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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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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32) 인부 모집
2024년 03월 22일 11시 04분  조회:59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9. 인부모집
 
 
 
 
     먹장구름이 뒤덮여 오더니 풍운조화를 헤아리기 어렵게 을씨년스럽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잔잔히 흐르던 조용한 개울물에 어디서 미꾸라지 한마리 기어나왔는지, 간사하게 꼬리치며 물을 흐리우기 시작했다. 
   
    최구장은 서당방이 쉬는 날이 돼서 마루에 앉아 맏손자 근형(봉인)을 안고 한가히 놀면서 담배를 풀썩풀썩 피웠다.
   응삼은 끼무라와 한길수 명을 받은지라 운주동으로 가자마자  옛날 서당방 은사 최구장을 찾아갔다.
    응삼은 온 낯에 나오지 않는 웃음을 지으면서 최구장을 보고 다가가 인사부터 올렸다.
    “선생님, 그간 무고합둥? 몸이랑 괜찮습둥? 해해해.”
   최구장은 피끗 응삼을 내려다보더니 마지못해 대구했다.
   “오, 그래. 십여년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더니 무슨 일로 불쑥 찾아왔는가?"
   최구장은 재수없이 턱이 뾰족하고 뱁새눈을 팬들거리는 응삼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할 때면 자기가 먼저 남의 뒤 골을 톡 쳐놓고서는 질책하면 다른 애를 먼저 쳤다고 물고 늘어지기가 일쑤였다.
   (이 자식이 무슨 바람이 불어 찾아 왔을까?)
   응삼은 제 좋은 소리를 쳤다.
   “선생님, 이런 일이 있습구마. 지금 일본 사람들이 우시장에 큼직한 집을 짓는뎁쇼...”
  최구장은 담배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더니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그래, 이 늙은이가 일본 사람들 집짓기에 가라는 건가?”
   “아, 아니, 아닙니다. 은사님. 어, 은사님의 손자 놈이 정말 귀엽구먼요.”
   응삼은 마루에 기어 올라가 최구장 옆에 찰싹 들어붙어 앉아 근형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머리까지 조아리면서 말했다.
    “은사님, 일본 사람들은 신용을 지키는 사람들입구마. 꼭꼭 달 말이면 삯전을 주니까요. 운주동 사람들이 가서 부업이라도 하면 좀 좋아서.”
    최구장은 먼 산을 바라보면서 한참 궁리하다가 담배를 길게 빨아 후— 내쉬었다.
     “그래 일본 사람들이 삯전을 얼마씩이나 준다던가?”
    응삼은 최구장의 턱 밑에 기어들어 말상을 갸우뚱거리면서 약사발을 올렸다.
    “날마다 쌀 둬근 값은 줍꾸마. 저 영월동의 병완 영감은 목수 일을 해서 삯전으로 쌀 한 되 값은 받았습구마. 그 집 둘째아들과 셋째아들도다 공지에 갔습구마.”
    “그래?”
    응삼은 일 돼갈 거 같아 빈대눈을 팬들거리면서 한술 더 떴다.
    “영월동의 한길수 어른이 직접 공지 총도감을 맡고 삯전을 내주고 있는데유. 틀림 있겠습둥?”
    “다시 묻겠네. 우리 사돈영감이 확실히 우시장에 갔어?”
    응삼은 말상을 조아렸다.
    “예, 가구말구요. 병완 영감은 목수 일을 해서 맏손녀를 시집보낼 준비를 한다던데요. 정 믿어지지 않으면 가 봅소. 창준과 기준이 가지 않았는가.”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이때 때마침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과 둘째아들 경인이 마당에 들어섰다.
   응삼은 그들을 보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이 집의 끌끌한 일군들이 들어서는구먼.”
  응삼은 최구장을 돌아다보면서 뾰족한 턱까지 흔들어대면서 말했다.
  “은사님, 저 아드님들을 공지에 보냅소. 삯전이나 벌면 오죽 좋겠습니까? 황차 둘째아드님이 장가도 들어야 한다면서요?”
 경인은 조금 부끄러운 듯이 귀밑까지 붉혔다.
