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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4) 불운한 아이들
2024년 03월 27일 11시 36분  조회:62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2. 불운한 애들
 
     기운봉은 은세계를 방불케 온통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늙은이의 은발을 날리듯이 하얀 눈가루를 바람에 흩날리면서 하늘을 찌르며 서 있었다.
     운주동은 하얀 이불을 들써 은빛세계를  방불케 했다. 초가집마다 하얀 꽃노을을 지붕 위에 쓰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딱 뭔가 살기 힘든 하소연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병완과 기준이 운주동에 돌아와보니 뜻밖에도 고방에서 사련이가 해산 앓음을 하고 있었다.
하옥이 고방에서 나오면서 반겨 맞았다.
     “돌아왔어요?”
     “오, 그래. 작은 며느리는 어찌된 일인가?"
     병완은 물으면서 위방에 들어가 앉았다.
     "아직 해산날이 멀잖소?”  
    하옥은 아랫방에서 걀쭉한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좀 앞당긴 거 같아요. 가을에 감자를 팔 때 삐치지 말렸지요. 그런데도 감자를 눈 밑에 파묻으면 어쩌겠는가면서 저 몸으로 삐치더니.”
     “쯧쯧쯧. 조산 모는 왔느냐?”
     “예, 진작 고방에 와 있어요.”
    병완은 어두커니 서 있는 기준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근심말아라. 네번째 애니까. 순산하겠지.”
    뒤이어 그는 아랫방의 하옥한테 머리를 돌렸다.
    “그래, 거 성칠은 어디로 갔느냐?”
     “꿩 사냥하러 산으로 들어갔어요. 제수한테 꿩탕을 대접해야겠다더군요.”
    하옥은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고방에 들어갔다.
    병완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에이구, 막내동생은 이젠 맏사위를 삼고 오래지 않으면 손자를 보겠는데 저 큰놈은 아직도 자식 하나 보지 못하였으니 어쩌는가?”
    하옥은 고방에서 그 말을 듣고 칼로 에이는 듯이 가슴이 아팠다.
    병완은 윗방에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하는 기준을 보고 물었다.
    “올해 1919년도지?”
    “예.”
     “그래. 올해는 특별한 해지. 서울에서 부른 ‘독립 만세!’소리가 우리 여기 이 산골에까지 다 울려 퍼졌지.”
    병완은 바깥을 내다보면서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머리를 이쪽으로 돌리면서 물었다.
    “오늘 몇 월 며칠이냐?”
    기준은 머리를 들고 조금 생각하더니 “음력 10월 18일입구마.” 하고 대답했다.
   “응, 참 좋은 날이구나.”
   그때 고방에서 갓난 애기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응아, 응아, 응아.”
    병완은 기준을 마주보면서 반가워 희죽이 웃었다.
    "허, 그 놈이 울음소리 센걸 보니 혹시 사내애가 아닌지 모르겠군. 어서 알아봐라.”
    기준은 황급히 정주간으로 내려갔다.
     “조산모, 무슨 애요?”
     “고추 달린 놈입구마."
    "아들이란 말이오?”
    "예. 아들입구마."
   조산모의 말에 기준은 뒤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에이구, 아침을 먹으면 저녁쌀이 걱정되는 세월에 아들이면 뭘 하겠습둥? 입이 하나 불었으니 근심이 태산같구먼.”
    조산모가 고방에 들어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갓난애를 누더기에 싸서 안고나와 기준에게 안겨주었다.
     기준은 갓난애를 안고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에이고, 길쭉하게 생긴 놈이 딱 할아버지를 닮았구나. 쯧쯧.”
     기준은 먼저 고방으로 들어가 사련을 보고 인사말을 아끼지 않았다.
    “여보, 둘째아들을 낳느라고 수고했소.”
    사련은 자애로운 얼굴표정으로 갓난애를 올려다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기준은 애를 안고 고방에서 나와 윗방으로 올라갔다.
