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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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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3)
2015년 08월 28일 16시 43분  조회:2377  추천:1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제2권)
                                    
                                   김장혁 저

                         
                                  
                                             
7 흑야

               1. 수림 속의 바위돌

       먹물을 뿌려놓은듯 한 칠칠흑야, 서쪽 밤하늘에 걸려있는 가냘픈 눈썹 초생 달이 봄바람에 스쳐 바르르 떨고 있었다. 잔설이 뒤덮인 아득히 먼 기운봉 아래 뭇산들은 검은 장막 속에 파묻혀 거뭇거뭇한 몸뚱이를 웅크린 채 취한 듯이 굳잠에 빠져 있었다. 늦잠을 자던 기운봉 기슭의 산발들이 무섭게 내리누르는 어둠을 털어버리고 창공을 떠받고 일어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둠의 장막은 걷힐줄 모르고 점점 더 어둡게 고향의 산발들을 감쌌다. 어찌나 어두컴컴한 밤인지 주먹으로 불시에 얼굴을 들이쳐도 눈치 채지 못할 캄캄하고 갑갑한 흑야였다.
       어둠에 짓눌린 방안에서 병완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담, 가담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겨우내 길닦이를 하지 않은 동안이나마 집에서 조용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지만 근심스러운 일은 태산 같았다.
       끼무라는 그가 총 도감이라고 영월동이나 운주동에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였고 그의 아내 성희나 며느리 하옥을 옥에서 풀어주었다. 그 “덕분”에 지지리 지루한 이태 사이에 그는 집에서 잠시나마  한집 식구들과 함께 살 수 있었다. 그는  이태나 인부들을 데리고 경성으로 통하는 큰길 닦기에 나섰다. 하지만 끼무라가 인부들의 삯전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제대로 주지 않아 골치 아팠다.
   (삯전을 주지 않으면 인부들이 뭘 먹고 산단 말인가? 원삼이네 삼형제가 길닦이 공지에서 빠져 집으로 잘 달아났지. 일본 놈들을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 지경이야. 언제 삯전을 줄지 알 턱이 있느냐? 쳇, 일본 놈들은 이젠 사냥도 하지 못한다지 않는가. 성칠과 숱한 사냥꾼들을 체포하려고 미쳐 날뛰지! 성칠은 어데 가서 헤매는지? 그 놈이 무사해야 되겠는데. 자식, 이태 동안이나 종무소식이니 속이 타서 이거 원 어디 살겠는가? 자식이 상호와 동욱이랑 숱한 마을 청년들을 데리고 갔잖은가. 기별이라도 할 게지. 원, 서른도 넘은 놈이 이젠 부모들 심정도좀 알아야겠는데. 참, 애를 낳아 길러 보지 못한 놈이 돼서 저럴까. 쯧쯧.)
    병완은 너무 답답해 자리에서 일어나 성희를 깨울세라 조심조심 담배통을 당겨다놓고 담배를 한 대 말아 물었다. 부시까지 손더듬질해 찾아 쥔 그는 부시를 척척 켜서 겨우 담배를 붙였다.
    속이 탄 그는 담배를 길게 빨았다 후- 내뿜었다.
   (일본 놈들의 경찰국 사무 청사는 무너지지도 않고 아직도 보기 싫게 서있지 않는가. 나무벌레들이 몇 해 지붕틀과 대들보, 기둥이랑 구멍을 뚫어 무너지게 만들까? 확실히 나무벌레가 기둥뿌리를 파먹는 소리가 까닥까닥 났는데. 언제 쾅 무너지겠냐?)
   후~ 병완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일본 놈들이 이 고향에 있는 한 배불리 먹고 살 날은 없어. 그런데 무슨 힘으로 일본 놈들을 몰아낸단 말인가!)
   병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즘엔 황무지에 일군 밭에마저 나무를 심어라고 지랄이지 않는가? 어떻게 일군 밭이라고 그래. 이건 굶어 죽으라는 게 아니고 뭔가?)
   병완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고 살 길이 막막했다. 온밤 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자리에 누워 눈을 조금 붙였다.
동녘이 푸름해지자 그는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바깥에 나가 지게에 재를 퍼 담아 메고 산기슭으로 올라갔다.
    그는 지게의 재를 쏟아 바위와 바위 사이에 가면서 삽으로 펴놓았다.
    싸늘한 해가 뜨자 성희가 문을 열고 나와 재를 버리려다가 삽으로 재를 지게에 퍼 담는 병완을 발견했다.
   “여보, 신 새벽부터 어쩌자고 이래요?”
   병완은 삽으로 재를 지게에 퍼 담으면서 볼 부은 소리를 했다.
  “밭에 나무를 심으라는데 어디 입에 풀칠이나 하겠소? 바위 돌 틈에라도 재를 펴놓고 메밀이라도 심어야겠소.”
   성희는 함지의 재를 버리려다가 말고 땅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바위돌 틈새에 메밀을 심어서야 몇 알 거둔다고 그래요?”
   “그래도 어쩌겠소. 한 마대라도 거두면 얼마나 좋겠소?”
   그때 하옥이도 밥을 지어놓고 나와 시부모를 따라 함지에 재를 담아 이여다가 바위돌 틈새에 폈다.
    병완은 십여 일 동안 낮에는 마을 앞에 가서 길을 닦는 일을 감독하고 이른 아침이면 재를 지게에 져다가 바위돌 틈새에 펴놓았다.      그 덕에 한헥타르나 되는 새 “바위돌 밭”을 일구었다.
   한달 푼히 지나니 기운봉 기슭의 뭇 산에 드문드문 뒤덮였던 잔설이 녹고 봄바람이 훈훈히 불어왔다.
   서산의 수림 속 어디선가 뻐꾸기가 “뻐꾹" "뻐꾹” 봄소식을 알리고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지종지종 제창 좋은 파종 계절이 왔다고 기별을 전했다.
   봄은 농사꾼들에게는 희망의 계절이었다. 봄에 씨앗을 많이 뿌리면 올해는 풍작을 거둬들여 배불리 먹고 살리라는 희망이 가슴을  부풀게 했다. 그러나 일제 놈들에게 짓밟힌 가을에는 농사군들의 봄에 싹튼 희망과는 달리 실망을 안겨 주군 하였다.
   (올해는 어떨지?)
   병완 일가는 몽땅 동원돼 바위 돌 틈새에 재를 펴고 나무꼬챙이로 재를 찔러 구멍을 낸 후 메밀 씨를 뿌려 넣고 잘 파묻어놓았다.
  병완은 쉼에 나무꼬챙이를 너럭바위에 놓고 셋째 며느리 잔등에서 넷째 손자 상순을 뽑아 높이 쳐들었다가 품에 꼭 끌어안고 볼을 자기 얼굴에 대고 비볐다.
   “낯이 길쭉한 게 제 애비를 똑 떼 닮았구나. 이 쌍까풀눈을 봐라.”
   기준은 옆에서 허리 쉼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거 세 귀 눈을 보시오. 딱 아버지 안질 같지 않은가.”
  그 말에 병완은 밭고랑 같은 주름살을 쫙 펴고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래? 어디 보자. 이 놈이 정말 세 귀 눈이구나. 허허허. 한대 건너 날 닮았구나. 이 놈이. 정말 고와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다.”
  “할아버지, 앵~코, 앵~코 하자.”
  “그래, 그래. 앵~코 하자.”
  병완은 상순을 안고 너럭바위에 누워 발우에 상순을 올려놓고 “앵~코-” “앵코-” 하면서 다리를 올렸다 내리웠다 했다.
