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려평은 소낙비 댓살처럼 억수로 쏟아지는 철창 밖을 내다보면서 참회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중얼거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후회막급이야. 류행장은 숫처녀인 나를 강간해 임신시켜 놓았잖아. 그러고도 모자라 출장을 미끼로 무인지경 절벽에서 어쩜 날 또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류덕재와 그런 일 없었더라도 아빠는 날 종호한테 시집보내진 않았을 건데. 날마다 배가 불러오르니깐. 어떻게 하겠는가? 류덕재는 색시 있는 나그넨데. 그래서 부랴부랴 종호와 결혼시킨게지. 다행히 종호는 녀색에 어두워서 내 배 안의 애가 자기 애 아니라는 걸 여직껏 몰랐지...)
류려평은 감방 맹봉당에 맥없이 스르르 들어누었다. 차거운 널장판이 잔등을 시원하게 자극한다. 별로 저금소 주임 시절에 의자에 틀스레 잔등을 기댄 감각이 아닌가.
류려평이 저금소 주임이 돼 며칠도 안돼 류다재 행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동생, 래일 나와 함께 성 소재지 총행에 회의하러 가야겠소. 갈만 하오?”
려평은 다른 직원들의 눈치를 핼끔 곁눈질해보더니 주임실에 들어가서 나직이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이튿날 류려평은 류다재가 모는 도요다찌프에 앉아 성소재지로 회의하러 달려갔다.
그런데 밤중에 돌아오는 길에서 뜻밖에 사고가 생길줄이야.
(그번 사고도 내 운명이겠지.)
이때 감방 밖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었다. 류려평이 바깥을 내다보니 먹장구름이 뒤덮여왔다.
꽈르릉, 꽝꽝!
요란한 우뢰소리에 뒤이어 대살 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었다. 드디어 감방 바깥에서 숱한 실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그날도 저렇게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댔지.”
류려평은 감방에 누어 중얼거리었다.
그녀는 그때 길에서 생긴 사고를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었다.
30여년 전에는 교통이 불편하기로 말이 아니었다. 류다재는 귀로에 들어서자 밤도와 소낙비를 무릅쓰고 도요다찌프를 쏜살같이 몰았다.
그런데 A현 경내 열두개나 되는 굽인돌이에서 사고 날줄이야. 급한 내리막 굽인돌이에서 쏜살같이 달리던 도요다찌프가낭떠러지 쪽으로 짓쳐나갔다. 차 속도가 빠른데다가 빗길에 미처 굽인돌이를 돌지 못했다.
“앗!”
꽝!
찌프는 육중한 소나무에 처박히어 차 대가리는 옥창이 됐다. 차가 소나무에 걸리었기에 다행히도 백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빠, 겁나 죽겠소.”
“어디에 다친데 없소?”
류려평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고 어둑시그레한 차 안에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겁나 마오.”
류다재가 류려평을 안정시키고 나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단위에 차를 가지고 오라고 알려야지.”
그러나 핸드폰을 꺼내 아무리 눌러도 신호가 없었다.
려평의 핸드폰도 무인지경 산골에서 신호가 하나도 없었다. 황차 핸드폰 둘 다 비물에 젖어 있었다.
류다재는 핸드폰을 훌 던지고 차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그러나 차문이 찌그러져 열리지 않았다. 류다재는 황급히 운전좌석 옆의 공구상자 뚜껑을 열고 자그마한 손전지와 망치를 꺼냈다. 그는 손전지를 꺼내 켜 들고 망치로 차 유리창을 땅땅 두드려 깼다.
유리 차창이 깨지면서 비바람이 차 안에 몰려들어왔다.
류다재는 깨진 차문 구멍으로 간신히 기어나갔다. 뒤이어 류려평도 따라 기어나갔다. 류다재는 차창 밖에서 류려평의 허리를 껴안아 들면서 기어나오게 거들어주었다.
