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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31)콧수염쟁이와 뜨개소
2024년 03월 22일 10시 57분  조회:77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8. 콧수염쟁이와 뜨개소
 
 
   품삯이 일루 희망의 꼬리를 쳐 숱한 농사군들을 유혹해 공지로 모여들게 했다. 돈의 마력은 고달픈 한숨을 쉬는 가난한 백성들을 고난일지 복일지 모를 쁠랙홀에 엉큼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상호는 병완을 따라 공지에 와서 첫날부터 목재를 메 나르는 일을 했다.
    (부지런히 일하면 품삯이야 벌겠지. 아버지 치료비라도 벌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빚을 다 물고 둘째누나까지 데려 내왔으면 더좋구.)
   상호는 이런 일루의 희망을 품고 목재를 메고 병완 등이 일하는 목수 간으로 들어갔다.
   한편 그는 한길수가 품삯을 선대해준다니 믿음이 가지도 않았다.
  (그 영감은 고뿔도 남을 안 줄 깍쟁이 아닌가! 어쩌다 선심을 쓸가?)  
   대패질하던 병완이 상호를 보고 히죽이 웃었다.
    “첫날에 너무 무리하게 메지 말고 천천히 해라.”
   “예, 많이 나르면 삯전이랑 많이 주겠지유? 그 깍쟁이 영감이, 정말 해 서산에서 뜨잖습둥?”
    “글쎄, 그 깍쟁이 웬 영문인지 삯전도 푼푼히 주더라.”
    상호가 허리 굽혀 인사하고 나가는데 기준이 목재를 메고 들어섰다.
    “아버지, 쉬엄쉬엄 일합소.”
    병완은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나무를 들어 왼눈을 지긋이 감고 곧게 대패질했는가 보았다.
    “에이구, 이런 목재로 어떻게 층집을 짓는다고 이래?”
   기준이 볼라니 대패질한 나무에 나무벌레가 먹어 들어 간 자리가 있었다. 저쪽 나무통에 보니 톱질하다가 잡아낸 나무벌레가 몇이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아니, 저 벌레가 나무를 파 먹으면 집 기둥도 다 끊어나지 않겠습둥?”
   기준의 눈이 다 휘동그래졌다.
   병완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런 나무로야 기둥이나 대들보를 못하지. 몇 해 가지 않으면 요 놈의 나무 벌레 때문에 대들보가 끊어지고 말겠다.”
    병완과 기준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이런 나무야 마루나 깔았지. 별수 있습둥? 쯧쯧쯧.”
   기준의 맥 빠진 말이다.
   병완은 대패질한 나무를 훌 쥐어 뿌리였다.
   “마루에도 어디 쓰겠니? 마루도 몇 참 못가서 꺼지겠다. 한 영감은 이런 목재를 주구서도 어찌나 재촉하는지 어디 쉴 새 있느냐? 이제 금방 기초를 쌓아놓았는데 올 가을 전에 3층짜리 목조건물을 다 지으란다. 그 것도 본 적도 없는 일본식 건물로. 헤이.”
   병완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더니 계속 대패질을 했다. 두 팔이 힘을 쓸 때마다 두 팔에 근육이 불뚝불뚝 살아났다. 마치 성난 용 두 마리가 꿈틀거리는 상 싶었다.
    기준은 아버지 옆에 다가서서 근심어린 말을 올렸다.
    “아버지, 이 많은 목수 일을 어떻게 아버지와 몇 사람이 다하겠습둥? 나도 하랍둥?”
   병완은 기준한테 근심어린 눈길을 보냈다.
   “글쎄, 넌 여편네가 막달이 돼서 몇 날이나 하겠니? 예산날이 언제쯤이라던?” 
    “아마 음력으로 시월 중순 쯤 이랍더구마.”
    “음, 그럼 한달 푼히 있구나. 한영감하구 말해보고 그렇게 하자.”
    창준도 한발 나섰다.
    창준은 아버지를 닮아 훤칠하게 생긴 동생 기준과는 달리 보통 키에 호리호리하게 생겼다. 성격도 아버지를 닮은 동생 기준은 시원시원하게 툭툭 내쏘았지만 창준은 선비의 틀이 좀 난데다가 침착했다.
    “아버지, 나도 목수 일을 배워서 하면 안 되겠습둥?”
   병완은 대패질을 하다 말고 창준을 정색해 바라보면서 말리였다.
    “얘, 넌 몸이 약해서 이렇게 힘든 목수일은 못한다. 삼부자가 다 목수 일을 하면 남들이 뭐라겠니? 저 놈들이 삯전을 많이 타자고 목수 일을 한다 할 게 아니냐? 기준은 어금의 결혼잔치준비를 해야 하지 않니? 그래 기준은 돈이 바쁜 것도 있다. 그러나 넌 급히 쓸 돈도 없는데 계속 잡일이나 해서 먹을 벌이나 해라.”