   병완은 기준의 손에서 갓난애를 받아 안고 들여다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에이, 그 놈, 뭐나 길쭉한 게 시원하게 생겼구나. 애비를 닮아서 밸 때기 사나우면 어쩌지?”
   기준은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아버님두, 조손 삼대 다 성격이 강하잖습둥? 이 애만은 어진 애여야겠는데.”
    병완은 넷째손자를 안고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멀어서 닮지 않겠느냐? 아버지 대는 종 자 돌림이구. 내 대는 병 자 돌림이지. 너희들은 준 자 돌림이구 .얘들 대는 상 자 돌림이라. 상자에 무슨 글자를 달아준다?”
    기준은 갓난애를 보면서 아버지한테 물었다.
    “큰집 병권 큰아버님이나 관준 형님께 물어보고 이름을 지으면 어떻습둥?"
   병완은 뜻밖에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아니야, 우리 부자간이 먼저 이름을 지어 놓고 물어보자.”
   집 안에 한참 납덩이 같은 침묵이 흘렀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다 들릴 지경이었다.
    한참 후 병완이 빙긋이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요 놈을 숭상할 ‘상’ 자에 순임금이란 ‘순’ 자를 달아서 상순이라고 지으면 어떠냐? 뜻인 즉 ‘순임금을 숭상한다는 말’이다.”
   기준은 아버지와 애를 번갈아 보더니 무릎을 탁 쳤다.
   “예, 그 이름이 좋습구마.”
   기준은 병완의 손에서 갓난애를 받아 안으면서 중얼거렸다.
    "우리 상순아, 할아버진 널 상순이란 좋은 이름 지어주었다. 어디 보자. 에구, 이 봉이 눈을 봐라. 세 귀 눈인 게 사납게 생겼구나. 넌 커서 장차 순임금처럼 나라의 백성들을, 응, 우리 고향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알았지? 응?”  
    병완은 기준을 보고 일렀다.
   "상순을 애 에미에게 가져다 젖이나 먹여라. 너무 차게 굴면 못쓴다.”
   “예꾸마, 상순아, 엄마한테 가자.”
     뒤이어 고방에서 기준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리었다.
     “여보, 아버님께서 우리 둘째를 상순이라고 이름을 졌소. 상순아, 엄마한테 가자, 응.”
    “오, 상순이, 이름이 참 좋소. 상순아, 젖을 먹어라.”
    병완은 기준이 부부가 고방에서 주고받는 말을 윗방에서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담배물주리에 담배를 꿍꿍 쑤셔 넣었다.
    하옥이 따뜻한 미역국을 사발에 떠들고 고방에 들어갔다.
    기준이네가 둘째아들을 보았다는 소문이 온 운주동 마을에 퍼지자 이 집 갓난애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문턱이 다슬 지경이었다.
    어금은 혹시 어머니와 막내동생이 찬바람이라도 맞을까봐 바람간호를 하느라고 무척 왼 심을 썼다.
    한 마을에 있는 최구장 내외간도 사돈집에 인사하러 왔다.
    인사수작이 끝나자 모두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병완은 담배물주리를 뻑뻑 빨면서 답답한 소리부터 했다.
    “이제 이틀만 있으면 잔치를 해야겠는데 우린 아무 준비도 없습구마. 삯전을 주지 않아서 통말이 아닙구마.”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나도 경인에게서 들었습구마. 한달 동안 일해도 삯전을 주지 않으니 어쩌는가요? 저 경인은 삯전도 주잖는다고 슬그머니 빠져 집으로 돌아왔습디다.”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 내 숱한 사람들을 겨울나이 쌀이나 벌겠나 해서 공지로 가자고 동원했는데. 삯전을 주지 않아서 큰 일 났습구마.”
    최구장은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우리 부자간은 마가을에 버들로 버치를 결어 팔아 잔치준비를 대충 했습니다. 우리도 준비한 게 없습니다. 산나물에 감자 떡이나 갖춰 놓고 결혼식이라고 올리면 됩지. 없는 살림살이에 별게 있습니까?”
