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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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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
2015년 05월 08일 09시 17분  조회:3613  추천:3  작성자: 김장혁
          
           6.
운주동 서당 훈장


     최구장은 큰며느리 허옥실을 보고 성칠이 준 멧돼지 고기를 푹 끓이라고 했다.
     최구장 일가가 사는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은 함경북도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심심산골이었다. 정말 그가 살던 고향 개성이란 옛 고려의 수도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곳이었다.
     지금도 최구장은 눈을 스르르 감으면 자기 고향 개성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가군 했다. 자기가 어려서부터 공부하던 서당이며, 고려 충신 정몽주가 철퇴에 맞아죽은 선죽교며, 고려의 옛 궁전터전이며, 어려서부터 드레 박으로 샘물을 길어다 마시던 큰 길옆의 우물터며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함경북도라고 하면 원래 이씨 왕조 때 죄를 지은 자들을 정배를 보내던 곳이었다. 그렇게 사람이 못살 산골이어서 범죄자들이나 정배를 보내 고생을 시킬 곳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개성에 들어온 후 서당 글을 가르치던 최구장 영감도 계속 마음 놓고 글을 가르칠 수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의 일본글을 가르쳐야 하지 한자나 조선 글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제껏 대대로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른 황이나 익혀온 최구장 네를 보고 알지도 못하는 일본 말을 가르치라고 하는 일본 사람들의 심사는 이를 데 없이 괘씸했다. 그것이야 말로 최구장의 명줄과 같은 서당 훈장 밥통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작은 집의 사촌동생 최구철마저 일본 놈 몇을 총을 놓아 죽였기에 최구장 일가는 일본 놈들의 요시찰 인물로 점 찍혀 살기 어렵게 됐다. 그리하여 최구장은 정든 고향을 떠나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은 명천 우시장에서도 멀리 떨어진 심심산골에 들어와 수림 속에 밭이나 일구어 감자농사를 지어 먹으면서 살게 됐던 것이다. 비록 심심산골이고 고향 개성처럼 환한 고을은 아니지만 일본 사람들이 없어 기를 펴고 살 수 있고 시골 애들에게 마음 놓고 서당에서 글을 다시 가르칠 수 있어 좋았다.
      운주동 서쪽에 누르스름한 뭇 산우에 기운봉이 우뚝 솟아있었다. 기운봉의 들쑥날쑥한 갈색바위는 사시절 구름 속에 안개 속에 잠겨있었다. 그 구름 모양은 천태만상이었다. 피어올랐다 풀렸다 하는 구름송이, 안개처럼 물기어린 구름송이, 햇솜같이 새하얀 구름송이, 고기비늘처럼 무늬를 정연하게 돋친 구름송이로 정말 아름답기만 했다. 구름송이들도 기운봉의 허리에 감겨 한참씩 쉬고서는 어디론가 가뭇없이 사라지군 했다. 하여 멀리서 보면 기운봉은 마치 구름바다의 섬을 방불케 했다.
       기운봉의 청석옥석 사이로 샘물이 쿨쿨 쏟아져서는 갈색바위를 부시며 철철 흘러내려 운주동과 신흥동 마을로 달려갔다.
운주동은 서쪽의 기운봉 기슭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운주하 개울물을 따라 한 5, 6리나 되게 죽 뻗은 산골짜기에 한두 집씩 게딱지처럼 여기저기 스산하게 널려 있었다. 개울물 남쪽에는 운주동 마을에 집들이 죽 늘어서 있었고 개울물 북쪽에는 신흥동 마을이 산을 등지고 죽 늘어서있었다. 기운봉 동쪽 기슭에 있는 운주동 뒷산꼭대기는 좀 평평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곳이 명당자리라고 하는 최구장의 제의에 따라 산소를 쓰고 그 주위에 돌로 토성을 높다랗게 쌓아 놓았다. 그리하여 성과도 같은 그 토성안의 산소로 하여 운주동의 일부 집들을 성남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운주동의 이런 시골 집들은 통나무집들이었다. 대부분 아름드리나무들을 톱으로 썩썩 켜 통나무채로 쌓은 후 나무못으로 고정시켜놓고 그 우에 지붕틀을 올리고 널판자를 기와처럼 얹은 통나무집이다. 집집마다 잡나무를 베다가 울바자를 집 둘레에 높다랗게 세웠다. 진짜 산골 마을의 풍경이었다.
      최구장은 어려서 고향 개성에서 서당공부를 하여 천자문, 논어, 대학, 중용을 다 배웠다. 또 풍수지리마저 익혀서 집을 어떤 데 지어야 좋고 어디다 산소를 써야 명당자리라는 것을 환히 꿰뚫었다. 기운봉 기슭의 성은 바로 그의 제의에 따라 개척한 명당산소자리였다.
