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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3) 삯전 김장혁
2024년 03월 27일 11시 24분  조회:672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반항
 
 
                          1. 삯전
 
 
     끼무라는 한길수의 입방아질에 오뉴월에도 장독에 서리칠 지경이었다. 그들은  짜고 들어 인부들의 품삯을 주지 않았다.
     병완은 한길수가 신용을 저버리고 마을 사람들의 품삯을 주지 않는 것이 괘씸했다. 아무리 힘들게 대패질을 하고 톱질을 하여도 좁쌀 한 되도 차례지지 않았다.
   (진짜 강물을 건너자 다리를 뜯어버리구나. 개 놈새끼.)
   당장 맏손녀 어금을 시집보내야 하겠는데 손에 한 푼도 쥔 게 없어 근심이 태산 같았다.
   결혼 날자는 하루하루 눈앞에 다가와 근심이 태산 같았다.
    기준과 병완이 대패질을 쓱 쓱 할 때다.
   한길수가가 응삼과 영팔 등을 데리고 목수 간으로 들어와 개화장을 휘두르며 거들먹거렸다.
   “저, 김 도감, 대패질만 하지 말구 동네 민공들이 제대로 일하는가 좀 살피게나.”
  병완은 거들먹거리는 길수가 눈에 거슬리어 부르튼 소리를 하었다.
  “한도감, 난 부지런히 일만 하지 남을 살피는 일은 못하네. 품삯도 못 받는 도감인지 도깨빈지 못하겠네.”
   그는 응삼을 건너다보며 뒷말을 이었다.
    어떨꿍이 사람을 죽인다고 응삼은 벼슬욕에 실눈을 가슴츠레 뜨고 길수의 눈치를 핼끔거렸다.
    그러나 길수는 속에 전혀 예산도 없었다.
    “흥. 응삼을 어찌 자네한테 비길 수 있단 말이오? 자넨 내 의형제 아니요? 자네 말이라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듣지 않는가!”
   병완은 이럴 때다고 제꺽 바쁜 일부터 들이댔다.
   “여보게, 맏손녀를 시집보내야겠는데 손에 일전 한 푼 쥔 게 없어 근심이 태산 같네. 삯전이나 제때에 주오.”
   삯전 말이 나오자 한길수는 대뜸 낯색이 어두워지며 퍼란 바위돌처럼 굳어졌다.
   “나도 중간에서 진짜 시집살이네. 일본 사람들이 자초보다 다르게 노는 거 어쩌오? 삯전을 인차 줄  거 같지 않네.”
    “그게 무슨 소리오?”
   병완은 대패질하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펴면서 한길수를 쏘아보며 따지고 들었다.
   "자네 삯전을 딱딱 준다고 했잖은가? 그래 숱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데리고 왔는데. 지금 와서 핸들 나누우면 마을 사람들은 굶어죽으라는겐가?"
   한길수는 말이 빗나갔음을 느끼고 중절모자를 벗어 쥐고 마른 기침을 깇더니 번들이마를 슬슬 어루만지면서 제꺽 말을 바꾸었다.
   “근심하지 말게. 어떻게 하나 끼무라 국장님과 말해 설전에는 삯전을 주겠네.”
   기준과 덕성을 비롯한 목수들은 품삯을 차일피일 미루는 한길수를 못 미더워하는 눈길로 쏘았다. 그들은 모두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한길수에게 아니꼬운 눈총을 쏘았다.
    “아니, 모두 가을걷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공지로 왔는데 삯전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누가 여기서 일하겠소?”
    너부죽하게 생긴 덕성은 자귀로 깎던 목재를 들어 던지면서 노호했다.
    “품삯을 안 주면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겠소. 감자랑 눈에 다 덮여버리면 어쩌오? 하다못해 산에 가서 사냥이라도 해야 살지. 쳇,”
   바빠 맞은 길수는 병완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쑤군거렸다.
    “자넨, 도감이 아닌가? 자네 삯전을 주지 않을까봐 그러오? 근심하지 말게나.”
   병완은 누구나 다 들으라고 언성을 높였다.
    “아니, 온 마을 사람들한테 삯전을 딱딱 준다고 불러왔는데 내 무슨 낯으로 그들을 대한단 말이요? 안되오. 달마다 꼭꼭 삯전을 계산해 주오.”
   길수도 안 되겠다싶었든지 살짝 말을 바꿨다.
    “그렇긴 하구만. 자넨 맏손녀를 시집보내야 한다니 내 오늘 끼무라 국장에게 말해서 먼저 주겠네.”
   “안 되오. 온 마을 사람들의 삯전을 다 …”
   한길수는 마을 사람들을 건너다보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떠들지 말라는데도 왜 이래?”
   “떠들지 않게 됐소?”
    길수는 병완을 마구 끌다시피 해 목수 간에서 나왔다.