  상순은 좋다고 야단쳤다.
  그 모습을 보고 기준과 사련은 마주 바라보며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한참 후 병완은 상순을 안고 일어났다.
  사련이 상순을 안아갔다.
  병완은 기준과 창준을 불렀다.
  “얘들아, 너희들도 운주동 산기슭 바위돌 틈에 재를 펴고 메밀을 심어라.”
  기준은 볼 부은 소리로 말했다.
  “이런 바위틈에 메밀을 심어 몇 알 거두겠습둥?”
  병완은 눈을 흘겼다.
  “한 마대라도 거둬 보리고개를 넘는데 보태야지. 새해부터 일본 놈 새끼들이 밭에 나무를 심으라는데 뭘 먹구 살겠냐?”
  기준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거 일본 놈들 성화에 어디 견디겠습니까? 일본 놈들을 몰아내지 못할 바에야 아버지 말씀대로 만주에 가면 어떻습둥?”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글쎄 말이다. 헌데 한평생 살아온 고향을 버리고 어떻게 만주로 간단 말이냐? 려생 할아버지 대부터 조상들의 산소가 모두 여기 명천에 모셔졌는데 어떻게 버리고 가? 불효자식이라고야.”
  그때 성희가 끼어들었다.
  “난 안가. 남쪽 충청도 한산면에 둔 고향을 떠나 입북한 것만 해도 그런데 또 두 번째 고향 같은 명천을 버리고 만주로 가? 안가, 난 안가!”
   그 말에 병완은 눈을 흘기었다.
   “또, 또 그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애들이 당신 한산 리씬 걸 몰라 줄까 봐 그러오? 쳇, 지금 충청도나 서울엔 여기보다 일본 놈들이 더 욱실거린다오. 거기 가 살겠으면 살아보우.”
   성희는 독기어린 영감의 눈길을 피하더니 굽은 허리를 쭉 펴면서 기준과 창준에게 손으로 삿대질 했다.
  “너거(너네),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다신 만주로 간단 말 하지 마! 만주에 가 아내를 되놈들에게 빼앗기려고 기래? 애들도 몽땅 되놈 색시 얻으려고 기래? 안 된다. 안 돼!”
   무두들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였다.
  한참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거 총 도감이 아닌가? 길닦이는 하잖고 여기서 뭘 하는가?”
  바위돌 틈새에서 기어 나왔나. 능구렁이 같은 한길수가 야마모도 소장과 함께 일본 헌병들과 자위대 놈들을 끌고 이 깊은 야산에까지 나타날 줄이야.
  “여기서 뭘 해?”
  병완은 너럭바위에서 일어나 손바닥의 먼지를 툭툭 쳤다.
  “입에 풀칠이나 하자고 메밀을 심네.”
  야마모도 소장이 안경을 벗어 안경알을 수건으로 닦아 다시 눈에 걸었다.
  “으흠, 조선 사람 말이 아냐. 산에 나무를 심지 않고 자꾸 곡식 심어?”
  뒤이어 야마모도는 손사래를 쳐댔다.
  “안 돼, 안 돼. 몽땅 나무를 심어야 돼!”
  그러자 괭이자루를 꽉 틀어쥔 병완의 소발쪽 같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생각 같아서는 괭이로 야마모도 놈을 콱 찍어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애들의 장래를 봐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용케도 참아 냈다.
  “당신 말대로 밭에 나무를 다 심구 그래 우리 굶어 죽으래? 되지도 않을 소릴 하지도 말라.”
  기준은 옆에서 황소숨을 몰아쉬더니 참지 못하고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여긴 내 고향이야. 네깐 일본 놈들이 뭔데 내 고향 땅에 메밀마저 심지 못하게 하느냐?!”
  류강철이 그 말을 통역해주자 야마모도는 군도를 뽑아들고 기준한테 달려들었다.
  “바새끼! 죽어, 죽었소까!”
  기준은 병완의 손에서 괭이를 빼앗아 쥐고 날아드는 군도를 막아냈다.
  “그만 둿!”
  이때 등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모두 머리를 돌려보니 끼무라가 경찰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기준과 야마모도는 괭이와 군도를 거두었다.
  끼무라는 군도자루를 잡고 헐금씨금 병완의 앞에 다가왔다.
  “총도감, 근심하지 말게나. 여기에 메밀을 심어 먹었소. 길만 잘 닦으면 돼.”
  그러나 병완은 오히려 오만상을 찡그렸다.
  (내 굶어 죽어도 네 놈들 쌀을 먹을 것 같으냐?)
  교활한 끼무라는 야마모도 소장을 책망하는 척 했다.
  “자넨, 림장이나 잘 지키라고. 하필 총도감이 묵밭을 일구는 걸 가지고 시비할건 뭔가? 빨랑빨랑 림장에 가.”
  이번엔 몸뚱이를 한길수에게 돌렸다.
  “한 대장, 자꾸 총도감과 이러지 말게나. 둘이 힘을 합쳐 대일본 제국의 일을 많이많이 도우란 말이야.”
  “하이!”
  한길수가 일본 말로 대답하면서 군례까지 척 붙이었다.
  병완은 구역질이 나 침을 “퉤!” 뱉었다.
  “원, 더러워서 못살겠어.”
  병완은 떠나가 버리는 일본 놈들과 발발이 같은 한길수 뒤에 대고 줄 욕을 퍼부었다.
  “흥! 나를 우습게 보는구나. 총 도감? 길만 다 닦으면 헌 신짝 버리듯 할 게 뻔하다. 쳇, 저 놈들이 보기 싫어서 만주국에 가버려야겠다.”
  성희는 병완을 말리였다.
  “만주에 간다고 잘 살 것 같아요? 전번에 본가 집에 가보니 서울이나 충청도 한산은 몽땅 일본 놈들의 세상으로 됐더구먼요. 오랍동생이 말하던데요. 우리 고향 마을에서 만주로 간 사람들이 그러더라나요. 만주에선 만족과 되놈 강도들이 여편네를 마구 빼앗아 간다던데요. 괜히 만주로 가서…”
   병원은 단마디로 노친의 말을 잘라버리었다.
  “됐소, 됐어. 물론 여기서 저 놈들의 비위를 맞춰 주면 그럭저럭 살 수는 있소. 그러나 만주의 개나 돼지처럼 살지언정 일본 놈들의 총 도감이나 하면서 살진 못하겠소.”
  병완은 얼굴을 기준에게 돌리었다.
  “기준아, 내 먼저 만주로 들어가 어떤가 두루 돌아보고 오마.”
  기준은 말려 나섰다.
  “아버지, 내 들어가 보겠습꾸마. 아무래도 여기 고향에서 살 것 같지 못합꾸마. 아버지가 한길수를 외눈깔을 만들어놨지. 이태 전에 내 또 영팔과 승만을 때려눕히지 않았습둥? 저 놈들은 우릴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자꾸 걸고들어 못살게 굴게 뻔합꾸마.”
  병완은 한참 먼 남산을 쳐다보면서 묵묵히 고민하더니 머리를 힘없이 끄덕였다.
  갑자기 성희는 바위 돌 사이에 폴싹 물앉더니 엉엉 대성통곡 쳤다.
  “만주에라고 일본 놈들이 없겠느냐? 전번에 고향에 갔다가 들었는데 간도 용드레촌에도 일본 놈들이 득실거린다더라.”
  그래도 병완은 고집을 부렸다.
    “일본 놈들이 만주 산골에까지 갔겠소? 일본 놈들이 없는 산골에 가서 땅굴을 파고 살면 그 놈들인들 어쩐대?”
