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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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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1)
2015년 07월 17일 11시 39분  조회:2002  추천:1  작성자: 김장혁
              



               3.
통나무 벌레의 비밀



      토끼 꼬리만한 늦겨울의 해는 어느새 수림 속의 엄동설한에 밀리어 맥없이 넘어가고 하얀 눈이 뒤덮인 수림에 어둠의 장막이 무섭게 어둑어둑 내리 드리었다.
      일본 놈들은 성칠의 사냥총을 빼앗으러 갔다가 독립군의 습격을 받아 동료 몇을 잃었다. 그 놈들은 림산파출소 경찰까지 다 동원해 수림을 서캐 훑듯 했지만 독립군의 그림자도 찾지 못하고 닭 쫓던 개 신세로 됐다. 다만 동서로 갈라진 어지러운 말발자국 밖에 보지 못했다.
     일본 놈들은 보병으로 기병을 쫓아 붙잡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놈들은 공포에 찬 어둠이 깃들자 매복습격이라도 받을까봐 황급히 꼬리 빳빳해 림산파출소로 내려왔다.
     한편 진달래와 성칠은 독립군 대원들과 함께 백마를 타고 일본 놈들을 수림 속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역습을 가하려고 했다. 그런데 교활한 일본 놈들이 수림 속에서 철거하는 바람에 성사하지 못했다.
    성칠은 진달래를 보고 말했다.
    “최 부소대장, 부모형제들이 어떻게 됐는지 영월동에 가 봐야겠네.”
    진달래는 어둠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성칠을 쳐다보면서 나직이 말했다.
    “원수는 꼭 갚아야 해요. 그러나 오늘 영월동에 내려가선 안돼요.  위험해오. 놈들은 꼭 오빠네 집에 그물을 치고 뛰어들기를 기다릴 거요.”
    진달래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던 성칠은 옆에 앉아있는 검둥이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그럼 다른 수를 쓰지. 검둥이를 집에 보내겠소. 검둥이가 무사한걸 보면 내가 무사한 걸 짐작할 거요.”
    성칠은 무릎을 꺾으면서 쪼그리고 앉더니 검둥이의 대가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중얼거렸다.
   “검둥아, 네가 집에 가라.”
    검둥이는 알아들었다 듯이 낑낑거리면서 꼬리를 휘휘 내저었다. 검둥이는 눈이 시허옇게 뒤덮인 수림 속으로 사라졌다.
    “최 부소대장, 영월동에는 며칠 후에 가기로 하구 운주동에 가 봐야겠소.”
   진달래는 성칠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말했다.
    “오빠, ‘최 소대장’, ‘최 소대장’ 하지 말고 ‘진달래야’ 하세요. 종전처럼 야, 자 하세요. 운주동엔 뭘 하려고요?”
    성칠은 진달래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목소리를 낮췄다.
    “ 넌 부소대장이야. 숱한 사람들 앞에서 야, 자, 해서야 되겠니?”
   “괜찮아요. 운주동에 있는 동생들과 조카들을 만나려고 그래요?”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아버지를 면회하러 갔을 때 아버지는 기준한테 전하라더라. ‘통나무 옹이나 벌레를 조심하라구.’ 목수인 기준은 그 말귀를 알아들었을 거야.”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오빠, 나도 운주동에 갈래요. 큰아버지도 만나 보고.” 
   “최구장을 만나러?”
   “예, 그집 둘째오빠는 검술에도 능하니까. 우리 독립군에 합세하자고 말해야겠어요.”
    “네가 어떻게 가겠니? 그곳은 위험해.”
    성칠의 말에 진달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누구도 아녀자가 이런 일을 하는 걸 모를 거요. 우리 오누이 부부처럼 가장하고 밤에 운주동에 들어가면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성칠은 그제야 한숨을 후 내쉬었다.
    진달래는 독립군 대원들과 함께 말을 타고 어둠을 타 운주동으로 가만히 달려갔다.
    독립군 대원들은 말에서 내려 마을 근처 버들방천에 숨어 대기하게 하고 성칠과 진달래가 운주동으로 스적스적 들어갔다.
    제일 동쪽어구에 있는 최구장네 집에는 진달래가 대원 한명만 데리고 들어갔다. 거의 동시에 성칠은 서쪽에 자리 잡은 기준네 집 앞에 이르렀다. 성칠은 사위를 둘러보고 나서 독립군 대원을 구새목에서 보초를 서게 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초저녁이지만 성칠이가 사냥총을 들고 웃방에 들어서자 기준은 적이 놀라면서 우쭐 일어나 문안했다.
    “형님, 집에 무슨 일이 생겼소?”
     제수 최사련이 난지 몇 달 안 되는 상순을 안고 위방에 올라와 인사했다.
    성칠은 제수가 올린 술상에 마주 앉자마자 막걸리사발을 들어 마시면서 그간 우시장과 영월동에서 있은 일을 쭉 말했다.
   기준은 원래 아버지보다도 성질이 우락부락했다. 그는 맏형의 말을 듣고 펄펄 뛰었다.
   “작두날로 찍어 죽일 놈들, 언감 아버지를 가두고서도 형님께도 손을 댄단 말이요? 개놈새끼들이 사냥도 하지 못하게 하면 입에 거미줄을 치라오?”
   성칠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뒤이어 성칠은 기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엊그저께 면회하러 갔을 때 아버지는 ‘통나무의 옹이나 벌레를 주의해라.’고 하더라잖았니? 감옥이여서 말씀하기 불편해 암시한 말씀 같구나. 넌 목수니까 전번에 내 아버지 말씀 전했는데 뭘 암시했는지 알았지?”
    “통나무 옹이나 벌레를 주의하라? 알긴 알았소.”
    기준은 담배를 말아 뻑뻑 빨면서 아버지 말씀을 되새기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한참 후 기준은 머리를 들어 성칠을 바라보면서 무겁게 입을 떼였다.
