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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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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8)
2015년 06월 05일 09시 23분  조회:2622  추천:1  작성자: 김장혁


                    7.일루의 희망



    병완은 영월동에 돌아오자마자 먼저 덕팔의 집부터 들렸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삯전이라도 좀 벌어 바쁜 목이라도 열게 하려고 일루의 희망을 품고 마을 사람들을 공지에 불러가려고 서둘렀다.
    덕팔이네 낮다란 초가삼간은 목수네 집 같지 않게 지붕 중간이 푹 꺼져 있었다. 그만큼 안주인이 시시콜콜 앓는 이 집의 푹 꺼진 살림형편을 보여 주는 상 싶었다.
    덕팔은 어찌나 살림형편이 구차하였으면 서른 살이 퍽 넘어서야 마대치기장가를 다 들었겠는가.
    어느 날 밤에 덕팔은 병완과 함께 가마 골에 가서 자기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린 과부네 집에 뛰어 들어가 딸 필순을 마대 안에 넣어 메다가 장가들었던 것이다. 후에 필순의 본가집 엄마가 알고 찾아왔을 때에는 필순이가 배가 남산만할 때였다. 그리하여 필순의 본가 집에서는 필순을 데리러 왔다가 덕팔이가 사람이 좋은데다가 기왕 쑤어놓은 죽을 밥으로 짓는 수가 없는지라 별수 없이 그만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고는 집으로 돌아 가버렸다.
    병완이 삽작문을 열고 들어서자 점순과 철규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큰아버지!”
    “오, 그래. 엄마는 더 앓지 않았니? 에이고, 이젠 점순이도 처녀티 나는구나.”
   병완은 점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열네살인 점순은 정말 마치 시골에 방실 피어나는 물기 머금은 민들레 같았다.
   병완은 마른기침을 깇으면서 윗방으로 들어갔다.
    “아주버님 오셨소? 쿨룩쿨룩.”
   아래 방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동인 필순이 겨우 일어나 앉으면서  인사했다.
   병완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일어나지 마오."
   그는 괴춤에서 1원 20전을 꺼내 철규의 손에 쥐어주면서 아내에게 주라고 아랫방 쪽으로 손시늉했다.
   "이건 어디서 난 돈입둥?"
   필순은 철규가 받는 엽전을 보고 반색했다.
   "한길수 영감이 미리 삯전을 줘서 가지고 왔소이다."
   필순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고, 그 구두쇠 어쩌다가 인심을 다 쓴다우?”
   필순은 삯전을 보자 주름진 얼굴에 웃음기를 띠였다.
     “전번에두 말했잖소? 우리 신설집 병관 형님을 찾아가서 병을 보이라는데. 어째? 치료비 모자라면 내 병관형님과 말할 테니까. 어서 가 병 보이오.”
   병완의 말에 필순은 흰 수건을 동인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인정빚까지 지고 살겠습둥? 쿨룩쿨룩, 에헴. 차라리 내가 빨리 죽고 말아야지. 헌데 죽어지지 않는단 말입구마. 쿨룩쿨룩.”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이제 초겨울에 집짓기 끝나면 덕팔이하구 같이 우리 형님을 찾아가 보이기오.”
   한참 후 그는 우쭐 일어났다.
    “아무튼 우리 돌아올 때까지 몸조리를 잘하오. 철규야, 밭일을 그만 두구 오후에 한 영감네 마차에 앉아 우시장에 가거라. 날씨가 싸늘하니까 꼭 아버지하구 네 이부자리를 가지고 가라.”
    “예. 그러잖아두 강냉이랑 뜯어 들여오면 아버지랑 일하는 공지루 찾아가보자 했습구마.”
   철규가 뒤더수기를 긁적이면서 씨물씨물 웃었다.
  아랫방에서 필순은 넉두리를 해댔다.
   “에이고, 그 강냉이를 집에 들여올게 얼마나 남았다구 그러냐? 한 영감한테 가져 가구나면 온 한해 농사를 지은 게 남는 게 있다구 그러우? 아예 우시장에 가서 한날에 쌀 서너근씩 버는 게 낫지.”
    병완은 기대에 찬 눈으로 점순을 바라보면서 문 밖으로 나와 짚신을 신었다. 그는 덕팔이네 앞날이 근심스러워서 땅바닥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어쩌면 마흔살을 갓 넘긴 아낙네 저렇게 못쓸 페병에 걸려 쿨룩거린단 말인가? 에이, 내  돌아오면 꼭 형님네 집에 데려다가 병을 보여야지.)
    그는 점순과 철규의 배웅을 받으면서 최동욱의 집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최동욱의 아내 박경돈은 마흔이 넘었건만 의연히 옛날 고왔던 모습이 엿보였다. 그녀는 애를 낳지 못했기에 맨 날 큰 죄나 지은 것처럼 쪼그리고 앉아 살았다. 자식이 없어서 적은 집식구들의 입을 건사하기 쉬울 것 같았지만 최동욱의 집은 살림이 피지 못했다. 그만큼 동욱은 집으로 들어오면 아내와 신경질을 썼고 술만 마시면 도깨비장물을 먹은 사람처럼 경돈을 때리곤 했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병완이한테 혼 난적이 있었다. 정말 경돈은 이름처럼 돼지마냥 동욱에게 매를 맞고 욕을 먹고 살았다. 그래서 경돈은 앓지 말라고 본가 집 아버지가 돼지라고 이름을 지은 것마저 탓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하자 모든 것을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두고 되는대로 살고 있었다.
    병완은 동욱의 아내 박경돈의 처지가 불쌍해 한숨을 푸푸 쉬면서 개울을 건너 둔덕으로 올라갔다.
    경돈이 마당에서 뭘 주섬주섬 주어 돌려놓다가 인사를 했다.
    병완은  삽작문 밖에서 경돈한테 삯전을 건네주었다.
    “이 돈 1원 20전은 이 집 나그네 엿새 일한 삯전이오. 이부자리나 저 한 영감 집에 가져다주오.”
   경돈은 병완의 믿음직한 태산 같은 뒷잔등을 바라보며  뒤에서 푸념질했다.
   “에이고, 이 놈의 집에 돈을 서 말이나 쌓아 놓은들 무엇에 쓴담?” 
   병완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개울물을 건너 창렬의 집에 터벅터벅 올라갔다.
   (집집마다 읽기 어려운 경이 있다더니 이 마을에 어느 집엔들 답답한 일이 없겠는가. 덕팔은 아내가 앓고, 동욱은 자식이 없어 대사고, 창렬은 집기둥 같은 창렬이 폐병을 앓아서 근심이 태산 같지 않은가. 쯧쯧. 세월이 더러워서, 원.)
    병완은 이번 걸음에 상호를 공지에 데리고 가려고 마음먹고 올리막을 성큼성큼 걸어올라갔다.
    상호는 집울안에서 마른 나무장작을 팡팡 패고 있었다. 그는 나무장작을 주어 땔나무무지에 쌓다가  병완을 발견하고 허리를 펴고 환성을 질렀다.
   “큰아버지, 우시장에 갔다가 언제 왔습둥?”
  병완은 삽작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문안부터 했다.
   “아버지랑 무사하냐?”
 상호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아버지는 병이 괜찮습구마. 큰아버님이 준 은덩이를 가지고 신설집에 가서 약을 져다 대접하였더니 많이 낫습구마.”
  이때 창렬과 명순이 웃으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래, 공지에서 벌이가 되던가?”
  창렬이 묻는 말에 병완은 창렬의 어깨를 다독이며 선선히 대답했다.
  “밥벌이는 될 거 같네. 하루에 쌀 서너 근 품삯은 주더구먼. 한길수 어쩌다가 인심을 써서 제 돈으로 품삯전을 푼푼히 주더구먼.”
  병완은 마루에 걸터앉아 두리번두리번 집안을 들여다보더니 물었다.
   “어째, 은녀는 보이지 않소?”
   창렬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다시 한길수가네 집으로 들어갔소.”
   금방까지도 벙긋거리던 창렬의 얼굴에 수심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병완은 그 모양을 보고 이상한 감이 들었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병완의 물음에 창렬은 그저 머리만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명순이 문설주에 기대여 옷고름으로 눈시울을 닦으면서 어깨를 들먹이는 것이 피뜩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소?”
   그러나 창렬은 병완을 믿는 터라 넉두리를 했다.
   “은녀는 부엌데기로 들어가고 가을에 감자랑 강냉이랑 다 한길수를 주고나니 새해 보릿고개를 넘길 것 같지 못하오.”
   병완은 창렬의 손을 잡고 상호를 바라보며 간곡히 말했다.
   “그럼 상호를 공지로 보내오. 삯전이라두 얼가간 벌면 살림에 보탬이 되겠는데."
   창렬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시원한 대답은 없었다.
   상호는 도끼를 놓고 땀을 씻으면서 아버지를 보고 간청했다.
  “나를 공지에 보내줍소. 겨울 죽벌이는 되겠는뎁쇼.”
  창렬은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어서 큰아버지를 따라 갈 차비나 해라.”
  상호는 허리를 꿉썩 굽혔다.
  "예. 알았습구마."
  병완은 점심때가 된지라 엉덩이를 우쭐 들었다. 그러자 창렬이 손을 덥석 잡았다.
  “이보게. 점심이나 잡숫고 가게나.”
  “아니, 나도 집에 가서 점심 전에 이불 짐을 챙겨서 한 영감네 집에 가져가야 하네. 상호는 근심하지 마오. 내가 있으니까.”
  병완은 창렬의 생강처럼 메마른 손을 놓고 삽작문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창렬은 병완의 등 뒤를 믿음에 찬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창렬이네 빚을 물고 은녀를 데려 내 오려는 일루의 희망을 품고 상호 등 숱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데리고 공지로 가는 길을 떠났다.
     병완은 위망이 높아 우시장 부근에서는 병완의 말이라면 누구나 다 따랐다.  숱한  마을 사람들은 품삯을 준다는 말을 믿고 품삯이라도 벌어 살림에 보태려는 일루의 희망을 품고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 공지에 몰려갔다.