   그는 병완의 귀에 대고 목소리를 낮춰 쑤군거렸다.
    “내 말 듣소. 내일 목수 간의 삯전만 먼저 줄게.”
    “안 되네. 온 마을 사람들 삯전을 몽땅 달란 말이오.”
   한길수는 고집불통인 병완과 말해보았자 쓸데없는지라 또 다른 말을 꺼냈다.
    “그래, 주지. 온 마을 사람들의 삯전을 다 주지.”
   그제야 병완은 씩씩 거친 숨소리를 죽이면서 목수 간으로 되들어갔다.
    이튿날 정말 한길수는 병완을 공지 총도감실에 불러갔다.
   병완은 삯전을 주겠지 하고 총도감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총도감실에는 한길수와 응삼, 영팔, 수길 등 사람 외에도 끼무라 국장과 야마모도 소장, 털 한 모숨이 가메다까지 살기등등해 앉아있지 않겠는가.
   가메다는 볼에 난 털 한 모숨 났다고 해 털한모숨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는 볼의 털을 슬슬 어루만지며 눈을 버릇처럼 찔끔거리면서 키가 구척이나 되는 병완을 살기 찬 눈길로 노려보았다.
   길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삯전을 달라고 너무 떠드는 바람에 이게 뭔가? 끼무라 국장과 삼림파출소 야마모도 소장이 직접 자네를 만나러 왔네.”
   야마모도 소장이란 자는 안경알 밑으로 구척 같은 병완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있었고 끼무라는 아주 반가운듯이 걸상에서 일어나 병완과 악수까지 청했다.
   “요로씨이(좋아), 자네가 병완인가?”
  류강철이 조선말로 통역해주자 병완은 끼무라의 손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말했다.
   “그렇소이다. 삯전이나 줍소. 우린 지금 죽물도 먹기 힘드오.”
   류강철이 통역해주자 끼무라는 피씩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돈밖에 모르는 놈들. 우리 대일본제국에 충성하는 양민이 되고 싶지 않은가? 우리 대일본제국은 그대들의 충성심을 요구하네. 그럼 돈뿐이겠는가? 쌀이랑 미녀랑 많이 주지.”
   끼무라는 세 살 짜리 애에게 사탕을 주고 얼리듯이 구슬렸다.
   “아니, 미녀고 뭐고 싹 그만두고 삯전이나 주오.”
   “주지. 간상, 자네가 어떻게 공지를 다스렸으면 이 놈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키자고 들겠는가?”
   한길수는 잔등에 식은 땀을 쫙 흘리었다.
   그는 병완을 쏘아보면서 나무랐다.
   “주겠다는데 왜 나까지 욕을 먹이는가?”
   병완은 그저 삯전을 주기만 기다리면서 입에 빗장을 지르고 말뚝처럼 떡 뻗치고 서 있었다.
   상전 앞에서 바빠 맞은 한길수는 호주머니에서 동전 몇 잎을 꺼내 병완의 손에 척 쥐어주었다.
   “얻소. 가져다 맏손녀를 시집보내게나.”
  끼무라 국장은 입귀에 금이발을 드러내며 피씩 냉소했다.
  “그깟 놈들이 대일본제국의 일을 하지 않으면 몽땅 죽여 버려! 또 인부들을 붙잡아오면 돼. 쳇, 대일본제국을 위해 일하는데 무슨 놈의 삯전? 우둔한 놈들, 정말 정신 나갔군. 흥!”
    병완은 길수에게서 동전 몇 푼 받아 낸데다가 공지 모든 인부들의 삯전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총도감실을 나섰다.
   그때 등 뒤에서 끼무라 국장이 야마모도소장을 돌아보면서 지껄여대는 소리가 들렸다.
   “장승같은 놈, 힘깨나 쓸 거 같군. 우리 개로 길러볼만한 놈이네.”
   “쳇, 딱 도깨비 같구먼.”
   목수칸으로 돌아온 병완은 길수에게서 가진 동전 몇 잎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대패 틀 위에 잘그락 놓았다.
    덕성은 눈이 동그래 물었다.
“건 어데서 나온 거요?”
병완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길수 영감이 선심을 썼네. 날 보고 동전 몇 잎 받고 인부들의 입을 틀어막아 달라네.”
그러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한 영감은 정말 삯전을 주지 않을 작정인가?”
“그러게 말이요. 괜히 여기 와서 뼈 빠지게 일한 것 같네.”
“두 달째 삯전을 주지 않으니 코앞에 닥쳐온 양력설은 어떻게 쇤단 말이요.”
“양력설? 쳇, 난 가을에 감자를 파오지 못하고 여기 끌려오다나니 눈 밑에 몽땅 파묻었소. 이 기나긴 겨울에 뭘 먹고 산단 말이요.”
     “최구장네 경인처럼 버치나 틀었더라면 우시장에 가져다가 팔아 겨울나이 쌀이나 장만했지.”
