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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4) 통나무의 비밀
2024년 05월 19일 11시 27분  조회:46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6장 포수대


          3. 통나무 벌레의 비밀
 
 
 
      토끼 꼬리만한 늦겨울의 해는 어느새 수림 속의 엄동설한에 밀리어 맥없이 하얀 산둔덕을 넘어가고 하얀 눈이 뒤덮인 수림에 어둠의 장막이 무섭게 어둑어둑 내리 드리었다.
      일본 놈들은 성칠의 사냥총을 빼앗으러 갔다가 독립군의 습격을 받아 동료 몇을 잃었다. 그 놈들은 림산파출소 경찰까지 다 동원해 수림을 서캐 훑듯 했지만 독립군의 그림자도 찾지 못하고 닭 쫓던 개 신세로 됐다. 다만 동서로 갈라진 어지러운 말발자국 밖에 보지 못했다.
     일본 놈들은 보병으로 기병을 쫓아 붙잡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놈들은 공포에 찬 어둠이 깃들자 매복습격이라도 받을까봐 황급히 꼬리 빳빳해 림산파출소로 내려왔다.
     한편 진달래와 성칠은 독립군 대원들과 함께 백마를 타고 일본 놈들을 수림 속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역습을 가하려고 했다. 그런데 교활한 일본 놈들이 수림 속에서 철거하는 바람에 성사하지 못했다.
    성칠은 진달래를 보고 말했다.
    “최 부소대장, 부모형제들이 어떻게 됐는지 영월동에 가 봐야겠네.”
    진달래는 어둠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성칠을 쳐다보면서 나직이 말했다.
    “원수는 꼭 갚아야 해요. 그러나 오늘 영월동에 내려가선 안돼요.  위험해오. 놈들은 꼭 오빠네 집에 그물을 치고 뛰어들기를 기다릴 거요.”
    진달래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던 성칠은 옆에 앉아있는 검둥이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그럼 다른 수를 쓰지. 검둥이를 집에 보내겠소. 검둥이가 무사한걸 보면 내가 무사한 걸 짐작할 거요.”
    성칠은 무릎을 꺾으면서 쪼그리고 앉더니 검둥이의 대가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중얼거렸다.
   “검둥아, 네가 집에 가라.”
    검둥이는 알아들었다 듯이 낑낑거리면서 꼬리를 휘휘 내저었다. 검둥이는 눈이 시허옇게 뒤덮인 수림 속으로 사라졌다.
    “최 부소대장, 영월동에는 며칠 후에 가기로 하구 운주동에 가 봐야겠소.”
   진달래는 성칠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말했다.
    “오빠, ‘최 소대장’, ‘최 소대장’ 하지 말고 ‘진달래야’ 하세요. 종전처럼 야, 자 하세요. 운주동엔 뭘 하려고요?”
    성칠은 진달래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목소리를 낮췄다.
    “ 넌 부소대장이야. 숱한 사람들 앞에서 야, 자, 해서야 되겠니?”
   “괜찮아요. 운주동에 있는 동생들과 조카들을 만나려고 그래요?”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아버지를 면회하러 갔을 때 아버지는 기준한테 전하라더라. ‘통나무 옹이나 벌레를 조심하라구.’ 목수인 기준은 그 말귀를 알아들었을 거야.”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오빠, 나도 운주동에 갈래요. 큰아버지도 만나 보고.” 
   “최구장을 만나러?”
   “예, 그집 둘째오빠는 검술에도 능하니까. 우리 독립군에 합세하자고 말해야겠어요.”
    “네가 어떻게 가겠니? 그곳은 위험해.”
    성칠의 말에 진달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누구도 아녀자가 이런 일을 하는 걸 모를 거요. 우리 오누이 부부처럼 가장하고 밤에 운주동에 들어가면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성칠은 그제야 한숨을 후 내쉬었다.
    진달래는 독립군 대원들과 함께 말을 타고 어둠을 타 운주동으로 가만히 달려갔다.
    독립군 대원들은 말에서 내려 마을 근처 버들방천에 숨어 대기하게 하고 성칠과 진달래가 운주동으로 스적스적 들어갔다.
    제일 동쪽어구에 있는 최구장네 집에는 진달래가 대원 한명만 데리고 들어갔다. 거의 동시에 성칠은 서쪽에 자리 잡은 기준네 집 앞에 이르렀다. 성칠은 사위를 둘러보고 나서 독립군 대원을 구새목에서 보초를 서게 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초저녁이지만 성칠이가 사냥총을 들고 웃방에 들어서자 기준은 적이 놀라면서 우쭐 일어나 문안했다.
    “형님, 집에 무슨 일이 생겼소?”
     제수 최사련이 난지 몇 달 안 되는 상순을 안고 위방에 올라와 인사했다.
    성칠은 제수가 올린 술상에 마주 앉자마자 막걸리사발을 들어 마시면서 그간 우시장과 영월동에서 있은 일을 쭉 말했다.
   기준은 원래 아버지보다도 성질이 우락부락했다. 그는 맏형의 말을 듣고 펄펄 뛰었다.
   “작두날로 찍어 죽일 놈들, 언감 아버지를 가두고서도 형님께도 손을 댄단 말이요? 개놈새끼들이 사냥도 하지 못하게 하면 입에 거미줄을 치라오?”