       8. 콧수염쟁이와 뜨개소


   품삯이 일루 희망의 꼬리를 쳐 숱한 농사군들을 유혹해 공지로 모여들게 했다. 돈의 마력은 고달픈 한숨을 쉬는 가난한 백성들을 고난일지 복일지 모를 쁠랙홀에 엉큼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상호는 병완을 따라 공지에 와서 첫날부터 목재를 메 나르는 일을 했다.
    (부지런히 일하면 품삯이야 벌겠지. 아버지 치료비라도 벌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빚을 다 물고 둘째누나까지 데려 내왔으면 더좋구.)
   상호는 이런 일루의 희망을 품고 목재를 메고 병완 등이 일하는 목수 간으로 들어갔다.
   한편 그는 한길수가 품삯을 선대해준다니 믿음이 가지도 않았다.
  (그 영감은 고뿔도 남을 안 줄 깍쟁이 아닌가! 어쩌다 선심을 쓸가?)  
   대패질하던 병완이 상호를 보고 히죽이 웃었다.
    “첫날에 너무 무리하게 메지 말고 천천히 해라.”
   “예, 많이 나르면 삯전이랑 많이 주겠지유? 그 깍쟁이 영감이, 정말 해 서산에서 뜨잖습둥?”
    “글쎄, 그 깍쟁이 웬 영문인지 삯전도 푼푼히 주더라.”
    상호가 허리 굽혀 인사하고 나가는데 기준이 목재를 메고 들어섰다.
    “아버지, 쉬엄쉬엄 일합소.”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나무를 들어 왼눈을 지긋이 감고 곧게 대패질했는가 보았다.
    “에이구, 이런 목재로 어떻게 층집을 짓는다고 이래?”
   기준이 볼라니 대패질한 나무에 나무벌레가 먹어 들어 간 자리가 있었다. 저쪽 나무통에 보니 톱질하다가 잡아낸 나무벌레가 몇이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아니, 저 벌레가 나무를 파 먹으면 집 기둥도 다 끊어나지 않겠습둥?”
   기준의 눈이 다 휘동그래졌다.
   병완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런 나무로야 기둥이나 대들보를 못하지. 몇 해 가지 않으면 요 놈의 나무 벌레 때문에 대들보가 끊어지고 말겠다.”
    병완과 기준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이런 나무야 마루나 깔았지. 별수 있습둥? 쯧쯧쯧.”
   기준의 맥 빠진 말이다.
   병완은 대패질한 나무를 훌 쥐어 뿌리였다.
   “마루에도 어디 쓰겠니? 마루도 몇 참 못가서 꺼지겠다. 한 영감은 이런 목재를 주구서도 어찌나 재촉하는지 어디 쉴 새 있느냐? 이제 금방 기초를 쌓아놓았는데 올 가을 전에 3층짜리 목조건물을 다 지으란다. 그 것도 본 적도 없는 일본식 건물로. 헤이.”
   병완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더니 계속 대패질을 했다. 두 팔이 힘을 쓸 때마다 두 팔에 근육이 불뚝불뚝 살아났다. 마치 성난 용 두 마리가 꿈틀거리는 상 싶었다.
    기준은 아버지 옆에 다가서서 근심어린 말을 올렸다.
    “아버지, 이 많은 목수 일을 어떻게 아버지와 몇 사람이 다하겠습둥? 나도 하랍둥?”
   병완은 기준한테 근심어린 눈길을 보냈다.
   “글쎄, 넌 여편네가 막달이 돼서 몇 날이나 하겠니? 예산날이 언제쯤이라던?” 
    “아마 음력으로 시월 중순 쯤 이랍더구마.”
    “음, 그럼 한달 푼히 있구나. 한영감하구 말해보고 그렇게 하자.”
    창준도 한발 나섰다.
    창준은 아버지를 닮아 훤칠하게 생긴 동생 기준과는 달리 보통 키에 호리호리하게 생겼다. 성격도 아버지를 닮은 동생 기준은 시원시원하게 툭툭 내쏘았지만 창준은 선비의 틀이 좀 난데다가 침착했다.
    “아버지, 나도 목수 일을 배워서 하면 안 되겠습둥?”
   병완은 대패질을 하다 말고 창준을 정색해 바라보면서 말리였다.
    “얘, 넌 몸이 약해서 이렇게 힘든 목수일은 못한다. 삼부자가 다 목수 일을 하면 남들이 뭐라겠니? 저 놈들이 삯전을 많이 타자고 목수 일을 한다 할 게 아니냐? 기준은 어금의 결혼잔치준비를 해야 하지 않니? 그래 기준은 돈이 바쁜 것도 있다. 그러나 넌 급히 쓸 돈도 없는데 계속 잡일이나 해서 먹을 벌이나 해라.”
   아버지 성미를 잘 아는 창준은 더 말해보았자 쓸 데 없다는 것을 알고 자리를 떴다.
   이때 때마침 한길수가 중절모를 비뚤랑하게 쓰고 개화장을 휘두르면서 일본경찰국 국장 끼무라와 함께 목수 간에 들어섰다.
   끼무라는 경찰국장에 헌병대 대장까지 겸하고 있어 우시장에서는 최고로 세도를 부리는 자였다. 사무실에 들어앉으면 국장사무를 보고 어디에 사고가 생기면 헌병대를 불러 출마하면서 헌병대 대장질을 했다. 이걸 두고 한길수가 아첨하는 말을 빈다면 "말을 타면 천군만마를 호령하고 말에서 내리면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 끼무라는 "낮에는 조선의 백성들을 못 살게 굴고 밤이면 미녀들을 껴안고 허리 불러지게 해대는 색마"였다.
    끼무라는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병완의 가까이에 다가섰다.
    그러나 병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패질을 계속 했다.
    한길수가 중절모를 벗어 바로 쓰면서 끼무라 국장에게 병완을 소개했다.
    “끼 국장님, 아니, 에헴, 끼무라 국장님, 이 목수는 우리 공지 목수 일을 책임진 김 도감입니다.”
    통역 류강철이 통역해주었다.
    끼무라 국장은 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병완의 우람진 체구와 근육이 불뚝불뚝 살아난 팔뚝을 보았다.
    그는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긴상(김군), 하지메마스데(처음 보는데). 도조 요로씨꾸(잘 부탁하오).”
     "뭐 하지마. 마슨다구?"
병완은 코수염쟁이를 피득 쳐다보고는 손을 잡지 않았다. 일어로 지껄이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일본 사람의 손을 잡기도 싫었다. 그는 대패질을 계속 하면서 먼지 묻은 왼손을 쳐들어 손가락을 폈다 꾸부렸다 했다. 뜻인즉 손에 먼지가 묻어 악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핑계였다.
     끼무라는 자존심이 상한대로 손을 되돌려가면서 대패질한 나무판자를 쥐여 어루만지었다.
    “요로씨이(좋아)!”
   끼무라는 엄지를 내밀었다.
   류강철은 옆에서 한길수와 병완에게 통역해주었다.
   “대패질을 잘했다고 치하하네. 감사를 드리게나.”
   병완은 끼무라의 코 수염과 한길수의 번대머리를 번갈아보다가 대패질을 계속했다.
   “빈 입만 놀리지 말고 삯전이나 푼푼히 달라고 하게나.”
   류강철은 그 당돌한 말을 듣고 입을 딱 벌렸다. 한길수도 황급해났다.
   그런 줄도 모르고 끼무라는 그저 빙그레 웃으면서 류강철을 돌아다보았다.
   한길수가 제꺽 받아넘겼다.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통역하게나.”
  그러자 류강철은 “고노 히도와 ‘간샤시마시다’ 또 이이마시다.( 이 사람은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하고 되는대로 통역해 주고나서 한숨을 푸- 내쉬였다.
   “요로씨이, 요로씨이(좇지, 좋아)!”
   목수 간을 나서자 끼무라는 한길수를 돌아보고 말했다.
   “금방 본 그자는 이름이 뭔가?”
   “김병완이라고 부릅니다. 목수이름을 알아 뭘 합니까?”
   끼무라는 도리머리 질을 했다.
   “아니야, 그자는 장수같이 생겼어. 그런데 눈길이 곱지 않더란 말이야.”
   한길수는 끼무라의 속심이 뭔지 몰라 우선은 병완이를 헐뜯어놓고 볼 판이었다.
   “그 놈은 힘이 무 짐작이지만 우직하기로 뜨개 소 같은 놈입니다. 그래서 그 놈을 도감으로 시킨 겁니다.”
   유심히 듣던 끼무라는 한길수를 정색해서 보면서 말했다.
  “저런 우직한 놈은 소처럼 잘 얼려서 부려먹어야 하네. 자칫하면 뜨개 소처럼 뜰 게 아닌가?”
   한길수는 끼무라 앞에서 연신 허리를 굽씬거리었다.
   “예, 알았습니다. 끼 국장님, 아니, 끼무라 국장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뜨개소가 뜨기만 하면 가차 없이 메로 대가리를 까 부셔 뿌리를 뽑아버리겠습니다. 헤헤헤.”
    “아니요. 내 말은 뜨개소가 뜨지 말게 잘 얼리라는 게요. 잘 얼려서 우리 황군의 경찰국 사무 청사를 잘 짓게 하란 말이요?”
   “에- 예, 예, 알았습니다.”
   자기까지는 아주 일본상전의 뜻을 잘 이해한 것 같았는데 틀릴 줄이야.
   “예, 예, 먹을 풀을 푼푼히 줘서 뜨개소를 잘 얼립죠. 저 놈이고야 저 많은 인부들을 이끌고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지을 수 있으니까.”
   끼무라는 몸을 한길수에게 돌리면서 물었다.
   “저자가 인부들의 우두머린가?”
   “아니, 내놓고 그런 건 아니지만 인부들이 저 놈의 말을 잘 듣지요.”
     한길수는 병완을 헐뜯는다는 것이 그만 말이 빗나간 것을 알고 혀를 홀랑 내밀었다가 감빨았다.
     끼무라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목수 간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김병완이라? 알았네.”
   끼무라는 나무를 나른다, 톱질을 해 원목을 끊는다하면서 들끓는 공지를 돌아 보고 나서 한길수가 이 많은 인부를 데려다가 일을 해재낀다고 일본말로 연신 치하했다.
   그는 코수염을 매만지면서 한길수의 번들 이마와 우멍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한상은 정말 능력이 있는 놈이야, 이번 일만 잘하면 자위대 대장쯤은 시켜야겠어.)
   한길수는 상전의 치하에 어깨가 으쓱해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렸다.
   끼무라는 한길수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분부했다.
   “한상, 이제 가을 전에 2층집을 다 지어야겠네.”
   “품삯만 푼푼히 주면 저 놈들이 문제없이 지을 겁니다.”
   강철이 통역해주자 끼무라는 히죽이 웃더니 한길수의 가슴을 주먹으로 퉁퉁 치면서 말했다.
   “대일본제국의 경찰국을 짓는데 무슨 놈의 삯전이야?”
   통역을 들은 한길수는 낯으로부터 번들이마까지 뻘겋게 번져갔다.
   “난 이미 숱한 삯전을 주었소이다. 이젠 재물이 거덜 날 지경입니다.”
   한길수가 손수건을 꺼내 번들 이마에 송골송골 돋은 식은땀을 뚝뚝 찍으면서 말했다.
   끼무라는 군도자루를 바른 손에 바로 잡아 쥐더니 눈알을 부라리면서 한길수를 쏘아보았다.
    “한영감, 대일본제국을 위해 죽으면 어떤가?"
    한길수는 두 손을 쳐들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 건 아니구. 저."
    끼무라는 한길수를 쏘아보며 지껄여댔다.
   "그까짓 몇 푼 안 되는 재물 그렇게 아깝소이까?”
   한길수는 무릎이 다 나른해져 비칠거렸다.
   그는  끼무라가 간을 빼가는듯 배 아팠다. 그러나 그는 발바리로서 머리도 빙글빙글 잘도 돌아갔다.
   그는 용케도 발라맞췄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내 집을 팔아서라도 경찰국을 져야 하죠.”
    그제야 끼무라는 한길수를 웃음기 담긴 눈길로 보면서 어조를 낮췄다.
   “한상, 이제야 대일본제국의 충신답네그려. 껄껄껄.”
   끼무라는 몇 대 안 되는 코 수염을 슬슬 쓰다듬었다.
   “한상 가을 전에 집을 다 짓자면 이 인부들로는 안 되네. 더 모집해오게나.”
   “예, 응삼을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에 보냈습니다. 근심하지 마시오.”
   “응, 요로씨이(좋아), 우린 한상만 믿겠네. 올 가을에는 새 경찰국 사무 청사에서 사무를 봐야 하겠네.”
   한길수는 끼무라 앞에서 연신 중절모를 벗어 쥐고 아픈 허리를 굽혔다.
  한길수의 비굴한 모양을 목수 간에서 내다보고 병완은 건 가래를 퉤 내뱉었다.
   “퉤! 언제부터 저렇게 구역질나게 번졌어?”
   덕팔도 손바닥에 침을 뱉어 톱자루를 잡고 쓰르륵쓰르륵 톱질하면서 코웃음쳤다.
   “흥! 더러워서. 보아하니 일본 경찰서나 파출소를 짓는 모양이오.”
   최동욱은 자귀질하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지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 고장에 들어와서 이렇게 큼직한 집까지 져 들고 안방주인행세를 할 예산이구만.”
   “글쎄 말이네. 정말 삯전이 아니면 일본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싶지 않네.”
   그들이 이렇게 말을 주고받으면서 삯전을 벌 일루의 희망을 품고 목수 일을 하다나니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판이다.
     가을 하늘은 높고 프르러 다 올려다보였건만 일제 철발굽 아래 인간세상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9. 인부모집




     먹장구름이 뒤덮여 오더니 풍운조화를 헤아리기 어렵게 을씨년스럽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잔잔히 흐르던 조용한 개울물에 어디서 기어나온 미꾸라지 한마리가 간사하게 꼬리치며 물을 흐리우기 시작했다. 
   