   “경인이, 자네 가시아버지 기준이도 공지에 갔네. 공지에 가서 돈을 벌어서 혼수나 준비하게나.”
   경인은 응삼의 실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내 가시아버님께서도 갔소?”
    “응, 그래. 지금 목수 도감을 하오. 한길수 영감이 총도감을 하는데 하루 일하면 쌀 반 되 값은 주오. 부지런히 일하면 쌀 한 되는 버오.”
   경인은 퍽 호기심이 들어 했다. 그러나 경숙은 반신반의하면서 주춤거렸다.
    응삼이는 최구장의 턱 밑에까지 다가들었다.
    “은사님, 저 끌끌한 아드님들을 일하러 보냅소. 삯전은 근심하지 맙소. 정 받지 못할 것 같으면 한길수 어른이 있잖습둥?”
   “쳇, 한길수를 믿어?”
    최구장은 한길수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시장의 어떤 깍쟁이라고? 부채 아까워 얼굴을 부채에 대고 흔드는 영감. 린색하고 옹졸하기 그지 없어. 흥!)
   응삼은 혀를 홀랑 내밀더니 인차 말머리를 돌렸다.
   “삯전을 받지 못하면 한길수와 달라고 하란 말입구마. 옛날에 부자 집이 넘어가도 석삼년은 걸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한영감이 그 숱한 재산을 가지고 달아나겠습니까?”
   그러자 경인이가 나섰다.
  “그 말에는 조금 도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공지에 가본다?”
  뒤이어 반신반의하는 경숙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형님, 형수가 오래잖아 해산하겠는데 쌀독을 빡빡 긁지 말구 우리 둘이 공지에 가서 일하기요. 내 가시아버지와 가시할아버지도 거기 가서 일한다구 하잖소. 갔다가 맞갖잖으면 돌아오기오.”
   경숙은 동생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머리를 끄덕였다.
   마루 우에서 지켜보던 응삼은 일이 돼가는 걸 보고 속으로 너털 웃음을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은사님, 편안히 계십소. 선생님이 이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에 보내면 덕을 쌓는 겁구마. 보릿고개를 넘을 쌀이나 마련하게 하면 좀 좋아서?”
   응삼은 오늘 따라 지나치게 해해거리면서 허리를 굽혔다.
   최구장은 담배 물주리를 뻑뻑 빨다가 연기를 후 불어내더니 재떨이에 털었다.
  “그러지. 일감을 알려줘서 고맙네.”
   응삼은 울바자 밖으로 나가면서도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해해해. 은사님이 이전에 하늘 천, 따 지를 가르쳐주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한데요. 제가 어찌 은사님의 은공을 잊겠습둥? 좋은 일이 있으면 은사님 댁에 먼저 알려얍죠.”
  응삼이 대문 밖으로 나가자 시끄럽던 집 울안이 조용해졌다.
  경숙은 대문 밖으로 빠져나가는 응삼의 궁둥이를 보고 돌아섰다.
   “저 응삼의 말을 믿을 만 합둥? 더구나  우시장에서 이름난 난봉군 한영감을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습구마. 얼마나 떼질군이라구. 흥! ”
   최구장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글쎄 한길수야 소문난 깍쟁이란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 허나 일본 사람들은 혹시 삯전을 쥐겠는지, 한번 가볼만한 거 같아. 사돈영감들두 갔다구 하지 않니?”
   경숙은 량미간을 찌프리었다.
   “아버지, 일본 놈들을 믿습둥? 그 놈들은 조선을 통채로 먹어버린 엉큼한 도둑놈들입구마."
   경인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형님, 먼저 며칠 가 일해보기오. 삯전을 주지 않으면 내 가만놔두지 않겠소.”
  그러자 최구장이 정색해서 말했다.
   “너, 경인은 절대 공지에 검을 절대 가지고 가지 말라. 무슨 사단을 일으킬라고. 쯧쯧.”
   경인은 뒤덜미를 긁적거렸다.
   “옳다. 너 오래지 않으면 장가가겠는데 무사해야 해.”
   경숙의 말에 경인은 형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알았소, 형님, 절대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 테니. 근심하지 마오.” 
   최구장은 맏아들과 둘째아들을 내려다보면서 담배 물주리를 재떨이에 툭툭 털면서 물었다.