   말이 쉽지 고향 땅을 버리고 이국의 낯선 타향에 가서 어떻게 살겠는지 기약이 없었다.
  모두들 맥이 풀려 더 일하지 못하고 성희를 부축해 괭이를 메고 메밀 씨 함지랑 이고 안고 집으로 내려갔다.
    소 잔등 같은 바위돌들만이 엉거주춤들 물러 앉아 한숨을 풀풀 쉬면서, 멀어져가는 불쌍한 주인들을 바래고 있었다.


        2. 운주동 서당방


    가지 많은 큰 나무 바람에 잘 새 없다고 최구장은 점점 많이 늘어난 자손들의 앞날이 막막하기만 했다.
최구장은 곰방대를 뻑뻑 빨면서 네 살 밖에 안 되는 명옥이 베실을 삼다가 까딱까딱 자부는 것을 보고 곰방대로 이마를 딱 쳤다.
    “아가!”
   “요년 가시나, 초저녁부터 자고 언제 밥값을 하겠냐?”
   자불다가 명옥은 너무 아파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었다. 그 애는 눈을 비비더니 베실을 삼아 모대기에 감았다. 허나 14대 장손 봉인은 정주간에서 단잠에 빠져 코를 다랑다랑 골고 있었다.
  명옥은 잠기 가득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저녁 늦게까지 베실을 뽑아내 감고 또 감았다.
  최구장은 자불면서 베실을 뽑는 조그만 손녀가 불쌍해났다.
  “명옥아, 너도 자고 내일 일찍이 일어나 베실을 뽑아라. 가시나, 밥값을 해야 죽이라도 먹지.”
  “예, 내일 베실을 많이 뽑겠습꾸마.”
  명옥은 좋아라고 일어나 베실을 감아치우고 봉인의 곁에 가서 두 다리를 꼬부리고 굳 잠에 빠져버렸다.
  최구장은 집 안에서 갑갑하여 바깥으로 나가 검은 구름 속에 어슴푸레 보이는 달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검은 하늘에서 보슬비가 보슬보슬 떨어졌다. 최구장은 가슴이 옥죄여 드는 것 같아 마루에 내려 보슬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차라리 비를 흠뻑 맞아 온몸의 근심을 씻어버리기라도 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이일 저일 생각하니 당장 숨이 넘어 갈 것만 같았다.
   “이젠 묵밭도 마음대로 일구지 못한다지. 밭에다 나무를 심어야 한다지. 사냥도 하지 못하고 버드나무를 베지도 못한다지. 뭘 먹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래 이 땅이 일본 놈의 땅으로 됐단 말인가? 아, 나라가 망하더니 망국노 신세로구나. 이게 바로 망국노 설음이구나.)
   최구장은 바쁠 때일수록 병완과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난 이 고향 땅을 쉽게 버리고 만주로 들어갈 수 없어. 지식으로 이 땅에서 일본 놈들과 싸워보자. 일본 놈들은 메이찌 유신 후에 세계 선진 지식과 기술을 끌어들여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그 놈들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 아는 것이 많고 힘이 있기에 우리 나라를 먹어치우고 우리 땅에 발을 붙인 게 아닌가? 무지몽매는 오랑캐 놈들에게 짓밟히는 제일 큰 원인인 거야. 우리 후손들을 더는 무식해 오랑캐 놈들에게 억눌리면서 살게 할 수는 없다.)
  그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부르르 떨었다. 지루한 어둠속에 흩날리는 보기 좋던 은빛구레나룻도 원형을 잃고 말았다.
  (이 지루한 밤이 언제면 개일까?)
  최구장은 한숨을 길게 쉬면서 마루에 올라가 갓을 벗어 비 물을 툭툭 털어 마루기둥에 걸어 놓았고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 먹장구름이 뒤덮인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얼음조각 같은 해라도 조금 떠서 비췄으면 좋으련만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아침술이 떨어지기 바쁘게 최구장은 맏아들 경숙을 보고 흑판을 만들라고 했다. 아버지 뜻을 안 경숙은 아버지와 함께 구새 목에 몇 해 놔두었던 통나무 몇 개를 맞들어 마당에 가져왔다. 그는 큰 자귀로 통나무를 풍풍 찍어낸 후 대패로 빤빤하게 밀어 다듬었다. 이윽고 나무판자를 대고 숯 검댕이 칠을 하니 제법 자그마한 흑판이 됐다.
  한동안 일본헌병들이 서당에서 조선 글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여 최구장은 흑판마저 없애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백절불굴하고 제일 위방에 흑판을 다시 만들어 세웠다.
  그날부터 그는 서너살 밖에 안 되는 손자들인 봉인과 봉순, 봉문을 흑판 앞에 앉혀놓고 글을 가르쳤다.
  며칠 지나자 소문을 듣고 마을의 사돈 기준이 아들 상우와 상순을 데리고 왔고 신설동의 열서너 살 되는 형내도 다시 서당에 왔다.
  “얘들아, 글을 배워야 한다. 글을 모르면 남들에게 짓밟히게 되느니라. 성현들의 글에는 우리가 모르는 지혜와 새 세상이 있느니라.”
학부모들인 기준과 상철이 등도 모두 개학하는 날에 모여와 애들과 함께 공부했다.
  “오늘부터 천자문을 가르치겠다. 처음 글자는 ‘천’이라고 읽는다. ‘천’ 자는 하늘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따라 읽어보자. 하늘 ‘천’.”
  “하늘 ‘천’!”
  서당에는 최구장을 따라 애들이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왔다. 그 낭랑한 글 읽는 소리는 절에서 중이 염불하는 소리처럼 느릿느릿하면서도 노래 소리처럼 절주 있게 들려왔다.
   “하늘 천, 따 지, 누를 ‘황’, 가물 ‘현’.”
   “참 잘 읽었다. 그럼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면서 써 봐라.”
   애들은 종이나 붓이 없는지라 미리 준비해가지고 온 모래판에 나무꼬챙이나 손가락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면서 써내려갔다. 애들이 제대로 쓰지 못하면 최구장이 돌아가면서 손을 잡고 한 획 한 획 쓰는 연습을 했다.
   형내는 몇 해 전에 배운 적이 있어 작은 선생이 되여 옆에 앉은 애들의 손을 잡고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좀 큰 애들은 괜찮았는데     봉문이랑은 세 살 밖에 안 되는지라 제대로 따라 쓰지 못했다.
   이때 아래방에서 “잉잉” 여자애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웬 일이냐?”
  모두들 아래 방을 내려다보았다. 네 살 밖에 안 되는 명옥이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서당 문어귀에 서있었다.
최구장이 성난 눈길로 명옥을 보면서 물었다.
   “저 년 가시나, 어째 떠드느냐?”
  명옥은 어머니의 손에서 빠져나와 서당에 뛰어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할아버지, 나도 공부하겠습구마.”
  그러자 최구장은 명옥을 쫓아내면서 꾸짖었다.
  “이 년 가시나, 계집애가 공부를 해 뭘 해? 넌 가서 베실이나 뽑아라.”
  그러나 명옥은 몸을 뱅뱅 탈면서 떼를 썼다.
  “싫습니다. 나도 봉인 오빠처럼 공부를 하겠다 ~ ”
  “이 가시나, 나가지 못 할까?!”
  순간, 상순이가 코를 풀쩍거리면서 “명옥아, 여기 내 옆에 앉아 공부해라.”라고 하면서 엉덩이를 옆으로 움직여 앉을 자리를 내놓았다.