    최구장은 서당방이 쉬는 날이 돼서 마루에 앉아 맏손자 근형(봉인)을 안고 한가히 놀면서 담배를 풀썩풀썩 피웠다.
   응삼은 끼무라와 한길수 명을 받은지라 운주동으로 가자마자  옛날 서당방 은사 최구장을 찾아갔다.
    응삼은 온 낯에 나오지 않는 웃음을 지으면서 최구장을 보고 다가가 인사부터 올렸다.
    “선생님, 그간 무고합둥? 몸이랑 괜찮습둥? 해해해.”
   최구장은 피끗 응삼을 내려다보더니 마지못해 대구했다.
   “오, 그래. 십여년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더니 무슨 일로 불쑥 찾아왔는가?"
   최구장은 재수없이 턱이 뾰족하고 뱁새눈을 팬들거리는 응삼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할 때면 자기가 먼저 남의 뒤 골을 톡 쳐놓고서는 질책하면 다른 애를 먼저 쳤다고 물고 늘어지기가 일쑤였다.
   (이 자식이 무슨 바람이 불어 찾아 왔을까?)
   응삼은 제 좋은 소리를 쳤다.
   “선생님, 이런 일이 있습구마. 지금 일본 사람들이 우시장에 큼직한 집을 짓는뎁쇼...”
  최구장은 담배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더니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그래, 이 늙은이가 일본 사람들 집짓기에 가라는 건가?”
   “아, 아니, 아닙니다. 은사님. 어, 은사님의 손자 놈이 정말 귀엽구먼요.”
   응삼은 마루에 기어 올라가 최구장 옆에 찰싹 들어붙어 앉아 근형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머리까지 조아리면서 말했다.
    “은사님, 일본 사람들은 신용을 지키는 사람들입구마. 꼭꼭 달 말이면 삯전을 주니까요. 운주동 사람들이 가서 부업이라도 하면 좀 좋아서.”
    최구장은 먼 산을 바라보면서 한참 궁리하다가 담배를 길게 빨아 후— 내쉬었다.
     “그래 일본 사람들이 삯전을 얼마씩이나 준다던가?”
    응삼은 최구장의 턱 밑에 기어들어 말상을 갸우뚱거리면서 약사발을 올렸다.
    “날마다 쌀 둬근 값은 줍꾸마. 저 영월동의 병완 영감은 목수 일을 해서 삯전으로 쌀 한 되 값은 받았습구마. 그 집 둘째아들과 셋째아들도다 공지에 갔습구마.”
    “그래?”
    응삼은 일 돼갈 거 같아 빈대눈을 팬들거리면서 한술 더 떴다.
    “영월동의 한길수 어른이 직접 공지 총도감을 맡고 삯전을 내주고 있는데유. 틀림 있겠습둥?”
    “다시 묻겠네. 우리 사돈영감이 확실히 우시장에 갔어?”
    응삼은 말상을 조아렸다.
    “예, 가구말구요. 병완 영감은 목수 일을 해서 맏손녀를 시집보낼 준비를 한다던데요. 정 믿어지지 않으면 가 봅소. 창준과 기준이 가지 않았는가.”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때 때마침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과 둘째아들 경인이 마당에 들어섰다.
   응삼은 그들을 보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이 집의 끌끌한 일군들이 들어서는구먼.”
  응삼은 최구장을 돌아다보면서 뾰족한 턱까지 흔들어대면서 말했다.
  “은사님, 저 아드님들을 공지에 보냅소. 삯전이나 벌면 오죽 좋겠습니까? 황차 둘째아드님이 장가도 들어야 한다면서요?”
 경인은 조금 부끄러운 듯이 귀밑까지 붉혔다.
   “경인이, 자네 가시아버지 기준이도 공지에 갔네. 공지에 가서 돈을 벌어서 혼수나 준비하게나.”
   경인은 응삼의 실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내 가시아버님께서도 갔소?”
    “응, 그래. 지금 목수 도감을 하오. 한길수 영감이 총도감을 하는데 하루 일하면 쌀 반 되 값은 주오. 부지런히 일하면 쌀 한 되는 버오.”
   경인은 퍽 호기심이 들어 했다. 그러나 경숙은 반신반의하면서 주춤거렸다.
    응삼이는 최구장의 턱 밑에까지 다가들었다.
    “은사님, 저 끌끌한 아드님들을 일하러 보냅소. 삯전은 근심하지 맙소. 정 받지 못할 것 같으면 한길수 어른이 있잖습둥?”
   “쳇, 한길수를 믿어?”
    최구장은 한길수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시장의 어떤 깍쟁이라고? 부채 아까워 얼굴을 부채에 대고 흔드는 영감. 린색하고 옹졸하기 그지 없어. 흥!)
   응삼은 혀를 홀랑 내밀더니 인차 말머리를 돌렸다.
   “삯전을 받지 못하면 한길수와 달라고 하란 말입구마. 옛날에 부자 집이 넘어가도 석삼년은 걸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한영감이 그 숱한 재산을 가지고 달아나겠습니까?”
   그러자 경인이가 나섰다.
  “그 말에는 조금 도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공지에 가본다?”
  뒤이어 반신반의하는 경숙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형님, 형수가 오래잖아 해산하겠는데 쌀독을 빡빡 긁지 말구 우리 둘이 공지에 가서 일하기요. 내 가시아버지와 가시할아버지도 거기 가서 일한다구 하잖소. 갔다가 맞갖잖으면 돌아오기오.”
   경숙은 동생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마루 우에서 지켜보던 응삼은 일이 돼가는 걸 보고 속으로 너털 웃음을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은사님, 편안히 계십소. 선생님이 이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에 보내면 덕을 쌓는 겁구마. 보릿고개를 넘을 쌀이나 마련하게 하면 좀 좋아서?”
   응삼은 오늘 따라 지나치게 해해거리면서 허리를 굽혔다.
   최구장은 담배 물주리를 뻑뻑 빨다가 연기를 후 불어내더니 재떨이에 털었다.
  “그러지. 일감을 알려줘서 고맙네.”
   응삼은 울바자 밖으로 나가면서도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해해해. 은사님이 이전에 하늘 천, 따 지를 가르쳐주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한데요. 제가 어찌 은사님의 은공을 잊겠습둥? 좋은 일이 있으면 은사님 댁에 먼저 알려얍죠.”
  응삼이 대문 밖으로 나가자 시끄럽던 집 울안이 조용해졌다.
  경숙은 대문 밖으로 빠져나가는 응삼의 궁둥이를 보고 돌아섰다.
   “저 응삼의 말을 믿을 만 합둥? 더구나  우시장에서 이름난 난봉군 한영감을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습구마. 얼마나 떼질군이라구. 흥! ”
   최구장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글쎄 한길수야 소문난 깍쟁이란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 허나 일본 사람들은 혹시 삯전을 쥐겠는지, 한번 가볼만한 거 같아. 사돈영감들두 갔다구 하지 않니?”
   경숙은 량미간을 찌프리었다.
   “아버지, 일본 놈들을 믿습둥? 그 놈들은 조선을 통채로 먹어버린 엉큼한 도둑놈들입구마."
   경인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형님, 먼저 며칠 가 일해보기오. 삯전을 주지 않으면 내 가만놔두지 않겠소.”
  그러자 최구장이 정색해서 말했다.
   “너, 경인은 절대 공지에 검을 절대 가지고 가지 말라. 무슨 사단을 일으킬라고. 쯧쯧.”
   경인은 뒤덜미를 긁적거렸다.
   “옳다. 너 오래지 않으면 장가가겠는데 무사해야 해.”
   경숙의 말에 경인은 형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알았소, 형님, 절대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 테니. 근심하지 마오.” 
   최구장은 맏아들과 둘째아들을 내려다보면서 담배 물주리를 재떨이에 툭툭 털면서 물었다.
   “거 넷째하구 막내는 뭘 하니? 걔들도 데리고 가렴.”
   경숙은 아버지의 눈치를 흘끔 보면서 머리를 떨어뜨리며 경인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 있니?”
  최구장의 얼굴에는 근심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 지나갔다.
  경인은 속이지 않고 낱낱이 말했다.
  “넷째동생 경욱은 경석과 함께 또 약 담배 장사하러 우시장으로 갔습구마.”
   최구장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 고놈새끼들, 언제 고약한 버릇을 뗄까? 너희들과는 달리 고 놈들은 부지런히 일해 살 예산이 없고 전문 약 담배 장사가 아니면 약 담배를 피운다. 어쩌겠니?”
   최구장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엉거주춤 일어났다.
   “너희들이 우시장에 가면 고놈새끼들을 붙잡아서 공지에 데리고 가라. 약 담배 장사를 하다가 언제 순사 놈들에게 잡혀서 혼나지 못해서. 쯧쯧쯧.”
   한편 최구장네 집에서 나온 응삼은 온 운주동을 돌아다니면서 최구장네 아들들이 몽땅 공지로 일하러 간다며 마을 사람들을 일하러 가라고 동원했다. 최구장이라면 운주동에서 한다하는 서당 방 선생인데 그가 아들들을 공지에 보낸다고 하자 모두들 공지로 가려고 나섰다.
    응삼은 운주동에서 십여 명의 끌끌한 인부를 모집한 후 운주하를 건너 신흥동으로 갔다.
   응삼은 신흥동에서 한다하는 김종국 구장을 먼저 찾아갔다. 그런데 김 구장이 일본사람의 앞잡이로 된 응삼을 거들떠도 보지 않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응삼은 김 구장네 집 울안에 들어가 마주 나오는 김 구장을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김구장, 무사합둥? 우시장에 좋은 일감이 생겨서…”
   응삼의 말이 채끝나지도 않았는데 김 구장이 빈정거렸다.
   “아니, 자넨 우시장에 가서 한자리 했다더구먼. 무슨 일로 이 누추한 시골에 찾아왔는가?”
   응삼은 속으로는 괘씸하였지만 일을 그르칠 까봐 꾹 참았다.
   “사실 에헴, 김 구장, 저기 우시장에 일본사람들이 큰 집을 짓는데 좋은 일감이 생겼습구마…”
   “응삼이, 좋은 일이 있으면 자네나 할 게지. 날 찾아와 뭘 하오? 난 허리 아파서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못하네.”
    김종국은 조개턱을 건뜻 쳐들고 먼 산을 쳐다보면서 대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응삼은 뒤따라가면서 김 구장의 팔소매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아니, 김 구장, 내 말을 다 들어 봅소. 김구장, 저기, 저…”
   “이 사람이, 왜 이래? 이 팔소매를 놓으라니까. 급히 가 볼 데 있는데 허리를 놔라, 놔. 이 사람이 정말 찰거머리 같다.”
    김 구장은 팔을 휘둘러 뿌리치면서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응삼은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보는 격이 되고말았다.
    응삼은 뾰족한 턱을 살래살래 저으면서 가마골로 향했다.
    가마골의 구장은 림호라는 사람이었다.
   림호는 이 마을에서 힘깨나 꽤 쓰는 힘장사이었다. 이름 그대로 수풀 속에서 뛰쳐나온 호랑이같이 생긴 그는 더부룩한 구레나룻에 나비수염까지 길러서 딱 수호전의 리규 같았다.
    한번은 한 마을의 석수, 용기 등이 기운봉으로 사냥하러 갔다가 간 날이 장날이라고 그만 호랑이를 만났다. 그들이 사냥총을 쏘아대면서 쫓아가자 호랑이는 겁을 먹고 절벽아래 나무숲속에 난 범의 석굴 안으로 달아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범이 굴 안에서 나오기를 기다려 잡자고 하였지만 림호 만은 담대하게 혼자 범의 굴로 뒤쫓아 들어갔다.
    때마침 암펌이 새끼 둘을 입에 물고 굴 밖으로 나오다가 굴 어구에서 림호와 딱 마주쳤다.
    “이 놈의 범 새끼, 어디로 도망치려고?”
   림호는 범의 굴 안으로 고래고래 고함치면서 뒤쫓아 들어가 뛰어나가는 호랑이의 꼬리를 꽉 틀어잡았다.
   화닥닥 놀란 호랑이는 똥물을 내갈기더니 굴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뒤발로 림호를 걷어찼다.
   “이 놈 범새끼, 뒤 발 질까지 해? 어디 죽어 봐라.”
   호랑이는 굴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림호는 범을 놓칠 까봐 꼬리를 단단히 잡고 발로 땅바닥을 긁으면서 뻗쳤다. 그렇게 호랑이와 림호가 반나절이나 싱갱이 질 하다나니 범이고 림호이고 다 기진맥진했다. 나중에 호랑이는 꼬리 껍질이 다 우악한 림호 손에 쭉 벗겨졌다. 그 놈 호랑이는 죽기내기로 굴 밖으로 나가려고 버둑거리다가 똥물을 열댓발 찔 갈기더니 풍덩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물앉고 말았다. 이때 바깥에 있던 석수랑 몽땅 뛰여 들어와 함께 호랑이를 비수로 찔러 죽였다.
    사후에 석수가 “무슨 담에 범의 꼬리를 붙잡고 놓지 않았어?” 하고 묻자 림호는 범의 발톱에 긁힌 얼굴에 묻은 피를 손으로 쓱쓱 닦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허허, 내 머리 속에는 범의 꼬리는 단단히 쥐고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밖에 없었네.”
    림호는 맨 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정도로 힘은 셌지만 머리는 단순하고 우직한 사람이었다. 그러다나니 꾀 망둥이 응삼이가 운주동의 최구장과 신흥동의 김구장이랑 다 자식들과 마을사람들을 공지에 보낸다는 말을 그럴듯하게 하자 인차 공지에 가겠다고 나섰다.