그들은 아름드리소나무에 걸린 차와 발 밑의 백길 낭떠러지를 돌아보고 머리 끼 곤두설 지경이었다.
그들은 손잡고 서로 부축하면서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를 무릅쓰고 굽인돌이길에 기어올라갔다. 지나가는 차라도 만나면 구해달라고 지원을 청원할 판이었다. 그러나 한식경이나 기다려도 소낙비 쏟아지는 밤중인지라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또 초조한 시간이 소낙비 속에서 흘러 지나갔다. 류다재는 자기 양복을 벗어 류려평의 머리에 씌워주고나서 려평의 허리를 껴안고 자기 몸으로 비바람을 막아주면서 차를 기다리었다.
초조한 시간이 흘러지나갔다. 반시간, 한식경이 흘러지나갔다.
그때 저쪽에서 달려오는 헤드라이트가 보이었다.
“차가 와요!”
“이젠 살았구나.”
헤드라이트 불빛이 굽인돌이를 에돌아 나타났다.
류다재는 두 손을 입가에 모아대고 목청껏 고함쳤다.
“사람 살려주십시오! 교통사고 났습니다!”
헤드라이트는 멈춰 서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려줘요!”
급해맞은 류려평은 큰길에 뛰어나가 발까지 동동 구르며 손을 마구 저으면서 고함쳤다. 어떤 운전수들은 여자가 구원을 요청하면 차를 멈추기도 했다.
그러나 그 화물차는 소낙비 속에서 멈춰 서지 않고 무정하게 굽인돌이를 에돌아 지나가 버리었다.
(누가 소낙비 쏟아져 내리는 밤중에 갈길을 가지 않고 도와주겠는가!)
류려평은 멀어져가는 화물차를 바라보면서 절망에 찬 나머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류다재는 하늘을 쳐다보아도 인차 소낙비가 끊을 것 같지 않았다.
“이러다가 얼어죽겠어. 가자, 차 안에 돌아가 소낙비를 끊고 보자!”
그러나 류려평은 가려고 하지 않았다.
“차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죽자고?”
“소나무에 걸려서 절대 떨어지지 않아. 가자. 비를 끊고 보자.”
류려평은 함참 뻗치다가 별 수 없었다. 사방 십여킬로메터 주위에 전등불이나 인적이 보이지 않는 사위를, 공포에 찬 눈길로 둘러보았다. 그녀는 별수 없이 류다재를 따라 소나무에 처박힌 차 쪽으로 조심조심 내려갔다.
그들 둘은 소낙비 쏟아지고 비바람이 미친듯이 불어치는 밤중에 무인지경 령길에서 차안이란 비좁은 공간에 갇힌 신세로 돼버리었다.
“그날 밤중에 차사고만 나지 않았어도 나는 그런 실수를 치지 않았을지도 몰라. 호-”
류려평은 그날 밤 일어난 일을 회상하기도 싫어 감방 침대에 올라가 스르르 누워 눈을 딱 감아버리었다. 그러나 그때 일이 눈앞에 자꾸 삼삼거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깨진 차창으로 비바람이 불어쳐 들어와 그들의 몸은 흠씬 젖었다. 류려평은 추워서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고 이빨마저 마주 쪼아대며 신음소리마저 냈다.
류다재는 류려평을 꽉 껴안아주었다. 순간 그들 둘은 추위는 싹다 잊어버리고 따듯한 온기를 주고 받으며 따스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류려평은 자기 얼굴을 길죽한 말상에 사르르 가져다댔다. 그러자 류다재의 손은 자연스레 류려평의 허리를 껴안고 어루쓸다가 구렝이처럼 점무덤 쪽으로 스르르 기어 올라갔다.
류려평은 얼굴을 훌 뗐다.
“오빠, 이러지 마세요. 우린 오누이인데요.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류행장?”
류다재는 코웃음치었다.
“흥! 오누이면 어쩌구. 오빠는 이쁜 널 꼬리빵즈한테 준게 아깝다, 아까워! 진짜 함박꽃이 둼 무지에 처박힌 게야.”
