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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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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6)
2015년 09월 21일 17시 51분  조회:173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제8 영월동의 총소리

                                                         1. 개꼴망신

       물고 비늘구름이 물결치는 엷은 구름바다에서 쪼각달이 서쪽으로 서서히 달리고 삼태성도 숨을 죽이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영월동의 동정을 엷은 구름 새를 살며시 열고 살펴보고 있었다.
       토성안집 울안은 금방까지도 술을 처마신 중정꾼들로 떠들썩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들 녹아떨어졌는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높이 쌓아올린 토성 네 귀 망루에서 자위대원들이 을씨년스럽게 불어치는 눈보라 속에서 왔다갔다 거닐며 보초를 서고 있었다.
      별안간 중문이 살짝 열렸다. 철규가 무엇인가 들고 들어왔다. 그는 토성에 기대 망루를 쳐다보더니 보초를 서는 자위대원의 눈길을 피해 몸채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보초들은 토성 밖의 동정을 살피느라고 집안의 동정은 별로 살피지도 않았다.
몸채 안에서는 코를 드렁드렁 고는 소리만 들리었다.
그가 살금살금 다가가자 안에서 은희가  미닫이를 스르륵 열어주었다.
철규는 쥐도 새도 모르게 몸채 정주간에 들어간 후 다시 신을 벗고 윗방으로 올라갔다.
달이 구름바다에서 헤어 나오자 집안도 희읍스름하게 윤곽이 드러났다.
희한한 장면이 펼쳐졌다. 술에 만취한 길수와 월선이 속옷 바람에 얼싸 안고 드러누워 코를 드렁드렁 골고 있는 것이 달빛에 어슴푸레 보였다.
철규는 나무꼬챙이에 묻혀 들여간 것을 월선의 낯에 살짝 발라놓았다.
“에이, 차라.”
월선은 손으로 낯을 쓱 닦으면서 돌아누웠다. 철규는 길수의 번들 이마에 쓱 발랐다.
만취된 길수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달도 보기 우스웠던지 코를 싸쥐고 구름 속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철규는 나무꼬챙이로 비단이불과 요에도 줄줄 발라놓고 나무꼬챙이를 쥔 채로 미닫이문을 사르르 열고 나갔다.
문 밖을 나서자 그는 나무꼬챙이를 지붕에 훌 뿌렸다.
달라당!
나무꼬챙이가 기와에 부딪치는 소리 났다.
“뭐야?!”
망루 위에서 보초를 서는 자위대원들이 주고받는 놀란 소리.
“왜?”
“분명 울안 쪽에서 달라당 소리 났는데.”
“고양이 지붕에서 뛰어내렸겠지.”
“글쎄 말이야. 토성 안에서 소리 났으니 놀랄 게 없어.”
철규와 은희는 사랑방에 살금살금 다가가 문을 살며시 열고 숨어버렸다.
이튿날 아침. 해가 엉덩이를 비춘 지 오래다. 은희는 정주간에서 밥을 다 지어 아침상을 한창 차리고 있었다.
월선이 먼저 깨나 바사지는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 아니, 취해도 정신 있어요? 똥을 다 싸?”
길수 일어나 앉더니 요대기의 똥과 자기를 손가락질하는 월선을 번갈아보면서 두덜거렸다.
      “누가 똥을 쌌어? 그 낯을 보오. 검정개 돼지 흉을 해?”
“뭐라고요? 당신 엉덩이와 번대 머리를 봐요.”
“당신 낯이나 보오.”
“뭐라고?”
월선은 거울에 비낀 똥 묻은 자기 낯을 보고 소스라치었다.
“이게 웬 일이야? 영감 두상이 똥을 쏴도 별나게 쌌다. 자기 낯에다 싸다 못해 남의 낯에까지 싸질러?”
그들 둘은 코를 싸쥐고 서로 상대방을 삿대질하면서 코웃음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 엊저녁에 만취돼 뒤가 풀린 게지.”
“쉿— 누가 듣겠소. 망신스럽게.”
월선이 살이 져서 유들유들하고 똥이 묻은 목을 빼들더니 소리쳤다.
“은희야, 거 얼른 세수물 떠오라.”
“예.”
월선이 미닫이를 쭉 열고 내다보니 은희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씨물씨물 웃고 있었다.
“이년아, 웃기는 왜 웃어? 얼른 떠오지 못할까?”
(속이 시원해 웃는다. 어째? 저게 성칠 오빠 사냥총에 맞아 콱 썩어나졌으면.)
은희는 속으로 욕하면서 얻어맞은 상처가 아파 이를 옥 물고 간신히 일어나 물독 옆으로 갔다.
뒤에서 월선이가 두덜거렸다.
“네년이 은녀처럼 달아나 봐. 가랑이를 찢어 죽여 버리겠어.”
