 땀이 후줄근히 배여 김이 물물 피어올랐다. 상순도 이젠 열세 살이나 돼 제법 어른스레 괭이를 휘두르면서 나무뿌리를 찍어 뽑아내고 삽으로 웅덩이를 메워 밭을 만드는데 한몫 끼어들었다. 이젠 온 집 식구들이 흘린 피땀으로 천지꽃산 등성이로 올라가면서 한 평방, 한 평방 밭이 만들어졌다.
      기준은 몇 해 전에 원삼과 함께 쌀 수레를 호송하다가 유격대를 만나 성칠의 행방을 대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성칠은 몇 해 되도록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후에 용천에게서 들으니 그 사이 김 장군의 유격대를 따라 소련에 나가 군사훈련도 받고 간부양성을 받았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혁명을 하더라도 집에 들 시간마저 없단 말인가?)
기준은 속으로 형님을 나무랐다.
그때 기준은 유격대를 찾아 눈 덮인 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유격대는 쌀을 가득 지고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찾지도 못했다. 그날로 기준은 명동교회당에 가서 김하규한테 그간 있은 일을 알리고 혹시 용천 대장이거나 성칠 형님이 오면 자기에게 보내라고 했다. 하긴 기준은 소서구에 있었지만 유격대는 기동성이 강해 찾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번은 용천 대장이 함흥촌의 토성안집에 나타났다. 그리하여 병완으로부터 창준과 기준이 모두 용천을 만나보았다.
그때 기준은 용천 대장을 보고 “나도 유격대에 들어가겠소. 나를 받아주오.”라고 했다.
용천 대장은 기준의 손목을 잡고 “유격대에 들어가 총을 들고 일본 놈들과 싸우는 것도 좋당께. 허나 후방에서 농사 잘 지어 유격대에 쌀을 지원하는 것도 일본 놈을 족치는 유격대와 한가지라니께.”라고 했다.
뒤이어 그는 “집식구들이 다 기준을 믿고 사는데 농사는 누가 지어? 성칠 대장만 해도 이 집에서는 항일에 공훈이 크다니께.” 하고 재삼 말리었다.
그래서 기준은 고민 끝에 토성안집 인삼을 도와 유격대 쌀을 장만하는 일을 하기로 하고 소서구에 물앉았던 것이다.
어느 날 상순은 한창 암소에 가대기를 메워가지고 밭을 갈고 있었다. 기준이가 막벌이를 해 번 돈으로 산 암소로 밭갈이를 하니 흥이 났다. 수송아지가 밭갈이 하는 어미를 졸졸 뒤따라 다녔다.
그때 훤칠하게 생긴 한 사내대장부가 천지꽃산을 넘어 오더니 산마루에 서서 산비탈을 굽어보면서 땀을 들이면서 쉬는 것이었다.
그는 한참이나 가대기키만큼도 되나마나 한 상순이 가대기에 동동 매달려 비틀거리면서 밭을 가는 걸 보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는 상순에게 다가와 “어린 나이에 밭갈이까지 하다니. 참, 장해.” 하고 치하했다.
상순은 “와.” 하고 소를 세우고나서 그 사나이를 훑어보며 “누굽니까?” 하고 물었다.
훤칠한 키에 어글어글한 쌍까풀눈, 위엄 있게 생긴 사나이였는데 옆구리에 권총까지 척 차고 있었다.
“난 지나가던 나그네야.”
그는 상순의 어깨를 툭툭 다독여주면서 “내 밭갈이를 해 볼까?”라고 하며 가대기 손잡이를 거머쥐더니 “이라!” 하고 소를 몰았다.
그 사나이는 꽤나 밭갈이에 손이 익어보였다.
그는 옆에서 따라오는 상순을 보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한뉘 밭을 갈구 살겠느냐? 일본 놈의 세상에서 아무리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가을이면 지주들이 소작료를 다 걷어가지. 어떻게 살겠니?”
“농사를 짓지 않으면 별 수 있습둥?”
그 나그네는 한숨을 후~ 길게 내쉬면서 뭔가 한참 궁리하는 것이었다.
“공부 했니?”
“공부를 하고파도 살기 바빠 못했습꾸마. 고향에 있을 때 서당 방에서 하늘 천, 땅 지를 조금 배웠을 뿐입꾸마. 아버지가 용정 학교를 두루 알아보았는데 월사금이 너무 비싸서 다니지 못합꾸마.”
“그래두 공부를 해야지. 토성 안 집 인삼을 찾아가 배워라.”
상순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예? 인삼 삼촌처럼 항일 유격댑둥?”
그 사나이는 허리에 찬 권총을 뒤로 밀어 놓더니 계속 지탑을 쥐고 밭갈이를 해나가면서 “난 인삼과 한 집안 사람이란다.” 하고 대답했다.
“이 근방에 기준이란 사람이 있느냐?”
상순이가 찬찬히 그 사나이를 쳐다보다가 어쩐지 자기 아버지와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 놀라했다. 그러나 누가 물어도 대답하지 말고 이름도 경칠이라고 하라던 아버지 말이 피뜩 떠올랐다.
“그런 사람이 없습꾸마.”
그때 뒤에서 기준이가 상순을 번갈아 밭갈이를 하자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사나이는 가대기질하면서 뒤를 돌아보다가 주춤 멈춰 섰다.
“기준아!”
기준도 주춤 멈춰 섰다.
“아니, 형님!”
그 사내와 기준은 서로 마주 달려가더니 얼싸안고 어린애들처럼 풍덩풍덩 뛰는 것이었다. “뭐? 형님? 그럼 십 여 년이나 찾고 찾던 성칠 큰아버지란 말인가?”
상순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준은 성칠을 놓으면서 상순 쪽에 머리를 돌렸다.
“야, 상순아, 어서 와서 인사해라. 네 큰아버지다.”
상순이가 달려가 절을 올리자 기준은 성칠에게 “얘는 둘째 상순이오.” 하고 알려주었다.
성칠은 상순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길쭉한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와락 끌어안았다.
“상순이 벌써 이렇게 컸어? 몇 살이냐?”
“열세살입구마.”
“야, 그러니 칠팔 년 만에 만났구나. 내 영월동의 집을 떠날 때는 서너 살 밖에 안 됐는데. 제법 가대기질까지 하던데. 아버지랑 엄마랑 잘 계시느냐? 함흥촌이라는 건 어느 마을이냐?”
성칠은 한시 급히 부모와 집안의 형편을 알고 싶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형님을 찾다 못해 이젠 머리에 서리 내린 늙은이로 늙었소. 저 아래 산골짜기 벌판에 저게 부모와 큰집에서 사는 함흥촌이요. 그리고 저 뒤에 막바지 집이 우리 집이오.”
성칠은 “빨리 부모를 찾아가봐야겠다.” 하고 함흥촌 쪽을 내려다보았다.
기준은 소서구 뒤 산을 가리키면서 “양, 그러기요. 뒤 산 양지바른 저기에서 웃새집 형님이랑 지금 한창 밭을 갈고 있소. 함께 내려가기요.” 하고 말한 후 상순을 빨리 가 알리라고 했다.