   “거 넷째하구 막내는 뭘 하니? 걔들도 데리고 가렴.”
   경숙은 아버지의 눈치를 흘끔 보면서 머리를 떨어뜨리며 경인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 있니?”
  최구장의 얼굴에는 근심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 지나갔다.
  경인은 속이지 않고 낱낱이 말했다.
  “넷째동생 경욱은 경석과 함께 또 약 담배 장사하러 우시장으로 갔습구마.”
   최구장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 고놈새끼들, 언제 고약한 버릇을 뗄까? 너희들과는 달리 고 놈들은 부지런히 일해 살 예산이 없고 전문 약 담배 장사가 아니면 약 담배를 피운다. 어쩌겠니?”
   최구장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엉거주춤 일어났다.
   “너희들이 우시장에 가면 고놈새끼들을 붙잡아서 공지에 데리고 가라. 약 담배 장사를 하다가 언제 순사 놈들에게 잡혀서 혼나지 못해서. 쯧쯧쯧.”
   한편 최구장네 집에서 나온 응삼은 온 운주동을 돌아다니면서 최구장네 아들들이 몽땅 공지로 일하러 간다며 마을 사람들을 일하러 가라고 동원했다. 최구장이라면 운주동에서 한다하는 서당 방 선생인데 그가 아들들을 공지에 보낸다고 하자 모두들 공지로 가려고 나섰다.
    응삼은 운주동에서 십여 명의 끌끌한 인부를 모집한 후 운주하를 건너 신흥동으로 갔다.
   응삼은 신흥동에서 한다하는 김종국 구장을 먼저 찾아갔다. 그런데 김 구장이 일본사람의 앞잡이로 된 응삼을 거들떠보지 않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응삼은 김 구장네 집 울안에 들어가 마주 나오는 김 구장을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김구장, 무사합둥? 우시장에 좋은 일감이 생겨서…”
   응삼의 말이 채끝나지도 않았는데 김 구장이 빈정거렸다.
   “아니, 자넨 우시장에 가서 한자리 했다더구먼. 무슨 일로 이 누추한 시골에 찾아왔는가?”
   응삼은 속으로는 괘씸하였지만 일을 그르칠 까봐 꾹 참았다.
   “사실 에헴, 김 구장, 저기 우시장에 일본사람들이 큰 집을 짓는데 좋은 일감이 생겼습구마…”
   “응삼이, 좋은 일이 있으면 자네나 할 게지. 날 찾아와 뭘 하오? 난 허리 아파서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못하네.”
    김종국은 조개턱을 건뜻 쳐들고 먼 산을 쳐다보면서 대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응삼은 뒤따라가면서 김 구장의 팔소매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아니, 김 구장, 내 말을 다 들어 봅소. 김구장, 저기, 저…”
   “이 사람이, 왜 이래? 이 팔소매를 놓으라니까. 급히 가 볼 데 있는데 허리를 놔라, 놔. 이 사람이 정말 찰거머리 같다.”
    김 구장은 팔을 휘둘러 뿌리치면서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응삼은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보는 격이 되고말았다.
    응삼은 뾰족한 턱을 살래살래 저으면서 가마골로 향했다.
    가마골의 구장은 림호라는 사람이었다.
   림호는 이 마을에서 힘깨나 꽤 쓰는 힘장사이었다. 이름 그대로 수풀 속에서 뛰쳐나온 호랑이같이 생긴 그는 더부룩한 구레나룻에 나비수염까지 길러서 딱 수호전의 리규 같았다.
    한번은 한 마을의 석수, 용기 등이 기운봉으로 사냥하러 갔다가 간 날이 장날이라고 그만 호랑이를 만났다. 그들이 사냥총을 쏘아대면서 쫓아가자 호랑이는 겁을 먹고 절벽아래 나무숲속에 난 범의 석굴 안으로 달아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범이 굴 안에서 나오기를 기다려 잡자고 하였지만 림호 만은 담대하게 혼자 범의 굴로 뒤쫓아 들어갔다.
    때마침 암펌이 새끼 둘을 입에 물고 굴 밖으로 나오다가 굴 어구에서 림호와 딱 마주쳤다.
