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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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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2)
2015년 08월 13일 11시 31분  조회:2335  추천:1  작성자: 김장혁
               




                6. 끼무라 
국장



       우시장 공포가 넘치는 경찰국 사무실.
       끼무라 국장은눈깔을 부릅뜨고 책상을 탕탕 치면서 노발대발했다.
       “ 빠가요로!!”
     끼무라는 이발을 사려물고 야마모도의 낯빤대기를 찰싹찰싹 갈기며 욕설을 퍼부었다. 
   "하잇!"
    “하잇!” 
    야마모도 소장은 이마와 팔을 허연 붕대로 감은 채 발뒤꿈치를 딱 붙이고 얻어맞으면서도 머리를 푹푹 숙였다.
   한길수는 외눈깔로 영팔과 수길을 둘러보다가 머리를 숙였다.
   끼무라 국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왼손으로 군도자루를 잡고 거들먹거리면서 다가왔다.
   “저목장이 다 불타버렸어. 통나무를 어디 가서 얻어다 경찰국 사무청사를 짓는단 말인가?! 한무리 밥통!”
   끼무라 국장은 독기어린 눈길로 야마모도소장을 쏘아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야마모도 소장은 왜 저목장 경비를 허술히 했어? 당장 림산파출소 소장을 철직한다. 대신 오늘부터 가메다 경관이 잠시 삼림경비를 책임지라!”
   “하이!”
   (이게 웬 떡이냐? 복이 넝쿨 채로 떨어졌잖아. 으흐흐, 흐흐)
털 한 모숨은  입이 함박만 해 끼무라 국장에게 군례를 척 붙였다.
   끼무라 국장은 한길수를 내려다보면서 빈정거렸다.
   “천하의 한길수도 이젠 늙었구먼. 병완에게 당해 외눈깔 신세로 되다니? 흥! 페물짝!”
  한길수는 이를 뻑뻑 갈았다.
   “우리 집에 불이 난건 분명 독립군과 사냥대 놈들이 한 짓입니다. 끼 국장님, 아니, 끼무라 국장님, 원수를 갚게 해주십시오.”
   끼무라 국장은 오른손으로 한길수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한 대장, 참 안 됐네. 자네에게 원수를 갚을 기회를 주겠네. 난 오늘 자네를 자위대 부대장으로부터 대장으로 승급시키겠네. 우리 헌병대를 도와 성칠이랑 사냥대 놈들을 몽땅 잡아오게나.”
   끼무라 국장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쑥 뽑아 친히 한길수에게 내밀었다.
   “총을 쏘는 방법은 류 통역이 배워 주게나.”
   한길수는 어깨가 으쓱해서 연신 허리를 굽혔다.
  “옛! 목숨을 바쳐 대일본제국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선심을 쓰는 척 했다.
   “한대장, 자넨 이젠 영월동에서 발을 붙이기 힘들어. 아예 우시장에 이사해 사오. 조용한 골목에 기와집 서너 채를 마련해놓았네. 집 부근에 응삼과 영팔, 수길의 집도 마련해놓았어. 근심하지 말게.”
   “감사합니다. 끼 국장, 아, 끼무라 국장님!”
   한길수는 아예 마루에 넙적 꿇어 엎드리더니 끼무라의 발끝을 핥을 상을 하면서 연신 절까지 했다. 응삼과 영팔, 수길까지 한길수를 따라 마루에 꿇어 엎드려 절을 올렸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목숨 바쳐 천왕페하께 충성을 바치겠습구마."
   “에헴.”
  끼무라는 건 가래를 떼더니 두 손으로 한길수를 일으켜 세우면서 음충한 눈길로 외눈깔을 들여다보았다.
   “당신 집에 쓰빠라씨이 무스메(예쁜 처녀애)를 데리구 왔지?”
  한길수는 외눈깔로 힐끔 끼무라의 눈치를 훔쳐보았다.
   "은녀란 계집애 말입니까? 데려 오구 말구요. 당장 가져다 바칩죠. 헤헤헤.”  
  “아주 예쁜 계집이야. 자네 집에 두고 살게나.”
  한길수는 그제야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은녀를 빼가려는가 했더니, 괜히 놀랐구나.)
  순간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이 아주 우러러보였다.
  (정말 진심으로 모실 분이야.)
  끼무라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 놓은 것이다.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에게 계책을 올렸다.
  “성칠의 동생 기준과 창준이란 놈들이 상우남면 운주동에 왔습니다. 성칠이란 놈은 꼭 운주동에 찾아 올겁니다. 그때 납작 나포하면 됩니다.”
   제 딴에는 좋은 계책을 드렸는가 하였는데 끼무라 국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이에(아니오). 이이에(아니오). 건 모르는 소리야.”
  모두 의아한 눈길을 끼무라 국장에게 보냈다.
  그때 끼무라 국장이 사무 상에 돌아가 의자에 앉더니 천천히 두툼한 입술을 뗐다.
  “곰곰이 생각해 봤소까. 한대장이 눈을 잃었어. 저목장과 한길수 대장 집이 불타버렸네. 이 모든 게 뭘 말해주는가.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해. 우직한 놈들을 핍박할수록 그 놈들은 반항한단 말이야?”
  류강철은 옆에서 그 말을 마구 보태 통역하였다.
  “조선 속담에 ‘막다른 골목에 이른 개가 담장을 뛰어넘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일본 헌병대 놈들은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면서 의논하다가 끼무라 국장의 칼날 같은 시선을 맞자 조용해졌다.
   한참 자기 말을 터득하도록 침묵을 지키면서 부하들을 바라보던 끼무라 국장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무 상을 똑똑똑 두드렸다.
   “보라고. 한 대장이 품삯을 주지 않는다고 병완은 한 대장의 눈알을 뽑아 놓았어. 병완을 가뒀다고 성칠 일당이 저목장을 불태웠고 한길수 집에 불을 질렀네. 분명 그 놈들이 반항한 거야.”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면서 수군거렸다. 그러나 한길수만은 속이 앙알했다.
   (종놈을 부려도 유분수지. 일본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지으면서 날 보고 삯전을 대라니. 그간 적잖게 사재를 털어 품삯을 줬건만 또 욕지거리군.)
   정말 자위대 대장자리를 주었으니 그렇지. 한길수는 억울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때 끼무라 국장이 또 입을 열었다.
   “난 병완을 풀어주고 공지 총 도감을 맡기겠네.”
   “우와~”
   모두들 뜻밖의 결정에 놀라 소스라쳤다.
   한길수는 입이 함박만큼 딱 벌리고 우멍눈을 가슴츠레 뜬 채 끼무라를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수길과 영팔은 한길수의 불쾌해하는 우멍눈을 보고 입을 딱 다물었다.
   한길수는 한참만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아니, 그 놈을 풀어줘도 그런데. 총도감까지 맡기다니? 제 정신 있습둥? 우리를 뜨는 놈 말입니다. 놔주선 안됩구마. 안되구 말구. 그 말씀만은 거둡소.”
   그러나 끼무라 국장은 이미 결단을 내렸다.