     게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최구장은 몽땅 해리하고 푸는 방법을 정확하게 깨우쳐 주군 했다. 그리하여 개성으로부터 운주동에 이사해 온 후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를 유식한 서당훈장으로 모시였고 애들을 그의 서당에 보내 공부시켰다.
     또 사람들은 그를 해리장으로 높이 모시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를 찾아 해결방도를 물었고 결혼하거나 장례를 치르면 은전을 가지고 와서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최구장이 아침 밥술을 놓기 바쁘게 마을의 병욱이가 아들 시준의 손목을 잡고 최구장의 팔간 집 울안에 들어섰다.
      “최 훈장님, 아침을 잡수셨습둥?”
      그러자 최구장은 버릇처럼 왼손으로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움찔 일어나 마중했다.
     “김 영감, 오늘 일찍 하오다. 어서 오너라. 시준이 요즘 공부를 잘하더라.”
     시준은 인차 구십도 경례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최 선생님!”
     최구장은 인차 시준의 손목을 잡아 마루에 끌어올렸다.
    “에이, 시준도 이젠 열 둬 살 먹더니 철들었네. 이리 올라와. 오늘도 제일 먼저 서당에 왔구나.”
    시준은 다른 애들보다는 달랐다. 말수가 적은데다가 눈만 뜨면 책만 들여다보고 중얼거렸다. 그 애는 서당에 들어서자마자 책보를 풀어놓고 마루에 손가락으로 글을 오리면서 중얼거렸다.
     “내 뭐랬소? 책을 익혀 살 놈은 어릴 때부터 다르다니까.”
    그는 윗방에 들어가 그때까지 일어도 나지 않은 장손 봉인의 엉덩이를 커다란 손바닥으로 짝짝 쳤다.
     “이 자식, 일어나라. 해 궁둥이를 다 비춘지도 오래다.”
     둬 살 밖에 안 되는 봉인은 일어나 앉으면서 두 손으로 눈을 비벼댔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봉인은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기였다.
      “할아버지!”
      “오, 그래. 요 놈이 우리 집안의 기둥과도 같은 14대 장손이지! 요 놈도 공부를 잘해야겠는데.”
      이때 최구장의 딸 죽순이 앙기작앙기작 걸어와 봉인을 밀어냈다.
      “가. 내 아버지야!”
      여자애는 볼에 볼우물을 옴폭 파며 흘겨보았다.
      “그래, 아빠는 장손도 고와하지만 하나 밖에 없는 우리 딸을 정말 고와하지.”
      최구장이 딸과 손자를 안고 노는 재미나는 모습을 보고 병욱은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이도 옆에서 히죽이 웃었다. 허옥실도 부엌에서 아침상을 거두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방실 웃었다.
      이때 마을 애들이 다 와서 최구장은 제일 윗방에 들어가 애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시준이랑 병권의 맏손자 형내랑 천자문을 따라 외우는 낭낭한 글소리가 이 시골에 울려 퍼졌다.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를 황!”
    최구장의 막내아들 경석은 공부하기 싫어 천자문을 외우는 척 하면서도 바깥을 흘금흘금 곁눈질 했다.
    (에이, 씨, 바깥에 나가 놀았으면 얼마나 좋겠니? 운주하에 나가서 목욕도 하고 모래에 물도랑을 파면서 놀겠는데. 날마다 하늘 천, 따 지야?)
    막내아들의 그런 속내를 꿰뚫어본 듯이 최구장은 대통으로 경석의 머리를 한 대 딱 쳐놓았다.
     “아가!”
     비명소리에 애들이 모두 손으로 머리를 만지는 경석에게 머리를 돌려 보고 캐득거렸다.
     “공부에 집중해! 왜 자꾸 바깥을 흘금거리면서 정신을 팔아? 그러고서야 입으로 아무리 외운들 글자가 머리 속에 들어가나? 못된 놈 새끼! 다시 공부에 집중하지 않아 봐! 회초리로 종아리를 칠 테야! 어험.”
     경석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버지가 무서워 눈치를 흘금 거리며 하늘 천, 따 지를 외웠다.
     최구장은 철 없는 경석을 보고 골치 아파 했다.
     맏아들 경숙은 자기 대신 이젠 가문의 농사일을 담당했기에 공부를 할 새 없어 시키지 못하고 둘째 경인은 천자문을 떼고 무예를 익히느라고 검을 들고 달아 다녔다. 셋째 경민은 허약한데다가 넷째 경욱과 함께 공부에는 뜻이 없고 약 담배 장사에 흥취가 박혔다.
