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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1) 면회 김장혁
2024년 05월 10일 11시 20분  조회:59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반항

                     9. 면회
 
 
 
      성칠은 눈보라를 무릅쓰고 우시장 감옥 부근에 이르렀다.
     가시철조망을 늘인 높다란 벽돌담장 정면에 승냥이 아가리처럼 궁형대문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오가는 행인들을 노려보고 있다. 궁형대문 양옆에 일본 헌병 두 놈이 시퍼런 총칼을 비껴 들고  이리 눈깔을 희번뜩거리며 보초 서고 있었다. 일종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아가리를 쩍 벌린 궁형대문에서 불어쳐 온 시내에 살기를 풍겼다.
     성칠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왜놈 보초병에게 다가갔다.
    철꺽!
    왜놈 보초병이 총창 열십자로 딱 막아섰다.
    “바까요로(바보 놈)! 무슨 일이야?”
     “아버지를 면회하러 왔수다.”
     일본헌병은 사냥총부터 빼앗아내고 전화를 걸어 통역을 불렀다.
    류강철이 안에서 뛰어나왔다.
    “웬 일인가?"
   그는 억대우 같은 성칠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냥총을 들고 감옥에 찾아오다니? 정신 있는가?”
   “아버지를 면회하러 왔소. 만나게 해주오.”
   “누구요?”
   “운주동 김성칠이오. 김병완, 그 분은 내 아버님이오.”
   류강철은 한걸음 물러서면서 알은 체 했다.
   “아, 힘장사 병완의 맏아들이구먼. 사냥을 잘 한다지? 그런데 소개신이 있어야 면회할 수 있소.”
    “아니, 아버지를 만나보는데 무슨 개떡 같은 소개신이요?”
    “이보, 말조심하라고. 어디라고 큰소리를 땅땅 쳐? 박 면장을 찾아가서 소개 신을 떼 가지고 오오.”
    성칠은 류강철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아버지를 만나려는데 왜 까다롭게 구는가?” 
   류강철은 일본 헌병 모자를 꾹 눌러쓰면서 딱 잡아뗐다.
   “이 양반, 지금 무슨 세월이라고 입술만 나불거리면서 그런 청 들어? 당신 아버진 대역죄인과 같으니까 쉽게 만날 순 없어.”
   류강철은 불난 집에서 한턱 얻어먹으려다가 안되니 휭 하니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다가 호랑이 같은 병완 부자를 잘못 건드렸다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목이 선뜩한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 성칠한테 힐끔 곁눈질해보더니 길 건너쪽을 턱짓했다.
    “저길 보오.  박면장이 헌병사무소에 들어가는구먼. 소개 신을 떼 가지고 오게나.”
    성칠은 게딱지 같은 간판이 걸린 헌병사무소로 조끼를 입은 양반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달리는 인력거를 피해 길을 달려 건너가 헌병사무소 철창문을 삐꺽 열고 들어갔다.
    사무소 복판 사무 상에는 검은 테 안경을 낀 일본 헌병 소대장 나까노라가 앉아 있었고 맞은 켠 걸상에는 금방 들어간 그 조끼 입은 호리호리한 자가 앉아 있었다.
    사무 상 옆에는 누런 사냥개 누렁이가 귀를 벌쭉거리며 웅크리고 앉아 이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성칠은 단도직입으로 박성은 면장에게 청을 들었다.
   “저, 아버지를 면회하러 왔는데 소개 신을 떼 줍소.”
  “당신은 누군가?”
   박성은 면장이 성칠의 아래 위를 훑어보면서 물었다.
   성칠은 한걸음 나섰다.
   “영월동의 김병완은 저의 아버님입니다. 보초병들이 소개신이 있어야 면회할 수 있답니다.” 
   박성은 면장은 나까노라 소대장의 눈치를 흘끔 쳐다보더니 성칠에게 낯을 돌렸다.
   “당신의 아버진 참말 영웅호걸이오. 만나려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 지 참말 귀찮소. 당신 아버진 중죄범이어서 만날 수 없소. 언감 한길수 총도감의 눈알까지 빼놓다니. 참, 일본 어른들이 펄펄 뛰는데 낸들 어떻게 소개 신을 뗀단 말이요?”
    성칠이 뭐라고 자꾸 사정하자 나까노라 소대장은 눈알을 부라리면서 고함쳤다.
    “나갓!”