    “이 놈의 범 새끼, 어디로 도망치려고?”
   림호는 범의 굴 안으로 고래고래 고함치면서 뒤쫓아 들어가 뛰어나가는 호랑이의 꼬리를 꽉 틀어잡았다.
   화닥닥 놀란 호랑이는 똥물을 내갈기더니 굴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뒤발로 림호를 걷어찼다.
   “이 놈 범새끼, 뒤 발 질까지 해? 어디 죽어 봐라.”
   호랑이는 굴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림호는 범을 놓칠 까봐 꼬리를 단단히 잡고 발로 땅바닥을 긁으면서 뻗쳤다. 그렇게 호랑이와 림호가 반나절이나 싱갱이 질 하다나니 범이고 림호이고 다 기진맥진했다. 나중에 호랑이는 꼬리 껍질이 다 우악한 림호 손에 쭉 벗겨졌다. 그 놈 호랑이는 죽기내기로 굴 밖으로 나가려고 버둑거리다가 똥물을 열댓발 찔 갈기더니 풍덩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물앉고 말았다. 이때 바깥에 있던 석수랑 몽땅 뛰여 들어와 함께 호랑이를 비수로 찔러 죽였다.
    사후에 석수가 “무슨 담에 범의 꼬리를 붙잡고 놓지 않았어?” 하고 묻자 림호는 범의 발톱에 긁힌 얼굴에 묻은 피를 손으로 쓱쓱 닦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허허, 내 머리 속에는 범의 꼬리는 단단히 쥐고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밖에 없었네.”
    림호는 맨 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정도로 힘은 셌지만 머리는 단순하고 우직한 사람이었다. 그러다나니 꾀 망둥이 응삼이가 운주동의 최구장과 신흥동의 김구장이랑 다 자식들과 마을사람들을 공지에 보낸다는 말을 그럴듯하게 하자 인차 공지에 가겠다고 나섰다.
림호 구장은 당장에서 석수와 용기, 길수를 불러왔다.
    “우리 이 사람을 따라 우시장에 가보자. 감자농사두 잘 되지 않았는데 얼기 전에 동삼에 먹을 쌀이라도 벌어오자.”
   림호 말이라면 하느님 말처럼 따라온 용기와 길수, 석수는 두말없이 따라나섰다.
    응삼은 아주 쉽게 운주동과 가마골에서 만 하여도 서른대여섯이나 데리고 우시장으로 가게 됐다.
    그는 신흥동에서 김 구장한테 코를 떼울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놈 영감이, 어디 황군에게 혼나봐라.”
    응삼은 신흥동쪽을 손가락질하면서 욕질하더니 마을을 떠났다.
    응삼은 숱한 인부들을 데리고 우시장으로 돌아가자마자 한길수를 찾아갔다.
    한길수는 인부들과 응삼을 번갈아보더니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수고했네. 끼무라 국장은 자네를 꼭 중용할거요.”
    응삼은 신흥동의 김 구장에게 당한 수모가 내려가지 않아 길수에게 있는 말 없는 말 다 보태 물어먹었다.
    “그 놈 김 구장을 혼내줍소. 내 찾아가니 개 닭 보듯 하면서 일본 놈들 집짓기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겠습둥?”
   “그 놈이 언감? 경 칠 놈, 흥!”
   “헌병들을 데리고 김 구장을 혼드검 내줘야겠네. 개배때기를 차도 주인을 보고 차라고. 주리를 틀어놓지 않는가 보자.”
    한길수도 분이 나서 우멍 눈을 부라리면서 이를 쁙쁙 갈았다.
    그는 그 길로 끼무라 국장에게 말해 헌병 몇을 데리고 말을 타고 신흥동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둬 식경 달려 운주하를 건너 신흥동에 이르렀다.
    길수는 일단 일본 헌병들을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혼자 마을에 들어갔다.
    어느 한집 돼지우리에서 둼을 쳐내는 한 늙은이가 눈에 띄었다.
    “저게 김 구장이 아닌지?”
   그 늙은이에게 다가가서 묻자고 하니 돼지 똥 구린내가 역겨워 다가가기 싫었다.
    하여 멀찍이 서서 그 늙은이에게 소리쳤다.