    “그 말을 그대로 풀어보면 통나무의 옹이나 벌레를 주의해 경찰국 사무 청사가 무너지지 말게 하라는 말씀인 거 같소. 자칫 탄로나면 아버지처럼 해를 입을 수도 있지.”
    “음.”
    기준은 마른기침을 하며 뒷말을 이었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가 일본 놈들 사무 청사인지 개나발인지 잘 되기를 바라겠소?”
    기준은 형의 귀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 귀속 말을 했다.
    “이전에 목수 간에서 일할 때두 아버지는 통나무 벌레를 파서 물초롱에 던지면서 늘 이랬소.  ‘이런 벌레 먹은 통나무로 집을 지어서 몇해 가겠는가?’ 이렇게 말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소. 그 말씀을 연계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분명‘통나무 벌레를 기둥에 박아 넣어 일본 놈들 사무 청사가 무너지게 하라.’고 귀띔한 것 같소.”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그럼 옹이는 뭐냐?”
   기준은 목수로서 짐작되는바가 있었다.
   “옹이 많은 나무를 쓰면 눈에 날게고. 주의는 해야지. 그러나 우리에게 기둥이나 대들보에 옹이 대신 쐐기를 묘하게 박아 넣어 무너지게 하라는 게 같소. 쐐기 하나만 대들보에 박으면 천정무게가 한쪽으로 기울어 몇 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번듯한 청사도 무너질게 아니요?”
    성칠은 연신 끄덕이었다.
    "오, 거 참 묘수로구나.”  
   뒤이어 그는 기준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쑤군거렸다.
    기준은 연신 개탄했다.
    “옳소, 옳소, 알았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근심하지 마오.”
    "아버지 말씀 알아들었으면 이젠 늦추지 말구 경찰국청사를 와르르 무너지게 만들어라."
    "알았소."
    일이 이쯤 되자 성칠은 이 추운 겨울에 바깥에 말을 쥐고 서있을 독립군 대원들이 근심돼 바깥에 나갔다.
   그는 보초를 서는 대원더러 가서 최 소대장에게 운주하 버들방천에 숨어있는 독립군 대원들을 집에 데려다 자게 하는 게 어떻겠는가고 물어보라고 부탁했다.
    성칠이 집에 재차 들어간 후 대원은 곧추 마을 동쪽의 최구장의 집으로 달려갔다.
    바깥에는 독립군 대원 바우돌이 망을 보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진달래가 한창 큰아버지 최구장과 맏오빠 경숙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우돌이 바깥에서 들어와 연통하자 진달래는 바깥에 나갔다.
  그는 성칠이 쪽에서 온 독립군 대원의 말을 듣고 좀 생각하다가 말했다.
   “성칠 오빠는 쫓기는 몸이어서 동생네 집에 들어가 자긴 틀렸어요. 오히려 여기 우리 큰아버지네 집이 더 편리해요. 내 이제 들어가 큰아버지한테 사냥꾼 친구들이라고 말해보고 여기 와서 하루 밤 묵어 가자요.”
    진달래가 집 안에 들어갔다가 인차 나왔다.
   “대원들에게 말을 끌고 오라고 하세요.”
    “말까지 끌어오면 혹시 일본 헌병 놈들이나 오면 의심을 받지 않겠소?”
   “괜찮아요. 큰아버지는 아직 그 놈들 눈에 나지 않았으니까요.”
   진달래는 성칠까지 불러다가 독립군 대원들과 함께 최구장의 집에서 하루 밤 묵으면서 푹 쉬었다.
   이튿날 장국까지 맛있게 마시고 진달래는 떠나게 됐다.
   이른 아침에 최구장은 뒷간에 가다가 총을 잡고 망을 서며 숱한 백마를 지키는 바우돌을 보고 심상치 않은 감을 느꼈다.
   최구장은 떠나가려는 진달래를 한쪽으로 조용히 불러 귀속 말로 물었다.
   “너희들은 혹시 일본 놈들을 사냥하는 거 아니냐?”
   진달래는 한기에 언 철색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최구장은 조카에게 마음먹고 귀띔해주었다.
   “옛 성인들이 가로사되 ‘자기를 억제하고 례에 맞게 행동하라.’고 하였느니라. 뭐나 중용을 지키는 게 좋아. 일본 사람들이 무력으로    우리를 짓밟으니 좋으냐? 뭐나 무력으로 해결하자고 말아라. 남의 피를 보면 자기도 피를 흘려야 하느니라. 스물도 넘은 계집애 시집은 가지 않고 엉뚱한 일에 삐칠게 뭐냐?”
   진달래는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귀띔에 고마워요. 너무 근심하지 마세요.”
   최구장은 백마를 타고 멀어져가는 진달래를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달려가는 백마들의 말발굽소리 요란하고 그 뒤로 하얀 눈꽃이 새뽀얗게 흩날렸다. 눈 덮인 기운봉 저쪽으로 백마들이 자그마한 하얀 점들로 아물거렸다.
                                              

                        4.
사냥꾼



    엄동설한은 새끼를 쳐서 대지에 한기를 내리뜨렸다. 그러나 독립군 대원들의 항일에 달아오른 가슴을 얼구지는 못했다.
    진달래는 그날 밤에 바우돌을 데리고 불붙이에 있는 경인오빠한테 찾아갔다.
   진달래가 밤중에 문을 두드리고 들어서자 경인은 놀랍기만 했다.
   “아니, 얘, 어찌 이 추운 겨울에 왔느냐?”
    진달래는 경인오빠와 형님 어금에게 인사를 드린 후 정주간에 앉았다.
    어금은 부엌에 내려가 칼 모태에 감자를 돔박돔박 썰어 솥에 넣고 장국을 끓였다. 이윽고 솥에서 김이 쌕 빠져나오면서 구수한 감자장국 냄새가 좁은 방에 구수하게 풍기었다.