    (헤이, 생각만 해도 가운이 답답하다.)
    최구장은 생각다 못해 총명한 막내 경석에게 희망을 두고 어려서부터 공부를 시키는 판이었다. 장차 형내네 할아버지 관준한테 보내서 한의공부를 시킬 예산이었다. 서당 훈장질을 이어받아서야 살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막내아들은 삶의 그루를 바꿔 심어 의사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속셈으로 관준의 손자 형내에게서 서당 공부 학비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경석은 놀음에 탐해 정신을 집중해 공부를 잘 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한참 후에야 경석과 애들은 금방 일을 잊은 듯 했다.
      서당에서는 애들의 글 읽는 소리가 랑랑하게 울려 퍼졌다.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를 황‧‧‧”
      바깥이 불시에 어두워지더니 먹장구름이 뒤덮여 왔다. 먹장구름 속에서 시뻘건 불구렁이 기운봉을 번쩍 덮쳤다. 그 놈은 숱한 불혀로 기운봉을 감싸핥아버리고는 먹장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우르릉 꽝꽝
      우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번개가 번쩍였다.
      뒤이어 추녀 끝에서 숱한 실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그제야 경석은 바깥에 나가 놀 궁리를 접고 정신을 집중해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하늘이 도운 셈이었다.
     최구장은 그제야 한숨을 후 내쉬며 저쪽 마루로 나갔다.
     그는 대통에 담배를 쑤셔 넣고 부시를 쳐 불을 달아 물고 뻑뻑 빨았다. 그는 몰려 오는 비구름을 바라보며 세상의 풍운조화를 예측하기라도 하는듯이 손을 꼽았다 폈다 하면서 무슨 궁리를 하고 있었다.
 
        
                7.
수림에서 맺은 연분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은 키도 크고 힘 골도 썼다. 그가 운주동의 막바지에 있는 옥실을 아내로 맞아들이게 된 데는 그럴만한 연분이 있었다.
     양천 허씨 네 큰 딸 옥실은 이름과 같이 살결이 백설처럼 희였고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한데다가 호리호리하게 생긴 처녀애였다.
     녹음이 짙은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기운봉 기슭의 수림은 비온 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타나자 더욱 청초하고 수려하였다. 
    옥실은 어린 남동생 명철과 함께 버드나무바구니를 끼고 머루를 따러 기운봉 기슭으로 올라갔다.
   개암나무들이 듬성듬성 난 풀숲 속에 빨간 나리꽃 송이 활짝 피어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방불케 했다. 수림 속에 스며드는 부채살 같은 해살 속에 하느적거리는 나리꽃, 도라지꽃은 옥실을 반겨 맞았다.
    “야- 저 나리꽃!”
   옥실은 환성을 지르면서 두 손을 활짝 벌리고 치마 자락을 나풀거리며 나리꽃 쪽으로 달려갔다.
    그때 나무꼬챙이를 쥐고 뒤따르던 명철이가 고함쳤다
    “누나! 조심해, 여긴 뱀이 많은 곳이야!”
    옥실은 그런 말에 신경을 쓸 새 없이 달려가 나리꽃을 몇 송이 꺾어 뾰족코에 대고 흠흠 꽃향기를 맡았다. 까만 반점이 박힌 빨간 나리꽃은 곱기도 하고 향기로웠다. 그런데 빨간 나리꽃의 노란 화분이 하얀 얼굴에 묻어 노란 분칠을 한 것 같아 자연미를 한껏 돋구어주었다.
     옥실은 노란 장미꽃, 빨간 장미꽃을 꺾는다, 하얗고 파란 나팔꽃을 줄기채로 훑어낸다 하더니 꽃다발을 틀어 머리 우에 얹었다. 참말로 꽃 같은 얼굴에 꽃다발을 얹고 수림 속에서 달아 다니는 옥실의 그 모습이 비할 데 없이 예쁘기도 했다.
     명철은 몽둥이를 쳐들고 누나 뒤를 따라 다니면서 어데 뱀이 기어 나오면 당장 때려죽일 듯이 의심스러운 풀숲을 돌아가며 헤치면서 살폈다. 그런데 명철은 누나의 머리에서 나리꽃잎을 하나 뚝 뜯어 내 입에 넣고 씹었다.
    옥실은 눈을 곱게 흘기면서 종알거렸다.
   “야, 애도 남의 고운 꽃다발의 꽃 이파리를 뜯어먹다니?”
   명철은 또 꽃 이파리를 하나 뜯어먹으면서 빈정거렸다.