(뭐라고? 이제 누가 죽나 두고 보자.)
은희는 대야에 물동이 물을 퍼 담으면서 허리에 손을 지르고 두 다리를 저 가락처럼 벌리고 서 있는 월선을 흘끔 곁눈질해보았다.
“아니, 이 년이 늘쩡거리기도 하긴. 빨랑빨랑 가져오지 못해?”
월선은 서서 다른 궁리 했다.
(영감이 큰 그물을 쳐서 큰 고기를 잡으려니 그렇지. 밸 같았으면 저 년을 영영 달아나지 못하게 개처럼 고삐를 해 매놓고 한뉘 부려 먹어도 성차지 않겠어.)
월선은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 은희를 욕심내는 것을 안 후부터는 은희를 슬그머니 미워했다.
참말로 은희는 먹지 못하고 얻어맞아 사처가 터지고 수척하였지만 박씨 같이 하얗고 걀쭉한 얼굴에는 젊음의 생기가 어려 있어 퍽 매력이 있었다.
순간 월선은 날이 감에 따라 피어나는 꽃 속에서 시들어가는 자기가 한없이 안타까웠다.
(걷잡을 수 없는 게 세월이야, 세월이 무정한 원수야.)
월선은 대야에 세수를 하는 길수를 거들어주는 은희를 보면서 속상해 한숨을 호- 가늘게 내쉬었다.
한편 한길수는 요 위에 똥이 많이 묻은 것도 아니고 팬티 안에 똥이 묻지 않은 것을 두루 살펴보고 나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진종일 울안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궁리하다가 토성 서북쪽 망루 위에 올라가 전날 저녁에 보초를 선 자위대원들과 수상한 인기척이 있었는가를 알아보았다.
보초병들은 무슨 소리가 달라당 난적이 있은 것이 떠올라 지붕을 쳐다보았다. 두 보초병은 지붕에 똥이 묻은 나무꼬챙이를 보고 눈길을 마주치더니 도리머리 질 했다.
“아닙니다요. 어제 저녁에 쥐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요.”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얼씬거리겠습니까?”
보초병들은 자기들이 책임질 까봐 모르쇠를 댔다.
길수는 망루에 서서 우멍눈깔로 성칠의 집과 골짜기 쪽의 샘물터를 바라보면서 보초병들에게 말했다.
“잘 살피게. 엊저녁에 성칠의 집 부근과 샘물터에 개발자국이 찍혔더라고 똘만이가 보고했네. 혹시 성칠의 검둥이가 아닌지 모르겠어. 그 놈의 검둥이는 항상 성칠의 뒤를 따라 다니잖아.”
성칠이가 나타났는지 모를 일이였다.
그제야 보초병들은 눈이 떼꾼해졌다.
“알았습니다. 꼭 보초를 잘 서겠습니다.”
길수는 두 보초병의 어깨를 툭툭 쳤다.
“보초를 잘 서게나.”
“예!”
길수는 토성 네 귀의 망루를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명령하고는 영팔과 똘만, 허꺽쇠를 데리고 림산파출소로 야마모도 소장을 찾아 떠나갔다.
그들의 뒤에서는 용같이 꿈틀거리며 세찬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2. 생벼락
성칠은 독립군에서 분대장을 맡고 포수대에 들었던 영월동의 상호, 덕팔, 칠백, 동욱, 가마골의 정형만, 신흥동의 장산, 운주동의 철석 등 10여명 병사를 이끌었다.
이번에 그는 김용천 중대장의 포치에 따라 상호를 데리고 장사꾼으로 가장하고 우시장 경찰국과 명천 경찰국 그리고 상우남면 파출소와 영월동에 자리 잡고 있는 림산파출소 정황을 정찰하러 왔었다. 그는 정찰하러 가는 길에 먼저 림산파출소와 저목장을 정찰한 후 상호네 집과 운주동에 있는 부모와 동생들을 가만히 만나보려고 했다. 영월동의 자기 집에 주재한 일본 림산파출소와 저목장을 정찰한 후 먼저 상호의 어머니와 은녀, 은희를 만나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들은 직접 상호네 집으로 가지 못하고 지혜롭게 은희가 물을 길으러 다니기에 언제든지 올 것 같은 샘물터 부근에 숨어 있다가 은희를 만났던 것이다.
성칠은 은희를 토성 안에 먼저 들여보내 철규와 함께 내응하게 하고 상호와 함께 기회를 빌어 영월동 토성안집에 있는 한길수를 처단해 우시장 백성들의 원수를 갚으려고 했다.
그는 사흘이나 숨어 있으면서 밤에 잠입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하지만 토성 네 귀에 우뚝 치솟은 망루에서 보초를 어찌나 삼엄하게 서는지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은세계를 방불케 하는 산과 들에 어둠의 장막이 뉘엿뉘엿 드리웠다.