   한참 경인에게서 그간 이야기를 들은 후 진달래는 비로소 경인도 버치를 결을 버들을 베다가 일본 놈들에게 당한 것을 알게 됐다.
   진달래는 어금과 함께 제꺽 아침상을 갖춰 놓은 후 바깥의 바우돌도 불러들였다.
   진달래는 아침을 들면서 단도직입적으로 경인에게 말했다.
   “오빠, 일본 놈들의 성화에 어디 살겠어요? 우리 함께 일본 놈들을 사냥하면 어때요?”
   경인은 진달래를 흘끔 내려다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무슨 힘으로 그 많은 일본 놈들을 사냥한다니?”
   섬찍해 난 어금은 숟가락을 들다가 말고 신랑을 건너다보았다.
   경인은 색시 어금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도리머리 질 했다.
   “삯전을 주지 않지 버치마저 결어 팔지 못하게 하니 어떻게 살겠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살 구멍이 나지겠지.”
   “일본 놈들을 몰아내지 않고서야 어찌 마음 편히 잘 살 수 있겠는가요?”
   “말이 쉽지. 칼이나 사냥총 몇 자루로 어떻게 일본 놈들을 몰아내겠니? 서뿔리 일본 놈들에게 칼을 휘둘렀다가 부모형제들이 다 잘못되면 어쩌겠니? 아버지 말씀처럼 중용을 지키는 게 이 난리에는 제일이야.”
   진달래는 한숨을 호 내쉬었다. 그녀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검술이 출중하잖아요? 그 검술이면 얼마든지 일본 놈들의 목을 칠 수 있지 않아요. 사람마다 일떠나 몇 놈씩 잡으면 일본 놈들을 몽땅 쳐 죽일 수 있어요.”
   경인은 손을 들어 손사래를 저었다.
   “얘, 언성 좀 낮춰라. 요즘 영팔이랑 우리 집을 기웃거린다.”
   그제야 진달래는 더 말해도 경인의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녀는 감자장국이나 몇 숟가락 뜨네 하며 바우돌이 배불리 먹기를 기다렸다가 진달래는 맛 나는 장국도 먹을 맛이 없어 숟가락을 밥상에 달랑 내려놓았다.
   진달래는 불붙이를 떠나면서 실망스러웠다.
   성칠은 진달래에게서 조카사위 경인의 말을 듣고 한숨을 후- 쉬더니 진달래를 위안했다.
   “사냥꾼들을 묶어세우는 일이 그렇게 식은 죽 먹기겠느냐? 천천히 방법을 대야겠다.”
   진달래는 성칠을 믿음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튿날 그들은 기운봉 기슭에서 룡천 중대장과 만났다. 룡천 중대장은 성칠과 진달래에게 우시장부근에서 사냥꾼으로 독립군 포수대를 조직할 임무를 맡기고 독립군 대원들과 함께 백마를 타고 장백산을 바라고 개마고원 쪽으로 출발했다.
   성칠은 행동과 은신하는데 편리하게 하려고 진달래를 운주동 최구장의 집으로 가서 묵게 하고 혼자 사냥총을 쥐고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수림 속에서 성칠은 사냥하면서 어떤 방법으로 사냥꾼들을 묶어세우겠는가고 궁리했다.
    토끼 꼬리만한 겨울해가 눈 덮인 서산의 수림 속으로 숨어버리고 영월동 서산에는 어둠의 장막이 내리 드리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굶은 이리들의 울음소리가 무섭게 들리었다.
   성칠은 먼저 엄창렬의 집에 가서 상호를 만나려고 해싿. 상호는 명천 공지에서 도망쳐 집에 돌아왔던 것이다.  평소에 엄창렬 일가를 많이 도와왔기에 말하기 쉬울 것 같았다.
   성칠은 사냥총을 들고 눈 덮인 사위를 둘러보았다. 숨이 막힐 듯이 고요했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어둠을 밟으면서 성칠은 슬금슬금 바자에 난 삽작문을 살짝 열었다.
   문을 노크하려고 할 때 집 동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성칠이 삽작문 뒤에 붙어섰다. 그런데 찬찬히 여겨보니 바로 상호였다.
  “상호야.”
  “아니, 형님.”
   “쉬—”
  성칠은 입술에 손가락을 세로대면서 주위를 살폈다.
  상호는 성칠의 팔소매를 잡아 집 쪽으로 끌었다. 
  “다른 식구들을 놀라게 할 게 없다.”
   성칠은 상호와 함께 삽작문을 나섰다.
  상호는 성칠을 따라 걸으면서 말했다.
   “낮에 총소리를 듣고 형님이 근심돼서 아까 가보았소. 때마침 검둥이가 달려와서 꼬리를 휘청휘청 저으면서 끼깅 거리잖겠소. 그래서 큰어머니랑 아주머니랑 모두들 형님이 무사하다고 짐작하고 조금 근심을 덜었소. 그러나 형님을 보지 못해 근심이 태산 같소. 내 가서 형님이 무사하다고 전해야지.”
   “먼저 내 말 듣고 가라.”
   성칠은 상호의 팔소매를 잡아끌고 집 뒤 산기슭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상호야, 왜 공지에서 돌아왔니?”
  그러자 상호는 “흥!” 하고 코 방귀부터 뀌었다.
  “그따위 공지에서 일해 봤자 삯전도 받지 못하는데. 차라리 집일을 하는 게 낫지.”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잘 돌아왔다. 그러나 공지에서 도망치면 일본 놈들이 영팔이랑 시켜 붙잡아갈 게야.”
   “하긴 큰아버지가 안 됐소. 우리 삯전을 주지 않는다고 한길수와 대판 싸우다가 감옥에 갇혔으니 말이오.”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상호야, 일본 놈들을 믿고 일한다는 건 괜한 짓이다. 내 이런 생각을 해봤다.”
  그는 사냥총을 들어 보이면서 뒤 말을 이었다.
   “우리 사냥이라도 해야 올해 보릿고개를 넘지 않겠니?”
