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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황혼 제3권(44) 철창 속 외나무다리 김장혁
2024년 09월 20일 11시 36분  조회:46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황혼 제3권

           김장혁
 
    44. 철창 속 외나무다리
 

   처량한 달빛이 비껴드는 구치소 철창 속에서 류려평은 침대에 들누워 제 좋은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내 나영이랑 종호랑 신고했기에 한국 경찰이나 법정이나 다 관대하게 처리할 거야.)
   드르릉.
   철문이 열렸다.
   “들어가세요.”
   여경 둘이 한 40대 초반의 녀성을 찰창 속에 밀어넣었다.
   “항의한다! 왜 감금해?!”
   그 녀성은 몸부림치며 목이 티지게 고함쳤다.
    여기 저기 철창 속에서 여자들의 머리가 되창문으로 쏙쏙 내밀었다. 구치소 감방 류려평을 비롯한 여죄수들은 모두 희한한 새 친구한테  호기심에 찬 눈길을 보냈다.
   “내 무슨 죄 있는가요? 밤중에 애를 혼자 빈 집에 두고 나왔는데요. 빨리 내보내 주세요. 제발! 내보내 주세요!”
   그 녀성은 발까지 동동 굴렀다.
   "당신들은 그래 애도 없는가요? 에미 심정 좀 리해해주세요."
   여경은 자물쇠를 철커덕 잠그면서 그 녀자를 제지시켰다.
   “좀 작작 떠들라고. 진짜 나영을 잡기 전엔 찍소리 치지 말고 여기 조용히 있으세요.”
   여경이 몸을 홱 돌리더니 감금실 문 밖을 나가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구두발 발자욱소리 디똥디똥 저쪽으로 점점 멀어져갔다.
   류려평은 갓 들어온 그 녀자를 여겨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녀는 하마트면 소리칠 번했다.
   (나영이?!)
   류려평은 깨고소해남을 어쩔 수 없었다.
   (저년 끝내 나포됐군. 잘코사니야.)
   사냥군이 자기 쏜 화살에 노루가 맞아 가슴에 뻘건 피를 콸콸 쏟으면서 쓰러지는 것을 보는 순간 설레는 심정이었다.
   (네년이 아무리 도망쳐도 내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해. 누가 쏜 화살에 맞아 여기까지 들어오게 된 걸 아니? 이 여래불이야. 녀넨이 아무리 최정호를 따라 잔재주를 부리면서 최혜영 국장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났지만 이 내 여래불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해. 해해. )
   류려평은 나영이 체포돼 철창 속에 들어오는 것을 보는 순간 자기도 찰창 속에 갇혀 있는 죄범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나영도 자기를 쏘아보는 류려평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년과 어쩜 철창 속 외나무다리에서 만났지? 참, 세상은 넓고도 졻구나. 세상은 요지경이야. 하필이면 리사장님 악처하고 여기서 만나다니? 너무나도 렵기적이야.)
     나영은 병원에서 만난 후에야 개 턱을 쳐들고 틀을 차리던 류려평 행장이 종호의 악처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그 이전에 정호한테서 은행장 류려평의 시시한 말을 두루 들은 적은 있었다. 류려평 은행장한테서 대부금을 내와야 문화국 청사와 전람관을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류려평 행장은 엉큼하게 대부금을 틀면서 얻어먹으려는 잡도리었다. 나영은 류려평과 피뜩 만난 적은 있지만 직접 단둘이 거래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최정호 국장은 대부금 때문에 전람관 부관장이란 녀자를 데리고 류려평을 찾아 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호는 휴계실에 나영을 앉혀놓고 행장실에 단독으로 들어가 대부금 문제를 의논했다. 그때 류려평은 나영을 종호네 문화국의 빛갈 좋은 개살구 아가씨로만 보았지 전람관 부관장이라는 것을 모르고 왼눈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류려평은 후에 류덕재한테서 그 녀가 최정호 국장의 애인 박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후에 풍문에 최정호 국장이 죄가 두려워 그 애인을 차고 일본으로 도망쳐 갔다는 말을 들었다.