    “이보게, 여기 김 구장 집이 어느 겐가?”
     그 늙은이는 돼지 똥을 쳐내다가 머리를 들어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일본 헌병들과 낯선 한길수의 번들이마를 번갈아 보더니 대구도 하지 않고 계속 돼지 똥을 쳐냈다.
    "영감, 사람 소리 들리지 않는가?"
    "?"
    "김구장 집이 어디 있는가?"
    “몇 집 건너 저 우에 있네.”
    한길수는 그 늙은이가 가리키는 대로 몇집 건너 갔다. 아낙네가 집 마당에서 한창 절구에 낟알을 찧고 있었다.
   그는 아낙네에게 다가가 물었다.
   “김 구장네 집이 어느 겐가?”
    아낙네는 절구 공이를 놓고 한길수의 낯선 얼굴과 마을 어귀에 들어선 일본 헌병들을 의아한 눈길로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시 절구꽁이를 딱딱 찧어댔다.
    “아니, 묻는 말을 못 들었가? 이 마을 년놈들 다 귀 먹어린가? 참 이상할 정도얘. 이년, 어느 게 김 구장네 집인가? 왜 묻는 말 답하잖아? 엉?”
    아낙네는 절구꽁이로 낟알을 계속 찧으면서 반문하지 않겠는가.
   “댁은 뉘신지요? 김 구장을 찾아 뭘 해요?”
   한길수는 아직도 나를 모르는 아낙네들도 있나 싶어 보란 듯이 번들이마를 쳐들고 을러멨다.
   “이년, 이 어른도 몰라. 이 어른은 우시장공지 총도감이야. 묻는 말이나 대답해. 어느 집이 김 구장 집인가?”
   아낙네는 머리를 들어 몇 집 건너 동쪽 집 돼지굴을 치는 령감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는 것이었다.
   눈치챈 길수는 우멍눈으로 아래쪽을 돌아버더니 아낙게네한테 발작 다가서면서 물었다.
   “저기 돼지 똥을 치는 영감이 김 구장인가?”
   그러나 아낙네는 대답도 하지 않고 절구질만 했다.
   “맞지? 저 영감두상이 김 구장이지?”
   한길수는 돼지 똥을 치던 영감이 김 구장인 걸 알아차렸다.
   한길수는 마을 아래쪽으로 되 내려가면서 욕지거리를 했다.
   “더러운 영감, 분명 자기를 찾는데 이 어르신님을 이렇게 두벌걸음을 걷게 해? 어디 혼나 봐라.”
   한길수는 일본 헌병들한테로 돌아가 돼지 똥을 쳐내는 김 구장을 손가락질을 하면서 가서 붙잡으라는 손시늉을 했다.
   일본 헌병들은 말에 올라 곧추 김 구장네 집으로 짓쳐 들어갔다. 그자들은 말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돼지우리에 뛰어들어 돼지 똥을 쳐내던 김 구장을 끌어냈다.
    “김 구장, 당신은 목이 몇 개 돼 감히 이 한길수 어른이 묻는 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가? 이 어른을 두벌 걸음을 시키다니?”
    김 구장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허리를 꿋꿋이 폈다.
    “난 일본사람들의 그늘 밑에서 구장 질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지 오래오. 구장도 아닌 나를 찾아 뭘 하오?”
   한길수는 김 구장의 멱살을 틀어쥐고 호통 쳤다.
   “어째 죽고 싶은가? 네깐 놈 감히 대일본제국의 경찰국 청사를 짓는 일을 방애한단 말인가?”
   그러나 김 구장은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백발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난 자기 집 돼지우리도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언제 일본사람들의 집을 짓는데 갈 새 있겠소? 그럴 새 있으면 내 돼지 굴이나 짓겠네.”
    "뭐? 뭐?"
   한길수는 김 구장의 멱살을 마구 흔들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래 대일본 제국의 경찰국을 짓는게 중하냐? 너네 돼지굴이 더 중하냐? 이 놈. 당장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공지라 가라! ”
   김 구장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릴? 한창 가을철이 돼서 마을 사람들은 감자랑 강냉이랑 걷어 들이느라고 어디 갈 새 있소?”