   상호는 어둠 속에서 성칠을 쳐다보면서 근심스레 말했다.
   “형님, 사냥한다고 형님을 붙잡아가려고 미쳐 날뛰던데 사냥해 되겠소?”
   “일본 놈들도 너무 하잖니? 사냥도 하지 못하면 우린 뭘 먹고 살겠니?”
   그러자 상호는 이를 뻑뻑  갈았다.
     “그 놈들이 어디 우리 생사를 돌보오?”
   성칠은 사냥총을 힘 있게 높이 추켜들고 흔들면서 힘 있게 말했다.
    “우리는 사냥총을 들고 짐승을 사냥해 연명해야 해. 사냥총으로 우리 고향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래야 편안히 살 수 있다.”
   상호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런데 우리 몇이 그 놈들을 다 몰아낼 수 있겠소? 황차 우리 고향에서 몰아낸다고 해도 인차 우시장이나 다른 곳 일본 놈들이 무리승냥이처럼 다시 쳐들어올게 아니오?”
   성칠은 상호의 어깨를 꽉 움켜쥐어 흔들면서 신심 있게 말했다.
  “우리 영월동과 운주동, 가마골, 신흥동에서 몽땅 들고 일어나면 우리 고향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낼 수 있다. 생각해봐라. 우리 가만있으면 몽땅 우리 아버지처럼 붙잡혀 감옥에서 죽고 만다. 우리 조선 백성들이 몽땅 들고 일어나면 그 놈들을 몰아내지 못하겠니?”
   성칠의 뜨거운 입김이 엄동설한을 날려 보내면서 상호의 얼굴에까지 풍겨갔다. 한참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뒤이어 상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형님 말이 옳소. 공지에서 도망쳤다고 감옥에 갇히기 전에 사냥총을 들고 일본 놈들을 사냥하다 죽는 게 낫소.”
   성칠은 룡천과 진달래 말을 하면서 장백산 항일독립군 말도 해주었다.
  상호는 그 말에 힘을 얻었다.
  “형님, 사냥총을 들고 형님을 따라 사냥하겠소.”
  상호는 머리를 들어 집쪽을 보았다.
  “형님, 잠간 집에 들어가서 부모에게 사냥하러 떠난다고 말하고 나올게.” 
  성칠은 상호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급히 서둘 필요 없다. 부모들과 하루 밤 더 자면서 잘 말한 후 내일쯤 치마봉 아래로 오너라.”
  그러나 상호는 결단성 있게 말했다.
   “아니오. 지금 형님은 혼자 위험하오.”
    성칠은 더 말리지 않았다. 그는 어둠을 헤치면서 성큼성큼 집 쪽으로 걸어가는 상호의 어두운 뒷모습을 대견하게 지켜보았다.
   상호는 집에 들어갔다가 인차 나왔다. 그는 김치 움에 들어가 감춰둔 사냥총을 들고 나왔다. 그는 사위를 둘러보더니 집 뒤 산기슭으로 달려왔다. 성칠과 상호가 김칠백의 집으로 향할 때다.
   상호네 집 문이 열리면서 두 그림자가 삽작문을 열고 나왔다.
   “상호야, 상호야.”
   엄창렬이 허리를 구부정하고 손을 들어 흔들면서 삽작문 안에서 나왔다. 명순이 치마폭을 걷어안고 황급히 뒤따라 달려 나왔다.
    상호는 사냥총을 들고 급히 마주 달려갔다.
   “아버지, 어머니, 근심하지 마시오. 산짐승을 많이 사냥해야 아버지 기침병도 치료하지.”
   명순은 손으로 상호의 얼굴을 만졌다.
   “아무튼 몸조심하고 성칠 형님의 말을 잘 들어라.”
  성칠은 성큼성큼 뒤따라와 엄창렬 부부에게 인사하고 나서 “근심하지 마오.” 하고 말했다.
  엄창렬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했다.
  “아무튼 둘 다 몸조심하게. 사냥이야 성칠이 좋은 스승이니까. 시름 놓고 보내겠네.”
  상호는 넙적 엎드려 부모께 절을 올리고 성칠을 따라 나섰다.
   성칠은 상호와 함께 먼저 강 건너 자기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성칠은 주춤 멈춰서더니 상호한테 귀속 말을 했다.
  "우리 집으로 가서 내 무사하다고 기별해라. 만약 뜻밖의 정황이 생기면 서쪽 수림 속으로 달려가라.” 
  상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사냥총을 성칠에게 맡기고 평소처럼 골짜기바닥의 허연 얼음을 스적스적 건너 성칠의 집으로 다가갔다.
   성칠은 강둑 버드나무숲 속에서 눈을 깔고 엎드려 총 가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잡고 집 쪽의 동정을 살폈다.
  “왕, 왕, 왕!”
  갑자기 검둥이가 덮쳐왔다.
  “휙~ 휙—”
  성칠이 휘파람을 불자 검둥이는 어둠속에서도 주인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끼깅- ”
  검둥이는 몸뚱이를 일으키더니 두발을 거인처럼 우뚝 선 성칠의 가슴에 얹고 끼깅거렸다. 성칠은 한손으로 검둥이 머리를 다독여주었다.
   땅! 땅! 땅!
  이때 집 쪽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성칠은 강뚝에 엎드리면서 총소리 난 쪽으로 사냥총을 겨눴다. 어둠속에서 상호가 집안에서 뛰쳐나오고 집안 전등불이 꺼졌다. 상호 뒤로 검은 그림자 셋이 뛰쳐나왔다. 허나 성칠은 총을 쏠 수 없었다. 일본 놈들인지 집식구들인지 알수 없었다.
   땅 땅 땅!
  뒤따라 나온 검은 그림자들에게서 불빛이 번쩍였다.
  땅!
   성칠이 쏜 총에 뒤따라 나오면서 총을 쏜 놈 가운데서 한 놈이 푹 꺼꾸러졌다.