상순은 소서구 북쪽 산비탈에 달려가 웃새집 창준큰아버지와 상훈형님에게도 기쁜 소식을 알렸다.
기준과 창준 일가는 성칠과 오랜만에 극적인 상봉을 해 서로 눈물이 글썽해 인사를 나누었다.
창준은 성칠의 손을 굳게 잡고 “형님, 그간 집식구들이 얼마나 찾았는지 아오?” 하고 눈물이 글썽해 했다.
성칠은 바삐 “함흥촌으로 내려가자. 임무 집행중이라 빨리 부모형제를 만나야겠어.” 하고 산비탈로 발걸음을 뗐다.
이때 천지꽃산과 저쪽 소서구 서쪽 산등성이에서 총을 둘러멘 청년 일여덟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기준은 “저 사람들은 누구요?” 하고 물었다.
“유격대원들이야.”
그 청년들은 이쪽으로 다가와 반갑게 인사했다. 그 속에서 한 청년이 성칠에게 말했다.
“김 대장, 아무런 정황도 없습니다. 함흥촌에 내려가도 될 것 같습니다.”
성칠은 그중 튼튼하게 생긴 유격대원을 불렀다.
“바위돌이 나와 함께 함흥촌에 내려가고 다른 동무들은 동산과 서산에 나눠가서 보초를 서고 윤번으로 내려 와서 점심을 자시오. 정황이 있으면 알리오.”
“옛!”
유격대원들은 서넛씩 나뉘어 천지꽃산과 계수동쪽의 말 무덤 장대에 올라갔다.
성칠은 일가족들과 함께 함흥촌으로 성큼성큼 내려갔다.
기준은 내려가면서 형님에게 “전번에 개산툰으로 가는 길에서 쌀을 탈취하러 온 용천 대장한테서 형님 정황을 들었소. 우린 꼭 멀지 않아 형님이 찾아오리라 믿었소.” 하고 말했다.
성칠도 한숨을 후 내쉬더니 “나도 용천에게서 아버지랑 집식구들이 인삼이 있는 함흥촌에 있다는 걸 들었다. 일본 놈들과 싸우다나니 와 볼 새도 없었다. 이번에 유격대 쌀을 얻으러 나오다나니 겨우 올 수 있게 됐다.” 하고 이야기했다.
천지꽃산의 진달래도 성칠과 온 집안 식구들의 극적인 상봉에 하늘하늘 춤추며 반기고 있었다.
봄바람에 함흥촌의 원시림이 우~ 소리 내며 성칠을 환영하듯이 설레며 춤춘다. 실실이 늘어진 버드나무가지들은 넘실넘실 흐느적이며 반긴다.
성칠은 두 동생 일가의 옹위 속에서 웃새집 육간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성칠 형님이 왔습구마.”
창준이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소리쳤다.
“어, 성칠이?”
성칠은 하얀 수염이 더부룩한 아버지가 마루에까지 나오는 모습을 보고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아버지!”
뒤이어 성희와 하옥도 집안에서 달려 나왔다.
성칠은 태산이 무너지듯 부모 앞에 넙적 엎드려 절을 올렸다.
“그간 부모님께서 무사히 계셨습니까? 이제야 찾아온 불효자를 용서해줍소.”
병완은 맨 발 바람으로 마루에서 내려 성칠을 안아 일으켰다.
“무사히 살아 있어서 고맙다.”
성희는 맏아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하옥은 마루에서 눈시울을 적시면서 반겨 맞았다.
“여보, 그간 잘 있었소?”
성칠의 문안소리에 하옥은 얼굴을 끄덕였다.
그는 눈귀에 주름살이 지기 시작한 아내 손을 잡아 매만져주면서 “그간 부모를 모시고 고생하였소.” 하고 재차 문안했다.
“어서 집으로 들어가자.”
병완의 말에 어른들은 위방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정지에 들어갔다. 바위돌은 울바자 밖을 돌면서 보초를 섰다.
병완의 집에는 큰 잔치나 벌어진 것 같았다. 아낙네들이 점심준비를 하느라고 부엌 앞에서 바삐 맴돌았다. 웃새집의 상길이랑 채선이랑 복선이랑은 창준의 부탁대로 성남집의 상순이랑 금옥이랑 바깥에서 뛰놀면서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나 살폈다.
위방에서는 성칠과 병완이 그간 서로의 형편을 주고받았다.
“소작료랑 얼마나 바칩니까?”
성칠의 물음에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도리머리 질 했다.
“저 소서구 어구 토성 안에 장지주네 산다. 장학산 지주는 처음에는 황무지를 개간한 밭에서 난 곡식은 소작료로 2할만 받았다. 그런데 몇 해 지나가지 않아 절반씩 소작료로 가져갔다. 올해 년 말에는 7할씩 걷어갈 예산인 것 같더라.”
“어떻게 살겠습니까?”
성칠도 한숨을 내쉬었다.
“경상도에서 온 용천 대장이랑 잘 있는 거 같더구나. 우리 마을에서 너를 따라 유격대에 간 칠백이랑 동욱이랑 다 잘 있니?”
병완이 궁금해 하자 성칠은 “예, 모두 백여 명 씩 영솔하는 중대장들입구마.” 하고 속 시원히 대답해주었다.
“최구철 사돈어른의 딸이랑 한길수의 집에서 머슴 질 하던 병수랑 은녀랑 모두 잘 있느냐?” 하고 물었다.
“예, 모두 항일유격대 골간들입구마.”
“유격대 형편은 어떠냐?”
병완의 물음에 성칠은 한숨을 재차 길게 내쉬었다.
“어렵게 됐습니다. 의병이 홍범도 장군이 소련으로 가는 바람에 유격대는 동북에서 잠잠해졌습니다. 나머지 의병들은 항일 유격대에 들어온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본 놈들이 우리 항일 유격대를 봉쇄하고 대거 소탕하는 작전을 벌리는 바람에 항일유격대의 처지는 아주 간고하게 됐습니다. 이번에도 인삼한테 쌀을 얻으려고 나왔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 집 쌀도 얼마간 가져가라.”
병완이 서슴없이 말하자 성칠은 “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런데 유격대에 보내고 집에서는 어떻게 보리 고개를 넘기겠습니까?” 하고 근심했다.
“우리가 세투리랑 캐먹더라도 수림 속에서 일본 놈들과 싸우면서 고생하는 유격대원들이 굶게 해선 안 되지.”
병완의 말에 창준이도 동을 달았다.
“옳소. 형님, 좁쌀 둬 마대 가져가오.”
기준이도 나섰다.
“우리 집에서도 둬 마대 내놓지.”
성칠은 창준과 기준의 손을 잡아주면서 “고맙다.” 하고 감개무량해했다.
쌀 네 마대를 실은 후 창준은 사랑 간에서 목수도구상자를 가져다 쌀 수레에 실었다.
기준은 의아해 “건 어째?” 하고 물었다.
창준은 “산에 들어가다가 가대기감이나 보이면 베 오자고 그래.” 하고 대답했다.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옳소. 남들도 가대기감 베러 간 줄로 알게고.”