   “산속에서 뛰어 다녔더니 이 어른이 좀 시장하단 말이야.”
   옥실은 명철이 또 꽃 이파리를 뜯어 낼까봐 꽃다발을 벗어 손에 쥐고 봇나무 수림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야, 이 머루를 봐라.”
    명철은 봇 나무 숲속에 멈춰선 누나를 보고 뒤따라 뛰어갔다.
    그들의 눈앞에는 황홀경이 나타났다. 허리만큼 실한 봇 나무에 바를 걸친 듯이 얼기설기 내리 드린 머루넝쿨에 까만 머루송치가 데룽데룽 매달려있었다.
    파랗고 넙죽한 머루 이파리 속에 매달린 까만 눈동자처럼 초롱초롱 윤기 나는 머루 알은 탐스럽기만 했다.
    옥실은 가늘고 하얀 식지와 중지로 머루 한 알을 뜯어 입안에 넣고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었다.
    “아이고, 시큼해라.”
    옥실은 대번에 외까풀 눈을 한일자로 감아버리면서 오만상을 찌프리었다. 명철은 다다가 머루 한 송치를 뜯어 입에 포도 알을 넣고 질근질근 씹었다. 뒤이어 그는  누나와 함께 포도송치를 부지런히 따서 옥실이 든 버드나무바구니에 넣었다. 어느새 바구니에는 까만 머루송치가 무룩하게 쌓였다.
    이때 저쪽에서도 영월동의 상우와 그의 큰 누나 어금이 산나물을 캐면서 이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얼굴이 너부죽하고 곱게 생긴 어금은  벌써 처녀티가 완연했다. 자지 색 나리꽃을 입에 문 어금은 숲속에 내린 나리꽃같이 예뻤다. 그녀의 남동생 상우는 중등 키에 실하게 생긴 편이었다.
     옥실은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눈인사를 하였다. 그녀는 청석바위 우에 뻗어 올라간 머루줄기 밑에 까만 머루송치가 다닥다닥 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리로 와삭와삭 풀숲을 헤치면서 다가갔다.
     그녀가 탐스러운 머루송치를 뜯어 바구니에 담자고 하얀 손을 뻗칠 때다. 하얀 바탕에 새까만 점이 얼룩덜룩 박힌 터덜터덜한 독사가 머루넝쿨에서 혀를 날름거리면서 노려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앗! 뱀이야!”
    그 비명소리에 명철은 반사적으로 왼쪽어깨에 둘러멨던 몽둥이를 오른손에 바꿔 쥐였다.
    “에이크!”
    명철은 몽둥이를 휘둘러 독사를 내리쳤다. 그런데 독사가 그만 몽둥이에 맞아 옥실이 든 바구니에 툭 떨어졌다.
     “에구머니!”
     옥실은 바삐 바구니를 달랑 떨어뜨렸다.
    설상가상으로 독사 한 무리가 바위 밑 풀숲에서 기어 나와 대가리를 쳐들고 그들을 공격해왔다. 분명 굴 독사들은 이 불청객의 침입을 그저 볼 수만 없었던 모양이다.
    이 나무 저 나무 가지들에서 독사들이 데룽데룽 매달려있다가도 땅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그 놈들은 대가리를 쳐들고 그들에게로 맹공격해왔다.
     “피해!”
     위기일발의 시각에 경숙과 경인이 고함치며 낫을 들고 뛰어왔다.
     그들은 낫을 휘둘러 고사리 숲처럼 대가리를 쳐들고 옥실한테 달려드는 독사무리 목을 쳐댔다. 상우도 달려와 명철과 함께 몽둥이로 나무 가지에 데룽데룽 매달린 독사들을 때려잡았다.
     옥실과 어금은 봇 나무 뒤에 숨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오른 식지를 입에 물고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 총각 애들이 독사를 잡는 것을 보고 있었다.
    총각애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와 낫에 맞아 뱀의 대가리와 피가 사처로 날렸다.
     “이 놈들아! 다 덤벼들어라!”
    사기난 명철도 고함치면서 몽둥이를 휘둘러 독사들을 때려 죽였다.
    대가리가 낫에 맞아 날아난 뱀들은 의연히 꼬리가 꿈틀거렸다.
    옥실과 어금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점점 뒤로 비실비실 물러서며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했다.
    호리호리한 총각 경인은 뒤돌아보면서 다급히 소리쳤다.
     “삼십육계에 줄행랑이 제일이오. 어서 빨리 달아나오. 우리 독사무리를 막을 테니.”