   상호는 집 서쪽수림 속으로 도망쳤다. 나머지 두 놈이 상호 쪽으로 쫓아갔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일본 놈들은 성칠이네 집안에 미리 들어가 숨어 있다가 검둥이가 온 것을 보고 성칠이 부근에 있다는 것을 짐작하였던 것이다. 하여 성칠의 어머니와 아내를 바 줄로 묶고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은 후 고방에 가둬놓았다. 놈들은 벽에 붙어 서서 숨을 딱 죽이고 성칠이 집안에 들어서기를 기다렸다. 그때 상호가 들어섰다. 놈들은 성칠인가 오해한 채 붙잡으려고 욱 덮쳤다. 상호는 덮쳐드는 일본 놈들을 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일본 놈들 셋이 뒤쫓아 나왔던 것이다.
    땅 땅 땅!
   이때 강둑에서 숱한 놈들이 총을 쏴대면서 다가왔다. 성칠의 옆에 있던 검둥이는 검은 그림자들에게 덮쳐나갔다.
   “아이유! 이 놈 개새끼!”
    영팔의 비명소리 같았다.
    성칠은 사냥총으로 상호 뒤로 쫓아가는 두 그림자를 겨눠 또 사격했다.
    땅!
    한 놈이 푹 꺼꾸러졌다.
    땅!
   또 한 놈이 명중탄을 맞고 푹 꺼꾸러졌다.
   성칠은 사냥꾼의 본능으로 총을 쏜 자리에서 일어나 한길수네 집 쪽으로 달아났다. 뒤에 검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자 강을 슬쩍 건너 칠백이네 집 울바자 옆으로 달아났다. 그런 줄도 모르고 왜놈들은 왝왝 소리치면서 강둑에서 눈먼 총질을 해댔다.
    그때였다.
   총소리를 들은 칠백과 진달래, 칠석이 집안에서 뛰쳐나와 합세했다.
   그때 덕성이 뒤따라 나오면서 발을 굴렀다.
   “얘들아, 다 가면 난 누굴 믿고 살라니?”
   옥녀도 뛰어나와 엉엉 울었다.
   “오빠~”
   칠백은 성칠의 손에서 사냥총을 받아 쥐고 쳐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아버지, 근심하지 맙소. 만주에서 가서 만나깁소.”
   성칠과 진달래는 서쪽 수림 속에서 상호와 회합했다. 모두들 진달래의 주밀하게 계획한 전술대로 수림 속으로 철퇴했다. 수림 속에     서 진작 바우돌을 비롯한 독립군 대원들이 백마들을 잡고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들 진달래의지휘대로 백마를 타고 수림 속으로 전이했다. 성칠은 달리는 백마를 탄 사람들이 많이 불어난 것을 보았다.
    칠백과 칠석 형제는 벌목공지에 가서 헛고생을 하고나서야 형 룡천의 말처럼 성칠을 따라 사냥해야 살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들은 일본 놈들이 무서운 물건짝들이지만 결코 그 놈들이 무서워 집에서 굶어 죽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칠백이네 형제가 최동욱과 그런 의향을 말했다.
    그러나 동욱은 그들을 따라나서지 않았다. 아내가 앓는 것도 있고 무모하게 일본 놈들이 말리는 사냥을 하다가 일본 놈들에게 붙잡혀 혼날 까봐 그만뒀던 것이다.
    칠백이 찾아가서 아무리 동원해도 동욱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쌀은 다른 방도로 구할 수 있겠지만 총칼을 흔드는 일본 놈들의 등살에 하루도 살수 없을 거다.” 
    별수 없었다.
    성칠은 도리머릴 질 했다.
    (사냥은 강요할 수 없지.)
   성칠 등은 백마를 잡아타고 눈 깜짝할 새에 치마봉 기슭에까지 달려갔다.
   그 곳에서 룡천 중대장을 비롯한 2분대 독립군 병사들이 벌써 치마봉 기슭 수림 속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룡천 중대장의 지휘아래 즉시 박달령을 넘어 100여리 밖으로 쏜살같이 전이했다.
    눈 덮인 수림 속 여기저기에서 굶주린 이리떼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룡천과 진달래, 성칠은 조용한 곳에 가서 금후 대책을 의논했다.
   룡천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여기서 잠시 휴식정돈한 후 내일 밤에 일본 놈들의 림산 작업소를 습격해 저목장을 기습하기오. 목재를 몽땅 불태워 버리기오.”
   “글쎄요. 어쨌든 이번 임무를 빨리 완수하고 인차 장백산지구로 철퇴하는 거 상책인 거 같아요. 하루라도 더 끌면 일본 놈들이 덮쳐들 거요.”
    진달래가 맞장구를 쳤다.
   한참 생각에 잠겼던 성칠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우리는 더 많은 젊은이들을 우리 포수대에 묶어세워야 하오. 먼저 금방 포수대에 들어온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야 하오. 우선 말한 대로 사냥부터 해서 저 젊은이들의 집식구들을 기아에서 구해야 하오. 사냥한 단맛을 봐야 더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포수대에 들어오게 되오.”
   룡천은 성칠의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난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네. 내일 먼저 사냥부터 합세. 모레쯤 사냥물을 마을에 가져갑세. 저놈 저목장을 불태워 버립세.”
   성칠은 칠백이랑 있는 데로 돌아왔다.
   “우리 삭정이를 가져다가 우등 불을 피우자. 새우잠이라도 자야 내일 사냥하지.”
   “형님 말이 옳다. 어디 추워서 견디겠니?”
   바우돌이 보초서고  모두들 어둠을 무릅쓰고 삭정이를 주어왔다. 성칠이 부시를 쳐서 불꽃을 일구자 이윽고 수림 속에 우등불이 활활 피여 올랐다. 모두들 추워 우들우들 떨면서 이 밤을 어떻게 보낼까 근심하다가 욱 우등 불에 모여들어 불을 쪼였다.