이때 성희가 흰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리면서 위방에 들어와 성칠의 손을 잡고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이것아, 그래 우린 언제 명천으로 돌아가? 너희들이 빨리 일본 놈들을 고향에서 몰아내야제. 글캉 우리도 조선에 되돌아갈 게 아니냐?”
성칠은 눈물을 머금고 솔직하게 말했다.
“언제 돌아가겠습니까? 일본 놈들이 지금 조선을 통 채로 먹어치운 후 조선을 발판으로 삼아 중국 대륙까지 먹어치우려고 미쳐 날뜁니다. 동북에만 해도 이젠 몇 십 만 대군을 보냈습니다. 이제 조선 청년들까지 강제징병해 관동군에 끌어옵니다. 아마 멀지 않아 관동군은 백만 대군이 된답니다. 항일 투쟁은 아마 몇 십 년 갈지도 모릅니다. 언제 고향 명천에 돌아가겠는지 모릅니다.”
성희는 억이 막혀했다.
“그럼 이제도 몇 십 년을 여기 간도에서 살아야 된다는기여? 난 눈만 감으면 충청남도에 있는 서천군 한산면이 떠올라. 고향에 묻힌 본가 집 부모와 네 외삼촌이랑 명호랑 조카들이 떠오른다니께. 있자 노. 오라버니랑 명호하구 손자 병수를 데리고 우리 간도에 온 후 명천에 왔다가 우릴 만나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어. 얼마나 섭섭했겠니?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네 외삼촌과 외사촌동생들을 보지 못할 거 같애.”
성칠은 신심에 찬 어조로 말했다.
“우리 항일 유격대는 꼭 일본 놈들을 간도와 조선에서 몰아낼 수 있습니다. 지금 동만 뿐만 아니라 북만, 남만, 어디나 다 항일유격대가 일떠 났습니다.”
성희는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고향에 돌아가는 날을 보았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고 한숨을 호~ 내쉬었다.
성희는 뒤이어 “너희들 유격대는 고향 명천에까지 나간 적이 있느냐?” 하고 물었다.
성칠은 “이전에 상호를 구하는 작전 때 동북에 들어온 후 나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항일투쟁은 제일 어려운 고비에 들어섰습니다. 일본 놈들의 봉쇄가 어찌나 물샐 틈도 없는지 간도에서두 발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유격대는 어떤 때 둬 날 씩 굶을 때도 있습니다.” 하고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았다.
이때 하옥이가 점심상을 들고 들어와 숟가락과 저를 올렸다.
“집에 왔을 때나 유격대들을 데려다 조밥이라도 많이 대접해라.”
성희의 말에 성칠은 허기증부터 났다.
그는 하옥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는데 부모형제와 이야기를 나누다나니 말할 새 없었다.
창준의 처와 상훈의 처가 점심상을 차려 올리자 모두 숟가락을 들었다. 성칠은 바깥에서 보초를 서는 바위돌을 불러다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성칠과 바우돌은 조밥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버렸다. 성칠은 하옥이 떠온 냉수를 아버지께 드리고 상훈의 처가 떠온 물 사발을 받아 꿀꺽꿀꺽 마시며 바깥을 나가는 하옥을 보았다.
성칠은 대야를 들고 김치 움으로 들어가는 하옥을 보고 바깥으로 나가면서 바위돌에게 눈짓했다.
바위돌이 바깥으로 따라 나오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동산과 서산에서 보초를 서는 동무들을 불러다 점심을 들게 하오.”라고 분부했다.
“옛! 김 대장!”
바위돌이 떠나간 후 성칠은 서성거리다가 김치 움 덮개가 열린 것을 보자 피뜩 김치 움에 들어가 하옥을 조용히 만나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는 사위를 둘러보다가 시꺼먼 김치 움으로 슬쩍 뛰어들어간 후 김치움 덮개를 안에서 닫아버렸다.
“어마나! 놀라라. 난 또 누구라고?”
성칠은 하옥의 입에 식지를 대고 나직이 쏘곤거렸다.
“여보, 우리 오랜만이구만.”
성칠은 하옥을 와락 끌어안았다. 하옥도 성칠의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다가 목을 꼭 껴안았다. 이윽고 격정에 넘치는 거친 숨소리와 간간한 신음소리가 어둠속에 잠긴 김치 움 안에서 격조높이 들리었다.
하옥과 잠간 사이에 운우지정을 나눈 성칠은 하옥을 꽉 껴안고 놓지 않았다.
“난 인차 산으로 들어가야 하오.”
“예? 며칠 쉬고 가요.”
“아니오. 산에서 며칠씩 굶은 유격대원들이 쌀을 기다리고 있소.”
“그럼 언제 또 와요?”
“기약할 수 없구먼.”
“그럼 나도 산에 들어가겠어요. 안 돼요?”
“유격대는 고정된 지점이 없이 이동작전하기에 따라 다니지 못하오. 부모를 모시면서 집에 있소.”
“난 그럼 과부 아닌 과부로 한뉘평생 살아야 합니까?”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구 내 찾아올게.”
김치 움에서는 흑흑 흐느끼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었다.
뒤이어 김치 움 덮개가 열리고 김치를 한대야 든 성칠이 나왔다. 뒤이어 성칠의 억센 손을 잡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하옥이가 치마폭을 걷어안고 올라왔다.
그들을 보고 성희와 창준의 처 김수월은 눈치를 채고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마주쳤다.
이윽고 유격대원들이 서넛씩 번갈아 와서 점심상에 마주 앉았다. 그들은 오랜만에 조밥에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을 보고 숟가락을 들고 배불리 맛나게 먹었다.
그때 인삼이 와서 성칠과 바깥에서 뭐라고 토론했다.
성칠은 집에 들어와 부모를 보고 나란히 앉으라고 하더니 큰 절을 꾸벅 올리었다.
“아버지, 엄마, 난 산으로 쌀을 가지고 산에 가야 하겠습니다. 다시 올 때까지 무사히 계십시요.”
창준은 “칠팔 년 만에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니 될 말이오?” 하고 중얼거렸다.
기준은 “우리 쌀이랑 수레에 실어다 유격대에까지 가져가면 어떻소?” 하고 뜻밖의 말을 했다.
성칠은 믿음에 찬 눈길로 기준을 보더니 잠간 궁리하더니 “좋긴 한데. 목표가 너무 커서 될까? 농망계절인데 밭갈이는 어쩌고?” 하고 근심했다.
기준은 “상순도 이젠 밭갈이를 해도 되오. 내 수레에 실어다주고 와서 밭갈이를 해두 되오.” 하고 고집했다.
성칠은 인삼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하기요. 유격대원들이 며칠씩 굶어서 원래 쌀을 지고 갈 거 같지 못한데 잘 됐소.” 하고 말했다.
인삼은 믿음에 차 창준과 기준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창준과 기준은 고방에서 좁쌀 두마대나 내다 수레에 실었다. 누가 볼까봐 유격대원들은 몇 백 미터 간격을 두고 몽땅 산으로 올라가 사처에 흩어져 경계를 섰다.