   “이건 명령이야. 감히 거역해!”
   그는 사무상을 꽝 쳤다.
   끼무라는 군도자루를 힘있게 잡고 한길수를 쏘아보았다. 코밑 수염마저 푸들거렸다.
   “하나 밖에 모르고 둘은 모르는 놈들. 이 명천과 우시장 바닥에서 병완을 모르고 사는가? 그 놈에게 필마옹 벼슬이라도 줘서 슬슬 얼려야 해. 그래야 경찰국 사무 청사가 여름이면 덩실하게 일떠설게 아닌가? 또 한 가지 있어. 병완을 내놓으면 성칠이랑 경계심이 허술해지면서 영월동이나 운주동에 찾아올게 아닌가? 이게 바로 그물을 널리 쳐서 큰 고기를 잡는 거야. 알만한가?”
     그제야 한길수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는 외눈깔이 뒤집힐 정도로 떼꾼해 끼무라를 쳐다보았다. 뒤이어 사무 상에 돌아가 앉는 끼무라를 뒤따라가면서 볼 부은 소리를 했다.
   “그럼 난 뭘 하랍니까?” 하고 
   “자넨, 경찰국 사무 청사 공지일은 그만두고 이제 봄부터 닦을 큰 길 공지 총 도감을 맡게. 자넨 이젠 어깨가 무겁게 됐네. 총도감 보다도 자위대 대장을 잘하게나. 어느 놈이 대일본제국을 반대하면 그런 놈들을 몽땅 잡아드리게나. 우선 성칠 놈부터 한 달 내에 잡아오란 말이야.”
   끼무라의 독기어린 음험한 눈길을 피하면서 한길수는 허리를 굽혔다.
   “옛!”
   한길수는 속으로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끼무라는 가메다와 한길수를 쏘아보았다.
   “감방에 가서 병완 영감을 데려오게!”
   감방에서 갖은 고생을 다한 병완은 구레나룻이 더부룩했다. 한길수를 보자 그의 눈에 불티가 이글거렸다.
   “죽이겠으면 단매에 쳐 죽일 거지. 작작 능욕해라.”
   그러자 한길수는 외눈깔로 흘겨보면서 욕지거리를 해댔다.
   “네 놈을 그리 쉽게 죽게 할 거 같니? 실컷 부려먹고 죽여도 늦지 않아!”
   병완은 감방 문설주를 짚고 서서 물었다.
   “도대체 어쩌자는 거냐?”
    한길수는 휙 돌아서면서 볼 부은 소리를 했다.
   “끼무라 국장에게 가보면 알 거다. 흥!”
   병완은 한길수의 코 방귀 소리를 들으면서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 놈들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 죽는 거 외에 다른 일이 더 있겠냐.)
   병완이 가메다와 한길수를 따라 경찰국장 사무실로 갔다.
   뜻밖에 끼무라 국장이 복도에까지 나와 기다리다가 반색을 하면서 마중할 줄이야.
   “병완이, 감옥에서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어서 안으로 들게나.”
   류강철의 통역을 듣고 병완은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이었다.
   병완은 코웃음쳤다.
   끼무라는 의자를 손으로 가리키었다.
   “병완이, 여기 앉게나.”
   그는 병완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병완이 둘러보니 이전과는 달리 심문할 헌병도 보이지 않고 가메다와 한길수 밖에 없었다.
   “에헴, 병완이, 당신은 우시장의 천하장수네. 자네야 말로 우리 우시장의 이거야!”
   끼무라는 두 손으로 주먹과 엄지를 병완의 앞에 쳐들어보였다.
   그 말에 병완은 피씩 코웃음을 쳤다. 순간 한길수는 코 방귀를 뀌었다.
   “길수, 이건 자네들의 격투에서 이미 결론이 났네.”
  길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국장님, 전번에 내가 그만 골 박이를 한다는 게 나무옹이를 들이박아 상한게지. 결코 저 놈이 천하제일주먹이 돼서 그런 건 아닙니다.”
   끼무라는 두 팔을 장의자에 걸치어 놓으면서 웃었다.
   “에이, 사람이 옹졸하기로서니. 참,  자네가 날린 골박이를 살짝 피한다는 건 권투고수고서야 할 수 있는 재간이야.”
   끼무라는 한길수를 내리깎고 병완을 잔뜩 춰 올렸다.
   뒤이어 그는 병완이 쪽으로 몸을 반쯤 돌리면서 무겁게 입을 뗐다.
   “병완이, 한 가지 상의할 일이 있네. 자네에게 품삯은 배로 줄 테니까. 우리 경찰국 사무 청사 짓는 공지의 총 도감을 맡게나. 부총 도감으로부터 총 도감으로 승급시킨 거네.”
    끼무라 국장이 뒷말을 이었다.
   “한길수 영감은 자위대 대장으로 승급시켰네. 김총도감은 올해 안으로 2층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지어주게나. 이전에 3층을 짓자고 했는데 무린 것 같아. 안전도 고려해야 해야겠고 저목장이 타버려서 목재도 당분간 그렇게 많이 마련할 것 같지 못하네. 올 겨울 전에 새 경찰국 사무청사에 드는 날엔 자네에게 자위대 부대장쯤 시킬 예산이네. 어떤가?”
    갑자기 들이닥친 뜻밖의 제안에 병완은 어리둥절해졌다.
   한참 후 병완은 볼 부은 소리로 말했다.
   “총도감을 할 수 없소. 전번에 숱한 마을 사람들을 불러 왔다가 괜히 삯전도 주지 못해서 죄송해 죽겠소. 이젠 마을 사람들이 내 말을 듣지도 않을 게요.”
   끼무라 국장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전에 한총도감을 보고 삯전을 주라고 했는데 주지 못해 미안하네. 이번엔 꼭 줄 테야. 근심하지 말고 총 도감을 맡게나.”
   한참이나 궁리하던 병완이 무거운 입을 뗐다.
   “군자 협의를 하깁소. 경찰국에서 책임지고 날마다 삯전을 딱딱 결산해 준다는 계약서를 쓰오. 삯전을 주지 않으면 인부들은 집에 돌아가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끼무라 국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사무 상으로 돌아가 의자에 앉아 병완을 곁눈질하면서 한참이나 궁리하다가 쇠 덩이 같은 침묵을 깨뜨렸다.
   “계약서를 쓰지. 허나 날마다 삯전을 준다는 건 시끄러운 일이네. 달마다 삯전을 한 번씩 결산해 주기로 하게나. 난 한길수 영감과 자네를 우시장에서 내 두 팔로 생각하네. 잘 하면 일본 대제국은 당신들에게 최고무상의 권력과 부유를 줄 것이요. 어서 인부들을 빨리 되불러 오오. 눈이 녹기 전에 목재를 베 오고 봄이 돌아오면 토목공사를 시작하잔 말이요.”
    끼무라는 병완이가 제기한 품삯 계약서를 쓱쓱 써서 병완에게 주었다. 분명 끼무라의 친필 계약서에는 우시장 경찰국장 끼무라의 이름이 씌어 있었고 경찰국 도장과 끼무라의 손지장도 찍혀 있었다.