   이때 이리떼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땅!
   성칠이 몸을 돌려 쏜 사냥 총알에 우등 불쪽으로 슬금슬금 기어오던 이리 한 놈이 폴싹 꺼꾸러졌다. 모두들 사냥총을 거머쥐고 불똥이 왔다 갔다 하는 수림 속을 노려보았다. 굶주린 이리떼는 자기 동료가 쓰러졌건 말건 물러서지 않았다. 그 놈들은 토론이나 한 듯이 울부짖더니 미친 듯이 덮쳐왔다.
    땅 땅 땅!
   독립군 대원들과 포수대 사냥꾼들이 일제히 총을 쏘았다.
  사냥 경험이 없는 독립군 병사들과 칠백이랑 눈 위에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고 총을 쏘아댔다.
   성칠과 진달래만은 나무에 기댄 채 꿋꿋이 서서 총을 쏘아댔다.
   “서서 사격해! 승냥이들과 싸울 땐 서서 사격해야 된다. 그래야 승냥이들이 달려들어도 머리나 목 같은 요해처를 물리지 않아!”
   성칠의 말에 모두들 일어나 나무 뒤에 기대서서 악을 쓰면서 덮쳐오는 이리떼를 향해 사격했다.
십여 마리 이리가 쓰러지자 이리떼들은 물러갔다.
    이튿날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올 돌아보니 아직도 숨이 채 지지 않은 이리들이 바둑거리면서 사람들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성칠은 비수로 바둑거리는 이리의 숨통을 찔러 죽이고 나서 웃으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 사냥물이 꽤나 많군. 허허허.”
   칠백은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동을 달았다.
   “이거면 우리 집식구들이 한 보름은 실컷 잡숫겠다. 시장에 가서 팔아도 한 달 먹을 쌀은 사겠다.”
   칠석이랑 좋아서 싱글벙글 웃었다.
   “사냥해야 산다니까.”
   “성칠 형님을 따라 사냥에 나선 게 옳아. 사냥해야 살 수 있어.”
   “하하하.”
   눈 덮인 밀림 속에서는 첫 사냥을 한 기쁨에 겨운 웃음소리가 호탕하게 울려 퍼졌다. 그들은 우등 불에 이리 고기를 구워 실컷 먹고 눈 속에 숨어 굳 잠에 곯아떨어졌다.
   해가 다시 지면서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드리우자 그들은 백마에 언 이리를 처매고 다시 명천의 고향을 바라고 말을 달렸다.



                   5. 저목장을 습격


   성칠은 눈보라가 윙윙 사납게 휘몰아치는 영월동 서쪽 수림까지 도착하자  무시무시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고향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하염없는 근심걱정이 부모형제들한테로 휘몰려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한참 후 그는 진달래를 찾았다.
   “아무래도 엄마와 처가 근심되는구나. 헌데 내 집에 가본다는 건 풀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격이지. 온종일 궁리했는데 검둥이를 또 보내야겠다.”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영월동쪽을 내려다보았다.
   성칠은 쪽지를 개 귀구멍에 끼워 넣었고 개 잔등에 이리고기덩이 두개를 매달았다.
   성칠은 개 대가리를 쓰다듬으면서 사람에게 말하듯이 일러주었다.
   “검둥아, 집에 가서 꼬리를 흔들면서 어머님께 기별해라.”
   “끼깅~”
   검둥이는 꼬리를 휘청거리다가 수림 속을 떠나 영월동 쪽으로 씽 달려갔다.
   룡천은 마을에서 온 사냥꾼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칠백과 동욱은 사냥한 이리 고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줘라. 식량난으로 헤매는 마을사람들에게 사냥하는 길만이 살 길이라는 걸 알려줘야 해.”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진달래가 덧붙였다.
   “금방 검둥이를 보냈지만 시름이 놓이지 않는군요.”
  칠백은 성칠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내 아내를 시켜 형님네 집에 가서 큰엄마하구 아주머님을 보고 기준형님네 집에 가라고 전하겠소.”
   성칠은 칠백의 어깨를 힘 있게 움켜쥐며 머리를 끄덕였다.
   며칠 후에 칠백은 철규, 룡철, 룡구 동욱까지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왔다. 일본 놈들의 총알을 먹고 죽을까봐 무서워서 사냥을 하지 못하겠다던 그들이 아닌가. 그들도 사냥을 해야만 살 길이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최동욱이 포수대에 들어온 데는 피눈물 나는 사연이 있었다.
   그의 처 박경돈은 앓는 몸이었지만 아주 자색이 예뻤다. 진작 눈독을 들이고 있던 야마모도 소장 놈이 음충한 눈길로 그녀를 노리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어느날 오전, 야마모도는 마을의 서쪽산림을 돌다가 갈증이 나서 마을로 내려왔다. 그는 마을의 서쪽으로 첫 집인 동욱의 집을 보는 순간 아래배로부터 찡 하고 뻗는 정욕을 내리누를 길이 없었다.
   그는 먼발치에서 한참이나 동욱이 있는가 집 안을 기웃기웃 살피다가 스적스적 다가갔다.
    (어째 집안이 조용하지? 동욱의 처마저 없으면 어쩐다?)
   그가 마른 침을 꼴깍 넘기면서 다가가 동욱의 집 안을 들여다보니 동욱은 보이지 않고 동욱의 처만 구들을 쓸고 있지 않겠는가? 검정치마 아래 드러난 새하얀 종아리와 수척해진 하얀 복숭아얼굴을 보는 순간 야마모도소장은 온 몸의 혈관에서 끓어 넘치는 정욕을 참지 못하면서 집안에 성큼 들어섰다.
   “아니, 깜짝이야!”
   최동욱의 아내가 구들을 쓸던 빗자루를 쥔 채 놀란 눈길로 야마모도를 쏘아보았다.
   “에헴, 목이 말라. 냉수나 한바가지 주게나.”