이때 성희가 집안에서 달려 나오며 성칠을 붙잡으려는 듯이 오른손을 마구 휘저었다.
“성칠아, 이제 가면 언제 오겠느냐?”
성칠은 백발이 성성한 부모를 두고 막상 떠나자고 하니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약해지지 마라. 나라를 되찾는 일이 그렇게 쉽겠냐?”
옆에서 병완이 무겁게 말하면서 성칠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러고 나서 성희에게 말했다.
“여보,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산으로 떠나는 길에 울지 마오.”
성희는 성칠의 손을 잡아 매만지면서 뜨거운 이별의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에이고, 제 자식 하나 낳아서 기르지 못하고. 쯧쯧쯧, 내 그게 안타까워하는 말입니다.”
성칠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어머니, 이젠 집을 알았으니까 종종 찾아 오겠습구마.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조선과 간도가 해방되는 날은 꼭 돌아올 겁니다. 그때 고향에 돌아가 부모를 잘 모시구 형제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깁소.”
“언제 그런 날이 있겠니?"
성칠은 눈물이 낭자하고 주름살이 조글조글한 얼굴에 잠시나마 반가운 표정을 짓는 어머니 손을 잡고 힘 있게 말했다.
“광복의 그 날은 꼭 올 겁니다.”
성칠은 부모형제에게 군례를 척 붙이고 성큼성큼 울바자바깥으로 나갔다. 하얀 머리를 흩날리며 바래는 부모를 피뜩 되돌아보고 성칠은 팔소매로 눈시울을 닦았다.
하옥은 머리를 숙이고 어깨를 들먹이며 울바자 바깥으로 따라 나갔다. 성칠은 강한 눈빛을 하옥에게 주고 나서 인삼이네 집 쪽으로 걸어갔다.
창준은 수레를 몰고 토성안집에 가서 인삼이네 쌀 세 마대를 더 실었다.
인삼은 성칠을 한쪽으로 불러가더니 “전번에 용천 대장이랑 탈취한 쌀은 가난한 백성들과 쌀 수레 몰이꾼들에게 거의 다 나눠주고 얼마 남은 게 없소.” 하고 회보했다.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인삼에게 뭐라고 귀속 말로 지시를 내렸다.
이윽고 창준은 쌀 수레를 몰고 계수동쪽 동산으로 올라갔다. 영길이 너무 가파로워 창준이가 앞에서 쌀 수레를 몰고 뒤에서 성칠과 기준이가 힘껏 떠밀면서 삐꺼덕삐꺼덕 힘겹게 올라갔다. 쌀 수레는 사처에 흩어져 경계를 서는 유격대원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동산 마루 길에 올라섰다. 쌀 수레가 사라질 때까지 흩날리는 머리를 훔치며 눈 바램 하던 성희는 주름살이 조글조글한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었다. “이 놈아, 이렇게 떠나가면 언제 또 만나? 엉?”
시어머니를 부축해 눈 바램 하던 하옥은 흑흑 흐느끼며 어깨를 세차게 들먹였다.
병완은 허리를 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집 뒤에서 버드나무들이 무섭게 봄바람에 몸부림쳤다. 하늘에 꺼먼 매지구름이 흩날려오더니 진눈깨비가 풀 풀 흩날려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2. 항일의사들
나무가 꽉 박아 선 수림이 술렁이면서 항일 유격대원들을 맞았다.
창준과 기준은 쌀 수레를 몰고 나무숲이 우거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보니 아직도 잔설이 여기저기 누워 있었다.
성칠은 삐꺼덕삐꺼덕 힘겹게 움직여나가는 수레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그간 고향 명천에서 있은 일을 동생들에게서 들었다.
“아버지와 너희들이 우리 유격대 한 개 대대도 하지 못할 엄청난 일을 했구나. 일본 놈들의 경찰국과 군용다리를 수태 무너지게 만들다니. 참, 대단해.”
성칠은 한숨을 후~ 길게 내쉬고 뒷말을 이었다.
“관준 큰아버지가 교수형을 당하다니? 정말 일본 놈들과 어떻게 피 값을 받아내면 다 받아내겠니? 상호와 은희도 그 놈들의 손에 비참하게 죽었지. 지금도 우리 조선과 간도에서 그 얼마나 많은 형제들이 악귀 같은 일본 놈들에게 죽어 가는지 모른다.”
기준은 그간 용정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용정통감부 간도파출소 놈들은 지하고문실에서 숱한 무고한 백성들을 항일유격대라는 죄명을 씌워서 살해한다오. 전번에 원삼이두 쌀 수레 사건이 생긴 후에 지하고문실에서 죽을 번했소. 그래서 우리 함께 형님을 찾아가 유격대에 들어가려고 했소.”
이때 수레가 웅덩이에 털렁 빠졌다.
창준이 앞에서 소를 몰고 뒤에서 성칠과 기준이 어깨를 들이대고 수레를 힘껏 떠밀었다.
그제야 쌀 수레는 겨우 웅덩이에서 빠져나왔다.
성칠은 허리를 펴면서 서리 내리기 시작한 머리를 쓰다듬어 올렸다.
“후~ 나도 이젠 나이를 먹었구나. 너희들도 이젠 총을 들고 일본 놈들과 싸우기는 힘들 거야. 농사나 지으면서 부모를 잘 모시고 유격대에 쌀을 가져다주는 것도 역시 항일투쟁을 하는 것과 같다. 항일투쟁도 중요하지만 부모를 잘 모시고 효성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충신은 효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항일투쟁도 하고 효성도 하면 좋지 않느냐? 내가 유격대에서 총을 쥐고 너희들 몫까지 일본 놈들과 싸우고 너희들은 후방에서 농사를 지어 유격대를 지원하면서 부모를 잘 모시면 일거양득이 아니겠냐?”
성칠의 일리 있는 말에 창준과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창준과 기준은 성칠에게서 항일투쟁의 어려운 형편과 많은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없애버리려고 수많은 애국의사들이 목숨을 내걸고 싸우다가 장렬히 희생됐다. 20여 년 전에 애국지사 안중근은 할빈역에서 조선 총독 이또히로부미를 저격해 죽여치운 후 려순 감옥에서 장렬히 순국했다. 그는 사전에 죽을 각오를 한 혈서를 써서 동지들과 가족에게 남겼다. 그의 비할 데 없는 애국충정이 담긴 혈서는 당시 일본 놈들의 간담을 써늘케 만들었고 항일의병들의 사기를 더없이 고무했다.
몇 해 전 리봉창 의사는 일본 도꾜에서 일본 천황 히로히도를 작탄으로 폭사시키려고 하였다.”
“양?”
기준은 너무 놀라 걸음까지 우뚝 멈추면서 두 눈이 동그래졌다.
앞에서 수레를 몰던 창준도 소를 멈춰 세우고 돌아섰다.
“그래 일본 천황을 죽였소?”