    병완은 계약서를 둬번이나 찬찬히 들여다본 후에야 머리를 끄덕이었다.
    “계약을 꼭 지키오. 그러잖으면 이후에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인부들은 말을 듣지 않으니까.”
   병완은 뜻밖에도 선선히 대답하는 것이었다. 끼무라와 길수는 그 이상할 만치 선선한 대답에 자기들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권세욕과 탐욕 앞에선 누구나 용빼는 수가 없지.)
   끼무라는 득의양양해 미리 준비한 동전을 몇 십 개를 책상 우에 달랑 꺼내놓았다.
   “병완 총도감, 이전에 일한 삯전이네. 당신이 먹고 나머지를 나눠주면서 공지에 불러오게나.”
  병완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양이 쥐 생각하는군.)
  병완은 동전을 거들떠도 보지 않으면서 투정질을 했다.
  “고까짓 걸로 턱도 안 되우.”
  끼무라 국장은 옹졸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만해도 대단하지. 저목장이 다 타버려 목재 하나도 건지지 못하였는데 삯전은 무슨 삯전. 흥! 삯전을 주지 않아도 인부들을 붙잡아 일을 시킬 수 있어!”
   “총 도감을 못 하겠소. 이담에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삯전을 주지 않으면 우린 어데 가서 말한단 말이요?”
   끼무라는 안 되겠는지 서랍에서 또 동전을 한줌 쥐여 내놓았다.
   “먼저 가져가져다 나눠 주게나. 이후엔 꼭 줄 테니 근심하지 말게. 지금 경찰국에도 독립군을 방비할 무기를 들여오고 자위대를 묶어세우느라고 돈이 판 부족이란 말이요. 대일본 제국을 위해 잠시 경제난을 함께 극복합세.”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이 자기보다 병완을 더 대단히 여기는데 여간 불쾌하지 않았다.
    (내 눈을 상했다고 감히 페물짝 취급해? 이젠 병완을 진짜 중용할 속심인가? 일본 놈들은 개새끼야. 믿지 못할 개새끼들이야.)
   길수는 질투심이 나서 두덜거렸다.
   “삯전만 저렇게 척척 내놓으면 나도 총 도감을 잘 할 수 있습구마. 흥! 젠장, 인부들이 반항을 해 볼만 하구나.”
   그 소리에 병완은 쓴 웃음을 지었다. 류강철은 그 두덜거리는 소리만은 통역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교활한 끼무라는 한길수의 속을 꿰뚫어 볼대로 보았기에 그 두덜거리는 소리가 대개 무슨 뜻이란 걸 알아듣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렇든 저렇든 병완은 삯전 주머니를 들고 경찰국 문을 나섰다.
   그는 삯전주머니를 든 손을 부르르 떨었다. 밸 같으면 쥐어 던지고 가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품삯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쌀 고생을 할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자 밸을 눅잦히고 마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젠 봄이 다가오려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데도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다. 아마 병완은 마을 사람들에게 적으나마 삯전을 줄 수 있어 그랬던지 추운 줄도 모르고 씨엉씨엉 걸었다.
    병완은 가슴 속에서 일루의 희망이 신기루처럼 솟아오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안개 속에서 꿈틀거리는 유혹이건만, 일시나마 마을 사람들에게 밀린 삯전을 조금이라도 나눠 줄 수 있어 생기는 기쁨이리라.
   그의 가슴 속에서는 총도감을 하는 편리를 리용해 경찰국 사무청사를 무너뜨리려는 교묘한 계획이 무르익고 있었다.




                      7. 성동격서



   병완은 쌩쌩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무릅쓰고 온 오전 걸어서야 운주동에 이르렀다.
   병완이 집에 들어서자 기준의 부부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이고, 아버님, 돌아왔습둥?”
    “ 시아버님, 그새 감방에서 얼마나 고생했겠습둥?”
   기준 부부는 병완을 위방에 모시고 넙적 절을 올렸다.
   그때 고방에서 성희와 하옥이 나왔다.
   “이게 웬 일이요? 어떻게 돼 여기 있소?”
   성희가 허리를 펴면서  대답했다.
   “그간 무사했어요? 일본 놈들의 등살에 견디지 못해 하는 거 보고 둘째아들이 데려왔어요.” 
   “음, 그러나 저러나 넷째손자를 안아보자."
   최사련은 갓 난지 반년도 되지 않는 상순을 고방에서 안아 내오고 저녁 준비하러 부엌으로 내려갔다.
   “어이유, 이 놈, 딱 제 애비를 닮았구나. 얼굴이 길쭉한 게 참 잘 생겼구나. 아~그, 딱.”
   병완은 손자가 고와서 안아보고 싶었지만 금방 바깥에서 들어온 찬 몸에 닿아 감기에 걸릴 까봐 그저 들여다보기만 했다.
   한참 후 몸이 녹은 후 병완은 넷째손자 상순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
   상우는 웃새 집으로 기별하러 달려갔다.
   그새 병완은 성희에게서 성칠과 집식구들이 그새 일본 놈들에게 당한 봉변을 대충 들었다.
   “성칠은 검둥이 귀에다 쪽지를 보내 왔더군요. 뭐 고향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냥을 하면서 무사하다고 하지 않았겠어요.”
   “사냥해도 범죄라고 잡아가니까요. 이젠 어떻게 살아요? 호-”
   병완도 천정을 쳐다보면서 천정이 날아나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때 기별을 받은 창준 부부가 자손들을 데리고 들어와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병완은 벽에 기대 앉으면서 기준이 말아주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일본 놈들은 정말 교활한 놈들이야. 나를 이용해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자는 게지. 눈깔이 뽑힌 길수가 쓸모없게 됐다고 여긴 것도 있고.”
   직통배기 기준이가 툭 내쏘았다.
   “누가 그 놈들의 둥지를 지어준다오?”
   병완은 창준이가 부시를 쳐서 부쳐주는 담배를 한껏 빨아 연기를 후~ 길게 내뿜더니 말했다.
   “그 놈들이 삯전을 준다 해도 짓지 않겠니?”
  기준은 울뚝 밸을 썼다.
  “그 놈들 얼림 수에 들 거 같소? 쳇, 목을 매 끌어가도 공지에 가지 않겠소.”
   병완은 그저 마른기침을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을 대충 들고 밤이 깊어 창준이랑 떠나간 후 병완은 기준만 불러 조용히 위방에서 귀속말을 했다.
   “면회하러 왔을 때 이전에 내가 말한 말이 기억나니?”
   기준은 한참 궁리하더니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나무옹이와 벌레 말씀입둥?”
   “응.”
   “예, 벌레 있는 통나무로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지으면 몇 해 가지 못해 무너지고 말겁니다. 중심대들보에 쐐기를 하나 박아주든지.”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일본 놈들이 곱다고 사무 청사를 지어주겠느냐? 그 놈들은 사무 청사를 다 짓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을 들볶을 게 아니냐? 성칠은 분명 진달래사돈이랑 영솔하는 독립군과 연계있는 거야. 성칠처럼 총을 들고 맞서 싸우는 것도 좋아. 또 일본 놈을 도와 사무 청사를 지어주는 척 하면서 무너지게 만드는 것도 상책이 아니겠느냐? 으흠.”