토성 안에서 내비치는 대낮 같은 광솔 불빛이 하늘을 찌를듯하고 토성 네 귀 망루에서 보총을 메고 왔다 갔다 하는 보초병들이 뒷산에서도 어슴푸레 보였다.
성칠이 상호와 어떻게 정찰하겠는가를 토론하는 사이에 검둥이가 냄새를 맡으면서 토성 쪽으로 뛰어갔다. 검둥이는 토성주위를 돌면서 냄새를 맡는데 웬 대문 안에서 사냥개로 보이는 누렁이가 뛰어나와 왕왕 짓더니 검둥개를 덮쳤다. 검둥개는 누렁이와 물고 뜯고 하다가 끝내 쫓기어 도망쳤다.
검둥개는 달아나는척하다가도 돌아서서 누렁이를 마구 물어댔다. 그러다가도 다른 사냥개 누렁이들이 쫓아오면 돌아서서 네 굽을 안고 달아났다.
뒷산에서 눈이 깔린 개울가에서 검둥이가 숱한 사냥개 누렁이들에게 쫓기어 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던 상호는 허리춤에서 모젤권총을 쑥 뽑아들었다.
“뭘 하려고?”
옆에서 성칠이가 가래 같은 손으로 상호의 손을 내리누르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안 된다.”
상호는 씩씩거리면서 두덜거렸다.
“씹할 일본 놈의 개새끼들마저 우리 검둥이를 업신여겨. 괘씸해 죽겠소.”
“총소리를 들으면 우리가 폭로된다. 그럼 모든 계획이 끝이야.”
그제야 상호는 모젤권총 총신을 후 불더니 허리춤에 되 찼다. 검둥이는 계속 누렁이에게 쫓기어 수림 속에까지 뛰어왔다.
그 순간이다.
토성 안에서 은희가 나오더니 “워리, 워리.” 하고 사냥개 누렁이들을 토성 안으로 불러들여갔다.
뛰어온 검둥이를 어루만지면서 여겨보니 귀에 뜯긴 상처가 있었다. 검둥이는 아직도 투지가 식지 않아 피 흐르는 귀를 삐쭉 쳐들고 토성안쪽을 내려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성칠은 눈보라 치는 하늘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무릎을 탁 치더니 말했다.
“됐다. 우린 이 바람에 불을 단 연을 띄워 토성안집에 떨어뜨리자.”
상호도 신기해 “양? 거 참 묘하오.” 하고 말했다.
상호는 가만히 은녀와 함께 상호네 집에 가서 풀을 끓여 종이로 연을 만들고 실 팽이를 맸다. 병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들을 도와 실을 풀어 연 끈을 만들었다.
“됐다. 병수, 연이 서북풍을 타고 토성 안에 거의 닿을 것 같으면 줄을 놔버려라.”
“알았소.”
“난 토성부근 개울가 버들방천에 숨어 있다가 불이 난 틈을 타서 토성 안에 들어가야 하겠다.”
성칠은 뒷산 소나무숲속에서 나와 운주하 버들방천으로 하여 길수의 토성 안 집 쪽으로 다가갔다.
상호는 병수와 은녀와 함께 뒷산 수림 속에서 껍질을 바른 피마주 한 뀀을 꿰서 연에 달아맸다. 그들은 토성 안에 서북풍을 빌어 연을 띄워 드리울 각도를 살피면서 연을 들고 풍풍 빠지는 눈을 밟으며 산기슭으로 산중턱으로 내려갔다.
“연에 불을 달아 띄우기요.”
상호가 말하자 병수는 부시를 탁탁 쳐 연에 매단 피마주에 불을 달았다.
연을 띄우자 서북풍에 몸에 불이 붙은 채 하늘 높이 날아올라갔다.
상호가 연 끈을 슬슬 놓자 연은 곧장 토성 쪽으로 점점 다가갔다.
한편 그런 줄도 모르고 토성 안에서는 한길수의가 가시아버지 생일이라고 한상 차리고 한창 술이 거나하게 되어 갔다.
한길수의 가시아버지와 야마모도 소장과 한길수 그리고 월선이 상좌에 나란히 앉고 그 아래 자리에 가메다, 길수의 맏아들 철주와 류강철이 앉았고 그 아래 응삼, 영팔, 수길 이런 서열로 죽 늘어앉았다.
똘만과 꺽쇠는 자위대원들을 영솔해 보초를 서느라고 군침을 꼴깍 넘길 뿐 자리에 앉지도 못했다. 그런데 마루 위 기둥에는 철규가 묶이어 있었다.
은희가 부엌에서 채그릇을 들고 상에 올려가면서 기둥에 묶인 철규의 입에 돼지고기 점을 집어넣었다.
철규는 오물오물 씹어 꼴깍 넘겼다. 이젠 은희가 준 고기 점과 기름떡을 적잖게 먹었던 것이다.