림호 구장은 당장에서 석수와 용기, 길수를 불러왔다.
    “우리 이 사람을 따라 우시장에 가보자. 감자농사두 잘 되지 않았는데 얼기 전에 동삼에 먹을 쌀이라도 벌어오자.”
   림호 말이라면 하느님 말처럼 따라온 용기와 길수, 석수는 두말없이 따라나섰다.
    응삼은 아주 쉽게 운주동과 가마골에서 만 하여도 서른대여섯이나 데리고 우시장으로 가게 됐다.
    그는 신흥동에서 김 구장한테 코를 떼울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놈 영감이, 어디 황군에게 혼나봐라.”
    응삼은 신흥동쪽을 손가락질하면서 욕질하더니 마을을 떠났다.
    응삼은 숱한 인부들을 데리고 우시장으로 돌아가자마자 한길수를 찾아갔다.
    한길수는 인부들과 응삼을 번갈아보더니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수고했네. 끼무라 국장은 자네를 꼭 중용할거요.”
    응삼은 신흥동의 김 구장에게 당한 수모가 내려가지 않아 길수에게 있는 말 없는 말 다 보태 물어먹었다.
    “그 놈 김 구장을 혼내줍소. 내 찾아가니 개 닭 보듯 하면서 일본 놈들 집짓기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겠습둥?”
   “그 놈이 언감? 경 칠 놈, 흥!”
   “헌병들을 데리고 김 구장을 혼드검 내줘야겠네. 개배때기를 차도 주인을 보고 차라고. 주리를 틀어놓지 않는가 보자.”
    한길수도 분이 나서 우멍 눈을 부라리면서 이를 쁙쁙 갈았다.
    그는 그 길로 끼무라 국장에게 말해 헌병 몇을 데리고 말을 타고 신흥동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둬 식경 달려 운주하를 건너 신흥동에 이르렀다.
    길수는 일단 일본 헌병들을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혼자 마을에 들어갔다.
    어느 한집 돼지우리에서 둼을 쳐내는 한 늙은이가 눈에 띄었다.
    “저게 김 구장이 아닌지?”
   그 늙은이에게 다가가서 묻자고 하니 돼지 똥 구린내가 역겨워 다가가기 싫었다.
    하여 멀찍이 서서 그 늙은이에게 소리쳤다.
    “이보게, 여기 김 구장 집이 어느 겐가?”
     그 늙은이는 돼지 똥을 쳐내다가 머리를 들어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일본 헌병들과 낯선 한길수의 번들이마를 번갈아 보더니 대구도 하지 않고 계속 돼지 똥을 쳐냈다.
    "영감, 사람 소리 들리지 않는가?"
    "?"
    "김구장 집이 어디 있는가?"
    “몇 집 건너 저 우에 있네.”
    한길수는 그 늙은이가 가리키는 대로 몇집 건너 갔다. 아낙네가 집 마당에서 한창 절구에 낟알을 찧고 있었다.
   그는 아낙네에게 다가가 물었다.
   “김 구장네 집이 어느 겐가?”
    아낙네는 절구 공이를 놓고 한길수의 낯선 얼굴과 마을 어귀에 들어선 일본 헌병들을 의아한 눈길로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시 절구꽁이를 딱딱 찧어댔다.
    “아니, 묻는 말을 못 들었가? 이 마을 년놈들 다 귀 먹어린가? 참 이상할 정도얘. 이년, 어느 게 김 구장네 집인가? 왜 묻는 말 답하잖아? 엉?”
    아낙네는 절구꽁이로 낟알을 계속 찧으면서 반문하지 않겠는가.
   “댁은 뉘신지요? 김 구장을 찾아 뭘 해요?”
   한길수는 아직도 나를 모르는 아낙네들도 있나 싶어 보란 듯이 번들이마를 쳐들고 을러멨다.
   “이년, 이 어른도 몰라. 이 어른은 우시장공지 총도감이야. 묻는 말이나 대답해. 어느 집이 김 구장 집인가?”
   아낙네는 머리를 들어 몇 집 건너 동쪽 집 돼지굴을 치는 령감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는 것이었다.
   눈치챈 길수는 우멍눈으로 아래쪽을 돌아버더니 아낙게네한테 발작 다가서면서 물었다.
   “저기 돼지 똥을 치는 영감이 김 구장인가?”
   그러나 아낙네는 대답도 하지 않고 절구질만 했다.
   “맞지? 저 영감두상이 김 구장이지?”
   한길수는 돼지 똥을 치던 영감이 김 구장인 걸 알아차렸다.
   한길수는 마을 아래쪽으로 되 내려가면서 욕지거리를 했다.
   “더러운 영감, 분명 자기를 찾는데 이 어르신님을 이렇게 두벌걸음을 걷게 해? 어디 혼나 봐라.”
   한길수는 일본 헌병들한테로 돌아가 돼지 똥을 쳐내는 김 구장을 손가락질을 하면서 가서 붙잡으라는 손시늉을 했다.
   일본 헌병들은 말에 올라 곧추 김 구장네 집으로 짓쳐 들어갔다. 그자들은 말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돼지우리에 뛰어들어 돼지 똥을 쳐내던 김 구장을 끌어냈다.
    “김 구장, 당신은 목이 몇 개 돼 감히 이 한길수 어른이 묻는 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가? 이 어른을 두벌 걸음을 시키다니?”
    김 구장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허리를 꿋꿋이 폈다.
    “난 일본사람들의 그늘 밑에서 구장 질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지 오래오. 구장도 아닌 나를 찾아 뭘 하오?”
   한길수는 김 구장의 멱살을 틀어쥐고 호통 쳤다.
   “어째 죽고 싶은가? 네깐 놈 감히 대일본제국의 경찰국 청사를 짓는 일을 방애한단 말인가?”
   그러나 김 구장은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백발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난 자기 집 돼지우리도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언제 일본사람들의 집을 짓는데 갈 새 있겠소? 그럴 새 있으면 내 돼지 굴이나 짓겠네.”
    "뭐? 뭐?"
   한길수는 김 구장의 멱살을 마구 흔들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래 대일본 제국의 경찰국을 짓는게 중하냐? 너네 돼지굴이 더 중하냐? 이 놈. 당장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라 가라! ”
   김 구장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릴? 한창 가을철이 돼서 마을 사람들은 감자랑 강냉이랑 걷어 들이느라고 어디 갈 새 있소?”
   한길수는 김종국 구장의 멱살을 스르르 놓으면서 조금 치미는 분노를 눅잦히면서 말했다.
   “가을걷이를 못해도 경찰국 집짓기를 하면 살수 있단 말이야. 공지에 가서 일하면 삯전을 준단 말이다. 그 삯전이면 겨울을 날수 있다.”
    “허, 그 영감, 진짜 삶은 소대가리 다 웃다가 꾸러미 터질 소릴 다 한다. 겨울을 나고 나면 입에 거미줄을 칠 지경인데. 어떻게 보리고개를 넘으란 말이요?”
   약이 오른 한길수는 꽥 고함쳤다. 
   “이 놈, 내 명을 거역할텐가? 어디 죽어봐라.”
    한길수는 일본헌병들에게 김 구장을 바줄로 묶으라고 손시늉했다.
    뒤이어 그는 두 팔을 뒤로 탈아 꽁꽁 묶은 김 구장을 끌고 마을 복판에 자리 잡은 널찍한 마당으로 갔다. 일본 헌병들은 김 구장을 마당 한복판에 있는 늙은 비술나무에 꽁꽁 묶어놓았다.
   한길수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몽땅 이 마당에 모여라. 마당에 나오지 않는 날엔 일본제국의 총칼 맛을 보일테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비술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일 밭에 나가고 어린애들까지 다 해도 마을 사람들은 20여명 밖에 모이지 않았다.
   한길수는 번대머리에 돋은 땀방울을 생강 같은 손바닥으로 뚝뚝 찍어  닦으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난 우시장 일본경찰국 사무 청사 공지 총 도감 한길수야!”
    그러자 마을 사람들 속에서 웅성거렸다.
    누군가 “저 영감이 고개 넘어 영월동의 난봉쟁이 한길수가 아니냐?” 하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 속에서 쑤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이어졌다.
     "저 소문난 건달놈이 일본 놈 덕분에 승급했구먼."
    "저게 일본 놈들을 등에 업고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는 즛살을 어떻게 보겠니?"
    "흥! 세상이 점점 더럽게 변해가는구먼."
     허나 길수의 고함질은 계속 울렸다.
    “김 구장은 대일본제국의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 공지에 나가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방애하기까지 했다. 그 죄는 하늘에 사무치는 용서하지 못할 대역죄다. 오늘 마을사람들 앞에서 처벌한다. 이후에 누구든지 자기 집일을 하면서 대일본제국의 일을 하러 공지에 가지 않는 날엔 이 영감처럼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길수는 숱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말채찍을 휘둘러 김 구장의 가슴이고 다리고 사정없이 쨩 쨩 후려쳤다.
    김 구장은 한길수가 휘두르는 채찍에 맞아 베옷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살갗이 채찍에 묻어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닥치오!”
   이때 훤칠하게 생긴 중년사나이가 마을 사람들 속에서 뛰쳐나왔다.
   한길수가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마을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밭에서 하나둘 마을로 돌아와 비술나무마당에 모여들었다.
   “네 놈은 누구냐?”
   한길수는 휘두르던 채찍을 들어 그 중년사나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난 이 늙은이 맏아들 영진이오.”
   중년사나이는 가슴을 쑥 내밀고 따지고 들었다.
   “왜 죄 없는 우리 아버님을 이렇게 모질게 치는 거요?”
   한길수는 억이 막힌 듯이 번들이마를 쳐들고 대가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그 애비에 딱 그 아들놈이구나. 네 애비 대일본제국의 사무 청사를 짓는데 가지 않은 건 둘째고 뒤에서 마을 사람들이 가지 못하게 방애했다. 그래도 죄 없어?! 대역죄야, 목을 쳐도 과하지 않아.”
    한길수 우멍눈에서 무서운 불빛이 번쩍였다. 
    “이 놈, 죽어봐라! 이 놈!”
   한길수는 이를 악물고채찍을 휘둘러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런데 영진은 왼팔을 들어 날아드는 채찍을 받아 꽉 틀어쥐어 홱 챘다.
채찍을 빼앗긴 한길수는 일본헌병들의 손에서 군도를 빼들고 휘둘렀다. 질겁한 애들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만두오!”
   이때 비술나무에 묶인 김 구장이 피가 낭자한 얼굴을 겨우 들면서 고함쳤다.
   “한도감, 우리가 역사에 나가면 그만이 아니요? 무고한 사람을 자꾸 치지 마오.”
    한길수는 군도를 내리우면서 살기등등했던 낯에 간교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기다렸던 말이었던 것이다.
    “그래, 이제야 박바가지 같은 대가리 제대로 돌아섰군. 삯전도 주는데 왜 공지에 나가지 않아?  일본제국의 총칼 맛을 볼 게 있는가!”
    한길수는 득의양양해 마을 사람들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쳤다.
    “들어! 무릇 열여섯 살 이상 되는 사내들은 몽땅 내일부터 우시장에 가서 공지 일을 해야 해. 가지 않는 자가 발각되는 날엔 대일본제국의 법에 의해 엄벌을 가할 거야. 알겠는가?!”
    그러자 마을사람들은 못마땅해 웅성거렸다.
     “그래 저 밭의 감자랑 강냉이랑 제때에 걷어 들이지 않으면 어쩌오?”
    “곡식이 눈 밑에 들어가면 뭘 먹고 산다오?”
    “멧돼지 성화에 밭에 묻어둔 감자 아까워 죽겠는데."
    “별 영감을 다 보겠네. 어째 조선 사람이라는 게 일본 사람 편에 서서 말하오?”
    지어 이런 말소리마저 들리었다.
    “우린 조선 사람들인데 일본 사람들의 일을 하지 않는다고 일본법에 의해 처형해? 이거 참, 원.”
    “글쎄 말이요. 그래 답답하다는 게오.”
    한길수는 마을사람들을 노려보다가 세길 네길 펄쩍 뛰며 꽥 고함쳤다.
    “헛소리를 작작 쳐라. 이젠 일본과 조선은 하나로 됐다. 우린 대일본제국의 법을 따라야 한다. 내일 나를 따라 몽땅 우시장으로 가자. 집에 남아있는 자는 김 구장처럼 엄벌할테야."
  그는 발로 탕탕 땅을 구르며 땅방울같이 을러멨다.
   "일하러 가지 말자고 선동하는 자가 있으면 이 일본 군도로  목을 치겠어! 알았어?! 엉?”
    한길수는 마을사람들을 위협하려고 일본 헌병의 허리에서 군도를 쓱 빼들었다. 뒤이어  늙은 비술나무를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군도로 내리찍었다. 비술나무껍질이 군도에 찍혀 한 뼘이나 벗겨져 누런 살이 드러났다.
   이튿날 마을사람들은 핍박에 못 이겨 이불 짐을 꿍져 지고 한길수와 일본헌병들을 따라 우시장으로 떠났다.
   신흥동에서 20여명의 끌끌한 인부들을 끌고 우시장으로 가는 한길수는 개 잡은 포수처럼 어깨가 으쓱해져 더 못된 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명천 땅에서 누가 감히 이 어른 말을 거역해? 목이 날아나지 못해? 허허허. 인부들에게 삯전도 줄 필요없어. 내 돈은 뭐 벼락 맞은 소고기라더냐? 네깐 놈들이 감히 어쩐단 말인가? 으흐흐. 흐흐.)
 