    “예, 구차한 세월에 간단히 대사를 치르깁소.”
    병완과 기준도 한시름을 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의 흐름은 청산유수라 또 이틀이 흘러지나갔다.
      운주동의 최구장의 둘째아들 경인과 기준의 맏딸 어금의 결혼잔치는 간소하게 치렀다.
     병완은 잔치에 온 창렬과 덕성, 동욱 등 마을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괜히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에 가게 했구나. 삯전을 주지 않는 날엔 한길수를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다.)
     병완은 잔치 날에도 속으로 윽별렀다. 그런데 한길수는 잔치 날에 낯짝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오지 않길 잘했다. 괜히 잔치 날에 주먹이 날아나가면 어쩌니?)
     백두산에 숨어 사는 최구철과 진달래가 위험을 무릅쓰고 잔치를 보러 왔다. 최구철이 백두산에서 사냥한 사슴고기를 가지고와서 모두들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잔치날에 최구장은 동생을 집아래목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일렀다.
    “너네두 백두산에서 외롭게 살지 말고 여기 운주동에 내려와 살렴.”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최구철은 가죽장화로 하얀 눈을 밟아 문지르면서 도리머리질을 했다.
     “서울에서 독립만세를 부른 후 보오. 일본 놈들이 우리를 어디 살게 하겠어요? 게다가 나는 고향에서 일본 놈들을 몇을 죽였으니까. 여기 와서 편안히 살 수 있겠어요? 괜히 붙잡히자고.”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글쎄 말이야. 형제간에 한마을에서 살면 얼마나 좋겠냐? 그런데 일본 놈들 때문에 형제간에 이렇게 천리를 떨어져서 살아야 되니 얼마나 가슴이 아픈 일이냐?”
    최구철의 코와 입에서 하얀 김이 거세게 뿜겨 나왔다. 마치 성난 사자가 노기를 토하는 듯 했다.
    이때 경인의 막내 동생 경석이가 심부름을 하다가 약담배인이 올라 생야단이 일어났다.
     최구장은 최구철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맏이 경숙을 시켜 막내 경석을 남들이 보지 않는 집 뒤에 끌어다가 붙잡아두게 했다.
    “에이유, 저 꼬락서니를 어쩌니? 동네 창피해 어디 살겠느냐?”
    최구장은 답답하여 가슴을 탕탕 쳤다.
    최구장은 윗방에서 곰방대를 뻑뻑 빨다가 머리를 수깃하고 무슨 궁리를 하는 경숙에게 물었다.
    “경숙아, 그래 공지에 또 갈 예산이냐? ”
    “예? 품삯도 안 주는데 또 가겠습둥?”
     “맞아, 갈 필요 없어.”
     최구장은 곰방대의 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었다.
    경숙은 허리를 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가지 말았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하더니 나지막이 근심을 털어놓았다.
    “저 응삼이란 자식이 일본 헌병들을 데리고 가마골로 가서 사람들을 공지로 강제로 끌어갔답니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응삼이 고놈새끼, 아이 때부터 교활하게 놀더니 일본 사람들한테 찰싹 들어붙어서 이젠 앞잡이질 하는구나.”
     경숙은 볼 부은 소리를 했다.
    “고놈새끼 말에 홀딱 넘어가서 공지로 가지 않았고 뭡니까?”
   부자간은 윗방에 앉아서 한숨만 푸푸 내쉬었다.
 
    기준이 둘째아들 상순을 본 해도 막가는 음력 동지섣달에 소대가리도 얼어 터질 듯 한 엄동설한이 들이닥쳐 살을 어이는 북풍이 윙- 윙- 불어쳤다. 모래알 같은 눈 쌀들이 날아와 창호지를 무섭게 두드렸다.