이때 응삼이 거들먹거리면서 정주간에 내려왔다.
“은희야, 안주가 모자란다. 윗방에 빨리 안주를 덧돌이로 올려가라.”
“예.”
은희가 올라가니 한길수가 음충한 눈길로 은희를 노려보더니 을러멨다.
“은희야, 오늘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네년의 젖가슴에서 살 고기 한 근을 떼 내지 않는가 봐라.”
길수의 눈에서는 야수의 흉악한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허리춤에서 서슬 푸른 비수를 쓱 뽑아 영팔에게 주었다.
“자, 이걸 저년에게 줘라.”
영팔은 비수를 받아들고 은희에게 다가갔다.
“은희, 비수로 저 도둑놈 철규의 오른 손목을 베라.”
은희는 비수를 받았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저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래요? 난 못하겠어요.”
“닥쳐!”
한길수는 술상을 탕 내리치며 호통 쳤다. 그 바람에 술상에서 채 물이 주르르 구들바닥에 흘러내렸다.
“얼른 걸레를 가져다가 구들을 닦아라.”
은희는 비수를 달랑 구들에 놓고 바삐 정주간에 내려가서 걸레를 가져다가 한길수 앞의 구들의 채 물을 훌훌 닦았다.
취기가 오른 길수는 은희의 흔드는 몸을 노려보며 마른 군침을 꼴깍 삼켰다.
은희가 나가자 철주가 안경알을 춰올리면서 말했다.
“아버지,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아무리 종년이라고 해도 사람대접을 해줍소. 일본에 유학가 보니까 많은걸 느꼈어요. 조선을 통채로 빼앗은 일본 제국도 파쑈통치보다도 지금 문명통치를 선호해요. 아버지도 폭력보다도 인정으로 문명하게 집안과 영월동을 다스리는 게 좋아요. 은희 같은 여종이나 철규 같은 애들에게 폭력으로 겁을 줄게 아닙니다. 삯전도 푼푼히 주고 좀 먹이고 입히기도 하면서 일을 시켜 보세요. 아버님이 채찍을 들지 않아도 일을 잘 할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저 애들이 겉으로는 무서워 하는척하지만 보세요. 은녀나 병수처럼 달아납니다. 그럼 이 집의 일을 누가 하겠습니까? 자꾸 매질을 하면 또 달아나지 않으면 불이나 싸지를 겁니다. 지어 우리 일가를 다 죽이자고 달려들 겁니다.”
“됐다, 됐어. 네가 손님들 앞에서 날 훈계하는 거냐?”
한길수는 철주를 흘겨보더니 술잔을 들고 월선의 아버지 쪽으로 우멍눈을 돌리었다. 그의 외눈깔에는 고기가 씌워 보기도 흉물스러웠다.
“자, 가시아버님, 생신을 축하합니다. 옥체 건강하옵소서.”
“오, 그래.”
월선의 아버지는 술잔을 들어 마시네 하고는 내려놓았다.
“사위, 저, 이젠 채찍을 그만 들게나. 생일날에 보기도 흉물스럽네.”
그리하여 은희를 보고 비수로 철규의 오른 손을 베라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깥 철규 쪽을 힐끔 가로보더니 두덜거렸다.
“저 쬐꼬만 새끼를 그저 어린애루 보지 말아야 하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저 놈 새끼 우리 둥글 소를 뚱뚱보 놈에게 50원에 헐값으로 팔아먹은 것 같습니다. 개자식, 삼조대면에서 분명 뚱뚱보가 50원에 샀다고 했네. 어떤 장꾼들은 그게 실 말이라고 증명서고 어떤 장꾼들은 뚱뚱보가 비수로 저놈새끼 쥔 고삐를 베 버리고 빼앗아갔다고 합니다. 십중팔구는 도둑놈들하구 짜고 들어 빼돌리 것 같고 저 놈 새끼 팔아먹은 것도 같습니다.”
“사위 취했구먼. 대체 무슨 말인지 듣고서도 모르겠소.”
월선의 아버지가 머리를 홰홰 손사래를 쳤다.
이때 야마모도가 그들이 주고받는 소리가 뭔지 알아듣지 못해 답답해났다.
“죠센고데 하나쟈나이(조선말로 말하지 말라)! 와까리마센(알아듣지 못하겠네).”
류강철이 통역해주자 한길수는 “와깟다, 와깟다(알았다, 알았어).”하고 하대말로 말해버렸다.
야마모도는 안경알 밑의 눈알이 못마땅해 떼구르르 한 바퀴 돌다가 제자리에 검은자위가 돌아와 앉았다.
철주가 옆에 앉은 응삼의 귀에 대고 뭐라구 쑤군거렸다. 그러자 응삼이가 은희까지 사랑방에 가져다가 기둥에 꽁꽁 묶어놓았다.