   야마모도는 마른기침을 하면서 목 단추부터 벗겼다.
   동욱의 처는 빗자루를 놓고 물독에 가서 냉수 한바가지를 펐다. 그녀는 한손으로 바가지 밑굽에 흘러 떨어지는 물방울을 닦으면서 정주간 바닥에 선 야마모도 소장에게 주었다.
    야마모도는 물바가지를 받아 냉수를 꿀떡꿀떡 마셔버렸다. 그는 왼손으로 입술에 묻은 물을 쓱 닦더니 집안을 흘끔흘끔 살피면서 지껄여댔다.
    “으흠, 동욱이, 어데 갔소까?”
   동욱의 처는 두 손을 마주 비비면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땔나무 하러 산으로 갔어요. 이제 곧 올거요.”
   “땔나무? 그랬소까?"
   그 놈은 야수의 눈빛을 번뜩였다.
   "산의 나무를 마구 찍었쏘까? 안 되지. 허나 이 야마모도 소장이 이렇게 눈을 감아 보이면 일 없쏘다.”
   야마모도 소장은 눈을 질끈 감아 보이면서 지껄였다.
  그는 물바가지를 동욱의 처 앞에 내밀었다. 그는 물바가지를 받으려는 동욱의 처의 손을 잡아 확 나꿔챘다.
   “왜 이래요? 소리칠래요.”
   “그래, 소리쳐 봐. 산에 간 동욱이 와? 알면 너 목을 칠게다.”
   “이 손 놓으세요.”
   동욱의 처는 손을 빼려고 해도 안 되자 야마모도의 손을 꽉 깨물었다.
   “아이고, 요년 정 죽고 싶어?”
  야마모도는 물린 손이 아파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동욱의 처 손을 놓아버렸다. 동욱의 처가 경계심을 늦추고 바가지를 쥐고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야마모도는 동욱의 처 허리를 꽉 껴안고 구들바닥에 쓰러 눕히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동욱의 처가 아무리 기를 쓰고 일어나려고 해도 우악스러운 야마모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바둑거리고 깨물어도 용빼는 수가 없었다. 야마모도는 동욱의 처를 깔고 들어앉아 치마 자락을 올리기 시작했다. 집안에서는 악을 딱딱 쓰는 그녀의 모지름 소리에 울음소리가 반죽돼 울려 퍼졌다…
   동욱이 산에서 땔나무를 해 지고 집 울안에 들어섰을 때에는 야마모도에게 처가 당한 후였다. 야마모도는 군도를 거들거리면서 집 울안에서 나와 산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집안에서는 처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리었다.
   나무 짐을 활 벗어던지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간 동욱은 구들바닥에 꿇어 앉아 흐터러진 머리카락을 훔치며 엉엉 우는 처를 보고 모든 것을 짐작했다.
    “그놈새끼 대가리를 콱 찍어놔야지.”
   성이 날대로 난 동욱이 씩씩 바쁜 숨을 몰아쉬면서 화닥닥 바깥에 뛰쳐나가 땔나무 짐에서 도끼를 뽑아들고 뒤쫓아나갔다. 그때 칠백 형이 마을동구 밖에까지 뒤 쫓아가 동욱의 손에서 도끼를 빼앗아냈다.
   “웬 일이야?”
   동욱은 칠백 형의 손을 마구 뿌리치면서 “이걸 놓소.” 하고 고함치면서 몸부림쳤다.
   “에이, 씨, 저 놈을 죽이고 나도 죽자.”
   동욱은 형에게 도끼를 빼앗긴 후 팔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았다.
  칠백은 집 안에서 울고 있던 제수를 보고 인차 눈치 챘다. 호리호리하게 생긴 동욱의 눈에서도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원수는 꼭 갚아야 해. 허나 우리 둘의 힘으로는 안 돼! 성칠 형님을 따라 포수대에 들어가자. 한데 뭉쳐 야마모도와 개다리들까지 몽땅 죽여 버리자.”
   후에 동욱이 집으로 와보니 글쎄 아내가 대들보에 목을 매고 둥둥 달려있지 않겠는가?
   동욱은 경돈을 대들보에서 풀어 내리어 구들바닥에 내리워놓았다. 그런데 경돈은 이미 숨이 떨어졌었다.
  동욱은 형과 함께 아내를 뒷산에 묻고 핍박에 의해 포수대에 들어왔던 것이다.
   성칠은 동욱의 어깨를 다독이며 문안했다.
   “아내를 잃어 얼마나 비통하겠느냐? 우린 꼭 원수를 갚아야 한다.” 
   동욱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이젠 눈물이 더는 나오지 않았다. 머리에는 복수심 밖에 없었다.
   성칠은 그제야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는 영월동쪽의 밤장막이 드리운 칠흑 같은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한길수의 집에서 시종 질을 하는 은녀랑 득호랑 근심됐다.
   후-
   성칠은 눈 덮인 땅바닥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룡천이 불러서 진달래와 성칠은 조용한 수림 속에 갔다.
   룡천은 눈보라가 아우성치는 밀림의 어둠 속에서 진달래와 성칠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우린 성칠 성님 말대로 사냥부터 해서 마을사람들의 인심을 얻었고 포수대를 묶어세웠소. 돌아오는 봄에 일본 놈들이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지 못하게 해야 하오. 이젠 기회를 보아 저목장을 불태워 버리기요.”
   성칠이 찬동해 나섰다.
   “저목장을 불태워 버리기요. 개 같은 놈들이 우리 고향에서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있게 할 순 없소.”
   그러고 나서 뒤 말을 덧붙였다.
   “마을사람들이 먹을 쌀을 해결하게 계속 사냥하면서 기회를 봐 저목장에 불을 지르기요. 저 한길수놈도 가만 놔둘 수 없소. 그 놈은     일본 놈들의 개다리란 말이요. ”
   룡천은 좀 궁리하다가 “그렇게 하자이.”라고 결단을 내렸다.