   기준은 상순의 말에 어이없어 희죽이 웃기만 했다.
  경숙이 보다 못해 달려와 칭얼거리는 명옥을 안아 정지로 내려갔다.
  그는 명옥을 옥실에게 안겨주면서 책망했다.
  “애를 보지 못 하고 뭘 하오?”
  옥실은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우는 명옥을 받아 안으면서 남편에게 눈을 흘기었다.
  “계집애는 공부를 하면 못씁둥?”
  “가시나가 공부를 해 뭘 해? 베실이나 뽑고 빨래나 하고 밥이나 지으면 되는 거지. 쯧쯧. 아버지가 화를 내면 어쩌자고. 다신 그런 소릴 하지 마오.”
   옥실은 명옥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도도 거렸다.
  “공부는 뭘 사내들만 하라고 날 때부터 써 놓았다오?”
  “그만 하오. 숱한 사람이 듣는데.”
  경숙은 위방을 올려다보면서 눈까지 끔쩍해보이었다.
  그러자 옥실은 입을 다물고 명옥을 안고 달래였다.
  “일 없어. 오빠가 먼저 글을 배우면 오빠한테서 배우면 된다. 울지 말라. 이젠 끝여라.”
  그래도 명옥은 흑흑 흐느껴 울었다.
  위방에서는 문을 꼭 닫았는데 최구장이 글을 설명하는 소리만이 들리었다.
  “‘천지황현’이란 뜻은 이러하느니라. 옛날에 하늘땅이 가물고 몽땅 누르러 갔다는 뜻이니라. 생각해봐라. 이런 하늘아래 누런 땅에서 가물어 곡식이 여물 수 있겠느냐?”
  “없습구마.”
  형내는 배운 적이 있어 제꺽 대답했다. 옆에서 듣던 상철과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최구장은 마른기침을 하며 애들에게 말했다.
  “아래에 하늘 ‘천’자에 깃든 ‘녀아의 전설’을 이야기해주겠다.”
  “와우, 좋다.”
  애들이고 어른이고 귀를 가시고 들었다.
  “먼 옛날 태고 적에 하늘에 구멍이 펑 뚫렸지. 그래서 하늘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땅에는 가뭄이 형편없이 들어 곡식이 다 쓰러졌단다. 그래서 녀아는 중국 곤륜이란 산에 가서 바위 돌을 깨서 불에 녹여서 파 난 하늘을 기웠단다.”
  “와~ 대단한 여자야.”
  애들이 감탄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한사람이 드나들 만큼 기울 녹인 용암이 모자랐단다. 그래서 녀아는 사람들을 살게 하려고 자기 몸으로 나머지 하늘 구멍을 막았단다. 그때부터 하늘 구멍이 막혀 사람들이 곡식을 심어도 잘 자라서 잘 살게 되였단다.”
   “와~ 정말 대단한 녀아로구나.”
   “그래, 참말 대단해.”
  최구장은 눈을 지그시 감고 애들의 감탄소리를 들으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공부는 이만하자.”
  애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옛말을 들으니 재미있다고들 했다.
  며칠 후 최구장은 애들이 배운 것을 다 익히자 그다음 글자를 배워주었다.
  “오늘 배울 첫 글자는 영글 측자이다. 먼저 따라 읽기를 하자. 영글 ‘측’!”
  “영글 ‘측’!”
  몇 번 따라 읽기를 한후 애들은 한 획 한 획 따라 “측” 자를 써나갔다.
  최구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애들 속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애들이 모래판에 글씨를 쓰는 것을 돌아보았다.
  (영팔과 응삼이랑 다 얘들처럼 배워주었건만 우리 조선 사람을 도울 대신 일본 놈들의 개다리로 돼버렸단 말이야. 무식도 죄지만 유  식해도 지식을 누굴 위해 쓰는가는 것이 더 중요한 거야.)
  최구장은 응삼이랑 떠올리자 마음이 아프고 자기 노력이 결과가 빗나와 서글펐다.
  한참 후 최구장은 책상을 똑똑 쳤다.
  “그만, 그만 쓰고 오늘 배운 영글 ‘측’자의 뜻을 알도록 하자.”
  애들은 모두 똑바로 앉아 초롱초롱한 눈을 한 번도 깜짝하지 않고 최구장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하회를 기다렸다.
  최구장은 미리 마련해놓은 둥근 채 바퀴를 두 손으로 쥐여 안으로 힘껏 우겼다. 그러자 채 바퀴는 타원형으로 이그러져 버렸다.
  “봐라. 이렇게 된 걸 이그러졌다고 한다. 영글 측자는 바로 이그러진다는 뜻이느니라.”
  그러자 애들은 “오~” 하고 알았다는 듯이 감탄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형내가 손을 들었다.
  “뭐냐? 말해라.”
  형내는 이런 요구를 제기했다.
  “선생님, 땅에 깃든 얘기도 들려줍소.”
  그러자 애들은 좋다고 박수까지 쳤다.
  “그래, 그렇게 하자. 에헴, 따 ‘지’라. 땅이란 원래 울퉁불퉁하게 생겼지. 높이 우뚝 솟은 건 산이요, 깊이 패인 건 골짜기지. 우리 사는 명천 여기서부터 몇 백리 떨어진 북쪽에는 백두산이란 높은 산이 우뚝 솟아있다.”
   최구장은 흑판에 석회 돌로 백두산을 그려놓고 백두산을 일일이 설명하고 뒤이어 백두산에 깃든 전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에헴, 최구장, 안녕하오?”
  이때 나까노라이찌로 헌병 소대장이 서당에 불쑥 들어섰다.
  불청객이 들어오자 최구장은 백두산 그림 아래에 썼던 백두산이란 글을 지우고 후지산이라고 써놓았다.
  “오, 후지산, 우리 대일본 제국의 아주 아름다운 산이야.”
  나까노라이찌로 소대장은 손으로 턱을 고인 채 흑판을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는 코 수염을 쓱 닦더니 거들먹거렸다.
  “좋소까. 계속 얘기했소까.”
  최구장은 계속 백두산 전설을 얘기했다. 그러나 나까노라이찌로 소대장은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는지라 서당에서 나가버렸다.
   그는 떠나가면서 조선말을 알아듣는 영팔과 수길과 같은 조선 앞잡이들을 데리고 와야 제대로 감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구장은 애들이 흥미진진하게 듣자 다른 얘기도 들려주었다. 애들을 데리러 일찍 왔던 학부모들도 최구장의 얘기가 재미있어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명옥은 오빠 봉인이랑 공부하는 것이 너무 부러워 꼭 닫긴 문에 난 옹이구멍으로 들여다보면서 귀를 강구고 듣고는 애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손바닥에 글자를 써보면서 하늘 천, 따지를 귀동냥해 익혀나갔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봉인오빠한테 들킬 때가 있었다. 못된 봉인이가 손가락으로 옹이구멍으로 쏙 내지르면 눈이 찔렸다. 설상가상으로 할아버지 최구장은 명옥이 옹이구멍으로 들여다보는데다가 애들이 옹이구멍에 대고 손가락질하면서 작난 친다고 나무꼬챙이를 깎아 옹이구멍에 박아넣어 꽁꽁 막아버렸다.
   옹이구멍까지 딱 막히자 명옥의 글공부는 꽉 막혀버렸다.
  서당에는 날이 갈수록 신흥동과 영월동, 가마골, 신설동의 숱한 애들이 모여와 흥성흥성해져 가고 있었다.
  최구장은 아예 팔간 집 제일 서쪽 간에 “운주동 서당”이란 편액까지 내 건 후 서당 학생들을 널리 모집했다.