    사냥개도 귀를 쫑긋 세우더니 불티가 뚝뚝 떨어지는 눈깔로 성칠을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성칠은 하는 수 없이 헌병사무소에서 나왔다.
    (아버지를 만나는 일도 이렇게 힘들게 됐는가? 완전히 일본사람들의 세상으로 됐구나. 일본 놈들이 대대가릴 끄덕이잖으면 아버지도 만날 수 없게 됐군. 흥!)
    그는 맥없이 가게방 기둥에 손을 짚고 기대섰다.
    길 건너 저쪽에 철조망을 두른 높다란 토성이 보였다. 저 토성안의 어느 감방에서 아버지는 고문을 당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가슴을 칼로 저며 내는 것 같았다. 날개라도 달렸으면 높다란 토성을 훨훨 날아 넘어 들어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련만.
    “얘, 잘 만났다.”
    성칠이 머리를 돌려보니 큰아버지 김병권이었다.
    “큰아버지가 어떻게 되여 여기 왔습니까?”
   병권은 흰 수염을 흩날리면서 성칠을 잡아끌었다.
   “먼저 저기 들어가 얘기하자.”
    성칠은 큰아버지를 따라 죽 방에 들어갔다. 그들은 죽을 한 사발씩 청해 후루룩후루룩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아버지를 만나 봤니?”
    성칠이 한숨을 후 내쉬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음. 전번에 관준이하구 함께 동생을 만나자구 왔댔다."
   그는 주위를 휘둘러보더니 나직이 귓속말을 했다.
    "맨 입으로 말해선 안 돼.”
   뒤이어 허리에서 보자기를 풀어내더니 종이 한 장과 산삼 몇 뿌리를 꺼냈다.
    “치마봉에서 캔 산삼이야. 헌병사무소 소대장에게 몇 뿌리 가져다가 주었더니 이 소개신을 써주더구나. 이걸 가지고 가서 만나자.”
   성칠이 뻘건 도장이 박힌 종이 장을 들여다보니 닭발로 오려놓은 것 같은 일어로 써 놓아서 통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붓글씨로 써놓은 가운데 "中" 자에 들 "野" 자만은 알아 볼 수 있었다. 분명 나까노라이찌로의 친필소개신이였다.
    “소개신이면 면회를 시켜주겠지.”
    “큰아버지, 가 보깁소.”
   병권과 성칠은 양치질할 새도 없이 죽집에서 나왔다.
   그들은 총총히 길을 건너 왜놈 보초병들이 지키는 감옥 대문 어귀에 다시 조심스레 다가갔다.
     왜놈 보초병들도 면목이 있는지라 처음처럼 떽떽거리지 않았다.
    그 놈들은 총창으로 가로 막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쇼까이신!”
   성칠은 소개신을 꺼내 건네었다.
   보초병 놈은 소개 신을 들여다보았다.
   "하이레(들어갓)!"
   그 놈들은 총창을 거두고 양옆으로 물러섰다.
   병관이네 대문 안에 들어서니 벌건 벽돌로 지은 감옥이 나섰다. 문어귀에서 지키는 보초병 놈들에게 소개 신을 내밀자 받아 보더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길을 피해주었다.
    복도에 들어서니 옆의 창문으로 안경을 낀 헌병이 오라고 손짓했다. 안경쟁이 헌병은 소개 신을 들여다보더니 뜻밖에 도리머리 질을 하면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때 병권이 보자기에서 나머지 인삼 몇 뿌리를 꺼내 안경쟁이에게 들이밀었다.
    안경쟁이는 산삼 뿌리를 쥐여 코에 대고 코개처럼 냄새를 맡았다. 대번에 산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 요로씨이, 죠센(조선)산삼!”
   그 자는 병권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아니다까?” 하고 물었다.
   병권은 “아니라니요. 산삼 맞은데요. 웬 말입둥? 산삼 다니까.” 하고 억울해했다.
   “아니다까(형님인가)?”
    “산삼이 맞다니까. 이 얀반이, 참.”
    그때 통역 류강철이 거들먹거리면서 다가왔다.
    “아니, 형내 노할어버지 아닙니까? 헌병선생은 ‘산삼이 아니다’는 게 아니라 ‘형님인가?’고 물었습구마.”
    “오,  그런 걸 난 또. 자꾸 ‘아니다까’ 하니까. 오해했지. 당연히 내가 여기 갇힌 동생을 만나러 온 형이지.”