    그제야 정신차린 옥실과 어금은 걸음아 날 살리라고 바구니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머루 덩굴 숲속에서 달아났다.
     한참 후에 명철과 경인이 뻘건 피 묻은 낫과 몽둥이를 들고 숲속에서 뛰어나왔다. 경숙은 머루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와서 옥실에게 내밀었다.
    “자, 이 좋은 머루를 가지고 가오.”
    옥실은 머루바구니를 받으면서 귀밑까지 발갛게 붉혔다.
    “고맙소. 여러분이 아니었더라면 큰 경을 쳤을 번했소.”
    그녀는 고마운 눈매로 키 큰 경숙을 쳐다보았다.
    명철은 옆에 서 있다가 자기 누나에게 경숙과 경인을 인사시켰다.
   “누나, 이제 금방 알았는데 이 형님은 운주동 최훈장네 형님들이라오.”
    옥실이 나서면서 경숙과 경인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원래 말수가 적은 경숙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둘째 경인은 앞에 나서면서 인사를 받았다.
     “일이 생기지 않았으니 됐소. 이후에는 이 근방에 와서 머루를 따지 마오. 독사에게 물리면 큰일이 아니오?”
    이때 상우가 나서 알은체 했다.
    “알고 보니 큰아버지 전번에 외우던 최 훈장 어른 네 형님들이구만. 우린 영월동의 김병완 할아버지의 작은 집 손자 맏손자 상우와 맏손녀 어금이오."
     경숙과 경인이도 전번에 수림 속 감자밭에서 만났던 성칠을 떠올리면서 아주 반갑게 대했다.
     어금은 최사련 할머니와 성칠 큰아버지에게서 최구장과 최구철 두 어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초면이었지만 이젠 구면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키는 크지만 말수가 적은 경숙보다 중등 키에 해박해 보이는 경인에게 눈길이 더 갔다.
      그는 버들바구니를 왼팔에 낀 채 가리마를 쪽 낸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인사를 드렸다.
      “정말 고맙소. 두 분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무슨 사고가 생겼겠는지 모르겠소.”
      경숙보다도 키가 더 큰 경인은 시무룩이 웃으면서 어금을 바라보며 화답했다.
     “천만의 말씀을. 우린 령을 사이 두고 영월동과 운주동에 사는 형제와 같은 사람들이오. 이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도우면서 살기요.”
     명철이 넓은 가슴을 치며 말했다.
     “옳소. 우리는 한마을에서 사는 형제들이오. 이후에는 한집안의 형제들처럼 재미나게 보내기요.”
     허옥실은 수집어서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경숙을 훔쳐보았다.
    경숙은 가타부타 말없이 낫을 들고 나무하러 기운봉 기슭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뒤에서 옥실은 멀어져가는 경숙을 지켜보면서 서 있었다.
     경인과 상우, 명철, 어금 등은 수림 속에서 웃고 떠들면서 놀다가 점심때가 다 돼서야 각기 자기 고향마을로 내려갔다.
     울울창창한 수림에서 부채살 같은 해빛이 처녀총각들의 뒤를 따라 걸어왔다. 드문드문 그들이 주고 받는 말 틈새에도 옥 구슬을 끼워주기도 했다.
               

                           
                                8.
결혼




      그때부터 옥실의 눈앞에는 뱀을 잡아주고도 아무 말 없이 산으로 나무하러 성큼성큼 떠나가던 경숙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 없이 맑고 푸른 가을의 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옥실은 샘물터에 가서 바가지로 샘물을 푸려고 샘물을 들여다보는 순간 경숙의 길쭉한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웬 일이지?)
     옥실은 한숨을 호 내쉬면서 바가지로 잔잔한 샘물을 저어 경숙의 모습을 지워버렸다. 그녀가 쪼그리고 앉아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샘물을 들여다보니 고요해진 물에 또 경숙의 상반신이 떠올랐다.
     옥실은 누가 볼까 봐 황급히 바가지로 샘물을 물동이에 퍼 담아 이고 샘물터를 떠나갔다.
    열다섯 살의 이팔청춘 옥실은 그때로부터 저도 모르게 경숙에 대한 사랑의 싹이 트는 것을 가슴 속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하루. 옥실은 빨래터에 가서 빨래를 했다. 넙죽한 돌에 빨래를 놓고 방치로 탁탁 쳐서는 조약돌이 환히 다 들여다보이는 운주하 개울물에 빨래를 불렀다가 왈왈 헹궈 꾹 꾹 짰다. 그리고는 빨래를 버드나무가지에 훌훌 널어 말렸다.