       3. 오누이


   흐릿한 하늘이 운주동을 지지 누르고 있었다. 비도 내리지 않고 갑갑하게 대지를 덮고 있는 먹장구름이 밉살스러울 지경이었다.
   어느날 명옥은 봉인 오빠랑 공부하는 서당 방 문 뒤에 달려갔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붓으로 쭉 그어놓은 듯 짙은 버들잎 눈썹아래 엄한 눈길로 나가라고 눈짓했다.
  최구장은 은빛수염을 슬슬 쓸며 못 마땅한 눈길로 명옥을 쏘아보았다.
  할아버지가 겁나 명옥은 아래 방으로 해서 정주간으로 달아났다.
  그는 엄마의 품에 안기면서 칭얼거렸다.
  “엄마, 나두 오빠랑 함께 공부할래. 응~응.”
  옥실은 철없는 어린 딸이 불쌍해 명옥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 얼굴을 대고 상냥한 어조로 달래였다.
  “얘야, 옛날부터 여자애들은 공부를 하지 못한단다. 여자애들은 베실을 뽑고 밥을 지어야 해.”
  명옥은 머리를 도리도리 하면서 떼를 썼다.
   “난 베실 뽑기 싫습니다. 나도 오빠처럼 공부하겠소. 엉~엉, 흐흑.”
  옥실은 눈물줄기가 쏟아지는 명옥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달래였다.
   “응, 할아버지한테서 배우지 못하면 오빠 먼저 배운 다음에 오빠한테서 배우자. 그만 그쳐라. 할아버지가 듣고 위방에서 나와 또 곰방대로 이마를 치겠다. 딱 그쳐라.”
    명옥은 흑흑 흐느끼면서 울음을 그치더니 옥실의 품에 안겼다.
   한참 칭얼거리던 명옥은 옥실의 품에 안긴 채 조용히 잠들어버렸다.
  옥실은 쌔근쌔근 잠자는 딸을 꼭 껴안고 다독이면서 한숨을 호~ 내쉬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명옥은 쌔근쌔근 자면서도 흑흑 흐느끼곤 했다. 옥실은 명옥이를 구들에 내려놓고 베개를 베워주고 누더기이불을 덮어주었다.
  뒤이어 그녀는 헛간에 나가 사다리를 가져다가 천정 대들보에 기대여 놓고 올라가 메주덩이를 뜯어 북데기를 펴놓은 바닥에 내리 떨어뜨렸다.
   마지막에 손이 닿을락 말락 하는 메주덩이가 천정에 매달린 채 남아있었다. 아무리 손을 뻗쳐도 손가라 끝도 닿지 않아 이마에 콩알 같은 땅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드디어 그녀는 눈앞이 아찔해나며 무수한 별빛이 반짝거리며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녀가 마지막 메주덩이를 달아맨 새끼에 손을 뻗쳐 뜯으려는 순간 졸지에 바깥에서 나까노라 소대장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뭘 해?!”
  옥실이 바깥으로 머리를 돌리면서 내다보다가 몸이 기우뚱하며 사다리에서 허공 퉁 떨어졌다.
  “앗!”
   그 모진 소리에 미닫이문이 쫘르륵 열리면서 서당에서 어른들이 무슨 일인가고 부엌간 쪽으로 달려 내려왔다.
  옥실은 메주덩이가 널린 북데기 위에 떨어지면서 그만 땅바닥에 머리를 탕 부딪치고 말았던 것이다.
  “엄마!”
  명옥도 깨나서 방바닥에 떨어져 쓰러져 있는 엄마를 보고 달려가 흔들며 울었다.
  경숙과 경민은 부랴부랴 옥실을 안아다가 가마 목에 눕혔다.
  “여보, 이게 웬 일이요? 어이구, 이 일을 어쩌오?”
  뒤늦게 정주간에 내려온 최구장은 정주칸 바닥에 널린 메주덩이를 둘러보고 경숙을 나무랐다.
  “너 메주를 뜯어 줄 게지 이게 뭐냐? 아녀자가 저렇게 높은 대들보의 메주를 뜯다가 잘못되다니. 엉? 이런 일이 또 어데 있냐?”
  경숙은 수건으로 옥실의 얼굴의 먼지를 닦아주면서 중얼거렸다.
  “메주를 뜯겠으면 말할 게지. 이게 뭐요? 저 높은 대들보에 올라가다니? 흑, 흑.”
  옥실은 정신을 잃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꼭 감고 조용히 누워있었다. 다행이 북데기 위에 떨어져 어데 피가 터진 곳은 없었다.
  한식경이 지나자 옥실의 얼굴이 점점 팅팅 부어올랐다. 눈언저리는 까맣게 번지어 갔다. 거품을 문 입술은 창백하다 못해 백지장 같았다.
  “어이구, 여보, 깨나오. 일어나오. 저 오누이를 두고 누워있으면 어쩌오? 어이구.”
 경숙은 울상이 되여 구들을 치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푸푸 몰아쉬었다.
 봉인과 명옥은 옥실의 양손을 쥐고 흔들면서 “엄마~”, “엄마~” 하고 대성통곡 쳤다.
  “엄마, 일어나.”
  “엄마~ 깨나~”
  이때 형내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와 쪼그리고 앉아 옥실을 들여다보다가 일어나면서 최구장에게 말했다.
   “스승님, 저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 머리 터진데 없급꾸마.  피 안터졌지만  내상은 더 위험합니다. 오히려 나쁜 피가 밖으로 터져 나왔다면 덜 위험한데요. 어혈이 머리 안에 있기에 더 나쁩니다. 부중이 와서 머리가 붓긴 걸 보시오. 목숨이 위험합니다. 빨리 우리 할   아버지한테 보입소.”
  그러나 최구장은 피씩 입귀로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뭘 알아 그래? 분명 가난이 덮씌운 이 집안에 병 귀신이 덮친 게다. 이건 의학이나 약으로 치료해 살릴 수 있는 병이 아니야.”
  최구장은 의학보다 신을 믿었던 것이다. 그도 옥실의 상처는 약으로 치료해 될 게 아니다. 하느님과 신께 맡겨야 될 것 같았던 모양이다. 그는 맏며느리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노력을 하고 싶었다.
   옥실을 둘러본 마을사람들과 학부모들은 모두 혀를 끌끌 차더니 집으로 돌아가 쌀독에서 좁쌀 한바가지, 감자 한 대야라도 들고 와    옥실을 구하는데 보태 쓰라고 했다. 뒤늦게 병완은 불붙이에서 사는 맏손녀 어금에게서 최구장 맏며느리의 불행한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와 금덩이 몇 덩이를 내놓았다.
  “맏며느리 이렇게 상해 안 됐소. 이걸로 사돈며느리 치료를 해줍소.”
  “이건 어데서 난 금덩어리들이오?”
  “이건 이전에 성칠이 웅진의 날강도 백승만의 걸 빼앗은 거요. 근심하지 말고 쓰오.”
  최구장은 병완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고는 사돈어른의 금덩이를 받아 경숙에게 넘겨주었다.
  이때 창준과 기준 두 집 식구들도 소문을 듣고 각기 동전을 가지고 와서 보태 쓰라면서 문안을 여쭈었다.
  최구장은 문안하러 온 동네어른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면서 며느리가 불쌍하여 중얼거렸다.
  “요즘 쌀독을 빡빡 긁더니 분명 죽물도 모자란다고 애 어미 제대로 잡숫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 굶은 며느리가 저 높은 대들보에서    메주를 뜯다가 어지름 증에 떨어진 거다.”