    류려평은 처음 종호 병실에서 나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년이 최정호 국장 애인이 아닌가?’
   류려평이 아무리 퉁방울눈이 화등잔 돼가지고 나영을 쓸어봐도 이쁜 아가씨였다. 좀 수척해지긴 했지만 볼에 볼우물을 옴폭 파는 이쁜 나영을 보는 순간 가슴에서 질투심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나영이 병실에 자주 나타나 종호한테 각근하게 대할수록 별 잡생각이 다 떠올랐다.
   (이년이 종호한테도 애인질 했어? 개쌍년 잘 되는가 두고 보자.)
   류려평은 암암리레 이를 쁙쁙 갈았다.
   (인터폴 지명수배도주범 박나영, 넌 끝장이야.)
    류려평은 제 좋은 궁리를 했다.
    (난 저년을 인터폴에 고발했어. 난 경찰에 협조해 네년을 잡아 넣었으니깐. 관대처벌 받고. 허허허. 이거야 말로 일거량득 아닌가? 이제 살인미수죄로 한국에서 판결받으면 난 국내에도 돌아가지 않을 거야. 극상해 감옥살이 몇년 하겠지. 살인해도 5년 내지 10여년 판결받는 한국 아닌가?)
    류려평은 조소가 빛발치는 쌍까풀눈으로 나영을 훑어보며 속으로 뇌까렸다.
    (나영아, 넌 이제 중국에 인도돼 최정호 국장과 함께 부패분자로 엄벌받을 거야. 최국장과 일본으로 해 한국에 다 밀입국했어? 몇번이고 경찰들 손에서 빠져 도망쳤다고? 뭐? 모텔 화장실에서 배수관을 타고 도망쳐? 넌 진짜 전람관 관장인게 아니라 협객영화 속 날랜 도적놈이구나. ㅋㅋㅋ. 이젠 꼴 좋게 됐구나.)
    한편, 나영은 첫눈에 종호의 악처 류려평을 알아보고 몸서리쳤다. 그러나 내색을 나타내지 않고 아는 체 눈인사했다.
그러나 류려평은 눈을 흘기며 이불을 들쓰고 드러누웠다.
    “비좁은데 또 하나 들어왔네.”
    “무더운데 기차잖아!”
    여기저기서 나영한테 불평을 쏘아대며 두덜거렸다.
   처량한 달빛이 철창 속을 쓸쓸히 비추며 외로운 분위기를 더 해주었다.
   나영은 류려평이 들으라고 한어로 한마디 했다.
    “다 같은 처지에 우리 중국 사람끼리 서로 반목하지 말기오.”
   류려평은 콧웃음쳤다.
   “쳇!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어?”
   “여경들이 날 나영 언닌가고 오해해 잘 못 붙잡혀 왔소.”
   “흥!”
   류려평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년,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고 야옹 하지 말라. 껍찔을 홀딱 벗겨놔도 네년을 못 알아 볼 거 같아?)
   나영은 류려평의 흘기는 눈길을 보고 믿지 않겠으면 말라고 그럴듯하게 꾸며댔다.
   “우린 쌍둥이 자맨데요. 난 나영 언니 쌍둥이 여동생 박춘영인데요. 여경들은 아마 날 나영 언니로 잘 못 본 것 같아요.”
   류려평은 그 말을 곧이들을 리 만무했다.
   나영은 류려평이 자기를 인터폴에 고발한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종호나 지영이나, 려향이 고발했는가 의심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쌀쌀하게 대하는 류려평을 보는 순간 혹시 류려평이 인터폴에 고발하지 않았겠는가는 의심도 들기 시작하였다.
   "어째 이년을 생각하지 두지 않았어? 이년은 량심도 없는 악처 아닌가.)
   뒤따라 나영이 내뱉은 말은 말 속에 말이 있었다.
    “사람은 어디서나 여지를 둬야 하오. 너무 칼로 썩뚝 베버리듯 뒷길을 끊어놓진 말아야지. 안 그래요? 류행장.”
    류려평은 가시 돋힌 나영의 말에 화가 났다.