     최구장네 집에는 언 감자도 이젠 거의 거덜이 날 지경이었다. 일본 놈들이 우시장에 경찰서를 짓고 우시장으로부터 두만강변의 회룡까지 철길과 큰길을 닦으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김치움에 파묻어둔 감자, 생명줄 같은 얼마 안되는 감자마저 들춰내 다 빼앗아갔다.
     엉망진창이 된 살벌한 세월에 최구장의 맏며느리 허옥실은 해산하려고 고방에서 해산앓음을 했다.
     “에구, 이 야박한 세상에 나와서 어떻게 살려고 꿈틀거려?”
    옥실은 배속에서 꿈틀거리는 아가를 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이때 최구장의 로친 성단이 고방에 들어와 앉아 며느리 손을 잡고 위안했다.
    “아가야,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이 있다구 근심말게나.”
    세파에 부대끼여 성단은 쉰고개를 갓 넘어선 나이에 비해 얼굴에 잔주름이 죽죽 건너갔다.
    “내 경숙이랑 산에 가서 버섯을 캐오라구 했는데 오는가 마중나가보겠소. 조산모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구 몸조심하게나.”
     시어머니가 나가자 옥실은 수척한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정기없는 두눈은 섦음에 찬 샘구멍인가. 눈물이 하염없이 줄줄 흘러내려 입귀로 흘러들다가는 턱을 타고 어린 근형의 복숭아얼굴에 똑똑 방울져 떨어졌다.
    옥실은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옥물고 해산진통을 참느라고 모진 애를 썼다.
    성단이 아들마중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였다.
   고방에서 갓난애의 울음소리가 “응아, 응아.” 하고 자지러지게 들렸다.
   최구장은 웃방에서 곰방대를 들어 재떨이에 툭툭 털면서 로친을 나무랐다.
   “에참, 주책없는 노친도. 맏며느리 애를 낳는데 아들마중을 가다니? 쯧쯧쯧.”
   성단이 고방에 달아 들어 가더니 환성을 올렸다.
    “며느리, 용하구나. 계집애를 낳았구만.”
   초신감발을 하고 흰옷을 입은 경숙은 돌 버섯을 캔 바구니를 정주간 바닥에 내려놓고 희죽이 웃었다.
    “큰사람, 딸을 안아보게나.”
    성단은 갓난애를 포대기에 싸안고 나와 경숙에게 보였다.
    경숙은 갓난애를 안고 서성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에구, 살기 바쁜 세월에 나서 어찌 하겠습니까? 입이나 하나 불었지.”
    경숙은 아들 근형을 본지 1년 만에 음력 동지섣달에 연연 생으로 딸을 보았다.
    최구장은 맏손녀를 안고 한참 궁리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몇 월 몇 일인가?”
   경숙이 손을 꼽았다 폈다 하면서 한참 생각하더니
   “음력으로 12월 5일입구마.” 하고 대답하자
   최구장이 좀 궁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 애 이름을 밝을 ‘명’ 자에 옥 ‘옥’ 자를 달아서 최명옥이라고 짓자.”
    경숙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말이라면 다 따랐다.
    “명옥이? 밝은 옥이라. 참 좋은 이름입니다.”
    최구장은 덧붙였다.
    “칠흑 같은 세월이 밝아오기를 기다려 잘 살라고 밝을 ‘명’자를 단 게다. 옥 ‘옥’ 자는 애 어미 이름에서 따왔다.”
     “예—참 좋습니다.”
    경숙과 성단은 서로 마주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성단은 바삐 부엌에 내려가 멱국을 끓여 고방에 들여갔다. 뒤이어 다시 부엌에 내려가 경숙이 기운봉에서 따온 돌 버섯을 함지에 씻어 가마에 얹고 부엌에 내려가 불을 땠다.
     경인과 어금도 소문을 듣고 불붙이에서 달려내려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경인과 어금은 잔치를 해서 얼마 안 돼 운주동에서 서쪽으로 한 3리 떨어진 불붙이라는 골 안에 가서 남의 사랑방을 빌어 들고 세간났던 것이다.