   밤이 깊도록 위방에서는 두런두런 주고받는 말소리가 가담가담 들리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 부자가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위방에서 등잔불까지 끄고 병완은 셋째아들 기준에게 귀속 말을 계속 했다.
   “가을 쯤에 경찰국을 다 짓는 날엔 네가 먼저 만주에 가 봐라. 감방에서 수감자들에게서 들었는데 만주에는 묵밭도 많고 기장밥에 장국을 먹으면서 잘 살수 있다더라.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도 찰밥에 장국을 대접시킨다고 하더라.”
   “나도 우시장이나 명천 장마당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활 팽개치고 몽땅 만주에 가서 살깁소.”
   안주인들은 그 소리에 숨이 한 줌만 해졌다.
   “나도 감방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한길수의 눈알을 뽑아놓아서 일본 놈들은 나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 총 도감을 시킨 건 날 이용해 사무 청사를 지으려는데 지나지 않아. 경찰국 사무 청사를 다 지으면 그 놈들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성칠이 독립군과 연계 있다고 잡아 죽이자고 미쳐 날뛰고 있지 않느냐. 이 고향에서 살긴 다 틀렸어. 후— 이 일을 어쩜 좋겠느냐?”
    “알았습구마. 내 이미 나무벌레를 자귀질하면서 가득 붙들어서 치워 놓았습구마.”
   “잘 했다. 밤도 깊었으니 가서 자라. 내일부터 다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로 가자. 벌레를 대들보에 넣는 건 우리 부자간이 비밀리에 하자.”
   “예. 알았습니다. 편안히 쉽소.”
   미닫이문이 쓰르륵 쓰르륵 닫는 소리가 들리면서 기준이가 고방으로 들어갔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왔다. 여기저기 잔설들이 남아있었지만 자연스레 계절이 바뀌면서 찾아온 따뜻한 봄기운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 산에서 종달새가 “지종”, “지종” 애처롭게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시장 경찰국 사무 청사 공지는 사면에서 일본 헌병들과 자위대 놈들이 총칼을 빼들고 삼엄하게 지키는 바람에 자못 삼엄한 분위기 속에 잠겨있었다. 공지 뒤쪽 산꼭대기 망루에서 철갑모와 털모자를 쓴 일본 헌병들과 자위대 대원들이 서슬 푸른 총칼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며 보초를 서고 있었고 산중턱 벽돌로 쌓은 보루에 기관총까지 걸어놓고 독립군의 습격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삼엄한 경계를 밟으며 숱한 인부들이 개미떼처럼 바글거리면서 일하고 있었다.
   병완이 삯전을 가져다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준데다 사냥하면 일본 놈들이 잡아 가두는 바람에 숱한 마을 사람들이 공지로 다시 몰려왔던 것이다.
   일을 다시 시작한 후 끼무라 국장은 직접 공지를 자주 드나들면서 살폈다.
   이른 아침인데 저 둔덕 아래서 오토바이 몇대가 먼지를 보얗게 일구면서 부릉부릉 달려왔다.
   끼무라 국장이 통역 류강철과 한길수 대장 그리고 몇몇 졸개들을 데리고 오토바이 몇 대에 갈라 앉아 달려왔다. 
   오토바이에서 내리자 끼무라 국장은 군도자루를 왼손으로 잡고 독기어린 눈으로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곧추 병완 등이 한창 지붕틀을 짜는 목수 간 앞으로 다가왔다.
   병완은 쐐기를 박을 구멍을 파다가 멈추고 끼무라 국장에게 눈인사를 했다.
   끼무라 국장은 다가와 흰 장갑까지 벗고 병완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 총도감, 수고 많네. 보라니깐. 내가 사람 보는 눈만은 있지. 당신이 총 도감을 맡으니까 인부들이 모여들고 일이 척척 돼가지 않는가! 허허허.”
   끼무라 국장은 넉가래 같은 병완의 손을 잡아 흔들면서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류강철이 통역하자 뒤따라온 길수는 입에 다발을 세 개나 걸 지경으로 불만스러워 했다.
  (쳇, 병완을 믿다가 이제 한지에 방아를 걸지 않나 두고 봐라.)
  그런데 끼무라 국장은 계속 병완과 지껄여댔다.
“김총도감이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느라고 수고 많은데 우시장에 기와집 한 채를 마련해 줄까? 여기 우시장에 와서 살 생각은 없는가?”
    병완은 짐짓 미소까지 지으면서 대답했다.
   “끼무라 국장, 호의는 감사합구마. 난 시골 눔이 돼 영월동 시골이 좋단 말입구마.”
  “허허허.”
  끼무라 국장은 너털웃음을 웃더니 머리를 길수 쪽으로 되돌렸다.
  “김총도감은 한대장과는 판판 달랐쏘까. 한대장은 시내에 오니 기생집이 가까워 입이 함박만 해졌는데.  자넨 진짜 땅을 밟고 하늘을 떠인 사내대장부야. 호한은 여색을 멀리 하는 법이야. 허허허.”
   한길수는 눈을 흘기면서 두덜거렸다.
   “흥, 녀자라면 오금을 못쓰다가두. 검정개 돼지 흉을 한다고 해라?  ”
  끼무라는 그 두덜거리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뒤이어 그는 코 수염을 손으로 쓱 문질렀다.
   “올해 가을에 새 경찰국 사무 청사에 들게 해주게나. 늦어도 명년 봄 안에는 새집들이를 하게 말이네.”
   류강철이 통역하자 그때라고 생각한 병완은 끼무라 국장을 마주 보면서 시원히 대답했다.
  “끼무라 국장, 경찰국 사무 청사는 올 가을 전에 다 끝낼 테니까. 근심하지 마오. 그런데 한 가지 청 들 일이 있소.”
   류강철이 통역해주자 끼무라 국장은 “요로씨이(좋아). 무슨 요구?” 하고 한걸음 다가섰다.
   병완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기준과 창준을 비롯한 여러 목수들이 대패질과 자귀질을 하는 것을 둘러보고 나서 끼무라의 오른팔을 잡고 한쪽으로 가서 조용히 말했다.
   “내 맏아들 성칠을 풀어 줍소. 그 애가 사냥을 한 것뿐인데 독립군으로 몰아 죽일 셈입니까?”
   “뭐? 성칠이?!”
   끼무라 국장의 눈이 갑자기 떼꾼해졌다.
   “안 돼! 그 놈을 잡으러 갔다가 우리 헌병대원들이 수태 죽었쏘다. 성칠이, 독립군과 이거네.”
  끼무라는 엄지와 식지를 붙였다 뗐다 해 보였다.
   “그 앤 아무 죄도 없습구마. 독립군인지 뭔지 아직도 모르고 이날 이때까지 살아왔단 말이요. 그날 독립군이 왔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그 애와 아무런 상관이 없소이다.”