  최구장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마루에 나가 까마귀가 우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장탄식을 하며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치였다.
  “천지신명이시여, 우린 대대로 양심 어긴 적 없소이다. 하늘과 땅에 미안한 일을 한 적이 없고 남을 해친 일은 더욱 없소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 이 웬 날벼락인고. 아이고~”
   최구장이 마루에 물앉아 대성통곡치자 자녀들이 달려가 아버지를 부축해 위방에 모셨다.
  봉인과 명옥이 할머니 품에 안기면서 서럽게 울었다.
  최구장 댁 성단은 동전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봉인과 명옥을 며느리에게 먹이려고 부엌 칸에 내려가 좁쌀을 씻어 솥에 얹었다. 그러자 둘째며느리 어금이 부엌에 내려가 불을 때였다.
  이때 관준이 침통이랑 가지고 들어섰다.
  “사돈어른, 큰며느리 상해 얼마나 비통하겠습니까? 봅시다. 어디를 상했는가?”
  최구장은 멀찍이 서서 관준 영감이 옥실의 맥을 보고 팅팅 부어오르는 얼굴의 상처를 보는 것을 별로 희망을 두지 않고 볼 뿐이었다.
  “어떻소?”
  경숙의 물음에 관준 영감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비끼었다.
  “약을 많이 써야 될 것 같소.”
  뒤이어 관준은 경숙의 귀에 대고 뭐라고 여쭈었다.
  경숙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아내 손을 만지면서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처량한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는지 옥실이 입술을 옴직거리더니 눈귀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 귀밑으로 줄줄 떨어졌다.
  “여보, 정신을 차리오. 양? 새파란 나이에 애들을 두고 이게 무슨 일이요? 여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
  경숙의 울부짖음 소리에 온 집 식구들은 흑흑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나까노라는 서당을 감시하러 왔다가 옥실을 문안하기는커녕 개 닭 보듯 하더니 그 자리에서 꼬리를 빼는 것이었다.
   경숙은 아내를 살려달라고 하늘에 빌고 땅에 빌고 신에게 빌었다.
   “오, 청청 하늘이여, 부디 어질고 불쌍한 옥실을 굽어 살펴 살려주옵소서. 부지런하고 곱살하게 생긴 옥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다지도 일찍이 서른 살도 안 된 꽃나이에 데려가려고 하는가? 아직 철도 들지 못한 다섯 살짜리 아들애 봉인과 네 살 밖에 안 되는 딸애 명옥을 두고 어떻게 갈수 있단 말인가? 그 귀한 오누이를 당신이 기르지 않고 떠나가면 어떻게 하는가?”
   그는 하늘과 땅에 빌다 못해 이번에는 옥황상제와 염라대왕에게 빌고 또 빌었다.
   “염라대왕이여, 불쌍한 오누이를 생각해서라도 옥실을 살려주옵소서. 당신도 눈이 있고 귀가 있잖은가? 염라대왕님이여, 이 딱하고 어려운 옥실의 사정을 봐서라도 살려 주옵소서. 제발 살려 주옵소서.”
   허나 어린 오누이는 뜻밖의 사고로 끝내 어머니를 여의는 불운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옥실은 숨이 붙어 있었지만 의식을 잃은 채 각일각 경각을 다투고 있어 이미 세상을 뜨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어린 오누이가 불쌍하기만 했다.


    4. 무당의 굿


  맏아들 경숙이가 하늘과 땅에 비는 불쌍한 정경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던 최구장은 무당을 청해 천지신명에게 빌기로 했다.
  (며느리야, 내가 너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이란 이것 밖에 없구나. 자고로 인생 팔자나 목숨이나 모든 것이 하늘이 정해준 것이오니 하늘의 명에 기탁할 수 밖에 없다.)
   “여보, 당신 무당을 청해오오. 우리 무당을 청해 며느리를 위해 최후노력을 해보기오.”
  노친 리성단은 이제껏 영감의 말이라면 오직 순종만 해왔지만 이번만은 자기 생각을 말하고 싶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끝내 목구멍을 열고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보, 무당을 청하기보다 신설동의 관준 사돈어른을 청해 저 팅팅 부어오른 머리의 어혈을 뽑아볼까요? 관준 어른은 이 부근에 이름난 의원이 아니고 뭐예요?”
  충청남도 서현에서 놀러 왔던 성단의 남동생 리병호도 충고했다.
  “옳아요. 매형, 그깟 무당을 청해 뭘 해요? 의원을 청해 병을 보이는 게 낫을 거 같아요.”
  최구장의 처조카 리철근도 말리였다.
  “아까운 돈을 무당을 줄게면 병 치료나 하세요.”
  “관둬!”
  최구장은 기어코 그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너희들이 뭘 알아서 끼어드나? 사람의 목숨은 하늘이 정해준 거야. 무당을 청해 하늘에 비는 수밖에 없다.”
  성단이나 남동생은 모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최구장은 노친 성단을 보고 재삼 부탁했다.
  “어서 사찰에 가서 무당을 청해 오오.”
  누구의 명이라고 거절하겠는가.
  리성단은 은전을 몇 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맏아들 경숙과 함께 무당을 청하러 떠났다.
  최구장은 경인과 경민이 등을 시켜 집안의 돈을 다 모아가지고 소 한 마리를 사다 잡게 했다. 그 다음 바깥에 대국가마를 걸고 소고기를 저며 앉히고 불을 때 끓이게 했다.
   한편 허리 꼬부장한 성단과 눈물범벅이 된 경숙이가 사찰로 가는 도중에 별 희한한 변을 당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들은 운주동을 벗어나 마을동쪽의 산기슭 길 굽인 돌이를 지나려는 때였다. 헌병소대장 나까노라가 지휘도를 거들거리며 검정가죽장화를 번쩍거리며 거들먹거리면서 통역 류강철과 함께 오다가 딱 마주쳤다.
   “쏘까, 나니에 이꾸(어데로 가)?”
  최구장 댁과 경숙이 주춤 멈춰 섰다.
  “에이, 노친, 어디로 가?”
  나까노라의 말을 통역해 주자 경숙은 머리를 숙였지만 리성단은 성을 냈다.
  “네 이놈, 넌 어미도 없이 자랐니? 제 어미 같은 사람보고 노친이라니? 내가 그래 네 여편네라도 돼?”
  “뭣이? 어째? 감히 황군한테 대들 텐가?”
  리성단은 손으로 삿대질하면서 류강철을 욕했다.
  “너 이 버릇없는 놈을 봐라. 네놈이 우리 영감한테서 천자문을 배우던 때가 어제 같은데 스승 댁과 반말을 쓰다니? 배은망덕한 놈 같은 게 잘 되는가 봐라.”
  “나니(뭣이)? 나니(뭣이)?”
  “예. 이 노친은 내가 자기를 욕했다고 성을 냅니다.”
  류강철의 일본어로 하는 말에 나까노라는 머리를 끄덕였지만 성단과 경숙은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갈 길을 가려고 앞을 막아선 그자들을 에돌아 가려고 했다.
   "빠까(바보), 아이사쯔오 시나싸이(인사말을 하게나)."
  드디어 최구장 댁 모자가 허리를 굽혀 인사하자 나까노라는 또 자기들이 만들어낸 면례 말을 암송하라고 강요했다.
  면례 말이란 일본 놈들을 만나면 해야 되는 인사말 비슷한 것이었다.
   “인사했으면 됐지. 면롄지 뭔지 우린 모른다. 맏며느리가 아파 사찰에 급히 갔다 와야겠는데 앞길을 막지 말구 피해라.”