   “아, 그, 우리 개성 최 씨네 어쩌다가 계집애를 봤소? 아 그, 쯧쯧쯧.”
    경인은 조카 명옥을 안고 반가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때 명옥과 년년생인 근형이 앙기장 아기장 걸어와 갓난애 명옥이 곱다고 고사리 손으로 어루만지었다.
    최구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식들을 둘러보았다.
    최구장의 집안에는 경사가 났지만 저녁에 가마에 얹을 쌀도 없어 최구장의 아내 성단은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긴긴 겨울과 보리 고개는 어떻게 넘는단 말인가?)
    최구장이 마루에 나가 거위 털 같은 눈송이가 쏟아지는 벌판을 바라보면서 대통을 뻑뻑 빨며 근심했다.
     그때 천만뜻밖에도 영월동의 성칠이 어깨에 사슴 한 마리를 메고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다.
     “사돈어른, 편안히 보냈습둥?”
    “아니, 영월동의 사돈이 어떻게 돼서 여기로 왔소?”
    성칠은 마당에 사슴을 훌 내려놓았다.
    “전번에 장백산 밀림으로 들어갔다가 잡아 온 겁니다. 잡수라고 가져왔습구마.”
   최구장이 바삐 성칠의 옷에 묻은 먼지와 눈을 털어주면서 위방으로 안내했다. 온 집안 식구들이 인사수작이 끝나자 어금이 큰아버지에게 손을 씻으라고 뜨거운 물을 대야에 담아 들여왔다.
   성칠은 눈섭과 코수염에 낀 서리도 물에 씻어버렸다.
    최구장은 성칠을 쳐다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우리 집에 가져오고 사돈네는 뭘 잡수시겠수?”
     “전번 사냥에 멧돼지와 사슴을 여러 마리 잡았습구마. 사돈이 한 집안이라고 사양하지 맙소.”
    최구장은 허리를 약간 앞으로 굽히면서 사의를 표시하고 나서 뒷말을 이었다.
    “병완 사돈어른은 편안히 계신기우?”
     성칠은 성단이가 들여보낸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후 답답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삯전두 주지 않는데 기어이 공지로 갔습구마. 숱한 사람들의 삯전을 받아 내고야 말겠답더구마.”
    삯전 말이 나오자 최구장은 곰방대에 담배를 재워 넣으면서 말했다.
    “거 영월동의 길수란 자가 무슨 사람입니까? 삯전을 주겠다고 했으면 줘야지. 남을 속여 먹으면 됩니까?”
     성칠은 아주 분개해 말했다.
    “길수도 문제지만 일본 놈들이 더 문제입구마. 경찰국 지으면서 삯전을 내놓지 않았단 말입구마.”
    최구장은 부시를 쳐서 곰방대에 불을 붙여 뻑뻑 빨면서 말했다.
     “응삼은 서당 제자인데 말이 아니더구먼. 한길수한테 붙어 살더니 이젠 일본 사람들의 졸개로 돼서 스승마저 등 쳐 먹는 망할 놈으로 돼버렸수다.”
    성칠은 한길수에게 생각이 미치자 악이 났다.
    최구장은 담배대통을 뻑뻑 빨며 한탄했다.
    “옛말에 부자 한 놈이면 온 마을이 망한다는 말이 맞아요.”
   성칠도 동을 달았다.
    “요즘엔 한길수는 일본 사람들을 영월동에까지 끌어들여 큰 잔치를 벌리면서 개지랄을 합더구마.”
    “개 같은 놈!”
    집 안에서는 한길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와 한숨소리가 뒤섞여 오고 갔다.
    고방에서는 갓 난애 명옥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바깥에서는 풍설이 창호지를 치며 무섭게 윙윙- 울부짖었다.
    어른들은 이 살벌한 세상에 태어난 애의 운명을 근심하면서 한숨만 후~ 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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