 
 
 
 
 
 

 
 
                   제5장 반항


                                           1. 삯전


     끼무라는 한길수와 짜고 들어 인부들의 품삯을 주지 않았다.
     병완은 한길수가 신용을 저버리고 마을 사람들의 품삯을 주지 않는 것이 괘씸했다. 아무리 힘들게 대패질을 하고 톱질을 하여도 좁쌀 한 되도 차례지지 않았다.
   (진짜 강물을 건너자 다리를 뜯어버리구나. 개 놈새끼.)
   당장 맏손녀 어금을 시집보내야 하겠는데 손에 한 푼도 쥔 게 없어 근심이 태산 같았다.
   결혼 날자는 하루하루 눈앞에 다가와 근심이 태산 같았다.
    기준과 병완이 대패질을 쓱 쓱 할 때다.
   한길수가가 응삼과 영팔 등을 데리고 목수 간으로 들어와 개화장을 휘두르며 거들먹거렸다.
   “저, 김 도감, 대패질만 하지 말구 동네 민공들이 제대로 일하는가 좀 살피게나.”
  병완은 거들먹거리는 길수가 눈에 거슬리어 부르튼 소리를 하었다.
  “한도감, 난 부지런히 일만 하지 남을 살피는 일은 못하네. 품삯도 못 받는 도감인지 도깨빈지 못하겠네.”
   그는 응삼을 건너다보며 뒷말을 이었다.
    어떨꿍이 사람을 죽인다고 응삼은 벼슬욕에 실눈을 가슴츠레 뜨고 길수의 눈치를 핼끔거렸다.
    그러나 길수는 속에 전혀 예산도 없었다.
    “흥. 응삼을 어찌 자네한테 비길 수 있단 말이오? 자넨 내 의형제 아니요? 자네 말이라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듣지 않는가!”
   병완은 이럴 때다고 제꺽 바쁜 일부터 들이댔다.
   “여보게, 맏손녀를 시집보내야겠는데 손에 일전 한 푼 쥔 게 없어 근심이 태산 같네. 삯전이나 제때에 주오.”
   삯전 말이 나오자 한길수는 대뜸 낯색이 어두워지며 퍼란 바위돌처럼 굳어졌다.
   “나도 중간에서 진짜 시집살이네. 일본 사람들이 자초보다 다르게 노는 거 어쩌오? 삯전을 인차 줄  거 같지 않네.”
    “그게 무슨 소리오?”
   병완은 대패질하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펴면서 한길수를 쏘아보며 따지고 들었다.
   "자네 삯전을 딱딱 준다고 했잖은가? 그래 숱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데리고 왔는데. 지금 와서 핸들 나누우면 마을 사람들은 굶어죽으라는겐가?"
   한길수는 말이 빗나갔음을 느끼고 중절모자를 벗어 쥐고 마른 기침을 깇더니 번들이마를 슬슬 어루만지면서 제꺽 말을 바꾸었다.
   “근심하지 말게. 어떻게 하나 끼무라 국장님과 말해 설전에는 삯전을 주겠네.”
   기준과 덕성을 비롯한 목수들은 품삯을 차일피일 미루는 한길수를 못 미더워하는 눈길로 쏘았다. 그들은 모두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한길수에게 아니꼬운 눈총을 쏘았다.
    “아니, 모두 가을걷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공지로 왔는데 삯전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누가 여기서 일하겠소?”
    너부죽하게 생긴 덕성은 자귀로 깎던 목재를 들어 던지면서 노호했다.
    “품삯을 안 주면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겠소. 감자랑 눈에 다 덮여버리면 어쩌오? 하다못해 산에 가서 사냥이라도 해야 살지. 쳇,”
   바빠 맞은 길수는 병완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쑤군거렸다.
    “자넨, 도감이 아닌가? 자네 삯전을 주지 않을까봐 그러오? 근심하지 말게나.”
   병완은 누구나 다 들으라고 언성을 높였다.
    “아니, 온 마을 사람들한테 삯전을 딱딱 준다고 불러왔는데 내 무슨 낯으로 그들을 대한단 말이요? 안되오. 달마다 꼭꼭 삯전을 계산해 주오.”
   길수도 안 되겠다싶었든지 살짝 말을 바꿨다.
    “그렇긴 하구만. 자넨 맏손녀를 시집보내야 한다니 내 오늘 끼무라 국장에게 말해서 먼저 주겠네.”
   “안 되오. 온 마을 사람들의 삯전을 다 …”
   한길수는 마을 사람들을 건너다보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떠들지 말라는데도 왜 이래?”
   “떠들지 않게 됐소?”
    길수는 병완을 마구 끌다시피 해 목수 간에서 나왔다.
   그는 병완의 귀에 대고 목소리를 낮춰 쑤군거렸다.
    “내 말 듣소. 내일 목수 간의 삯전만 먼저 줄게.”
    “안 되네. 온 마을 사람들 삯전을 몽땅 달란 말이오.”
   한길수는 고집불통인 병완과 말해보았자 쓸데없는지라 또 다른 말을 꺼냈다.
    “그래, 주지. 온 마을 사람들의 삯전을 다 주지.”
   그제야 병완은 씩씩 거친 숨소리를 죽이면서 목수 간으로 되들어갔다.
    이튿날 정말 한길수는 병완을 공지 총도감실에 불러갔다.
   병완은 삯전을 주겠지 하고 총도감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총도감실에는 한길수와 응삼, 영팔, 수길 등 사람 외에도 끼무라 국장과 야마모도 소장, 털 한 모숨이 가메다까지 살기등등해 앉아있지 않겠는가.
   가메다는 볼에 난 털 한 모숨 났다고 해 털한모숨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는 볼의 털을 슬슬 어루만지며 눈을 버릇처럼 찔끔거리면서 키가 구척이나 되는 병완을 살기 찬 눈길로 노려보았다.
   길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삯전을 달라고 너무 떠드는 바람에 이게 뭔가? 끼무라 국장과 삼림파출소 야마모도 소장이 직접 자네를 만나러 왔네.”
   야마모도 소장이란 자는 안경알 밑으로 구척 같은 병완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있었고 끼무라는 아주 반가운듯이 걸상에서 일어나 병완과 악수까지 청했다.
   “요로씨이(좋아), 자네가 병완인가?”
  류강철이 조선말로 통역해주자 병완은 끼무라의 손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말했다.
   “그렇소이다. 삯전이나 줍소. 우린 지금 죽물도 먹기 힘드오.”
   류강철이 통역해주자 끼무라는 피씩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돈밖에 모르는 놈들. 우리 대일본제국에 충성하는 양민이 되고 싶지 않은가? 우리 대일본제국은 그대들의 충성심을 요구하네. 그럼 돈뿐이겠는가? 쌀이랑 미녀랑 많이 주지.”
   끼무라는 세 살 짜리 애에게 사탕을 주고 얼리듯이 구슬렸다.
   “아니, 미녀고 뭐고 싹 그만두고 삯전이나 주오.”
   “주지. 간상, 자네가 어떻게 공지를 다스렸으면 이 놈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키자고 들겠는가?”
   한길수는 잔등에 식은 땀을 쫙 흘리었다.
   그는 병완을 쏘아보면서 나무랐다.
   “주겠다는데 왜 나까지 욕을 먹이는가?”
   병완은 그저 삯전을 주기만 기다리면서 입에 빗장을 지르고 말뚝처럼 떡 뻗치고 서 있었다.
   상전 앞에서 바빠 맞은 한길수는 호주머니에서 동전 몇 잎을 꺼내 병완의 손에 척 쥐어주었다.
   “얻소. 가져다 맏손녀를 시집보내게나.”
  끼무라 국장은 입귀에 금이발을 드러내며 피씩 냉소했다.
  “그깟 놈들이 대일본제국의 일을 하지 않으면 몽땅 죽여 버려! 또 인부들을 붙잡아오면 돼. 쳇,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하는데 무슨 놈의 삯전? 우둔한 놈들, 정말 정신 나갔군. 흥!”
    병완은 길수에게서 동전 몇 푼 받아 낸데다가 공지 모든 인부들의 삯전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총도감실을 나섰다.
   그때 등 뒤에서 끼무라 국장이 야마모도소장을 돌아보면서 지껄여대는 소리가 들렸다.
   “장승같은 놈, 힘깨나 쓸 거 같군. 우리 개로 길러볼만한 놈이네.”
   “쳇, 딱 도깨비 같구먼.”
   목수칸으로 돌아온 병완은 길수에게서 가진 동전 몇 잎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대패 틀 위에 잘그락 놓았다.
    덕성은 눈이 동그래 물었다.
“건 어데서 나온 거요?”
병완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길수 영감이 선심을 썼네. 날 보고 동전 몇 잎 받고 인부들의 입을 틀어막아 달라네.”
그러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한 영감은 정말 삯전을 주지 않을 작정인가?”
“그러게 말이요. 괜히 여기 와서 뼈 빠지게 일한 것 같네.”
“두 달째 삯전을 주지 않으니 코앞에 닥쳐온 양력설은 어떻게 쇤단 말이요.”
“양력설? 쳇, 난 가을에 감자를 파오지 못하고 여기 끌려오다나니 눈 밑에 몽땅 파묻었소. 이 기나긴 겨울에 뭘 먹고 산단 말이요.”
     “최구장네 경인처럼 버치나 틀었더라면 우시장에 가져다가 팔아 겨울나이 쌀이나 장만했지.”
그런 말을 들으면서 병완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 동전을 가져다 바쁜 목에 쓰게나.”
병완이 대패 틀 우에 놓은 동전 몇 잎을 건너다보면서도 서로 눈치를 볼뿐 누구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병완은 동전을 싹 쓸어 쥐더니 덕성이랑 몇몇 목수들에게 일일이 둬 잎씩 나눠주었다.
이때 기준도 나무에 묻은 대패 밥을 손으로 쓱쓱 털어버리면서 답답해 말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네. 맏딸을 대엿새 후에 시집보내야지. 아내가 막달인데 당장 몸을 풀어야 하오. 그런데 손에 쥔 게 어디 있소?”
     덕성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동전을 기준에게 내밀었다.
     “이걸 부조 삼아 가져다가 맏딸의 결혼에 쓰게나."
      “싫소.”
     기준의 말에 병완도 손을 내저으면서 사절했다.
      “절대 그러지 마오. 양력설에 어떻게 빈손으로 가겠는가? 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머리도 못 들고 다니겠네.”
       덕성은 동전을 쥐고 병완과 기준이 그리고 다른 목수들을 돌아보다가 한 잎 만 기준에게 주었다.
       “그럼 이 한 잎은 맏딸의 결혼잔치 부조인 셈 치고 받네. 나머지는 자네들이 꼭 받아야 하네. 사양하면 우리도 한 잎도 가지지 않겠네.”
     기준은 기어이 사양했다.
     “아니요. 우리도 제 몫을 가졌으니까. 이러지 말게나.” 
    덕성은 두툼하고 터실터실한 손으로 동전잎을 기어이 기준의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에이, 사람이. 부조도 받지 않는 법이 어데 있는가.”
    기준은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병완은 기준을 보고 “덕성이, 성의는 이미 받았으니까 그만두게. 먼저 바쁜 목을 열고 보기요. 우린 감자떡이랑 빚어 놓고 결혼잔치를 하면 되네.”라고 했다.
    덕성과 기준은 동전 한 잎을 가지고 주려거니 받지 않으려고 하거니 했다.
    이때 한길수가 영팔과 응삼을 데리고 목수 간으로 우르르 쓸어 들어섰다.
   그제야 덕성과 기준은 그만뒀다. 덕성은 할 수 없이 동전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자네들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미세 당기 세를 하오? 에헴.”
    한길수는 건 가래를 떼면서 병완의 눈치를 흘끔 살폈다.
    병완은 길수를 똑바로 마주보면서 말했다.
     “총 도감, 모두들 삯전을 주지 않으면 계속 일하지 못하오. 감자랑 채 파지도 못하고 여길 오다나니 몽땅 눈 밑에 쓸어 넣었단 말이요. 동삼에 쌀을 살 삯전도 주지 않아 집식구들의 입에 거미줄을 치겠소.”
     (아, 이 영감이 금방 입을 틀어막으라고 동전을 주었구만 오히려 인부들 쪽에 서서 대포를 쏜단 말이야. 흥!)
     한길수는 속으로 좋지 않았다.
     “그래도 공지에 왔기에 당신들의 입만은 집에서 근심하지 않게 되지 않았소? 너무 좋아서 그러오?”
    그 말에 덕성은 팔을 걷어 올리더니 한길수의 코에 대고 삿대질하면서 따지고 들었다.
     “아니, 그것도 말이라구 해? 우리 공지에 오지 않으면 사냥이라도 해서 쌀값을 장만할수 있어. 당장 삯전을 줘. 그러지 않으면 당장 그만두겠어.”
    “옳소. 우린 그만두고 사냥하든지 삯일을 하든지 하겠소.”
     “아니, 이것들이 누구 앞에서!”
    영팔이 가죽채찍을 휘두르며 뛰쳐나왔다.
    “닥쳐!”
     한길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는 영팔을 질책했다.
    “에이, 못난 놈. 한마을 사람들에게 무슨 짓이냐?”
    한길수는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낯에 게바르면서 구슬렸다.
     “우린 한 마을 사람들이 아니고 뭐요?  좀 서로 사정을 봐 줄내기.  흐흐흐. 나도 일본 경찰국 끼무라 국장과 말해서 꼭 자네들의 삯전을 주게 하겠네. 근심 말고 일하게나. 나도 중간에서 정말 시집살이네.”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 한다. 그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이오?”
    한길수는 중절모를 쓴 대머리를 건뜻 쳐들고 우멍 눈으로 천정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천하의 한길수가 그래 고만한 돈 주지 않으리라구 그러오?”
    모두 길게 한탄하면서 대패질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한길수는 병완을 돌아보면서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더니 목수 간을 나섰다.
    그날 일을 마치자 병완과 기준 부자는 한길수와 말하고 어금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운주동으로 돌아갔다.