길수가 술잔을 쳐들었을 때었다.
응삼이가 바깥으로부터 뛰여 들어오면서 고함쳤다.
“한 대장님, 괴상합니다. 저 서북쪽하늘에서 벌건 불덩이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응?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영팔과 수길은 와닥닥 뛰어나갔다.
서북쪽 하늘에서 확실히 초롱불만한 불덩이가 이쪽으로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보초병들도 망루에서 올려다보면서 신기해했다.
“저건 무슨 불이냐?”
“글쎄 말이다. 점점 커지는군.”
“한해가 지나가니 우리 한대장님 가시아버지 생일을 축하해 하느님이 초롱불을 내려 보낸 거야.”
그런데 저게 뭐야?
불꽃이 가까이 날아오더니 점점 낮춰지는 것이었다. 드디어 토성 안 한길수의 지붕 위에 와 불씨에 뚝 떨어졌다.
대번에 지붕 우에 삼단 같은 불이 확 달렸다.
“아, 불이야! 불!”
"이건 무슨 날벼락이야?!"
불길은 순식간에 집 옆에 있는 짚무지에도 달리면서 몸채 추녀를 노리고 덮쳐들어 핥으려고 날름거렸다.
길수와 월선도 마루에 나와 서서 “저걸 어쩌냐? 저걸. 아이고, 망했다. 망했어.” 하고 마루를 탕탕 굴렀다.
“빨리 불을 꺼라. 저 불을 봐라. 지붕을 다 태운다.”
마을 사람들이 “불이야!” “불이야!” 하고 외치면서 불을 끄려고 함지며 대야며 삽이며 들고 토성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불을 끄러 달려 들어가는 마을사람들의 틈에 끼여 성칠과 상호도 토성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야마모도 소장은 한길수와 함께 헌병과 자위대까지 다 동원해 불을 끄느라고 야단쳤다.
성칠과 상호는 각기 길수의 몸채와 응삼과 자위대원들의 곁채에 뛰어 들어가 불을 질렀다.
그때 월선의 가시애비가 창문턱을 짚고 내다보면서 활활 타 번지는 불길을 보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며 와들와들 떨었다.
“에끼, 이 두상 놈.”
성칠은 영감의 목을 틀어쥐고 마루에 있는 마대 안에 걷어 넣고 아가리를 꽉 동여매놓았다.
그때 마을사람들이 달려와서 “이건 뭐요?” 하고 물었다.
성칠은 머리를 숙인 채 “불을 단 도적이오.” 하고 소리쳤다.
성칠은 은희와 철규를 찾느라고 사랑방으로 달아났다.
그 사람이 “불을 단 도적을 붙잡았다. 때려라!” 하고 외쳤다.
그러자 숱한 사람들이 모여와서 “도적이다.” 하고 발길로 차고 몽둥이로 물매를 안겼다.
이때 한길수가 뛰어왔다.
“뭐냐?”
“불을 단 도적입니다.”
“에끼, 이놈, 죽어봐라!”
길수가 발길로 걷어찼다.
마대 안에서 “내다, 내!” 하고 죽어가는 비명소리를 질렀다.
“옳다, 바로 네놈을 때려죽이겠다.”
한길수는 손바닥에 침을 뱉더니 한 마을 사람이 쥔 삽을 빼앗아 쥐고 사정없이 “도둑놈”을 찍어댔다.
마대 안의 영감태기는 비명소리를 질렀다.
몸채 앞에서 당황해 왔다 갔다 하던 월선이가 달려와 호미로 찍고 응삼까지 괭이를 들고 와서 마구 물매를 안겼다.
마대 안에서 뭐라고 소리치며 꾸불거리더니 한참 후 움직이지 않았다. 한길수는 취 김에 손이 근질거려 “도둑놈”을 실컷 찍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이때 길수의 맏아들 철주가 옷에 묻은 재가루를 탁탁 털면서 마주 달려왔다.
한길수는 철주가 뭔가 말하려는지 입을 열려는데 손을 홱 들었다 내리치면서 말했다.
“보았지? 네 말대로 문명하게 슬슬 어루만져서 되니? 무력으로 짓밟아버려야 한다.”
그런데도 철주는 애비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아버지, 이럴수록 어루만져야 해요. 제대로 어루만져주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생깁니다. 창고에 썩어나는 쌀이랑 굶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줘 보세요. 이러겠는가? 채찍질을 하면 할수록 그들은 두려워하는 척하지만 속으론 복수하려고 듭니다. 그 놈들은 기회만 있으면 불을 지르고 사람까지 죽이면서라도 복수하려고 해요.”
그러나  한길수는 들을 리 만무했다.
“개소릴 작작 쳐!”
한길수는 철주의 손을 뿌리치고 중문 쪽으로 나갔다.