성칠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죽이진 못했어. 리봉창 의사는 참말 대단한 일을 했다. 그는 중국 상해를 거쳐 배를 타고 일본까지 건너갔댔다. 그는 몸에 조직에서 준 작탄을 품은 채 도꾜에서 일본천황의 황궁 사꾸라다 대문에까지 찾아갔지. 그때 일본 천황 놈과 괴뢰만주국 위 황제로 될 부의란 놈이 탄 차가 황궁 사꾸라 대문에서 나왔지. 그 차에 리봉창 의사는 폭탄을 던졌다. ‘꽝!’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작탄이 차 앞에서 폭발하였단다. 일본 천황 놈과 부의 놈이 탄 차는 해뜩 번졌지. 그 바람에 두 놈은 차와 함께 멀리 뿌리워 나가 뒹굴었단다. 천황 놈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중상을 입혔지. 리봉창 의사는 그 자리에서 헌병 놈들한테 체포됐고 후에 1932년 10월 10일에 일본에서 교살 당했어.”
성칠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더니 팔소매로 눈시울을 닦았다.
창준과 기준도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장탄식했다.
“대단한 분이 아쉽게 희생됐구먼. 쯧쯧.”
성칠은 앞으로 나가는 쌀 수레를 따라가면서 수림 속을 두루 살피였다.
쌀 수레 전후좌우로 유격대원 여섯이 한 이, 삼 리 씩 떨어져 경계하면서 앞으로 나가기에 별로 큰 일은 없었다.
“저기 저 구분 나무로 가대기를 만들면 좋겠소.”
창준도 기준이가 가리키는 길옆의 비술나무를 보고 “그게 구불렁한 게 진짜 가대기감이구나.” 하고 동을 달았다.
기준은 쌀 수레 위에 얹어놓은 도끼와 톱을 내리워가지고 구불렁한 나무쪽으로 다가갔다.
창준은 “야, 언제 그걸 베가지구 가겠니?” 하고 말리면서 성칠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성칠은 “괜찮아. 소도 좀 쉬울 겸 가대기감두 베가지고 가라.” 하고 말하더니 기준을 따라갔다.
그래도 창준은 “소가 쌀 수레도 끌기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가대기감까지 싣구 가겠니?” 하고 말리였다.
기준은 톱질을 슬슬 하면서 “베 뒀다가 돌아갈 때 싣고 가기요.” 하고 말했다.
창준은 수레를 멈춰 세우고 기준한테 다가갔다.
성칠은 산속 수림 속에서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톱질하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자 주위를 살펴보면서 계속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를 했다.
“상해에서도 영웅이 나타났지. 윤봉길 항일의사는 상해 홍구공원에서 대회장 주석 대 일본 두목 놈들에게 작탄을 던져 숱한 놈들을 폭사해버렸어.”
“윤봉길?”
기준이 놀라 묻자 성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애국충정으로 온 몸을 불사르던 윤봉길 의사지. ‘9,18’사변 후 일본 놈들은 동북을 다 감정하고서도 전 중국을 강점하려는 야욕을 채우려고 1932년 1월 28일부터 군함 60척과 비행기 100여대에 10만 대군으로 상해를 들이치면서 미쳐 날뛰었어. 장개석의 파괴로 하여 일본 놈들은 석달만에 상해를 점령했다. 일본 놈들은 그해 4월 29일에 상해시 홍구공원에서 상해점령경축대회를 열게 되였지.”
기준은 톱질하다가 뒤돌아보면서 “형님, 상해라는 게 어데 있소? 봉천이나 신경은 들었는데 상해는 듣다 첫 소리오.” 하고 물었다.
성칠은 “나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도 서남쪽으로 신경을 거쳐 산해관을 넘어서도 몇 천 리는 가야 되는 모양이더라.” 하고 뒷말을 이었다.
“상해에는 한국 임시정부가 있었다. 윤봉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총리 김구 선생 수하들이 세운 주밀한 계획에 따라 경축대회장 주석단을 폭파해 상해점령 일본 괴수들을 폭사시킬 계획을 세웠다.”
성급한 기준은 “그래 이번에도 천황처럼 폭사하지 못했소?”
성칠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통쾌하게 폭사시켰지. 윤봉길 의사는 조직에서 제공한 보온병폭탄을 들고 경축대회 주석 대 밑에 접근했다. 그가 경축대회 주석단에 던진 보온병폭탄이 폭발하면서 일본 놈 괴수 일곱 놈이 몽땅 쓰러졌단다.”
그러자 창준과 기준은 이구동성으로 “정말 시원한 노릇을 했구나.” 하고 속이 시원해했다.
성칠은 계속 뒷말을 이었다.
“상해거주일본민단 위원장 가와하다 놈은 가슴과 배때기에 폭탄파편을 맞고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즉살하였단다.”
“에이, 시원해라!”
기준과 창준은 성칠의 말에 반주라도 하는 듯이 잘코사니를 불렀다.
“상해점령 총사령관 시로가와란 놈도 한 스무날 후에 상처에 독을 타 죽었단다.”
“잘 썩어졌군!”
“일본해군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란 놈은 그때 윤봉길 의사가 던진 작탄에 왼쪽눈깔을 잃어버리고 애꾸눈이 되였단다.”
“아버지한테 골 받이를 하다가 눈깔을 잃어버린 한길수 놈하구 심통하게 됐구먼!”
“하하하!”
“상해주재 일본공사 시게미쯔는 오른쪽다리가 날아나 절름발이 됐단다. 상해 총영사 무라이는 왼쪽다리에 부상을 입구 상해거류일본민단 서기장 도모노는 오른팔에 중상을 입어 병신이 되구말았단다.”
“에이, 정말 통쾌하다.”
“하하하!”
창준과 기준은 통쾌하게 웃더니 번갈아 톱질하며 뒤를 돌아보면서 “그래 윤봉길 의사는 어떻게 됐소?” 하고 물었다.
성칠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수라장이 된 경축대회장에서 당장 일본 놈들에게 체포됐단다. 일본에 끌려간 윤봉길의사는 그해 12월 19일에 이사가와현에 있는 가나자와시에서 총살됐단다. 그는 일본 놈들에게 체포돼서나 총살당하기 직전에도 일본 놈들의 죄행을 질책하면서 통쾌한 웃음을 웃어 조선애국지사들의 죽음도 모르는 영웅적 기개를 보여주었단다.”
애국지사들을 추모하듯이 구름이 뭉게뭉게 피여 오르며 나무 끝 초리를 씻어 올리고 있었다.
성칠은 말을 마치자 몇 십 길이나 되는 장백의 미인송과 그 사이로 보이는 수림 속의 흐린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때 바위돌이 뛰어왔다.
“김 대장, 산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래?”
그들이 머리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수림 속으로부터 일여덟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제일 앞에서 오던 여자가 소리쳤다.
“김 대장, 수고했어요.”
“진달래 중대장, 여기까지 다 마중 나왔소?”
진달래중가 다가왔다.
“예, 그래요. 용천 대장이랑 지금 쌀을 애타게 기다려요.”
그는 쌀 수레에 다가오다가 창준과 기준을 보고 놀랐다.
“아니, 경인오빠네 가시아버님들이 아닌가요?”
창준이도 기준이도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랐다.
“아니, 사돈 새 애기구먼. 그래 최구철 사돈어른은 잘 계시오.”