   “안 돼! 성칠만은 안 된단 말이야!”
   한길수는 깨 고소해하는 눈길로 병완을 쏘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밸 같아선 병완을 개화장으로 단매에 쳐눕히고 싶었다. 그러나 끼무라 앞인지라 용 빼는 수 없어 속을 끙끙 앓았다.
  병완은 그 눈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끼무라한테 다가서면서 기를 쓰고 성칠을 구하려고 청을 들었다.
   “끼 국장님, 내가 어쩌다가 청을 드는데 요만한 것도 안 되오? 내 맏아들을 용서해줍소. 예?”
  그러나 끼무라는 딱 잡아뗐다.
  “안 돼! 그 놈을 생각하면 자네도 용서할 수 없어. 조선에는 한 놈이 역적의 죄를 지으면 구족을 멸한다는 말이 있잖은가! 성칠이 그 놈이 지은 죄는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자넨 우리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목수이고 총 도감이기에 용서해 준거니까 그만하게. 괜히 내 생각이 바뀌게 하지 말게나.”
   병완은 안 되겠다 싶어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한길수는 멀찍이 서서 우멍 눈을 가슴츠레 뜨고 끼무라 국장과 병완이가 쑤군거리는 것을 아니꼽게 곁눈질해보았다.
  뒤이어 한길수는 영팔의 팔을 잡고 한쪽으로 가서 쑤군거렸다.
   “영팔이, 저 병완에게 딱 붙어 다니면서 지붕틀을 제대로 짜나 감시하게나. 좋기는 한사람을 목수무리 속에 잠입시켜 암암리에 감시하게 해라.”
   그러자 영팔은 머리를 끄덕였다.
   한길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병완의 꼬리를 잡아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그래야만이 일본군 속에서 자기 권위를 수호할 것만 같았다. 병완이 끼무라 국장의 신임을 얻는다면 자기 자리를 빼앗길 것만 같은 위기감이 들었던 것이다.
    목수 간에서는 병완과 기준, 창준을 비롯해 목수 일여덟이 부지런히 지붕틀을 짜고 있었다. 그때 영팔은 그들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면서 힐끔힐끔 감시하고 있었다.
    요즘 낯선 목수 하나 목수간에 들어왔는데 꽤나 까다로웠다. 병완이가 시키는 일은 하지 않고 힐끔힐끔 병완만 살피는 눈치 같았다.
    병완은 그자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기준과 창준에게 눈짓했다.
   한참 일하고 나서 병완은 뒷간으로 가는 척 하면서 기준에게 뒤쪽을 머리짓 했다.
    병완은 뒷간에 가서 대변을 보는 척 하면서  조용히 귀속 말을 했다.
    “아무래도 새로 온 목수란 자가 한길수 끄나불인 거 같아. 운주동 사람도 아니고, 신흥동이나 가마골 사람도 아니잖니? 어떻게 하나 그 놈들의 눈을 피해 나무벌레를 지붕틀 중심에 넣어야겠는데. 그 놈이 걸리는구나.”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한참 후 기준이 수를 내놓았다.
   “아버지, 내 그 놈 끄나불과 걸고들어 싸우면서 그 놈들의 눈길을 돌리는 틈에 손을 쓰면 어떻습둥?”
   “오, 그게 참 묘수구나.”
    그들 부자는 영팔의 의심을 살까 봐 인차 뒷간에서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팔이 벽 밑에서 이쪽을 흘끔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 놈이 저게!”
   기준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병완은 기준의 팔소매를 슬쩍 쥐어 당기며 말리였다.
    그들이 목수 간으로 들어가는데 영팔이 뒤에서 불평스레 투덜거렸다.
    “변소간에 한시에 둘씩이나 가다니. 흥! 그러구서야 언제 경찰국을 다 짓겠는가?”
   새로 온 목수가 또 힐끔거리면서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때라고 기준은 그 자한테로 다가갔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그 목수는 힐끔 병완을 쳐다본 후 눈을 내리깔면서 대충 대답했다.
  “웅진에서 왔소."
  "오- 그래? 어째 웅진에서 본적이 없는데."
   그 자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웅진에서 이 백승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소.”
   “어데서 듣던 이름인데.”
   병완이 피뜩 보니 웬 곱사등이였다.
   순간 병완은 기준과 눈길을 마주쳤다.
   쉼에 병완은 기준과 창준을 불러 바깥에 나갔다.
   “승만이란 자는  웅진 길 어귀 도둑놈이야. 이전에 성칠에게 혼난 적이 있어."
   기준은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저 놈이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을까?” 하고 의문스러워 했다.
   창준은 수재답게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추측했다.
   “분명 한길수가 끌어들인 밀정입니다. 우리를 힐끔힐끔 감시하고 있잖습둥?” 
   “한길수는 도둑놈들이나 강도패거리들을 다 끌어들여 일본 놈의 개를 만들고 있어.”
   병완은 기준과 창준에게 뭐라고 귀띔해주었다.
   다음 쉼에 기준이가 한창 지붕틀에 구멍을 뺄 때였다.
   승만이가 대충 자귀질하는 척 하면서 기준을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그러자 기준이가 끌을 쥔 채 고함쳤다.
    “네 놈은 어데서 굴러온 놈인데 일은 하지 않고 눈깔만 힐끔거려?”
   “뭐라고?”
   “네가 감히 대들 테냐?”
   기준은 두 마디 안짝에 그 자의 멱살을 거머쥐고 주먹으로 눈통을 쳤다. 곱사등이 승만은 눈 통을 싸쥐고 오만상을 찡그리다가 마구 주먹질을 해댔다.
   그가 어찌 기준의 상대가 되겠는가!
   기준이 승만에게 한발 안기자 저쪽 기초구덩이에 뿌리어나가 보기 좋게 나부라졌다.
   둘이 맞붙어 싸우자 숱한 목수들이 그리로 욱 쓸어갔다. 영팔과 수길은 승만과 합세하려고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들 둘은 말리척하면서 기준의 양팔을 붙잡았지만 기준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결과 승만은 낯이 쥐마당이 되게 얻어맞았다.
    순간 병완과 창준은 톱밥 속에 감춰 둔 나무벌레를 파냈다. 기준이가 영팔까지 쳐 눕힐 때 그들 둘은 지붕틀의 중간 구멍마다에 나무벌레를 걷어 넣고 애교를 바른 쐐기까지 슬쩍 박아 넣었다.
   이때 한길수는 자위대원과 헌병 대여섯을 데리고 달려왔다. 병완과 창준은 그 놈들이 밀고 닥치면서 싸움을 말리는 것을 곁눈질해보면서 또 대여섯 개 지붕틀 중간에 벌레를 집어넣고 쐐기를 박아 넣었다. 실로 눈 깜짝 할 새에 일을 끝냈다.
   병완과 기준, 창준은 며칠 전에 미리 벌레가 있는 원목을 슬 슬 톱질해 노란 나무벌레를 나오는 족족 영팔이 패거리들의 눈을 피해 슬슬 집어 톱밥 속에 감춰 두었던 것이다.