불길은 활활 타 번져 몸채에도 달려 기와 장마저 우당탕 탁탁 튕겼다.
성칠은 황급히 초라한 사랑방에 다가갔다. 불길이 타는 사랑방 앞에는 보초병이 총을 쥐고 지키고 서있었다.
성칠은 상호의 귀에 대고 뭐라고 말하더니 뒤로 돌아갔다.
상호가 “불이야!” 하면서 삽을 들고 보초병한테로 달아갔다.
그러자 보초병은 팔을 벌려 막아서며 소리쳤다.
“오지 말라!”
푹!
뒤로 돌아간 성칠이 어느새 보초병의 허리에 시퍼런 비수로 푹 찔렀다.
보초병이 쓰러지자 상호가 보초를 서고 성칠은 사랑방문을 살며시 열고 쑥 들어갔다.
딱!
불시에 날아드는 몽둥이에 성칠의 눈앞에 불티가 튕겼다. 재차 날아드는 몽둥이를 팔로 막았다. 여겨보니 어린애가 몽둥이를 쥐고 눈을 부릅뜨고 쏘아보는 것이었다.
“오빠!”
저쪽에서 묶인 채 앉아있던 은녀가 다급히 소리쳤다.
“은녀야.”
성칠은 은희를 묶은 바 줄을 풀고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저 앤 누구냐?”
성칠이 묻자 은녀는 “저앤 덕팔 오빠네 아들 철규오.”
“오, 그래.”
성칠은 철규한테 다가가 “떡 서있지 말구 빨리 여길 나가자.” 하고 말하면서 손을 잡아끌었다.
그들은 사랑방에서 나와 곧추 왁작거리는 사람들 틈새로 빠져 대문 밖으로 달아났다.
자위대 병졸들과 보초병들마저 불을 끄다나니 그들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들의 등 뒤 토성 안에서 불길이 세차게 타 번져 눈에 뒤덮인 들판과 산이 대낮 같았다. 실로 통쾌하게 타 번지는 불길이 캄캄한 야밤을 오래 동안 기적처럼 밝게 비추었다.
철규와 은희는 묶이었다. 그러나 큰 쥐 한마리가 대들보를 타고 쪼르르 내려오더니 철규를 묶은 바 줄을 싸각싸각 갉아먹었다. 한참 후에는 손목을 묶은 바 줄이 뚝 끊어졌다. 그리하여 자기절로 바 줄을 푼 철규가 은희의 바 줄을 풀자고 하는데 바깥에서 왁 짝 떠드는 소리가 났다.
철규는 부지깽이를 찾아들고 문 뒤에 숨었다가 문을 열고 성큼 들어온 사람의 머리를 딱 내리쳤던 것이다. 그런데 들어온 사람이 자기기 그렇게 존경하는 성칠 큰아버지일 줄은 생각지도 하지 못했다.
한참 후 불길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악이 날대로 난 한길수는 집이 불에 탄 분풀이를 하려고 몽둥이로 꾸물거리지도 않는 마대안의 놈을 재차 죽으라고 땅땅 팼다.
맥이 빠져 더 칠 수 없자 한길수는 헐헐거리면서 응삼을 보고 “마대를 풀어라. 도둑놈이 어떤 놈인가 보자.” 하고 말했다.
영팔이 피가 질벅이 물든 마대 아궁이를 풀고 마대를 거꾸로 들었다. 타오르는 불길에 거꾸로 떨어진 자의 뇌 장이 다 흘러나온 것이 피뜩 보였다. 피 못이 된 머리를 발로 툭 차 번져 보는 순간 모두 자기 눈을 의심했다.
“아이고, 이게 가시아버지 아니요? 아이고.”
그 소리에 월선은 저쪽 부엌간으로 들어가 손을 씻다가 황급히 바깥으로 달려 나왔다.
그는 봉이눈을 부릅뜨고 피 못속에 쓰러진 친정아버지를 보자 눈 바닥에 풀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이고, 불쌍한 우리 아버지, 저 우둔한 영감에게 맞아 세상 떠났소. 아이고, 내 아버지야. 흐흐흑, 흑흑, 아이고.”
그러자 한길수는 몽둥이며 괭이자루를 툭툭 차면서 두덜거렸다.
“젠장, 자기도 때려가지고 무슨. 에이 참. 재수 없어.”
그러다 말고 그는 머리를 돌리더니 영팔을 불렀다.
“오늘 불이 난 게 거저 일이 아니야. 내 가시아버지를 누가 마대 안에 넣고 제일 먼저 쳤는가? 당장 붙잡아내라.”
“예. 당장 조사해 내겠습니다.”
청청 하늘이여, 눈보라치는 하늘이여, 이 야밤에 때 아닌 겨울밤에 마른 불벼락이 내리다니. 참말로 옛말 같고 전설 같은 생벼락이 아니겠는가!