            2. 불운한 애들

     기운봉은 은세계를 방불케 온통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늙은이의 은발을 날리듯이 하얀 눈가루를 바람에 흩날리면서 조용히 서있었다.
     운주동은 하얀 이불을 들써 은빛세계를  방불케 했다. 초가집마다 하얀 꽃노을을 지붕 위에 쓰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딱 뭔가 살기 힘든 하소연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병완과 기준이 운주동에 돌아와보니 뜻밖에도 고방에서 사련이가 해산 앓음을 하고 있었다.
하옥이 고방에서 나오면서 반겨 맞았다.
     “돌아왔어요?”
     “오, 그래. 작은 며느리는 어찌된 일인가?"
     병완은
물으면서 위방에 들어가 앉았다.
     "아직 해산날이 멀잖소?”  
    하옥은 아랫방에서 걀쭉한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좀 앞당긴 거 같아요. 가을에 감자를 팔 때 삐치지 말렸지요. 그런데도 감자를 눈 밑에 파묻으면 어쩌겠는가면서 저 몸으로 삐치더니.”
     “쯧쯧쯧. 조산 모는 왔느냐?”
     “예, 진작 고방에 와 있어요.”
    병완은 어두커니 서 있는 기준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근심말아라. 네번째 애니까. 순산하겠지.”
    뒤이어 그는 아랫방의 하옥한테 머리를 돌렸다.
    “그래, 거 성칠은 어디로 갔느냐?”
     “꿩 사냥하러 산으로 들어갔어요. 제수한테 꿩탕을 대접해야겠다더군요.”
    
하옥은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고방에 들어갔다.
    병완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에이구, 막내동생은 이젠 맏사위를 삼고 오래지 않으면 손자를 보겠는데 저 큰놈은 아직도 자식 하나 보지 못하였으니 어쩌는가?”
    하옥은 고방에서 그 말을 듣고 칼로 에이는 듯이 가슴이 아팠다.
    병완은 윗방에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하는 기준을 보고 물었다.
    “올해 1919년도지?”
    “예.”
     “그래. 올해는 특별한 해지. 서울에서 부른 ‘독립 만세!’소리가 우리 여기 이 산골에까지 다 울려 퍼졌지.”
    병완은 바깥을 내다보면서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머리를 이쪽으로 돌리면서 물었다.
    “오늘 몇 월 며칠이냐?”
    기준은 머리를 들고 조금 생각하더니 “음력 10월 18일입구마.” 하고 대답했다.
   “응, 참 좋은 날이구나.”
   그때 고방에서 갓난 애기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응아, 응아, 응아.”
    병완은 기준을 마주보면서 반가워 희죽이 웃었다.
    "허, 그 놈이 울음소리 센걸 보니 혹시 사내애가 아닌지 모르겠군. 어서 알아봐라.”
    기준은 황급히 정주간으로 내려갔다.
     “조산모, 무슨 애요?”
     “고추 달린 놈입구마."
    "아들이란 말이오?”
    "예. 아들입구마."
   조산모의 말에 기준은 뒤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에이구, 아침을 먹으면 저녁쌀이 걱정되는 세월에 아들이면 뭘 하겠습둥? 입이 하나 불었으니 근심이 태산같구먼.”
    조산모가 고방에 들어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갓난애를 누더기에 싸서 안고나와 기준에게 안겨주었다.
     기준은 갓난애를 안고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에이고, 길쭉하게 생긴 놈이 딱 할아버지를 닮았구나. 쯧쯧.”
     기준은 먼저 고방으로 들어가 사련을 보고 인사말을 아끼지 않았다.
    “여보, 둘째아들을 낳느라고 수고했소.”
    사련은 자애로운 얼굴표정으로 갓난애를 올려다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기준은 애를 안고 고방에서 나와 윗방으로 올라갔다.
   병완은 기준의 손에서 갓난애를 받아 안고 들여다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에이, 그 놈, 뭐나 길쭉한 게 시원하게 생겼구나. 애비를 닮아서 밸 때기 사나우면 어쩌지?”
   기준은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아버님두, 조손 삼대 다 성격이 강하잖습둥? 이 애만은 어진 애여야겠는데.”
    병완은 넷째손자를 안고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멀어서 닮지 않겠느냐? 아버지 대는 종 자 돌림이구. 내 대는 병 자 돌림이지. 너희들은 준 자 돌림이구 .얘들 대는 상 자 돌림이라. 상자에 무슨 글자를 달아준다?”
    기준은 갓난애를 보면서 아버지한테 물었다.
    “큰집 병권 큰아버님이나 관준 형님께 물어보고 이름을 지으면 어떻습둥?"
   병완은 뜻밖에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아니야, 우리 부자간이 먼저 이름을 지어 놓고 물어보자.”
   집 안에 한참 납덩이 같은 침묵이 흘렀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다 들릴 지경이었다.
    한참 후 병완이 빙긋이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요 놈을 숭상할 ‘상’ 자에 순임금이란 ‘순’ 자를 달아서 상순이라고 지으면 어떠냐? 뜻인 즉 ‘순임금을 숭상한다는 말’이다.”
   기준은 아버지와 애를 번갈아 보더니 무릎을 탁 쳤다.
   “예, 그 이름이 좋습구마.”
   기준은 병완의 손에서 갓난애를 받아 안으면서
중얼거렸다.
    "우리 상순아, 할아버진 널 상순이란 좋은 이름 지어주었다. 어디 보자. 에구, 이 봉이 눈을 봐라. 세 귀 눈인 게 사납게 생겼구나. 넌 커서 장차 순임금처럼 나라의 백성들을, 응, 우리 고향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알았지? 응?”  
    병완은 기준을 보고 일렀다.
   "상순을 애 에미에게 가져다 젖이나 먹여라. 너무 차게 굴면 못쓴다.”
   “예꾸마, 상순아, 엄마한테 가자.”
     뒤이어 고방에서 기준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리었다.
     “여보, 아버님께서 우리 둘째를 상순이라고 이름을 졌소. 상순아, 엄마한테 가자, 응.”
    “오, 상순이, 이름이 참 좋소. 상순아, 젖을 먹어라.”
    병완은 기준이 부부가 고방에서 주고받는 말을 윗방에서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담배물주리에 담배를 꿍꿍 쑤셔 넣었다.
    하옥이 따뜻한 미역국을 사발에 떠들고 고방에 들어갔다.
    기준이네가 둘째아들을 보았다는 소문이 온 운주동 마을에 퍼지자 이 집 갓난애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문턱이 다슬 지경이었다.
    어금은 혹시 어머니와 막내동생이 찬바람이라도 맞을까봐 바람간호를 하느라고 무척 왼 심을 썼다.
    한 마을에 있는 최구장 내외간도 사돈집에 인사하러 왔다.
    인사수작이 끝나자 모두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병완은 담배물주리를 뻑뻑 빨면서 답답한 소리부터 했다.
    “이제 이틀만 있으면 잔치를 해야겠는데 우린 아무 준비도 없습구마. 삯전을 주지 않아서 통말이 아닙구마.”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나도 경인에게서 들었습구마. 한달 동안 일해도 삯전을 주지 않으니 어쩌는가요? 저 경인은 삯전도 주잖는다고 슬그머니 빠져 집으로 돌아왔습디다.”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 내 숱한 사람들을 겨울나이 쌀이나 벌겠나 해서 공지로 가자고 동원했는데. 삯전을 주지 않아서 큰 일 났습구마.”
    최구장은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우리 부자간은 마가을에 버들로 버치를 결어 팔아 잔치준비를 대충 했습니다. 우리도 준비한 게 없습니다. 산나물에 감자 떡이나 갖춰 놓고 결혼식이라고 올리면 됩지. 없는 살림살이에 별게 있습니까?”
    “예, 구차한 세월에 간단히 대사를 치르깁소.”
    병완과 기준도 한시름을 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의 흐름은 청산유수라 또 이틀이 흘러지나갔다.
      운주동의 최구장의 둘째아들 경인과 기준의 맏딸 어금의 결혼잔치는 간소하게 치렀다.
     병완은 잔치에 온 창렬과 덕성, 동욱 등 마을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괜히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에 가게 했구나. 삯전을 주지 않는 날엔 한길수를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다.)
     병완은 잔치 날에도 속으로 윽별렀다. 그런데 한길수는 잔치 날에 낯짝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오지 않길 잘했다. 괜히 잔치 날에 주먹이 날아나가면 어쩌니?)
     백두산에 숨어 사는 최구철과 진달래가 위험을 무릅쓰고 잔치를 보러 왔다. 최구철이 백두산에서 사냥한 사슴고기를 가지고와서 모두들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잔치날에 최구장은 동생을 집아래목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일렀다.
    “너네두 백두산에서 외롭게 살지 말고 여기 운주동에 내려와 살렴.”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최구철은 가죽장화로 하얀 눈을 밟아 문지르면서 도리머리질을 했다.
     “서울에서 독립만세를 부른 후 보오. 일본 놈들이 우리를 어디 살게 하겠어요? 게다가 나는 고향에서 일본 놈들을 몇을 죽였으니까. 여기 와서 편안히 살 수 있겠어요? 괜히 붙잡히자고.”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글쎄 말이야. 형제간에 한마을에서 살면 얼마나 좋겠냐? 그런데 일본 놈들 때문에 형제간에 이렇게 천리를 떨어져서 살아야 되니 얼마나 가슴이 아픈 일이냐?”
    최구철의 코와 입에서 하얀 김이 거세게 뿜겨 나왔다. 마치 성난 사자가 노기를 토하는 듯 했다.
    이때 경인의 막내 동생 경석이가 심부름을 하다가 약담배인이 올라 생야단이 일어났다.
     최구장은 최구철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맏이 경숙을 시켜 막내 경석을 남들이 보지 않는 집 뒤에 끌어다가 붙잡아두게 했다.
    “에이유, 저 꼬락서니를 어쩌니? 동네 창피해 어디 살겠느냐?”
    최구장은 답답하여 가슴을 탕탕 쳤다.
    최구장은 윗방에서 곰방대를 뻑뻑 빨다가 머리를 수깃하고 무슨 궁리를 하는 경숙에게 물었다.
    “경숙아, 그래 공지에 또 갈 예산이냐? ”
    “예? 품삯도 안 주는데 또 가겠습둥?”
     “맞아, 갈 필요 없어.”
     최구장은 곰방대의 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었다.
    경숙은 허리를 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가지 말았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하더니 나지막이 근심을 털어놓았다.
    “저 응삼이란 자식이 일본 헌병들을 데리고 가마골로 가서 사람들을 공지로 강제로 끌어갔답니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응삼이 고놈새끼, 아이 때부터 교활하게 놀더니 일본 사람들한테 찰싹 들어붙어서 이젠 앞잡이질 하는구나.”
     경숙은 볼 부은 소리를 했다.
    “고놈새끼 말에 홀딱 넘어가서 공지로 가지 않았고 뭡니까?”
   부자간은 윗방에 앉아서 한숨만 푸푸 내쉬었다.
 