진달래는 철색얼굴에 수줍음을 띄우면서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그들의 눈길을 피해 쌀 마대에 눈길을 돌렸다.
“예, 언제 때 새기를 아직도 새 애기래요?”
진달래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더니 황급히 인사말을 받았다.
“예, 저 아버님도 유격대 뒤 일을 하면서 잘 있어요.”
성칠은 중얼거리면서 진달래와 이상한 눈길을 마주쳤다.
“정말 오래간만이구먼요.”
진달래는 창준과 기준에게 허리 굽히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창준과 기준도 반갑게 답례했다.
진달래는 쌀 마대를 매만지면서 “바위돌한테서 들었어요. 이 많은 쌀을 보내줘 참말 고마워요.” 하고 인사했다.
성칠은 진달래와 한쪽 편에 가서 뭐라고 나직이 말을 주고받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너희들은 농망 계절에 바쁘겠는데 이젠 집으로 돌아가라. 우리 유격대원들이 쌀 마대를 나눠지고 가면 돼.”
“양?”
기준은 성칠과 진달래를 번갈아보면서 말했다.
“여기까지 온바하곤 유격대주둔지에 통나무집이라도 져 주자고 했는데 이러오?”
창준도 동을 달았다.
“형님, 한 사나흘 늦어가도 애들이 있으니까 괜찮소. 유격대 주둔지에 가보기오. 그래야 후에 무슨 일이 있어도 형님네 유격대를 찾아가지.”
성칠은 머리를 숙이고 궁리하더니 머리를 들었다.
“우리는 항상 이동작전하기에 찾지 못한다. 우리 종종 인삼이네하구 집 형편을 알아 볼 테니까. 일단 일이 있으면 인삼과 말해라.”
창준은 기준을 마주보면서 “그럼 가대기감이나 더 베가지고 돌아갈까?” 하고 제의했다.
“그게 좋겠소.”
그러나 성칠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젠 해도 넘어갔는데 집에서 부모들이 기다리겠다.”
기준은 하는 수 없이 한숨을 후 내쉬면서 성칠을 꽉 껴안으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형님, 밸 같았으면 나두 유격대에 들어와 총을 쥐고 싸우고 싶소. 끼무라나 한길수 같은 놈들을 쏴죽였으면 얼마나 좋겠소. 어떻게 중국 지주들의 눈치밥을 먹으면서 한뉘 농사를 짓고 살겠소. 조선 지주나 중국 지주 놈들도 다 새까맣소. 우린 장지주네 소작료를 7할이나 내라는 바람에 이젠 조개덕의 조지주네 황무지를 새로 일궈야 살 거 같소.”
“해 넘어 갔기에 길게 말할 새 없구나. 우리가 중국 공산당을 따라 혁명해서 일본 놈을 몰아내구 지주를 청산하는 날이면 잘 살 수 있을 거야.”
성칠의 말에 기준은 눈물을 머금고 맏형님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뭐? 중국 공산당이라고 했소?”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중국공산당의 영도아래 일본 놈들과 싸워야 해.”
창준과 기준은 성칠의 손을 굳게 잡고 흔들면서 “우린 형님의 말대로 하겠소.” 하고 힘 있게 말했다.
진달래도 다가와 이상하게 아까처럼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평안무사하게 보내세요.”
“우리를 대신해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몽땅 몰아내주오.”
유격대원들도 일일이 창준과 기준의 손을 잡고 인사한 후 수레 위에서 쌀 마대 쌀을 나눠 등에 지고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진달래가 쌀을 지지 않은 유격대원 둘에게 분부했다.
“저 두 분을 집에까지 호송하고 돌아오세요.”
“예, 최 중대장!”
기병 둘은 군례를 척 붙였다.
“필요 없소. 이제 우리를 집에 데려 가고 언제 돌아오겠소.”
그러나 성칠도 호송하라고 고집했다.
그리하여 눈썹달이 걸린 봄밤에 창준과 기준은 성칠과 갈라져 고향으로 돌아가는 산길에 들어섰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성칠과 진달래가 오래도록 바래며 서 있었다. 드디어 수레가 떠나가면서 삐꺼덕거리는 소리가 검어 칙칙하고 적막한 수림 속에서 들려왔다.
3. 토성안집 주인
말이 봄이지 아직 꽃샘추위가 엷은 옷을 뚫고 온몸이 오싹하게 스며들었다.
소서구 어구에 장지주네 높다란 토성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기준은 머리를 숙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에이고, 어떻게 이런 골 안에서 한뉘 장지주네 눈치나 보면서 농사짓고 살아? 인삼과 유격대 정황을 잘 알아보고 유격대에 들어가는 게 옳은 것 같은데.)
그는 성칠 형님이 떠나가면서 하던 부탁을 생각하자 한숨을 후~ 내쉬었다.
기준은 어둠을 더듬어 밟으며 집으로 올라가면서 중얼거렸다.
“내일 날이 밝으면 인삼을 찾아가야지.”
이튿날 이른 아침에 기준은 먼저 웃새집에 들리어 위방의 부모에게 인사를 드렸다.
“성칠 형님을 보내고 얼마나 섭섭하겠습둥?”
그러자 병완은 대수롭잖게 말했다.
“부모한테 다리를 묶여서야 어찌 나라를 구하겠느냐? 황차 너희들이 옆에 있는데.”
성희는 김이 빠진 공처럼 맥없이 한숨을 호 내쉬면서 눈물부터 하염없이 흘리었다.
“언제 일본 놈들을 몰아내구 고향에 돌아가겠느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일본 놈들을 다 몰아낼까?”
기준은 어머니 손을 잡고 신심에 차 말했다.
“성칠 형님의 말처럼 중국 공산당의 영도아래 일본 놈들을 몽땅 몰아내면 고향으로 돌아갈 겁니다.”
성희는 기준의 손을 꼭 잡으면서 “그럼 얼마나 좋겠니?” 하고 눈을 사르르 감았다.
병완은 두 아들과 함께 토성안집 인삼이네 집으로 찾아갔다.
심부름꾼한테서 병완의 3부자가 온다는 기별을 듣고 인삼은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마루 아래로 내려오면서 인사했다.
“편안 무사합니까?”
병완은 인삼의 손을 잡고 “자네가 우리 집안 집인 줄을 몰랐네. 이제야 알고 지내 미안하네.” 하고 말했다.
“저도 유격대 일을 하다나니 신분을 공개할 수 없어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인사가 늦어 미안합니다.”
인삼은 사람 좋게 인사하고 나서 “들어가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하고 위방으로 안내했다.
병완은 널찍한 위방에 올라가 자리에 앉자 인삼을 보고 “족보부터 알아보는 게 어떻소?” 하고 물었다.
김인삼은 “좋습니다. 그런데 족보 없어 어떻게 따지겠습니까?” 하고 되물었다.
병완은 하얀 턱수염을 슬슬 만지더니 “건 아는 방법이 있소. 우리 영월 김씨네 입북시조 김려생 할아버지 대부터 몇 대 손인가 알면 벌수와 촌수가 나오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인삼은 반색하면서 “옛날에 부모에게서 들으니 난 입북시조 려생 할아버지의 15세 손이라고 합디다.” 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오, 그럼 영월 김씨네 둘째집이라고 하던가? 큰집이라던가?”