                            

                           3.
역습


       산더미 같은 불길이 활활 타 번져 영월동 토성 안 한씨네 집을 또 삼켜버렸다. 몇 해 전에 뒤이어 두 번 채 불이 달렸던 것이다.
몸채 팔간대청과 사랑방, 마구간이 불에 탄데다 불을 끄면서 물을 쳐놓아 집안은 더구나 쑥대밭이 돼버렸다. 성칠이 집안에도 불을 질러놓아 비단옷과 이불을 얹어놓은 농짝과 옷궤가 몽땅 불타버렸다.
      한길수는 엉망진창이 된 집을 돌아보고 가슴을 탕탕 쳤다. 저쪽에서는 월선이가 친정아버지 시체를 안고 “아이고.” 데이고를 부르면서 땅바닥을 신짝으로 짝짝 쳐댔다.
     막다른 개 담장을 뛰어넘는다고 한길수는 이대로 한숨이나 쉬고 물앉고 말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말상을 찡그리고 말 이발을 사려 물고 뿌드득 뿌드득 갈더니 발길로 불이 붙는 기둥을 탕 차 넘겼다.
“영팔아! 사랑채 년 놈들을 끌어오라. 껍데기를 발라 버릴 테야.”
그런데 영팔은 중문을 나가 사랑채 앞에 나갔다가 "앗!" 비명을 질렀다.
보초병이 피 못 속에 쓰러졌던 것이다.
사랑방에는 토막토막 끊어진 바 줄이 남았을 뿐 은희와 철규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영팔은 황급히 중문을 꿰질러 불길이 타오르는 몸채 앞에서 노발대발하는 한길수 앞으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한 대장, 다 달아 났습니구마!”
길수는 번대 머리를 손바닥으로 탁 쳤다.
“뭐라고? 보초병은?”
“허리에 비수를 맞고 죽었습구마.”
“맞구나. 독립군이 아니면 성칠이 포수대 사냥꾼들을 데리고 와서 한 짓일 게다. 검둥이가 왔다 갔다 하더니 정말 성칠 놈이 왔구나.”
펄쩍 뛰는 한길수의 우멍 눈에서 불티가 일었다.
“맞아, 그 놈들이 멀리 달아나지 못했다. 그 놈들도 이 엄동설한에 자지 않고 수림 속으로 달아났겠느냐?”
그는 영팔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쑤군거렸다.
“예.”
한길수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쓱 뽑아 철컥 장탄하고는 말에 올라탔다. 그는 자위단 병졸들을 끌고 대문 밖을 달려 나갔다.
야마모도 소장은 “재수 없이 주흥을 깼어.” 하고 두덜거리더니 가메다와 류강철을 데리고 화재현지를 떠나 림산파출소로 쓰는 병완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한편 성칠은 그만하면 복수했다고 생각했다. 비록 한길수는 죽이지 못했지만  집을 불태워 버렸고 한길수의 가시애비를 죽이지 않았는가. 
       성칠 등은 수림 속으로 달아나려고 상호네 집에서 서두르고 있었다.
       그들이 문을 열고 나설 때였다.
       땅땅!
말의 호용소리  들리고 총소리까지 울렸다.
피뜩 보니 한길수가 적토마를 타고 손을 홱 휘둘렀다. 자위대원들이 울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성칠 놈아, 네놈이 여기 있은 거 안지 오래다. 빨리 오라를 받아라!”
성칠은 문을 닫고 상호 네를 보고 뒷문으로 달아나라고 하고는 뒤에서 총을 쏘면서 엄호했다.
“집에 불을 질러라! 몽땅 죽여라!”
한길수의 고함소리에 자위대원들이 불을 질렀다. 바깥에서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검둥이가 바깥에서 한길수가 탄 말에 덮쳐들어 뒷다리를 물었다. 놀란 적토마가 “오 호 홍-” 하고 앞다리를 쳐들었다가 내리며 냅다 달아났다.
성칠이가 뒤를 피뜩 돌아보니 상호랑 뒷문을 열고 울타리를 거의 벗어나고 있었다.
이때 뒤에서 또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다.
벽에 와 총알이 푱 푱 박히는 소리가 들리고 비명소리도 들렸다.
성칠은 황급히 뒤울안으로 뛰어갔다. 숱한 자위대원 놈들이 총창을 비껴들고 상호와 육박전을 벌리고 있었다. 명순은 총알에 맞았는지 가슴을 움켜쥔 채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고 은녀의 부축을 받으면서 겨우 서있었다.
성칠은 모젤권총으로 자위대원들에게 연발사격했다.
땅! 땅! 땅!
자위대 병졸 몇 놈이 쓰러졌다.
겁을 먹은 나머지 놈들은 와 하고 흩어져 달아났다.
“빨리 뒷산으로 뛰어라!”