그런 말을 들으면서 병완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 동전을 가져다 바쁜 목에 쓰게나.”
병완이 대패 틀 우에 놓은 동전 몇 잎을 건너다보면서도 서로 눈치를 볼뿐 누구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병완은 동전을 싹 쓸어 쥐더니 덕성이랑 몇몇 목수들에게 일일이 둬 잎씩 나눠주었다.
이때 기준도 나무에 묻은 대패 밥을 손으로 쓱쓱 털어버리면서 답답해 말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네. 맏딸을 대엿새 후에 시집보내야지. 아내가 막달인데 당장 몸을 풀어야 하오. 그런데 손에 쥔 게 어디 있소?”
     덕성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동전을 기준에게 내밀었다.
     “이걸 부조 삼아 가져다가 맏딸의 결혼에 쓰게나."
      “싫소.”
     기준의 말에 병완도 손을 내저으면서 사절했다.
      “절대 그러지 마오. 양력설에 어떻게 빈손으로 가겠는가? 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머리도 못 들고 다니겠네.”
       덕성은 동전을 쥐고 병완과 기준이 그리고 다른 목수들을 돌아보다가 한 잎 만 기준에게 주었다.
       “그럼 이 한 잎은 맏딸의 결혼잔치 부조인 셈 치고 받네. 나머지는 자네들이 꼭 받아야 하네. 사양하면 우리도 한 잎도 가지지 않겠네.”
     기준은 기어이 사양했다.
     “아니요. 우리도 제 몫을 가졌으니까. 이러지 말게나.” 
    덕성은 두툼하고 터실터실한 손으로 동전잎을 기어이 기준의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에이, 사람이. 부조도 받지 않는 법이 어데 있는가.”
    기준은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병완은 기준을 보고 “덕성이, 성의는 이미 받았으니까 그만두게. 먼저 바쁜 목을 열고 보기요. 우린 감자떡이랑 빚어 놓고 결혼잔치를 하면 되네.”라고 했다.
    덕성과 기준은 동전 한 잎을 가지고 주려거니 받지 않으려고 하거니 했다.
    이때 한길수가 영팔과 응삼을 데리고 목수 간으로 우르르 쓸어 들어섰다.
   그제야 덕성과 기준은 그만뒀다. 덕성은 할 수 없이 동전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자네들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미세 당기 세를 하오? 에헴.”
    한길수는 건 가래를 떼면서 병완의 눈치를 흘끔 살폈다.
    병완은 길수를 똑바로 마주보면서 말했다.
     “총 도감, 모두들 삯전을 주지 않으면 계속 일하지 못하오. 감자랑 채 파지도 못하고 여길 오다나니 몽땅 눈 밑에 쓸어 넣었단 말이요. 동삼에 쌀을 살 삯전도 주지 않아 집식구들의 입에 거미줄을 치겠소.”
     (아, 이 영감이 금방 입을 틀어막으라고 동전을 주었구만 오히려 인부들 쪽에 서서 대포를 쏜단 말이야. 흥!)
     한길수는 속으로 좋지 않았다.
     “그래도 공지에 왔기에 당신들의 입만은 집에서 근심하지 않게 되지 않았소? 너무 좋아서 그러오?”
    그 말에 덕성은 팔을 걷어 올리더니 한길수의 코에 대고 삿대질하면서 따지고 들었다.
     “아니, 그것도 말이라구 해? 우리 공지에 오지 않으면 사냥이라도 해서 쌀값을 장만할수 있어. 당장 삯전을 줘. 그러지 않으면 당장 그만두겠어.”
    “옳소. 우린 그만두고 사냥하든지 삯일을 하든지 하겠소.”
     “아니, 이것들이 누구 앞에서!”
    영팔이 가죽채찍을 휘두르며 뛰쳐나왔다.
    “닥쳐!”
     한길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는 영팔을 질책했다.
    “에이, 못난 놈. 한마을 사람들에게 무슨 짓이냐?”
    한길수는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낯에 게바르면서 구슬렸다.
     “우린 한 마을 사람들이 아니고 뭐요?  좀 서로 사정을 봐 줄내기.  흐흐흐. 나도 일본 경찰국 끼무라 국장과 말해서 꼭 자네들의 삯전을 주게 하겠네. 근심 말고 일하게나. 나도 중간에서 정말 시집살이네.”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 한다. 그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이오?”
    한길수는 중절모를 쓴 대머리를 건뜻 쳐들고 우멍 눈으로 천정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천하의 한길수가 그래 고만한 돈 주지 않으리라구 그러오?”
    모두 길게 한탄하면서 대패질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한길수는 병완을 돌아보면서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더니 목수 간을 나섰다.
    그날 일을 마치자 병완과 기준 부자는 한길수와 말하고 어금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운주동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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