   아버지 성미를 잘 아는 창준은 더 말해보았자 쓸 데 없다는 것을 알고 자리를 떴다.
   이때 때마침 한길수가 중절모를 비뚤랑하게 쓰고 개화장을 휘두르면서 일본경찰국 국장 끼무라와 함께 목수 간에 들어섰다.
   끼무라는 경찰국장에 헌병대 대장까지 겸하고 있어 우시장에서는 최고로 세도를 부리는 자였다. 사무실에 들어앉으면 국장사무를 보고 어디에 사고가 생기면 헌병대를 불러 출마하면서 헌병대 대장질을 했다. 이걸 두고 한길수가 아첨하는 말을 빈다면 "말을 타면 천군만마를 호령하고 말에서 내리면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 끼무라는 "낮에는 조선의 백성들을 못 살게 굴고 밤이면 미녀들을 껴안고 허리 불러지게 해대는 색마"였다.
    끼무라는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병완의 가까이에 다가섰다.
    그러나 병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패질을 계속 했다.
    한길수가 중절모를 벗어 바로 쓰면서 끼무라 국장에게 병완을 소개했다.
    “끼 국장님, 아니, 에헴, 끼무라 국장님, 이 목수는 우리 공지 목수 일을 책임진 김 도감입니다.”
    통역 류강철이 통역해주었다.
    끼무라 국장은 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병완의 우람진 체구와 근육이 불뚝불뚝 살아난 팔뚝을 보았다.
    그는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긴상(김군), 하지메마스데(처음 보는데). 도조 요로씨꾸(잘 부탁하오).”
     "뭐 하지마. 마슨다구?"
병완은 코수염쟁이를 피득 쳐다보고는 손을 잡지 않았다. 일어로 지껄이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일본 사람의 손을 잡기도 싫었다. 그는 대패질을 계속 하면서 먼지 묻은 왼손을 쳐들어 손가락을 폈다 꾸부렸다 했다. 뜻인즉 손에 먼지가 묻어 악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핑계였다.
     끼무라는 자존심이 상한대로 손을 되돌려가면서 대패질한 나무판자를 쥐여 어루만지었다.
    “요로씨이(좋아)!”
   끼무라는 엄지를 내밀었다.
   류강철은 옆에서 한길수와 병완에게 통역해주었다.
   “대패질을 잘했다고 치하하네. 감사를 드리게나.”
   병완은 끼무라의 코 수염과 한길수의 번대머리를 번갈아보다가 대패질을 계속했다.
   “빈 입만 놀리지 말고 삯전이나 푼푼히 달라고 하게나.”
   류강철은 그 당돌한 말을 듣고 입을 딱 벌렸다. 한길수도 황급해났다.
   그런 줄도 모르고 끼무라는 그저 빙그레 웃으면서 류강철을 돌아다보았다.
   한길수가 제꺽 받아넘겼다.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통역하게나.”
  그러자 류강철은 “고노 히도와 ‘간샤시마시다’ 또 이이마시다.( 이 사람은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하고 되는대로 통역해 주고나서 한숨을 푸- 내쉬였다.
   “요로씨이, 요로씨이(좇지, 좋아)!”
   목수 간을 나서자 끼무라는 한길수를 돌아보고 말했다.
   “금방 본 그자는 이름이 뭔가?”
   “김병완이라고 부릅니다. 목수이름을 알아 뭘 합니까?”
   끼무라는 도리머리 질을 했다.
   “아니야, 그자는 장수같이 생겼어. 그런데 눈길이 곱지 않더란 말이야.”
   한길수는 끼무라의 속심이 뭔지 몰라 우선은 병완이를 헐뜯어놓고 볼 판이었다.
   “그 놈은 힘이 무 짐작이지만 우직하기로 뜨개 소 같은 놈입니다. 그래서 그 놈을 도감으로 시킨 겁니다.”
   유심히 듣던 끼무라는 한길수를 정색해서 보면서 말했다.
  “저런 우직한 놈은 소처럼 잘 얼려서 부려먹어야 하네. 자칫하면 뜨개 소처럼 뜰 게 아닌가?”
   한길수는 끼무라 앞에서 연신 허리를 굽씬거리었다.
   “예, 알았습니다. 끼 국장님, 아니, 끼무라 국장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뜨개소가 뜨기만 하면 가차 없이 메로 대가리를 까 부셔 뿌리를 뽑아버리겠습니다. 헤헤헤.”
    “아니요. 내 말은 뜨개소가 뜨지 말게 잘 얼리라는 게요. 잘 얼려서 우리 황군의 경찰국 사무 청사를 잘 짓게 하란 말이요?”