    애교를 바른 쐐기는 한식경 지나자 딱 들어붙어서 다시 뽑자고 하여도 뽑을 수 없게 굳어져 버렸다. 그때쯤 되어 기준이 쪽의 싸움질도 여럿이 뜯어 말리는 바람에 끝나갔다.
   기준은 병완이 네가 지붕틀에서 손을 떼는 눈치를 채고 주먹의 먼지를 탁탁 털며 을러멨다.
   “이 놈새끼, 일하지 않았다간 죽여 버리겠다.” 
   백승만은 눈통이 닭 알만큼 부어올라 참말 꼴불견이었다.
   목수들이나 인부들은 속이 시원해 했다.
   “개자식, 눈깔을 힐끔거리면서 우릴 살피더니 쌍 통 했다. 히히.”
   “눈깔이 터졌으니 이젠 밑구멍으로 우릴 살핀다니? 흥.”
   “허허허.”
   “하하하.”
   “저 놈이 우시장 천하장수 병완도 몰라본 모양이지?”
   “글쎄 말이야.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른다더니 명천 울뚝이도 모르구 덤벼? 쳇!”
   “그러게 말이야.”
   병완은 인부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면서 창준과 기준을 바라보더니 만족한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씨무룩이 웃었다.
   한길수도 끼무라 국장의 부탁이 있는지라 기준을 어쩌지 못하고 외눈깔로 쏘아볼 뿐이었다.
   끼무라는 도리어 기준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책망인지 치하인지 분간하지 못할 말을 했다.
   “자식, 꽤나 주먹질을 잘하던데. 쳇, 자네 부자간은 사람을 치면 눈 통부터 잘 치는구먼. 그 애비에 그 아들놈이야.”
    “하하하”
   끼무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걸 알아듣지 못한 기준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부르르 떨며 부릅뜬 눈으로 영팔과 곱사등이 승만을 쏘아보았다.
    (개놈새끼들, 몽땅 외눈깔을 만들어놓고 말리라. 퉤!)
   기준은 더러워서 영팔이 쪽에 가래를 탁 뱉고 나서 씩씩 거렸다. 영팔은 옆구리에 찬 권총집에 손을 댔다 뗐다 하면서 단방에 기준을 쏴 죽이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했다. 그러나 끼무라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끝내 손을 쓰지 못했다 .  
   병완이 눈짓하자 기준은 지붕틀을 돌아보더니 목수 간 쪽으로 휭 하니 가버렸다.
   저쪽에서 뻐꾹새가 처량하게 울고 있었다.
   뻐꾹-
   뻐꾹-



          8. 힘장사 삼형제



    일제의 쇠발굽 아래에서 신음하는 땅에도 봄은 찾아와 겨우내 모진 추위를 이겨낸 풀싹들이 파릇파릇 움텄다.
    경찰국 사무청사 공지에서 인부들은 기둥을 세울 원목을 목도로 메여 날라 왔다. 그때 한 아름이나 되는 원목은 누구도 목도를 하려고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키가 훤칠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한 중년사나이가 나섰다.
    “원삼아, 우리 삼형제 메자.”
    “양, 형님.”
    모두 어깨가 떡 벌어진 사내들이였다.
    “기준아, 우리도 함께 메자.”
   그때 병완도 기준을 불렀다.
    원삼이라는 사내대장부가 웃통을 벗어버리고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이 울뚝불뚝한 팔로 한 아름이나 되는 원목 한쪽머리를 건뜻 쳐들었다.
    “와- 천하에 둘도 없는 힘장사로구나.”
    모두들 저도 몰래 감탄했다.
    병완과 기준, 창준이 장대기로 들린 원목 대가리를 떠받쳤다. 그러자 나머지 사내들이 목도를 틈 사이에 제꺽 들이밀어 넣었다.
뒤이어 그들 여섯이 세 곳에서 그 한 아름이나 되는 원목을 목도를 해 기초돌 쪽으로 “허기영차” “허기영차” 절주 맞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메여갔다.
    그들은 한번도 허리 쉼을 하지 않고 “허기영차” “허기영차” 단숨에 메여갔다.
    장사들의 모습에 끼무라마저 입을 딱 벌렸다.
   원삼이라는 사나이가 목도채를 내려놓으면서  병완에게 물었다.
   “우리 알고 지내깁소. 들을나니 총도감은 영월동에서 왔다던데 혹시 성칠 힘장사의 아버지가 아닙둥?”
   병완은 그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물었다.
   “맞소. 당신들은 어데서 왔소?”
   원삼은 병완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면서 일일이 소개했다.
   “우린 경성군 주을 면에서 온 삼형젭니다.”
   그는 나이 제일 많은 사나이를 가리키면서 “이분은 내 큰형님 리춘삼입니다.” 하고 이쪽 키 좀 작은 사나이를 가리켰다.
   “이분은 둘째형 리인삼입니다. 난 셋째 리원삼이고 막내 무삼은 집에 있습니다.”
   병완은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후 창준과 기준을 불러 일일이 인사시켰다.
   병완은 원삼의 삼형제를 둘러보면서 인사말을 했다.
   “이전에 성칠이 사냥하러 갔다가 신세 진 얘기를 합데. 성칠의 은인들을 이렇게 만날 줄은 정말 몰랐소. 우리 생사고락을 함께 하기요.”
    원삼은 사람 좋게 웃었다.
    “호한은 천하를 자기 집으로 생각한다는데 고만한 거야 뭐.” 
   병완은 “사람이 어려울 때 밥 한술이라도 도와 준 게 잊어지지 않지.” 하고 말했다.
   원삼은 병완과 함께 원목 위에 나란히 앉아 궁금한 것을 물었다.
   “성칠 형님은 어째 공지에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병완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성칠에게 그간 있은 일을 죽 이야기했다.
   이때 끼무라 국장이 군도자루를 잡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니, 원목 한 개를 메 오고 한식경이나 앉아 쉬는가? 언제 사무 청사를 다 짓겠는가?”
   “에이유, 저 놈들이 보기 싫어서 어디 살겠소?”
   원삼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면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저목장 쪽으로 떠나갔다.
   끼무라 국장은 한길수를 데리고 와서 인부들을 쉴 새도 없이 공지에 마구 내몰았다.
    끼무라는 인부들의 밭이 묵어가고 농사가 망가지는 것은 뒷전이고 경찰국 사무청사 건축에만 신경을 쓰면서 날마다 밤낮 숱한 헌병들을 파견해 공지를 지키게 해놓고서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공지에 나와 직접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차질이 없는가를 살폈다.
   “총 도감, 가을 전에 사무 청사를 다 지을 수 있소?”
   병완은 한발 나서면서  대답했다.
   “가을이면 새 청사에 들도록 하겠습니다. 이젠 지붕틀까지 다 짜 놓아서 너무 근심할 필요 없습구마.” 
    끼무라 국장은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코 수염을 슬슬 어루만지었다.
   끼무라 눈치를 슬슬 살펴보던 병완은 슬쩍 이런 말을 꺼냈다.