   성칠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뒤이어 성칠은 기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엊그저께 면회하러 갔을 때 아버지는 ‘통나무의 옹이나 벌레를 주의해라.’고 하더라잖았니? 감옥이여서 말씀하기 불편해 암시한 말씀 같구나. 넌 목수니까 전번에 내 아버지 말씀 전했는데 뭘 암시했는지 알았지?”
    “통나무 옹이나 벌레를 주의하라? 알긴 알았소.”
    기준은 담배를 말아 뻑뻑 빨면서 아버지 말씀을 되새기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한참 후 기준은 머리를 들어 성칠을 바라보면서 무겁게 입을 떼였다.
    “그 말을 그대로 풀어보면 통나무의 옹이나 벌레를 주의해 경찰국 사무 청사가 무너지지 말게 하라는 말씀인 거 같소. 자칫 탄로나면 아버지처럼 해를 입을 수도 있지.”
    “음.”
    기준은 마른기침을 하며 뒷말을 이었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가 일본 놈들 사무 청사인지 개나발인지 잘 되기를 바라겠소?”
    기준은 형의 귀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 귀속 말을 했다.
    “이전에 목수 간에서 일할 때두 아버지는 통나무 벌레를 파서 물초롱에 던지면서 늘 이랬소.  ‘이런 벌레 먹은 통나무로 집을 지어서 몇해 가겠는가?’ 이렇게 말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소. 그 말씀을 연계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분명‘통나무 벌레를 기둥에 박아 넣어 일본 놈들 사무 청사가 무너지게 하라.’고 귀띔한 것 같소.”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그럼 옹이는 뭐냐?”
   기준은 목수로서 짐작되는바가 있었다.
   “옹이 많은 나무를 쓰면 눈에 날게고. 주의는 해야지. 그러나 우리에게 기둥이나 대들보에 옹이 대신 쐐기를 묘하게 박아 넣어 무너지게 하라는 게 같소. 쐐기 하나만 대들보에 박으면 천정무게가 한쪽으로 기울어 몇 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번듯한 청사도 무너질게 아니요?”
    성칠은 연신 끄덕이었다.
    "오, 거 참 묘수로구나.”  
   뒤이어 그는 기준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쑤군거렸다.
    기준은 연신 개탄했다.
    “옳소, 옳소, 알았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근심하지 마오.”
    "아버지 말씀 알아들었으면 이젠 늦추지 말구 경찰국청사를 와르르 무너지게 만들어라."
    "알았소."
    일이 이쯤 되자 성칠은 이 추운 겨울에 바깥에 말을 쥐고 서있을 독립군 대원들이 근심돼 바깥에 나갔다.
   그는 보초를 서는 대원더러 가서 최 소대장에게 운주하 버들방천에 숨어있는 독립군 대원들을 집에 데려다 자게 하는 게 어떻겠는가고 물어보라고 부탁했다.
    성칠이 집에 재차 들어간 후 대원은 곧추 마을 동쪽의 최구장의 집으로 달려갔다.
    바깥에는 독립군 대원 바우돌이 망을 보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진달래가 한창 큰아버지 최구장과 맏오빠 경숙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우돌이 바깥에서 들어와 연통하자 진달래는 바깥에 나갔다.
  그는 성칠이 쪽에서 온 독립군 대원의 말을 듣고 좀 생각하다가 말했다.
   “성칠 오빠는 쫓기는 몸이어서 동생네 집에 들어가 자긴 틀렸어요. 오히려 여기 우리 큰아버지네 집이 더 편리해요. 내 이제 들어가 큰아버지한테 사냥꾼 친구들이라고 말해보고 여기 와서 하루 밤 묵어 가자요.”
    진달래가 집 안에 들어갔다가 인차 나왔다.
   “대원들에게 말을 끌고 오라고 하세요.”
    “말까지 끌어오면 혹시 일본 헌병 놈들이나 오면 의심을 받지 않겠소?”
   “괜찮아요. 큰아버지는 아직 그 놈들 눈에 나지 않았으니까요.”
   진달래는 성칠까지 불러다가 독립군 대원들과 함께 최구장의 집에서 하루 밤 묵으면서 푹 쉬었다.
   이튿날 장국까지 맛있게 마시고 진달래는 떠나게 됐다.
   이른 아침에 최구장은 뒷간에 가다가 총을 잡고 망을 서며 숱한 백마를 지키는 바우돌을 보고 심상치 않은 감을 느꼈다.
   최구장은 떠나가려는 진달래를 한쪽으로 조용히 불러 귀속 말로 물었다.
   “너희들은 혹시 일본 놈들을 사냥하는 거 아니냐?”
   진달래는 한기에 언 철색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최구장은 조카에게 마음먹고 귀띔해주었다.
   “옛 성인들이 가로사되 ‘자기를 억제하고 례에 맞게 행동하라.’고 하였느니라. 뭐나 중용을 지키는 게 좋아. 일본 사람들이 무력으로    우리를 짓밟으니 좋으냐? 뭐나 무력으로 해결하자고 말아라. 남의 피를 보면 자기도 피를 흘려야 하느니라. 스물도 넘은 계집애 시집은 가지 않고 엉뚱한 일에 삐칠게 뭐냐?”
   진달래는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귀띔에 고마워요. 너무 근심하지 마세요.”
   최구장은 백마를 타고 멀어져가는 진달래를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달려가는 백마들의 말발굽소리 요란하고 그 뒤로 하얀 눈꽃이 새뽀얗게 흩날렸다. 눈 덮인 기운봉 저쪽으로 백마들이 자그마한 하얀 점들로 아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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