   한길수는 김종국 구장의 멱살을 스르르 놓으면서 조금 치미는 분노를 눅잦히면서 말했다.
   “가을걷이를 못해도 경찰국 집짓기를 하면 살수 있단 말이야. 공지에 가서 일하면 삯전을 준단 말이다. 그 삯전이면 겨울을 날수 있다.”
    “허, 그 영감, 진짜 삶은 소대가리 다 웃다가 꾸러미 터질 소릴 다 한다. 겨울을 나고 나면 입에 거미줄을 칠 지경인데. 어떻게 보리고개를 넘으란 말이요?”
   약이 오른 한길수는 꽥 고함쳤다. 
   “이 놈, 내 명을 거역할텐가? 어디 죽어봐라.”
    한길수는 일본헌병들에게 김 구장을 바줄로 묶으라고 손시늉했다.
    뒤이어 그는 두 팔을 뒤로 탈아 꽁꽁 묶은 김 구장을 끌고 마을 복판에 자리 잡은 널찍한 마당으로 갔다. 일본 헌병들은 김 구장을 마당 한복판에 있는 늙은 비술나무에 꽁꽁 묶어놓았다.
   한길수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몽땅 이 마당에 모여라. 마당에 나오지 않는 날엔 일본제국의 총칼 맛을 보일테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비술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일 밭에 나가고 어린애들까지 다 해도 마을 사람들은 20여명 밖에 모이지 않았다.
   한길수는 번대머리에 돋은 땀방울을 생강 같은 손바닥으로 뚝뚝 찍어  닦으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난 우시장 일본경찰국 사무 청사 공지 총 도감 한길수야!”
    그러자 마을 사람들 속에서 웅성거렸다.
    누군가 “저 영감이 고개 넘어 영월동의 난봉쟁이 한길수가 아니냐?” 하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 속에서 쑤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이어졌다.
     "저 소문난 건달놈이 일본 놈 덕분에 승급했구먼."
    "저게 일본 놈들을 등에 업고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는 즛살을 어떻게 보겠니?"
    "흥! 세상이 점점 더럽게 변해가는구먼."
     허나 길수의 고함질은 계속 울렸다.
    “김 구장은 대일본제국의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 공지에 나가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방애하기까지 했다. 그 죄는 하늘에 사무치는 용서하지 못할 대역죄다. 오늘 마을사람들 앞에서 처벌한다. 이후에 누구든지 자기 집일을 하면서 대일본제국의 일을 하러 공지에 가지 않는 날엔 이 영감처럼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길수는 숱한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말채찍을 휘둘러 김 구장의 가슴이고 다리고 사정없이 쨩 쨩 후려쳤다.
    김 구장은 한길수가 휘두르는 채찍에 맞아 베옷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살갗이 채찍에 묻어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닥치오!”
   이때 훤칠하게 생긴 중년사나이가 마을 사람들 속에서 뛰쳐나왔다.
   한길수가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마을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밭에서 하나둘 마을로 돌아와 비술나무마당에 모여들었다.
   “네 놈은 누구냐?”
   한길수는 휘두르던 채찍을 들어 그 중년사나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난 이 늙은이 맏아들 영진이오.”
   중년사나이는 가슴을 쑥 내밀고 따지고 들었다.
   “왜 죄 없는 우리 아버님을 이렇게 모질게 치는 거요?”
   한길수는 억이 막힌 듯이 번들이마를 쳐들고 대가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그 애비에 딱 그 아들놈이구나. 네 애비 대일본제국의 사무 청사를 짓는데 가지 않은 건 둘째고 뒤에서 마을 사람들이 가지 못하게 방애했다. 그래도 죄 없어?! 대역죄야, 목을 쳐도 과하지 않아.”
    한길수 우멍눈에서 무서운 불빛이 번쩍였다. 
    “이 놈, 죽어봐라! 이 놈!”
   한길수는 이를 악물고채찍을 휘둘러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런데 영진은 왼팔을 들어 날아드는 채찍을 받아 꽉 틀어쥐어 홱 챘다.
채찍을 빼앗긴 한길수는 일본 헌병의 손에서 군도를 빼앗아 들고 휘둘렀다. 질겁한 애들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만두오!”