   “이젠 목수들의 일만 남았소다. 농번기에 인부들을 더러 집으로 돌려보내 밭갈이도 하게 돌려보내도 됩니다.”
   끼무라 국장은 병완에게 낯을 돌리면서 “그래도 되겠는가?” 하고 물었다.
   “예.”
  그때 한길수가 외눈깔을 부라리면서 꽥 소리쳤다.
   “관둬. 어떻게 데려온 인부들인데 돌려보내?!”
  병완은 자기 얼굴에 대고 삿대질하는 한길수의 손을 탁 쳐버리면서 맞고함을 쳤다.
   “인부들을 내 데려왔지. 네가 데려왔냐?!”
   “가마골 인부들은 나와 영팔이 억지로 끌어온 거야.”
   병완은 한길수의 외눈깔통에 대고 손가락질하면서 고함쳤다.
   “그럼 가마골의 인부들만 여기에 남기고. 나머지 인부들은 집에 보내면 돼.”
   한길수는 외눈깔을 무섭게 부릅떴다.
   “그래, 네 아들놈부터 집에 보내 농사짓게 해라. 안 그래도 네놈들 삼부자가 눈에 거슬린다.”
   병완은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공지 총도감은 내야. 니 가라면 가구 가지 말라면 가지 않을 거 같은가?”
   옆에서 류강철의 통역을 들은 끼무라 국장이 하얀 장갑을 낀 손을 흔들며 말리였다.
   “에이, 됐네, 됐어. 분공대로 공지 일은 병완 총도감이 하라는 대로 하게. 한 대장은 공지보호만 잘하면 돼. 병완 총도감, 조용히 할 말이 있네.”
   한길수는 병완을 흘겨보고는 영팔이랑 데리고 저쪽으로 휭- 하니 가버렸다.
   끼무라 국장은 기둥을 세울 기초 돌을 둘러보면서 병완에게 물었다.
   “총도감, 이젠 기둥을 세우고 지붕틀을 올려야 되겠구먼.”
   병완은 솔직하게 말했다.
  “예, 그래야 합지. 지붕틀을 올리려면 기준이나 원삼이네 사형제 같은 힘장사들만 남기고 나머지 웅진에서 온 약골 백승만이랑 쓸데 없습니다. 품삯이 아깝지 않습둥?”
   끼무라 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군. 그러나 백승만이만은 여기에 남겨둬야 하겠네. 저 사람은 웅진 부근의 한다하는 우두머리네.”
   (우리 짐작이 맞았구나. 승만 놈은 확실히 끼무라 놈이 박아놓은 밀정이야. 개놈새끼.)
   병완은 끼무라를 뒤따라 뚜벅뚜벅 걸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난 일본식으로 지은 적이 없어 근심됩구마. 아마 조선식으로 지어야 할 것 같습구마.”
   “어험, 거 말인가?”
   끼무라는 병완을 힐끔 곁눈질해 보더니 너스레를 떨었다.
   “건 이 땅에 우리 대일본 제국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거네. 꼭 일본식으로 지어야네.”
  (개놈들, 내 고향에 뭐 네 놈들의 자존심을 세워? 흥, 내 그 놈의 자존심을 개 좆대가리 부러지듯 꺽어놓아야지.)
   병완은 일본식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데 파악이 없어 기초 돌에 앉아 왼손으로 머리를 붙안고 고민했다.
   기준은 옆에 와 털썩 주저앉으면서 귀속 말을 두런두런 했다.
   “아버지, 잘 됐습구마. 오래 견디는 조선식 방틀 집을 지을게 있습둥? 일본식으로 아무래나 져 놓고 가버립시다. 쾅 무너졌으면 속이 시원하겠습구마. 흥!”
    병완은 주위를 두루 살펴본 후 기준에게 머리를 돌렸다.
   “아냐. 우리 만주로 떠나가기 전까지는 이놈 청사가 서 있어야 돼.”
    기준은 긴 한숨을 후- 내쉬었다.
   한참 후 기준은 흙을 한줌 쥐여 줴뿌리면서 말했다.
   “일본식이든 조선식이든 간에 무슨 관계있습둥? 저놈들이 지으라는 대로 아무래나 꽝 무너지게 지어놓고 가깁소.”
   병완은 기준의 훤한 이마를 마주 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끼무라가 군도자루를 잡고 웬 얄팍하게 생긴 자를 데리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바람에 병완은 기준에게 일어나 가라고 고개 짓을 했다.
   “에헴, 총도감 수고하네. 이젠 근심하지 않아도 되겠소.”
   그는 몸을 돌려 뒤따라온 말라꽹이를 돌아보더니 뒤 말을 이었다.
   “자, 소개해주지. 일본식 건축 설계사오.”
  병완이 인사하자 그 자는 손을 내밀었다. 병완은 억지로 손을 내밀었다가 말라꽹이의 차가운 손이 싫어 인차 놓아버렸다.
   끼무라 국장은 그자를 보고 가방 안에서 커다란 종이 한 장 꺼내놓게 했다.
    “이보게, 이건 경찰국 사무청사 설계도요. 이대로 지으면 되오.”
    보아하니 2층으로 된 집이였다.
    “끼 국장님, 난 이제껏 단층집을 지었지 2층짜리 집을 지은 적이 없습니다.”
   류강철이 통역하자 끼무라는 도리머리 질 했다.
   “당신은 그저 이대로 지으면 되오. 설계사는 총 도감에게 설계도를 설명해주게나.”
   일본 설계사는 반나절이나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짓는 방법까지 일일이 알려주었다.
    이튿날부터 병완은 기준이네 형제와 원삼이네 사형제를 불렀다.
    “우리 여기서 만난 것두 운명인 것 같소. 우리 의형제로 지내는 게 어떻소?”
     병완의 말에 원삼은 천근 무게도 들듯이 힘줄이 불뚝불뚝한 팔을 휘휘 저으면서 병완을 따라 성큼성큼 걸었다.
    “좋습구마. 성칠 장사의 아버지는 우리 윗벌이니까 양아버지처럼 모시고 우리 사형제와 성칠 형님, 그리고 기준형님과 의형제로 보내깁소.”
    병완은 믿음에 차 원삼의 어깨를 툭툭 쳤다.
    원삼은 병완을 바라보며 말했다.
    “총도감을 처음 봤을 때 힘깨나 쓰니까. 혹시 성칠 양반의 아버지가 아닌가 했습구마.”
   병완은 원삼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마음에 들어 어깨를 툭툭 쳤다.
   "자네들은 무슨 리씬가? 혹시 리씨왕조 전주 리씨 아닌가?"
   “아니, 우린 공주 리씹구마."
   "그래? 공주 리씨들은 무두 힘깨나 쓴다더니 정말이구먼. 어떻게 돼 이 먼데까지 인부로 왔소?”
   그 물음에 원삼은 황소숨을 몰아쉬었다.