   “에- 예, 예, 알았습니다.”
   자기까지는 아주 일본상전의 뜻을 잘 이해한 것 같았는데 틀릴 줄이야.
   “예, 예, 먹을 풀을 푼푼히 줘서 뜨개소를 잘 얼립죠. 저 놈이고야 저 많은 인부들을 이끌고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지을 수 있으니까.”
   끼무라는 몸을 한길수에게 돌리면서 물었다.
   “저자가 인부들의 우두머린가?”
   “아니, 내놓고 그런 건 아니지만 인부들이 저 놈의 말을 잘 듣지요.”
     한길수는 병완을 헐뜯는다는 것이 그만 말이 빗나간 것을 알고 혀를 홀랑 내밀었다가 감빨았다.
     끼무라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목수 간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김병완이라? 알았네.”
   끼무라는 나무를 나른다, 톱질을 해 원목을 끊는다하면서 들끓는 공지를 돌아 보고 나서 한길수가 이 많은 인부를 데려다가 일을 해재낀다고 일본말로 연신 치하했다.
   그는 코수염을 매만지면서 한길수의 번들 이마와 우멍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한상은 정말 능력이 있는 놈이야, 이번 일만 잘하면 자위대 대장쯤은 시켜야겠어.)
   한길수는 상전의 치하에 어깨가 으쓱해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렸다.
   끼무라는 한길수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분부했다.
   “한상, 이제 가을 전에 2층집을 다 지어야겠네.”
   “품삯만 푼푼히 주면 저 놈들이 문제없이 지을 겁니다.”
   강철이 통역해주자 끼무라는 히죽이 웃더니 한길수의 가슴을 주먹으로 퉁퉁 치면서 말했다.
   “대일본제국의 경찰국을 짓는데 무슨 놈의 삯전이야?”
   통역을 들은 한길수는 낯으로부터 번들이마까지 뻘겋게 번져갔다.
   “난 이미 숱한 삯전을 주었소이다. 이젠 재물이 거덜 날 지경입니다.”
   한길수가 손수건을 꺼내 번들 이마에 송골송골 돋은 식은땀을 뚝뚝 찍으면서 말했다.
   끼무라는 군도자루를 바른 손에 바로 잡아 쥐더니 눈알을 부라리면서 한길수를 쏘아보았다.
    “한영감, 대일본제국을 위해 죽으면 어떤가?"
    한길수는 두 손을 쳐들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 건 아니구. 저."
    끼무라는 한길수를 쏘아보며 지껄여댔다.
   "그까짓 몇 푼 안 되는 재물 그렇게 아깝소이까?”
   한길수는 무릎이 다 나른해져 비칠거렸다.
   그는  끼무라가 간을 빼가는듯 배 아팠다. 그러나 그는 발바리로서 머리도 빙글빙글 잘도 돌아갔다.
   그는 용케도 발라맞췄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내 집을 팔아서라도 경찰국을 져야 하죠.”
    그제야 끼무라는 한길수를 웃음기 담긴 눈길로 보면서 어조를 낮췄다.
   “한상, 이제야 대일본제국의 충신답네그려. 껄껄껄.”
   끼무라는 몇 대 안 되는 코 수염을 슬슬 쓰다듬었다.
   “한상 가을 전에 집을 다 짓자면 이 인부들로는 안 되네. 더 모집해오게나.”
   “예, 응삼을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에 보냈습니다. 근심하지 마시오.”
   “응, 요로씨이(좋아), 우린 한상만 믿겠네. 올 가을에는 새 경찰국 사무 청사에서 사무를 봐야 하겠네.”
   한길수는 끼무라 앞에서 연신 중절모를 벗어 쥐고 아픈 허리를 굽혔다.
  한길수의 비굴한 모양을 목수 간에서 내다보고 병완은 건 가래를 퉤 내뱉었다.
   “퉤! 언제부터 저렇게 구역질나게 번졌어?”
   덕팔도 손바닥에 침을 뱉어 톱자루를 잡고 쓰르륵쓰르륵 톱질하면서 코웃음쳤다.
   “흥! 더러워서. 보아하니 일본 경찰서나 파출소를 짓는 모양이오.”
   최동욱은 자귀질하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지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 고장에 들어와서 이렇게 큼직한 집까지 져 들고 안방주인행세를 할 예산이구만.”
   “글쎄 말이네. 정말 삯전이 아니면 일본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싶지 않네.”
   그들이 이렇게 말을 주고받으면서 삯전을 벌 일루의 희망을 품고 목수 일을 하다나니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판이다.
     가을 하늘은 높고 프르러 다 올려다보였건만 일제 철발굽 아래 인간세상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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