병완의 물음에 인삼은 “큰집 파라고 합디다.” 하고 대답했다.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난 려생 할아버지의 14세 손이니 자넨 조카벌이구먼. 얘들에겐 형제벌이 되고.” 하고 껄껄 웃었다.
그 말에 인삼은 일어나면서 “큰집 조카 큰아버지한테 인사 올립니다.” 하고 큰절을 올렸다.
병완도 앉은자리에서 허리를 앞으로 굽히고 두 손을 구들바닥에 대면서 인사를 받았다.
인삼은 뒤이어 “큰집 형님들께도 인사를 드리기요.” 하고 절을 하려고 서둘렀다.
그러자 창준은 황망히 인삼을 붙들어 앉히면서 이구동성으로 “이러지 마오. 나이가 별로 차이 없는데.” 하고 말리였다.
병완도 인삼을 붙들어 앉히면서 “형제간이니까 이후에 허물없이 보내오.”라고 말했다.
인삼은 자리에 앉으면서 병완에게 “큰아버지, 촌수로는 얼마나 됩둥?” 하고 물었다.
병완은 한참 손가락을 폈다 굽혔다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려생 할아버지 대부터 7세 손대에 큰집의 김남중, 둘째집의 김남윤, 우리 셋째집의 김남온 삼형제 할아버지께서 계셨네. 그러니까 자넨 큰집 후손인데 내게 17촌 조카 되고. 얘들과는 18촌 형제간이 되네.”
김인삼과 창준이네 형제는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저 아래사랑집 김석철 영감과 김석은 영감은 내게 어떻게 됩니까?”
병완은 “석철은 내 육촌동생이 디니까 자네에겐 역시 18촌 조부벌이 되고 그 집 보준이나 학준은 어린애들이지만 자네에겐 19촌 숙이 되네.” 하고 알려주었다.
인삼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그 집은 어째 벌수가 높습니까?” 하고 의아해 했다.
병완은 곰방대를 길게 빨았다가 후 연기를 내보냈다.
“우리 할아버지가 맏이고 그 집 할아버진 제일 작은할아버지여서 그렇소. 큰집은 대수가 빨리 내려 가다나니 벌수가 낮고 작은집은 대수가 늦게 내려 가다나니 벌수가 높은 거네.”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인삼은 병완을 보고 “집에 족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친척을 봐도 무슨 벌 몇 촌 되는지 알아야 합지.” 하고 말했다.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새 족보를 만들어야 하오. 사람이 살자면 자기 뿌리야 알아야 하지. 조선에서 뿔뿔이 흩어져서 살 길을 찾아 간도로 일본으로 가다나니 이후에 우리 후대들이 자기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겠소. 이후에는 친척도 알아보지 못하고 통혼하는 망신도 하겠소.”
창준은 옆에서 듣다가 “이전에 조선에서 물려받은 족보가 있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있지. 집안 집 후대들을 다 써넣어야 후대들이 보지.”
병완의 말에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병완은 곰방대를 붙여 물더니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 후 내뿜었다.
“큰집 병권형님네 집에 족부가 있다. 거기에 후대들을 일일이 적어 넣으면 새 족보로 되겠는데 말이다. 문중전두 우리 쓴 걸 다 갚았으니 그 돈으로 족보나 만들면 되겠는데.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이 일도 될 수 있다. 이전에는 조선에서 살 때는 집안 집을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남자애를 낳으면 적어서 족보에 붓으로 올리곤 했다.”
그 말에 인삼은 “작은할아버지 문장으로 나서서 만듭니다. 우리 옆에서 도와줍지.” 하고 덧붙였다.
“그래 볼가? 이제 큰집 조카 관준이 오면 작은집 석철 삼촌과 석은 삼촌과 토론해서 이 일을 착수해야겠어.”
기준은 “좋기는 문필이 있는 큰집 큰손자 형내나 시켜서 집집이 돌아다니면서 후대들을 적어오게 하면 좋을 거 같습꾸마.” 하고 동을 달았다.
“그래지.”
집안 집 어른 병완은 집안 집 새 족보를 만드는 중대한 일을 그 자리에서 결정지었다.
인삼은 창준과 기준에게 “삼촌네는 맨 한전만 붙여서야 어찌 배불리 먹고 유격대를 지원하겠소. 패용천산 앞에 조지주네 밭에 논을 푸오. 논에 벼농사를 하면 산량이 높을 거요.” 하고 귀띔해 주었다.
창준은 “거 좋은 기별이구만. 우리 벼농사를 해보지.” 하고 인차 호응했다.
기준은 “벼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몰라도 괜찮소?” 하고 인삼을 쳐다보았다.
인삼은 “내 우리 집 사람들을 보내 도와줄게.” 하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창준과 기준은 패용천산 앞에 논을 풀고 벼농사를 짓기로 했다.
병완은 인삼에게 그간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인삼이, 유격대 얘기나 들려주게나.”
인삼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집안 집 어른들이니까 얘기합니다. 절대 마을에 나가 얘기하지 맙소.”
창준은 바로 앉으면서 “그러지 않고. 성칠 형님이랑 유격대들의 그림자 말도 하지 않겠소.” 하고 다짐이나 하는 듯이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그제야 인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본 놈들은 1923년에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지진에 도꾜 시내에 숱한 불이 달린 걸 조선 사람들이 불을 질렀다고 숱한 무고한 조선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였습니다.”
기준은 “일본 놈들은 원래 시비 없는 놈들이오.” 하고 욕했다.
인삼은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뒤 말을 이었다.
“일본 놈들은 숱한 구실을 만들어가지고 만주국을 점령했습니다. 지금 우리 유격대는 형편없이 어렵게 됐습니다. 일본 놈들은 우리 유격대하구 조선백성들의 연계를 막으려고 이른바 집단부락이라는 걸 만들어가지고 여기저기 널려 사는 우리 조선 개간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서 커다란 마을을 만들고 적송으로 높다란 나무장재를 세워놓고 일본 놈들이 보초를 선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유격대에서 쌀을 얻을 곳이 없이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격대는 쌀 고생에 소금고생까지 하다나니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열악한 형편에서도 근거지 수많은 중국 공산당원들과 항일 유격대원들이 일본 놈들과 싸우다가 장렬히 희생됐습니다.”
기준은 머리를 수기였다.
“전번에 성철형님한테서 안중근 의사랑 리봉창 의사랑 윤봉길 의사 얘기를 좀 들었소.”
인삼은 머리를 끄덕였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순국한 그분들 말고 우리 동만에도 중국 공산당 열사들이 아주 많습니다.”
“중국 공산당이란 건 뭐요?”
병완의 물음에 인삼은 간단히 알려주었다.
“중국 공산당은 우리 백성들을 위해 일본 놈들과 싸우는 중국의 조직입니다.”
“조직이라니?”
“어떻게 설명할까? 사람들이 뭉친 집단이란 말입니다.”
창준도 호기심에 차 물었다.