    그런데 흐르는 개울물에도 경숙의 모습이 떠오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우람진 체격에 길쭉한 얼굴, 짙은 눈썹에 두부모같이 두꺼운 입술, 항상 말수 적은 그 입은 철문처럼 꾹 닫겨져 있었다.
    “아니, 이게 웬 일일까?”
    옥실이 중얼거리는데 개울물에 떠오른 그 그림자는 자기 쪽으로 움직여 오는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거울같이 맑은 개울물 안에 서있는 경숙은 자기 앞에 쪼그리고 앉는 것이었다.
    옥실은 조약돌을 주어 물에다 힘껏 뿌렸다.
    출렁!
    순간 물방울이 옥실의 얼굴과 저고리에 뿌리우면서 경숙과 자기 그림자도 지워졌다.
    화뜰 놀란 옥실이가 너무나도 이상해 옷을 털면서 일어나 돌아다보니 경숙이가 실로 말없이 앉아 자기를 보고 있었다.
    “아니, 경숙오빠!”
    “허허허.”
    “남은 물을 맞고 깜짝 놀라 죽겠는데 너털웃음을 웃소? 흥!”
   옥실은 경숙을 고운 눈길로 흘겨보면서 동전을 감아쥐며 돌아섰다. 순간 옥실의 하얀 볼이 귀밑까지 홍당무로 돼버렸다.
   “누가 보겠소.”
    옥실은 빨래와 방치를 와락와락 대야에 담아 이고 버들강변을 떠나버렸다.
    뒤에서 경숙은 멀어져가는 옥실의 잔등을 보면서 너털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허허허. 누가 보면 뭐라오?”
    이윽고 최구장 어른이 호미를 들고 버들강변으로 다가왔다.
    “경숙아, 옛말에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했다.”
    그러자 경숙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장가들 나이가 되여도 처녀애들과 말도 못합둥?”
    그 말에 최구장은 경숙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중얼거렸다.
     “오- 그래, 내가 잊었구나. 너도 장가 이젠 들 나이가 되였지.”
     최구장은 쪼그리고 앉아 호미를 개울물에 씻으면서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한참 후 허리를 펴면서 일어섰다.
     “그래 저 옥실이 네 마음에 드니?”
    경숙은 그저 히죽이 웃으면서도 아무 말도 못했다.
    “좋단 말이지. 알았다. 내 혼사말군을 허도이사한테 보내 혼사 말을 해야겠다.”
    최구장은 신흥동의 만춘집 김 구장에게 부탁해 맏아들 경숙의 혼사 말을 신흥동의 옥실의 아버지 허득필에게 했던 것이다.
   허득필은 술이라면 오금을 못 쓰고 농사일이라면 뒷전이어서 살림이 형편없었다. 딸 옥실과 명실의 중간에 아들 명철이 있었다.
   “주인집 영감 있소?”
   김 구장이 집 울안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막걸리를 마시던 허득필은 바삐 막걸리사발을 내려놓고 마루에 나가 맞이했다.
    “아니, 어떻게 돼 이 구차한 우리 집에 찾아왔소? 허허. 어서 올라와 한잔 같이 하기요.”
    김 구장은 고무신을 벗고 머리 태를 어깨 너머 뒤로 척 돌려가더니 집안에 들어가 사양하지 않고 술상에 마주 앉았다. 원래 김 구장도 술을 반가와 하여 허 씨 와는 알맞춤한 술친구였다.
     이때 허씨 처자들이 모두 나와 곱도록 인사를 올렸다. 김 구장은 피뜩 옥실에게 눈길을 멈추었다가 허득필에게 돌렸다.
     허득필은 막걸리를 부어 주면서 지껄였다.
     “아니, 신흥동에서 한다하는 만춘집 구장 어른이 어떻게 돼 서발막대기를 휘둘러도 걸칠게 없는 우리 집에 찾아왔소? 자, 좌우간 반갑소. 어서 드오.”
     김구장은 막걸리를 한 사발 죽 마신 후 건가래를 뗐다.
“에헴, 이 집에 내 혼사 말을 하러 왔소.”
     그 말에 조왕 쪽에 있던 옥실은 두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는 마음 속에 경숙이 있는데 김 구장이 자기 집 아들에게 혼사말을 하면 어찌 하겠는가고 저으기 근심했다.
    그때 허득필은 싹아 떨어진 이발이 다 들여다보이게 입을 하 벌리고 김 구장을 쳐다보다가 막걸리동이에 바가지를 넣어 막걸리를 퍼 김 구장 앞의 사발에 부으면서 정색해 물었다.
     “그래, 김 구장 어느 아들과 혼사 말을 하러 왔소?”