   류강철은 일본 헌병과 일본말로 뭐라고 쑤군거리었다.
   안경쟁이가 뭐라고 소개신에 쓱쓱 써서 눌러두고 손을 내밀었다.
   “면회 비로 3원을 냈쏘까.”
   류강철이 옆에서 대신 말했다.
   성칠은 옆전을 한줌 쥐여 세여보고 잘라당 사무 상우에 내놓았다. 그러자 안경쟁이는 옆전을 하나하나 세여 사무 상 안에 쓸어 넣고 다른 헌병을 불러 뭐라고 말하더니 병권이와 성칠을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류강철은 병권과 성칠이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 헌병을 따라 갑소. 살림살이나 말하고 다른 말을 하지 맙소. 그러지 않으면 시끄러워집니다.” 
   류강철은 형내와 함께 상우남면 운주동 최구장의 서당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일본 말을 배워가지고 일본 군을 따라 조선에 돌아와 헌병대 통역을 맡고 있었다.
    성칠은 헌병을 따라 자그마한 면회실로 들어갔다.
    면회실에는 쇠살창을 단 자그마한 창문이 있었다. 이윽고 건너 방에서 무거운 쇠고랑이 소리가 절그럭절그럭 들리었다. 병권과 성칠은 후닥닥 창문 앞에 마주섰다. 이윽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아래 수척하고 상처투성인 얼굴에 수염이 더부룩한 병완이 나타났다.
    “아버지!”
    “성칠아!”
     병완은 성칠과 병권을 보자 조금 웃음기를 띠면서도 목이 말라서인지 쉬여서인지 온전히 말을 하지 못했다.
    “형님도 왔소?”
    “응. 고생이 많았겠구나.”
    병완은 형을 보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성칠에게 머리를 돌렸다.
    “집 식구들은 무사하냐?”
     “예. 근심 맙소.”
    “마을은?”
    “은녀는 길수네 집에 되들어가고. 벌목한 삯전은 줄 거 같지 않습니다.”
    “오, 그래?”
    병권은 동생의 손을 잡고 부탁했다.
    “동생, 이젠 쉰 고개도 넘었는데 싸움질을 그만 두게나. 한영감과 싸움질해 봤자 먹을 알이 있니?"
    그러나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뒤이어 그는 피진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더니 성칠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말소리를 낮추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기준이 보고 통나무 옹이나 벌레를 조심하라고 해라.”
    “통나무 옹이나 벌레?”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기준이나 창준은 목수니깐. 알아들을 거야."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아버지는 언제쯤 나오게 됨둥?” 
   병완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강철이가 그러던데 무기징역일수도 있다더구나.”
   “이 일을 어쩌는가? 거 한길수의 작간이겠다.”
    병권의 말에 바깥에서 엿듣던 일본 앞잡이경찰 똘만이 문을 떼고 들어와 소리쳤다.
    “면회 중지!”
    통통하게 생긴 똘만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병권과 성칠을 잡아 문 밖으로 끌었다.
    성칠은 똘만의 손을 홱 뿌리치면서 병완에게 머리를 돌렸다.
    “아버지, 다시 만나는 날까지 편안히 계십소.”
    병완은 굵직한 쇠고랑이를 채운 팔을 들어 주먹을 으스러지게 꽉 틀어쥐어 보였다. 성칠도 주먹을 쳐들어 보였다.
   병권도 병완을 돌아보고 소리쳤다.
   “다신 싸우지 말구 몸 조심하게.”
   병권과 성칠은 일각도 만나보지 못하고 면회실에서 쫓겨 나왔다. 감옥 대문을 나오면서야 성칠은 아버지께 대접하려고 보자기에 싸 가지고 간 기름떡을 잊고 주지 못하고 나온 것을 알고 마음이 아팠다. 그때 때마침 강철이가 따라 나오는 것을 보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류강철은 한 고향 사람의 면목을 봐주지 않을 수 없어 마지못해 받았다.
    성칠은 류강철에게 후에 인사하겠으니 아버지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병권과 함께 원한을 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어섰다.
    성칠은 큰아버지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하늘에 어두운 구름장이 침침하게 덮쳐 오더니 하얀 눈이 깔린 고향의 대지를 지지누른다. 아마 또 허위로 새하얗게 칠한 큰 눈이 내리려는 상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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