   그러나 류강철은 피할 염을 하지 않고 오히려 앞길을 막으면서 을러멨다.
   “면례 말을 암송하지 못하면 소대장이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럼 자네 배워주게나. 빨리 가게 말이야.”
  류강철은 최구장 댁 앞에서 허리를 굽히며 “예, 예.” 하고나서 정식으로 배워주려고 들었다.
  “고꼬노 진민노 이찌 와레라와 닛뽄노 덴노노 진민니 나리(이곳 백성의 하나인 우리는 일본 천황의 백성으로 된다).”
  그 면례 말은 진짜 우리 조선 사람들을 일본의 망국노로 만드는 식민지교육의 한 단락이었다.
  최구장댁은 굽은 허리를 꿋꿋이 펴고 물었다.
  “죽으라는지 살라는지 모를 소릴. 어떻게 암송해? 엉? 집에 앓는 사람을 눕혀놔서 갈 길이 바빠. 듣고도 모를 소릴 할 새 있냐?”
  “바 새끼, 못 간다, 못 가!” 
  나까노라는 벌컥 성 내면서 기어이 암송시키라고 류강철을 보고 을러멨다.
  그러자 류강철은 일본 상전 앞에 허리를 굽히더니 최구장 댁한테로 홱 돌아섰다.
   “지금 어느 때라고 아직도 면례 말도 모르고 어디로 간다고 그럽니까? 내 말을 들으시오. 한일합방 후 조선은 이미 일본에 속했단 말입니다. 그러니 일본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면례 말을 암송하라면 암송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이담 길도 못 다닙니다.”
   최구장 댁은 억이 막혀 하얀 머리를 홰홰 돌리다가 “그래 면례 말이 무슨 뜻이냐?” 하고 물었다.
  류강철은 배를 쓱 내밀었다.
  “이런 말이요. ‘여기 백성의 하나인 우리는 일본의 이곳 백성으로 된다.’는 말입니다. 알만 합둥?”
  최구장 댁은 류강철을 마구 밀면서 사정했다.
  “어이구, 죽어가는 며느리를 두고 하루 새에 일본 백성이 되라니, 될 수 있냐? 원, 이담 암송할 테니 이번엔 보내다오.” 
  경숙도 나서 빌었다.
  “자네 이전에 아버지 제자인 옛정을 봐서라도 일본 사람과 말해주게나. 어떻게 알아듣지 못하는 면례 말을 이 자리에서 암송하겠나?”
  그러나 류강철은 도리머리 질 했다.
  “안 되오. 꼭 암송하구야 갈수 있소. 벌금 10원을 내거나 귀 쌈을 피나도록 맞지 않고선 못 가오.”
  “어이구, 이 일을 어쩌느냐?”
  최구장 댁은 무릎을 꿇고 물앉더니 한참 후에 일어나 외워보겠다고 일어섰다.
  “음, 좋소. 암송하오.”
  최구장 댁은 마른 침을 꼴깍 넘기더니 나까노라와 류강철을 엇갈아 훔쳐보더니 입을 열었다.
  “꼬꼬댁 꼬꼬. 개 똥 같은 지지미가 와르르 쏟아져 나오니 미운 사람이나 콱 채워라. 자, 다 외웠으니 자네 통역을 잘해주게나. 우리 가게 말이야.”
   류강철은 어처구니없어 입을 딱 벌리면서 웃으려다가 나까노라의 눈치를 흘끔 쳐다보고는 손으로 입을 꽉 싸쥐었다.
  옆에서 듣던 나까노라는 류강철의 배때를 툭툭 치면서 "나니까(뭐야)?" 하고 물었다.
  류강철은 너무 우스워서 눈물이 글썽해졌고 코 물까지 흘러내려 손수건을 꺼내 닦고 나서 말했다.
  “참, 묘한 조선말로 암송하였지요.”
  “소우까(그래?). 요로씨이(좋아).”
  그들이 웃고 나서 돌아보았을 때에는 최구장 댁은 벌써 베치마를 팔락이면서 저 멀리 굽인 돌을 돌고 있었다. 그 뒤로 경숙도 종아리에 바람이 일게 가 버리고 있었다.
  이튿날 사찰에서 온 요염하게 생긴 무당이 최구장 댁 모자의 안내 하에 운주동 최구장의 집에 나타났다.
  신선인 듯이 하얀 비단으로 아래위를 감고 누런 비단으로 머리카락을 질끈 동인 뚱뚱한 얼굴, 분을 너무 쳐 발라 하얗고 살진 얼굴, 복숭아얼굴에 짙은 버들 잎 눈썹, 큼직한 쌍까풀눈, 축 늘어진 두 볼의 살은 꽤나 위엄스러워 보였다.
  최구장이 마중 나가 허리 굽혀 인사했다.
  “무당 마나님, 먼 곳에서 오시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무당은 왼손을 가슴에 대고 허리 굽혀 인사를 받더니 하얀 치마 자락을 날리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살펴보더니 물었다.
  “환자는 어데 있어요?” 
  최구장 댁과 둘째며느리 어금이 무당을 안내해 정주간에 들어갔다.
  무당은 합장하고 환자 옥실의 관상을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염불하듯 중얼거렸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여. 그대의 귀여운 딸이 몹쓸 병에 걸렸나니 부디 구해주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뒤이어 무당은 목소리를 높여 굿을 하기 시작하었다. 
  “창생이여, 화음청주, 일어나. 화음청주, 이런 몹쓸 병에 걸리다니. 화음청주, 귀여운 이 딸은 너무 젊습니다. 화음청주, 아직 천당으로 갈 때는 아닌뎁쇼. 화음청주, 화음청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화음청주, 화음청주.”
  무당의 굿은 무속인의 굿에다가 중놈의 염불을 섞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 진가를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무당은 옥실을 마주하여 합장하고 허리 굽혀 인사한 후 사뿐사뿐 걸어 나와 미리 무어놓은 나무 대에 올라가 남쪽을 향해 똑바로 섰다. 최구장 내외를 비롯한 온 집 식구들은 모두들 남쪽을 향해 꿇어 엎드렸다.
  요염하게 화장치례를 한 무당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북채를 거머쥐더니 둥둥 당 둥둥 당 북을 절주 있게 쳐댔다. 그러자 부근의 숱한 구경꾼들이 몰려와 무당이 굿을 하는 것을 구경했다.
  이날 하늘이 유난히 맑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저 멀리에 까마귀 떼가 날아와 백양나무 위에 앉아 까욱, 까욱 처량하게 울어댔다.
  무당은 북치기를 멈추더니 머리를 풀어헤치고 남쪽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휘젓더니 합장배례 하더니 두 눈을 내리깔고 소리높이 굿을 하기 시작했다.
  “태극천상 워니 하니 사방이여, 어쩜 나비들도 내려앉을 꽃 같은 나이에 저렇게 몹쓸 병을 여린 창생에게 주었나이까. 화음청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굽어 살피옵소서. 불쌍한 저 창생을 해치지 말고 살려주옵소서. 관세음보살이여, 남자 귀신이면 지고 가고 여자 귀신이면 이고 가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여린 창생을 보좌해주옵소서. 화음청주, 화음청주…”
  무당은 한참 굿을 하다가 북을 둥둥 당 둥둥 당당 당 당 당 치고는 멈추더니 삶은 소고기점을 여기 저기 쥐어뿌리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마을의 애들은 소고기를 주어가느라고 야단쳤다.