“그래 중국 공산당은 우리 조선 사람들이 뭉친 집단이냐?”
인삼은 허리를 펴고 가슴을 내밀면서 말했다.
“우리 조선에는 우리 조선 사람들이 세운 조선 공산당이 있고 중국에는 최초에 한족들이 일떠세운 중국 공산당이 있소. 중국 공산당에는 지금 한족뿐만 아니라 조선족과 몽골족도 있고 숱한 다른 민족도 있소.”
기준도 궁금해 물었다.
“그래 중국 공산당에는 지금 몇 사람이나 있소?”
“확실히 얼마 있는지는 몰라도 여기 만주에만 해도 몇 만 명은 될게요.”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일본 놈들을 쳐 눕히자면 몇 만명, 아니, 몇 십만 되는 군대가 있어야지. 그래도 우린 조선 사람이니까 조선 공산당에 들어가야지 않겠는가?”
그러나 인삼의 대답은 달랐다.
“일본 놈들은 우리 조선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국 사람들이 한 하늘을 쓰고 살지 못할 공동한 원수입니다. 우린 중국에서 혁명하기에 당지에 있는 중국 공산당에 들어 그들의 영도아래 항일투쟁을 하는 게 옳습니다. 황차 조선 공산당은 우리 여기하구 멀리 떨어져 조선 국내에 있는데다가 항일투쟁에서 별로 역할이 없습니다.”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때 심부름꾼이 조밥에 장국이 오른 점심상을 들여왔다.
“아니, 얘기나 나누자고 왔는데 점심까지 폐를 끼치게 됐네.”
병완의 말에 인삼은 “한집안 식구들이 무슨 체면의 말씀을 합니까? 잡수면서 얘기합시다.” 하고 음식을 권했다.
기준은 인삼에게 “우리 성칠 형님을 모두 ‘김 대장’, ‘김 대장’ 하던데 몇 사람이나 영솔하는 군관이오?” 하고 물었다.
인삼은 조밥을 한술 떠서 냉수에 말아 입에 떠 넣고 우물거리다가 꿀꺽 넘긴 후 말했다.
“한 이백 명 영솔하는 군관이지.”
“음, 대단하구나.”
창준은 “거 사돈 새 애기 진달래는 무슨 군관이오?” 하고 물었다.
“한 백 명 영솔하는 중대장이오.”
인삼의 말에 기준은 “야, 참 대단하구나. 새 애기가 어쩜 그런 높은 군관이 되였지?” 하고 혀를 끌끌 찼다.
인삼은 “우리 항일 유격대에는 그런 여성군관들이 많습니다.” 하고 자랑스레 말했다.
점심식사가 끝나 양치물까지 마시고난 인삼은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 유격대에서는 용정에서 대부자 남군필의 돈 12만 5천원이나 군자금으로 탈취해간 일도 있습니다.”
기준은 제꺽 물었다.
“거 선바위 부근에서 최봉설이랑 15만원을 탈취한 사건을 말고 또 있소?”
“그러지 않고.”
기준은 엉덩이걸음으로 인삼한테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그게 어떻게 된 얘긴지 얼른 듣기오.”
인삼은 병완과 창준까지 양치질을 다 하고 상을 물리자 얘기를 시작했다.
“기준삼촌은 용정에 가봐서 알 게오. 용정 우물 옆 왼쪽 뒤로 해서 좀 가면 은행골목이 아니고 뭐요. 은행에서 별로 멀지 않은데 대부자 남군필의 집이 있었소.”
기준은 쌍까풀눈을 슴벅이면서 듣더니 “오~ 대개 알만하오.” 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인삼은 뒤 이야기를 이었다.
“하루는 유격대원 ‘최폴’과 옹 조꼬마’가 신사차림을 하구 인력거에 앉아 남군필을 찾아갔습니다. 최폴이 조선에서 온 한 무역회사 남부일이라고 소개하구 장사예약금으로 2만원을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남군필은 대번에 최폴을 자기 집안 집 종친 동생이라고 하면서 그날 잘 접대해주고 자기 집에서 재우기까지 했지. 그런데 이튿날 이른 아침에 유격대원들은 남군필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12만 5천원에 예약금까지 2만원을 내놓으라고 호통 쳤습니다.”
기준은 “제 따위 권총 앞에서 용빼는 수 있었겠소?” 하고 통쾌하게 웃었다.
“유격대원 최폴과 옹쫌꼬마는 돈 한주머니나 탈취한 후 남군필을 인질로 납치해가지고 차에 끌고 가서 타고 용문교를 벗어나갔지. 차단 봉을 내려놓고 지키던 자위대 놈들도 남군필의 옆과 뒤에 앉은 최폴과 옹쪼꼬마를 보고 남군필에게 인사했습지. ‘아침에 일찌기 어디로 갑니까?’ 하고 묻자 남군필은 뒤에서 허리에 차갑게 와 닿는 권총을 느낀지라 ‘어, 일이 있어서 가오.’ 하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래서 차단 봉이 들리고 유격대원들은 모아선 근처에까지 가서 돈을 챙겨가지고 남군필과 운전수를 놔주었습니다. 그래서 유격대에선 그 돈을 유격대 군자금으로 잘 쓰게 됐습니다.”
“야, 정말 통쾌하다. 우리도 총을 들고 유격대처럼 저 장지주랑 지학사랑 까부시고 땅이랑 가졌으면 얼마나 좋겠소?”
기준의 말에 인삼은 이렇게 말했다.
“되오.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을 영도해서 일본 놈들을 몰아내구 지주들을 청산해 백성들에게 땅도 나눠주고 재산도 나눠줍니다.”
병완은 그 말에 빨던 곰방대도 내려놓았다.
“그럼 얼마나 좋겠소. 한뉘 농사를 지은 사람인데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자기 땅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소.”
창준은 “우린 조선에서 온 조선 사람인데 중국 땅을 주겠소?” 하고 반신반의했다.
인삼의 말은 명확했다.
“우리 조선 사람들에게도 줍니다. 중국 공산당은 민족을 가리지 않고 일본 놈들과 전문 부자들을 쳐 엎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땅도 주구 살 길을 열어 줍니다. 우리 유격대는 공산당과 우리 가난한 사람들의 군대입니다.”
병완은 “정말 유격대는 손바닥만 한 땅도 없는 우리 가난한 사람들의 군대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 놈의 장지주네 소작료만 내지 않아도 얼마나 좋겠소.”
기준의 말에 창준은 “쪽박 차구 조선의 고향을 떠나 여기 간도로 들어온 가난뱅이 신세를 고친다는 게 그리 쉽겠소?” 하고 반신반의했다.
“글쎄 말이다.”
병완의 말에 인삼은 신심에 차 말했다.
“우리 함흥 촌에서 농사를 잘 지어 유격대에 쌀을 대주면 유격대가 배불리 먹고 일본 놈들을 깡그리 소멸하고 조선과 이 간도 땅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내면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땅의 주인이 되는 그날이 꼭 올 겁니다.”
모두들 가슴이 부풀어올라했다.
바깥에서 번개가 번쩍하더니 봄 우레가 꽈르릉 울렸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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