성칠의 고함소리에 병수가 명순을 제꺽 업고 뒷산으로 달려갔다. 은녀와 은희, 철규도 뒤따라 종 주먹을 쥐고 달아났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은희가 종아리를 붙잡고 폭 꼬꾸라졌다. 은녀가 되돌아와 은희를 껴안아 일으켜 부축해가지고 달아났다.
말을 탄 자위대원 놈들이 쫓아왔다.
은희는 은녀를 활 밀어내면서 고함쳤다.
“날 관계하지 말고 빨리 달아나. 다 붙잡히겠어.”
“아니야. 어찌 널 두고 달아나니?”
은녀가 되돌아와 은희를 부축하려고 했다.
은희가 새된 소리를 쳤다.
“빨리 달아나라.”
그때 자위대원 놈들이 주린 이리떼처럼 덮쳐와 은희의 팔을 비틀어 땅바닥에 꺼꾸러뜨렸다. 은녀는 은희가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할 수 없이 언 버드나무가지들을 헤가르면서 개울가 쪽으로 도망쳤다.
성칠과 상호는 벽에 붙어 서서 자위대 놈들에게 사격을 가하면서 철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서쪽 구새 목 쪽으로 굽이를 돌면서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순간 바 줄이 날아와 상호의 목을 옭아맸다.
구새 목에 숨었던 자위대원 놈들이 던진 올가미에 걸렸던 것이다.
성칠이 모젤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절컥, 절컥, 총알이 없었다.
“저 놈이 총알이 없어!”
“하하하. 어디로 달아나?!”
자위대원 놈들은 총창을 비껴들고 모여오더니 또다시 포위망을 좁혀왔다.
한길수도 적토마를 타고 되돌아 덮쳐오면서 고함쳤다.
“저놈들을 생포해라!”
성칠은 비수를 꺼내 자위대원 놈이 상호의 목을 올가미로 끌어당기는 바 줄을 끊으려고 내리찍었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았다. 당황해난 성칠은 자위대원 한 놈을 찍어 눕혔다. 그때 다른 놈들이 일제히 총창으로 성칠의 가슴을 겨누고 찔렀다. 성칠은 구새통을 탁 차면서 몸을 날려 울타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끌려가는 상호를 보면서도 독불장군이라고 용빼는 수가 없었다. 복수심으로 불타오른 그는 마지막으로 적토마를 탄 한길수에게 비수를 날렸다.
“오- 호- 홍!”
한길수가 납작 엎드리자 말이 쳐든 목에 비수를 맞고 네 굽을 안고 냅다 뛰었다.
그 바람에 몇몇 자위대원 놈이 말발굽에 짓밟혀 비명을 지르면서 꺼꾸러졌다.
성칠은 손에 쇠붙이도 없는지라 눈 깔린 버들방천 속으로 뛰어갔다.
푱 푱! 푱! 푱!
성칠의 옆과 앞에서 날아오는 총알에 눈꽃이 튕겼다.
성칠은 날아오는 탄알을 피해 운주하강바닥으로 해 뻗은 뒷산골짜기로 달아났다.
영팔이 자위대원들을 끌고 골짜기로 쫓아가려 할 때다.
“뒤쫓지 말라!”
영팔은 권총으로 중절모자 채양을 춰올리며 물었다.
“성칠은 탄알 다 떨어졌습구마. 추격하면 생포할 수 있습구마.”
“매복이 있을 수도 있다. 돌아가자!”
“예.”
영팔은 권총을 쥔 손을 홱 저었다.
놈들은 상호와 은희를 끌고 개울가를 에돌아 천천히 나갔다.
원래 한길수는 전날 검둥이가 토성 밑에 왔다가 자기 사냥개 누렁이들과 싸우다가 쫓기어가기까지 한 것을 알고 영팔을 보고 검둥이 발자국을 따라가 보게 했다. 그리하여 일부 자위대원 놈들은 엄창렬의 집에 수상한 자들이 있다는 것으로 추측하고 매복 진을 치고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집에는 명순 밖에 없고 의심스러운 자들이 나타나지 않아 손을 쓰지 못하였었다. 그러다가 밤중에 토성 안에 불길이 타오르고 검은 그림자들이 엄창렬네 집쪽으로 우르르  끌어다가왔다. 뒤이어 한길수와 영팔 등이 덮쳐오자 포위권을 좁히면서 기습했던 것이다.
       올가미에 목을 매운 상호는 두 손으로 올가미를 잡고 아무리 안간힘을 다 써서 풀려고 해도 용빼는 수가 없었다. 
       영팔 일당은 개 잡은 포수들처럼 득의양양해 꽁꽁 묶인 상호와 은희를 끌고 림산파출소로 돌아갔다.
          눈보라 치는 개울가의 언 버드나무가지들이 몸부림치면서 윙윙 애처로운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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