    기준이 둘째아들 상순을 본 해도 막가는 음력 동지섣달에 소대가리도 얼어 터질 듯 한 엄동설한이 들이닥쳐 살을 어이는 북풍이 윙- 윙- 불어쳤다. 모래알 같은 눈 쌀들이 날아와 창호지를 무섭게 두드렸다.
     최구장네 집에는 언 감자도 이젠 거의 거덜이 날 지경이었다. 일본 놈들이 우시장에 경찰서를 짓고 우시장으로부터 두만강변의 회룡까지 철길과 큰길을 닦으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김치움에 파묻어둔 감자, 생명줄 같은 얼마 안되는 감자마저 들춰내 다 빼앗아갔다.
     엉망진창이 된 살벌한 세월에 최구장의 맏며느리 허옥실은 해산하려고 고방에서 해산앓음을 했다.
     “에구, 이 야박한 세상에 나와서 어떻게 살려고 꿈틀거려?”
    옥실은 배속에서 꿈틀거리는 아가를 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이때 최구장의 로친 성단이 고방에 들어와 앉아 며느리 손을 잡고 위안했다.
    “아가야,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이 있다구 근심말게나.”
    세파에 부대끼여 성단은 쉰고개를 갓 넘어선 나이에 비해 얼굴에 잔주름이 죽죽 건너갔다.
    “내 경숙이랑 산에 가서 버섯을 캐오라구 했는데 오는가 마중나가보겠소. 조산모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구 몸조심하게나.”
     시어머니가 나가자 옥실은 수척한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정기없는 두눈은 섦음에 찬 샘구멍인가. 눈물이 하염없이 줄줄 흘러내려 입귀로 흘러들다가는 턱을 타고 어린 근형의 복숭아얼굴에 똑똑 방울져 떨어졌다.
    옥실은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옥물고 해산진통을 참느라고 모진 애를 썼다.
    성단이 아들마중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였다.
   고방에서 갓난애의 울음소리가 “응아, 응아.” 하고 자지러지게 들렸다.
   최구장은 웃방에서 곰방대를 들어 재떨이에 툭툭 털면서 로친을 나무랐다.
   “에참, 주책없는 노친도. 맏며느리 애를 낳는데 아들마중을 가다니? 쯧쯧쯧.”
   성단이 고방에 달아 들어 가더니 환성을 올렸다.
    “며느리, 용하구나. 계집애를 낳았구만.”
   초신감발을 하고 흰옷을 입은 경숙은 돌 버섯을 캔 바구니를 정주간 바닥에 내려놓고 희죽이 웃었다.
    “큰사람, 딸을 안아보게나.”
    성단은 갓난애를 포대기에 싸안고 나와 경숙에게 보였다.
    경숙은 갓난애를 안고 서성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에구, 살기 바쁜 세월에 나서 어찌 하겠습니까? 입이나 하나 불었지.”
    경숙은 아들 근형을 본지 1년 만에 음력 동지섣달에 연연 생으로 딸을 보았다.
    최구장은 맏손녀를 안고 한참 궁리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몇 월 몇 일인가?”
   경숙이 손을 꼽았다 폈다 하면서 한참 생각하더니
   “음력으로 12월 5일입구마.” 하고 대답하자
   최구장이 좀 궁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 애 이름을 밝을 ‘명’ 자에 옥 ‘옥’ 자를 달아서 최명옥이라고 짓자.”
    경숙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말이라면 다 따랐다.
    “명옥이? 밝은 옥이라. 참 좋은 이름입니다.”
    최구장은 덧붙였다.
    “칠흑 같은 세월이 밝아오기를 기다려 잘 살라고 밝을 ‘명’자를 단 게다. 옥 ‘옥’ 자는 애 어미 이름에서 따왔다.”
     “예—참 좋습니다.”
    경숙과 성단은 서로 마주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성단은 바삐 부엌에 내려가 멱국을 끓여 고방에 들여갔다. 뒤이어 다시 부엌에 내려가 경숙이 기운봉에서 따온 돌 버섯을 함지에 씻어 가마에 얹고 부엌에 내려가 불을 땠다.
     경인과 어금도 소문을 듣고 불붙이에서 달려내려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경인과 어금은 잔치를 해서 얼마 안 돼 운주동에서 서쪽으로 한 3리 떨어진 불붙이라는 골 안에 가서 남의 사랑방을 빌어 들고 세간났던 것이다.
   “아, 그, 우리 개성 최 씨네 어쩌다가 계집애를 봤소? 아 그, 쯧쯧쯧.”
    경인은 조카 명옥을 안고 반가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때 명옥과 년년생인 근형이 앙기장 아기장 걸어와 갓난애 명옥이 곱다고 고사리 손으로 어루만지었다.
    최구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식들을 둘러보았다.
    최구장의 집안에는 경사가 났지만 저녁에 가마에 얹을 쌀도 없어 최구장의 아내 성단은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긴긴 겨울과 보리 고개는 어떻게 넘는단 말인가?)
    최구장이 마루에 나가 거위 털 같은 눈송이가 쏟아지는 벌판을 바라보면서 대통을 뻑뻑 빨며 근심했다.
     그때 천만뜻밖에도 영월동의 성칠이 어깨에 사슴 한 마리를 메고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다.
     “사돈어른, 편안히 보냈습둥?”
    “아니, 영월동의 사돈이 어떻게 돼서 여기로 왔소?”
    성칠은 마당에 사슴을 훌 내려놓았다.
    “전번에 장백산 밀림으로 들어갔다가 잡아 온 겁니다. 잡수라고 가져왔습구마.”
   최구장이 바삐 성칠의 옷에 묻은 먼지와 눈을 털어주면서 위방으로 안내했다. 온 집안 식구들이 인사수작이 끝나자 어금이 큰아버지에게 손을 씻으라고 뜨거운 물을 대야에 담아 들여왔다.
   성칠은 눈섭과 코수염에 낀 서리도 물에 씻어버렸다.
    최구장은 성칠을 쳐다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우리 집에 가져오고 사돈네는 뭘 잡수시겠수?”
     “전번 사냥에 멧돼지와 사슴을 여러 마리 잡았습구마. 사돈이 한 집안이라고 사양하지 맙소.”
    최구장은 허리를 약간 앞으로 굽히면서 사의를 표시하고 나서 뒷말을 이었다.
    “병완 사돈어른은 편안히 계신기우?”
     성칠은 성단이가 들여보낸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후 답답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삯전두 주지 않는데 기어이 공지로 갔습구마. 숱한 사람들의 삯전을 받아 내고야 말겠답더구마.”
    삯전 말이 나오자 최구장은 곰방대에 담배를 재워 넣으면서 말했다.
    “거 영월동의 길수란 자가 무슨 사람입니까? 삯전을 주겠다고 했으면 줘야지. 남을 속여 먹으면 됩니까?”
     성칠은 아주 분개해 말했다.
    “길수도 문제지만 일본 놈들이 더 문제입구마. 경찰국 지으면서 삯전을 내놓지 않았단 말입구마.”
    최구장은 부시를 쳐서 곰방대에 불을 붙여 뻑뻑 빨면서 말했다.
     “응삼은 서당 제자인데 말이 아니더구먼. 한길수한테 붙어 살더니 이젠 일본 사람들의 졸개로 돼서 스승마저 등 쳐 먹는 망할 놈으로 돼버렸수다.”
    성칠은 한길수에게 생각이 미치자 악이 났다.
    최구장은 담배대통을 뻑뻑 빨며 한탄했다.
    “옛말에 부자 한 놈이면 온 마을이 망한다는 말이 맞아요.”
   성칠도 동을 달았다.
    “요즘엔 한길수는 일본 사람들을 영월동에까지 끌어들여 큰 잔치를 벌리면서 개지랄을 합더구마.”
    “개 같은 놈!”
    집 안에서는 한길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와 한숨소리가 뒤섞여 오고 갔다.
    고방에서는 갓 난애 명옥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바깥에서는 풍설이 창호지를 치며 무섭게 윙윙- 울부짖었다.
    어른들은 이 살벌한 세상에 태어난 애의 운명을 근심하면서 한숨만 후~ 후~ 쉬었다.


                     