류다재는 스리슬쩍 류려평 젖무덤을 탐나게 끌어안으며 횡설수설했다.
“그래, 계속 콧구멍만한 셋집에서 얼어 죽을 작정이냐? 오빠가 어찌 젤 사랑하는 여동생이 고생하는 걸 보고 가만 놔둘 수 있겠니? 귀공주야, 황차 우린 촌수도 없는 종친이잖아? 오라. 소낙비 쏟아지는데 네 몸을 따뜻하게 덥혀 줄게.”
류다재는 조수석을 뒤로 훌 눕혔다. 뒤이어 멍해 앉아 있는 류려평의 허리를 껴안아 뒤로 훌 눕히어 놓았다.
“이러지 마세요. 난 유부남인데요.”
류다재는 길죽한 말상을 류려평의 보름달 같은 얼굴에 갖다대면서 중얼거리었다.
“아무 만족도 주지 못하는 꼬리빵즈도 남편이냐? 넌 시집 잘 못 갔어. 그런 가난뱅이 선비를 만나서 세집살이 밖에 차례질게 있어? 내 말을 고분고분 들어라. 모든 걸 다 만족시켜 주마.”
류려평은 자기 치마를 쳐들고 팬티를 내리는 류다재의 구렁이 같은 손을 더 밀칠 힘이 없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길죽한 말상을 맞잡아 쳐들고 올려다보면서 정색해 물었다.
“오빠, 진짜 날 구해 줄 거죠?”
“그래. 근심말라. 래일 새 아파트 척 사 줄게. 신물나는 세집살이를 그만두고 새 집에서 살아 봐라. 얼마나 살맛이 나는가.”
류다재는 선선히 대답했다.
류려평은 말상을 붙잡았던 두 손을 맥없이 풀더니 눈을 스르르 감고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조개턱의 꺼슬꺼슬한 수염이 볼을 아프게 찌르고 점점 내려와 야들야들한 목과 가슴을 찌른다. 나중에 까실까실한 감이 아랫배로, 로 기어 내려온다.
한고조 후대, 류씨네 집안 자존심과 인륜이 페허로 무너져가는 순간이었다.
류려평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찡그리면서 속으로 울부짖었다.
(류씨 집안 촌수 개판이 되는 판이구나.)
류려평은 후에 신물나는 세집살이를 그만두고 류다재가 사준 새 아파트에 이사해가서 살게 됐다. 하지만 모든 정신기둥이 무너지고 썩은 불륜에서 더러운 싹이 싹트기 시작했다.
뜨끈뜨끈한 열기가 하신으로 기어들어와 꿈틀거린다. 비바람에 젖어 떨던 두 몸은 언제 추웠는가 싶이 화끈하끈해난다. 비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오는 차 안에서는 숨소리 거칠어져간다.
“살살 흔들어요. 차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다 죽겠어요.”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합선된 눈앞에 별찌가 탁탁 튕기고 혼이 아찔해나며 하늘에 붕 뜨는 기분이다. 비바람이 불어들어오는 차 안에서는 거친 숨소리에 이어 흐느낌소리 간간히 들려왔다…
오늘 밤중에도 감방 바깥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소낙비가 대야로 퍼붓듯이 창창 쏟아진다. 소낙비가 쏟아지던 그날 밤은 어째 그렇게 지지리 길었을가.
류려평은 끝없는 악몽 같은 추억에 빠져 이를 꼭 옥물고 간혹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려향의 질책하는 소리 들리는 상 싶었다.
“한고조 보기 부끄럽지도 않는가?!”
류려평은 감방에서 창피해 머리를 푹 떨어뜨리었다.
그녀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 그것도 내 기구한 팔자겠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이겠지.”
빛을 잃은 쌍까풀눈에서는 참회의 피눈물을 하염없이 줄줄 흘러 내리었다. 너부죽한 볼은 패륜의 눈물로 더럽게 피범벅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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