    “누가 너 같은 부패분자하고 한당을 해? 난 죽어도 너한테 사정할 일 없어. 슬개에 붙었다 염통에 붙었다하는 갈보년, 어째 리사장 엉덩이에 딱 들어붙어 따라다니지 못해? 어째 먹을 알이 쥐뿔도 없데?”
     그러나 류려평은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는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저년 혹시 자기를 고발한 거 아는가? 아님, 혹시 정호한테 대부금을 내주고 얻어먹은 일을 알고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류려평은 이불을 활 젖히고 나영한테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녀는 억지로 둥글둥글한 얼굴과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에 웃음을 게바르면서 될수록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우린 다 불쌍한 중국 녀자들이야. 서로 도우면서 어떻게 하나 이 감방에서 나가기오.”
     나영은 어처구니 없어 허무한 웃음을 지었다.
     “류행장이지요?”
     “그래.”
     “정호 국장이랑 잘 알겠구만요.”
     류려평은 퉁사발눈이 데꾼해졌다.
    “어? 그래. 왜?”
    나영은 류려평의 급변하는 표정을 쓸어보면서 바투 들이댔다.
     “이전에 나영 언니한테서 최정호 국장이나 류행장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류려평은 나영이 뭘 어디까지 아는가 궁금해났다.
    “뭘 말이오?”
    나영은 춘영인 척하면서 잘도 엮어나갔다.
    "전람관 재건 대부금 맡으러 나영언니 최국장과 함께 은행에 갔을 때 피뜩 본 것 같다던데요.”
    류려평은 손사래를 치면서 뒤로 물러앉았다.
    “아니, 난 나영인지 언닌지 본 기억도 안나오. 내 언제 나영의 여동생까지 다 봤겠소?”
    류려평은 나영의 입을 무섭게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 터질지 몰라 두려웠다.
    “글쎄요. 하기야 그날 대부금을 맡으러 최정호 국장이 혼자 은행장 사무실에 들어갔다더군요. 나영 언닌 은행장 소회의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던데요. 그러나 나영 언닌 대부금 내막을 다 알고 있는 거 같던데요.”
    류려평도 나영을 춘영으로 여기는 척하면서 대구했다.
    “뭔 소리냐? 난 재정정책을 어긴 적이 한번도 없소. 저네 언니네 전람관 재건 대부금은 정책대로 내준게요.”
    “픽!”
    나영은 코웃음쳤다.
    류려평은 그것이 더 두려웠다.
    (이년이 도대체 어느만큼 알고 있는 거야? 괜히 이 년을 고발했구나. 이제 이 개쌍년이 국내에 이송되면 날 다 적발할게 아닌가? 그럼, 아이고! 역은 새 방아간을 지나갔구나. 이 일을 어쩌나?)
    류려평은 전람관에 대부금을 내주고 아파트 한채를 얻어먹은 일이 마음에 걸렸다. 특히 나영이 잡혀 들어오는 바람에 자기 꼬리가 반쯤 드러난 것 같아 더욱 당황해났다.
    류려평은 이젠 나영을 고발해 감옥에 처넣은 것이 후회됐다.
    (진짜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깐 격이 아닌가? 이 일 어쩌는가?)
     그때 나영이 코웃음쳤다.
    “나영 언닌 류행장 덕분에 대부금을 내서 전람관을 지었다고 감지덕지해 합데다.  그런데 최정호 국장이 잡혀 들어가는 바람에 일이 복잡해질 거 같다던데요… 참.”
     순간, 류려평은 갑자기 가슴에서 망똘짝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당장에서 눈 앞이 깜깜해나 구치소 마루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나영은 한쪽 구석에서 류려평의 그 얼빠진 모양을 보고 깨고소해 조개턱을 쳐들고 깔깔깔 웃어댔다.
   다리 부러진 노루 한데 모인다고. ㅋㅋ.
   철창 속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그녀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외나무다리는 진작 그녀들의 운명의 목주래를 틀어쥐고 이를 뻑뻑 간다.  염라전 죽음의 사자는 죽음을 재촉하는 북소리 둥둥 두드린다. 刽子手는 죽음의 콧노래 흥얼거리며 숫돌에 칼을 썩썩 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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