   이때 비술나무에 묶인 김 구장이 피가 낭자한 얼굴을 겨우 들면서 고함쳤다.
   “한도감, 우리가 역사에 나가면 그만이 아니요? 무고한 사람을 자꾸 치지 마오.”
    한길수는 군도를 내리우면서 살기등등했던 낯에 간교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기다렸던 말이었던 것이다.
    “그래, 이제야 박바가지 같은 대가리 제대로 돌아섰군. 삯전도 주는데 왜 공지에 나가지 않아?  일본제국의 총칼 맛을 볼 게 있는가!”
    한길수는 득의양양해 마을 사람들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쳤다.
    “들어! 무릇 열여섯 살 이상 되는 사내들은 몽땅 내일부터 우시장에 가서 공지 일을 해야 해. 가지 않는 자가 발각되는 날엔 대일본제국의 법에 의해 엄벌을 가할 거야. 알겠는가?!”
    그러자 마을사람들은 못마땅해 웅성거렸다.
     “그래 저 밭의 감자랑 강냉이랑 제때에 걷어 들이지 않으면 어쩌오?”
    “곡식이 눈 밑에 들어가면 뭘 먹고 산다오?”
    “멧돼지 성화에 밭에 묻어둔 감자 아까워 죽겠는데."
    “별 영감을 다 보겠네. 어째 조선 사람이라는 게 일본 사람 편에 서서 말하오?”
    지어 이런 말소리마저 들리었다.
    “우린 조선 사람들인데 일본 사람들의 일을 하지 않는다고 일본법에 의해 처형해? 이거 참, 원.”
    “글쎄 말이요. 그래 답답하다는 게오.”
    한길수는 마을사람들을 노려보다가 세길 네길 펄쩍 뛰며 꽥 고함쳤다.
    “헛소리를 작작 쳐라. 이젠 일본과 조선은 하나로 됐다. 우린 대일본제국의 법을 따라야 한다. 내일 나를 따라 몽땅 우시장으로 가자. 가지 않는 놈은 몽땅 김 구장처럼 엄벌할테야."
  그는 발로 탕탕 땅을 구르며 땅방울같이 을러멨다.
   "일하러 가지 말자고 선동하는 자가 있으면 이 일본 군도로  목을 치겠어! 알았어?! 엉?”
    한길수는 마을사람들을 위협하려고 일본 헌병의 허리에서 군도를 쓱 빼들어  늙은 비술나무를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군도로 내리찍었다. 비술나무껍질이 군도에 찍혀 한 뼘이나 벗겨져 누런 살이 드러났다.
    한길수는 한 고향 사람들을 다 잡아서라도 경찰서를 지으려고 미쳐 날뛰었다. 경찰서를 빨리 지어 바쳐야 끼무라한테 잘 보여 바라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길수는 말을 타고 우시장으로 돌아가면서 엉큼한 궁리를 다 굴렸다.
   (흥, 온 명천 간나새끼들 다 일본 콧수염쟁이한테 팔아 먹지 않는가 봐라. 대가루 경찰서장 쯤 얻어 해야겠는데. 으흠, 건데 마을 놈들 반발이 심해 식은 죽 먹긴 아냐.)
   이튿날 마을사람들은 핍박에 못 이겨 이불 짐을 꿍져 지고 한길수와 일본 헌병들을 따라 우시장으로 떠났다.
   신흥동에서 20여명의 끌끌한 인부들을 끌고 가게 됐다. 한길수는 한 고향 영월동에서도 숱한 사람들을 강제로 공지로 끌고 갔다.
    인부들을 끌고 우시장으로 가는 길에 한길수는 개 잡은 포수처럼 어깨가 으쓱해져 더 못된 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명천 땅에서 누가 감히 이 어른 말을 거역해? 목이 날아나지 못해? 허허허. 인부들에게 삯전도 줄 필요없어. 내 돈은 뭐 벼락 맞은 소고기라더냐? 네깐 놈들이 감히 어쩐단 말인가? 으흐흐. 흐흐.)
    옛 말에 마을에 부자 한 놈 있으면 온 마을 사람들 다 잡아먹는다고 했다. 바로 한길수 같은 놈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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