    그러자 김 구장은 손을 들어 살래살래 흔들었다.
     “아니오. 아니. 참. 에헴."
    허득필은 막걸리를 붓던 사발을 밥상에 달랑 놓으며 다가앉았다.
    "그럼 뉘네 집하구?"
    "저 강 건너 운주동 최구장네 맏아들과 혼사 말을 하러 왔네.”
     허득필은 옥실을 힐끔 내려다보더니 다시 김 구장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옥실은 부끄러워서 뒷문을 열고 뒷마당에 나가 추녀 밑에 서서 집안에서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을 엿들었다.
    허득필은 김 구장과 맞 잔을 하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 최구장어른이 김구장을 보냈소?”
     “그러잖구. 최구장 집은 사방 십리 안에 이름 있는 유식한 가문이 아니고 뭐요? 이 집 맏딸을 그 집에 맏며느리로 보낸다면 얼마나 좋겠소?”
      허득필은 귀가 솔깃해졌다.
     “김 구장이 중매를 서니깐. 길게 말해 뭘 하겠소. 내 맏딸을 최구장 집에 주기로 하겠소.”
     옥실은 뒤 벽에 기대 문틈으로 그 말을 엿듣고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옥실은 기도나 드리듯이 두 손을 맞잡아 가슴에 대고 북녘하늘을 바라보더니 잠간 눈을 딱 감았다. 이윽고 뒤울안에서 구새 목 쪽으로 살금살금 달아났다.
     김구장은 막걸레를 죽 들이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매듭을 지었다.
    “그럼, 혼사 말이 성사 된 걸로 최구장에게 전하겠소."
    “가만!”
    아주 시원하게 대답하던 득필이 김 구장을 따라 일어나면서 꼬리를 달았다.
    “그런데 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옥실을 시집보내고 이 집 농사는 누가 짓겠소. 한 3년 있다가 시집보내야 될 것 같소이다.”
    김 구장은 어이없다는 듯이 조개턱을 흔들면서 허득필의 낯에 대고 삿대질을 했다.
    “에끼, 이 사람아, 그래 다 큰 딸을 시집보내지 않고 영영 붙들어두고 자네 대신 농사 질을 시키겠는가!”
     “아니, 그런 말은 아니요.”
    “그래, 딸을 준 대신 막걸리 값이라도 달라는 건가?”
     허득필은 씨무룩이 웃었다.
     “알만하오. 곤난한 살림살이에 기둥같이 믿던 맏딸을 그럴 수도 있지. 내 알아서 최구장에게 말해주지.”
     최구장은 김 구장에게서 혼사말을 갔다 온 과정이야기를 죽 듣고 나서 그 이튿날로 둘째아들 경인을 시켜 송아지 한 마리를 사돈 허득필에게 보내주었다.
    두 사돈집에서는 그해 섣달 초하루에 경숙과 옥실의 결혼을 올리기로 했다.
    최구장 일가는 경사가 났다.
    최구장의 아내 성단은 임신한 몸이 돼가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돋을 지경으로 바삐 돌았다. 그녀는 감자떡이나 빚어놓고 녹두 길금이나 깨 기름에 볶고 두부와 닭 알 지짐을 지쳐 상우에 올리고 닭이나 잡아 큰상에 올려놓았다. 막걸리를 많이 겨를 수 없어 성단은 경인과 경민을 전날 우시장 고을에 가서 막걸리나 몇 동이 사서 수레에 사서 실어오게 했다.
     원래 옛날 남부와 중부 조선에서는 결혼잔치를 사흘이나 했다. 결혼잔치 첫날에는 신랑이 백마를 타고 신부네 집에 가서 큰상을 받고 신부네 집에서 하루 밤 자고 이튿날에야 신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신부에게 큰상을 받게 한다. 그리고 사흘에는 신랑이 다시 신부를 데리고 신부네 집에 가서 가시부모에게 인사를 올려야 했다.
     그런데 함경북도에 들어온 후 살림살이도 힘들기에 많은 사람들은 결혼잔치를 간단히 하루에 다 치르는 것이 새로운 습관으로 돼버렸다.
    최구장과 허득필은 토론하고 여기 함경북도 새로운 습관대로 결혼식을 간단히 치르기로 했다.
    신랑 경숙은 백마를 타고 삼촌 최구철과 동생 경인을 비롯한 상빈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운주하 개울물을 지나 앞마을 신흥동의 허득필의 집에 이르렀다.
    마을 아낙네들은 울바자 박에 모여서서 손가락을 입귀에 물고  신랑이 허 씨 네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소곤거렸다. 신랑이 키도 훤칠한데다가 매부리코라던가 사내답다고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말고삐를 잡은 총각 경인이도 아주 잘났다고 혀를 둘렀다.