  무당은 회초리로 애들을 찌를 상하며 가리키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저 불충스런 못된 놈 새끼들에게 천벌을 내리옵소서. 제물을 더럽히는 이단자들에게 날벼락을 내리옵소서.”
  웬 일인가?
  좀 전까지만 해도 맑던 하늘에 먹장구름이 뒤덮여오더니 번개가 번쩍이고 날벼락이 마구 쳤다.
  어른들은 자기 집 애들에게 내리는 천벌이라고 여겼던지 소고기를 줏지 못하게 말려가지고 집으로 바삐 달아났다.
  최구장은 무당이 아주 영험하다고 생각하고 맏며느리가 살 것 같아 무당에게인지 남쪽하늘에인지 꾸벅꾸벅 연신 절을 올렸다. 그러자 온 집 식구들이 장대처럼 쏟아지는 소낙비를 무릅쓰고 모두 최구장을 따라 절을 꾸벅꾸벅 올렸다.
  무당은 염불이 영험한 것 같아 소낙비를 무릅쓰고 나무 대에 풍덩 꿇어앉아 눈을 딱 감고 합장배례 한채 계속 소리 높여 염불하면서 치성을 드렸다.
  최구장과 경숙이가 바삐 기름종이를 바른 우산을 들고 올라가 무당을 비바람 속에서 가리어주었다.
  한참 후 무당은 천천히 일어나 소고기점 칼로 저며 내 여기저기에 쥐어뿌렸다. 그리고 소고기점을 저며 간장에 찍어 먹으면서 집식구들도 굿을 한 제물을 먹으라고 주었다. 최구장과 경숙은 먹을 생각이 없었지만 굿이 영험하지 못할까봐 억지로 조그만 소고기점을 눈물과 함께 삼키였다.
   비바람도 무릅쓰고 정성을 다해 굿을 했다고 최구장은 무당에게 병완이가 부조로 가져온 금덩이에서 큰 것을 골라 주었다.
   최구장네 일가는 무당도 청해 정성을 다해 하늘에 굿을 하면서 빌었고 경숙은 관준의 귀띔대로 행여나 하고 오줌을 받아 끓여 옥실의 머리를 씻어주고 닦아주었다. 하건만 그들의 정성과는 달리 옥실의 머리는 조금 내린 것 같았지만 온 몸이 팅팅 붓기기 시작하고 살에서 찐득찐득한 땀인지 물인지 내배였다.
   한 열흘이 지나도 옥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로 저고리도 입히지 못할 정도로 온 몸이 팅팅 부어올랐다. 경숙은 하루 삼시로 대    소변을 받아 냈다. 피가 섞였는지 벌건 소변을 받아내는 경숙은 요강에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
  경숙은 날마다 못해가는 옥실을 보고 구들에 물앉아 한숨을 구들 고래 꺼지게 후~ 내쉬었다. 옥실은 어떤 때에는 정신이 드는지 간혹 눈물을 흘리었다. 친인들을 두고 떠나가기 싫어 흘리는 생이별의 피눈물이었다.
  그럴 때면 경숙은 다가가 앉아 옥실의 손을 쥐여 흔들면서 “여보, 일어나오. 정신 차리오.” 하고 넉두리를 하듯 말했다.
  어린 오누이 봉인과 명옥은 엄마의 한 팔씩 쥐어당기면서 “이차, 이차. 엄마, 일어나시오. 엄마~” 하고 울었다.
  불쌍한 애들이 하는 모양을 보고 최구장 내외는 주글주글 주름살이 진 눈 확에 눈물이 글썽해 안질이 희미해졌다.
  “엄마, 일어나, 응? 일어나!”
  봉인은 엄마 손을 잡고 당기면서 울었다. 그러나 셈이 들지 못한 명옥은 엄마가 살아났다고 좋아 퐁퐁 뛰면서 놀았다.
  옥실은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관준을 청해 맥을 보이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최구장을 조용히 한쪽구석에 불러다가 나직이 말했다.
  “해지기 전까지 넘길 것 같지 못합니다. 빨리 후사를 준비하시오.”
  그러자 최구장은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였고 경숙은 손으로 구들을 치면서 울었다. 그러나 숨이 지지 않은 옥실이 놀랄까봐 소리치지 못하고 흑흑흑 흐느껴 울었다.
  모두 후사준비에 바삐 돌아쳤다.
  바깥에 어둠의 장막이 내리 드리고 번개가 번쩍이더니 우뢰가 꽈르릉 꽝꽝 울렸다. 뒤이어 바깥에서 소낙비가 우르르 쏟아지는 소리, 추녀에서 장대 같은 비 물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옥실은 모진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숨을 조용히 거두었다. 볼품없이 팅팅 부은 얼굴과 손, 네댓 살 밖에 안 되는 오누이를 다 키우지도 못하고 저세상으로 떠나가는 옥실은 정말 천하에 둘도 없이 불쌍했다. 온집 식구들은 곡성을 높여 옥실의 사망에 애도를 드렸다.
다섯 살 밖에 안 되는 봉인은 엄마가 세상 떴다고 “엄마, 엄마!” 하고 구들에서 발버둥질 치면서 울었다.
    그러나 연년생인 네 살짜리 명옥은 셈이 들지 못해 엄마가 세상뜬것도 몰랐다. 철부지 명옥은 이제 엄마가 저세상으로 가면 다시 되돌아오지 못 한다는 것도 모르고 장례 집에 몰려든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좋다고 방구석에 세워놓은 조주머니에 올라갔다가는 뚝 뛰어내리면서 놀았다. 그것이 그의 한생에 얼마나 후회되는 일인지도 모르고 철부지처럼 외발로 뚝뚝 뛰면서 뛰놀았다.
    그들 오누이는 네댓 살 난 어린 나이에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어머니를 여의였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갖은 시련과 굴욕, 천대, 시기를 다 겪어야만 했다. 그들 오누의 앞날은 어두운 장막이 뒤덮인 이 세상에서 더 참담하고 암흑하고 막막했다.
    사흘 후 옥실의 장례를 치르게 됐다.
  최구장의 제의대로 조상의 성산이 모셔져있는 성남의 양지바른 곳에 묘지를 썼다. 비록 먼저 떠나간 맏며느리였지만 14대 장손을    낳은 맏며느리기에 최구장의 아버님을 모신 성남 성안에 모셨던 것이다.
   장례식 날에 경숙은 사랑하는 아내를 차마 비 물이 고이는 차가운 땅에, 무덤에 묻지 못해 떨리는 손으로 첫 삽을 떠 흙을 관 네 귀에 스르르 쏟아놓았다. 그의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흐르는 눈물도 누런 흙과 함께 관위에 쏟아져 들어갔다. 옥실의 부모와 남동생 허성룡도 무두 흑흑 흐느껴 울었다. 처량한 통곡소리 남산둔덕을 메아리쳤다…
  장례를 다 치르고 경숙이가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와 보니 봉인이 명옥의 손을 잡고 그때까지도 “엄마~ 엄마!” 하고 대성통곡 치고 있었다.
   경숙은 어린 오누이가 불쌍해 한품에 끌어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어미 없는 애들을 어찌 하오. 어, 허, 헉, 흐~으~흑, 흑. 어째 내게 이런 일이 생기오. 당신이 없이 어떻게 살라오? 이 오누이는 어찌 하라오? 으흐흑, 흑, 흑, 하늘도 무심하지. 아~ 하~”
  최구장이 위방에서 나와 경숙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위로해주었다.
  “어찌겠니? 갈 사람이 돼서 간 걸. 애들을 굳건히 잘 키워라.”
  경숙은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치며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을 쳐다보면서 쓰라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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