   그들 셋은 사냥꾼들과 유격대 대원들을 이끌고 백마를 타고 치마봉 쪽으로 전이했다.
    원시림에서는 맵짠 산바람에 눈보라가 흩날리며 무서운 소리를 냈다. 여기저기에서 주린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무섭게 들려왔다.
   룡천과 진달래, 성칠은 한쪽에 가서 작전을 꾸몄다. 룡천이 독립군 대원 몇을 데리고 저목장의 일본 보초병 놈들을 해치우고 성칠이 칠백과 동욱을 데리고 저목장에 불을 지르며 진달래는 나머지 대원들과 사냥군들을 데리고 돌발사태에 대비해 엄호하고 접응하도록 했다.
   진달래는 대원들과 사냥꾼들을 몇 개 소조로 나눠 삼면으로 저목장 주위 수림 속에 매복해 저목장과 영월동의 동정을 면밀히 주시하게 한 후 룡천한테로 갔다.
   “왜 왔어?”
   진달래는 주머니에서 조약돌을 꺼내 쳐들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놈에게 접근하기 힘들 거 같아서 왔어요.”
    룡천은 머리를 끄덕였다.
   칠백과 칠석, 상호 등은 먼저 가만히 마을에 내려가 이리 고기를 집에 가져다 두고 돌아왔다.
   그들이 무사히 돌아 온 것을 보자 룡천과 진달래는 바우돌과 억복 등 몇몇 건장한 대원들을 데리고 하얀 보를 어깨에 매고 비수를 뽑아들고 수림 속에서 살금살금 저목장 대문 어귀에서 보초를 서는 일본 놈들에게 다가갔다.
   수림에서는 눈보라가 기승스레 윙윙 휘몰아치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하얀 보를 들쓴 대원들을 보초병 놈은 발견하지 못하고 총창을 비껴들고 철조망 바깥에서 왔다 갔다 했다.
   일본 보초놈은 휘몰아치는 눈보라 소리에 수림까지 다가간 룡천 등을 발견하지 못했다.
   룡천이 나무 뒤에 붙어 서서 손을 홱 저었다.
   바우돌과 억복이 쏜살같이 보초병 놈에게 덮쳐들어갔다.
   “누구야?!”
   그제야 나무 뒤에서 덮쳐 나오는 그들을 발견한 보초병 놈이 총을 벗겨들며 소리쳤다.
   “쉭-”
   딱!
   “억!”
   보초병놈은 진달래가 먼발치에서 뿌린 돌에 이마빼기를 맞고 총을 떨어뜨렸다. 억복과 바우돌이 번개같이 달려들어 비수를 몇 번 번쩍이었다. 보초병 놈은 네각을 쭉 뻗어버린 채 바우돌에게 줄줄 끌리어 허연 수림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억복이 어느 새 일본 보초병 놈의 옷을 입고 철갑모를 쓰고 총칼을 들고 저목장 대문 어귀를 지켰다.
   성칠은 칠백과 동욱을 데리고 미리 준비한 기름통들을 들고 어둑컴컴한 저목장 통나무 무지에 다가갔다. 그때까지 등잔불이 켜진 임산주재소 저목장 사무실에서는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성칠과 칠백, 동욱은 저목장 통나무 세 개 무지들에 나뉘어 가서 통나무들에 기름을 치고 거의 동시에 불을 싸질렀다.
   그들이 대문 어귀를 벗어날 때에야 불을 발견했는지 저목장 사무실에서 일본 놈들이 총창을 빼들고 뛰어나왔다.
   룡천과 진달래는 독립군 병사들과 사냥군을 지휘해 사격을 가했다.
   땅! 땅! 땅땅!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뛰어나온 일본 놈들이 보기 좋게 쓰러졌다.
   일본 놈들도 저목장 사무실 벽에 기대서서 맞총질을 했다. 그새 저목장 통나무 무지에는 집채 같은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놈들은 뭐라고 꽥꽥 소리치면서도 번져가는 불을 끌 새 없었다.
   진달래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빌어 저목장 사무실 구새 목에 기대서서 꽥꽥 고함치는 지휘관 놈에게 돌멩이를 날렸다.
   쒹-
   딱!
  “아이고, 이다이(아파)!”
  야마모도 소장 놈은 이마빼기를 붙들고 구새에 기대섰다.
  땅!
  그때 성칠이 나무에 기대서서 사냥총으로 한방 갈겼다.
  “어이쿠!”
  야마모도 소장 놈은 이마를 놓고 다시 쳐들었던 군도마저 뚝 떨어뜨렸다.
   동욱은 성칠의 손에서 사냥총을 빼앗아 야마모도 소장 놈에게 겨누었다.
   땅!
  총소리와 함께 거의 동시에 야마모도 소장 놈이 구새 목에 쓰러졌는지 엎드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놈이 통나무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면서 고함치는 것이 보였다.
   “저 놈 새끼를!”
   최동욱은 사냥총에 장탄해 그쪽으로 겨누었다.
  그때 룡천이 명령했다.
   “철퇴!”
   최동욱은 시야에서 벗어나는 야마모도 놈에게 사격했다.
   땅!
   허나 야마모도는 통나무 뒤에 몸을 숨긴 뒤였다.
  성칠은 사냥총을 틀어쥐고 악을 쓰며 고함치는 동욱을 마구 끌고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원수는 후에 갚아도 돼! 가자!”
   “이번에 저 원수 놈을 죽여야 해!”
   “가자!”
   성칠과 칠백은 양쪽에서 동욱을 마구 끌고 수림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버렸다.
  뒤에서는 삼단 같은 세찬 불길이 수림과 영월동을 환히 밝히면서 보기 좋게 활활 타 번지고 있었다. 공포에 찬 저목장 안에서는 일본 놈들의 죽어가는 이리 소리 같은 비명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왝왝 고함치는 소리도 섞여 밤하늘을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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