   “별수 있습둥? 산골에서 사냥이나 하구 살았는데 일본 사람들은 이젠 사냥도 하지 못한다꾸마. 게다가 지주는 소작료를 8할씩이나 받아먹지. 그런 소작농사두 밭이 있어야 해먹지. 일본사람들이 밭에다 적송을 심으랍꾸마. 이젠 뭘 먹고 삽둥? 그런데 저 승만이란 놈이 우리 고향까지 와서 삯전을 푼푼히 준다면서 인부를 모집하지 않겠습둥.”
    “음, 어디나 다 한가지구먼.”
   병완은 속으로 승만이 정말 일본 놈을 단단히 등에 업은 밀정 놈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어느날, 경찰국 사무 청사 기틀이 선 것을 보자 끼무라 국장은 기뻐서 입이 함박만큼 벌어졌다. 그는 원삼이네 3형제한테 엄지를 내둘렀다.
    한길수는 끼무라 국장을 보고 두덜거렸다.
    “쳇, 끼 국장님께선 그래 정말 병완 놈을 나보다도 더 믿구 중용하겠니까? 그것도 모자라서 원삼까지 넘보는 겁니까? 그 놈들은 속에 비수를 품은 자들입니다요.”
    끼무라는 코 수염을 어루만지면서 간사한 웃음 띤 눈길로 한길수를 쏘아보았다.
     “한 대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그래 병완을 믿는다고 봐? 흥, 이 놈아, 저 놈들이 경찰국 사무 청사만 다 지으면 후환을 없애야겠다. 저 놈은 이 지방을 쥐락펴락할 놈이야. 성칠을 붙잡는 날이면 일거에 저 악당들을 몽땅 처단해버려야지. 내버려둬선 절대 안 돼. 우리 대일본제국이 이 지방에 뿌리를 박는데 큰 후환거리로 될 거야.”
     그제야 한길수는 실눈을 지은 외눈깔에 배시시 웃음기가 새어났다.
    온 몸에 힘을 얻은 한길수는 피 눈이 돼 병완의 꼬리를 밟으려고 미쳐 날뛰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한길수는 영팔을 데리고 갓 세워놓은 기둥들과 가름대로 갓 얹어놓은 대들보를 일일이 검사했다.  
    그때로부터 또 두 달이 지났다. 경찰국 사무청사가 일떠섰다. 1층은 조선식 방틀집이고 2층은 일본식 판자집으로 돼 진짜 짜구배 집 같았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서늘한 가을에 갓 들어섰다. 우시장과 명천을 둘러선 치마봉과 기운봉에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다.
  경찰국 사무 청사는 보기에는 그럴듯했다. 건뜻 쳐들린 추녀, 아름드리 기둥과 대들보, 초대형지붕틀…
    끼무라 국장은 2층으로 된 새 경찰국 사무 청사를 보면서 입이 함박만 해졌다. 그는 군도자루를 잡고 나까노라 헌병소대장과 림산파출소 소장에 갓 복직시킨 야마모도소장, 야마다 면장, 헌병 분대장 가메다, 그리고 조선 졸개들인 자위대장 한길수, 자위대 중대장 영팔과 수길, 경찰 허꺽쇠, 똘만 등을 거느리고 새 경찰국 사무 청사에 들어갔다. 서른 간도 넘는 경찰국 사무 청사를 일일이 돌아본 끼무라 국장 일행은 2층에 올라 우시장시내를 내려다보다 멀리 보이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남산을 쳐다보더니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한길수는 이 경사로운 새집들이잔치에 끼무라 국장이 병완과 삼부자와 원삼 삼형제를 부르지 않은 것을 보고 깨고소했다.
    (그럼 그렇겠지. 아무렴 우리 끼무라 국장님이 저 놈들을 더 믿어? 어림도 없지. 흐흐흐.)
   끼무라는 2층 난간에 뚱뚱한 배를 대고 옆에 선 한길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병완이를 우시장으로부터 회령까지 통하는 길닦이공지 우시장 구역 총 도감으로 내몰게나.”
   그 말에 한길수는 외눈깔이 뒤로 번져 질 지경이었다.
   “또 총도감입둥?”
   끼무라 국장은 눈귀로 한길수를 내리 흘겨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아직 성칠을 잡지 못하였네. 알만한가?”
   “예~ 허허허. 그물을 넓게 쳐서 큰 고기를 잡아야죠. 거 참 묘한 수입니다. 또 하마터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를 번했습니다.”
   한길수는 우멍한 외눈깔을 데굴거리면서 손으로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병완은 진작 끼무라 국장 놈의 속심을 빤히 들여다 본데다가 일본 놈들의 믿음 따위나 칭찬 따위를 바라지 않았으므로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다만 한 달 채 주지 않은 인부들의 삯전이 근심스러웠고 개 코처럼 우뚝 솟은 경찰국 사무 청사가 계획대로 나무벌레들에게 무너지지 않을까봐 손바닥에 땀을 그러쥐고 근심할 뿐이었다.
    이때 한길수가 2층에서 내려오더니 외눈깔에 득의양양한 빛을 띤 채 다가왔다.
   “병완이, 내일부터 인부들을 데리고 길닦이에 나가게나. 끼 국장께서 자넬 길닦이 총 도감으로 중용한다네. 참, 좋겠다. 에헴.”
    그러자 병완은 침을 탁 뱉었다.
    “가서 전하게나. 한 달 삯전을 빨리 내달라고. 삯전을 주기 전엔 길닦이에 나가지 않겠네.”
   “닥쳐!”
   끼무라 국장이 군도자루를 잡고 2층에서 내려와 인부들 앞에 오더니 군도를 쓱 뽑아들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고함쳤다.
    “대일본 제국의 길을 닦으라는데 무슨 삯전소릴?! 누가 감이 안 나가?! 몽땅 죽여치우겠다!”
   병완 삼부자와 원삼 삼형제는 끼무라 국장이 빼든 서슬 푸른 군도를 쏘아보면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부르르 떨었다.
   여기저기에서 땅이 꺼질 듯 한숨소리가 났다.
   퍼렇게 딩딩한 가을하늘이 둥근 천정처럼 이 땅덩어리를 칭칭 둘러 감았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공지의 가을하늘은 넓었지만 끼무라의 서슬 푸른 군도아래 찜통 속처럼 숨이 막힐 듯이 좁고 갑갑했다.
    을씨년스럽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 봉오리들은 변덕스러운 조화를 부리는 비구름 속에 숨박꼭질을 하듯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나군 했다. 길닦이에 끌려 나갈 원삼 삼형제를 비롯한 인부들은 머리를 숙이고 투덜거리면서 긴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고향 산골에 심어 놓은 감자가 멧돼지들이 다 파먹겠는데 어쩌는가? 길닦이에 발목을 잡혀서. 원 일본 놈들의 성화에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원삼은 어둑어둑해지는 저 멀리 동북쪽의 고향 쪽의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날아지나가는 기러기 떼들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쓸쓸하게 들리어왔다. 마치 기러기들도 인부들의 가긍한 신세를 동정이나 하는 듯이 구슬프게 울면서 줄지어 날아 지나갔다.


      저자의 말:
       이제까지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1권을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제2권을 실어드리도록 약속하겠습니다. 기대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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