                             3.
토성안집의 잔치



      갓 서른을 넘은 떠꺼머리 노총각 득호는 새끼로 질끈 동여맨 허리를 구부정하고 일만 수걱수걱 해 그런지 쉰 고개도 훨씬 넘어보였다.
     길수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허리 부러지게 하였건만 오막살이집 한 채도 생기지 않았고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들지 못했다.
     “득호야, 거 당나귀차를 헛간에 끌어다 넣어라. 당나귀 차 눈을 폭 맞아서야 쓰겠냐?”
     “알았습구마.”
   요염하게 화장한 월선은 버들잎눈섭꼬리 휘도록 표독스런 암펌의 눈길을 내쏘면서 끝임 없이 독사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얼른 말과 당나귀도 먹여. 일본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마당에서 춤마당을 펼친단다. 마당에 거적을 펴라.”
    “예꾸마-”
   득호는 월선의 끝없는 잔소리에 신물났다.
   “은녀야!”
    “얘—”
   은녀는 절구를 꽝꽝 찧다가 부랴부랴 몸채 마루 아래로 달려 나왔다.
    “‘얘’가 뭐냐? 에이, 계집애가 뭐야? 전라도 깍쟁이말도 아니고 함경도 도적놈의 사투리도 아니고.”
    은녀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몸둘바를 모르며 머리마저 숙였다.
    “얼른 풍로를 피워라. 일본 손님들이 발 씻을 물 끓여놓아라.”
   “알았습구마.”
   “아, 깜빡 잊었구나. 설거지 할 물도 미리 길어오라.”
   그런데 부엌으로 들어가는 은녀의 등 뒤를 보다가 무슨 생각이 또 났던지 곁채를 향해 소리쳤다.
    “춘실아,  얼른 몸채로 들어와!
응삼 마름도 오라고 해라. 얼른!”
    “예, 갑네다. 에이 취!”
    월선은 마루에서 정주간으로 들어가려다가 되돌아서 곁채를 내다보면서 소리쳤다.
    “아니, 주인이 말하는데 ‘에이 취’가 뭐냐?”
    춘실이 황급히 조끼를 껴입으면서 곁방에서 달려 나왔다.
    “재채기를 했어요. 감기에 걸린 거 같어요.”
    춘실은 암범 같은 월선을 뒤따라 몸채로 들어가면서 또 연신 재채기를 했다.
     득호가 당나귀차를 끌어 헛간에 넣고 마당을 쓸고 나서 손의 먼지를 툭툭 터는데 은녀가 풍로를 들고 나온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뭉게뭉게 풍겨 오르는 연기에 은녀는 눈도 바로 뜨지 못하면서 상을 찡그리었다.
     “은녀, 좀 빨랑빨랑 불 피워라!”
     “알았습구마.”
    은녀는 월선의 눈치를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조심스레 풍로를 바람맞이에 내려놓았다.
    마루 우에서 월선의 목소리가 우레 소리처럼 지동쳤다.
    “은녀, 게서 뭘 해?! 얼른 물도 길어오라!”
    “얘-”
    은녀는 속으로 두덜거렸다.
    (어느 일부터 먼저 하라오? 풍로를 피워라. 물을 길어라. 물을 끓여놔라. 원, 참. 손이 열개라도 다 못하겠다. 흥!)
   “득호, 좀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나무를 패! 시키길 기다리지 말고 좀 제절로 척척 찾아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월선은 득호와 은녀를 하루 종일 오금에 불이 일도록 부려먹고서도 모자라는지 질책소리 끝없었다.
    “땔나무가 산더미 같구먼. 씨! ”
    득호는 낮은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월선은 유들유들하게 기름이 번지르르하고 살진 낯살에 표독스런 표정을 드러내면서 득호의 코가 맞힐 정도로 삿대질했다.
    “뭐라구 투덜거려? 엉? 패라면 얼른 팰 거지. 언제 셈이 들겠냐? 저러니깐 서른 고개 넘어도 장가도 못가지. 그 주제에 계집애 궁둥이를 쫓아다녀?”
     그 말이 어찌나 구역질나게 들렸던지 은녀는 마땅찮은 눈길로 쳐다보다가 월선의 표독스러운 눈길과 마주치자 머리를 숙였다.
     은녀는 풍로 불을 피워놓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풍로에 올려놓은 후 정주간에 들어가 물동이를 오른 팔에 껴안고 나왔다.
    득호는 은녀를 보고 마른기침을 했다. 그러자 은녀는 동이를 안고 다가갔다.
    득호는 몸채의 동정을 두루 살피더니 은녀를 보고 나직이 
귀띔해 주었다.
    "오늘 저녁에 특별히 조심해라. 일본사람들은 몽땅 색마들이여서 계집애들을 보기만 하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은녀는 몸을 옹송그리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은녀가 떠나가자 득호는 사랑채 앞에서 도끼를 휘둘러 땔나무를 힘겹게 팡팡 팼다.
    하늘에서는 거위 털 같은 흰 눈이 풀풀 흩날려 내리였다. 영월동은 하얀 소복단장을 해갔다.
   겨울 해는 코끼 꼬리처럼 어찌나 짧은지 어느새 서산으로 꼴깍 넘어가고 허연 눈이 덮인 대지에는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리 드리워 어스름한 황혼을 수림 속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사면을 높다란 토성으로 두른 길수네 토성안집 울안은 오늘 따라 경사가 난 듯이 광솔 불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놓았다.
    병풍을 두른 몸채 위방에서는 끼무라 국장과 상우남면 면장이 상좌에 앉아 기생 둘씩이나 끼고
 술을 마시였다. 큰상에는 다리 부러지게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다.  한길수와 월선이가 그들을  접대하느라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옆 상에 앉은 통역 류강철과 영팔 그리고 호위병은 끼무라 국장 덕분에 입귀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하게 게걸스레 먹어주고 있었다.
    영팔은 닭다리를 쥐고 질근질근 씹으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가 위상을 힐끔 건너다보았다. 그는 끼무라 국장의 숟가락과 저가 어디로 많이 가나 살피다가 정지로 내려갔다.
    영팔은 부엌에서 채를 볶아내느라고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부엌 여를 보고 
재촉했다.
    “빨리 모두부를 더 올려라. 일본 손님들은 조선의 모두부를 특별히 맛나게 잡숫는다.” 
    은녀는 부엌여가 사발에 떠주는 야들야들한 우유 빛 두부를 들고 위방 미닫이를 사르르 열고 들어갔다.
     끼무라 국장은 두부모를 들고 들어와 큰상에 놓는 은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눈길을 떼지 못했다.
    은녀가 나가자 끼무라 국장은 지껄였다.
     “스빠라씨이데스네(이쁘구나). 사꾸라만 보다가 여기 조선의 무궁화를 보니 별나게 예뻐 보이는구먼. 사람이 어찌 모두부나 돼지고기만 먹겠는가? 조선의 고사리 채도 먹어봐야지. 고사리 채 참 맛이 좋지.”
    강철의 통역을 듣고 길수는 인차 말귀를 알아들었다.
    "예, 예, 밤에 먹는게, 아니, 잡숫는게 더 맛있죠."
    호색한이 호색한의 속궁리를 젤 잘 알아주었다.
    (쳇, 벌써 그게 근질근질해나니? 개놈새끼, 조선 계집들 그게 뭐 별나다고. 흥! 내 계집들을 다치려구? 양심없는 놈. 계집을 놀아두 친구 계집은 다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두 몰라?"
   그러나 그런 별스런 기분을 억지로 눅잦히였다. 그러나 어쩐지 속이 볶이우면서 알알해났다.   
   (쳇, 나도 맛보지 못한 꽃을? 내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성칠에게서 빼앗아온 계집애이라고. 은녀만은 안 돼.)
    한길수는 짐짓 화제를 바꿔 아래 정주간을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은녀야, 거 고사리 채를 볶아오라.”
    “한군, 우리 대일본제국은 목재, 석탄이 많이, 많이 필요하네. 우시장으로부터 회령까지 통하는 철길과 큰길을 빼야겠네. 우시장으로부터 여기 영월동과 저 앞의 운주동이나 어느 마을이나 쭉쭉 사통팔달한 길을 닦아야 되겠어.”
    길수는 류강철이 통역하자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아직 경찰국 사무 청사도 채 짓지 못했는데 길을 닦을 사람이 어데 있다구 그럽니까?”
    그러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 강철은 그대로 통역하지 않았다. 그대로 통역했다가 한길수가 혼쌀날게 아닌가.
    “한군은 경찰국 사무 청사도 잘 짓고 길도 잘 닦겠다고 합니다.”
    “그래? 허허허. 한도감이야 말로 우리 대일본제국의 충실한 개, 아니, 충신이야. 흐흐흐.”
   끼무라는 길수를 가슴츠레 건너다보면서 금이발을 번쩍이며 계속 지껄여댔다.
    “한군의 표정은 이상한데. 경찰국 사무 청사를 잘 짓고 길만 잘 닦으면 한자리 주겠네.”
    길수는 그 말에는 귀가 솔깃해졌다.
     “예. 알았습니다. 그런데 철길이나 큰길을 불시에 빼서 뭘 합니까?”
     끼무라는 기생의 손에서 닭다리를 받아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으면서 거만하게 말했다.
    “한군, 길을 잘 빼야 다니기도 좋고 돈도 벌기 쉽소. 우리 대일본제국은 철길을 잘 빼서 영월동의 목재하구 개마고원의 석탄이랑 황금이랑 몽땅 실어가야겠네. 그러자면 큰길과 철도를 잘 빼야 되지. 알만하오?”
    길수는 그제야 끼무라 뒤에 숨은 탐욕스러운 날강도들의 그림자들이 얼른거리고 있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보는 상 싶었다.
    “그런데 두만강변의 회령은 조선의 끝간 시골인데 거기까지 철길을 뺄 필요야 있습니까?”
    끼무라는 막걸리를 한잔 쭉 내고 닭고기를 게걸스레 뜯어먹더니 허리를 쭉 펴면서 말했다.
     “우리 대일본제국은 조선을 잘 건설하고 나아가서 만주국에 있는 천황의 황민들을 보호하러 들어갈 거요. 아, 그 넓은 만주벌이 그저 황무지로 되는 것이 얼마나 아깝소? 우리 조선의 황민들이 그 넓은 옥토 벌에 밭을 일구고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요. 안 그렇소? 한 군.”
    한길수는 우멍눈이 환해지면서  시야가 확 트이는 것만 같았다.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희 번뜩 번졌다가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는 연신 번들번들한 대머리를 조아리면서 끄덕였다.
    “이제야 좀 알겠습니다.”
    “그때면 한 군은 지금의 총 도감이겠소? 아마 무슨 대장 자리쯤은 차려질 거요. 허허허.”
    한길수는 짧은 가랭이를 춰주는 줄도 모르고 기뻐 입귀가 귀밑에까지 찢어질 지경으로 입이 함박만 해졌다.
     “고맙습니다. 끼 국장님.”
     “에, 또 끼 국장인가? 끼무라 국장이지.”
     한길수는 황급히 아픈 허리를 굽히면서 대머리를 조아렸다.
    “시골의 제가 너무 모르는 게 많아서 죄송합니다. 꼭 사무 청사와 길닦기 공지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흡족한 듯이 번들 이마를 건너다보면서 씨불였다.
     “자넨 우시장으부터터 회령까지 통하는 철길을 닦으라는 말이 아니네. 이 뒤 마을 부근 길닦이와 경찰국 청사만 맡으면 되네.”
     “예, 알았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한길수에게 끝없이 불어넣었다.
    “이번에 경찰국 사무 청사 공지에 인부를 데려온 일로, 오늘 우릴 접대한 걸로 두루 보니 한 군은 정말 이 산골에 파묻혀있기는 아까운 인재네. 잘 하게나. 우리 일본제국은 잊지 않을 거야.”
   “예, 고맙습니다.”
   한길수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보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일본 경찰국장에게 머리를 조아려댔다.
   월선은 일본 사람에게 너무 굽석거리는 영감을 보고 속으로 치미는    불길을 참느라고 속이 부글부글 괴여 번졌다. 그러나 겉으로는 기쁜 듯이 끼무라 국장에게 나오지 않는 웃음을 팔았다.
     술이 거나하게 되자 끼무라는 색정광의 본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젠 일본 기생 년들을 물리고 우시장 조선기생 옥설을 데려오게나. 오늘을 다른 맛을 봐야겠네.”
    “알았습니다.”
    영팔이 나가서 이윽고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앞세우고 연지 꼰지 찍고 발끝에까지 분가루가 흩날리게 바른 옥설과 만금, 뽕녀가 들어왔다.
    끼무라는 실눈이 대뜸 화등잔이 되여 옥설을 껴안았다.
    옥설은 끼무라 국장의 무릎 우에 올라앉아 실버들 같은 허리를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배배 탈면서 갖은 애교를 다 부리였다.
     한길수는 옥설을 뚫어지게 건너다보면서도 옆에 앉은 월선의 눈치가 보여 어찌 하는 수가 없었다.
     한길수가 불편해 하는 것을 눈치 채고 끼무라는 월선을 보고 꼬부랑소리를 했다.
    “여보세요. 곤하겠는데요. 나가 쉬세요. 나와 한 군 은밀히 할 말이 많이 있소이다.”
    류강철이 통역하자 월선은 일어나 펑퍼짐한 엉덩이를 삐뚤거리며 나가면서 입귀를 비쭉거렸다.
    뒤늦게 들어온 월향은 아저씨 한길수를 보고 머리를 까딱 하면서 살짝 웃음을 흘리었다.
     끼무라는 월향을 보고 자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탕탕 치면서 와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순간 한길수는 속에서 질투의 불길이 훅 치밀었다. 그러건 말건 끼무라는 옆에 앉은 월향의 볼을 살살 만지면서 놀아댔다.
     만금과 뽕녀도 끼무라 국장 옆에 붙어 앉았으면 큰 떡이 생길 것 같았지만 별수 없이 한길수의 옆에 와 물앉았다.
    월향은 평소에 길수가가 우시장에 오기만 하면 자기 몰래 옥설을 찾아 술잔을 기울이던 일이 괘씸해 보복하려고 들었다. 일부러 한길수의 애가 마르게 모두부랑 숟가락에 떠서 끼무라의 입에 넣어주고 아양을 떨어댔다.
    끼무라는 막걸리 잔을 들어 옆에서 희희닥거리는 옥설을 끌어안고 빨간 앵두 입에 억지로 부어넣었다. 옥설은 얼굴을 돌리면서 도리머리 질 하다가 별수 없이 막걸리를 삼키였다.
    그녀는 섬섬옥수로 막걸리단지를 들어 끼무라와 한길수의 잔에 쪼르륵 쪼르륵 부어 올렸다.
    기생들의 애교를 부리는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안주로 위방에서는 술을 한잔 또 한잔 기울였다.
     주흥이 도도해지자 끼무라는 일어나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인차 눈치를 챈 한길수는 손벽을 짝짝 치더니 기생들에게 당부했다.
    “끼 국장이 즐겁게 어서 춤판을 벌려라.”
    월향은 “추워서 바깥에서 어떻게 춤을 춰요?” 하고 몸을 옹송그렸다.
    그러나 한길수가 눈을 굴리자 마지못해 일어나 나갔다.
     드디어 마당에서는 북장단이 둥당 둥당 울리고 기생 년들이 비단치마자락을 날리며 학이 나래를 파닥이듯이 팔을 하느작거리면서 춤판을 벌렸다. 대낮 같은 대뜰아래 춤판이 한창인데 거위 털 같은 눈송이가 하늘하늘 쏟아져 기생들 춤사위 두새에 내려 앉았다.
     끼무라는 마루 위에서 월향과 옥설의 가는 목에 팔을 얹고 몸을 기댄 채 춤판을 구경하다가 비칠거리면서 팔자걸음으로 땅바닥에 내려갔다.
     “조선 춤이 멋이 없다. 우리 대일본제국의 사꾸라 춤을 췄쏘까?”
    끼무라는 “사꾸라, 사꾸라.”하면서 일본 기생들과 함께 왼발 내딛고 손 벽을 짝 치고 오른손 쳐들고 왼손 펴고 오른발 내딛고 손 벽을 짝 치며 사꾸라 춤을 췄다. 기생들은 제법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췄다. 그들은 조선기생들과 한데 어울려 일본에 둔 고향과 부모들의 생각에 눈물까지 흘리면서도 잘들 돌아갔다.
      “아이쿠!”
     한창 흥이 나서 모두들 춤을 추다가 복판에 쓰러진 끼무라에게 놀란 눈길을 모았다.
     끼무라가 엉덩방아를 찧고 오만상을 찡그렸다.
    “빨리, 부축해라.”
    한길수가 황급히 고함쳤다.
    그는 영팔과 함께 달려가 양쪽에서 부축하였다. 끼무라가 그들의 귀 쌈을 찰싹 찰싹 갈겼다.
    “바까(바보)! 콘칙쑈(관둬)!”
   기생 년들은 발바리 상을 하던 길수가가 맞는 것을 보고 너무 우스워 입을 싸쥐고 돌아서서 키드득 키드득 했다.
    기생 년들은 뺨을 감싸쥔 한길수의 독살스런 우멍 눈을 훔쳐보고 곁방으로 몸을 숨기였다.
    춤판은 깨지고 월향과 옥설이 끼무라를 부축해 윗방으로 들어갔다.
    끼무라는 방 문턱을 넘어서면서 마른 날에 우박이 쏟아지듯이 울컥울컥 토했다. 막걸리며 닭고기며 버섯이며 고사리며 쏟아져 구들에 떨어졌다.
    개들이 이게 웬 떡이냐며 끼무라의 가다리 두 새로, 엉덩이 밑으로 대가리를 들이밀고 쩝쩝 먹어댄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지경. ㅋㅋㅋ
    한길수와 영팔, 순사들이 짖어대며 먹어대는 개들을 쫓아내느라고 위방이 떠들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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