    양태머리를 무릎아래까지 내리 드리운 경인은 키도 경숙보다 더 크고 몸도 탄탄하고 날렵해보였다. 게다가 경인은 고을에 가서 태권도와 무술을 배워서 명절이거나 굿을 하는 날에는 칼춤을 아주 날래게 추어 운주동과 신흥동에는 물론 영월동에까지 인기 있는 총각이었다.
    경숙은 버선발로 가시집 마루를 딛고 안방에 들어가 큰상을 점잖게 받았다. 백두산 원시림에서 내려온 최구철은 경인 등 상빈들을 데리고 아주 틀스레 곁방에 들어가 상빈 상을 받았다. 경인은 수시로 앞뒤로 달아 다니면서 오촌 숙 최구철과 형님 경숙이 사이에 말을 전했다.
    점심때가 거의 될 무렵에야 신랑 경숙은 큰상을 물리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옥실과 함께 가시부모인 허득필 부부를 비롯한 가시집안 어른들에게 절을 올렸다.
    옥실이 고운 한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면서 가마에 오를 때 허득필은 서운해 멍해 서 있다가 바가지로 막걸리를 퍼서 죽 들이켰다.  그의 처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얼굴을 돌리었다.
    경숙은 백마에 올라타고 고삐를 잡은 경인과 함께 앞서고 그 뒤로 사인교를 탄 신부 허옥실이 뒤따랐다. 상빈들인 최구철은 적토마를 타고 그 뒤에서 옹위하면서 따랐다. 백마를 탄 신랑 경숙은 다른 때보다도 더 늠름해 보였다.
    앞마을에서 신랑신부의 행렬이 운주동에 나타나자 최구장을 비롯한 시집 식구들은 마을 어귀까지 달려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반겨 맞았다. 은녀는 육촌 오빠 경숙이가 결혼한다고 하자 아버지와 함께 며칠 전에 백두산 기슭에서 말을 타고 최구장 큰아버지 집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그는 육촌오빠 경숙이 장수처럼 백마를 타고 가마에 탄 신부를 데리고 늠름하게 오는 것을 보고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성칠은 최구철과 진달래가 왔다는 기별을 받고 마을 타고 백두산에서 잔치 집에까지 찾아 달려왔다. 최구철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진달래와 함께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가마에서 신부가 나오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신부에게 쏠렸다.
    “와- 정말 곱다.”
    “신흥동에 저렇게 고운 색시가 있었니?”
    “글쎄 말이야."
    "경숙이 색시 고와서 온 밤 자지 못하겠다.”
    바자굽과 구새 목에서 아낙네들이 수군거리는데 마을 처녀들은 부러운 눈길로 새 색시 옥실을 바라보았다.
    새 색시가 큰상을 받자 최구장은 한시름을 푹 놓았다…
    이듬해 음력 2월 2일에 옥실은 옥동자 봉인을 낳았다. 옥동자는 외까풀 눈에 얼굴은 자그마 해도 귀엽기만 했다.
    옥실은 포대기에 싼 봉인을 남편 경숙에게 안겨주었다.
    봉인을 안고 경숙은 너무 좋아서 매부리코를 실룩거렸다.  
     “어허, 그 놈이 보채기도 보챈다.”
     그는 애를 안고 서성거리다가 아버지에게 안겨주었다.
     최구장은 맏손자를 안고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애 볼에 뽀뽀를 해주면서 중얼거렸다.
     “봉인아, 이 놈아, 네 놈은 우리 개성 최씨 가문의 기둥 같은 14대장손이다. 어이구, 우리 14대 장손어른이 대단히 역빠르겠는데. 허허허.” 
     맏손자를 본 최구장은 이마의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단번에 쪽 펴지면서 내 천 자가 이전에 비해 얕아진듯했다.
     봉인이라는 이름은 최구장이 임시 지어 부른 애명이었다. 후에 최구장은 뿌리 근자 돌림으로 손자들의 이름을 짓기로 하고 봉인의 이름을 근형이라고 지었다.
     마당의 앙상한 나무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꼬리를 달싹거리며 근형이 태어난 것을 세상에 알리기라도 하듯이 깍 깍 깍 노래하고 있었다. 뻐꾸기가 화답이나 하듯 눈덮은 수림에서 뻐꾹뻐꾹 울었다. 까치와 뻐꾸기는 화음으로 봉인의 길고 긴 인생의 꿈을 미리 꾸고 있는가? 그 울음소리 특별히 애처롭고 비장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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